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추천' 태그의 글 목록 :: 먹고, 자고, 읽고 '책 추천' 태그의 글 목록 :: 먹고, 자고, 읽고

[책 감상/책 추천] 나탈리 크납,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책 표지에 쓰여 있는, '과도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아름다운 지적 여정'이라는 책 설명이 이 책을 잘 요약해 준다.

무언가의 번데기 같은 과도기,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그 불안한 시기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그 시기를 견디게 해 주는 사유가 담겼다.

 

되돌아보니 나는 정말 힘이 드는 시절에 철학 도서를 읽으며 견딜 수 있었다.

첫 직장을 다닐 때 정말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는 소로우(Thoreau)의 <월든(Walden)>을 읽으며 힘을 냈고, 그다음 직장에서 혹사당할 때는 니체(Nietzsche)의 철학을 설명한 입문서를 읽고 멘탈을 보듬었다.

그리고 지금, 도대체 내가 여기에서 잘하고 있긴 한 건지, 돌아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시기에 이 책을 만났다.

 

저자인 나탈리 크납은 독일의 저명한 임상 철학자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이 책으로 처음 이름을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게 뭐가 중요하랴. 중요한 건 책 내용이지. 내가 이러쿵저러쿵 떠드느니 그냥 내게 힘이 되었던 구절을 몇 부분 발췌해서 보여 드리는 걸로 리뷰를 대신하고자 한다.

 

그러나 한 해의 첫 과도기인 새봄은 우리에게 또 다른 것을 알려 준다. 그것은 바로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유용썽과는 별개로 우리를 감동시킨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벚꽃 봉오리는 앞으로의 운명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매력을 발산한다. 버찌가 열릴지 열리지 않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벚꽃은 버찌로 변신한 다음에야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수정되기 전 밤 써리를 맞아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여도, 벚꽃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며, 그의 일을 다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우리가 인생의 과도기를 보낼 때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럴 때 우리는 이런 벚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하며, 훗날 우리가 스스로 또는 주변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수확물을 낼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런 순간에 우리는 연약하기 짝이 없다. 첫아이를 낳은 뒤 부모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견뎌낼 수 있을까? 중병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실질한 뒤 새로운 직업을 구할 수 있을까? 은퇴한 뒤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불확실한 상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우리는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고, 잘못된 결정을 할까 봐 두려워한다. 너무 무리수를 두는 건 아닌지, 아니면 너무 소극적으로 임하는 건 아닌지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두려움은 우리의 주의력이 고양되었다는 표지다. 유명한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도 두려움은 살아남는 데 아주 중요한 감정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문제는 두려움이 아니다. 교육학자 라인하르트 카를의 말처럼 문제는 우리가 두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다 보니 두려움이 우리를 마비시킨다는 사실이다. (...)

 

우리 역시 적절한 도움이 있었더라면 두려움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랬더라면 두려움이 우리를 깨어 있게 하며 예리한 감각을 지니게 하지만, 그것이 결코 우리가 지금 잘못을 저지르고 있거나 잘못을 저지르기 직전임을 보여 주는 표지가 아니라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사람은 과도기에는 결코 잘못을 저지를 수가 없다.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종종 반복되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수학 문제에서는 정답과 오답을 가릴 수 있다. 그러나 유일무이한 인간의 유일무이한 상황과 관련해서는 결코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과 다르게 살았더라면 더 나았을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른 선택으로 말미암아 지금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빚어졌을지도 모른다. 삶에는 늘 우연과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런 돌발 사건도 없고 일이 복잡하게 얽히지도 않는 단순하고 이상적인 상태를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다른 치료를 택했더라면 더 건강해졌을 거라고 누가 그러던가? 다른 배우자를 만났더라면, 다른 직업을 구했더라면,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더 행복해졌을 거라고 누가 그러던가?

 

(...) 그로부터 2500년 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모든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새로운 존재라면서, 우리와 같은 삶의 상황에 놓인 사람은 오직 우리밖에 없으며, 인생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만난다 해도 그것이 꼭 우리의 잘못 때문에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런 결과들은 그 자체로 지금 주어진 삶과 새롭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서, 오히려 스스로 계산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 어우러짐으로써 매 순간 우리에게 행동의 여지를 마련해 준다고 했다. "인간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그가 모든 계산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을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연성이 없어 보였던 일이 어느 정도 개연성을 띠게 된다는 뜻이며, '이성적으로는', 즉 계산 가능하다는 의미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일을 희망해도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주어진 수단으로 진정 노력하고 있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가 늘 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의 현재 상황과 화해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다. 불가피한 것을 받아들일 때만이 우리는 열린 사람이 되며, 아직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서도 손을 내밀 수 있다. 오늘 우리에게 불행으로 여겨지는 것이 며칠 뒤 또는 몇 년 뒤에는 행복한 섭리로,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드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짠, 놀랍게도 이 인용문들이 모두 1부, '1 봄의 메시지 - 희망은 어떻게 다시 오는가'에서만 뽑은 것들이다. 

그 말인즉, 이것 말고도 불확실한 날들에 희망을 주는 철학이 많다는 것이다. 2부는 '시련-인생의 과도기'인데 삶의 시기(청년기, 노년기 같은),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3부는 개인적인 관점뿐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인 관점도 살펴본다.

불안할 때는 시야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시야를 시도해 보는 것도 불안한 마음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원래 나는 리디셀렉트를 써서 굳이 가욋돈을 들여 책을 사는 사람이 아닌데, 이 책은 대여가 아니라 아예 구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정말 내용이 풍부하고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됐다. 

빌려 읽어도 좋고 사서 읽어도 좋은 책이라 하겠다. 추천!

[책 감상/책 추천] 니시오 하지메, <죽음의 격차>

 

 

트위터에서 언급된 걸 보고 알게 되어 찾아봤는데, 다행히 리디셀렉트에 있어서 가욋돈 내지 않고 바로 다운 받아 읽어 볼 수 있었다.

부검을 하는 법의학자가 목격하고 느낀, 죽음이 어떻게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은지'를 이야기하는 논픽션 에세이이다.

