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Breaker Uppers(브레이커 어퍼스, 2018) - 대신 헤어져 드립니다
감독: 매들린 새미(Madeleine Sami), 잭키 반 빅(Jackie van Beek)
멜(Mel, 매들린 새미 분)과 젠(Jen, 잭키 반 빅 분)은 애인과 대신 헤어져 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의뢰인의 원래 여자 친구(곧 헤어지게 될) 앞에서 의뢰인의 새 여자 친구인 척 키스를 한다든지, 밴을 타고 나타나 갑자기 의뢰인을 사람들 앞에서 납치해 가는 척한다든지(옛 남자 친구가 더 이상 의뢰인을 찾지 못하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기발한 방법으로 대신 헤어져 주는 이 서비스는 이성애자, 동성애자를 가리지 않고 성업 중이다.
이 영화가 시작된 그날도 이 둘은 경찰인 척하며 애나(Anna, 실리아 파쿠올라 분)라는 여자에게 그의 남자 친구가 실종되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애나는 이 말을 철썩같이 믿고 펑펑 운다. 둘은 겨우 애나를 떼어놓고 나와서 다음 의뢰인을 만난다.
이 의뢰인은 조단(Jordan, 제임스 롤스턴 분)이라는 청년인데, 어째 여기에 와서 젠을 보고 반한 듯하다.
어쨌거나 그의 말을 들어 보니 그는 지금 여자 친구와 헤어지려고 여러 번 시도해 왔는데 도저히 헤어질 수가 없었단다.
조단을 헤어지게 하기 위해 멜과 젠이 출동! 그러나 그의 여자 친구는 강적이고, 조금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젠이 주먹으로 한 대 맞고 다 같이 도망치는 위기에 처했다.
과연 멜과 젠은 조단과 그의 여자 친구를 헤어지게 할 수 있을까? 조단과 젠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애나는?
멜을 자기 새 여자 친구라고 소개하는 조단(왼쪽)과 그 말에 어이가 없는 멜(오른쪽)
드레드락 머리를 하고 베이지색 재킷을 입은 무서운 언니가 조단의 진짜 여자 친구 세파. 시녀는 저 둘 말고도 더 있는데 사진엔 둘밖에 안 나왔다.
세파에게 조단은 지금 너랑 헤어지고 싶어 한다고 설명하는 젠(노란 가방 들고 선글라스 쓴 여자).
주연을 맡은 두 키위(Kiwi, 뉴질랜드(New Zealand) 사람을 가리키는 말) 배우 매들린 새미와 잭키 반 빅이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까지 공동으로 맡았다.
이 영화가 과연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감상을 써 보겠다. 내용은 위에 썼듯이, 제목 그대로 '헤어지게 하는 사람들(breaker uppers) 이야기이다(본인이 헤어지는 게 아니라 '남을 헤어지게' 한다는 의미이다).
뉴질랜드 액센트를 듣느라 약간 힘들었지만, 독특한 설정이 매력적이었고 사건 진행도 꾸물거리지 않는 데다가, 9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아주 적절해서 지루하지 않고 산뜻한 영화였다.
첫 시작은 둘이 일단 애나를 만나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고 그다음에 '대신 헤어져 주는' 이 두 여자의 사업을 찾아온 손님들을 간단히 보여 주는데, 사실 이건 트레일러에 나온 게 거의 전부라고 보면 된다.
나는 트레일러에서 손님들의 의뢰+해결 방법을 각 손님당 약 2~3초 정도씩 편집해서 보여 주길래 '아, 이건 트레일러라 간단하게 편집한 거고 본편에서는 조금 더 앞뒤 이야기를 보여 주겠구나'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그냥 트레일러 내용이 그게 다임. 어차피 진짜 중요한 의뢰는 첫 번째 애나와 두 번째 조단, 이거 두 개니까. 이게 영화를 끝까지 이어가는 핵심이고 다른 손님들은 그냥 '이런 웃긴 일도 있었답니다' 하고 보여 주는 것에 불과하다(혹시 나처럼 트레일러 보고 기대하실까 봐 미리 알려드린다).
