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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정재윤, <재윤의 삶>

 

 

2016년부터 저자가 소셜 미디어에서 '#재윤의삶'으로 그린 만화를 모은 책. 

나는 읽자마자 홀딱 반했다. 이렇게나 신선하고 재기발랄한 책이라니!

 

유머 감각도 적당히 내 취향이고, 말투도 재미있는데 무엇보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건, 굳이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분위기 잡고 목소리 높여 말하지 않아도 그냥 만화에서 저절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저자의 철학이라 할까, 태도라고 할까, 그런 거였다.

여러 가지 느낌이 섞인 태도인데, 굳이 하나로 묶어서 말하자면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투쟁의 역사'라는 꼭지에서 저자는 "어렸을 때,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현관 밖으로 쫓겨나는 벌을 받"을 때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를 시작한 지 세 컷만에 "현관 밖으로 내쫓는 건 아동 학대예욧!"이라며 태클을 거는 예민한 독자 옆에 바로 양손으로 브이(V) 자를 하고 저자가 웃으며 "네네, 그렇습니다. 저는 학대받고 자란 불쌍한 아동입니다."라고 대꾸한다.

이런 것에서 '와, 정말 과하게 예민하게 굴어 불편하다 드립 치는 사람들을 이렇게 쉽게 무시하고 넘어가는 쿨함이라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또한 저자는 어릴 적부터 한 '투쟁' 했기에, 이렇게 현관 밖으로 쫓겨나는 벌을 받았을 때도 "태생적으로 가련한 소녀는 아니었기에 차라리 도발하는 방법을 택한다." 즉, "문 닫히는 순간부터 계속 벨 누르기". 딩동딩동딩동….

단호한 얼굴의 작은 '재윤'이 한쪽 눈으론 눈물을 흘리며 '딩동딩동딩동' 계속 벨을 누른다. "무자비한 권위에 의해 내 영역을 잃었으나 최후까지 저항하리라"라고 다짐하며. 

그리고 바로 다음 컷, 부모님은 "어휴, 들어와 그냥"이라며 문을 열어 주시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 9칸 만에 저자의 '투쟁의 역사'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쿨함' 외에도 그냥 저자에게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페미니즘 바이브(vibe)도 너무 좋았다. 굳이 '저는 페미니스트이고, 이런 게 페미니즘의 이슈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냥 만화에서 그런 게 읽힌다.

예를 들어, 어린 재윤이 남자애에게 머리를 잡아당기는 '장난'을 당하자 (여자) 선생님은 이를 "정훈이가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말하고 친구 여자애들도 "야 박정훈이 니 조아하는 거 아니가~?"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작은 재윤은 "그것이 감정 표현 방식이라면야 저도 한번 해 보겠습니다요?"라며, 그 남자애를 따라다니며 "니 꽁지머리 진짜 이상함. 니랑 1도 안 어울린다", "으 땀냄새 으-", "시금치 못 먹나? 유딩이가? 왜 남기는데?? 농부 아저씨 생각해라. 피땀 흘려 기른 건데 편식하지 마라!"라고 코멘트를 한다.

결국 그 남자애는 "아 왜 계속 따라오는데! 그만 좀 해라!"라며 짜증을 내고 그 애의 친구 남자애들도 "그래 니 자꾸 괴롭히지 마라!"라며 거든다.

그다음 컷, 어린 재윤은 "오…그래도 알긴 아네. 다행!"이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렇지. 그런 '장난'이 좋아한다는 마음의 표현, 친하게 지내는 마음의 표현이라면 왜 재윤이 똑같은 방식을 남자애에게 적용했을 때는 '괴롭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단 말인가?

여자애들은 남자애들의 짓궃은 장난, 괴롭힘을 애정 또는 관심의 표현이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인내해야 하는 건가? 이런 비슷한 내용을 예전에 한 페미니즘 책에서 읽었는데 그건 분명 좋은 글이었고 생각해 볼 점도 많았지만, 이 만화는 같은 내용을 단 8컷 만에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정말 놀랍다.

이 외에도 '롤 모델은 어디에 있는가'와 '최악의 인터뷰 모음집' 이야기가 정말 너무나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적이라서 감탄했다.

이 꼭지 저 꼭지에 조금씩 나오는 가상의 자식 이야기는 약간 안타까우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을 리디 셀렉트에서 발견해 읽었는데, 거기에선 만화책은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거나 마음에 드는 구절에 하이라이트를 할 수가 없게 돼 있다(아마 파일 자체를 PDF나 그림 파일로 받아 와서 대사나 페이지 자체를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따로 핸드폰 메모장에 특히 마음에 드는 만화의 페이지 수를 적어 가며 읽을 정도였는데, 이 좋은 책을 다 하나하나 다 이야기해 드릴 수는 없으니 하나만 더 소개해야겠다.

'RAMO'라는 제목의, 몇 페이지가 쭉 이어지는 긴 이야기인데, 좀 씁쓸하다. 대략 요약하자면, 저자가 어릴 적에 영어 학원에 다녔을 때 만난 원어민 강사(긴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라모(RAMO)'라고 불렸던)의 이야기이다.

그 강사가 어린 재윤을 유난히 예뻐해서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에도 오직 재윤에게만 자기가 캐나다로 돌아갈 거라고 귀띔도 해 주고, 서로 이메일도 주고 받았단다.

그 강사는 재윤에게 택배로 원어 서적이며 엽서, 테디 베어 인형도 보내 줬다는데, 원래 연락이란 게 그렇듯이 어느 때부터인지 흐지부지되어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강사에게서 편지가 와서 읽어 보니, 그 강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네가 너무 보고 싶으니 시간이 된다면 뫄뫄 시로 놀러 오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RAMO가 보고 싶었다! 만나게 되면 할 말이 정말 많을 텐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름 방학에 우리 집에서 며칠 지내면서…'
'너는 내게 특별한 학생이고'
'…많이 컸는지도 궁금하단다'
'정말 보고 싶구나.'
'널 만난 건 행운이고…'
이런 말들이 어떤 상황에서는 나를 위험하게 만든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이 짜증났다.

(어린 재윤): 엄마 RAMO쌤 기억나지?그 쌤 다시 한국 왔다고 시간 되면 방학 때 (엄마랑)놀러 오라는디.
(엄마):음 글쎄다….출근도 해야 되고 가까운 데도 아니고 그래도 오랜만에 연락 주셨네~한국은 왜 또 다시 오셨대니?
질문도 흐릿하고 대답도 역시 흐릿하였다.


그때 내가 RAMO의 집에 놀러갔었다면? 굳이 말로 옮길 필요조차 없는 최악의 경우부터 차례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 캐나다 할아버지 친구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집에 가지 않았고,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SARAH는 별일 없이 토익 고득점 목표반에 들어갔다.

씁쓸하고 안타까운데 그래도 어린 재윤이 똑똑해서 자신을 지킬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나는 이걸 읽으며 씁쓸함, 안타까움, 안도감, 두려움 등등 너무나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이 책에 반해 버렸고, 책을 한 절반밖에 안 읽었는데도 벌써 친구에게 이 책을 추천했다.

 

이제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정말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내 인간관계는 그렇게 넓지 않으므로, 내 블로그에서 이 '책 추천, 책 감상' 자리를 빌려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소개해 보았다.

내가 이 책의 매력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지만, 어차피 어떤 책이든 읽지 않고는 그 감동을 100%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니 꼭 한번 이 책을 읽어 보시기를 바란다. 

[책 감상/책 추천] 전지현,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흥미로우면서 아이러니한 제목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저자가 8년간 만난 7명의 정신과 의사들에 대한 일종의 후기이기 때문이다.

아주 얇은데(종이책 기준 176쪽) 글도 어려운 어휘나 내용이 없어서 페이지가 빨리 넘어간다.

 

저자는 첫 아이를 낳고 나서 자기는 힘든데 세상은 괜찮아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때부터 우울증이 시작됐다고 한다.