 

얼핏 보면 죽음은 만인에게 공평할 것 같다. 백만장자도, 홈리스도 어쨌든 결국에는 죽으니까.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그 죽음의 양상이 모두에게 똑같이 나타나는가? 아니다. 가난하면 돈이 있는 것보다 죽음이 더 빨리, 더 고통스럽게 찾아올 수도 있다.

저자가 법의학자로서 일하며 관찰한 바는 그러하다.

예컨대, 보통 사람들은 '춥긴 하지만 얼어죽을 정도의 날씨는 아닌 겨울에, 집 안에 있다면 아무리 추워도 옷과 이불을 둘둘 둘러싸고 있으면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시베리아 수준의 추위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집 안에서 동사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충분한 영양 섭취가 되지 않았다면.

경찰은 사망한 남성이 몸이 불편한 곳도 지병도 없었다고 전했다. 남성의 거주지를 포함한 우리 법의학 교실의 부검 대상 지역은 폭설이 쌓이는 한랭 지역도 아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가진 옷을 전부 껴입고 이불을 둘러싸고 있으면 얼어 죽을 일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조건만 갖춰지면 설사 그곳이 집 안이더라도 동사한다. 인간의 체온은 통사 37°C 전후를 유지한다. 하지만 체온이 어떤 이유로 28°C 정도까지 내려가면(때로는 이 정도까지 내려가기 전에) 심장에 부정맥이 발생해 사망한다.

인간은 주위 온도가 체온보다 낮으면 체내의 에너지를 소비해 열 발생을 일으킨다. 스스로 생존에 필요한 체온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에너지원이 되는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면 열 발생이 부족해진다. 열 발생이 몸의 열 발산을 따라가지 못하면 체온은 서서히 낮아진다. 실제로 부검한 남성의 위와 장은 깨끗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소지한 돈이 없었다는 것으로 미뤄볼 때 한동안은 만족할 만한 식사를 못 한 것 같다.

나는 이 남성과 같은 "빈곤에 의한 동사" 사례를 수없이 봐 왔다. 돈이 없어 제대로 먹지 못하면 체력과 면역력이 서서히 떨어진다. 이럴 때는 가진 옷을 모두 입고 이불을 둘러싸고 있어도 체온이 떨어져 사망한다.

이걸 읽고 정말 놀랐다. 집 안에서도 동사할 수 있구나. 만약에 돈이 좀 있어서 식사라도 제대로 할 수 있었다면 사망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텐데.

 

가난이 생명을 죽인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일화 하나 더.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이 출근하지 않은 어떤 50대 남성. 동료가 걱정되어 그의 집을 방문해 보니, 그는 거실에 쓰러져 사망해 있었다.

원인은 대장에서 진행 중이었던 암. 그는 치료를 전혀 받지 않고 내버려둔 탓에 암이 대장을 꽉 채울 정도로 커진 상태였다고 한다.

치료만 받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이 죽음의 직접적 사인은 '장폐색'이다. 만일 좀 더 빨리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면 장폐색은 일어나지 않고 생활에 지장 없이 살 수 있었다.

장이 부풀어 오를 정도로 꽉 차 있었기 때문에 구토와 같은 심한 증상으로 본인도 병원에 가야 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 의하면 병원에 갔던 기록은 없었다.

단순히 '병원이 싫다'는 이유로 진찰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남성도 그런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병원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 아픔을 참아 가며 사망에 이르는 사람이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리고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충격받은 것. 가난하면 식생활이 형편없어지는데 이 사실을 아주 극단적으로 보여 준 예다.

과거에 한 번, 당뇨병은 아니었지만 10년 동안 컵라면만 먹었다는 50대 남성(무직)의 시신을 부검한 경험이 있다. 치우친 식생활의 결과는 부검 소견에 확실히 나타났다.

남성의 사망 원인은 간부전. 부검을 해 보니 붉은색이어야 할 간은 전체가 희멀건한 노란색으로 완전한 지방간이었다. 그야말로 지방간으로 인한 간부전이다.

남성은 정사원으로 취직을 못 해 일용직 노동으로 겨우 먹고사는 상황이었다. 남성은 적은 식비로 가장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 바로 컵라면을 주식으로 선택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형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연히 몸에 필요한 균형 잡힌 영양은 공급해 주지 못한다.

식생활이 수입과 직결되는 것은 부검 현장에서도 통감한다. 당뇨병이나 지방간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 어떤 식생활을 해 왔는지 몸 안에 전부 흔적이 되어 증명처럼 남아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음,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형편없는 식생활을 하고(실제로는 가난한 게 아니더라도) 술을 많이 처먹도록 부추겨야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비명횡사하는 데 지름길이더라... 뭔가 교훈이 엉뚱한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어쨌거나 정말 죽음은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다. 죽음은 가난하고 특히 혼자 사는 이들에게 더욱더 불공평하다.

 

놀라운 건, 에필로그를 보면 저자는 원래 죽음이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완전히 반대인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 달라는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쓰기 시작한 게 바로 이 책이다.

죽음에도 '격차'가 있다는 걸 꿰뚫어 본 출판사 측의 통찰력이, 와, 정말 상당하다.

몇십 년을 부검하던 법의학자도 잘 인지하지 못했던 걸 캐치해서 작가에게 의뢰할 정도면... 이 정도 혜안을 가져야 출판사에서 일할 수 있는 건가 보다. 나도 이런 눈을 기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런 통찰력이 있는 책을 자주 접해야겠지. 그런 의미에서 추천한다.

[책 감상/책 추천] 신예희,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제목부터 기가 막힌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원제는 '물욕'이었다는데 그만큼 원체 물욕이 많은 저자가 돈지랄을 하면서 느낀 기쁨과 슬픔, 애환을 에세이로 잘 표현했다.

돈지랄, 하고 가만히 불러보면 가슴이 뛴다(아이고 아련해라). 뭘 지를까, 생각만으로 이미 설렌다. 세상엔 수많은 지랄이 있고 그중 최고는 단연 돈지랄이다.

 

우리나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도 요즘 같은 상업주의 시대에 '돈이 있으면 삶이 편하다'라는 진리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물건이며 옷이며 이것저것 많이 사 모았다가 버린 사람이기에 저자의 '돈지랄' 경험이 너무나 공감됐다.

