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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Big in Japan(빅 인 재팬, 2018) - 어떤 수를 써서든 유명해지고 싶어!

 

 

감독: 라클린 매클리오드(Lachlan Mcleod), 루이스 다이(Louise Dai), 데이비드 엘리엇-존스(David Elliot-Jones)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세 청년의 '유명해지기 챌린지'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네이버 영화에도 정보가 안 올라가 있고(검색해서 나오는 건 동명의 다른 영화이다), 왓챠피디아에도 없어서 이 영화를 보고자 하는, 또는 이 영화가 궁금한 분들에게 내 감상을 알릴 방법이 딱히 없어서 이번에도 블로그에 쓴다.

과연 국내에서 이 영화를 구해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할까 싶지만 해외에 계신 분들이 궁금해하실 수도 있으니(참고로 나는 아마존 프라임에서 봤다) 후기를 최대한 잘 써 보겠다.

 

위에서도 간략히 요약했듯이, 호주 세 청년이 유명해지고자 노력한 과정을 담은 다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다. 라클란, 루이스, 데이비드(애칭 데이브)라는 세 호주 청년은 절친이다.

라클린과 루이스는 원래 카메라로 뭘 찍는 걸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흥미로운 피사체인 자기 친구 데이브를 줄창 찍어 댔는데, 이 데이브로 말할 것 같으면 이렇다 할 재능은 코딱지만큼도 없고 잘생긴 것도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있으면 유쾌한 친구였다.

데이브를 만난 모든 사람들이 데이브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싶어 할 정도로, 사람들 안의 뭔가 흥미를 끌어내는 존재였다. 

이런 데이브에게 소원이 하나 있었으니, 유명해지는 것. 

그래서 라클린과 루이스는 데이브를 유명하게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한다. 어떻게? 음... 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엄청 뛰어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친구도 아닌데 어떻게 한다?

결국 이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TV에 나올 수 있고 유명해질 수 있는 일본에 가기로 한다.

일본어를 배우고, 영어 교사가 되기 위한 간단한 훈련을 받고, 여자 친구들까지 데리고 세 청년은 일본으로 출발!

 

...라는 것이 이 다큐의 큰 전제인데, 일단 일본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데이브는 외국인 엑스트라를 위한 에이전시에 등록한다.

성명, 나이, 주소, 연락처, 신체 사이즈 등을 적고 나서는 테스트랄 것도 없이 등록 성공.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첫 제안이 들어왔다. NHK 재연 프로그램에서 디자이너 역할을 맡아 달라는 것.

연기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데이브였지만 그렇게나 쉽게 첫 일을 얻었고, 그럭저럭 촬영도 했다.

그 이후로 그는 이런 재연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게 된다. 하지만 유명해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와 두 절친들이 떠올린 것이 유튜브 스타 되기. '미스터 존스(Mr. Jones)'라는 페르소나도 만들고,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 모양 모자를 쓰고, 훈도시(일본식 남자용 팬티 같은 것)만 입고 시부야 거리를 활보하기 등의 자극적 아이템에도 도전한다.

데이브가 유명해지려고 유튜브를 노려 만든 페르소나, '미스터 존스'

 

유명해지는 방법을 찾기 위해 데이브는 비슷한 길을 밟고 있는, 또는 밟아서 이미 유명해진 이들을 만나 본다.

밥 샙

첫 번째는 밥 샙(Bob Sapp). 원래 미국 NFL 선수였으나 부상으로 은퇴하고, 일본에서 파이터를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큰 덩치와 위협적인 외모("비스트(The Beast)"라는 예명처럼)에 걸맞지 않는 귀여움(또는 사랑스러움?)으로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꽤 유명한 외국인이 되었다.

레이디비어드

두 번째는 레이디비어드(Ladybeard).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누가 봐도 남자라 아니할 수 없는 외모에 소녀스러운 옷을 입고 레슬링을 하거나 헤비 메탈을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켈시 파니고니

세 번째는 켈시 파니고니(Kelsey Parnigoni). 캐나다 출신 소녀로, 일본 제이팝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일본에 왔다. 이 다큐에 등장하는 건 그녀가 아이돌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으며 '하지라이 레스큐(恥じらいレスキュ)'로 데뷔한 시기.

 

개인적으로 이 세 '외국인 탤런트'들을 이 다큐에서 보고 느낀 점은, 밥 샙이 자기 캐릭터(페르소나)를 잘 이용하는 아주 영리한 사람이라면, 레이디비어드는 정말로 자신이 크로스드레싱을 해서 사람들을 웃게 하는 점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아주 마음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켈시는... 서양 애가 영어를 하는데도 일본 여자애처럼 부끄러워하듯 얼굴을 손으로 가린다든가 하고 있으니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켈시 본인도 말하지만, 아이돌이기 때문에 남자 친구를 사귈 수 없다고 여기는 문화를 부모님도 잘 이해하지 못하실 것 같은데(여기까지가 본인이 말한 내용) 본인은 어떻게 제이팝 아이돌이 되고 싶어 헀는지도 참 신기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양 멤버는 이슈는 될지언정 잘되기는 엄청 힘든데...

밥 샙은 자기 캐릭터가 어떻게 하면 먹힐지 아는 사람인 거 같은데, 레이디비어드는 비교적 자기 개인적 얘기를 데이브에게 더 털어놓아서 호감이 갔다.

자기가 호주에 있을 때는 뚱뚱했어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단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자기가 무대에 올라서 노래를 하거나 레슬링을 하면 너무 좋아해 준다고,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게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얘기하는데 되게 찡했다.

팬에게도 엄청 다정하게 잘해 주는 거 보니 이분은 진짜 직업 만족도가 100%인 듯.

여튼 데이브도 '유명해지기 챌린지'를 계속 이어나가는 데(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지칠 때가 있게 마련이니까) 원동력이 되는 '기분 좋은' 요소를 레이디비어드의 경우에서 찾으려고 했다. 일단 본인이 그걸 하면서 행복해야지 오래 할 수 있다는 걸 배운 거다.

그 전까지 데이브는 그저 유명해지고 싶어서 뭐든 하겠다는 필사적인 마음만 있었지, 그 과정을 진심으로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게 바로 위에서 언급한 그, 시부야 거리에서 훈도시만 입고 활보하는 그 사진이다. 아마존 프라임에도 이 다큐 커버 사진이 이걸로 돼 있다. 어그로력 쩌네요...

 

2년 넘게 일본에서 유명해지려고 노력한 후, 결국 세 절친은 호주로 돌아온다.

'유명하다'란 개념을 일단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합의점도 찾지 못한 데다가(트위터 팔로워가 100명은 되어야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아니면 200명? 300명?), 그 목표를 달성해도 절대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걸, 더 많은 걸 추구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호주로 돌아온 후, 라클란과 루이스는 촬영물을 잘 다듬어 이 다큐로 만든 것 같고(데이브도 어느 정도 참여했겠지만 내가 보기에 감독 롤은 라클란, 카메라맨이 루이스, 연기자는 데이브였다), 데이브는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다. 햄버거를 구우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애초에 살면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나는 데이브가 '오니리기 맨' 캐릭터를 밀려고 노력할 때 '도대체 왜, 유명하다는 게 뭐라고 저렇게 쪽팔린 짓을 하지? 왜 공개적 망신을 감수하는 거지?'라며 대리 수치심으로 괴로웠다... 

진짜... 별 볼 일 없는 평범 백인남의 훈도시 차림 안 보고 싶다고!!

 

그래도 전반적으로 내용이 흥미롭고(일본에서는 왜 외국인 탤런트들을 그렇게 좋아할까?), 생각해 볼 만한 점을(유명해진다는 게 뭘까? 유명해지면 뭐가 좋지? 유명세를 감당할 수 있을까?) 제시한다는 점에서 볼만하다.

만약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거들떠 보시기를.

 

P.S.: 제목의 'Big in Japan'은 알파빌(Alphaville)이 부른, 같은 제목의 노래에서 따 왔다.

애초에 'big in japan'이라는 표현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은 북미, 영국 등 영어권 국가나 유럽 출신 밴드를 가리키는, 일종의 하나로 굳어진 표현이 되어 버려서 딱히 그 노래에서만 따 왔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

그 일례로 다큐 앞부분에도 더 벤처스(The Ventures)라는 밴드의 예가 제시되는데, 이 밴드는 본국에서는 별 재미를 못 봤지만 일본에서는 비틀즈의 앨범 판매량을 뛰어넘을 정도로 큰 인기였다고.

 

[영화 감상/영화 추천] Hail Satan?(헤일 사탄?, 2018) - 궁극의 선을 위해 사탄을 불러오다

 

 

감독: 페니 레인(Penny Lane)

 

현재 미국에 불고 있는, 'TST(The Satanic Temple)'라는 신흥 종교(?)를 다룬 다큐멘터리. 굉장히 흥미로웠다.

일단 'TST'가 뭔지 알고 싶어 하실 분들이 계실 테니 간단히 소개하겠다. 'TST'는 루시엔 그리브스(Lucien Greaves)라는 사람(그가 대표적인 대변인이다)과 '말콤 제리(Malcolm Jerry)'라는 가명을 쓰는 사람이 세운 종교다.

'사탄의 사원'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타니즘(악마 신봉주의)을 표방하는 듯하나, 그것은 그냥 '추진력을 얻기 위한' 표면적인 상징에 불과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은 사탄을 숭배하는 게 아니라, 미국에 널리 퍼져 있는, 마치 기독교가 국교쯤 되는 듯한 분위기를 타파하고 정교 분리 및 종교적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협력하는 무신론적 행동주의자들에 가깝다.

아무래도 이름 때문에 오해를 받아서 그런데(사실 그런 어그로를 끌려서 지은 이름 같긴 하다), 그들은 폭력이나 퇴폐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사탄은 신(권력자)에게 저항한, 일종의 반항아의 상징이기 때문에 가져왔을 뿐, 그들의 목표는 종교의 자유와 정교 분리, 평등이다.

 

TST의 대변인 루시엔 그리브스

 

역사적으로도 미국은 애초에 시작부터 기독교, 정확히는 신교에 기반했다. 미국 지폐에 'In God We Trust(우리는 신을 믿는다)'라고 쓰여 있을 정도고.

그래서 그런지 비(非)백인이나 비기독교인인 이민자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아 미국의 한 부분이 된 아직까지도, 기독교가 디폴트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미국에 참 많다.