두 아이를 키우며 집안까지 관리하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니, 일이 너무 벅차서 정신적 탈진이 왔다 해도 이해할 법하다.

저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때로는 의사가 이사를 갔거나 때로는 본인이 이사를 가서) 정신과 의사를 여럿 바꿨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의사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당시 자신의 상황에 대한 기록을 시간순으로 썼고, 그게 바로 이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제일 충격을 받고 가슴 아팠던 건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저자 본인의 상황도 참 힘들지만 어떤 의사들은 '정말 저래도 의사라고 부를 자격이 있나?' 싶다는 점과 둘째, 정신과 또는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대중적 인식이 아직 미비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처음으로 만난 의사는 약을 먹으면 머릿속도, 가슴도 답답하고 낫는다는 느낌이 안 든다고 말하니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환자가 의사인가요?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본인이 어떻게 알죠?"

공격적으로 퍼붓던 의사가 느닷없이 손가락으로 내 품에 안겨 있는 아이를 가리키더니 이렇게 쏘아붙였다.

"지금 얘는 그나마 약 먹으면서 치료를 받고 있는 엄마한테 자라는 게 더 행복할걸요?"

느닷없이 자기를 가리키는 손가락에 놀란 아이가 내 품에 파고들었다.
내가 그렇게 엉망이었어? 애들이 지금 이 꼴을 한 엄마와 지내는 게 더 행복하다고 느낄 만큼?

정말이지, 의사란 자가 어떻게 환자들을 이렇게 막 대할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자고로 의사란 전공을 불문하고 인간에 대한 존경심과 공감 능력, 애정을 가져야 하지 않나?

의사와의 상담 없이 섣불리 약을 끊거나 양을 조절하는 행위가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약을 마음대로 조절해서 드시면 안 됩니다'라고 좋게 말할 수도 있는데 저건 너무 인격 모독이다.

 

그리고 저자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친구에게 밝혔더니, "친구야, 그거 절대 먹지 마, 큰일 난대!" 또는 "아휴, 니가 애들 키운다고 집에만 있어서 그럤나 보다. 안 되겠다. 나랑 같이 교회 가자. 가서 목사님 말씀 듣고 봉사도 하고 그러면 우울증 같은 건 바로 싹 낫는다." 같은 반응이 돌아온다.

이게 아쉽지만 정신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같다. 요즘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정신 건강도 신체 건강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긴 하지만, '대중'의 범위를 전 연령대로 넓히면 이런 반응을 받기 일쑤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짧은 책이라 많은 부분을 미리 말할 수가 없어서 감상도 길게는 못 쓰겠다.

그래도 이건 말해 두면 좋겠다. 저자가 만난 의사들이 다 형편없었던 건 아니라고.

네 번째 의사는 30대 후반의 여자였다. 같은 아이 엄마로서 많은 부분에서 쉽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부모 모임이 시작되었다. 난 학부모 모임의 첫 단체 카톡을 받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 소식을 들은 의사 왈.

"파일을 옮깁니다."
"네? 어디로요?"
"응급으로요. 이제 대기 없이 바로 진료 보실 수 있어요."

의사와 나는 마주보고 웃었다.

 

구체적인 지역이나, 병원명, 의사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아니기에 조심스럽게 시도해 볼 만한 정신과를 찾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우울증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료를 보기 위해 정신과에 들를 때 어떤 것을 염두에 두면 좋은지 등에는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울증은 겪는 다른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보고 우울증으로 힘든 게 나만은 아니라는 작은 위안과 공감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책 감상/책 추천] 나이토 요시히토, <무기력에서 무를 빼는 가장 쉬운 방법>

 

 

무기력할 때 기력을 내고 의욕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 얇고 간단해서 괜찮다.

 

뭐든 좋으니 자기충족적인 자신만의 암시를 만들라는 제안이나 암시의 효과가 떨어질 만한 생각은 일부러라도 피하라는 말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공감했던 세 가지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첫 번째, 의욕도 습관이라는 말. 저자는 일본의 대표적이자 세계적인 야구 선수 이치로의 예를 든다. 이치로는 연습 벌레로 알려져 있는데, 저녁 7시에 시합이 있어도 오후 1시 반에는 구장으로 출근해 연습을 시작한단다.

기자가 "연습을 좋아하시나 보군요?"라고 물으니 이치로 선수는 "아니요, 연습은 싫어합니다. 좋아서 연습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그런데도 이치로 선수가 그렇게 꾸준히, 성실하게 연습하는 건 연습이 그에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가 평생 몸에 익힌 습관이지 억지로 의욕을 끌어올려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

일단 습관으로 만들어 놓으면 의욕이든 뭐든 생각할 필요가 없이 자동화가 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오래, 꾸준히, 성실하게 하고 싶다면 일단 그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나도 이런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했는데, 1년 넘게 꾸준히 매주 포스트를 올리며 블로그를 운영해 올 수 있던 것도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양질의 포스트(책이나 영화 리뷰, 호주 문화 이야기 등)를 올린다는 나만의 약속이자 습관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돈은 의욕을 고취시킨다. "손에 잡히는 선물을 하라 - 보상의 기본" 꼭지에 나온 저자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사람은 돈을 받으면 열심히 일합니다. 반대로 돈을 받을 수 없다면 좀처럼 의욕을 내지 못합니다.

맞는 말이다. 의욕을 북돋고 싶다면 보상책이 있어야 한다. 좀처럼 의욕이 나지 않는 일을 할 때 '이 일을 하면 얼마를 나에게 선물로 주겠다'라고 스스로 보상을 설정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금액은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적어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소액이라고 해도 보상이 있으면 의욕이 생긴다는 것이다. 음, 맞는 말.

그리고 다음 두 문단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느낌표를 머리 위에 띄운 부분인데 꼭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 적어 올린다.

제발 기업인, 사장님, 윗분들은 이걸 보시고 참고해 주셨으면...

심리학 이론 중에 교환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교환 이론에 따르면 회사가 충분한 보수를 주는 경우에는 사원들도 그 보수에 대한 보상을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합니다. 보수에 걸맞은 노력을 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회사가 인색하게 대응하면 어떨까요? 사원들도 이에 맞춰 노력을 줄입니다. 사원들이 보다 의욕적으로 일하기를 바란다면 회사에서 먼저 의욕이 생길 만한 보상을 해 줘야 합니다. 커피 한 잔, 볼펜 한 자루 마음껏 쓰지 못하게 쥐어짜면서 애사심 넘치고 능동적으로 일하는 직원이 되기를 바란다면, 이는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욕심입니다.
실탄을 충분히 지급하고 "자, 이것을 가지고 싸우고 와라!"라는 말을 들으면 병사들도 분발하겠지만, 실탄도 없이 싸우라는 말을 듣는다면 결과는 뻔합니다. 전쟁에서 지는 것은 당연하고, 탈영병이 속출해 싸워 보기도 전에 지는 전쟁을 하게 됩니다.

보상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무실 한 곳에 드링크 바를 준비해서 원하는 음료를 마시면서 일하게 해 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맛없는 차와 커피밖에 없거나 혹은 물조차 준비해 주지 않는 회사에 비하면 사원들의 의욕도 훨씬 충만해질 겁니다. 드링크 바를 갖추는 데 매달 경비가 얼마나 들어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사원들이 힘을 내서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면 결코 아깝지 않은 투자입니다.
인간은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의욕적으로 일합니다. 아무런 보상도 없으면 의욕적으로 일하기 어렵습니다. 의욕적으로 일하지 않음으로써 보상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수지 타산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세 번째. "허들은 낮을수록 좋다 - 스몰 스텝의 원리"

심리학에는 스몰 스텝(small step)의 원리라는 유명한 법칙이 있습니다. 스몰 스텝, 즉 '낮은 계단'이라면 한 계단씩 뛰어 올라가는 일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낮은 계단을 올라가는 경험을 하고 나면 다음에 조금 높은 계단과 맞닥뜨려도 기세를 몰아서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기 스스로 시동을 걸기 위해서라도 처음에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부터 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일전에 링크드인(linkedin.com)에서 이런 말을 봤는데 너무 인상이 깊어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Set your bars so low that you can just step off." 어떤 일을 할 때, 아주 쉽게 해치울 수 있을 정도로 기대치를 낮추라는 말이다.

