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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 plucky(용감한, 결단력 있는)

 

살다 보면 중요하고 빛이 나는 가치들이 참 많이 있지만, 난 언제나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용기'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날 내세울 거라곤 어떻게든 침대에서 일어났다는 것뿐이고, 다른 모든 일은 망쳤을지라도, 살아갈 용기를 낸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plucky'는 '용감한, 결단력 있는'이라는 뜻이다.

케임브릿지 사전은 'plucky'를 "brave(용감한)"라고 정의했다.

"It was plucky of you to chase after the burglar(강도를 쫓아가다니, 너 용감하구나)."

콜린스 사전은 'plucky'를 이렇게 설명했다. "If someone, for example a sick child, is described as plucky, it means that although they are weak, they face their difficulties with courage(누군가, 예를 들어 아픈 아이가 plucky 하다고 묘사된다면, 약한 데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용기를 가지고 맞선다는 뜻이다)." 

주로 저널리즘(journalism)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로, 아주 긍정적인(approval) 어감이다.

"The plucky schoolgirl amazed doctors by hanging on to life for nearly two months(용감한 여학생은 거의 두 달간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아서 의사들을 놀라게 했다)."

맥밀란 사전은 'plucky'를 "brave and determined, especially when success is unlikely(특히, 성공이 불가능해 보일 때 용감하고 단단히 결심한)"

"a plucky boy/attempt(용감한 소년/시도)"

[영화 감상/영화 추천] 우리 사이 어쩌면(Always Be My Maybe, 2019) -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뒤를 잇는, 아시아인들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 나나츠카 칸(Nahnatchka Khan)

 

사샤(Sasha, 앨리 웡 분)와 마커스(Marcus, 랜들 파크 분)는 꼬맹이 시절부터 옆집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 온 사이이다.

대학 진학을 눈앞에 둔 어느 날, 마커스의 어머니 주디(Judy, 수잔 파크 분)가 돌아가셨을 때 사샤는 자기도 어머니를 잃은 듯 깊이 슬펐을 정도니까.

사샤는 슬픔에 빠진 마커스를 위로하고자 그를 데리고 나가 차 안에서 노래를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마커스에게 뽀뽀를 하고 만다.

그러고 나서 바로 실수라고, 미안하다고 당황해하는 그녀에게 마커스가 다가가 진짜 키스를 한다. 그리고 둘은 차 안에서 열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거사를 끝낸 둘은 숨 막히는 어색함 속에서 뭘 먹으러 가기로 하고, 버거킹에 갔다가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싸우게 된다.

사샤는 어머니를 잃은 마커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지만, 마커스는 '그렇지만 네가 진짜로 너희 어머니를 잃은 건 아니잖아. 어머니를 잃은 건 나라고!'라고 말한 것. 

사샤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아 버거킹을 나가 버리고, 마커스도 굳이 그녀의 뒤를 따라가 붙잡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의 거사 후 버거킹에 간 게 마지막으로 둘은 서로를 보지 않게 되어 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2019년, 사샤는 잘 나가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명한 셰프이다. 잘 나가는 사업가 남자 친구 브랜든(Brandon, 대니얼 대 킴 분)도 있고, 둘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그녀 인생이건만, 갑자기 남자 친구가 사업차 인도에 가야겠다며, 우리 결혼을 약간 미루고 우리가 서로에게 정말 꼭 맞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자는 말을 던진다.

그녀는 쿨한 척하며 남자 친구를 인도에 보내 주고, 자신은 뉴욕에서 고향인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그곳에 새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일에 매진하기로 한다. 그러다가 예전의 베프이자 하루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마커스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잘나가는 셰프인 사샤(오른쪽)와 달리 마커스(왼쪽)는 별로 잘 알려지지도 않은 밴드에서 보컬을 맡은 반백수이다.
극 중 서브 남주로 등장하는 키아누...
키아누가 맡은 캐릭터는 '잘나가는 배우라고 으스대는 재수 없는 키아누 리브스'라는 캐릭터인데, 현실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그래도 웃기긴 웃기다ㅋㅋㅋㅋ

 

작년에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 2018)>을 보고 '와, 미국에서 아시아계 배우들만 가지고, 아시아인들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하고 무척 감탄했는데, 이 영화는 분명히 그 이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영향에 힘입어 아시아 배우들이 직접 각본을 쓰고 아시아적인 특성을 많이 넣어서 만든 영화인 게 분명하다.

일단, 배우들을 보자면 앨리 웡과 랜들 파크가 주연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미드 <프레시 오프 더 보트(Fresh Off The Boat)>를 보신 분이라면 랜들 파크의 이름을 보고 무척 반가웠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앨리 웡은 비교적 그보다는 이름이 덜 알려져 있지만, 2011년부터 배우로 활동했고 2013년에는 <프레시 오프 더 보트>에 스토리 에디터(story editor)로 몇 편 각본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두 주연은 물론이고, (당연하지만) 사샤나 마커스의 부모님도 당연히 아시아계 배우다. 마커스가 사귀는 서브 여주도 제니(Jenny, 비비안 방 분)라는 이름의 아시아계 여자고.

놀라운 것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비슷하게, 극 중 설정상 꼭 아시아인이어야 하는 캐릭터들 말고(주인공들의 부모님들이라든지 사촌이라는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 외에 그 어떤 인종이어도 괜찮은 캐릭터들도 백인의 비율은 상당히 낮다.

영화를 보면서 비중 있는 백인 캐릭터가 나온 것은 단 한 명, 사샤의 레스토랑 공사를 맡은 담당자인데, 엄청 맹하고 말실수가 잦은 캐릭터다.

그 외에는 사샤의 베프이자 매니저이기도 한 베로니카(Veronica, 미셸 부토 분)는 흑인이고(게다가 출산을 몇 달 앞 둔 임산부이다. 첫 등장부터 남산만 한 배를 쓰다듬는 모습이다), 마커스의 밴드 멤버인 토니(Tony, 카란 소니 분)는 인도인이다. 이외에 모든 캐스트들이 거의 비백인이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 (깜짝 놀랄 준비 하시라!) 영화 중후반쯤 나오는, 이런 영화에 꼭 등장해서 남주를 질투하게 만드는 서브남도 아시아계 혼혈인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다!

키아누 리브스가 나오는 장면은, 자세히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길게 말하진 않겠지만, 일단 다 웃기다 ㅋㅋㅋㅋ

어떻게 키아누가 이런 영화에 출연했느냐 하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텐데, 사실 배우들도 그 점에 놀란 듯하다.

같이 각본을 쓴 앨리 웡과 랜들 파크는 이 서브남 역할의 배우에 홍콩 배우 양조위(Tony Leung), 필리핀계 미국인 배우이자 무술가인 마크 다카스코스(Mark Dacascos), 인도 출신 영화감독 M. 나이트 샤말란(M. Night Shyamalan), (그리고 이중에 유일하게 아시아계가 아닌) 폴 지아마티(Paul Giamatti) 등을 고려했단다.

랜들 파크는 폴 지아마티가 서브남이라면 재밌을 거라 생각했는데, 앨리 웡은 이에 반대했다.

극 중에서 사샤는 이미 대니얼 대 킴이 연기한, 잘나가는 아시아계(브랜든 '최'니까 설정상 한국인이다) 남자를 사귀었던 데다가, 마커스에게 있어서 사샤가 자기랑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사샤랑 사귀는 게 최악의 악몽일 거라고 앨리 웡은 생각했다고.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데다가 아시아계이기도 한 배우를 찾아야 했는데, 마침 키아누 리브스가 이 조건에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이미 잘 아시겠지만, 키아누 리브스는 중국-필리핀계 혼혈이다.)

그래서 이들은 키아누 리브스에게 각본을 보냈는데, 설마 승낙할 거라고는 본인들도 예상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키아누가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하자 놀랐다고.

심지어 키아누는 앨리 웡에게 "당신들의 러브스토리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영광이겠어요(I would be honored to be part of your love story)."라고 써서 앨리 웡이 엄청 감동했다고 한다. 나라도 그럴 듯ㅠㅠ

 

배우뿐 아니라 이 영화는 곳곳에 '아시아스러운' 점이 많다. 아시아계 배우 둘이 각본을 썼으니 당연한 거지만.

영화 초반부터 마커스의 엄마 주디가 가위로 파를 자르며 "한국인들은 가위를 안 쓰는 데가 없지."라고 말한다거나, 사샤에게도 가위로 파를 자르게 하고서 "잘하는구나. 너 정말 한국인 아닌 거 맞니?" 같은 말을 한다든가(극 중 사샤의 부모님이 어느 나라 출신인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사샤의 성이 '트란(Tran)'인 걸로 봐서, 베트남 출신일 거라고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 파를 김치찌개에 넣으며 정확하게 '김치찌개'라고 발음한다든가 등등.

그리고 영화 중반에 마커스가 아버지(이분은 제임스 사이토라는 일본계 배우이다)와 한국식 사우나에 가서 세신사에게 때 밀기 서비스를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나온다 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사샤의 부모님도 팁 주는 거나 (당신들 보기에) 쓸데없는 데에 돈 쓰는 걸 엄청 아까워하는 모습을 보여 줘서 '아, 이건 진짜 아시아인들이 각본을 쓴 게 100% 확실하다' 싶다.