예를 들어서, 비싼 거 하나 제대로 사서 쓰는 게 차라리 싸구려 여러 개 사서 조금씩 쓰다 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돈도 적게 들고 기분도 좋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돈을 쓰는 것을 사치로 여기고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배우며 자란 K-도터인 저자가 브랜드 립 펜슬을 사는 것도, 쓰는 것도아까워 비슷한 색이라는 저렴이 립 펜슬 사이를 여러 개 실험하다가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브랜드 거 살걸' 하고 후회하는 모습은 제품만 바뀌었다 뿐이지 나랑 똑같지 않은가.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래, 나만 이런 게 아니었어' 싶어서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저자가 말하듯 '아끼면 똥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건, 그런 공감대도 공감대지만, 그냥 이 책이 너무 웃기기 때문이다.

곤도 마리에 뺨치는 미니멀리스트라고 해도, 그래서 이런 '돈지랄'을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적어도 저자의 말솜씨에 웃음을 터트리지 않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는데 너무 웃겨서 계속 책의 일부를 발췌해서 친구에게 보여 줬다. 이렇게 웃기니까 너도 한번 읽어 보라고.

그중 제일 웃겼던 부분을 두어 군데만 보여 드리겠다.

아래는 저자가 1+1으로 산 싸구려 화장실 휴지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휴지든 휴지걸이에 끼워서 돌돌 돌려가며 쓰다 보면 조금씩 가루가 날리기 마련인데, 그전에 쓰던 게 초코케이크 위에 솔솔 뿌린 슈가파우더 수준이었다면 이 휴지는 고비사막 생성기다. 그리고 얇고 거칠어 자꾸 뚫.린.다. 그러니까, 항문을 좀 꼼꼼히 닦으려고 할 때마다 손가락이 휴지를 쑥 뚫고 나가 버리는 일이 자꾸 생긴다는 이야기입니다... (멀리 바라보는 눈).

그 1+1을 다 쓸 때까지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불행했고 우울했다. 야,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이따위 물건을 써야겠니, 나를 너무 홀대하는 거 아니니, 라는 생각이 매순간 들었다. 그깟 두루마리 휴지가 뭐라고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리고 저자가 처음으로 경차를 사서 본격적으로 운전 연수를 받아(그전까지는 장롱 면허였단다) 도로에 제대로 나가기 시작했을 때 이야기.

내 레이에는 애칭이 있다. '죄송이'다. 온 사방에 너무 죄송해서 그렇게 지었다. 미천한 제가, 물색없는 제가 감히 도로에 차를 끌고 나와 혼란을 초래하여 너무 죄송합니다아! 100미터 밖에서 울린 클랙슨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냥 마냥 모든 게 다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초보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처음 8개월간은 에어컨, 히터, 와이퍼를 켜지도 못했다고. 여기에서 너무 웃겨서 정말 쓰러질 뻔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저자는 청소는 귀찮아하지만 청소도구는 수집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꼭지에서 발췌.

이럴 땐 우렁이가 한 손에 진공청소기를, 다른 손에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들고 뿅 나타나면 좋겠다. 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냐 우렁아! 우렁각시 설화는 있어도 우렁신랑 설화는 없다는 게 참으로 원통하고 빈정 상한다. 생각할수록 열 받는다. 그치만 뭐, 우렁신랑 따위 있어 봤자 키울 곳도 마땅치 않고(가습기 물통에 넣어 둬야 할까?), 청소한답시고 끈적이는 점액질을 온 집 안에 잔뜩 묻히고 다니겠지. 그냥 잘게 썰어서 우렁된장이나 끓이는 게 나을 것 같다.

우렁신랑 의문의 된장찌개행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신나게 읽었는데 짧아서(종이책 기준 180쪽) 아쉽다. 

다만 위로가 되는 건, 이게 '먼슬리에세이'라 이렇게 재밌는 에세이를 한 달에 한 권씩 만나 볼 수 있다는 것.

시즌 1은 '욕망'이라는 주제로 신예희(물욕), 이주윤(출세욕), 권용득(음주욕), 이유미(공간욕), 손기은(식욕) 작가가 글을 쓰고, 시즌 2는 '일'이라는 주제로 황효진(멀티태스킹), 김민성(마이너리티), 황유미(네트워킹), 이묵돌(모티베이션), 석윤이(아이덴티티)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예정이란다.

흠, 시즌 2는 잘 모르겠지만 시즌 1은 일단 주제부터가 너무 마음에 든다. 먼슬리에세이 시리즈의 첫 번째인 이 책을 읽었으니 기다려서 다음 것들도 다 한 번씩 읽어 봐야지!

 

돈지랄을 하고 싶지만 적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 또는 돈지랄을 하고 싶지만 아직 자금이 받쳐 주지 않을 때 이 책을 한번 읽어 보면 어떨까.  

우선순위의 가장 맨 위엔 언제나 내가 있다. 무엇도 내 위에 있지 않다. 누가 뭐래도 그건 지킨다. 음식을 만들어 제일 맛있는 부위를 나에게 준다. 내 그릇엔 갓 지은 새 밥을 담는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좋은 걸 몰아주지 않고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다. 영 손이 가지 않을 땐 아깝다는 생각을 접고 음식물쓰레기로 처리한다. 난 이거면 된다며 복숭아 갈비뼈를 앞니로 닥닥 긁어 먹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내 몸뚱이와 내 멘탈의 쾌적함이 가장 중요하다. 그걸 지키기 위해 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오늘도 내일도 좋은 것을 욕심내며, 기쁘게 지르겠습니다.

[책 감상/책 추천] 줄리 머피, <덤플링>

 

 

'만두(dumpling)'라는 애칭을 가진 뚱뚱한 소녀가 괴짜들과 같이 미인 대회에 출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어덜트 소설이다.

뚱뚱한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책은 별로 없어서 눈길이 갔고, 그래서 한번 읽어 봤다.