그러면 귀찮아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하며 하게 되고, 일단 해서 그 간단한 스텝을 넓고 나면 '그럼 요것도 한번 해 볼까?'라는 마음이 생겨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으니까. 바로 아래에 저자가 하는 말과 딱 이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허들을 낮게 만들어서 쉽게 뛰어넘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높은 허들을 뛰어넘으려면 사력을 다해야 합니다. 사력을 다하다 보면 금방 지치게 되고, 이는 곧 의욕 저하로 이어집니다.

 

물론 이 책도 완벽하진 않다. 이미 여기저기 사방팔방에서 물어 뜯겨서 너덜너덜해진 '마시멜로 시험'을 인용하는 거나(이에 대한 비판은 여기저기 많으니 굳이 가져오진 않겠다), 언제적 얘기인지 모를 '바이오 리듬'을 언급하는 거라든지(이건 '유사 과학'이라 입에 담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다. 다른 건 적어도 어떤 연구자가 어떠한 실험을 해서 어떤 결과를 얻었다 이런 구체적 증거를 잘만 대더니 이건 도대체 왜 아직도 믿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오타('일 자체'라고 해야 하는데 '일 차제'라고 써 놓는 얼척 없는 수준의)까지... 

이것들만 어떻게 손봤어도 취향을 탈지언정 적어도 어딜 가나 까일 구석은 없는 책이 됐을 텐데. 아쉽다.

 

어차피 의욕을 고취하는 방법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니까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파이팅!

[책 감상/책 추천] 나이토 요시히토, <만회의 심리학>

 

 

'뜻밖의 기회를 얻는 일상의 심리 기술'이라고 책 표지에 쓰여 있는데, 내 생각엔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고 관계를 좋게 유지하기 위한, 직장인(그중에서도 세일즈 쪽?)을 위한 심리학 책이라 보는 게 가까울 것 같다.

솔직히 일본인 작가가 쓴 이런 심리학 책을 정말 많이 읽어 봐서 이 책이 딱히 다른 책들에 비해 뛰어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쓰레기는 또 아님. 그냥 충실한 책이라고 할까. '그렇지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예컨대 이런 것들.

우리는 단순히 몇 번 마주한 얼굴에서 친근감을 느낀다. 이것이 단순 접촉 효과다. 처음에는 그다지 인상이 좋지 않았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두 번, 세 번, 얼굴을 마주하는 빈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저절로 당신의 두 번째 인상은 좋아질 것이다. 이것이 보통의 과정이다. 따라서 딱 한 번만 도전하고 그냥 포기하면 너무 아깝다.
물론 우리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반성하겠다', '죄송하다'고 말해도 말은 눈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선물은 마음을 형상화한 것이기에 확실하게 눈에 보인다.

말로만 사과하고 끝내려는 사람은 인간의 심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싸구려거나 또 하찮은 물건일지라도 그래도 역시 뭔가 선물을 하거나 가격을 깎아 주고, 또 현실적으로 이익을 주려는 모습을 보이면 그 마음이 고스란히 상대에게 전달될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크게 공감한 두 가지만 꼽자면 이거.

첫째, 외모보다 성격이 중요하다.

오래 계속해서 만날 사람은 외모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같이 있을 때 '기분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기분 좋은 사람'은 당신의 성격으로 결정된다. 내가 세미나에서 '내면을 갈고닦자'고 조언하면 이렇게 대꾸하는 사람이 꼭 있다.

"선생님,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저는 당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만나자마자 단박에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무표정으로 뚱하게 있지 말고 얼굴에 미소를 띠거나 밝은 표정을 짓자. 또 헤어스타일을 산뜻하게 바꿔 생기발랄한 모습을 하고 밝은 색깔의 넥타이나 스카프를 고르자.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단기적으로 호감을 사는 방법이다. 장기적으로 오래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만남을 오래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려면 첫째도 성격, 둘째도 성격이다. 외모는 크게 상관없다. 성격이 좋으면 상대방은 당신과 오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진짜 지독한 얼빠가 아니고서야 웬만해서 사람들은 얼굴만 가지고 배우자, 애인, 또는 친구를 고르지 않는다. 

자기 외모 때문에 애인 또는 친구가 없다는 건, 글쎄, 그건 그냥 자기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게 아닐까.

외모에 심각한 콤플렉스가 있어서 대인 관계에 자신이 없을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못생겨서 남들이 나를 싫어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 아니다. 

첫째, 사람들은 당신 외모가 아니라 성격을 가지고 이 사람과 친구/애인이 될 건지 말 건지 결정을 내린다.

둘째, 정말로 당신 걱정대로 외모만 가지고 친구/애인 등을 고르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도 그렇게 피상적인 사람과는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냥 무시하고 안 그런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된다.

그러니까 외모에 대한 걱정은 말고 그냥 적당한 선에서 자기 관리(개인 청결 유지, 깔끔하고 깨끗한 옷 입기 같은)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 자기 성격에 모난 곳이 있으면 교정하는 게 낫겠다.

나는 가끔 외모 컴플렉스가 생기려고 할 때마다 이 사실을 상기하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뭐 어때, 이래도 친구도 있고 애인도 잘만 사귀었어!"라면서. 

 

둘째, 갈등을 두려워하지 마라.

미국 워싱턴 대학의 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은 52쌍의 부부를 3년에 걸쳐 연구했다. 그 결과 서로 말다툼하거나 싸움을 하면 일시적으로 결혼생활이 동요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부부 만족감을 높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정말 부부싸움을 하면서 숱한 난관을 극복해 온 부부는 더욱 강하고 끈끈하게 결속된다고 한다. (...)

존 가트맨에 따르면 부부관계에서 가장 해로운 것은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어차피, 이 사람은 뭘 얘기해도 듣지 않아.'
'입이 닳도록 말해 봤자 이해 못할 거야.'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이런 식으로 곡해하여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사는 부부는 머지않아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을 것이다. 싸움을 하는 동안은 아직 관계를 회복할 여지가 있지만 완전히 마음이 떠나 버린 부부는 말다툼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다.

싸움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계속해서 상대방과 부딪쳐야 한다. 싸움이 나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서로가 무엇을 소중히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고 또 상대방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

굳이 부부 사이뿐 아니라 가족, 친구, 애인 등등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말이다.

나도 지금 돌아보면 그때 머리 풀고 미친듯이 싸웠어야 했는데 싶은 순간들이 있다. 그때 참아서 결국 결과도 안 좋았고 내 속만 썩었구나, 싶은 때. 

만약에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는 꼭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리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할 거다. 그러면 싸울 때 싸우더라도 지금보다는 나은 결과가 나왔을 것 같다.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가 되는 건 한 순간이더라...

 

위에도 썼지만 이 책이 다른 책들보다 엄청 뛰어나다거나, 최고라고 할 만한 건 아니다. 물론 저자가 노력해서 충실히 썼다는 느낌은 들지만.

나는 이런 책들을 꼭 반드시 뭘 배우려고 읽는 게 아니라 이미 내가 아는 것들이라 해도 잊지 않고 나에게 상기하려고 읽는다.

"얼굴이 얼마나 못생겼든 미소를 지으면 타인에게 호감을 준다", "첫인상이 전부가 아니다", "내성적인 성격도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모르진 않는다. 아는데 너무 자주 까먹고 누가 말해 주면 '뭐야, 다 아는 거잖아.' 할 뿐이지.