할리우드에서 주연을 차지하기 어려운 아시아계 배우들이 이렇게 아시아의 문화가 곳곳에 녹아든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참 뿌듯하고 신기하고 그렇다.

 

아, 그런데 혹시 '그런데 이런 (동)아시아인들 이야기를 이 감독이 어떻게 잘 살려서 찍었을까?'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걱정 마시라.

이 영화 감독은, 타이완 출신의 가족이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프레시 오프 더 보트>를 제작한 나나츠카 칸이니까.

이 정도면 입증 끝난 거 아닌가? ㅎㅎㅎ

 

참고로 랜들 파크는 이 영화가 개봉한 2019년 기준 46세이다(1974년생). 여주인공 역의 앨리 웡은 38세(1982년생).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콘스탄스 우(Constance Wu)도 앨리 웡과 똑같은 1982년생인데(영화가 개봉한 2018년 기준으로 37세), 나는 이미 콘스탄스 우를 <프레시 오프 더 보트>에서 '애 셋 딸린 엄마' 역할로 기억해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걸 보고 '음, 유부녀가 여기에서 일탈을...?' 하고 놀랐다. 30대 후반에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이 된 것도 되게 신선하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랜들 파크는 (한국식 나이로) 46세에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주연을 맡다니... 와 대단하다... 

 

이 영화는 절친으로 지내던 두 남녀가 하룻밤 실수를 하고 십몇 년간 서로를 안 보다가 다시 어쩌다 만나게 되어서 결국 서로를 사랑한다는 걸 깨닫는다는 게 끝이 아니다.

그 와중에 서로의 다른 라이프스타일, 각자 다른 삶을 어떻게 융합시키고, 서로 다른 점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어떻게 서로 양보하면서 조화롭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같은 영화를 찾고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너무나 '밝은'(=죄 백인들만 나오는) 영화가 지겹다면, 기분 전환용으로라도 한번 보시라!

[영어 공부] leg it(도망치다, 튀다)

 

한국어 문화권이나 영어 문화권이나 '다리야 날 살려라'는 만국 공통인 모양이다.

'leg it'은 영어 속어로 '도망치다, 튀다'라는 뜻이다.

케임브릿지 사전은 'leg it'을 "to run away in order to escape from something(어떤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아나다)"이라고 정의했다. 아주 인포멀(informal)한 표현임을 기억하시라.

"They legged it round the corner when they saw the police coming(그들은 경찰이 오는 것을 보자 모퉁이를 돌아 달아났다)."

콜린스 사전은 'leg it'을 이렇게 설명한다. "If you leg it, you run very quickly, usually in order to escape from someone(leg it 한다면, 대개 누군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아주 빨리 달리는 것이다)."

"We saw some kids legging it clutching a TV and hi-fi(우리는 애들 몇 명이 TV와 하이파이를 껴안고 튀는 것을 보았다)." 

"He was now to be seen legging it across the field(그가 들판을 지나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맥밀란 사전은 'leg it'을 "to run very quickly, especially in order to escape from someone or something(특히 누군가 또는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아주 빨리 달리다)"이라고 풀이했다.

"I legged it up the stairs three steps at a time(나는 한 번에 세 계단씩 올라가며 뛰었다)."

[영화 감상/영화 추천] Little Manhattan(리틀 맨하탄, 2005) - 10살 소년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

 

 

감독: 마크 레빈(Mark Levin)

 

우리의 주인공은 뉴욕 토박이인 10세 소년 게이브(Gabe, 조시 허처슨 분)이다.

게이브의 부모님은 이혼은 했지만 아직 정식으로 이혼 과정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서, 남편인 아담(Adam, 브래드리 휘트포드 분)이 거실 소파에서 자고, 아내인 레슬리(Leslie, 신시아 닉슨 분)가 안방 침대에서 자며, 서로 말도 거의 하지 않고 냉장고 속 음식에도 각자 이름을 써서 붙여 놓으며 사는, 복잡한 상황이다.

그래도 게이브는 아버지와 공놀이를 하고, 친구들과 킥보드를 타고 어울리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게이브는 가라테 수업에 갔다가 그곳에서 로즈메리(Rosemary, 찰리 레이 분)를 만난다.

로즈메리는 사실 게이브와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래도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남녀가 완전히 갈라져서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는 사이였긴 했다.

오랜만에, 그것도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가라테 수업에서 친근한 얼굴을 만나 반가웠던 게이브. 로즈메리와 다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로즈메리는 동갑이어도 여자애들이 남자애들보다 일찍 성숙한다는 주장을 펴고, 게이브는 이에 반대한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입증이라도 하듯) 로즈메리는 벌써 가라테 노란띠를 땄는데 게이브는 못 땄으니까, 로즈메리는 자신이 게이브의 가라테 연습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래서 같이 가라테 연습을 하게 된 두 소년소녀. 그러다가 게이브는 로즈메리에게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서로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 가라테 연습 중인 게이브(왼쪽)와 로즈메리(오른쪽)
게이브네 아버지가 나가 살 집을 구해 주려고 '집을 보러 간' 게이브와 로즈메리
로즈메리 옆의 흑인 여성은 로즈메리의 보모.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그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첫 데이트 중인 두 아이.

 

10살 소년과 11살 소녀(그래 봤자 생일은 3개월 차이지만)의 첫사랑 이야기를 다룬 귀여운 영화다.

감독인 마크 레빈과 각본가 제니퍼 플랙켓(Jennifer Flackett)은 결혼한 부부 사이로, 같이 각본을 작업했다.

이 영화에서는 <The Hunger Games(헝거 게임, 2012)> 시리즈의 피타(Peeta)로 잘 알려진 배우 조시 허처슨(Josh Hutcherson)의 어릴 적 모습을 볼 수 있다.

로즈메리 역의 배우는 IMDB에는 샬롯 레이 로젠버그(Charlotte Ray Rosenberg)라고 나와 있는데 네이버 영화에는 '찰리 레이(Charlie Ray)'라고 올라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게이브의 어머니 역할은 <Sex and the City>의 미란다 홉스(Miranda Hobbes) 역을 맡았던 신시아 닉슨(Cynthia Nixon)이다. 나는 이 배우를 오랜만에 봐서 되게 반가웠다(비록 이게 10년도 더 된 영화이긴 하지만).

이 아래 문단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할 건데, 결말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아래 스틸컷 이후부터 스크롤을 쭉 내려서 게이브와 로즈메리가 공원에서 찍은 사진 짤을 지나 맨 마지막 문단 총평만 보시면 된다.

 

이 장면 진짜 너무 귀여웠다 ㅋㅋㅋㅋ

 

영화는 위에서 말했듯이 10살 소년과 11살 소녀의 사랑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자면 10살 소년이 11살 소녀에게 첫사랑을 느끼는 이야기지만.

아이들의 사랑을 다루되, 전형적인 어른들용 로맨틱 코미디를 그냥 어린아이들로 배우만 바꿔서 답습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물론 로맨스라는 큰 장르 안에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면이 있고 그런 장르의 규칙을 따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인 배우를 애들로 축소시켜 놓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랑에 빠진 지 '2주 반'밖에 안 됐다는 애가 영화 처음부터 꺼이꺼이 울면서(그것도 한쪽 팔엔 깁스를 하고) '사랑은 당신 마음을 짓밟고서 떠날 것이다' 운운하는 게 어찌나 귀엽고 웃기던지.

또, 이런 영화에 흔히 나오는 게 '차려입은 여자 주인공의 색다른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면 남자 주인공'의 모습인데, 여기에서는 이모의 결혼식에 화동(flower child)을 하게 되어서 드레스를 차려입은 로즈메리를 보고 게이브가 반한다. 

또한 '첫 데이트' 장면에서 게이브가 로즈메리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는데 이걸 '첫 데이트에 큰돈 썼네(big spender)'라고 게이브가 내레이션을 하는 게 어른 남자가 할 법한 행동이면서도 여전히 애다워서 귀엽고 웃겼다.

이렇게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할 법할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여전히 애다운 면을 보여 주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여자 주인공도 로맨틱 코미디의 여자 주인공답게 예쁘고 순수한 매력이 있고.

 

영화 군데군데에 '철의 장막(iron curtain)'이 내려와 여자애들과 남자애들 사이를 갈라놓는 장면이라든지, 게이브가 킥보드를 타고 뉴욕을 돌아다니는 장면이라든지에 CG가 쓰였는데 아주 귀엽더라.

게이브가 뉴욕의 고층 건물을 보고 해적선이라고 상상하는 장면에서는 몬티 파이선(Monty Python)의 한 에피소드를 연상시키는 CG가 이용되기도 한다(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하실 듯).

아이의 상상력을 CG로 구현해 낸 게 귀엽고, 또 영화를 신선하게 만들어 준다. 

 

원래 각본에는 게이브의 부모님이 다시 합치는 내용이 없었는데, 각본을 후에 수정하면서 아담과 레슬리는 화해를 하고 다시 사이가 가까워지게 됐다.

나는 이게 그래도 더 현실적인 거 같다. 10살, 11살 때 만난 첫사랑과 한 20년 후에 결혼하는 장면이라든가 이런 걸로 끝을 냈으면 그게 더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차라리 게이브의 아빠가 게이브에게 조언해 준 대로 말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들을 뒤늦게라도 다시 꺼내서 게이브의 엄마와 화해했다는 게 더 그럴듯하다. 원래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도 있고 말이다.