루시엔 그리브스를 비롯한 TST는 그게 공정하지 못하고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일례로, 오클라호마 주의 주 의회 의사당에는 기독교의 십계명이 새겨진 큰 석판이 앞마당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정말로 동등하다면 기독교만이 그런 특권을 누려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TST는 악마 바포멧(Baphomet)을 기리는 상을 만들어서 이것도 같은 앞마당에 놓게 해 달라고 주 의회에 정식으로 건의한다.

그들의 진짜 목표는 물론 그 상을 거기에 놓는 게 아니라, 한 가지 종교(여기에선 기독교)만을 편애하는 기존 체제에 저항해서 다른 종교를 두루 포용하지 못하는 관례들을 없애고자 하는 거였다.

긴 투쟁 끝에 마침내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은 앞마당에서 제거했다(그 석판은 다른 기관에 대여해 줬다고).

 

오클라호마 주 의회 의사당 앞마당에 있던 십계명 석판

 

나도 처음엔 '미국에 사탄 숭배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하고 이 다큐를 보기 시작했고, 다큐 초반에 나오는, 정말 사탄 숭배자처럼 검은 망토를 쓰고 악마 뿔 같은 머리 장식을 한 루시엔의 모습에 약간 거부감을 느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큐가 진행될수록 이들은 그저 '악마의 탈을 쓴', 무신론적이고 평등주의적인 행동주의자라는 알게 됐다.

감독은 TST의 리더 격이라 할 수 있는, 각 지역의 교구를 이끌어나가는, 일종의 사제들을 인터뷰하는데 그 모습도 참 각양각색이다.

머리 염색도 화려하게 하고 고스(goth) 스타일인 사람도 있고, 그냥 동네 주민1처럼 평범하게 생긴 사람도 있으며, 뼛속까지 독실한 기독교인처럼 생긴 사람도 있다(실제로도 그랬는데 개종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다양성이 참 보기 좋았다.

그런 그들에게도 물론 공통점이 있었으니, 기존 종교의 편협함으로 인해 차별받거나 상처를 받았거나 평등주의, 정의를 위해 행동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

TST의 한 회원은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 준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 소풍으로 영화 <간디(Ghandi, 마하트마 간디의 삶을 다룬 영화)>를 보러 갔단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에서 역사 선생님이 말하기를, "간디는 그런 위대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 아니었기에 지옥에 갔어."

그 말을 듣고 그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고. "뭐? 그렇게 위대한 사람도 단순히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옥에 갔다고? 정말?"

내가 이 다큐에서 본 것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일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도대체 종교가 뭐길래 그렇게 사람을 편협하게 만드는 걸까?

어린아이가 받았을 충격이 정말 상상도 안 간다. 그게 애한테 할 말인지.

 

이 다큐 후반에도 나오는, TST가 아칸소 주의 리틀 록에 있는 주 의회 의사당 앞에 세운 바포멧 상

 

또 내가 좋아하는 일화 하나 더. TST에서 '방과후 사탄 클럽(After School Satan Club)'이라는 걸 만들었다.

기독교 단체가 운영하는 '복음 클럽(Good News Club)'의 패러디이기도 한 이것은 TST에서 제공하는 방과후 프로그램인데, '비판적 사고력'을 향상시키는 활동들을 제공한다고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이에 반대했고, '그런 거는 내 자식들 말고 네 자식들에나 가르쳐라' 같은 항의가 들어왔다.

루시엔 그리브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어떤 애가 그런 클럽에 가고 싶어 하겠어요?'라고 말하는데, 저라면 이렇게 말하겠어요. '제가 바로 그런 애였어요.'라고."

아, "제가 바로 그런 애였어요." 이 한마디만 들어도 딱 그림이 그려진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 기존 종교의 편협함, 차별주의, 불의 등을 경험하고 상처받은 아이... 나도 꽤 어린 나이에 교회라는 데 신물이 나서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기독교에 십계명이 있다면 TST에는 7개 교리가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모든 존재들에게 연민과 공감을 가지고 대할 것.

두 번째, 정의를 위한 노력은 계속 추구되어야 한다.

세 번째, 개인의 신체는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며 그 개인의 의지가 아닌 다른 것에 종속되지 않는다.

네 번째, 타인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신념은 과학적 이해에 부합해야 한다.

여섯 번째, 사람은 틀릴 수 있다. 실수를 한다면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곱 번째, 모든 교리는 행동과 사고의 고귀함을 일깨우기 위한 가이드에 불과하다. 

종교의 교리 치고 꽤 이성적이며 멋지지 않은가.

 

종교의 자유를 추구하는 TST 회원들의 집회 모습

 

다큐에 인용된 한 TV 쇼에서 한 패널이 묻는다. "그들이 정말 사탄을 신봉하는 자들이 아니고 무신론자라면, 왜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부르지 않는 겁니까?"

이 뒤에 따라나오는 한 인터뷰에서 TST의 회원이 대답한다. "왜냐하면, 무신론자들은 모임이 없거든요. 무신론자들은 그냥 개인이에요. 하지만 TST는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행동하죠." 정확한 워딩은 아닌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서도 해변 근처 고속도로에서 쓰레기를 줍는다든지, 생리 용품을 기부받아 쉼터에 전달한다든지, 헌혈을 촉구한다든지 하는 봉사활동을 한다.

진정으로 공공의 선을 위하는 종교가 그래야 하듯이.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종교의 진정한 의미, 공공선을 위한 행동주의의 중요성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좋은 다큐였다.

이 다큐를 볼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보시기를!

[영화 감상/영화 추천] Ophelia(오필리아, 2018) - 빈약한 상상력으로 <햄릿>을 다시 써 봤자...

 

 

감독: 클레어 맥카시(Claire McCarthy)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Hamlet)>의 가련한 여주인공이자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스(Sir John Everett Millais)의 명화 <오펠리아(Ophelia)>로도 잘 알려진 존재, 오필리아(데이지 리들리 분).

그녀가 남자들의 목소리에 가려 숨겨지고 왜곡되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필리아와 햄릿

 

리사 클라인(Lisa Klein)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그리고 당연히도 이 소설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오필리아의 이야기를 상상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존 에버렛 밀레이스의 명화 <오펠리아>(혹시 이게 뭔지 모르겠다 하시는 분은, 민음사 판본의 <햄릿> 책표지에 그려진 명화를 떠올리시라. 그게 이거다) 같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물에 빠졌는데도 아름답고 고운 처녀의 모습. 그러나 그녀는 사실 마음속에 불같은 열정이 가득한 여자였다, 라는 뭔가 예측 가능한 이야기.

나도 '다시 쓰기(rewriting)'라는 개념을 참 좋아하고 진 리스(Jean Rhys)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Wide Sargasso Sea)>도 진짜 감탄하면서 읽었는데(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이건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e)의 <제인 에어(Jane Eyre)>를, 다락방에 갇힌 광녀 버사 메이슨(Bertha Mason)의 입장에서 다시 쓰기 한 작품이다), 이건 글쎄, '영 아니올시다'이다.

남자들에게 가려진 여성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그녀들이 다시 말하게 한다는 것은 너무나 멋지고 훌륭한 일이지만, 문제는 원작 소설 작가의 역량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

 

개인적으로 몇 가지 실망했던 점을 꼽자면, 등장인물들이 다 꽤 젊다. 오필리아야 여자니까 그렇다 치고(이 말은, 여자니까 어려야 한다는 게 아니고 기존 남성 작가가 이 여성 캐릭터를 젊고 아름답게 설정했다는 뜻이다. 오해 마시라), 햄릿 왕자는 한 서른 살쯤 될 거라 생각했는데, 햄릿 역할을 맡은 조지 맥케이(George MacKay, <1917(2019)>의 그 배우)가 그 나이로는 안 보여서 놀랐다.

게다가 선왕 햄릿(주인공 햄릿의 아버지)이며, 클로디어스(Claudius, 클라이브 오웬 분)며, 거트루드(Gertrude, 나오미 왓츠 분)까지, 뭔가 엄격함이랄지, 근엄함이랄지, 그런 게 부족해 보인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톰 펠튼(Tom Felton,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말포이 배우)이 여기에서 레어티즈(Laertes) 역을 맡았는데도 안 어울려 보이더라.

원작이야 워낙에 '정본(canon)'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니까, 연극이나 영화로 만든다면 위엄이 넘치는 비주얼들 위주로 캐스팅했을 거라는 걸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반면에 이건 오필리아 위주의 '다시 쓰기'여서 그런지, 그런 '후까시'를 일부러 빼고서, 대단해 보이지 않고, 위엄 없어 보이는 비주얼을 구축한 것도 알겠다.

그렇지만 거트루드가 한 나라의 왕비씩이나 되어서 궁정에서 시녀들(lady-in-waiting)을 따돌리고 혼자 눈물 짓다가 클로디어스에 키스당하는 장면이나, 역시 한 나라의 왕씩이나 되어서 오필리아를 죽이려고 직접 지하 감옥까지 내려오는 친절함을 발휘하는 클로디어스를 보면 얼척이 없는 것이다...

이 나라 왕족들 체통머리 다 어디 감??? 덴마크 이렇게 근본 없는 나라였냐?

 

위에서 말한 <오필리아> 그림이 이거다. 영화도 이것과 비슷하게, 물에 빠진 오필리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거트루드가 오필리아에게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야설에 가까운 소설을 읽게 시키는 것으로 자유로운 여성의 면모를 표현하는 것은 좋았으나, 그래도 거트루드를 여전히 남성들의 사랑에 목매는 존재로 그린 건 너무 깊이가 없다.

<햄릿>에서 중요한 인물이 거트루드이고, 햄릿도 몇 번씩이나 거트루드에게 정숙함, 정절을 강요하는 말을 하는데 이 '다시 쓰기' 버전에서 거트루드에게 적절한 서사를 주지 않았다? 그건 그냥 원작을 대충 읽은 거나 마찬가지고, '다시 썼다'고도 할 수가 없다. 

애초에 이걸 다시 쓰려고 한 목표가 오필리아라는 여성에게 목소리를 주고자 한 게 아니었나? 기본적으로 모든 억압된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게 아니었나 말이다.

그렇다면 왜 (오필리아의 서사도 대단할 거 없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거트루드는 그냥 원작과 별 다를 것 없이 내버려 뒀는지도 모르겠다.