하지만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정말 머리 위에 느낌표가 몇 개 뜰 정도로 내 생각과 삶을 바꿔 놓는 그런 깨달음을 주는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평범'하고 이미 다 아는 얘기를 다시 나에게 주입해 주는 책들을 고맙게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도 참 고맙다. 때로는 새로운 걸 배우는 것보다 이미 알고 있는 중요한 걸 기억하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는 법이니까.

기초를 다지는 마음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누구나 다 알지만 자주 잊어버리는 사실들을 상기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으로 다시 기억을 새롭게 하심이 어떨지.

[책 감상/책 추천] 웬디 L. 패트릭, <친밀한 범죄자>

 

 

요즘같이 흉흉한 시기에 꼭 알아 두면 좋을, '내 주변에 교활하게 숨어 있는 위험한 사람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이다.

저자인 웬디 L. 패트릭은 미국 샌디에이고 카운티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검사보(Deputy District Attorney)이다.

그녀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위험한 인물을 알아볼 수 있는 단서를 찾아냈고 이를 '플래그', 즉 'F.L.A.G.'라 부른다.

각각 '관심사(Focus)', '생활방식(Lifestyle)', '주변인(Associations)', 그리고 '목표(Goals)'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 관심사(Focus): 어디에 관심을 보이는가? 본인에게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가?
  • 생활방식(Lifestyle):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가? 취미와 관심사는 무엇인가?
  • 주변인(Associations):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가?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가?
  • 목표(Goals):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목표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여러분이 이미 살면서 백 번도 넘게 경험했다시피, 겉모습은 진실을 말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착하고 능력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예상이 언제나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흉악한 범죄자도 잘생기거나 예쁠 수 있다. 그리고 그 외모를 오히려 피해자를 꾀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믿을 만한 사람이고 누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상대방의 말을 들어 봐야 할까?

하지만 말은 진심이 아니어도 쉽게 내뱉을 수 있다.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데도 사랑한다고 속삭일 수도 있고, 돈이 없는데 돈이 있다고 뻥을 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동을 봐야 할까? 하지만 행동이 좋다 해서 반드시 동기까지 좋으리란 법은 없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으로, 다시 말해 저자가 제시하는 4가지 단서('F.L.A.G.')를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을 알아내야 한다.

 

그중 첫 번째인 '관심사'를 보자. 저자는 "관심의 대상이 곧 동기"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관심을 갖는 대상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 감정, 의도, 관심사를 알 수 있다. 컴퓨터의 스크린세이브 모드처럼 완전히 넋이 나가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무언가에 집중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어디에 관심을 쏟는지 알아차리면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례로,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영상을 보면 수천 명의 관중은 선수들을 쳐다보며 응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폭탄 테러 용의자인 차르나예프 형제는 경기를 보고 있지 않다. 그들의 관심은 사제 폭탄을 폭발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을 때(다시 말해 자신이 관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때) 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라.

 

둘째, '생활방식'은 성격을 파악하는 열쇠다.

생활방식은 어떤 사람을 드러내는 정보로 그 사람이 선호하는 활동, 취미, 상황뿐 아니라 삶의 속도와 기준도 포함된다. 어떤 사람이 나체촌을 방문했다는 정보는 그 사람이 사는 동네와 다니는 회사보다 훨씬 더 많은 사실을 보여 준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 필요가 없는데도 일을 하는데, 이때 그 사람이 하는 일이 그 사람의 성격, 관심, 목표를 보여 준다.

또한 퇴근 후에 곧바로 운동을 하러 헬스장에 가는 사람과 PC방에 가는 사람은 관심사와 성격, 목표가 분명히 다를 것이다.

헬스장에 가는 사람이 PC방에 가는 사람보다 건강과 습관을 중요하게 생각할 확률이 높겠지.

 

셋째, '주변인'은 같이 어울리는 무리를 말한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은 정말 사이언스다. 저자는 자신이 목격한 피고인의 예를 드는데, 준수하게 차려입고 눈을 내리깔며 반성하는 것처럼 보였던 피고인이 밤을 샜거나 옷을 입고 잔 듯한 차림새의 세 친구를 데려온 것을 보고 피고인의 '반성'이 얼마나 진심인지 의심했다고 한다.

그 세 친구가 술을 했거나 메탐페타민(흔히 '히로뽕'이라고 하는 각성제)을 한 것처럼 눈이 게슴츠레했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들과 사귄 사람이라면, 지금 법정에서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을 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넷째, '목표'는 우선순위에 대한 관심을 말한다.

어떤 사람의 목표를 알면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목표는 성격 유형은 물론 성격 특징과도 관련이 있으며 물질적 보상과 암묵적 동기, 즉 권력, 성공, 인맥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을 모두 포함한다.

목표는 목표 지향적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데, 그 행동의 잠재적 동기를 알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사장이 후원하는 자선 단체에 후원금을 내는 직원은 1) 사장이 이를 알 거라는 생각에서 기부를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2) 그 자선 단체가 사장이 후원하는 곳인지 몰랐거나 사장이 (자신의 후원 사실을) 모를 거라 생각하고 기부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전자의 상황에서는 직원을 이기적 욕심 때문에, 후자에서는 이타적인 마음으로 후원을 했다고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옳은 판단늘 내리기 위해서는 행동의 잠재적 동기를 알 필요가 있다.

또한 행동을 통해 목표를 쉽게 파악할 수도 있는데, 마라톤 대회를 위해 퇴근 후 달리기 연습을 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이 경우 목표 자체는 아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마라톤 대회 출전). 문제는 그 사람의 근본적 동기를 알기 위해 왜 그 사람이 그 목표를 이루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릴 때의 쾌감이 좋아서? 작년 기록을 깨고 싶어서? 마라톤 완주를 자랑하고 싶어서? 친구/가족과 내기를 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행동 그 자체보다 그 사람의 실체를 더욱 분명히 보여 줄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네 가지, 즉 관심사, 생활방식, 주변인, 그리고 목표가 큰 단서이다.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을 대상으로 이 요소에 관해 알아낸 사실을 비교해 보자. 플래그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가? 일관성이 곧 공신력이고, 신뢰성이다.

이런 기초 단서를 가지고 책의 파트 2에서는 구체적으로 우리가 흔히 빠지기 쉬운 유형의 사람들을 분석해 본다. 예를 들어 매력적인 사람, 리더, 믿을 만한 사람, 다정한 사람 등등.

책의 내용을 다 설명할 수는 없으니 내가 제일 공감하기도 한 부분인 '익숙한 사람'의 경우를 간단히 소개하겠다.

연쇄 살인범(또는 다른 유형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예컨대 아동 성추행 범죄자)의 이웃 또는 주변인이 TV 인터뷰에서 범죄자가 "좋은 사람 같아 보였다"라느니, "조용하고 수줍은 편"이었다느니, (심지어) "모범생"이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를 많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피상적인 인상에 불과하고, 진실을 단 1g도 드러내지 않는다.

이웃들 또는 주변인은 범죄자 가까이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친근함을 느꼈고, 그래서 위험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저자가 아리엘 카스트로(젊은 여성 3명을 납치해 클리블랜드 자택에 10년 넘게 인질로 감금한 범죄자)의 예를 들어 보여 주듯이, 범죄자들은 "뻔히 보이는 곳에서 친근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언론에서 범죄자의 이웃이나 주변을 찾아가서 인터뷰하는 것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 범죄자가 겉보기에는 멀쩡했는지, 주변에게는 잘했는지, 앞이 창창한 청년인지, 모범생인지 등등은 전혀 상관이 없으니까.

범죄 혐의가 완벽하게 입증된다면 그 범죄자에게 '이러이러한 기구한 사연이 있어서 얘가 이렇게 됐답니다!' 하는,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짓은 필요 없는 것 아닌가? 또한 '악마'라느니 '괴물'이라느니 하는 말도 붙이지 말고 그냥 '찌질이', '못난 놈' 이렇게 불러야지.