로즈메리가 '여자애들이 더 일찍 성숙한다'는 자기 주장을 뒤집듯 자기는 11살밖에 안 되어서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고 하고, 게이브도 '로즈메리는 나와 다른 길을 갈 것이다' 하고 인정했는데 둘이 몇십 년 후에도 사귀고 있다면 그게 더 오버 같다.

게이브가 첫사랑의 아픔을 알게 되고 나서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체념하려는 찰나, 아담과 레슬리가 재결합을 함으로써 '영원한(또는 오래 가는) 사랑도 있다'고 반증해 주는, 좋은 이야기 전략이다.

로즈메리와 게이브가 이어지지는 않되, 아담과 레슬리가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딱 적절한 엔딩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도 나오는, 뉴욕에서 가장 작은 공원에서. 이건 아마 영화 촬영장에서 기념으로 찍은 사진인 듯하다.

 

그런데, 10살과 11살짜리 소년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보는 건, 같은 프리틴(pre-teen, 10~12세의 아이를 가리키는 말)일까, 아니면 그보다는 나이가 든 관객들일까?

나는 당연히 후자에 속하지만, 괜히 이게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속한 인종이라거나 연령대, 성별 등, 자신과 공통점이 있는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극을 선호하니 말이다.

예를 들어 흑인이라면 흑인의 삶을 다룬 이야기, 여성이라면 여성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이야기 등을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런데 10살에서 12살 정도면 정말 이성에 관심이 없거나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시기라서, 아이들이 자기 또래 주인공이 첫사랑을 하는 이야기에 이입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이야기를 영화로 보고 싶어 할까?

오히려 10대 후반 정도 되면 그들을 위한 로맨스 영화 장르가 따로 있을 정도니까(대개 배경이 고등학교인) 그런 걸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이해할 수 있는데, 프리틴은 잘 모르겠다.

그때는 모험 이야기, 액션 이야기를 로맨틱 코미디보다 더 좋아하지 않을까? 

이런 10대 초반의 첫사랑 이야기 영화를 보는 건, 어른들이 자신의 순수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며 '그때 참 좋았지', '쟤네들 좀 봐. 너무 귀엽다' 뭐 이런 흐뭇함을 느끼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일까? 궁금하다. 

어쨌거나 <Flipped(플립, 2010)>를 재밌게, 엄마/아빠 미소를 지으며 본 사람이라면 분명히 이 영화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영화 <플립>의 원작 소설도 리뷰한 적이 있다. 

2018/09/05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웬들린 밴 드라닌, <플립> - 소녀와 소년, 첫사랑, 자존감, 동화 같은 복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 영화 또는 아이들이 귀여운 영화를 찾으신다면 바로 이것, <리틀 맨하탄>이다. 이걸 보시라!

  1. 과자 2019.04.30 03:30

    안녕하세요!
    곧 처음으로 호주에 공부하러 갈 학생인데, 선생님 블로그 보면서 많은 지식 얻어갑니다. 감사합니다!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Road Within(더 로드 위드인, 2014) - 은유로서의 질병, 우정, 그리고 삶

 

 

감독: 그렌 웰스(Gren Wells)

 

한 여인의 장례식. 추모의 대상인 여인의 아들은 몸이 불편한 듯, 아니면 재채기를 참는 듯 몸을 비비 꼬다가 갑자기 욕설을 내지르고 장례식장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이 청년의 이름은 빈센트(Vicent, 로버트 시한 분). 그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소리를 내는 '투렛 증후군(Tourette Syndrome)' 환자다. 그의 경우는 욕설을 하거나 손가락 욕을 하고 몸을 비틀듯 경련을 일으킨다.

장례식이 끝난 후, 이미 새 배우자를 찾은 빈센트의 아버지 로버트(Rober, 로버트 패트릭 분)는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술을 마시며) 살던 집을 팔아 버릴 거라고 한다.

그러고는 빈센트에게 어떡할 거냐고 묻는다. 빈센트는 어머니가 늘 대양을 좋아했다며, 어머니의 뼛가루를 가지고 바다를 보러 갈 거라고 대답한다.

아버지는 빈센트에게 (그의 질환 때문에) "세븐 일레븐에도 못 가지 않느냐"며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그리고 그를 클리닉으로 데리고 간다.

클리닉에서 만난 로즈 박사(Dr. Rose, 카이라 세드윅 분)는 빈센트에게 낫고 싶지 않느냐고, 만약에 투렛 증후군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뭘 하고 싶은지 묻는다. '고등학교를 끝내고 아마 대학에도 가고 싶다'고 대답한 빈센트. 그래서 그곳에 입원한다.

그와 같은 방을 쓰게 된 룸메이트는 청결에 집착하는 강박증 환자 알렉스(Alex, 데브 파텔 분)로, 그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과 신체 접촉을 역병처럼 피하고 싫어한다.

그리고 빈센트에게 다가온 또 다른 환자 마리(Marie, 조 크라비츠 분)는 거식증을 앓고 있다.

마리는 '신입' 환자 빈센트에게 클리닉 주변을 소개시켜 주라는 지시를 받고 온 것이지만, 그래도 마리는 빈센트가 아예 싫지는 않은 눈치다. 둘은 조금씩 친해진다.

어느 날 마리는 로즈 박사의 차 열쇠를 슬쩍했으니 이 차를 타고 빈센트에게 클리닉에서 도망치자고 제안하는데...

 

왼쪽부터 마리, 가운데가 빈센트, 그리고 오른쪽이 알렉스이다.

 

<Vincet Will Meer> 또는 <Vincent Wants to Sea>라는 2011년 독일 영화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원작 영화는 못 봤지만 큰 틀은 같다. 투렛 증후군인 한 청년이 죽은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어머니의 유골을 가지고 (다른 환자들과)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 원작에서는 이탈리아로 가는 것 같다. 이 미국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원래 목적지가 캘리포니아지만.

로버트 시한(Robert Sheehan)은 영드 <미스핏츠(Misfits)>의 그 '존만이' 네이선(Nathan)으로 알고 계신 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데브 파텔(Dev Patel)은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 2008)>의 자말(Jamal)이나 <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 2011)>과 그 후속작의 소니 카푸어(Sonny Kapoor)로 우리나라 관객들도 여러 번 보아서 친근하게 생각하는 배우가 아닐까(나만 그렇게 느끼나?). <채피(Chappie, 2015)>에서 디온 윌슨(Deon Wilson) 역을 하기도 했고.

조 크라비츠(Zoe Kravitz)는 나는 <Beware of the Gonzo(2010)>의 이비(Evie), <Rough Night(레이디스 나잇, 2017)>의 블레어(Blair)로 기억하고 있다.

나머지 배우들은, 음... 솔직히 초면이다. 하지만 다들 연기력이 좋다.

특히 로버트 시한은 투렛 증후군 환자를 연기하는데 어쩜 그렇게 진짜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경련이 오는 것 같은 연기를 잘하는지 놀라웠다.

IMDB의 트리비아(trivia) 정보에 따르면 로버트 시한은 투렛 환자 연기를 위해서 '미국 투렛인 협회(The Touretts Society of America)'의 대변인 잭슨 크레이머(Jackson Kramer)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은유로서의 질병'이라는 수잔 손탁(Susan Sontag)의 책 제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보다 보면 빈센트, 마리, 그리고 알렉스가 가진 '질환'이 삶의 비유라는 것을 그저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빈센트가 자신의 욕설이나 경련을 통제할 수 없는 게 마치 우리가 살면서 우리를 슬프거나 두렵거나 분노하게 만드는, 나쁜 일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 딱 한 번 빈센트가 틱(tic) 증상이 일어나지 않아 오히려 배신감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상황인즉슨, 로드 트립을 하다가 돈이 떨어지자 그가 자신의 틱 증세로 주유소 직원의 관심을 끄는 동안 마리가 물건을 훔치기로 한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빈센트의 입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욕도 나오지 않고, 그의 몸은 경련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주유소 직원의 관심을 돌릴 수가 없어서 마리의 절도 계획은 실패.

마치 재채기를 하려고 기대하고 있으면 오히려 재채기가 안 나오는 것처럼, 살다 보면 이렇게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는 때도 종종 있다. 삶의 작은 아이러니라고 할까.

 

마리의 병인 거식증은, 로즈 박사 말마따나 '정신의 병(disease of the mind)'이라 우리는 그녀에게서 뼈와 거죽만을 보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지방만을 본다.

이 사실 역시 우리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가 언제나 같지는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건 좋은 의미일 수도 있고 나쁜 의미일 수도 있지만 마리의 경우에는 그게 건강하지 않은 방식이었던 거다.

정말 말랐는데도 자신이 뚱뚱하다고 느끼고, 빈센트가 자신을 몹시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데도 마치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듯 얼굴을 돌리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마리. 

그게 꼭 어떤 정신병을 앓고 있지는 않아도, 우리가 살면서 자주 하는 실수처럼 느껴졌다(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정신과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적절한 치료법을 찾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에게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쭈굴쭈굴하게 하고 다닌다거나, 자랑스럽게 여겨도 될 자신의 성취를 '고작 이런 거 가지고'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삶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큰 오류가 아닐까. 이건 왜 그다지도 고치기 힘든지. 마치 영화의 결말도 그걸 반영하는 듯하다(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테니 말하지 않겠다).