하다 못해 거트루드가 권력을 숭상하는 여인이어서 '남편이 죽었으니 남편의 형제와 결혼해서라도 내 권력을 붙잡아야겠다' 하고 이글이글 야심에 넘치는 '레이디 맥베스' 뺨치는 강렬한 여인상이었다면 새로운 해석이 되었을 텐데.

이건 뭐, 오필리아 캐릭터도 딱히 강인하다거나 매력적이라는 느낌을 못 받았는데 거트루드 캐릭터는 식상하기 짝이 없다.

남편(선왕 햄릿)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젊음을 가져다주는 마법의 약을 사다 먹으면서(오필리아에게 이걸 가져오라고 시킨다) 사랑에 흔들리는(클로디어스의 구애에 흔들린다) 거트루드라니. 이건 너무나 기존 남성들의 시선에서 '쯔쯔, 정신머리 없고 정절도 없는 년' 하고 욕하기 딱 좋은, 전형적인 여성 혐오적 캐릭터 아닌가.

이걸 도대체 어떻게 '다시 쓰기'라고 만들어 놨는지 모르겠다. 그 '마법의 약'을 만들어 주는 게 거트루드의 또 다른 자매라는 설정은, 이 뒤에 이어지는 한심한 이야기 흐름을 위한 장치일 뿐이다.

이 부분을 스포일러하고 싶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얼척이 없어서.

내가 '사실 이건 이러이러한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해도 안 믿으실 듯.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구릴려고?' 하시지 않을까. 얼마나 구린지는 굳이 직접 확인 안 하셔도 되는데...

 

내가 상상한 것과의 나이 차이라든지, '후까시' 뺀 비주얼라든지, 다 좋다 이거다. 서사가 튼튼하면 장땡인데 이건 셰익스피어 얼굴에 먹칠을 했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애초에 그냥저냥 보통 작가도 아니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건들려면 엄청난 내공이 있어야 한다는 걸 몰랐던 걸까?

작품에 깊이가 없으면 하다 못해 <10 Things I Hate About You(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1999)>처럼 가벼워도 깜찍하게나 만들든가.

같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에서도 <리어 왕(King Lear)>을 재해석한 <A Thousand Acres>가 1992년 퓰리처 상을 받을 정도로 좋았다 카더라. 나도 이거나 찾아서 읽어 봐야지.

Stan.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우연히 찾게 되면 모를까, 돈 주고 굳이 사서 볼 정도로 대단한 상상력도 아니고 밑천도 별로 없다. 

나처럼 '다시 쓰기'와 페미니즘적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말이니 믿어 주시라. 그냥 다른 거 보세요...

[영화 감상/영화 추천] Jay and Silent Bob Reboot(제이 앤 사일런트 밥 리부트, 2019) - 팬들을 위한 메타 종합 선물 세트!

 

 

감독: 케빈 스미스(Kevin Smith)

 

제이(Jay, 제이슨 미웨스 분)와 사일런트 밥(Silent Bob, 케빈 스미스 분)이 샌드위치 가게로 위장해 운영하고 있던 대마초 판매점 '콕 스모커(Cock Smoker)'가 경찰에게 포위되고, 두 주범은 체포되는 일이 일어난다.

그들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저스틴 롱 분)는 자기만 믿으라며 이 문서에 사인하라고 한다. 사일런트 밥이 문서를 읽어 보려 하자 '그런 걸 왜 읽어 보냐'라며 면박을 주는 제이. 그리고 둘은 아무 생각 없이 문서에 사인한다.

이윽고 열린 재판에서 그들은 대마초를 키우고 판매했다는 혐의를 벗어나나 했더니, 곧바로 열린 두 번째 재판에서 '영화사가 당신들(제이와 사일런트 밥)의 이름에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니 앞으로는 그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라는 판결을 받는다.

조금 전에 두 사람이 사인했던 그 문서가 자신들의 발목을 잡게 된 것. 이에 분통 터진 제이와 사일런트 밥은 이 영화사에 복수하기로 한다.

그런데 어떻게? 곧 인기 영화 <블런트맨 V 크로니클(Bluntman V Chronicle)>의 리부트 버전을 이 시리즈의 팬들을 위한 코믹콘('크로니콘'이라고 불린다)에서 일부 촬영할 예정인데, 이 장면이 너무너무 중요해서 이거 없이는 개봉을 못할 정도란다.

그러니까 이 장면을 촬영하는 걸 저지해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망치는 리부트도 막고, 영화사에 복수도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할리우드를 향해 떠나게 된 제이와 사일런트 밥. 그들의 복수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팬들을 위한 리부트답게 '아스큐 유니버스'에서 열연하셨던 제이슨 리 배우를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너무 반가워서 짤 첨부 ㅋㅋㅋㅋ
자신들을 크로니콘이 열리는 할리우드에 데려다주지 않겠다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밀리(왼쪽)와 소파피야(오른쪽)
두 소녀들에게 협박받아 놀란 사일런트 밥(왼쪽)과 제이(오른쪽)

 

오랜만에'아스큐 유니버스(Askew Universe, 케빈 스미스 감독 영화들 중 제이와 사일런트 밥이 출연하는 영화 시리즈를 가리키는 말)'를 잇는 영화가 나왔다! 제목부터 무려 <제이 앤 사일런트 밥 리부트>!

이건 요즘 할리우드에 부는 '리메이크(리부트, 속편)' 바람을 비꼬는 동시에 한동안 뜸했던 '아스큐 유니버스'를 이어가는 작품이다.

일단 간단히 한 줄 평을 남기자면, "팬들을 위한 메타 종합 선물 세트!"라 하겠다. 

왜냐하면 이 영화엔 메타가 너무 많아서 이 '아스큐 유니버스'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이 봤다간 '도대체 이게 뭔 개소리야?' 할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아스큐 유니버스'에 속하는 영화들에 대한 언급(예를 들어, '신(God)'이 놀랄 만큼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을 닮았다는 언급이라든지; 케빈 스미스 감독의 전작 <Dogma(도그마, 1999>에 앨라니스 모리셋이 '신' 역할로 등장했던 것을 가리킴)이라든지, 배우들에 대한 언급이라든지(케빈 스미스 감독의 딸이자 이 영화에서 '제이' 캐릭터의 딸을 연기한 할리 퀸 스미스가 "케빈 스미스 완전 싫어!"라고 패륜 드립을 날리는 거라든지), 배우들이 출연한 다른 영화에 대한 언급(맷 데이먼이 대사에 교묘하게 '본 아이덴티티' 같은, 자신이 등장한 다른 영화 제목을 끼워 넣는 거라든지) 등등. 

이건 팬이 아니면, 그리고 현재 영화계도 어느 정도 알지 못하면 한 귀로 들어가서 한 귀로 빠져나올 허무한 드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애초에 팬이 아니면 이 영화를 보는 걸 권해 드리지 않으련다. 차라리 위에서 언급한 <도그마>나 <Chasing Amy(체이싱 에이미, 1997)>, <Jersy Girl(저지 걸, 2004)> 같은 건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을 무시하고 그냥 그 작품만 놓고 봐도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등등 완결성이 있는데, 이 <리부트>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팬이라면 정말 기쁘게, 재미있게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조이 로렌 아담스(Joey Lauren Adams), 벤 애플렉(Ben Affleck), 제이슨 빅스(Jason Biggs), 제이슨 리(Jason Lee) 등등, '아스큐 유니버스'에 속하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과 케빈 스미스 감독의 TV 시리즈인 <코믹 북 맨(Comic Book Man)> 패널들의 최근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팬들에게는 좋은 기회 아니겠는가!

나는 <체이싱 에이미>를 너무너무 좋아했던 터라, 조이 로렌 아담스를 여기서나마 짧게 본 게 너무너무 반가웠다 ㅎㅎㅎ

 

이 영화는 처음에 '리메이크/리부트/속편은 내가 그걸 보러 갈 만큼의 원작의 이름과 요소를 적당히 가져다가 '젊음(youth)'과 '다양성(diversity)'을 끼얹어서 망쳐 놓는 것'이라는 대사로 이 '리메이크' 광풍을 까는가, 그리고 동시에 그에 무임승차 하려는 듯한 이 영화의 모양새를 자조적으로 비웃나 싶더니, 이제는 '아빠'가 된, <체이싱 에이미>의 벤 애플렉의 캐릭터(홀든 맥닐)의 입을 통해 새로운 정의를 제시한다.

'우리 자녀들이야말로 우리의 리메이크/리부트이고, 우리 원작보다 훨씬 더 나은 버전이다'라고.

이 말은 꽤 울림을 주는데, 영화 속에서 제이가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자기의 딸(<Jay and Silent Bob Strikes Back(제이 앤 사일런트 밥, 2001)>에서 만난 '저스티스(Justice, 섀넌 엘리자베스 분)'의 사이에서 난 딸)을 만나 그녀를 조금씩 알아가는 게 이 이야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금 언급했듯, '젊음'과 '다양성'도 물론 여기에 끼얹어져 있는데, '밀레니엄 팔콘'이라는 스타 워즈 팬스러운 이름의 딸(역시 앞에서 언급했듯, 케빈 스미스 감독의 딸인 할리 퀸 스미스가 연기했다)이라든지, 흑인인 데다가 청각 장애가 있어 수화로 의사소통하는 '소파피야(Sopapilla, 트레셸 에드먼드 분), '지하드('성전(聖戰)'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가진, 히잡을 쓴 이슬람계 소녀(아파르나 브리엘 분), 그리고 중국에서 온 샨유(Shan Yu, 앨리스 웬 분)까지, 정말 '젊고' '다양'하다.

이쯤 되면 띨띨한(...) 두 백인 남성을 전면에 세운 영화에 이런 캐릭터들을 넣고 싶었는데 리부트를 핑계 삼아 마음껏 넣은 게 아닌가 싶다.

나야 뭐, 이 다양성을 담당하는 소녀들이 개성도 있고 또 나름대로 이야기에 재미를 부여해서 괜찮게 봤다.

 

영화 내에서도 살짝 농담하듯이, 케빈 스미스 감독은 심장 마비가 와서 거의 죽을 뻔한 때에 이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요가 호저스(Yoga Hosers, 2016)>가 자신의 마지막 영화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던 데다가(이 영화는 현재 imdb에서 4.3점이라는 극악의 별점을 기록하고 있다), '제이' 캐릭터 역의 배우 제이슨 미웨스(네이버 영화 정보에 이렇게 쓰여 있는데 '뮤위스' 정도가 더 가까운 발음 아닌가 싶긴 하다)와 즐겁게 작업하고 싶어 했단다(원체 그 배우가 알코올과 마약 문제로 같이 작업하기 어려웠던 터라).