어쨌거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저자는 '친숙한 이들'에 대해 이렇게 조언한다.

익숙한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결정하기 위해서 왜 그 사람이 익숙한지 생각해 보라.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수록 좋다. 나와 주말 산책 코스가 같은가? 같은 대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가? 아니면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인가? 생활방식, 학문적 목표, 직업적 목표가 같다는 말은 아파트 단지에서 어쩌다 우연히 옆자리에 주차하는 사람보다 훨씬 공통점이 많다는 의미다. 같은 단지에 산다는 사실만으로는 소득계층이 비슷하다는 것 외에 그다지 많은 정보를 알 수 없다.

익숙함의 근거를 조사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익숙함이 너무 쉽게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 성애자들은 자백 과정에서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아이들이 많은 동네로 이사 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출세를 바라는 사람들은 만나고 싶은 권위자와 마주칠 확률이 높은 장소에 자주 나타난다.

 

책 마지막 장에는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시되는데, 이는 책을 여기까지 읽으며 '세상은 썩었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먼' 하는, 치우친 시각을 가지게 될까 봐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이미 책의 앞머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한편 제대로 된 관계를 찾는 과정에서 백기를 들기 전에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 마찬가지로 악의적으로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려 드는 사기꾼들 옆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선의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보다 많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러한 사례들을 다룰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고 난다면 위험한 인물을 걸러 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는 동시에 인류애도 여전히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접근, 그러니까 책의 90%에서 위험한 인물을 찾아내는 실마리를 배우고 나머지 10%에서 균형 잡힌 시야를 유지하기 위해 좋은 사람들의 예를 읽는 것이 꽤 적절하고 지혜로운 선택이었다고 본다.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범죄자를 두려워하며 정상적이고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기 두려워하는 것은 분명 저자가 독자들에게 바라는 바는 아닐 테니까.

 

'사람 보는 눈'을 키우고 싶다면, 그리고 혹시 모를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 가르쳐 주는 단서들을 잘 기억해 두면 자신 또는 타인의 삶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 감상/책 추천] 듀자미, <원 페이지 요리책>

 

 

얇고 단순한 요리책. 생존을 위한,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요리(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먹는 정도)부터 시작해 요리에 생각이 담기는 단계까지 발전해 나가는 콘셉트이다.

아주 쉬운 30여가지의 요리법을 안내하는 책이라 이 책을 뗀다고 해도 '요리왕 비룡'이 되거나 갑자기 백주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요리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요리를 시도하는 데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 줄 수는 있다.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의 설명문은 그다지 길지도 않고, 전체적인 레이아웃 자체도 깔끔하다.

요리 도구와 재료 외에 일러스트레이션도 없다. 완성된 요리가 이렇게 보여야 한다는 그림도 없고(어차피 다 우리가 아는 그 음식들이라 딱히 일러스트레이션이 필요하지도 않고).

 

이 책의 독특한 점이라면, 가령 양념을 만들 때 각 재료를 이만큼 넣으라는 엄격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참고할 만한 비율은 6:2:1:1:1입니다." 같은 '제안'을 하기는 하지만 딱 잘라 이렇게 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고, 그냥 이러이러한 재료로 간을 한다고만 말한다.

심지어 콩나물무침을 만들 때 간을 하는 과정에서의 설명도 "물기가 빠진 콩나물을 냄비나 그릇에 담고 다진 마늘로 향을 냅니다. 그다음에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해 두었다.

이렇게 계량에 '느긋하'고 마음이 편해 보이는 요리책은 처음 봐서 놀라웠다.

확실히, 요리와 친해지고 요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칼로 자른 듯 아주 정확한 계량을 원하는 분들이(요리에 관한 나의 입맛과 손재주를 믿을 수 없다 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찾는 요리책은 아닐 수도 있으니 그 점은 참고하시라.

 

개인적으로는 이 요리책을 보고 나서 김치찌개가 만들고 싶어졌다. 원래 김치찌개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외국에 나와 있어서 그런가.

한국에 계신 분들이라면 정말 아침, 점심, 저녁으로 매일 먹는, 그런 간단한 요리들을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어서 더 좋을 것 같다.

[책 감상/책 추천] 캘리 브라운, <어덜팅>

 

책 제목인 '어덜팅'은 '어른'을 뜻하는 영어 명사 'adult'를 동사형으로 사용해 동명사로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어른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제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다음과 같다. '어른'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어른은 일상의 작은 결정들을 올바르게 내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 어른답게 행동해 보자. 실수로 아침 식사를 다이어트 콜라로 때웠다고 해서 누군가 들이닥쳐 어른 증명서를 뺏어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내일은 우유를 마시면 된다. (...)

내 생각에 어른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당신이 나이 먹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속으로는 어른이라고 느끼지 못해도 겉으로는 어른인 척 행동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저절로 어른스러워지는 건 아니니까. 신체적, 호적상 나이는 가만히 숨만 쉬어도 먹는 거지만, 그에 맞는 '나잇값'은 내가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어른처럼 행동하는 법'에 대해 총 463개의 팁을 알려 준다.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는데 대체로 한 페이지에 두 개 정도라고 하면 길이가 짐작이 가시려나.

개중에는 정말 '취향을 숨기지 말고 좋아하는 것은 그대로 좋아하자'라든가 살림이나 요리에 관한, 다소 가볍고 밝은 이야기도 있고, 

돈 관리, 보험, 장례식이나 응급 상황 같은, 다소 무겁고 진지한 주제도 있다.

미국인 저자가 쓴 거라 우리나라 문화와 100%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에이, 말도 안 돼. 터무니없어!' 할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저자도 이 책에 나온 모든 내용을 다 시도해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하니까, 읽어 보고 별로다 싶으면 실천 안 하면 그만이다.

참고로 저자는 27세 기자다. 중년의 저자가 '내가 살아 보니 이래야 하더라' 하고 지혜를 나눠주는 게 아니니 혹시나 오해(또는 과한 기대?) 마시라.

 

개인적으로 내가 공감하고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한 조언만 몇 가지 꼽자면 다음과 같다.

11 6개월짜리 문제에만 신경 쓰자
몹시 화가 났다면, 
14 나의 몸과 주변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를 정돈해도 되고(122번 참고) 정돈하지 않아도 된다. 두루마리 휴지를 사 둘 수도 있고 사 놓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한다고 해서 더 좋은 사람이나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정돈된 침대를 원한다면 이 세상에서 그 침대를 정돈할 사람은 단 한 명, 자신뿐이라는 걸 기억하자. 이 원칙을 다른 수많은 경우에도 적용하자.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보다 적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49 테플론 코팅 같은 성격을 키우자
아, 말은 쉽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훨씬 어렵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날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을 상대하는 최고의 방법이자 어떤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금부터 겉면에 매끄럽고 흠집 없는 테플론 코팅으로 둘러싸여 세상에서 제일 까칠한 심술, 쓰라림, 분노, 광기도 들러붙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다른 사람이 내던지는 끈적거리는 공격은 내게 붙어있지 못하고 미끄러져 떨어져 나간다. 나쁜 기분, 어두운 표정, 무뚝뚝한 대답 전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여기자. 잠깐 영향을 받더라도 결국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게 처리하자. 그런 일은 종이 타월로 한 번 쓱 닦아내면 될 뿐 밤새 비눗물에 담가 놓을 필요는 없다. 난 어른이다. 남의 어떤 태도가 5분짜리 영향을 줄지 아니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할지는 내게 달렸다.
64 할 수 있는 한 가장 우아하게 가족을 대하자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 애인, 직장 동료, 그리고 넓게는 이 세상 사람들 전부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기 전에 잠시 말을 멈추고 25년간 가족 및 커플 상담을 해 온 사회복지사 레이니 키벨이 한 말을 소개한다.