 

주인공 소녀 윌로딘이 자신의 몸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과 자기 자신의 인식에 맞서 미인 대회에 참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친한 친구 엘렌과의 우정에 다소 금이 가는 일이 생기는데, 이것도 영어덜트 소설에서 다룰 만한 주제라 나는 좋았다.

윌로딘과 엘렌을 친구로 이어 준 것은 미국의 컨트리 가수 돌리 파튼(Dolly Parton)의 음악인데 딱히 이 가수를 몰라도 이야기 진행에 무리는 없으므로 걱정 마시라.

 

윌로딘이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 보 라슨이라는 잘생기고 몸 좋은 남자애가 있는데, 당연하게도 윌로딘과 이어진다.

첫 키스의 황홀함과 그 애가 자신의 몸을 더듬을 때마다 느끼게 되는 짜릿함, 그리고 동시에 '아, 나 살쪄서 안 되는데...' 하는 자의식까지 잘 묘사했다.

나는 뭐, 첫 키스를 한 지 너무 오래되어서 'ㅎㅎ 그렇지, 그렇게 심장이 터질 듯 설레고 좋겠지... ㅎㅅㅎ'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더라. 조금만 지나 봐... 너도 알게 될 것이다...

 

영어덜트 소설 치고 좀 긴 편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종이책 기준 508쪽), 읽으려면 못 읽을 것은 없겠으나 전개가 약간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사건의 흐름을 조금만 더 타이트하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나는 이걸 읽으면서 십 대용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녀들이 주축이 된 데다가 삼각 관계 나오지, 미인 대회 나오지, 영화로 만들기 딱 좋은 소재가 한둘이 아니다. 영화화할 계획은 없으려나?

어쨌거나 대놓고 '뚱뚱한' 여자애를 전면에 주인공으로 세웠다는 점에서 청소년들에게 한번 권할 만하다 하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제스 베이커의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 대단한 사랑을 뚱뚱한 여자도 한다는 말이다. 불꽃 튀는 사랑, 너의 모든 1인치가 완벽한 사랑, 키스할 수 없다고 생각한 곳까지도 키스할 수 있는 사랑, 평생 뭐든 해줄 수 있는 사랑, 갈망하고 애정이 넘치고 평생 헌신하는 사랑. 뚱뚱한 여자도 이런 사랑을 한다. 어디에서나.

이 단순한 사실을 잊고 계신, 또는 믿기 힘들어하시는 분들께 이 책도 같이 권한다.

2018/08/27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제스 베이커,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책 감상/책 추천] 제스 베이커,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책 감상/책 추천] 제스 베이커,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제스 베이커의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는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body acceptance) 운동에 관한 책이다. '뚱뚱하다(fat)

eatsleepandread.xyz

 

[책 감상/책 추천] 벤지 네이트, <캣보이>

 

 

'내 애완동물이 갑자기 사람처럼 이족 보행을 하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만화로 옮긴 작품.

주인공 '올리브'의 고양이 '헨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람처럼 이족 보행을 하고 말을 하게 되며 일어나는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그림체가 아주 귀엽고 사랑스럽다. 

 

책 겉표지에 올리브와 헨리가 커플처럼 그려져 있어서 살짝 기대했는데 둘 사이에 로맨스 그런 거 없ㅋ음ㅋ 너무 아쉬웠다...

게다가 누가 봐도 고양이 얼굴에 사람처럼 긴 팔다리가 붙어 있고 옷도 여자 옷을 입는데(그렇지만 이름을 '헨리'라고 붙인 거 보면 수컷 아니야?) 원래 주인인 올리브는 그렇다 쳐도 주위 사람들 왜 이리 평온해?

나 같으면 정말 깜짝 놀라서 기절할지도 모르는데. 만화니까 그렇다 치자...

현실에서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들도 만화에서는 가능하니까 그렇게 그린 거겠지.

 

(종이책 기준) 126쪽밖에 안 하는 짧은 만화라 가볍게 보기에 부담이 없다. 내용도 귀엽고. 기분이 꿀꿀할 때 붙잡고 보면 딱 하룻밤만에 끝낼 수도 있을 듯.

[책 감상/책 추천] 카트리네 마르살,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 줬어요?>

 

 

 '페미니즘 경제학' 서적이다. 예전에 출간됐을 때부터 흥미롭겠다 생각했는데 이제야 (리디셀렉트로) 읽게 됐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경제적 인간'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자질들을 가진 존재)이며 또한 허구적인데도 어떻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이를 간과할 수 있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존재? 우리는 이미 인간이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욱 휘둘리고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는지 너무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이들은 경제학의 주체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걸까? 경제학이 아직도 여성을 온전히 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이 유래한 부분이자 경제학이 여성의 존재를 얼마나 간단히 지우고 남성의 (생산) 행위만을 경제학의 대상으로 보는지를 표현한 단락을 옮겨 보겠다.

애덤 스미스는 식탁에 앉았을 때 푸줏간 주인이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교환을 통해 충족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애덤 스미스의 저녁 식사가 식탁에 오른 것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스테이크를 실제로 구운 것은 누구였을까?

애덤 스미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이 경제학의 아버지는 거의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돌봤고, 사촌이 돈 관리를 했다. 애덤 스미스가 관세 위원으로 에든버러에서 일하게 되자 어머니도 함께 이사했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 아들을 돌봤지만, 저녁 식사가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를 논할 때 애덤 스미스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에 속해 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집필할 당시 푸줏간 주인, 빵집 주인, 양조장 주인이 일하러 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인, 어머니, 혹은 누이들이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하고, 눈물을 훔치고, 이웃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어떤 식으로 시장을 바라봐도 그것은 또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경제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경제학에서 무시되는 여성의 노동은 '그림자 노동'이라는 전문 용어로도 불린다(이에 대해서는 크레이그 램버트의 <그림자 노동의 역습> 참고.)

2018/07/05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크레이그 램버트, <그림자 노동의 역습>

 

[책 감상/책 추천] 크레이그 램버트, <그림자 노동의 역습>

[책 감상/책 추천] 크레이그 램버트, <그림자 노동의 역습> '그림자 노동'이란 집안일처럼 돈을 받지 않고 하는 노동을 가리킨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사회 비평가인 이반 일리치(Ivan Illich)��

eatsleepandread.xyz

하지만 '그림자 노동'이라는 용어는 반드시 여성이 하는, 보수를 받지 못하는 일(예컨대 집안일이나 아이를 돌보는 일)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므로, 여기에서는 그냥 여성이 하는 일이라고 표현하겠다.