그래서 이 영화는 스미스 감독이 심장 마비를 경험한 지 1년 되는 날에 촬영에 들어갔다고.

아, 원래는 스탠 리(Stan Lee) 옹을 모셔다가 스탠 리 옹 위주로 영화를 만들려고 기획했는데, 안타깝게도 스탠 리 옹이 돌아가셔서 현재 영화대로 스미스 감독 본인이 '감독'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 끝난 후에도 스탠 리 옹과의 짧은 클립에다가 영화 B컷이 크레디트 올라가는 동안 계속 나오니까 꼭 끝까지 보시라!

어차피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상영할 일은 없을 것 같고(극마이너의 슬픔...) 기껏해야 IPTV 같은 데서 다운로드 받아 보거나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보실 테니 크레디트까지 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테지만.

어쨌거나, 제이와 사일런트 밥 팬들이라면 꼭 보시라!! 그 미친 메타의 홍수에 빠져 보시기를 ㅎㅎㅎ

 

P.S.: 위 짤처럼 크리스 헴스워스(Christ Hemsworth)가 크로니콘의 홀로그램 역으로 등장하는데 이것도 너무 웃기고 귀엽다 ㅋㅋㅋㅋ

제발 자기 홀로그램에 대고 엄한 짓 좀 하지 말라고 함ㅋㅋㅋㅋㅋㅋ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Farewell(페어웰, 2019) - 할머니를 위한 모두의 거짓말

 

 

감독: 룰루 왕(Lulu Wang)

 

빌리(Billi, 아콰피나 분)는 6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중국계 미국인이다.

어릴 때는 피아노도 좀 쳤는데 지금은 친구네 어머니에게 세를 얻어서 살면서 일자리가 없어 렌트도 못 내고 있다.

그래도 중국에 계신 할머니 나이 나이(Nai Nai, 슈젠 자오 분)를 사랑하는 마음은 끔찍해서 할머니와 전화 통화를 자주 하는데, 어느 날 할머니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그리고 부모님도 최근 표정이 어두운 것이 뭔가 문제가 있는가 싶다. 

알아 보니, 할머니는 최근에 폐암 4기 판정을 받으셔서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빌리의 친척인 하오하오(Hao Hao, 한 첸 분)가 사귀기 시작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일본인 여자 친구랑 급히 결혼식을 올린다고. 당장 내일 부모님은 출국에 결혼식에 참석 겸 할머니를 뵙고 올 거란다.

그걸 이제야 말씀하시면 어떡하느냐고 빌리가 부모님에게 따지자 부모님은 '너는 원체 감정적인 데다가 표정 관리가 안 되어서 일부러 말 안 했다. 할머니도 당신 사실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모르시는 게 마음도 편하고 좋을 것'이라고 대답하신다.

결국 빌리의 부모님은 홀로 미국에 남은 빌리. 얼마간 친구도 만나고 뉴욕 거리도 거닐어 보지만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결국 빌리는 어찌저찌 비행기표를 사서 그리운 할머니에게도 찾아간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손녀딸을 반겨 주시지만, 빌리는 정말 할머니에게 진실을 알려드리지 않는 게 옳은 일인지 내내 갈등한다.

 

할머니(가운데 왼쪽)에게 기대어 고민하는 빌리(가운데 오른쪽)
할머니에게 진실을 말씀드려야 할지를 두고 의견이 달라 갈등을 겪는 딸과 아버지
전투적으로 걷는 빌리네 가족(가운데 빌리, 사진 맨 왼쪽은 빌리의 큰아버지, 파란 드레스 여인이 하오하오의 여자 친구이자 아내 아이코, 아이코가 팔짱을 낀 남자가 하오하오. 하오하오와 빌리 사이 뒤의 중년 남성이 빌리의 아버지. 사진 맨 오른쪽 여인이 빌리의 어머니, 빌리의 어머니 왼쪽에 있는 흰 머리 할머니가 나이 나이 할머니의 여동생이자 빌리의 작은할머니.

 

감독 룰루 왕네 가족에게 일어났던 실제 일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영화 시작할 때 "Based on an actual lie(실제로 일어났던 거짓말에 기반하였음)"라는 자막이 뜬다. 

정말로 룰루 왕네 가족이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할머니께 이 사실을 숨겼는데, 이 감독이 이 일화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어서 영화 제작 과정에서도 그걸 숨기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고 한다(결국에는 실화의 주인공 할머니의 친구 되시는 분이 영화 리뷰를 보고 이야기를 꺼내서 할머니도 마침내 알게 되셨다고).

 

살면서 한 번쯤 접하거나 최소한 상상을 해 볼 만한 주제를 다루는 영화라서 흥미로웠다. 물론 이 주제에 대해 동서양의 대체적인 입장이 다르다는 것도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이 앞으로 곧 죽을 거라면, 그리고 내가 그걸 알고 있다면, 본인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할까?

죽기 전 삶을 마무리할 시간이라는 게 정말로 필요할까? 아니면 차라리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도 모르는 게 나을까?

사실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데 그렇지 않은 것처럼 하루를 살아가지 않나. 삶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건 정말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나 그들 주변의 사람들뿐.

하지만 사람 목숨이라는 게, 오늘 너무나 건강해도 내일 갑자기 사고에 연루되어 죽을 수도 있는 것인데...

진부한 말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정말로 매일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겠다고 느꼈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우리가 삶에 부여하는 이런저런 조건들, 예컨대 행복하려면 돈이 많아야 해, 전셋집에 살면 행복할 수 없어, 애인이 없으면 불행한 거야, 같은 조건들을 떨쳐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말 죽음이 눈앞에 있다면 그런 것들은 너무나 미미해 보일 테니.

 

나는 아콰피나를 <Crazy Rich Asians(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2018)이랑 <Ocean's 8(오션스8, 2018)>을 통해 처음 만나서 코믹한 배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보니 진지한 정극 연기도 괜찮았다(내가 남의 연기를 판단할 수준은 아니지만).

아콰피나 본인의 중국어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극 중에서는 이민 2세답게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완벽하게 하지는 못하고(일부 표현을 중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부모님께 물어보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또한 아예 한자는 못 읽는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해 혼란스러움이 가중되기도 한다(할머니의 진단서가 나왔는데 못 읽는다든가, 할머니랑 통화할 때 나오는 병원 방송을 못 알아듣는다든가).

이러한 점이 동서양의 문화 차이에서 가운데 끼어 있는 이민 2세의 처지를 잘 보여 주기도 하고.

 

나는 특히 할머니가 빌리네 가족을 공항으로 떠나 보낼 때 빌리를 살짝 밀면서 빨리 가라고, 이 슬픔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만들지 말라고 하는 부분이 제일 뭉클했다. 손녀가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워 계속 같이 있고 싶지만 계속 붙잡을 수는 없고...

이건 삶에 치환해서 읽어도 마찬가지다. 할머니가 손녀를 아무리 사랑해도 평생 함께할 정도로 오래 살 수는 없으니까.

 

오버스러운 면이 없어 공감하고 감동받을 수 있는 좋은 영화였다. 굿!

[영화 감상/영화 추천] Old Boys(올드 보이즈, 2018) -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현대 소년 버전

 

 

감독: 토비 맥도널드(Toby MacDoland)

 

우리의 주인공 앰버슨(Amberson, 알렉스 로더 분)은 칼더마운트(Caldermount)라는, 소년들을 위한 명문 사립 학교에서 아침마다 물벼락 세례를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학교 생활을 하는 소심한 소년이다.

어느 날, 그는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물벼락 세례에 쓰일 물을 떠서 (다른 학생들이 시켰다) 돌아가는 길에 넘어지고, 한 소녀를 만난다. 

만나자마자 처음 하는 말이 프랑스어를 내뱉는데, 일단 예쁘다. 이름은 아녜스(Agnes, 폴린 에티엔 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느낌!

앰버슨은 소녀가 근처로 이사 왔구나 싶어 종이 상자를 옮겨 주려다가 다시 넘어지고 만다. 그 안에 든 건 책 한 무더기.

그런데 갑자기 무척 성난 것 같은 프랑스 남자가 나타나더니 그 소녀에게 무어라고 계속 이야기한다. 대략 소녀의 아버지인 모양.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당당한 풍채의 남자는 새로 온 프랑스어 선생님이었다. 이름하여 바비노(Babinot, 드니 메노셰 분) 선생님.

첫 수업 때 바비노 선생님이 학생들을 랜덤으로 한 명씩 지목해 지난번 선생님께 배운 내용을 읊어 보라고 시키고 있는데, 선생님의 딸 아녜스가 뭘 가져다주러 왔다.

마침 이때 암기 순서는 학교에서 거의 왕처럼 군림하는, 같은 남자들도 인정하는 초인싸 훈남, 윈체스터(Winchester, 조나 하우어-킹 분)다.

윈체스터가 암기해야 할 내용을 떠올리지 못해 버벅거리는 걸 앰버슨이 뒤에서 살짝 알려 줘 다행히 자연스럽게 (그리고 능청스럽게) 암송 시작.

아녜스는 윈체스터가 너무나 멋지게 프랑스어로 시를 암송하는 순간을 감상하고,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얼마 후, 아녜스가 전화로 앰버슨을 따로 불러내더니 윈체스터에게 이걸 전해 달라며 작은 소포를 건넨다. 

'왜 내가 이걸 윈체스터에게...?'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윈체스터에게 소포를 가져다준다. 윈체스터가 뜯어 보니 그건 비디오 테이프였고, "나 원래 이런 여자 아닌데, 너는 좀 달라 보여"라는 메시지를 담은, 다소 도발적인 아녜스의 메시지가 다소 예술적인 영상이 녹화돼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에 뒤지지 않을, '예술적인' 영상을 찍어서 아녜스에게 답장을 한단 말인가? 윈체스터는 솔직히 잘생기긴 했지만 예술적인 타입과는 거리가 멀고, 아주 똑똑한 편도 아니다.

윈체스터가 말주변이 없다는 걸 알게 된 후, 보다못한 앰버슨은 윈체스터를 도와주기로 하는데... 앰버슨은 과연 다른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와 잘되도록 도와주는 큐피드 역할에 만족할 것인가?