"전 '우아하다'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사람들과 우아하게 교류하고, 다른 사람의 뜻을 우아하게 해석해서 늘 최상을 기대하고 남들이 자신을 악의 없이 대할 거라고 예상하는 태도 말이죠. 만약 상대의 마음을 잘 모르겠거나 상대가 내 감정에 상처를 입혔다면 설명해 달라고 말하고, 사과하라고 요청해야 해요."

 

청소법이나 사고가 났을 때 대처법 등이 팁으로 제시되는데, 아주 자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썩 도움이 될 듯하다.

다만 번역 과정에서 로컬라이징을 미묘하게 하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피할 수 없다. 돈 관리 얘기에 한국에는 없는 '401(k)' 보험이 한 페이지 넘게 나오는 걸 그냥 놔두었다든가, '수동적 공격성' 같은 표현을 그냥 옮겨 놓은 게 그러하다('다이소'나 경찰서, 소방서 번호는 국내 실정에 맞게 잘 바꿔 놓고선).

(참고로 '수동적 공격성'이란 삐쳐서 까칠하게 군다고 표현하는 게 한국어 정서에 제일 잘 어울릴 듯하다. 대놓고 욕하거나 불평하는 건 아닌데 돌려서 사람 성질을 긁는 것. 예컨대 내가 여러분에게 요리를 해 줬는데 여러분이 하필이면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아서 내가 만든 음식을 다 먹지 못했다고 치자. 이때 그냥 대놓고 '네 몸이 안 좋아서 요리를 다 못 먹으니 아쉽네'가 아니라 (이건 정상) '아냐, 괜찮아. 어차피 내 요리 맛대가리도 없는데. 안 먹어도 돼. 먹지 마. 못 먹을 걸 줘서 미안하다' 이런 식으로 (이건 비정상)  미묘하게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게 '수동적 공격성'이다. 그냥 '수동적 공격성'이라고만 써 놓으면 단번에 알아들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건강 문제(라고 쓰고 성병이라고 읽는다)"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번역인지 모르겠다. 일본어도 아니고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을 했는데 왜 일본어식 표현이 쓰인 거지? 그리고 "(섹스가) 시들어진다"는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한 건지? '섹스가 시들해진다'도 아니고('시들해지다'를 검색해 봤는데 이것도 사전에 안 나온다. 그래도 이건 대충 이해는 되지 않나). 사전에 나오는 표준어는 '시들다'인데. 

나는 번역가가 맞춤법을 100% 다 지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오타나 맞춤법 틀린 것, 오류 정정은 편집자 몫이니까(책임 전가가 아니다. 나도 편집자 일을 해 봐서 하는 말이다). 근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건 편집자가 게을렀던 게 아닌가? 너무 실망스럽다.

이런 오류의 최고봉은 챕터 11의 "나오지 않는 만약 실제로"이다. 전체 문장을 옮겨 적자면 이렇다.

"대략적인 길잡이 정도로 봐야 하며 '간단한 심장 제세동기 사용 방법을 익히자!'와 같은 내용은 나오지 않는 만약 실제로 심장 제세동기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응급실에 연락해야 한다."

'~나오지 않는다. 만약 실제로~'를 쓰려다가 어쩐 일인지 '다.'를 날려먹은 듯하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실수다. 내가 리디셀렉트로 이 책을 다운받아 봤기에 망정이지, 내 돈 주고 사서 봤으면 진짜 항의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편집상의 실수를 너그러이 눈감아 준다고 해도, 과연 저자가 제시하는 "어른인 척하는 깨알 팁 대방출"(이 책의 부제이다)이 도움이 될지는, 글쎄, 여러분이 직접 판단하셔야 할 듯.

왜냐하면 어떤 게 어른스러운 삶이고 어른스러운 행동인지는 주관적인 거니까. 저자의 모든 조언이 다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 책이 '어른스럽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기회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책 감상/책 추천] 최민영, <아무튼, 발레>

 

 

서른아홉 살에 취미로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저자가 발레의 매력을 아주 유쾌한 글솜씨로 담아냈다.

솔직히 나는 발레를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인데, 저자가 말을 너무 재미있게 해서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의인화하자면, 마치 '발레 한번 해 보세요!' 하고 눈을 찡긋 하면서 은근히 부추기는 취미 발레인 언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발레 체형'은 아니어도, 발레를 사랑하고 즐기는 언니.

'몸에 안 맞을 수도 있는데 기초반 한 달만 들어 보고 계속할지 결정하라'는 발레 학원 데스크 담당자의 말에 "아닙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라며, 결연한 표정으로 신용카드를 내밀며 3개월을 일시불 선결제 한 언니(실제로 저자가 그랬다고).

 

저자의 원래 직업은 기자인데, 그래서인지 표현력이 정말 뛰어나다. 발레를 잘 몰라도 어차피 저자가 잘 설명해 주고, 그 설명을 또 이해 못해도 비유가 기가 막히기 때문에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다.

예컨대, 발레에는 발 동작이 정해져 있다. 1번 발, 2번 발, 하는 식으로. 팔 자세도 규칙이 있어서 딱 정해진 곳으로만 움직여야지, 아무 데나 팔이 돌아다니면 안 된다.

그렇지만 1번에서 6번까지의 발 동작과 네 가지 팔 자세를 몰라도 저자의 이런 표현 하나면 다 이해가 간다.

이후에는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규칙도 모르겠고, 용어도 모르겠고, 음악에 박자는 맞춰야 되겠고, 내 몸은 마치 광고용 바람인형처럼 움직였다. 다리 동작을 하면 팔이 공중에서 헛짓을 하고 있고, 팔 동작에 신경을 쓰면 다리가 엉뚱한 데로 가 있었다. 동작 순서를 몰라서 앞사람을 곁눈질로 보고 따라 했는데 알고 보니 앞사람도 틀렸다.

 

아니면 이런 비유. (참고로 아래 인용문에서 '플리에'는 스쿼트 비슷한 발레 동작이다. '그랑 플리에'는 그냥 플리에보다 더 깊숙이 아래로 내려가는 동작이고.)

반면 나는 근육 부피는 컸지만 속근육 힘이 형편없었다. 둘레로는 클래스 으뜸인 내 허벅지는 뻥과자는 다름없었다. 플리에는 할 때마다 너무 힘이 들어서 매번 두개골을 비롯한 상체 토르소가 인체에서 얼마나 많은 무게를 차지하는지 실감이 났다. 발레는 우아한 춤인데 나는 그와 백만 광년쯤 멀었다. 바를 잡고 버둥버둥 올라오기 일쑤였다. 특히 2번 그랑 플리에를 할 때는 거울 속의 나 자신을 보기가 괴로웠다. 스모 선수의 준비 자세나 봉산탈춤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그럴법한 자세인데, 복장은 몸에 꼭 달라붙는 핑크색 타이즈에 레오타드를 입고 있으니…. 낫토를 얹은 초콜릿 와플이나 두리안을 넣은 김치 같은 '괴식'의 몸 버전이랄까.
물론 농담이 아니었다. 점프 동작을 할 때 선생님은 적당히 뛰어도 우아한데 나는 제주목장에서 기운을 주체하지 못해 히히힝 뒷발 차는 청소년 망아지처럼 보이는 건 '플리에 부족' 때문이었다. 위로 뛸 생각만 하니까 아래로 충분히 낮아지질 못하는 거다.

그리고 플리에에서 김성모 화백의 "내가 무릎을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라는 대사를 떠올리고 플리에에서 "낮아지고, 떨어지고, 주저앉는", 플리에 같은 삶의 순간을 떠올리며 깨달음을 얻는 내공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아, 푸에테(발레의 터닝 동작)를 시도하려다 실패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휘청이는 학생들이 '아싸 호랑나비' 군무를 선보일" 때라고 표현해서 어찌나 웃었는지. 

저자는 발레 학원 수강생들이 발표회를 위해 군무를 배워서 연습하는데 하도 못해서 선생님께 죄송하단 말도 정말 재미있게 했다.