 

알렉스의 강박증은 차 문이든 가게 문이든 일단 들어가기 전에 네 번 열었다 닫았다 해야 하는 형태 또는 세균을 극히 두려워해서 타인과의 접촉을 완전히 피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자신이 원해서 빈센트랑 마리와 함께 로드 트립을 떠나게 된 건 아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들과 친구가 되고 나서 자신의 병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이 병이 내 세상을 좁디좁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건 마치 '~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규칙에 얽매여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표현하는 말인 것 같았다.

알렉스처럼 강박증으로 발현되지는 않더라도, 예컨대 '나는 맏이니까 완벽한 딸/아들이 되어야 해'라든지 '나는 머리가 좋지 않으니까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노력해야 해.' 따위의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하지만 그게 사실인가? 정말로 우리가 그 많은 것들을 다 '해야만' 하는가?

우리의 그런 '규칙'들을, 강박증 환자가 다른 사람의 손이 조금 닿았다고 기겁하면서 손을 박박 문질러 씻는 것처럼, 오버스럽고 이성적이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다행히도 알렉스는 영화 내에서 눈에 띄게 증세가 호전된다. 빈센트랑 마리와 접촉하면서(글자 그대로나 비유적으로나) 균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덜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는 빈센트의 (당연히 며칠간 안 빨았을) 바람막이도 그냥 입는다. 다른 물건과 접촉하면 균이 옮아 병에 걸려 죽을까 걱정해서 라텍스 장갑을 끼고 다니던 알렉스가 말이다!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로즈 박사가 빈센트의 아버지 로버트와 (본의 아니게, 그러나 아이들을 찾는다는 같은 목표를 위해) 같이 다니는 설정은 약간 '어, 러브 라인 만들려고 그러나? 그럼 좀 억지인데...?' 싶었지만 다행히 러브 라인까지는 안 가더라.

그냥 로즈 박사가 로버트로 하여금 아들을 좀 더 이해하게 하고 아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게 하는 인물로 기능해서 다행이었다.

둘이 서로 티격태격하며 '같이 다니다 보니 사랑에 빠졌어요~' 이런 전개였으면 얼탱이가 없어서 좋은 영화 망쳤다고 했을 듯. 다행히 그런 말도 안 되는 거 안 하니까 마음 편히 보셔도 된다.

 

로버트 시한은 잘생겼고, 이야기 전개는 좋으며,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도 주는 좋은 영화다.

아주 어두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무거운 분위기로 풀어내지 않았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결말까지 아주 괜찮다. 추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영화 초반에 빈센트가 말한 "전 아버지 생각만큼 절망적인 경우는 아니거든요!(I'm not as hopeless as you think!)"라는 대사가 이 영화를 요약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우리도.

[책 감상/책 추천] 궤도, <궤도의 과학 허세>

 

 

나는 타고난 문과인이지만 과학을 교양 수준이라도 배우기 위해 집어든 책이다.

'아는 척하기 좋은 실전 과학 지식'이라는 부제처럼, 실용적인 과학 지식을 아주 쉽고 재미있는 말투로 알려 준다.

 

신세대(라는 말 자체는 약간 구시대적이지만)스러운 신선하고 유쾌한 말투가 이 책의 큰 매력이다.

설명도 쉽게 잘한다. <왜 우리는 슈퍼 히어로에 열광하는가 - 돌연변이의 과학>이라는 꼭지에서 저자는 돌연변이를 슈퍼 히어로에 비유한다.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도 배우듯이, 모든 돌연변이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도넛 모양이 아니라 초승달 모양으로 바뀌는 돌연변이(겸형 적혈구)가 일어나면 빈혈이나 황달도 일어나고 주요 장기의 기능이 저하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말라리아에는 강하다. 말라리아는 주로 적혈구에 감염되는데 일반적인 적혈구와 다르게 생긴 겸형 적혈구는 말라리아가 쉽게 감염시키기가 어렵다.

만약 온 인구가 말라리아로 멸종 위기에 놓인다면 이러한 돌연변이 적혈구를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소수의 돌연변이에 의해 우전자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유전자는 또 다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자연스러운 결함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진화라는 이름으로 그 과정을 이해한다.

이제 알았다. 우리는 돌연변이에 열광한다. 슈퍼 히어로 영화가 보여 주는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나 잘 만들어진 컴퓨터 그래픽에만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동일한 다수의 결정에 반기를 들며, 전혀 안전하지 않은 새로운 길로 소수의 혁명적인 발자국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영원한 인류를 위한 치열한 몸부림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크으, 멋지다.

 

이 책은 과학과 제일 거리가 먼 것 같은 귀신, 초자연적인 현상 이야기도 다루는데, 물론 괴담의 거짓을 밝히기 위함이다.

<읽지 말라는 글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 귀신의 과학>에서는 '현관 입구의 등이 혼자 켜지더라' 하는 괴담의 진실을 살펴본다. 설마 진짜 귀신이 몰래 들어와서?

그렇다면 왜 현관 입구의 등은 혼자 켜졌을까? 적외선 센서는 온도를 감지하기 때문에 사람의 몸이 아니라 뜨거운 공기가 현관에 침입해도 온도의 변화를 느끼고 불이 켜질 수 있기 떄문이다. 여름밤 창문을 통해 뜨거운 바람이라도 훅 들어온다면 불이 깜빡하고 켜질 수 있다. 귀신이 아니라 공기의 대류가 공포를 조장하는 원흉이었다.

아하! 이제 현관 입구 등이 저절로 켜져도 귀신의 짓인가 무서워할 일이 없다! 과학 만세!

 

<치킨코인으로 배달을 시켜 보자 - 암호화폐의 과학>은 내가 여태까지 읽어 본 암호화폐에 대한 글 중에서 제일 이해하기 쉽고 명료한 글이었다.

'내(글의 저자)'가 '당신(독자)'에게 현금 5만 원을 빌리며 이에 대한 증거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다고 치자.

만약 '나'는 돈을 갚지 않으려고 이 카카오톡 메시지('내'가 '당신'에게 5만 원을 빌렸다는)를 해킹해서 지웠다면? 5만 원을 빌렸다는 증거가 사라졌으니 이 돈을 돌려받을 길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고 사람들은 은행을 이용한다. 직접 지폐를 건네는 대신 계좌이체를 통해 은행에 암호화된 기록을 남긴다. 이러면 증거 인멸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블록체인 기술이란, 말하자면 '나'와 '당신' 사이의 카톡방에 메시지를 남기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5천 만 국민이 참여하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기는 거다.

이러면 모든 사람들이 이 내용(누가 누구에게서 얼마를 빌렸다)을 알게 되고, 이 모든 사람들의 폰을 해킹해서 메시지를 다 지운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안이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용어부터 정리해보자.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가상화폐라는 표현부터 마음속에서 지우자. 가상화폐는 마치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통화와 같은 느낌이다. 정확하게는 암호화폐라고 한다. 단어의 핵심은 '암호'이며 지불 수단으로서의 화폐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필이면 최초로 발행된 비트코인이 화폐 기능에만 집중한 암호화폐다 보니, '실물화폐 대체 가능성'만이 암호화폐의 전부인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 덩달아 블록체인 기술마저도 가짜 화폐를 만들어내는 위조 수단쯤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는 실물화폐의 단순한 대체품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가치를 지닌다. 기존 화폐의 역할을 그대로 하지 않아도 좋다. 대신 탈중앙화와 암호화라는, 상당히 불가능한 상황을 동시에 만족하는 방법을 찾아낸 해결사다. 바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로 말이다.

(...)

새로운 사람의 유입이 없고, 아무런 활동도 이루어지지 않는 단톡방은 의미가 없다. 이 단톡방에는 사용자가 최대한 많이 들어와서 꾸준히 카톡을 남겨주어야 한다. 그래야 보안이 강해지며 신뢰도가 높은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행위는 반드시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중앙의 통제가 없는 탈중앙화가 가능하다. 타의에 의한 참여는 결국 또 다른 중앙을 만들어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우 의롭고 영리한 방식으로 사용자들에게 일종의 보상을 제공한다. 바로 이것이 암호화폐다. 단톡방에 많은 사용자가 참여할수록 네트워크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함께 암호화폐의 가치가 높아진다. 암호화폐를 구현하기 위해 블록체인이라는 기슬을 개발했지만 결국 블록체인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암호화폐가 필요한 것이다. 이 둘 사이의 연결이 탈중앙화와 암호화를 완성시켰고 시장의 논리에 의해 스스로 자생해갈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탄생했다.

이제야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뭔지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비트코인 따위에 투자하는 일은 없겠지만. "가즈아!"는 무슨, 한강 갈 일 있나.

 

저자는 말을 웃기게만 쓰는 게 아니라 낭만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으로도 쓸 줄 안다.

<과거의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 - 시간여행의 과학>이라는 꼭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중년을 지나 늦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상상하곤 한다. 젊은 시절의 그 혹은 그녀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것은 육체적 관계에서 파생되는 호기심보다는 훨씬 고차원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당신이 미처 만나지 못했던, 당신이 없던 시절 당신의 연인은 어떤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지 무엇을 고민하고 시간을 보넀을지 아련히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미래의 우리 모습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게 된다.

