[책 감상/책 추천] 매트 헤이그, <시간을 멈추는 법>
주인공 톰 해저드는 1581년에 태어나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의 장수의 비밀은? 뱀파이어도 아니고 엘프도 아니고 애너제리아(Anageria)라는 병 때문이다. 조로증이 빨리 늙는 병이라면, 이건 아주 천천히 늙는 병이다.
그는 500년 가까이 살면서 딱 한 여자만을 사랑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과 행복하게 살았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늙지 않는 그의 정체를 괴이하게 여긴 사람들이 그의 어머니를 마녀로 여겨 죽이고 그 자신도 달아나야 했기에 아내와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행복을 뒤로 하고 그들의 곁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아내는 결국 죽었고, 딸과는 멀리 헤어지게 되며 혼자 지내게 된 톰.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서로를 돕는 협회 '소사이어티'에 가입하고 그 우두머리인 헨드릭의 명령에 따라 다른 회원들을 구하고 8년마다 사는 곳과 자신의 '신분'을 바꾸며 살아왔다.
그는 과거의 기억으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지만 그 추억은 지울 수가 없다.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딸과의 재회뿐.
그러던 어느 날, '사랑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그에게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낯선 여자가 나타나는데... 그는 과연 그리운 딸을 다시 만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띠지에 적힌,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 영화 제작 확정!"이라는 말만 듣고도 이 책을 사신(또는 사실) 분들이 많을 줄로 안다.
왜냐하면 나도 그랬으니까^^... <셜록(Sherlock)> 시즌 1부터 그의 팬이었던 나는 이 광고 문구와 간단한 시놉시스(약 500년쯤 산 남자)만으로도 이 책을 읽고 싶게 되었다.
그래서 바로 사서 읽었는데 내 솔직한 감상을 밝히자면, '이걸 영화로 만들려면 각색 작업을 꽤 잘해야 할 것 같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톰의 어머니가 마녀로 몰리는 시간대, 톰이 첫사랑이자 아내를 만난 시간대, 아내와 딸을 떠난 시간대, 그리고 그 이후부터 이 소설이 시작되는 현대 전까지 이곳저곳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 주는 시간대가 계속 왔다 갔다 한다.
글에서야 이렇게 저렇게 시간대와 장소를 바꾸는 게 어렵지 않고 조금 헷갈려도 앞으로 되돌아가 이해가 될 때까지 다시 읽으면 되니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잦은 플래시백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고 자칫하다간 이야기의 흐름도 끊어 먹기 쉽다.
그러니 이걸 영화로 만들려면 플래시백의 횟수를 줄이기 위해 아마 이 소설의 (시간상으로) 초반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베네딕트를 닮았으면서 아주 어려 보이지는 않는(애너제리아는 아주 천천히 늙으니까) 아역/청년 역 배우를 찾는 것도 중요할 듯싶다.
이야기의 (순서상) 재배치뿐 아니라 캐릭터 다듬는 일에도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다.
특히 후반부의 결말은 사실 이 소설 내에 이렇다 할 악역이 없어서 그런지 좀 억지스러웠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자세히 말은 못하지만 끝까지 읽으시면 내 말에 공감하시리라 본다.
결말을 좀 더 그럴듯하게 바꿔야 할 필요도 있고, 무엇보다 마지막에 '나는 더 이상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곧 미래니까.' 하는 식으로 주절주절 늘어 놓는 것도 영화에서는 지양했으면 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게 그거다. 마치 모든 이야기에는 교훈이 있어야 한다는 듯, 그것도 주인공의 입을 빌려서 교훈을 늫어놓는 것.
솔직히 상식적으로 이 책 제목과 시놉시스, 아니 그래 조금 더 나아가서 소설 초반만 간단히 읽어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지금을 소중히 여기자.'풍의 이야기일 것이 감이 오지 않는가.
독자는 다 안다. 그러니까 굳이 그렇게 직접적인 언어로 말을 안 해도 된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독자들은 다 이해한다.
오해는 마시라. 나는 이런 게 감상적이라고 싫어하는 게 아니고, '오글거린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듯 가르치려 드는 게 싫은 거다. 무슨 우화나 동화도 아니고 꼭 끝에 그렇게 설교처럼 덧붙여야 하나 싶다.
미래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다들 안다. 아는데 실천하기가 어려우니까 쩔쩔매는 것뿐이지.
그건 다들 아는데, 그런 메세지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가능하다면 감동적이게 전할까 하는 게 문제인 거다.
이 소설에서 끝에 굳이 그런 교훈적인 말을 덧붙인 건, 말하자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고아원에서 자원봉사를 한 경험을 잔뜩 쓰고서 끝에 '고아들이 너무 불쌍했고 가족의 소중함을 배웠다' 이렇게 쓰는 거랑 다름이 없다.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야 도대체 누가 가족의 소중함을 누가 모르냔 말이다!
그거 말고 그 경험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아주 독특한 깨달음, 예를 들어 애가 울 때에는 섣불리 달래려하기보다 장난감으로 관심을 끄는 게 더 효과적이다, 뭐 이런 구체적인 걸 써야지.
이 소설에서도 너무나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말로 작품의 끝을 맺은 게 너무 아쉽다. 그 점이 '갑작스러운 악역(어떻게 보면 너무나 예상 가능하기도 했지만)'이나 '허무한 결말'보다 더 이 책의 가능성을 깎아 먹은 것 같다.
영화 각본을 만드는 각색 작업을 누가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책의 가능성을 정말 최대한 살려서, 이 이야기에서 부족했던 점을 갈고닦아 잘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은 그냥 도서관이나 친구 등에게서 빌려서 읽고 나중에 영화가 개봉하면 타이인(Tie-in, 파생 상품)으로 영화 포스터(+베네딕트 얼굴)르 커버로 한 원서 문고판이 나올 테니 차라리 그걸 샀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때쯤 되면 아마 국내에서도 띠지에라도 베네딕트 얼굴을 조그맣게라도 인쇄해서 붙여 팔겠지. 차라리 그걸 사는 게 덕질 굿즈로는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그래도 eBook으로 사서 읽은 거라 공간 차지는 안 하니 긍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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