그렇다면 왜 여성은 '경제적'인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 것일까? 애초에 경제학이라는 이론이 남성들 위주로 판이 짜였으니까.

'경제'를 뜻하는 단어 '이코노미(economy)'는 그리스어로 가정이라는 의미의 '오이코스(oikos)'에서 유래됐지만, 경제학자들은 집에서 일어나는 일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여성들은 내재된 '자기희생적 특성' 때문에 사적 영역에 묶이게 되었고, 이에 따라 여성은 경제적인 존재로 간주되지 않았다.

자녀 양육, 청소, 빨래, 다림질 등의 가족을 위한 활동은 사고팔거나 교환할 수 있는 유형의 재화를 생산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1800년대의 경제학자들은 여성이 경제적 번영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번영은 오직 운반이 가능하고 공급이 제한되어 있으며,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즐거움을 주거나 고통을 피하게 해 주는 것들과 관계가 있었다.

이 정의로 인해 여성들이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 해 주는 모든 일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남성이 노동한 결과는 측정할 수 있고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 여성이 노동한 결과는 보이지 않는다. 털어 낸 먼지는 어느새 다시 쌓인다. 밥을 해 먹여도 금방 또 배고파한다. 아이들은 재우면 다시 일어난다. 점심을 먹으면 설거지를 해야 한다. 설거지를 마치면 저녁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다. 이제 또 설거지를 해야 한다.

가사노동은 그 성격상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의 노동은 '경제적 활동'이 아니며, 이들이 지닌 아름답고 다정다감한 본성이 자연스레 발현된 것에 불과하다. 여성은 이 일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그 성과를 측정하는 데 시간을 쓸 필요가 없다. 이것은 경제적 논리와 상관없는 다른 곳에서 나온다.

여성스러움이랄까, 아무튼 뭐 그런.

 

"시카고 학파는 여성을 경제의 일부로 진지하게 고려한 최초의 경제학파"였으나 그들의 방법은 너무나 잘못됐다.

애초에 남성들 위주로 판이 짜인 경제에 그저 여성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동일한 경제학적 논리를 여성들에게 들으민 결과는?

여성의 보수가 적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들은 추론했다. 세상은 합리적인 곳이고 시장은 언제나 옳았다. 시장에서 여성에게 더 낮은 보수를 줘야 한다고 결정했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음이 분명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경우에 시장이 어떻게 올바른 판단을 내렸는지를 단순히 설명하기만 하면 됐다.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들은 여성이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보수가 낮은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여성이 게으르거나 재능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직장에서 남성과 동일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우선 여성이 출산을 위해 몇 년 동안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즉, 고등 교육을 받기 위해 남성만큼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은 커리어를 위해 투자를 덜 하고 결국 더 적은 보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분석은 큰 영향력을 가졌다. 그러나 이를 실제 현실과 비교해 보면 그다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했다. 많은 여성이 남성만큼 고등 교육을 받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여전히 더 낮은 보수를 받고 있었다. '차별'이라고 부를 만한 이 현상을 시카고의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했을까? (...)

다시 말해, 여성의 보수가 낮은 것은 집안일을 더 많이 해서고, 여성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은 보수가 낮기 때문이다.

시카고 학파의 설명은 자가당착적이다.

 

경제학 서적에서 이만큼 웃긴 부분도 없을 것 같아 조금 더 발췌해 보겠다.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실제로 여성이 청소를 더 잘하도록 타고났다고 주장했다. 이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는 그 이유를 여성의 질이 본래 더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 문지르고 닦고 터는 것은 자신의 신체에서 느끼는 더러운 느낌을 보상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질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여성의 성기는 자체 조정 기능을 갖춘 기관으로, 사람의 입보다도 깨끗하다. 수많은 유산균 — 요구르트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 — 이 끊임없이 활동하면서 청결을 유지한다. 건강한 질은 pH 5인 블랙 커피보다 약간 높고, pH 2인 레몬보다 낮은 산도를 유지한다. 프로이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럼 뭐 남성 성기는 깨끗해서 남자들이 여자들만큼 청소하지 않고 씻지 않는 건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저자는 경제학에서 '돈'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랑 또는 돌봄을 제시한다.

오해는 마시라. 인간이 어떤 일을 하는 데 동기를 유발하는 데 돈만 한 것이 없다는 데에 저자도 의견을 같이 한다.

다만 국내 총 생산(GDP) 같은 수치로 수치화할 수 없지만 역시나 삶에서 중요한 노동으로 사랑/돌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양성 모두)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이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종종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복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결과 자산이 손해를 본다 해도 말이다.

실제 사람들은 다시는 가지 않을 식당에도 팁을 남긴다. 경제적 인간이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팁을 남기지 않아도 종업원이 자신의 수프에 파리를 넣는 등의 복수를 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팁을 다시 자기 주머니 속에 넣는다. (...)

현실에 존재하는 우리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이 아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우리는 남을 배려할 때도 많고, 가끔은 혼란스러워하며, 희생정신을 보일 때도 있고, 걱정도 자주 하며, 비논리적일 때도 많다.

무엇보다, 우리는 누구도 섬처럼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페미니즘 경제학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책 중~중후반에서는 단순히 페미니즘 경제학뿐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제창하는 '자유'가 얼마나 그저 '단어' 하나에 불과한지도 설명하므로 대학생 정도 되면 교양으로 읽기 딱 좋겠다. 추천!

[책 감상/책 추천] 홍지운,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보통 소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평범하다'는 말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으나, 우리의 주인공 '이호랑'은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한 소녀가 절대 아니다.

일단 그녀는 괄괄하고 드세며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골칫덩어리다.

그런데 그녀를 더욱더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동시에 두 배쯤 더 골칫거리로 만드는 사실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대한제국 황실 제1후계자라는 것!?

 

근래에 보기 드문, 꽤 재미있고 흥미로운 '영 어덜트(young adult)' 소설이다.