크, 아름답다. 나도 '내가 이 사람을 좀 더 일찍 만나서 나와 그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기에 이 글에 너무나 공감이 됐다.

저자가 과학자라서 이과 감성만 충만할 줄 알았더니 이렇게 로맨틱한 감성도 갖추었다. 멋있어...내가 이런 예쁜 글을 과학책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심지어 이 꼭지는 마무리도 완벽하다. 시간여행에 대한 설명을 끝내고 저자는 이 꼭지를 이렇게 덧붙인다.

머릿속 기나긴 우주여행을 끝내고 이제 당신의 하나뿐인 반쪽에게 다시 돌아오자. 다행히 연인과 혹시 과거나 미래에 도달하는 문제로 다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사랑의 결실로 예쁜 자녀를 낳게 된다면 육아에 지친 배우자에게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미처 만나지 못했던, 간절히 보고 싶었떤 너의 과거를 내가 볼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마워요.'

당신과 닮은 아이를 통해 당신의 과거를 만나고, 키워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난 시간을 회상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게 진짜 시간여행일 수도 있다. 그럼 이만 가족과 함꼐 행복한 미래로 떠나기 바란다.

궤도 너란 과학자... 감성 충만한 과학자... 너는... love...

 

조금 주접을 떨긴 했는데 어쨌거나 저자의 말투가 내 글보다 웃기다. 그러니까 과학을 잘 모르거나 크게 관심이 없는(나처럼!) 분들도 일단 그냥 재미로 한번 들춰 보시라. 재미있는 글을 읽다 보면 과학 상식이 조금씩 쌓일 것이다.

청소년이 읽어도 쉽게 술술 읽히며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굿!!

[영화 감상/영화 추천] A United Kingdom(오직 사랑뿐, 2016) - 사랑이 모든 것을 정복한다, 그러니 우리도 사랑에 굴복하도록 하자

 

 

감독: 엠마 아산테(Amma Asante)

 

배경은 1947년 영국 런던. 백인 여성 루스(Ruth, 로자먼드 파이크 분)는 자매 뮤리엘(Muriel, 로라 카마이클 분)을 따라 파티에 갔다가 그곳에서 한 흑인 남성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 남자도 루스를 보고 사랑에 빠진 듯, 그녀에게 다가와 춤을 청한다. 그의 이름은 세레체(Seretse, 데이빗 오예로워 분), 현재의 보츠와나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둘은 재즈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어느 날 세레체는 루스를 파티에 초대한다. 밤새 춤과 음악을 즐기다가 세레체는 루스를 집에 바래다 주겠다며 일어선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다닌 둘.

새벽에서 아침으로 바뀔 시간쯤, 루스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발걸음을 멈춘 그는 그에게 고백한다.

사실 자신은 보츠와나의 왕자이고, 자신이 영국에서 공부할 동안 셰키디(Tshekedi, 부시 쿠넨 분) 삼촌 자신을 대신해 섭정을 맡아 주었다고, 자신은 곧 돌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당신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면 슬프다고.

루스는 그럼 자신을 또 보면 된다고 상냥하게 대답한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

얼마 지나지 않아 세레체는 길을 가다가 무릎을 꿇고 루스에게 청혼한다. '지금 당장 대답을 할 필요는 없으니 집에 가서 생각해 보고 대답해 달라'는 세레체에게 루스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한다.

그렇지만 며칠 후, 루스의 일터에 영국 외무부 사람이 찾아와 '외교상 세레체와의 결혼은 승인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과연 세레체와 루스는 제국주의의 압박에 굴복할 것인가?

 

보츠와나에 처음으로 도착해 기쁨을 나누는 루스(왼쪽)와 세레체(오른쪽)

 

첫 딸 재클린을 안고 있는 루스와 세레체

 

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 말인즉슨, 실화 자체가 놀랍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는 뜻이다.

백인 영국 여성과 결혼한 보츠와나의 왕자 이야기는 마이클 덧필드(Michael Dutfield)가 조사해 <A Marriage of Inconvenience>란 제목의 책으로 펴냈는데, 책 제목 한번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사랑에 기반하지 않은, 가세 유지나 재산 상속 따위를 위한 정략결혼을 'marriage of convenience('편의를 위해 하는 결혼')'라고 하는데, 이 두 사람은 오직 사랑을 위해 온갖 불편함과 국가적 충돌을 초래한 결혼을 했으니 이렇게 표현한 거다. 아, 로맨틱해.

이 책은 1990년에 같은 제목의 TV용 영화로도 제작됐다.

수잔 윌리엄스(Susan Williams)가 쓴 <컬러 바(Colour Bar)>도 역시나 이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이 영화의 바탕이 된 수잔 윌리엄스의 책 겉표지 모습

 

이 로맨틱한 실화를 대략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데이빗 오예로워(David Oyelowo)가 연기한 세레체 카마(Seretse Khama)는 베추아나랜드(Bechuanaland, 1940년대 당시 보츠와나의 국명)는 그의 삼촌 셰키디가 섭정을 보는 동안 영국 런던에 와서 왕이 되기 위한 공부를 했다(세레체의 아버지는 그가 고작 3살 때 숨을 거두었다).

로자먼드 파이크(Rosamund Pike)가 연기한 루스 윌리엄스(Ruth Williams)는 런던의 보험 업계에서 일하는 타이피스트였다.

그녀는 그 전에는,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여성 보조 공군(Women's Auxiliary Air Force)에서 파일럿들을 구해 앰뷸런스로 실어다 주던 일을 했다.

 

1947년 6월, 루스의 자매인 뮤리엘이 루스를 세레체에게 소개해 주어 둘은 처음 만나게 됐다.

수잔 윌리엄스의 책에 따르면(이 영화는 그녀의 책을 바탕으로 했다), 사실 루스는 세레체에게 '첫눈에 반한' 건 아니었던 듯하다. 하지만 세레체는 그녀를 보자마자 푹 빠졌고, 둘 다 재즈 음악을 좋아했으며 처음 만난 이후 몇 달 동안 무도장에서 만나 춤을 추고 밤새 이야기를 했다.

세레체는 나중에 그녀에게 자신의 데이트 상대로 한 파티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 이후엔 여러분이 이미 들은 것처럼, 그녀에게 청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둘이 결혼을 발표하기도 전에 루스의 아버지는 자기 딸이 흑인 남자를 만난다는 사실을 못마땅해했다.

 

  

왼쪽은 실제 루스 윌리엄스와 배우 로자먼드 파이크를 비교한 사진이고 오른쪽은 실제 세레체 카마와 배우 데이빗 오예로워를 비교한 사진이다.

 

둘이 결혼 날짜를 잡자, 세레체는 삼촌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삼촌은 두 사람의 결혼을 막으려 했으며, 세레체에게 즉각 보츠와나로 돌아올 것을 명했다.

보츠와나의 관습에 따르면 족장(chief)는 그 부족이 정한 여성과 결혼해야 했는데, 백인 영국 여성인 루스가 그들의 맘에 들 리는 만무했다.

런던의 주교(Bishop of London)도 둘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이 커플은 그에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1948년 9월에 세속 예식을 통해 결혼을 했다. 세레체가 고국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아내를 받아들여 달라고 설득하기 전까지 그들은 런던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 때문에 보츠와나 왕자의 인종을 초월한 결혼 때문에 이 왕자가 왕권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를 토론하는 모임, 즉 코틀라(kgotlas)가 열렸다.

보츠와나의 여러 부족들이 모여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는데, 이 일로 삼촌 셰키디와 세레체의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1948년 겨울의 코틀라에서는 세레체와 루스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왔지만, 이 젊은 변호사(세레체는 영국 런던에서 법학을 공부했다)의 진득하게 설득하자 마침내 여러 부족들이 그의 결혼을 인정하게 됐다. 1949년 6월의 일이었다.

이렇게 보츠와나의 여론이 바뀌자, 두 달 후 루스가 보츠와나로 왔고 둘은 다시 함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위기감을 느낀 영국 정부가 (보츠와나와 남쪽의 국경을  남아프리카에서 이 둘의 결혼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당시 보츠와나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호를 요청했고, 따라서 영국에게서 내정 간섭을 받고 있었다.

또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즉 흑백 분리 정책도 실시되고 있었다. 따라서 세레체와 루스가 군주로 군림한다면, 영국 입장에서는 좋을 게 없었다.

영국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남아프리카의 황금과 우라늄 생산에 의존하고 있떤 터라, 아프리카에서 자신들의 입지가 불리해질 일을 봐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레체가 과연 왕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고, 이 때문에 그의 즉위는 늦춰졌다.


1950년대 초, 루스가 첫 아이를 임신한 사이 영국 정부는 세레체를 런던으로 불러 놓고는 '그 보고서(세레체의 자격에 관한)를 검토한 결과, 세레체를 5년간의 망명에 처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을 전달했다.

그 보고서는 분명히 세레체에게 보츠와나의 왕으로서 통치할 자격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말이다. 둘의 결혼이 그냥 마음에 안 들었던 거다.

첫 아이이자 딸인 재클린(Jacqueline)이 태어나자 보츠와나에서 잠시 만난 것을 제외하고, 루스와 세레체는 각자 있는 곳에서 세레체의 통치권을 위해 싸웠다.

1951년 10월, 수상으로 재임에 성공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그들을 지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자 이들은 희망을 느꼈다.