 

중간에서 살짝 오른쪽에, 안경 쓰고 두 팔을 위로 쭉 뻗고 있는 게 우리의 주인공 앰버슨.
윈체스터 (왼쪽) 대신 아녜스의 전화를 받아 멋있게 대답해 주는 앰버슨 (오른쪽)
이 영화는 스틸 컷도 많이 없어서 아녜스 사진도 정말 어렵게 구함...
그래도 영화 쓰리탑 중 한 명인데 얼굴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어 열심히 찾은 윈체스터 사진. 

 

프랑스 작가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의 유명한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 이하 시라노)>를 기초로 하여, 현대를 배경으로 다시 쓴 영화.

원작 <시라노>의 큰 틀대로, 체구도 작고 소심하지만 예술적 감성을 가진 앰버슨이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미남이지만 똑똑하지는 못한 윈체스터가 예쁜 아녜스와 잘되도록 도와준다는 게 큰 플롯이다.

 

<시라노>는 워낙에 인기가 많은 작품이라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졌고, 현대식으로 각색한 버전도 여럿 있다. 나도 스티브 마틴(Steve Martin)이 시라노 역할(극중 이름은 찰리)을 맡은 <Roxanne(록산느, 1987)>를 봤는데, 이것과 그걸 비교하자면, 음, 옛날 영화이긴 해도 <록산느>가 더 나은 것 같다.

<올드 보이즈>는 연기는 둘째치고, 대사가 별로다. '이런 멘트에 여자가 넘어간다고?' 싶은 멘트를 조언이랍시고 앰버슨이 윈체스터에게 해 주는데, 나라면 '뭐라는 거야, 이 자식이?' 했을 듯.

아녜스가 그 말에 넘어갔다면, 그건 전적으로 윈체스터 역의 배우 조나 하우어-킹이 잘생겨서 그런 게 아닐까.

 

이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자들만 자신의 외모를 의식하고 비관하는 줄 알았는데, 남자들도 그러는구나.'

보통 남자들은 여자들을 예쁜 여자 아니면 못생긴 여자로 구분하고 (실생활에서는 꼭 그렇지 않더라도) 미디어에서는 '못생겼는데 착하거나 똑똑하거나 해서 사랑받는' 여자의 모습은 거의 보여 주지 않는다. 예쁜데 착하거나 똑똑하기까지 한 여자는 있지만.

다시 말해 여자는 '예쁜' 게 기본 디폴트이고, 그렇지 않으면 여자 취급도 받지 못한다는 소리다.

반면에 남자는 아무리 (좋게 표현해서) 호감형 외모가 아니어도 능력이 있다든가, 성격이 좋다든가, 하여간 뭔가 하나 있으면 여자 하나는 꿰찰 수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심지어는 호감형 외모가 아니고 정말 쥐뿔도 가진 게 없는데 제작자(작가나 감독 등)의 욕망이 반영되어 예쁜 여자를 얻기도 한다(심지어 그 남자가 병X 짓을 해도 귀엽고 웃기다고 봐 주는 것으로 설정된 여자는... 이건 진짜 제작자들이 '현실'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표현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즉, 다시 말해, 남자들은 대개 외모가 어떻든 그것이 여자를 얻는 데 크게 걸림돌이 된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개인 한 명 한 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회는 그렇게 주장한다. 여자는 예뻐야 하지만 남자는 '반드시 잘생겨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시라노>의 틀이 되는 구도가 내게는 신선했다. 똑똑하고, 재치 있고, 알고 보면 나름대로 매력도 있지만 얼굴이 잘생기지 못해서(시라노의 경우 보기 흉할 정도로 큰 코라는 설정) 여자를 얻지 못하는 남자, 그리고 그 반면에 엄청 잘생겼지만 머리나 가슴 안에 든 게 없는, 속 빈 강정 같은 남자.

그걸 보고 '음, 남자들도 자신의 외모를 의식하고 잘생긴 남자에게 부러움 또는 박탈감 등을 느끼는구나' 싶었다.

보통 남자들은 워낙에 사회적으로 우쭈쭈를 받고 자라서 외모와 상관없이 자신감을 느끼고 여자 하나쯤 차지할 자격이 있다는 믿음을 마음속 깊이 품고 사는 줄 알았는데. 

그런 점에서 <시라노>는 내게 신선했다. '외모야 어떻든 내면이 중요한 거야!'라는, 다소 교과서적이고 뻔한 교훈은 별로였지만.

 

그런데 <올드 보이즈>는 원작만큼의 깊은 고뇌라든지, 시라노의 번득이는 재치라든지 하는 게 보이지 않는다.

후반에 앰버슨과 윈체스터가 서로를 '친구'로 생각하는 건 감동적이었지만, 그뿐이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더 말하지는 않겠지만 결말이 나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원래 영국 내셔널 시어터(National Theatre)에서 하는, 제임스 맥어보이가 시라노 역을 맡은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보려고 했는데 이 코비드-19 사태로 영화관을 갈 수가 없어서 취소돼 버려 이 아쉬운 마음을 이 영화(어쨌든 큰 틀은 <시라노>니까)로 달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나도 제임스 맥어보이가 나오는 <시라노>를 보고 싶다... 😭물론 그 잘생긴 얼굴로 '못생긴 시라노' 연기하는 것도 설득력은 없겠지만.

어쨌든 <올드 보이즈>는, 앰버슨 말대로, '바지 입은 래브라도 강아지' 같은 윈체스터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시기를.

아니면 원작 <시라노>의 큰 팬이어서 그와 관련된 작품이라면 뭐든 섭렵하고 싶은 분들, 또는 넷플릭스 시리즈 <The End of the F***ing World(빌어먹을 세상 따위)>에서 알렉스 로터는 귀엽게 보신 분들. 영화 속에선 안경 때문에 더 찌질하게 보이는데 사실 안경을 벗으면 이 친구도 귀엽고 준수하게 생기긴 했다.

  1. 알덕후 2020.06.05 13:25

    이 영화 어디사 보셨나요?? 알렉스 좋아서 나온 영화 찾아보구 그러는데 없어서여ㅠㅠㅠㅠ 알려주실수있나요??ㅠㅡㅜ 부탁드려요ㅠㅠㅜ!!!

[영화 감상/영화 추천] Good Boys(굿 보이즈, 2019) - 애들은 가라! 어른이들을 위한 폭소 만발 영화!

 

 

감독: 진 스툽니스키(Gene Stupnitsky)

맥스(Max, 제이콥 트렘블레이 분)는 이제 6학년에 올라갔다. 가장 친한 친구 둘, 루카스(Lucas, 키이스 L. 윌리엄스 분)와 토르(Thor, 브래디 눈 분)와 함께 '빈 백 보이즈(Bean Bag Boys)'를 결성해 탄탄한 우정을 쌓아 가는 중.

이 '빈 백 보이즈'를 잠시 소개하자면, 맥스의 최대 관심사는 브릭슬리(Brixlee, 밀리 데이비스 분)라는 여자애. 열렬히 짝사랑 중이고 미술 시간에 그 애에게 주려고 목걸이도 만들었는데 현실은 아이 컨택트도 부끄러워서 못 하고 있다. 그래도 세 친구들 중 유일하게 이성에 눈을 뜬 편.

루카스는 모범생에 가까운 편으로, 예컨대 CPR 인형에 대고 뽀뽀 연습을 해 보기 전에도 '그 전에, (인형의) 동의는 얻었어? 그렇지 않으면 성추행이 된다고!'라고 말하는 그런 애다. 부모님이 이혼하게 되어서 무척 마음 아파하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으려 한다.

토르는 거칠고 터프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상남자'를 꿈꾸는 소년이다.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교내 뮤지컬 <락 오브 에이지(Rock of Ages)> 오디션에 참여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쿨하지' 않아 보일까 두려워한다. 

그런데 어느 날, 맥스가 학교 최고 '쿨한' 애인 소렌(Soren, 아이작 왕 분)에게 '키스 파티'에 초대받는다. 그 파티에 브릭슬리도 올 거라고 해서 더욱 흥분한 맥스는 두 친구와 함께 '도대체 어떻게 하면 키스를 하는 건지' 배우려고 인터넷 검색도 해 보지만 무소용.

그런데 토르가, 이웃에 사는 한 고등학생 누나를 염탐해 보자고 제안한다. 그 누나의 이름은 해나(Hannah, 몰리 고든 분)인데, 친한 친구 릴리(Lily, 미도리 프랜시스 분)와 수영장에서 이야기하다, 남자 친구와 싸우고 헤어진다.

남자 친구가 떠난 후, 릴리가 해나를 위로하려 포옹하자 이 둘이 키스할 거라고 생각한 세 소년은 맥스의 아버지가 출장을 가기 전 절대로 갖고 놀지 말라며 엄포를 놓은 드론을 떠올린다. 그리고 드론을 가져와 담장을 넘어 해나 누나네 수영장 쪽으로 띄웠는데 아뿔싸! 드론이 떨어져 버렸다! 

이거 잃어버리면 아빠에게 엄청 혼날 텐데! 이 드론을 되찾으려면 누나들에게 가서 돌려 달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누나들 뽀뽀하는 걸 염탐하려고 했다는 걸 들키면 어떡하지!? 

 

왼쪽부터 루카스, 가운데가 맥스, 오른쪽이 토르. (루카스 티셔츠 졸귘ㅋㅋㅋㅋㅋ)
이렇게 빈 백을 깔고 앉아 놀아서 '빈 백 보이즈'라는 멋진(?) 팀명이 탄생했다.
음, 네, 뭐... CPR 인형이라고 해 둡시다. ((빈 백 보이즈))는 소중하니까...

 

 

제목이 <굿 보이즈>인 데다가 포스터 속 애들이 너무 무해해 보여서 '아, 애들이 나오는 되게 귀여운 영화인가 보다 ㅎㅎ' 하고 틀었는데, 웬걸...

아니, 애들이 귀엽긴 한데, 이건... 예상 밖이었다. 너무너무 웃기고 재미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겠다. 이건 절대로 가슴 따뜻해지는 아이들용 영화가 아니다! 이건 솔직히 내가 보면서 '저 애들... 대본 사기를 당한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주 100% 성인용 영화다.