한국이 대한제국의 명맥을 잇는 입헌 군주 국가라는 설정인데, 18세 소녀인 우리의 주인공이 알고 보니 황실 제1후계자라는 것만 보면 <궁> 같은 여느 판타지 로맨스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이 소설은 '판타지'일지언정 '로맨스'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보통 '영어덜트' 소설과도 무척 다르다.

일단 첫 번째, 주인공이 어린 나이에 '꿘(운동권)'일 뿐 아니라, 아주 폭력적이다.

여기에서 폭력적이라는 건, 묻지 마 범죄를 벌인다는 게 아니라 성격이 불같고 거침없는 데다가 주먹을 잘 날린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주인공 '호랑'의 별명이 '구(舊) 창천동 뉴클리어 펀치'일까. 제목이 괜히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인 게 아니다.

 

두 번째, 보통 대한민국이 입헌 군주 국가라는 설정인 작품에서는 그 누구도 그 황실의 존재에 의문을 품거나 반대를 하지 않는데, 여기에선 다르다.

호랑은 민주주의 국가에 황실이 웬말이냐며 황실의 존재를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런 애가 황실 후계 제1순위라니? 

자신이 반대하는 것을 어쩌다가 자신이 누리게, 또는 받아들이게 된다면 사람의 태도는 어떻게 변할까? 그것이 주는 이득에 눈이 멀어 자신의 예전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릴까?

호랑은 그러지 않는다. 비록 자신이 황실을 이을 후계자이고 그냥 '이호랑'이 아니라 '호랑공주'가 되었어도 민주주의에 황제는 필요 없다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

그런 점이 여타 다른 '팩션' 소설들과 다른 게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나도 사실 <궁> 같은 입헌 군주제 설정을 가져온 작품들을 보며 '민주주의 국가에 무슨 황실이래? 영국이나 모나코 같은 국가에 왕실이 있다고 해서 우리도 이제 와서 그걸 굳이 살리자는 생각을 판타지로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세 번째, 정치적인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다양함을 보여 준다. 

주인공 호랑은 아주 성격이 불같고 정의감에 넘치며 주먹 쓰기를 좋아한다. 우리가 흔히 미디어에서 접하는 '소녀다운 소녀'와는 백만 광년쯤 거리가 있다. 외모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성격이 멋지다, 쿨하다고 할 수는 있어도 '사랑스러운' 편은 절대 아니다.

반면에 호랑의 아빠는 성격이 정반대이다. 유하고 부드러우며 조용조용하다. 어떻게 이런 아빠 아래에서 이런 딸이 나왔는지 궁금할 정도다(정답: 주먹부터 나가는 호랑의 성격은 엄마를 비롯한 외가에서 물려받았다).

이렇게 전형적이지 않은 주인공의 성격 묘사도 무척 마음에 드는데 이뿐만이 아니다. 동성애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호랑의 친한 친구이자 밴드 멤버인 해민(남자애다)은 '남자 친구'가 있고, 호랑도 역시나 친한 친구이자 밴드 멤버인 라라와 사귀는 듯하다(직접적으로 서로를 여자 친구나 애인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지만 작중에 호랑이 황제가 된다면 라라가 '정실'이 될 것이 분명하다는 표현이 나온다).

또한 황제의 비서인 유나는 황제(역시 여자다)를 짝사랑하고 있다. 황제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언급되지 않지만. 대략 이렇게만 봐도 동성애가 세 커플이나 나온다.

그러면서도 동성애가 전혀 유난스럽거나 이상하게 그려지지 않아도 너무 좋았다.

 

나는 이 책을 한 2/3쯤 읽었을 때 이미 '이걸 <반올림> 같은 청소년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주인공 성격이 너무너무 매력적이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성 역할에 대한 모델을 보여 줄 수 있다. 성 소수자의 모습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끼워 넣을 수 있고.

게다가 대한제국이라는 판타지성은 흥미를 더해 주고, 볼거리도 제공해 줄 것이다. '연우' 캐릭터는 꽃돌이라고 불릴 정도니 아이돌을 섭외해도 괜찮을 듯.

제발 이 좋은 걸 단막극으로라도 만들어 줬으면... 청소년들을 위해 이 정도도 못 만들어 주냐! 잘 만들면 청소년뿐 아니라 온 가족이 다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원래 '영 어덜트' 소설이나 '팩션'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건 정말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다.

두껍지 않으면서 재미도 있고 특히 청소년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는 책을 고르라면 난 단연코 이걸 선택하겠다. 호랑공주 만세!

[책 감상/책 추천] 미즈구치 카츠야, <모두의 네트워크>

 

 

아마 <모두의> 시리즈 중 한 권인 듯. 나는 네트워크 공부하다가 도저히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어서 개념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으려고 이 책을 골랐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 부제는 '10일 만에 배우는 네트워크 기초'라고 돼 있는데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 만에 다 읽을 수도 있다.

동물 캐릭터들이 등장해 강의를 진행하고 대답하는 식으로 구성돼 있는데, 쓰잘데기없는 말(예컨대 '오늘의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같은)은 별로 없고(1페이지 이하) 그냥 대부분의 대화가 각 장의 중요 개념을 설명하는 데 할애됐다.

동물 캐릭터들이 나오다 보니 친근한 느낌도 들고, 무엇보다 딱딱하지 않고 쉽게 설명해 주는 게 제일 좋다.

네트워크를 잘 아는 사람이 보면 '뭐야, 이걸 여기까지밖에 설명 안 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입문자를 위한 책이니 너무 어렵지 않은 범위까지만 설명해 줘서 딱 좋다. 적당히 어려워야 의욕도 나는 거지, 너무 어려우면 포기하기 쉬우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이 이제 막 네트워크를 배우기 시작하는 초보자에게 딱이라고 본다. OSI 모델도 각 층에 어떤 특징과 프로토콜이 있는지를 나누어서 설명한다.

그래서 나처럼 '음, 그래, 그건 대략 그 책에서 이러이러한 위치에 있었어. 그러니까 그것보다는 앞이고 저것보다는 뒤야'라는 식으로 대략 위치를 통해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특히 더 도움이 될 듯하다.