하지만 처칠은 자신이 속한 보수파가 권력을 잡자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세레체를 보츠와나에서 평생 추방시켰다.

당연히 세레체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결정에 충격을 받았다.

세레체와 루스는 보츠와나가 아닌 영국에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1953년 그들은 첫 아들 이안(Ian)을 보았다.

 

딱 봐도 알겠지만 왼쪽이 실제 세레체와 루스 커플 사진이고 오른쪽은 영화 내에서 배우들이 분한 모습이다.

 

평생 추방 명령이 내려진 지 6년 후인 1956년에 세레체가 왕권을 포기한다면 카마 가족은 보츠와나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루스는 1958년에 쌍둥이 아들 앤소니(Anthony)와 셰키디(Tshekedi)를 낳았고, 이렇게 가족이 점점 많아지는 동안 세레체는 소를 키웠다(영화에는 이 이야기는 안 나온다).

하지만 세레체는 1961년, 베추아나랜드 민주당(Bechuanaland Democratic Party)을 설립하며 민간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한다. 세레체는 1965년, 베추아나랜드의 첫 수상으로 뽑힌다. 그리고 1966년, 자신의 나라를 독립시키고 국명을 '보츠와나'로 바꾼다.

그는 같은 해, 보츠와나에서 처음으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다이아몬드와 풍부한 광물 자원의 도움을 받아, 보츠와나를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중간 수준의 소득을 가진 나라로 탈바꿈시켰다.

세레체는 그 후 10년간 여러 번 당선되었지만, 건강이 점점 좋지 않아져서 198년에는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그는 그해 59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보츠와나의 왕립 묘지에 묻혔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후인 2002년에 루스로 향년 78세의 일기로 그의 옆자리에 묻히며 다시 그와 하나가 되었다.

 

2009년에는 이 둘의 장남인 이안이 보츠와나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세상에, 너무나 완벽한 마무리 아닌가.

실제로 이안 대통령은 이 영화가 촬영 중일 때 촬영 현장을 (미리 알리지 않고) 방문해 로자먼드 파이크가 연기하는 걸 보더니 데이빗 오예로워에게 "부모님을 다시 뵙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데이빗 오예로워에게는 이 순간이 참 놀랍고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고.

 

위가 실존 인물 루스와 세레체의 당시 사진이고 아래는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영화에는 루스가 보츠와나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 끝에 마침내 보츠와나 여인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그 결과 보츠와나 여인들이 '세레체의 아내는 새벽별(morning star, 금성을 의미한다)처럼 빛난다네' 하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도 처음에 루스는 보츠와나 사람들에게 외면받았으나 차차 현지인들의 믿음과 사랑을 얻게 됐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보츠와나 여인들이 이런 노래를 부른 건 순전히 즉흥적인 애드립이었다고.

 

재미있는 건, 이 영화에서 사랑을 위해 자신의 왕권을 위협받을 수도 있는 인종 간 결혼을 하는 역할을 맡은 데이빗 오예로워가 실제로도 백인 여성과 결혼했다는 것.

그리고 그 대상은 영화 내에서 이 문제를 외교적 문제이자 보츠와나에서 자신의 힘을 강화하는 데 이용해 먹으려 하는 영국 외무부 직원 알리스터 캐닝(Alistair Canning)의 부인, 릴리 캐닝(Lilly Canning)의 역할을 맡은 제시카 오예로워(Jessica Oyelowo)이다!

말하자면 이 두 캐릭터는 서로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인데 실제 부부가 이렇게 서로에게 대항하는 역을 맡다니 이 무슨 캐스팅 디렉터의 장난인가!

하지만 어디까지나 연기는 연기일 뿐이고, 둘은 실제 부부다. 두 분 이 영화처럼 아름다운 사랑 계속 이어나가시길...♥

 

"사랑은 온유하고 사랑은 오래 참으며, 시기하지 아니하고..."로 시작하는 성경 말씀도 좋고,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격언도 좋다.

똑똑한 각본가들이 만들어 낸 유쾌한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도 좋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보고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있는, 조금 더 사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구나' 하고 감동을 받으며 사랑에 대한 믿음을 다시 새롭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러면 오늘 리뷰는 내가 좋아하는, 베르길리우스(Virgil)의 라틴어 격언으로 갈음할까 한다.

"Amor vincit omnia, et nos cedamus amori(사랑이 모든 것을 정복한다. 그러니 우리도 사랑에 굴복하도록 하자, Love conquers all things, so we too shall yield to love)."

 

세레체와 루스에 대한 실화를 설명한 부분은 다음의 기사를 참고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음 기사를 읽어 보셔도 좋을 듯.

https://people.com/movies/united-kingdom-movie-real-life-love-story/

http://www.historyvshollywood.com/reelfaces/a-united-kingdom/

[영화 감상/영화 추천] Marjorie Prime(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2017) - 우리를 먼저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

 

감독: 마이클 알메레이다(Michael Almereyda)

 

영화의 배경은 근미래. 여든 살쯤 되어 보이는 여인, 마조리(Majorie, 로이스 스미스 분)이 자신의 집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다. 그녀는 치매를 앓고 있다.

잠시 후, 40대쯤 되어 보이는 젊고 잘생긴 남자가 등장해 그녀에게 말을 건다.

그의 이름은 월터(Walter, 존 햄 분), 그녀의 남편이다. 월터는 마조리에게 자신들이 젊었을 적 청혼하던 날 이야기, 그들이 키우던 개 토니 이야기 등을 해 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하다가 힘든 몸을 일으켜세워 그의 곁으로 가서 앉는 마조리. 그런데 그녀의 발걸음이 그의 발이 놓인 곳은 지나쳤는데도 둘은 부딪히거나 아파하지 않는다.

이는 사실 그가 진짜 인간이 아니라 홀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고인의 모습을 쏙 빼닮은 인공 지능 컴퓨터 프로그램.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워하는 고인의 모습을 닮게 프로그래밍한 인공 지능 홀로그램 '프라임(Prime)'에게 그 고인과 자신이 나누었던 이야기 또는 추억 등을 이야기해 줌으로써 이 인공 지능이 점점 더 실제 고인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말하도록 업데이트할 수 있다.

오늘 이 홀로그램 월터는, 평소 배고프지 않다며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마조리에게 땅콩버터를 한 입 먹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마조리의 딸 테스(Tess, 지나 데이비스 분)와 그녀의 남편 존(Jon, 팀 로빈스 분)은 이 '프라임'에 대한 의견이 서로 다르다.

테스는 저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 자기 아버지의 젊을 적 모습인 게 왠지 소름 끼친다 생각하고, 존은 어쨌거나 그 인공 지능 덕분에 장모님이 오늘은 뭐라도 드셨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마조리가 젊을 적 자신의 남편과 꼭 닮은 인공 지능과 대화를 나누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테스와 존은 어머니/장모님께 들은 실제 월터에 대한 이야기, 또는 어머니/장모님이 젊었을 시절 추억 이야기를 때때로 '월터 프라임'에게 입력시키는데...

 

'월터 프라임'(왼쪽)과 이야기를 나누는 마조리(오른쪽)

 

마조리의 딸 테스

테스의 남편이자 마조리의 사위인 존

 

'월터 프라임'(오른쪽)에게 정보를 입력 중인 존(왼쪽)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던 조던 해리슨(Jordan Harrison)의 동명의 연극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마조리 역을 맡은 로이스 스미스는 이미 원작 연극에서 마조리 역을 두 번이나 연기했다.

우리가 사랑했지만 먼저 떠나 보내야 했던 고인의 외형을 꼭 닮았고 고인에 대한 추억까지 직접 업데이트시켜 실제 고인과 아주 비슷하게 말하게 만들 수 있는 인공 지능 '프라임'이 상용화되어 있는 근미래라는 설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아래 리뷰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이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아래 짤 이후부터 스크롤을 쭉 내려서 다시 잘생긴 존 햄 사진 이후에 나오는 마지막 문단만 읽으시라.

 

 

이 영화는 죽음과 기억(추억, memory)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조리는 나이 차이가 나서 자신보다 일찍 죽은 남편을 그리워했고, 그래서 '월터 프라임'과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는 마조리가 '월터 프라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어야 했지만(=정보를 입력해야 했지만), 테스와 존에게도 이야기를 들은 '월터 프라임'은 이제 간단히 그 이야기를 마조리에게 들려줄 수 있다.

마조리가 죽고 난 후, 마조리의 딸 테스는 어머니를 닮은 '마조리 프라임'을 만들어 그녀와 대화를 나누려 한다.

확실히 '마조리 프라임'은 진짜 마조리와 말투부터 다르다. 하지만 '자신(=마조리)'에 대해 알게 되면 더 마조리와 비슷해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테스는 '마조리 프라임'을 통해 모녀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딸 레이나가 자기와 도무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자기와 어머니 사이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해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마조리 프라임'을 만든 건데, 테스는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제 홀로 남은 존은 테스가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테스 프라임'에게 어떻게 테스가 죽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결국 그리움에 사무쳐 울음을 터뜨린다.

'테스 프라임'은 눈치 없게도 '괴롭겠지만, 당신이 허락한다면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라며 테스에 대해 더 이야기할 것을 종용한다. 결국 그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지만.

 

마조리, 테스, 존 모두 자신이 사랑한 사람의 죽음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프라임'을 선택한다.