그렇다고 해서 잔인한 게 나온다거나, 야한 장면이 나온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영화의 웃음 포인트가 다음 두 가지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1. 아이들이 어른들 하는 것을 따라 하며 쿨해 보이려 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는 아이라서, 어떤 것들에는 전혀 무지하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첫 번째, 아이들이 어른들 뺨치게 욕을 많이 한다든가, 애들이 몰래 구한 맥주를 한두 모금 마시면서 엄청 '터프 가이'인 척하는 데서 웃음이 나온다는 거다.

맥스가 브릭슬리와 키스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모험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자, 모험에 지친 토르가 '그깟 년(skank) 하나 때문에 그래?'라고 말하고 이에 맥스가 분노하는 장면은, 분명 다 큰 남자 어른들이 할 만한 말싸움을 따라 하는 거라 웃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어른 세대가 여성을 하찮게 보고 그렇게 대하는 것을 벌써 이 어린애들에게 가르쳤구나' 싶어서 착잡해지기도 한다. 일종의 거울이 되어 준달까.

그리고 두 번째, 이게 진짜 이 영화가 아이들 영화일 수 없는 이유다. 아이들이 아무리 어른들을 따라 쿨해 보이려 해도 성적인 면에는 아직 무지하기에, 본의 아니게 어른들에게 웃음과 민망함을 둘 다 선사한다.

예를 들어, 토르의 부모님이 가지고 계신 'CPR 인형'은, 세 소년들 중 아무도 'CPR 연습용'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지만, 성인이 보기엔 누가 봐도 너무나 리얼 돌인 것...

토르네 부모님 취향이 상당히 의심되는 대목인데, 어째서인지 토르네 집에 SM 플레이용 도구(라텍스 가면, 채찍, 애널 비즈 등)가 있어서 세 아이들이 낯선 남자(루카스가 가진, D&D 또는 유희왕스러운 카드를 팔려고 매물로 올려 놨더니 구매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를 집에 들이기 전, 나름대로 '무기'랍시고 챙긴 게 이거. 이걸 보면서 웃는 동시에 제발 애들이 적어도 촬영 당시엔 저게 뭔지 몰랐기를 바랐다. 

음, 그래, 얘들아. 한 10년쯤 더 지난 후에 커서 알아차리게 되는 게 정신 건강에 나을 것 같구나... 어른들이 이런 거 시켜서 미안해... 근데 너무 웃겼어ㅠㅠㅠ

그리고 애초에 고작 중학생(미국 학년제 기준) 데리고 뮤지컬 <락 오브 에이지>를 프로덕션 한다는 게 말이 되냨ㅋㅋㅋ 섹스, 로큰롤, 마약 이런 이야기인뎈ㅋㅋㅋㅋㅋ 뮤지컬 지도 교사 미쳤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 후반에 나오는 장면인데 너무 깜찍하게 웃기니까 꼭 보시길!)

 

이제 왜 이게 애들 영화가 아닌지 아시리라 믿는다. 애들을 데리고 만든 영화인데 전체 관람가가 아니고 15세 이상 관람가라니... 그나마 19금이 아닌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어쨌거나, 아이들이 해맑게 성인용품을 가지고 노는 것에 대해 별 거부감이 없고 그냥 웃기다고 생각하는 분이면 이걸 추천한다. 정말 배꼽 빠지게 웃을 수 있다.

하지만 '아니, 이건 아동 학대 아니얏!?'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음, 당신은 루카스 같은 타입이군요. 루카스와 함께 'S.C.A.B.(Student Coalition Against Bullying, 괴롭힘에 맞서는 학생 연합)'에 참여하셔서 많은 꿈나무들을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이건 영화를 봐야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도 루카스가 최애니 오해는 마시길. 애가 너무 착하고 반듯한데 그게 상황이랑 안 어울리니까 더욱 웃기고 짠하다.

어쨌거나 15세 이상이라면 웬만큼 알 건 다 아니까 이것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 아이들을 보며 귀여움과 재미를 동시에 느끼고 싶다면 강력 추천!!

 

+ 트리비아 하나. 영화에서 루카스의 카드를 사러 온 구매자 '클로드(Claude)' 역은 영국 코미디언 스티븐 머천트가 맡았다.

+ 트리비아 둘. 루카스의 어머니 역할은 미드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Parks and Recreation)>의 '도나(Donna)' 역을 맡았던 레타(Retta)이다.

+ 트리비아 셋. 영화 제목은 마틴 로렌스와 윌 스미스가 나오는 <나쁜 녀석들(Bad Boys, 1995)> 시리즈의 패러디로 추정.

+ 트리비아 넷. 각본 작업에 코미디언 세스 로건이 참여했다.

[영화 감상/추천] Empire Records(엠파이어 레코드, 1995) - 우리 엠파이어 레코드를 구하자!

 

감독: 알란 모일(Allan Moyle)

 

자정까지 영업하는 레코드(와 CD) 가게, '엠파이어 레코드'의 야간 매니저인 루카스(Lucas, 로리 코크레인 분)는 점장인 조(Joe, 안소니 라파글리아 분)의 책상을 뒤지다가, 엠파이어 레코드의 경영이 부진해 곧 레코드사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뮤직 타운(Music Town)'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엠파이어 레코드 경영에 도움이 되고자 루카스가 선택한 방법은, 그날 매출인 9천 달러를 가지고 라스 베이거스로 가는 것.

그곳에 있는 카지노에서 9천 달러를 밑천 삼아 대박을 터뜨리고 돈을 불려 돌아와 엠파이어 레코드를 살린다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루카스는 다른 사람들 도박에 훈수는 참 잘 두는데(한 블랙잭 게임에선 어떤 숫자가 나올지 예측하기까지 한다) 실제로는 결과가 형편없다.

어쩌다 보니 첫 판은 좋아서 돈을 크게 땄는데, 바로 그다음 판에 전부 다 잃었다. 아뿔싸, 어떡하지? 엠파이어 레코드 매출을 훔쳐 와서 도박을 한 건데...

다음 날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 점장이 출근하고 이를 알게 되면 어떡하지? 엠파이어 레코드는 이제 망하는 걸까?

 

엠파이어 레코드에서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을 그린 유쾌한 코미디 영화.

이 영화의 매력은 등장인물들 하나하나가 다 매력적이라는 거다.

사진 왼쪽, 스티브 잡스 뺨치는 검은 터틀넥을 입은 게 루카스.

일단 영화 처음에 만나게 되는 루카스는 '더 도어스(The Doors)' 같은 밴드의 노래 가사를 인용하기를 좋아하는, 다소 현학적이고 청산유수인 캐릭터이다.

처음에는 '뭐야, 돈 불리려고 가져갔다가 망해서 돈 다 잃었잖아! 돈 날린 주제에 나불나불 말은 잘해요' 하는 마음으로 좀 미워했는데 보다 보니 본성은 착한 애라는 걸 알게 되어 좋아하게 됐다. 

A.J.(조니 휘트워스 분)와 마크(Mark, 에단 엠브리 분)는 다음 날 루카스가 "너희들을 알게 되어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는 걸 알아 둬."라는 말을 남기는 걸 마지막으로 볼 뻔한(어차피 루카스가 다시 돌아온다) 아르바이트생이다. 얘들이 제일 먼저 출근했거든.

얘가 마크. 이 짤은 마리화나가 들어간 브라우니를 먹으면서 TV로 메탈 밴드 콘서트 장면을 보다가 환각을 보는 장면이다.

마크는 백치미가 매력인 아르바이트생이다. 애가 나쁜 건 아닌데 약간 어리바리하고 눈웃음이 참 예쁘다.

A.J.

A.J.는 미술적 감각이 풍부한 청년으로, 예쁜 아르바이트생 코리(Corey, 리브 타일러 분)를 짝사랑하고 있다. 오늘은 꼭, 점심 전까지, 1시까지, 아니, 꼭 1시 37분 전까지는 고백하리라고 다짐한다.

또한 AJ는 고운 마음씨의 소유자인데, 단발로 출근해 화장실에서 머리를 밀고 나온 데브라(Debra, 로빈 튜니 분)의 손목에 붕대가 감겨져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먼저 눈치채고 무슨 일 있는 거냐고 물어본다(데브라는 전날 밤에 자살 시도를 했다고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이때 다른 애들은 '너 화장실 들어가기 전까지는 머리카락이 있었던 것 맞지?' 하고 확인하거나 '역시 정신이 좀 불안정한 애인가 봐' 하고 수근거리는 게 전부인데 말이다.A.J.가 코리를 좋아하긴 해도 친구인 데브라를 걱정해 주는 모습이 참 좋았다.

오른쪽 반삭발 머리가 데브라. 반항적이고 머리가 살짝 돈 애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에 깊은 슬픔이 있는 아이다.

데브라도 처음 봤을 땐 '뭐야, 왜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갑자기 원빈의 <아저씨>마냥 삭발을 해?' 하고 그저 이상한 애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마음이 참 깊고 착한 애더라.

대존예 코리...

코리는(무려 리브 타일러!) 지나(Gina, 르네 젤위거 분)와 같이 이곳에서 일하는 여학생으로, 하버드에 갈 거라는 아버지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어 부담스러워하는 우등생이다.

A.J.의 짝사랑 상대이기도 한 코리는 오늘 이 엠파이어 레코드에서 열리는 '렉스 매닝(Rex Manning)의 날(한물간 가수 렉스 매닝이 엠파이어 레코드에 사인회 하러 오는 날)'에, 렉스 매닝에게 자기의 '처음'을 주기로 결심했다.

가운데에서 앞치마만 입고 있는 게 지나. 이 짤로 지나의 성격 설명을 대신한다.

지나는 코리와 정반대다. 우등생도 아니고 청순 콘셉트도 아니랄까. 대신에 섹시 스타일이라고만 해 두겠다. 

 

나는 코리와 지나가 처음엔 친구이다가 나중에 싸우고 화해하며, 또 코리와 데브라가 서로 사이가 안 좋다가 모종의 이유로 친해지는 흐름이 너무 좋았다.

코리와 지나는 반대이지만 서로 없이는 못 사는 절친이라는 것도 흥미로웠고, 코리와 데브라도 처음엔 서로를 이해 못 하다가 나중에 서로를 위하는 행동을 해 준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루카스가 9천 달러를 가져가서 날려 먹었다는 사실을 점장인 조가 알게 되었을 때 루카스가 얼마나 차분하게 자기가 잘못한 걸 인정하는지 정말 직접 봐야 한다.