그렇다 해도 이 다른 의뢰인들 부분이 웃기니까 괜찮다. 결혼식에서 사제 앞에 서 있는 게이 커플에게는 하객 자리 맨 앞 줄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네가 날 임신시킬 땐 너 게이 아니었잖아!" 한다든가, 대뜸 초인종을 누르고 남자가 문을 열어 주자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너랑 함께하고 싶지 않아" 하는 블루스 노래를 부른다든가(이런 식으고 결별 선언을 받으면 정말 다시 붙잡을 의욕도 안 날 듯).
둘 중 성격이 좀 더 다정한 편인 멜이 우연히 길에서 만난 애나를 위로해 주려고 하다가 사건이 꼬이는 것이 퍽 재미있다.
이 흐름에서 젠과 멜이 애초에 어떻게 만나서 친구가 되었는지를 가라오케 영상으로 보여 주는데, 와, 아니 어떻게 이럴 생각을 했지 싶을 정도로 놀라운 발상이다.
80년대 촌스러운 의상을 입고 어색하게 연기하는 가라오케 영상은 내용도 웃기다. 이건 진짜 꼭 보셔야 한다 ㅋㅋㅋㅋㅋ
멜과 젠은 젠의 어머니네 댁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가 '둘이 사귀는 것 아니냐' 하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둘이 진짜 사귀는 게 아니라면 어차피 둘 다 남자도 없으니 사귀는 걸 고려해 보라는 어머니의 말에 멜은 자기는 바이섹슈얼이며 동성애는 '고려해' 보는 게 아니라 그냥 타고나는 거라고 말한다.
이 다음에 나오는 대사가 진짜 웃긴데 19금이라 차마 여기에 적지는 못하겠고... 이것도 진짜 꼭 보셔야 한다(2) ㅋㅋㅋㅋㅋ
사족이지만 멜은 자기가 절반은 아일랜드인이고 절반은 인도인이라고, 그래서 '말하자면 커리와 감자'라고 하는데 실제로 멜 역의 배우 매들린 새미는 아일랜드인과 피지(Fiji) 원주민의 혼혈이다.
조단의 여자 친구 세파(Sepa, 아나 스코트니 분)는, 조단 말마따나 'very... persuasive... flower' 같다. 눈빛이며 포스가 무서워서 감히 헤어지겠다는 말을 못 꺼낼 정도.
세파를 중심으로 그녀를 호위하며 모시는 시녀들 여럿이 있는데 이들도 웃김ㅋㅋㅋㅋㅋ 나중에 젠도 그 일부가 됩니다...
의뢰인 조단은 멜에게 반해서 추파를 보내고 젠은 의뢰인과 사적으로 얽히면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멜은 그런 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여기에서 시작된 갈등이 영화 끝에 해결되는데 이쯤 되면 눈치 채신 분도 있겠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여자 친구들끼리의 우정이다. 그리고 그걸 유쾌하게 잘 그려낸다.
두 주연 배우들의 합이 찰떡같이 잘 맞아서 영화도 잘 만들어졌나 보다.
여러분도 이미 영화 <What We Do In The Shadows(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2014)>나 TV 드라마 <Flights of the Conchords(2007-2009)>로 익숙하실 저메인 클레멘트(Jemaine Clement)가 젠의 틴더(Tindr, 해외 즉석 데이팅 앱) 데이트 상대로 카메오 출연한다(참고로 매들린 새미도 <What We Do In The Shadows>에서 모라나(Morana) 역으로, 잭키 반 빅도 잭키(Jackie) 역으로 출연했다. 기억나시는 분?).
저메인 클레멘트, 그리고 브렛 맥켄지(Bret McKenzie)와 같이 작업한 뉴질랜드 배우이자 감독 및 프로듀서 타이카 와이티티(Taika Waititi)가 이 영화의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니, 이 정도면 이 영화 재미는 보장된 거 아닌가요?
이 일련의 뉴질랜드 괴짜들을 좋아하신다면 이 영화도 한번 거들떠보시라! 그들의 괴짜스러움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도 분명히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것이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