마조리는 '월터 프라임'에게 자신이 월터에게 청혼받았던 날의 이야기를 듣는다(이것 역시 마조리가 먼저 '월터 프라임'에게 이야기해 줬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다 듣고 나서는 "다음부터는 우리가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My Best Friend's Wedding, 1997)>이 아니라 <카사블랑카(Casablanca, 1942)>를 고전 영화 극장에서 보고 나온 후에 자기에게 청혼받았다고 해 줘"라고 말한다.

'월터 프라임'이 "이야기를 지어내라는 거야?" 하고 놀라지만 마조리는 그쪽이 훨씬 더 멋있지 않느냐고 한다.

이 '월터 프라임'은 영화 마지막에 '프라임'만이 모인 장소에서 바로 '카사블랑카' 버전으로 '마조리 프라임'(테스가 만들어 낸)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조리 프라임'은 그 이야기가 마치 진짜라는 듯, 자신이 진짜 마조리라는 듯 '월터 프라임'의 말에 감탄하고 동의한다.

'테스 프라임'도 자신이 들었던 개(마조리네 가족이 키웠던 새까만 털을 가진 개 '토니')에 대해 늘어놓는다. 자신이 그 개를 골랐다면서.

'월터 프라임'은 잠깐 생각하다가 아니라고, 유기견 보호소에서 그 개를 고른 건 데미안(테스가 어릴 적 자살한 오빠)이었다고, 마치 방금 기억난 듯 말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존이 술에 취했을 때 '월터 프라임'에게 해 준 이야기이다. 알고는 있되 테스에게 티내지는 말라면서 해 준 비밀 이야기.

'월터 프라임'이 가족 내에서는 금지되었던 거나 마찬가지인 데미안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두 '프라임'들은 "그래, 맞아. 나도 기억나."라며 '월터 프라임'의 이야기에 수긍한다.

그러면서 존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존을 찾는 듯한 '월터 프라임'의 아리송한 표정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수염이 텁수룩하게 자랐으며 손녀에게 물을 받아 약을 먹는 늙은 존의 모습을 잠시 보여 주기는 한다).

 

'프라임'들은 혼자서 옛날 일을 추억할 수 없다. 왜냐하면 '프라임'의 외형이 아무리 그 고인을 닮았다한들 그 고인 본인이 아니니까.

추억이라는 것은 그 고인을 기억하는 다른 이들이 입력해 줘야만 '프라임'이 알 수 있는 것이다. 한번 정보가 입력되면, 영화 초반에 테스가 비유하는 것처럼 '프라임'은 그 추억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자신이 겪어 보지도 않은 그 일을 말이다.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일이라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충격이 너무 커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기억을 억제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자신에게는 중요하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아니면 마조리처럼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뇌의 기능이 떨어져서 기억의 일부를 잃는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에게 "예전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잖아요." 하고 이야기해 주는 일은? 그것도 우스운 일일까?

그렇게 본다면 '프라임'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게 그렇게까지 우스워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프라임'들을 통한 추억은 진짜 기억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이들이 동의하는, '완벽하게 객관적인' 진실이란 없다.

같은 일이라도 개인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고, 각각 다르게 기억한다.

따라서 내가 어떤 '프라임'에게 내가 가진 추억을 주입하는 것은, '내 버전'의 해석만을 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고인이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프라임'들이 아무리 다정하게, 지치지 않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 주더라도, 그건 그저 공허한 소리, 녹음기를 플레이한 것에 불과하다.

다양한 관점이 없는, 단 한 가지의 관점에서 본 이야기가 재생산되는 것일 뿐.

 

테스는 존에게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기억 이론'을 설명해 준다.

우리가 어떤 일을 기억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실제로 그 일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마지막으로 그 일을 기억했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윌리엄 제임스는 주장했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실제 또는 원본과는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마치 복사기로 복사한 문서를 다시 복사하고 또 복사해서 점점 원본보다 흐릿해지는 것처럼.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프라임'들에게 자기 추억을 이야기해 주고, 그 '프라임'들이 그 이야기를 똑같이 게워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내가 본 (정식 발매된) DVD에서는 '월터 프라임'에게 존이 존대말을 하는 것으로 번역돼 있었는데, 사실 이것도 아주 까다로운 문제이다.

존이 정말 '월터 프라임'을 자기 장인과 동일한 존재로 여기고 그에게 존대말을 할까?

기본적으로 모든 등장인물이 '프라임'을 'you'로 부르고 그 '프라임'의 바탕이 된 고인(예를 들어 테스가 만들어 낸 '마조리 프라임'이라면 테스는 이 '프라임'을 '마조리', 즉 엄마처럼 대한다)의 이름으로 호칭하게 되어 있다. 그게 이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인 듯하고, '마조리 프라임'은 이 원칙을 지켜 줘서 고맙다는 말도 한 번 한다.

그렇지만 그 '프라임'과 고인을 동일시하지 않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며, 사실 그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가깝지 않을까.

고인을 얼마나 닮았든 간에, 인공 지능 프로그램 따위가 실제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 위에서 이야기한 '추억'의 다양한 면모 때문에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마음을 달랠 수 있다면야...

이런 기술이 실제로 상용화되더라도 사회적인 문제로 발현할 것 같지는 않지만, 개인이 이런 '차이'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인간의 감정까지 비슷하게 흉내 내며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로봇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의 <그녀(Her, 2013)>나 알렉스 가랜드(Alex Garland)의 <엑스 마키나(Ex Machina, 2014)>도 떠올랐다.

인간이 된다는 것, 로봇이 인간과 비슷해진다는 것의 의미를 이 영화들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혹시나 이 영화의 원작인 연극이 국내에서 공연된다면 꼭 한번 가서 보고 싶다.

[영화 감상/영화 추천] Life, Animated(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 2016) - 자폐인들도 소통을 원한다

 

감독: 로저 로스 윌리엄스(Roger Ross Williams)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촬영 당시) 23세의 자폐 청년 오웬 서스카인드(Owen Suskind).

그는 자폐인들의 자립을 돕는 교육 전문가들이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는 내년에 이곳을 졸업한 후 독립하여 혼자 살기로 되어 있다.

그의 아버지인 론 서스카인드(Ron Suskind)와 어머니 코넬리아 서스카인드(Cornelia Suskind)의 말에 따르면, 그는 세 살부터 갑자기 말을 잃어버리고 자기 안으로 침잠했다고 한다.

그의 변화에 당황한 부모님이 그를 소아과 의사와 전문의에게 데려간 후 얻은 진단은 그에게 발달상의 장애가 있다는 것.

자기는 '피터 팬', 아버지는 '후크 선장'이라고 역할놀이를 하며 칼싸움을 하던 귀여운 소년은 이제 부모님과 눈도 맞추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웬이 자폐의 증세를 보이기 이전부터, 그리고 보이고 난 후에도 꾸준히 좋아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디즈니(Disney)사의 만화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3살 터울의 형 월트 서스카인드(Walk Suskind)는 디즈니 만화를 보는 게 동생이 자기 옆에서 활짝 밝게 웃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동생과 같이 낡은 VHS 비디오를 같이 봐 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론은 오웬이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모든 대사를 다 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몇 번이고 돌려 본 나머지, 그는 모든 만화의 장면과 대사를 다 암기하게 된 것이다.

그때 론과 코넬리아는 한 가닥의 희망을 본다. 아들이 디즈니 만화를 교과서 삼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는 정말로 디즈니 만화를 통해 세상을 배워 나가고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 오웬 서스카인드

 

오웬 서스카인드의 아버지 서스카인드는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등지에 글을 기고하고 퓰리처상까지 받은 뛰어난 글솜씨로 자신과 아들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이 책을 바탕으로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보통 비장애인들이 웬만큼 크고 나서는 '유치하다'며 졸업하는 디즈니 만화 영화를 통해 삶을 배우는 자폐인 청년 이야기라니,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보게 됐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감동적일 줄이야. 내가 어릴 적 다니던 교회에 자폐인 남자애가 있었고 또 지금도 내 주위에 자폐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기에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아 더 몰입해서 보게 됐다.

 

오웬은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러 가면 총알처럼 재빨리 차에 타길래 무슨 일이 있느냐 물으면 없다고 대답하긴 했는데, 매일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실로 가서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사이드킥(sidekick, 영웅을 보좌하고 도와주는 캐릭터, 예를 들어 <인어 공주>의 세바스찬이나 <미녀와 야수>의 찻잔 모자와 촛불, <라이온 킹>의 티몬과 품바 등)들을 잔뜩 그렸다. 영웅은 한 명도 그리지 않고.

아버지가 오웬에게 왜 사이드킥만 그리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 사이드킥 같은 기분이라고 대답했단다.

그는 그렇게 사이드킥만 그린 노트 끝에 "나는 사이드킥들의 보호자이다. 그 어떤 사이드킥도 홀로 남겨지지 않는다(I am the protector of the sidekicks. No sidekicks gets left behind)."라고 썼다.

그리고 '마지막 사이드킥의 땅(The Land of the Last Sidekick)'이라는 짧은 이야기도 썼다. 이야기는 대략, 어린 소년이 사이드킥들이 사는 땅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들을 보호해 주는 '보호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오웬의 어머니는 이 일을 떠올리며 오웬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러티브를 이용했다는 점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다.