우리는 담당 A선생님께 연민과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군무는 조화가 생명이고 한 치라도 어긋남이 있을 때는 그 아름다움이 흐트러지는데 우리는 모두 각자가 해석한 춤을 따로 추고 있어싸. 원래 안무의 라 스칼라(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오페라 극장) 버전 동영상을 처음 봤을 때 다들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이 춤을 지금 이렇게 추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선생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발레계의 설리반 선생님 같았다. 그분이 재채기를 하면 코에서 사리가 나올 게 분명했다.

 

게다가 이 책은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가 풍부하기도 하다. 발레 동작이 소개될 때마다 이런 거라고 알려 주고, 발레를 할 때 입는 레오타드라든지 발레 할 때 신는 토슈즈 등에 대한 지식도 재미있는 일화를 통해 배울 수 있다.

토슈즈를 처음 신을 때는 가운데를 꺾은 후 북어 패듯 패서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 아셨는지? 나는 이 책에서 처음 배웠다(설마 나만 몰랐던 건 아니겠지?).

그리고 각 나라마다 추구하는 발레의 방향이라고 할까, 좋아하는 발레 취향이라고 할까, 그런 게 다르다는 것도 나는 몰랐다. 

러시아 스타일은 힘 있고 단순하면서도 쭉쭉 뻗어나가는 선을 지향하는 반면, 프랑스는 귀엽고 우아하고 발동작이 더 많으며, 관객을 끌어당기는 매력에 더 중점을 두는 차이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지젤>이나 <라 바야데르> 같은 고전 작품도 어느 나라의 버전인지에 따라서 조금씩 동작이 다르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발레는 폭발적인 힘과 속도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각 나라 관객의 취향에 따라 발레 스타일도 영향을 받는 셈이다.

 

저자가 발레를 하면서 "거북이처럼 굽었던 등과 어깨가 펴졌고, 골반 위치를 바로잡으면서 배가 들어갔다"고 하니 이 말만 들어도 혹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도 이미 발레를 한 4년쯤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실제로 할 필요까지 있나?' 싶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발레를 잘 몰라도, 솔직히 별 관심이 없어도 저자의 입담 덕에 너무너무 재밌게 잘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발레를 한번 배워 볼까?' 싶거나 발레에 대한 동경이 있다면, 그리고 실제로 발레를 해 봤다면 더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는 길이도 짧으면서 유쾌하고 가벼운 이야기 위주로 출판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한번 살펴보시라.

 

참고로 현재까지 내가 읽은 <아무튼> 시리즈의 책 리뷰는 다음과 같다.

2019/11/13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복길, <아무튼, 예능>

 

[책 감상/책 추천] 복길, <아무튼, 예능>

[책 감상/책 추천] 복길, <아무튼, 예능> 대종상을 웃기는 말투로 중계하고 해설해 한때 인터넷에 널리 퍼졌던 트윗을 혹시 아시는지? 그 트윗의 저자가 바로 이 책의 저자다(트윗 재밌게 써서 책을 쓸 기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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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조지영, <아무튼, 외국어>

 

[책 감상/책 추천] 조지영, <아무튼, 외국어>

[책 감상/책 추천] 조지영, <아무튼, 외국어> 내가 좋아하는 '아무튼' 시리즈의 한 권이다. 얼마 전에 <아무튼, 예능>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이 책도 흥미로울 것 같았다. 2019/11/13 - [책을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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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1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구달, <아무튼, 양말>

 

[책 감상/책 추천] 구달, <아무튼, 양말>

[책 감상/책 추천] 구달, <아무튼, 양말> 오늘 리뷰를 쓸 책은, 내가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한 책 <일개미 자서전>의 저자 구달이 쓴 <아무튼> 시리즈의 한 편이다. 2019/10/04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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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김혼비, <아무튼, 술>

 

[책 감상/책 추천] 김혼비, <아무튼, 술>

[책 감상/책 추천] 김혼비, <아무튼, 술> 내가 좋아하는 <아무튼> 시리즈(이 시리즈에 대해서 쓴 리뷰들도 참고하시라) 중 술에 관한 책이다. 2019/11/13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복길,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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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류은숙, <아무튼, 피트니스>

 

[책 감상/책 추천] 류은숙, <아무튼, 피트니스>

[책 감상/책 추천] 류은숙, <아무튼, 피트니스> 이번에도 <아무튼> 시리즈에서 한 권을 골라 들었다. 그런데 웬걸, 대박, 심봤다! 저자인 류은숙은 인권 운동(movement)을 25년이나 해 온 인권 운동가이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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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오마르, <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

 

 

'오마르의 삶'이라는 유튜브 채널로 유명한 유튜버 '오마르'의 에세이.

원래 이분 유튜브 영상을 보며 '와, 이분은 뭔데 이렇게 맞는 말만 하지?'라고 생각했기에 읽어 봤다.

내용은 영상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공감하고 또 동의하지만, 이미 내가 유튜브 영상으로 본 내용이 여럿 있어서 다소 아쉽긴 했다.

내가 이분 영상을 다 찾아서 본 것도 아닌데 웬만큼 알 정도니까, 이분 영상을 많이 찾아 본 애청자라면 '굳이 책으로까지 또?' 싶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대략 내용은 괜찮다. 위에서 말했듯, 참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동의할 만한 내용을 주로 공유하는 듯하다.

예컨대, '모든 이들에게 친절한 '천사'와 사귀면 오히려 힘들다', 또는 '참다 참다가 터뜨리지 말고 적당한 때도 적절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해라' 같은 것들.

찍먹은 부먹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데(그냥 자기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기만 하면 되니까), 왜 부먹은 찍먹이 찍먹 할 권리까지 빼앗느냐는 말은 (내가 찍먹이어서가 아니라) 참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 무릎을 탁 쳤다. 다소 사소해 보이긴 해도 신선한 관점이라 재밌게 읽었다.

 

어떤 것들은 정말 핵심을 잘 짚는다. 예컨대 첫째, 계속 연애 내내 그 열정, 그 애정으로 잘해 줄 게 아니라면 썸 단계 또는 연애 초기에 100m 달리기 하듯 온 힘을 다해 잘해 주지 말고, 지속 가능한 정도로 좀 힘을 잘 분배해서 잘해 주라는 이야기. 

또는 '인맥'이란 쌍방향이니 잘나가는 사람들을 그저 알아 두는 것만으로 자랑스러워하거나 든든해하지 말고, 그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뭔가 제시할 수 있는 '카드', 즉 유용한 구석을 만들라는 이야기.

내가 변호사나 경찰 등을 알고 있어도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메리트를 못 느낀다면 동등한 입장에서 지인이나 친구가 되기 어렵고, 또 그들에게 도움받기도 어려울 테니까.

이런 얘기는 정말 귀 기울여 들어 두면 도움이 될 얘기들이라 아주 좋았다.

 

띠지 광고대로 조금 더 '오리지널'한 꼭지가 많았으면 좋겠지만, 유튜브에서 주로 활동하는 분이니 책만을 위해 콘텐츠를 만들고 사용하면 유튜브 활동이 어려워지겠지.

그래서 유튜브 영상에 있던 내용을 글로 다듬어 책으로 낸 것 같다. 하지만 그럴 거면 보통 사람들이 그냥 영상을 보지, 왜 책을 사서 읽겠는가? 영상 보는 건 무료고 책 사서 읽는 건 돈이 드는데.

그러니 팬들을 책으로 유인할 수 있는, 책에서만 접할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이건 박막례 할머니의 책에서도 느꼈던 점이다. 그래도 이 경우는 책에 막례쓰의 '인생 주요 사건'이나 '박막례 모의고사'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넣어서 그나마 책만의 메리트라는 게 어느 정도 있었다. 책 리뷰 참고.