 

나는 일단 교과서를 간단히 훑어보고 이번 챕터에서 뭘 배울지를 파악한 후 이 책을 통해 그 개념들을 이해하고 다시 교과서로 돌아가 더 깊은 내용을 배우는 식으로 공부한다.

이렇게 하니 이 책에서 얻은 사전 지식이 있어서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으니까 교과서를 볼 때 '와 진짜 뭐라는 거야'라고 말할 일이 적어지더라. 혹시 공부법에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교과서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우면 그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다른 교보재를 이용해 사전 지식을 쌓고 다시 교과서로 돌아가는 게 훨씬 낫다.

 

어쨌거나 네트워크를 처음 배우는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네트워크 공부가 한결 수월해진다!

[책 감상/책 추천] 정재윤, <재윤의 삶>

 

 

2016년부터 저자가 소셜 미디어에서 '#재윤의삶'으로 그린 만화를 모은 책. 

나는 읽자마자 홀딱 반했다. 이렇게나 신선하고 재기발랄한 책이라니!

 

유머 감각도 적당히 내 취향이고, 말투도 재미있는데 무엇보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건, 굳이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분위기 잡고 목소리 높여 말하지 않아도 그냥 만화에서 저절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저자의 철학이라 할까, 태도라고 할까, 그런 거였다.

여러 가지 느낌이 섞인 태도인데, 굳이 하나로 묶어서 말하자면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투쟁의 역사'라는 꼭지에서 저자는 "어렸을 때,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현관 밖으로 쫓겨나는 벌을 받"을 때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를 시작한 지 세 컷만에 "현관 밖으로 내쫓는 건 아동 학대예욧!"이라며 태클을 거는 예민한 독자 옆에 바로 양손으로 브이(V) 자를 하고 저자가 웃으며 "네네, 그렇습니다. 저는 학대받고 자란 불쌍한 아동입니다."라고 대꾸한다.

이런 것에서 '와, 정말 과하게 예민하게 굴어 불편하다 드립 치는 사람들을 이렇게 쉽게 무시하고 넘어가는 쿨함이라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또한 저자는 어릴 적부터 한 '투쟁' 했기에, 이렇게 현관 밖으로 쫓겨나는 벌을 받았을 때도 "태생적으로 가련한 소녀는 아니었기에 차라리 도발하는 방법을 택한다." 즉, "문 닫히는 순간부터 계속 벨 누르기". 딩동딩동딩동….

단호한 얼굴의 작은 '재윤'이 한쪽 눈으론 눈물을 흘리며 '딩동딩동딩동' 계속 벨을 누른다. "무자비한 권위에 의해 내 영역을 잃었으나 최후까지 저항하리라"라고 다짐하며. 

그리고 바로 다음 컷, 부모님은 "어휴, 들어와 그냥"이라며 문을 열어 주시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 9칸 만에 저자의 '투쟁의 역사'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쿨함' 외에도 그냥 저자에게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페미니즘 바이브(vibe)도 너무 좋았다. 굳이 '저는 페미니스트이고, 이런 게 페미니즘의 이슈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냥 만화에서 그런 게 읽힌다.

예를 들어, 어린 재윤이 남자애에게 머리를 잡아당기는 '장난'을 당하자 (여자) 선생님은 이를 "정훈이가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말하고 친구 여자애들도 "야 박정훈이 니 조아하는 거 아니가~?"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작은 재윤은 "그것이 감정 표현 방식이라면야 저도 한번 해 보겠습니다요?"라며, 그 남자애를 따라다니며 "니 꽁지머리 진짜 이상함. 니랑 1도 안 어울린다", "으 땀냄새 으-", "시금치 못 먹나? 유딩이가? 왜 남기는데?? 농부 아저씨 생각해라. 피땀 흘려 기른 건데 편식하지 마라!"라고 코멘트를 한다.

결국 그 남자애는 "아 왜 계속 따라오는데! 그만 좀 해라!"라며 짜증을 내고 그 애의 친구 남자애들도 "그래 니 자꾸 괴롭히지 마라!"라며 거든다.

그다음 컷, 어린 재윤은 "오…그래도 알긴 아네. 다행!"이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렇지. 그런 '장난'이 좋아한다는 마음의 표현, 친하게 지내는 마음의 표현이라면 왜 재윤이 똑같은 방식을 남자애에게 적용했을 때는 '괴롭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단 말인가?

여자애들은 남자애들의 짓궃은 장난, 괴롭힘을 애정 또는 관심의 표현이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인내해야 하는 건가? 이런 비슷한 내용을 예전에 한 페미니즘 책에서 읽었는데 그건 분명 좋은 글이었고 생각해 볼 점도 많았지만, 이 만화는 같은 내용을 단 8컷 만에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정말 놀랍다.

이 외에도 '롤 모델은 어디에 있는가'와 '최악의 인터뷰 모음집' 이야기가 정말 너무나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적이라서 감탄했다.

이 꼭지 저 꼭지에 조금씩 나오는 가상의 자식 이야기는 약간 안타까우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을 리디 셀렉트에서 발견해 읽었는데, 거기에선 만화책은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거나 마음에 드는 구절에 하이라이트를 할 수가 없게 돼 있다(아마 파일 자체를 PDF나 그림 파일로 받아 와서 대사나 페이지 자체를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따로 핸드폰 메모장에 특히 마음에 드는 만화의 페이지 수를 적어 가며 읽을 정도였는데, 이 좋은 책을 다 하나하나 다 이야기해 드릴 수는 없으니 하나만 더 소개해야겠다.

'RAMO'라는 제목의, 몇 페이지가 쭉 이어지는 긴 이야기인데, 좀 씁쓸하다. 대략 요약하자면, 저자가 어릴 적에 영어 학원에 다녔을 때 만난 원어민 강사(긴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라모(RAMO)'라고 불렸던)의 이야기이다.

그 강사가 어린 재윤을 유난히 예뻐해서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에도 오직 재윤에게만 자기가 캐나다로 돌아갈 거라고 귀띔도 해 주고, 서로 이메일도 주고 받았단다.

