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Never Rarely Sometimes Always(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 2020) - 어째서 십 대 소녀의 삶이 이렇게까지 아슬아슬해야 한단 말인가
감독: 엘리자 히트맨(Eliza Hittman)
17살 오텀(Autumn, 시드니 플래니건 분)은 펜실베이니아 시골에 산다. 학교 장기 자랑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Slut(헤픈 년)!"이라는 욕지거리를 듣는 소녀.
사실 그녀는 임신했다. 산부인과를 갔는데 그곳 의사 말로는 10주 정도 된 것 같다 하고, 리셉셔니스트는 "아이를 원하지만 갖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라며 은근히 오텀이 아이를 낳을 것을 종용한다.
다행히 오텀의 친척이자 절친인 스카일라(Skylar, 탈리아 라이더 분)는 오텀의 편이다. 그래서 슈퍼마켓에서 캐셔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짝 훔친 돈을 챙겨 두 소녀는 오텀이 임신 중지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뉴욕시로 향한다.
아, 보면서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두 번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보면서 내내 마음 졸이며 과연 이 소녀들이 무사히 수술을 받고 나서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했다.
아무래도 주제가 십 대 소녀의 임신과 임신 중지 수술이니만큼, "재미있다"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흥미롭고 좋은 작품인 것은 맞는다.
최근 미국의 텍사스 주가 임신 중지를 불법화했는데,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
임신 중지가 불법이 아닌 주로 가서 수술을 받으면 된다지만 그 수술 비용뿐 아니라 오며가며 드는 차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특히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거나, 부모님께 알리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이 더욱더 큰 위험에 처해 있다.
나는 솔직히 이 영화의 주인공 오텀이 임신 중지를 선택하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굳이 <주노(Juno, 2007)>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많은 영화에서 십 대 소녀가 임신을 할 경우, 헤프다거나 미쳤다거나, 철이 없다거나 하는 욕을 먹어도 결국 '그래도 키워 보고 싶어, 내 아이니까' 운운하며 아이를 낳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건 정말 비빌 구석이 있는 (부모님이 당신의 손주를 키워 줄 경제적 능력이 되는) 경우이거나 아니면 정말 임산부 그리고/또는 아이의 아빠 되는 남자애의 머리가 꽃밭이라 그 결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경우처럼 보인다.
왜 꼭 십 대 소녀가 임신을 했다고 해서 그 아이에게 어떤 미안함이나 미련, 모성애 따위를 느껴야 한단 말인가?
어떤 소녀들은 그런 감정을 느낄 감정적, 또는 경제적 여유가 없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텀이 임신 중지라는 선택을 한 게 좋았다. 십 대 소녀의 임신보다 더 드물게 이야기되는 것이 십 대 소녀의 임신 중지이니까.
그리고 오텀이 뉴욕시까지 가고 또 거기에서 (정확히는 맨해튼에 있는 시설로 옮겨가서) 임신 중지 수술을 받는 과정 내내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라거나 미안함이라거나, '내가 내린 선택이 과연 맞는 것인가' 따위의 고민을 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 주지 않아서 더더욱 좋았다.
그런 내러티브를 볼 때마다, 임신 중지를 하는 여성에게 감정적 부담까지 얹어 주려는 무언가의 압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보세요, 임신 중지 자체가 여성에겐 신체적으로 무척 힘든 일이라고요!
생명의 숭고함이니 뭐시기니 하는 것 따위를 고상하게 따지고 고민하고 있을 여유가 없는 여성도 있을 수 있단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여성들은 자신이 내린 결정에 일말의 후회나 자책이 없을 수도 있지. 원하지 않으니까, 또는 낳아도 잘 돌봐줄 수 없으니까 낳지 않는다. 그처럼 간단한 결정인데 말이다.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이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재빨리 스크롤을 내려 마지막 문단만 읽어 주세요!)
이건 내 추측이긴 한데, 오텀이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들에게 알리지 않고, 도움도 구하지 않고 또래 친구 스카일라만 데리고 임신 중지 수술을 받으러 먼 길을 떠난 건,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없는 이유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오텀의 어머니의 남자 친구쯤으로 보이는(왠지 친아버지 느낌은 아니다) 테드(Ted, 라이언 이골드 분)가 오텀에게 하는 짓이 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오텀이 옆에 있는데 애완견을 귀여워하는 척하면서 "slut(헤픈 년)"이라 부르질 않나, "Look how easy she is(얘 얼마나 쉬운지 보라니까)" 같은 소리를 하면서 은근히 오텀 쪽을 쳐다본다.
내가 보기엔 이자가 오텀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다. 나중에 오텀이 미국 가족 계획 연맹(Planned Parenthood, 임신 중지 수술 등 성 건강의 도움을 주는 비영리 단체) 시설에 가서 카운슬러에게 일련의 질문을 받을 때 보이는 모습을 보면 약간 그런 추측을 하게 만든다.
"당신의 파트너는 당신이 섹스하고 싶지 않을 때 섹스하게 만듭니까?"라는 질문에 "Never, Rarely, Sometimes, Always(절대 아니다, 거의 그렇지 않다, 가끔 그렇다, 늘 그렇다)"라는 보기 중 하나를 골라서 대답하면 되는데(그렇다, 영화 제목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다음 질문이 마지막인데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은 적 있나요?"라는 이 질문에는 딱 한 번 솔직하게 "네"라고 대답한다.
영화 내내, 대부분의 시간에 별로 솔직하지 못하던 오텀이 딱 이때만큼은 솔직해진 것이다. 불쌍한 것...
테드라는 자가 오텀에게 몹쓸 짓을 한 게 아니더라도, 여전히 나쁜 놈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오텀이 학교 장기 자랑 때 딱 그 단어("헤픈 년")으로 괴롭힘당한 걸 자기도 목격했으면서 은근히 오텀 앞에서 그 단어를 쓰면서 애를 괴롭히는 셈이니까. 진짜 환멸...
그리고 또 버스에서 만난 남자애 재스퍼(Jasper, 테오도어 펠러린 분)에게 딱히 마음은 없지만 버스비가 없어 어디에서든 돈을 구해야 해서 관심 있는 척 그와 데이트를 하고 키스까지 받아 줘야 했던 스카일라도 너무 불쌍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이 두 소녀가 아르바이트하는 슈퍼마켓에서 일이 끝나고 금전 출납기의 현금을 모두 모아서 마트 직원에게 내야 하는데, 이때 그 현금을 건네는 소녀들의 손등에 키스하는 성인 남성도 역겹다.
오텀이 입덧 때문에 구토를 하고 나와서 집에 가고 싶다고 조퇴를 하려는데 오텀 대신에 이를 대신 말해 주는 스카일라에게 "네가 가면 난 외로울 거야" 이 지랄 하는 게 제대로 된 성인 남성이냐... 아주 쓰레기다.
어째서 십 대 소녀의 삶이 이렇게까지 아슬아슬해야 한단 말인가.
워낙에 무거운 주제고 그걸 풀어나가는 방식도 그저 차분하고 조용히, 맑은 눈으로 이 소녀들을 보여 줄 뿐인 이 영화가 모든 이의 취향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어떤 이들에겐 현실이라는 점까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영화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