루카스는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싶게 얄미우면서도 절대 싫어할 수 없는 매력을 뿜어낸다.

근데 내가 그때 조 입장이었으면 뒷목 잡고 쓰러졌을 듯. 게다가 일이 진행되는 꼴을 보면 이 영화는 제목을 <엠파이어 레코드>가 아니라 <점장 조의 험난한 하루> 뭐 이 정도로 지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르바이트생들 때문에 아저씨 늙겠다...

어떤 서사든 갈등이 서사의 재미를 더하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뭐.

 

사실, 위에서 소개한 아르바이트생들이 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다. 이 영화를 더 골 때리게 웃기게 만드는 약방의 감초 같은 조연이 있다.

코리 소개할 때 언급한 렉스 매닝이 나오는 부분도 웃기고, 엠파이어 레코드 직원도 아니면서 계속 직원들 공간에 들락날락하는 에디(Eddie, 제임스 '키모' 윌스 분)도 웃기다. 

A.J. 옆(사진 오른쪽) 반항적인 표정의 이 청소년이 워렌이다.

그 조연들 중 워렌(Warren, 브렌단 섹스톤 분)은 이 레코드 가게에 CD를 훔치러 왔다가 루카스에게 바로 붙잡힌 현행범인데, '워렌 비티'라는 가명을 댔다가 끝까지 워렌으로 불린다(본명은 영화에서 확인하시라).

하여간 얘는 경찰서에 인수되어도 청소년이라 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금방 풀려나고, 또 엠파이어 레코드로 돌아온다. 너무 웃긴데 이건 진짜 영화를 봐야 함ㅋㅋㅋㅋ

 

이러한 웃긴 장면이 있다고 하나하나 다 설명해 드리고 싶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을 테니까 그런 짓은 안 하겠다.

대신에 한번 틀면 80분가량 즐겁고 유쾌하게 웃으실 거라고 보장할 수 있다(만약에 재미가 없으면? 음, 그렇다면 우리는 영화 취향이 무척 다르다는 데 합의하는 것으로...).

90년대, 젊은 스타들(리브 타일러나 르네 젤위거 같은)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참고로 2003년에 '엠파이어 레코드 리믹스, 팬 에디션(Empire Records Remix, the Fan Edition)'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된 DVD는 기존 영화를 새롭게 편집한 버전과 공개된 적 없는 새로운 장면들도 들어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이 2003년 버전도 한번 구해서 보고 싶다 ㅎㅎㅎ 두 번 보고 싶을 정도로 재밌는 영화니까! 강력 추천~

 

[영화 감상/영화 추천] Never Surrender: A Galaxy Quest Documentary(네버 서렌더: 어 갤럭시 퀘스트 다큐멘터리, 2019) - 과몰입 오타쿠들 만세!

 

감독: 잭 베넷(Jack Bennett)

 

딘 패리소트(Dean Parisot) 감독의 SF 영화 <갤럭시 퀘스트(Galaxy Quest, 1999)>의 제작 과정에 숨겨진 사연 등을 알아보고 이 영화를 추억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이 끝장나게 멋진 영화(<갤럭시 퀘스트>)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부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영화를 처음 보는 그 감격적인 순간을 누릴 수 있다니!

<갤럭시 퀘스트>의 시놉시스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한 SF 드라마의 배우들이 코믹콘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이 드라마의 캐스트는 다들 개성이 있다. 예컨대, 잘나갔던 때를 떠올리며 노스탤지아에 젖어 사는, 대장 역할을 맡았던 배우(팀 알렌 분)라든지, 쭉쭉빵빵 금발 미녀라는 이유로 지성이나 연기력보다는 외모로만 평가받은 게 불만인 여배우(시고니 위버 분)라든지, '내가 원래 이런 걸 할 배우가 아닌데... 내 진정한 연기 혼을 아무도 몰라 줘!'라며 자신이 맡았던 역할을 부끄러워하는 배우(알란 릭맨 분)라든지.

그런데 진짜 놀라운 일은 이제 일어난다. 이 드라마를 송출했던 전파를 우연히 잡아 보게 된 어떤 외계 종족이 이를 '드라마', 그러니까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록한 '다큐'라고 받아들이고, 그들의 모험에 감탄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종족이 위험에 처했다며 이 우주 영웅들(을 연기한 배우들)에게 도움을 처한다. 이제 이들이 외계인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지구도 파괴될지 모른다! 이들은 과연 외계인과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뭐, 대략 이런 이야기인데, 눈치 빠르신 분들은 벌써 감 잡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아, 이거 <스타 트렉(Star Trek)> 시리즈에 대한 메타(meta) 아냐?'

정답! 영화를 보면 우주선 내부라든지, 크루들이 입은 우주복이라든지, 아니면 크루들 각각의 캐릭터 설정 등이 <스타 트렉>과 비슷하다.

애초에 <스타 트렉>이 SF라는 장르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 후에 나온, '우주 오페라(space opera)'물이라면 스타 트렉을 기준으로 '얼마나 비슷하냐, 또는 다르냐' 평가받는 게 기본이 된 것 같긴 하다.

어쨌거나 외적인 면에서도 <스타 트렉>을 연상케 하는 이 영화는 사실 <스타 트렉>(또는 그 어떤 영화나 스타로 대체해도 무방)과 팬(fan)들의 관계를 그 주제로 삼고 있다.

아래에서 논하는 '팬'이라는 큰 주제는 이 다큐(<네버 서렌더>)에서 여러 인터뷰어의 입을 통해 여러 번 지적되고 잘 설명되는 내용이다.

물론 이 다큐에는 이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예컨대 우주선을 디자인할 때 절대 <스타 트렉>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변호사들과 같이 일했고, 심지어 우주선 모델명도 '엔터프라이즈호가 아니다(Not The Enterprise)'란 뜻의 'NTE'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들을 여기에서 다 소개할 수는 없으니 팬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집중하기로 하겠다.

 

<갤럭시 퀘스트>에서 토니 중위/그웬 역을 맡았던 시고니 위버(오른쪽). 왼쪽에 몸을 기울여 갤럭시탭(으로 추정되는 태블릿 PC)을 보고 계신 분은 이 다큐의 감독인 잭 베넷.
<갤럭시 퀘스트>에서 태거트 함장/제이슨 네스미스 역을 맡았던 팀 알렌
<갤럭시 퀘스트>에서 외계 종족들 중 이름도 있고 나름대로 비중도 있었던 마테자르 역의 엔리코 콜라토니
<갤럭시 퀘스트>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캔틸론

 

'팬'이라는 주제는 이 영화/다큐에서 여러 가지 층위에서 의미를 가진다.

이 영화에서 '팬'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애초에 <갤럭시 퀘스트> 자체가 <스타 트렉>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고, 메타적인 발언이기도 하므로, 감독을 비롯한 제작자들도 (<스타 트렉>의) 팬이다.

그리고 둘째, 극 중 '갤럭시 퀘스트'라는 SF 드라마를 보고 감탄하며 이것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 믿는 테르미안(Thermian) 족도 팬이다(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는 말대로 하자면, '과몰입 오타쿠'들이다. 현실과 허구도 분간을 못하니까).

셋째, 이 드라마가 실제가 아니라 허구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열광하는 (인간) 팬들도 있다. 영화 속 코믹콘에 모인 사람들을 포함하며, 극 중 저스틴 롱의 캐릭터(캐릭터 이름은 브랜든)와 그 친구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무려 저스틴 롱의 캐릭터는 자신의 덕질하는 대상인 태거트 함장/제이슨('태거트 함장'을 연기한 배우의 이름)에게 이 우주를 구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거야말로 모든 덕후들이 꿈꾸는 최고의 상황 아닌가! 내가 존잘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대상이 된다니! 덕후들 좋아서 기절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이건 <스타 트렉>이 팬이 있었기에 시리즈가 계속되고, (첫 세대)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몇십 년이 지난 후에도 다시 리부트될 수 있었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영화 또는 스타가 인기를 얻고 돈을 버는 등, 대략 '잘나간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현상의 원동력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팬들이다.

내가 팬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팬, 그러니까 지지자가 없으면 그 어떤 매체도 저 혼자서 지속될 수 없다.

책이 됐든 노래가 됐든 간에 그걸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어떤 영향력을 가지거나 기록에 남을 수가 있는 것이다.

팬이 있어서 스타가 있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 영화는 감동적으로(여러분이 계를 탄 이 덕후라 상상해 보시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 다큐는 그러한 주제 의식을 가진 영화에 대한 메타이기도 하다.

이 다큐의 감독은 <갤럭시 퀘스트>를 제작하는 데 참여한 프로듀서, 감독, 디자이너, 배우들뿐 아니라 이 영화를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팬들의 모습도 보여 준다.

그중 개인의 이름까지 밑에 자막에 뜰 정도로 따로 섭외된(그러니까 그냥 코믹콘에서 인터뷰할 때 몇 번 잠깐 나오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단독 샷을 받아 추가 촬영을 했다는 뜻이다) 인물이 바로 해롤드 웨어(Harold Weir)와 록새인 웨어(Roxane Weir)라는 커플이다.

이들은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극 중 테르미안들 코스프레까지 하고, 테르미안들처럼 박수를 치고 말하는 것까지 따라 한다. 이들은 정말 '찐'이다. 진정한 과몰입 오타쿠들이라고 할까.

이게 다 <갤럭시 퀘스트>의 유산(legacy)이 아니고 무엇인가!

다큐 후반에 <갤럭시 퀘스트> 상영회에 참여한 배우와 관객들 모습을 보여 주는데, 그걸 보고 가슴이 찡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무언가, 또는 누군가의 팬이다. 꼭 연예인이 아니라도 어떤 성공한 사업가라거나 존경하는 선생님의 팬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우리 모두 어떤 것에 몰입해서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기 어려워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29)>을 보고 나서 며칠간 영화 후반의 그 무서운 장면이 떠올라 소름 끼쳤던 적이 있다.

내가 '몰입'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장면이 떠올랐을 때, '아 뭐야, 그냥 영화 장면일 뿐이잖아' 하고 웃어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제시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영화에 숨겨진 디테일'이라든가 '뫄뫄 장면의 의미' 같은 걸 캐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어쩌면 모두, 과몰입 오타쿠다. 나쁜 뜻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것에 깊이 빠져들었다는 뜻으로.

과몰입 오타쿠들 만세다!! 