그 강사는 재윤에게 택배로 원어 서적이며 엽서, 테디 베어 인형도 보내 줬다는데, 원래 연락이란 게 그렇듯이 어느 때부터인지 흐지부지되어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강사에게서 편지가 와서 읽어 보니, 그 강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네가 너무 보고 싶으니 시간이 된다면 뫄뫄 시로 놀러 오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RAMO가 보고 싶었다! 만나게 되면 할 말이 정말 많을 텐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름 방학에 우리 집에서 며칠 지내면서…'
'너는 내게 특별한 학생이고'
'…많이 컸는지도 궁금하단다'
'정말 보고 싶구나.'
'널 만난 건 행운이고…'
이런 말들이 어떤 상황에서는 나를 위험하게 만든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이 짜증났다.

(어린 재윤): 엄마 RAMO쌤 기억나지?그 쌤 다시 한국 왔다고 시간 되면 방학 때 (엄마랑)놀러 오라는디.
(엄마):음 글쎄다….출근도 해야 되고 가까운 데도 아니고 그래도 오랜만에 연락 주셨네~한국은 왜 또 다시 오셨대니?
질문도 흐릿하고 대답도 역시 흐릿하였다.


그때 내가 RAMO의 집에 놀러갔었다면? 굳이 말로 옮길 필요조차 없는 최악의 경우부터 차례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 캐나다 할아버지 친구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집에 가지 않았고,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SARAH는 별일 없이 토익 고득점 목표반에 들어갔다.

씁쓸하고 안타까운데 그래도 어린 재윤이 똑똑해서 자신을 지킬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나는 이걸 읽으며 씁쓸함, 안타까움, 안도감, 두려움 등등 너무나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이 책에 반해 버렸고, 책을 한 절반밖에 안 읽었는데도 벌써 친구에게 이 책을 추천했다.

 

이제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정말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내 인간관계는 그렇게 넓지 않으므로, 내 블로그에서 이 '책 추천, 책 감상' 자리를 빌려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소개해 보았다.

내가 이 책의 매력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지만, 어차피 어떤 책이든 읽지 않고는 그 감동을 100%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니 꼭 한번 이 책을 읽어 보시기를 바란다. 

[책 감상/책 추천] 전지현,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흥미로우면서 아이러니한 제목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저자가 8년간 만난 7명의 정신과 의사들에 대한 일종의 후기이기 때문이다.

아주 얇은데(종이책 기준 176쪽) 글도 어려운 어휘나 내용이 없어서 페이지가 빨리 넘어간다.

 

저자는 첫 아이를 낳고 나서 자기는 힘든데 세상은 괜찮아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때부터 우울증이 시작됐다고 한다.

두 아이를 키우며 집안까지 관리하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니, 일이 너무 벅차서 정신적 탈진이 왔다 해도 이해할 법하다.

저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때로는 의사가 이사를 갔거나 때로는 본인이 이사를 가서) 정신과 의사를 여럿 바꿨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의사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당시 자신의 상황에 대한 기록을 시간순으로 썼고, 그게 바로 이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제일 충격을 받고 가슴 아팠던 건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저자 본인의 상황도 참 힘들지만 어떤 의사들은 '정말 저래도 의사라고 부를 자격이 있나?' 싶다는 점과 둘째, 정신과 또는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대중적 인식이 아직 미비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처음으로 만난 의사는 약을 먹으면 머릿속도, 가슴도 답답하고 낫는다는 느낌이 안 든다고 말하니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환자가 의사인가요?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본인이 어떻게 알죠?"

공격적으로 퍼붓던 의사가 느닷없이 손가락으로 내 품에 안겨 있는 아이를 가리키더니 이렇게 쏘아붙였다.

"지금 얘는 그나마 약 먹으면서 치료를 받고 있는 엄마한테 자라는 게 더 행복할걸요?"

느닷없이 자기를 가리키는 손가락에 놀란 아이가 내 품에 파고들었다.
내가 그렇게 엉망이었어? 애들이 지금 이 꼴을 한 엄마와 지내는 게 더 행복하다고 느낄 만큼?

정말이지, 의사란 자가 어떻게 환자들을 이렇게 막 대할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자고로 의사란 전공을 불문하고 인간에 대한 존경심과 공감 능력, 애정을 가져야 하지 않나?

의사와의 상담 없이 섣불리 약을 끊거나 양을 조절하는 행위가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약을 마음대로 조절해서 드시면 안 됩니다'라고 좋게 말할 수도 있는데 저건 너무 인격 모독이다.

 

그리고 저자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친구에게 밝혔더니, "친구야, 그거 절대 먹지 마, 큰일 난대!" 또는 "아휴, 니가 애들 키운다고 집에만 있어서 그럤나 보다. 안 되겠다. 나랑 같이 교회 가자. 가서 목사님 말씀 듣고 봉사도 하고 그러면 우울증 같은 건 바로 싹 낫는다." 같은 반응이 돌아온다.

이게 아쉽지만 정신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같다. 요즘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정신 건강도 신체 건강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긴 하지만, '대중'의 범위를 전 연령대로 넓히면 이런 반응을 받기 일쑤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짧은 책이라 많은 부분을 미리 말할 수가 없어서 감상도 길게는 못 쓰겠다.

그래도 이건 말해 두면 좋겠다. 저자가 만난 의사들이 다 형편없었던 건 아니라고.

네 번째 의사는 30대 후반의 여자였다. 같은 아이 엄마로서 많은 부분에서 쉽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부모 모임이 시작되었다. 난 학부모 모임의 첫 단체 카톡을 받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 소식을 들은 의사 왈.

"파일을 옮깁니다."
"네? 어디로요?"
"응급으로요. 이제 대기 없이 바로 진료 보실 수 있어요."

의사와 나는 마주보고 웃었다.

 

구체적인 지역이나, 병원명, 의사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아니기에 조심스럽게 시도해 볼 만한 정신과를 찾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우울증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료를 보기 위해 정신과에 들를 때 어떤 것을 염두에 두면 좋은지 등에는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울증은 겪는 다른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보고 우울증으로 힘든 게 나만은 아니라는 작은 위안과 공감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