2019/11/20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박막례, 김유라,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책 감상/책 추천] 박막례, 김유라,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책 감상/책 추천] 박막례, 김유라,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이미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실 '막례쓰' 박막례 할머니가 어떻게 우리나라 최고 인기 유튜버가 되었는지에 관한 책이다. 책을 펼쳐면 나오는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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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은 책을 내는 다른 유튜버분들도 많이 고려해 보시면 좋겠다.

 

어쨌거나, 동네 형 또는 아는 오빠와 술 한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살아가는 데 아주 사소한 조언들을, 꼰대질 없이 듣고 싶다면 한번 살펴보시라.

 

[책 감상/책 추천] 임수희, <사서, 고생합니다>

 

 

사서가 쓴 에세이. 사서가 도서관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를 소개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정말 놀랐는데, 책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내가 여태껏 사서가 쓴 글을 읽어 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종종 서점 직원이 쓴 글, 또는 서점 직원으로 설정된 인물이 등장하는 글은 읽었는데, 진짜로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가 쓴 글은 이게 처음이다.

사서들이 너무 바빠서 글을 쓸 시간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내 도서 정보 레이더망이 좁았던 걸까? (당연히 후자겠지.)

 

이 책을 읽으면 사서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된다. 나는 사서가 책 대출, 반납, 책 제자리에 꽂기, 구입 요청이 들어온 책의 확인 정도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사서가 하는 일이 참 많더라! 도서관에서 열리는 행사, 예컨대 '저자와의 간담회' 같은 것도 사서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거더라!

나는 왜 여태껏 그런 건 도서관의 다른 행정 직원이 있어서 전담하는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기 휴관일에 사서가 쉬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구체적인 사정은 도서관마다 다르겠지만, 저자가 근무했던 공공 도서관에서는 "진도 6도 이상의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벌어지지 않는 한 매주 하는 수서회의를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수서회의란, "각자 담당한 주제의 자료를 골라와서, 왜 수서를 해야 하는지, 혹은 수서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 등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방금 검색을 해 보니 모든 도서관이 수서, 그러니까 '이 책과 저 책 등을 사겠다'라는 결정을 내리는데, 보통 인력 등의 문제로 한 명의 담당자가 이 업무를 도맡아 한다고 한다. 도서관마다 조금씩 사정이 다른 모양.)

와! 너무 놀랍다! 내가 신청한 책도 그냥 들어오는 게 아니었구나! 내가 책을 신청했던 도서관이 여럿 되는데 그럼 거기에 계신 사서분들이 토론을 해서 결정을 내리셨다는 건가? 막 누구는 '절대 반대', 누구는 '절대 찬성' 이렇게 파를 갈라서 막 싸울 듯이? (저 혼자만의 상상입니다.)

제가 신청한 책을 수서하는 데 OK 결정을 내려 주신 모든 사서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또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놀랐던 점이, 사서가 이용자에게, 또는 이용자가 사서에게 말을 거는 부분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 내, 그리고 공립 도서관을 무척 좋아서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그때 딱히 사서와 "반납/대출이요." 또는 "감사합니다." 이외의 말을 나눠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건 절대로 그분들을 무시한다거나 NPC 취급을 해서가 아니고, '안 그래도 바쁘신 분들인데 귀찮게 해 드리지 말자'라는 마음이 강했다.

또한 도서관이란 게 대개는 조용하니까 그런 분위기도 있을 뿐더러, 나도 낯을 가리는 편이라 사서에게 필요 이상으로 길게 대화를 이어간 적이 없다.

그런데 저자는 이용자들에게 말을 걸어서 상대가 무슨 책을 읽는지, 어떤 책에 대해 어떤 평을 내리는지를 기억해 뒀다가 '책 추천해 주세요'라는 부탁을 들었을 때 데이터베이스로 이용한다고 한다.

예컨대 추리 소설을 추천해 달라는 말을 들으면, '이 작가의 추리 소설이 참 재밌어요'라는 후기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뫄뫄 작가 책이 참 재밌다고 하네요'라는 식으로 제안하는 식이다.

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모든 책을 다 읽기는 불가능하니까, 도서관 이용자나 동료 사서에게 받은 후기를 이용하면 크게 애쓰지 않고도 도서 정보의 풀을 늘릴 수 있겠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라 공감하고, 또 저자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뭉클했던 꼭지도 있다. 제목은 "우리 애가 봐도 되나요?"

"얘가 판타지 소설만 읽어요."는 다른 보호자들이 부러워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장편의 판타지를 쭉쭉 읽어낸다면 다른 무슨 책인들 읽지 못하겠는가. 그럴 때 나는 딱 한 가지로 대답한다. "그런 시기가 있어요. 마치 어린아이들의 공룡기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라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판타지기'가 있다. 장편의 판타지기를 쭉쭉 읽는 시기. 그 후 일본 문학에 빠져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는다거나 하는 시기. 내가 봐 온 시간의 흐름은 그랬다. 내가 당부처럼 하는 말이 있다. "지금 못 읽게 하면, 책을 다신 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집에서 읽지 못하게 한다고 도서관에 와서 몰래 책을 읽다 가는 아이들이 있다. 주로 시리즈 서가에 털퍼덕 앉아서 꽤 오랜 시간을 읽은 뒤 다시 꽂아 두고 가는 아이들. 말을 건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책을 읽다가 걸렸다고 한다. '걸렸다.'라고 표현한다. 불온서적을 읽었을 때나 쓰는 표현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 나는 속으로 응원한다. 꾸준히 도서관에 와서 읽고 싶은 만큼 다 읽다가 가기를. 판타지 소설은 짧아도 5권이다. 그런 책을 쭉쭉 읽는다면 단권짜리 책은 단숨에 읽고 아쉬워한다. 서사가 긴 이야기들을 더욱더 찾게 되는 것 같다. 부럽다. 난 지금 한 권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으려면 좀이 쑤신데, 학원 가기 전 혹은 학원 끝난 잠깐 짬 낸 시간 동안 몇 권을 읽어 내고 돌아간다. 화이팅.

나는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다행히 부모님이 내가 어떤 책을 읽든 절대 터치하지 않으셨으므로(그 단적인 예로, 우리 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대놓고 읽었는데도 그 어떤 코멘트도 듣지 않았다), 위에 인용한 본문에서 말하는 부모 같은 경우는 겪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건 물론 안다. 책은 소위 '양서'가 아니면 안 된다, 만화는 읽지 말아야 한다는 주의의 사람들. 

저자 말에 의하면 왜 도서관에 만화를 들이냐고 전화를 걸어 따지는 사람도 있었단다. 세상에... 책이면 다 같은 책이지 무슨.

어쨌거나,  아이들이 무슨 책을 읽든 내버려 두라는 저자의 태도에는 100% 공감하지만, 이렇게 표현하면 판타지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독서 수준이 낮다고(독서 과정의 초기, 그러니까 어린 시기에서 못 벗어났다고) 오해할 여지가 있어서 이 부분이 조금 아쉽긴 하다.

저자야 자신이 쓴 글이니 객관적으로 볼 수 없어서 그렇다고 쳐도, 편집 과정에서 이것이 발견되어 적절히 수정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장르가 그 글의 '수준'을 좌우하는 게 결코 아니니까.

 

책 말미에 동료 서사 네 명을 인터뷰한 내용이 딸려 있는데, 내용이 퍽 귀엽다.

나는 특히 그 부분을 읽고 나서 '나는 사서를 했어도 참 잘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서분들을 무시하는 게 절대 아니고, 사서가 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고, 또 잘하고 싶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과 함께하며 다른 이들과 책의 즐거움을 나누는 일이라니! 이 얼마나 멋지고 가슴 설레는 일인가!

나는 수서 회의에서 이 책을 꼭 사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열변을 토할 자신도 있는데! (그런 종류의 회의는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아동 문학이나 여행만 제외하면 다른 모든 분류는 담당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근자감).

그럼 이 세상 모든 도서관의 모든 사서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 후기가 그분들에게 작으나마 힘이 되기를 바란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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