 

이 다큐를 보면 2016년에 우리를 떠난 알란 릭맨을 제외한 캐스트, 그러니까 팀 알렌, 시고니 위버, 토니 샬호브, 샘 록웰, 다릴 밋첼 등을 한자리에서 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어제 이 다큐를 볼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내가 좋아하는 미시 파일도 여기에 나왔더라! 레인 윌슨도! 아는 배우들의 초기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ㅎㅎㅎ 

모쪼록 이 리뷰가 <갤럭시 퀘스트>를 보신 분에게는 이 영화를 해석하는 한 가지 방법의 제안으로,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재밌고 좋은 영화를 추천하는 글로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거트 함장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우리가 과몰입 오타쿠들이라 해도,

"포기하지 말고, 항복하지 말라(Never give up, never surrender)!"

 

(그렇다, 이 다큐의 제목도 바로 이 인용문에서 따 왔다!)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Kingmaker(킹메이커, 2019) -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

 

 

감독: 로린 그린필드(Lauren Greenfield)

 

스탠(Stan., 호주의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약 한 달 전 처음 소개되었을 때부터 흥미롭다 생각했는데 최근에 시간이 나서 드디어 보게 되었다.

필리핀의 악명 높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17~1989) 시절 영부인이자 현재 과부인 이멜다 마르코스를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솔직히 필리핀에 대해 잘 몰랐다. 이멜다 마르코스라고 하면 '구두를 미친듯이 사들인, 필리핀 독재자의 아내'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로렌(네이버 영화 정보에는 '로린'으로 되어 있는데 스펠링을 보면 발음은 로렌이 맞는 것 같다) 그린필드의 이 다큐를 보자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멜다 마르코스의 집안 꼬라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마르코스 독재 시절은 우리나라 박정희 시절 즈음이다(둘은 서로를 극히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확히 말하자면 마르코스 통치 초기만 해도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꽤 잘사는 국가에 들었다. GDP도 우리나라의 몇 배는 됐고.

그런데 마르코스가 나라를 아주 조져 놔서, 필리핀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현재의 처지가 되어 버렸다.

마르코스가 필리핀을 어떻게 말아먹었느냐면, 국가의 부를 전부 뽑아서 자기네들 사치하는 데에 갖다 처박았다.

2019년 블룸버그 통신의 한 기사에 따르면, 필리핀 법원은 마르코스 가문이 부정부패로 모은 2천억 페소, 또는 39억 5천만 달러를 회수하려는 소송을 기각했다고 한다(여기에서 이미 느끼신 분이 있을 것이다. '아, 현재 필리핀 정부도 이미 마르코스와 짝짜꿍이하는 편이라 이 돈을 빼앗아오지 못하는구나'라고. 맞다. 그 얘기는 아래에서 다시 하겠다).

이 정도면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아예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고 무방할 정도다. 그래서 한때 잘나가던 필리핀은 빈국으로 추락...

 

이멜다의 사치는 내가 앞서 말한 구두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참고로 마르코스 가가 하와이로 도피할 때 미처 챙기지 못한 이멜다의 구두만 3천 켤레였다고 한다).

이 다큐 인터뷰에 참여한, 마르코스 가문의 부정한 재산을 회수하려고 노력하는 위원회(정확한 명칭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분의 말씀에 따르면 이멜다의 집에 피카소 그림이 있고, 최근에는 미국에서 모네 그림을 낙찰받았다고.

아니, 도대체 그때 얼마나 해 처먹었길래 마르코스가 죽은 지 30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만큼의 재산이 있는 거지? 모든 필리핀인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왜냐하면 그게 다 필리핀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부를 쪽 빨아간 거니까.

 

이 다큐의 모든 내용, 또는 필리핀의 현대 정치사를 모두 여기에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이 리뷰에 저런 부제("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를 붙인 이유 정도는 설명해야겠다.

마르코스와 이멜다 사이의 아들, 봉봉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려고 몇 번이나 도전했다가 그게 잘 안 되니까 부통령에 도전했다(다큐에서는 그가 캠페인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제일 유력한 다른 후보 레니 래브라도를 인터뷰하기도 한다).

결과는? 레니 래브라도 후보가 승리했는데 봉봉은 선거가 부정했다며 법원에 소송을 건다. 어라, 치졸한 정치인들 하는 건 국적을 막론하고 똑같네. 어디서 배워 오나 보다. 정작 본인 아버지, 마르코스가 부정 선거 했던 건 생각 못 하나 보지?

어쨌거나 법원은 레니 래브라도가 정당하게 부통령에 당선되었음을 알린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두테르테라는 자가 2016년 필리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이자의 아버지가 마르코스 시절 장관을 해 먹던 자였다. 즉, 다시 말해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된 건 마르코스 가문에 절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마르코스 가문에 힘을 실어 준다고 봐야 한다.

어느 정도냐면, "봉봉 마르코스가 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나는 대통령직에서 물러서겠다"라고 공언했을 정도. 레니 래브라도 부통령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며 그녀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말을 공석에서 하는 두테르테 클라쓰~!  

 

이 다큐는 이런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멜다가 차를 타고 가는데 빨간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춘다. 이멜다는 창문을 열고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아이들에게 지폐를 한 장씩 건네준다. 빨간 불 대기 시간이 다 갈 때까지, 계속 아이들이 몰려들어 돈을 구걸한다. 

마침내 차가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게 되자 이멜다의 수행원이 차가 움직여야 하니 비켜 달라고 하고 창문을 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멜다가 도착한 곳은 한 병원. 그곳에서 소아 암 환자들을 만난 이멜다는 자기 수행원을 불러 아이들에게 줄 돈을 가져오라고 한다.

아이들에게만(성인들은 ㄴㄴ) 한 장씩 주어지는 지폐. 이멜다는 그러고 나서 그 병동을 나와, 원래 아이들 놀이터였던 곳을 바라보며 눈물 짓는다.

 

처음에 이 장면을 볼 때는 '뭐야, 왜 돈을 나누어줘? 포퓰리즘의 좋은 예~' 이러고 말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이상하다.

보통 정치인이 유권자들을 방문하면 그들 마음을 살 정책 한두 가지는 제시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학교라면 교육 예산에 얼마는 더 편성하도록 노력하겠다, 병원이라면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줄 방법을 찾아보겠다 같은 것.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느냐는 그다음 문제고, 일단은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도 일단 주워섬기지 않나.

이멜다 마르코스도, 믿기지 않지만, 필리핀의 하원 의원이다(적어도 이 다큐 촬영 당시엔 그랬다). 

그런데 이멜다는 정책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 그저 돈을 건네줄 뿐이다. 이멜다가 그런 정책을 제시했는데 다큐 감독이 시간상 또는 이야기상 편집을 했을까? 글쎄, 별로 그럴 것 같진 않다.

마르코스가 그렇게 나라를 말아먹었는데도 마르코스의 아들이라고 봉봉을 찍어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뭐하러 정책 어쩌고 그런 얘기를 하겠어? 애초에 할 필요가 없지.

다큐 중간중간에 나오는 한 반정부 운동가(마르코스 시절 그에 반대해 데모를 하셨다가 고문까지 당하신 분) 말씀대로, "필리핀인들은 참 용서를 잘해 주는(forgiving)" 민족인가 보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기 나라 국민을 수천 명 고문하고 죽인 독재자를, 그때는 지금보다 형편이 조금 나았다는 이유로(그나마 그때도 빈부 격차가 심했다) 한 표 던져 준다는 게 말이 되나? (잠깐만, 혹시 마르코스가 이런 살해범인 거 모르셨던 분? 독재자가 그냥 돈과 권력만 즐기고 자기 국민들에게 잘해 줬을 거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지는 법이다. 정말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마르코스 가문의 말도 안 되는 돈지랄 중 제일 우스꽝스러운 건 이게 아닐까 한다.

마르코스는 케냐에서 기린이나 얼룩말 같은 '이국적인' 동물들을 여럿 들여와 칼라우이트 섬에 풀어놨다.

그리고 이 동물들이 살아야 한다며, 동물들을 '보호'하는 의미에서 그곳에 살던 주민들을 내쫓았다.

동물들에 밀려서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난 주민들은 나중에 마르코스 가족이 하와이로 도피한 후 다시 섬에 돌아와 살게 됐지만, 주민과 동물의 공존은 어려워 보인다.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면 동물들이 먹거나 망쳐 놓기가 일쑤인 데다가, 이 '사파리'는 적절한 관리인도 없다.

그래서 예컨대 아빠 기린이 자기 딸인 기린과 짝짓기를 하고, 엄마 기린이 아들 기린과 짝짓기를 하는 식으로 근친이 일어났다고 한다.

일부 기린은 벌써 목이 짧아졌다고. 또한 벌레 또는 구더기에 물려서 앓고 있는 동물들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 가고 있다.

동물도 불행하고 주민들도 불행한 이 끔찍한 상황을 만든 건, 이기적인 마르코스 가문의 변덕과 욕심이었다.

 

다큐 내 인터뷰에서 이멜다는 여러 번 반복해서 자신을 '어머니'라고 표현한다. 어릴 적에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었는데 마르코스를 만나 다시 온전해진 느낌이 들었고, 퍼스트 레이디가 되어 필리핀의 어머니가 되었으며, 해외 순방을 나가 전 세계의 어머니 노릇을 했으며 계속 하고 싶다 운운.

이 여편네의 현실 인식 능력이 얼마나 떨어지느냐면, 자신이 카다피도 만나 봤고, 사담 후세인도 만나 봤고, 마오 쩌둥도 만나서 손에 키스도 받아 봤다, 이러고 있을 정도다.

저기, 말씀하신 세 명 전부 다 지금 죽었거든요? 하기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모르니까 그렇게 시대착오적인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겠지만.

(참고로 이멜다 마르코스는 2020년 현재 기준 90세다. 어쩜 90세에도 그렇게 탐욕스러울 수가 있지?)

 

마르코스 가에 대해 욕을 하다 보면 끝이 없을 테니 이쯤 해서 총평을 내리고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다.

필리핀에 대해 잘 몰랐고 관심이 없었던 분들이라도 꼭 한 번쯤 봤으면 좋겠는 다큐멘터리다.

과거를 반복하지 않도록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 의미에서 필리핀의 예를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도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박근혜라는 대한민국의 오점을 당선시킨 전적이 있으니까.

정말 충격적이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좋은 다큐멘터리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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