나 역시 무척 놀랐다. 나는 왜 자폐인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나의 무지를 반성한다. 자폐인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이 느낀 것에 대해 표현하려는 욕구도, 또한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 존재들인데.

 

말이 나온 김에, 자폐인에 대한 많은 이들의 잘못된 생각을 깨부수어 줄 장면을 언급해야겠다.

오웬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다! 여자 친구도 같은 자폐인이고, 이름은 에밀리(Emily)이다.

오웬은 그녀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주고, 에밀리는 고맙다며 자신이 만든 미키 마우스 목걸이를 그에게 답례로 건넨다.

둘은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귀엽고 입술이 맞닿는 부드러운 뽀뽀도 한다. 놀라셨는가? 그렇다. 자폐인들도 사랑을 한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아껴 주고 배려해 주는 그런 사랑을.

둘이 있는 걸 보면 정말 귀엽다. 비록 말은 어눌할지라도 서로를 정말 좋아하는 게 느껴져서 흐뭇하다.

다만 사교적, 사회적인 표현은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해서 그런지 뭐 작은 거 하나 해 주면 꼬박꼬박 고맙다고 하고("Aww, thank you!"), 상대방이 어쩌다 다치면 "괜찮아?" 꼭 물어보고 그럼 또 그 사람도 "나는 괜찮아." 하고 안심시켜 준다.

약간 교과서의 영희와 철수 대화 같은데, 뭐, 어차피 표현은 어설프다 해도 중요한 건 마음이니까. 사실 고맙다, 괜찮냐 같은 말은 좋은 말이니까 꼬박꼬박 한다고 해서 나쁠 게 뭐가 있겠는가. 하면 할수록 좋은 거지.

 

어쨌거나 마침내 오웬이 독립해서 새집에 혼자 살게 되자, 오웬은 여자 친구 에밀리를 집에 부른다.

그리고 둘이 하는 것은 너무나 건전한, 쿠키 굽기와 디즈니 만화 보기. 너무나 순수해서 귀엽고 사랑스럽다.

다만 오웬의 형 월트는 오웬이 이제 디즈니 만화에서 배울 수 없는, 더욱 현실적인 것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프렌치 키스(혀를 사용하는 키스)나 섹스에 대해 가르쳐 주려고 어색하게 말을 꺼낸다.

월트는 오웬도 다른 이들과 똑같은 욕구를 가진 남성이니 알 건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물론 맞는 말이다. 디즈니 만화에서는 입술이 포개지는 가벼운 키스 이상은 묘사하지 않으니까[각주:1].

순수라는 것은 분명 아름답고 좋은 거지만 평생 순수한 소년/소녀 상태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오웬의 몸은 이미 2차 성징을 거쳐 성숙한 남성이 되었지만, 그의 마음과 정신은 아직 소년이다. 그는 성장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 과정에는 단연코 불쾌한 일, 슬픈 일, 고통이 뒤따르지만, 그걸 이겨내야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성인이 될 수 있다.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월트 말대로 혀를 사용하는 키스나 성관계에 대해서도 오웬은 배워야 한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알고 경험하는 게 모른 채로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게다가 자폐인들은 알지 못하는 것, 예상할 수 없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며 그런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녀 사이의 스킨십이나 성관계에 대해서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안 그러면 우리가 왜 애들에게 '아기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설명하려고 무진 애를 쓰겠는가?). 이는 분명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의 일부이다. 죄악시할 만한, '모르는 게 낫다' 할 정도의 비도덕적이거나 음란한 문제도 아니고.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월트가 쑥스러운 주제에 용기를 내서 오웬에게 프렌치 키스에 대해 가르쳐 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에밀리가 오웬에게 결별을 고했다는 것.

오웬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한다. "왜 삶은 불공평하고 고통과 비극으로 가득 차 있는 거예요?"

어머니는 말한다. "얘야, 삶은 원래 그런 거란다."

오웬은 다시 묻는다. "그럼 저는 진실을 직면하고 평생 슬퍼해야 해요?"

어머니는 대답한다. "아니, 진실을 직면하되 앞으로 차차 나아질 거라고 믿어야지." 이 부분에서 정말 눈물샘이 폭발할 뻔했다.

애인과의 헤어짐이나 졸업, 구직 같은 문제는 누구나 힘들어하는데 왜 인생이 이렇게 괴로운 일이 많은 건지 묻는다면 '원래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밖에 해 줄 말이 없지 않나...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려고 애쓰고 있는 오웬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이라는 게 참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라는 게 더 가슴이 아팠다.

 

디즈니사의 작품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만화 영화라는 것은 대개 캐릭터의 감정과 얼굴 표정을 과장하여 표현한다.

예를 들어 부끄러우면 얼굴 전체가 빨갛게 변하고, 기쁘면 입이 정말 귀에 걸릴 것처럼 헤벌쭉 벌어진다.

타인의 표정과 감정을 읽기 어려워하는 자폐인들에게는 분명히 얼굴 표정 및 감정 교육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역시나 디즈니사의 작품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만화 영화라는 것은 그 표현에 한계가 있다.

대개 아동을 타깃으로 하는지라, 캐릭터들의 행동이나 이야기의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아주 추상적이거나 부정적인(예를 들어 범죄라거나 심각한 폭력 등) 이야기는 다루지 못한다.

사랑과 우정, 역경을 견디고 성공하는 불굴의 정신 같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에서나 통하는 이런 핵심 가치들은 묘사할 수 있지만, 그것도 아주 깊이 다루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서, 만화에서는 한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웬을 사회성 발달을 도와주는 선생님 말대로, 그 나이대(20대 초반)에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나지는 않는다. 그건 좀 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또한 정말 자기 짝을 만났다고 생각해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나중에 서로의 노력 부족 또는 다른 사정으로 인해 이혼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오웬이 마주하게 되면 오웬은 또 얼마나 상처를 받고 슬퍼할까.

 

영화 중후반쯤에 오웬은 프랑스에서 열린 자폐 학회에 초대받아 연설을 하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대개 사람들은 우리(자폐인)가 다른 사람들과 있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다른 이들(비자폐인)과 같은 것을 원합니다.

다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connect) 방법을 모를 뿐입니다."

나도 자폐인들은 타인을 싫어해서 밀어내는 거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자마자 '아, 그들은 그저 관계 맺기가 서투를 뿐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사실 자폐인들도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고, 또 노력한다. 오웬이 다니는 학교에서 디즈니 만화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디즈니 클럽'을 만든 것도 오웬 본인이다(내 자폐 친구도 자신의 사회성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사교적인 모임에 의식적으로 참가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에서 오웬과 내 친구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에밀리에게 차이고 나서도 에밀리를 저주하거나 하지 않고 먼저 다가가 친구처럼 지내자고 제안하는 오웬.

그에 비하면 나는 오히려 인간관계가 귀찮다는 이유로 적당히 선을 긋고 살아가려고 했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누군가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나는 그저 게을렀던 게 아닐까?

 

오웬은 졸업 이후 독립해서 사는 삶에 적응하고, 헤어진 에밀리와 친구로 지내게 되며, 면접을 본 후 영화관에 일자리도 얻는다.

오웬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죽고 난 후에도 오웬이 독립적으로 살며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나도 오웬의 성장을 응원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자폐인들과 그들의 가족이 힘을 내서 꿋꿋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자페인 가족을 두었거나 또는 자폐인 친구를 둔 사람들에게 그 소중한 이의 마음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이 이 다큐를 제작하는 데 오웬 서스카인드라는 다큐 주제 인물의 특성상 디즈니 만화의 클립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디즈니 측을 설득해서(감독 표현대로 하자면 '변호사들을 울려서') 실제 출시된 디즈니 만화의 영상을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알라딘>의 자파(Jaffa) 역의 성우와 이아고(Iago) 역의 성우도 중반에 깜짝 등장하니 <알라딘>을 비롯한 디즈니 만화의 팬이라면 이를 놓치지 마시라!)

그런 의미에서 디즈니 만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만화를 통해 삶을 배운 이들, 그리고 그 만화와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된(알아야만 했던) 모든 '어른이'들에게도.

  1. 참고로 디즈니에서 '임신한 여성'을 묘사한 것은 2000년작 <쿠스코? 쿠스코!(The Emperor's New Groove)>에서 치차(Chicha)가 여태까지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이다. 그 전까지 섹스는 그것이 법적인 부부 사이에서라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아주 초기에는 부모 관계조차 묘사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간접적으로나마 성관계를 암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날드 덕의 세 조카 휴이, 듀이, 루이를 떠올려 보시라. 삼촌-조카 정도의 관계가 디즈니가 묘사할 수 있는 최선의 '가족' 관계였다. [본문으로]

[영화 감상/영화 추천] 원더 휠(Wonder Wheel, 2017) - 사랑이란 정말 외부의 불가항력적인 힘일까?

 

 

감독: 우디 앨런(Woody Allen)

 

1950년대의 미국 코니 아일랜드(Coney Island). 수상 안전 요원인 믹키(Mickey, 저스틴 팀버레이크 분)는 이 영화의 해설자를 자처하며 이야기를 연다.

그는 이제 막 이 유원지 섬에 도착한 캐롤라이나(Carolina, 주노 템플 분)를 보여 준다.

그녀는 마피아인 남자와 열렬한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가 그와 싸우고 나서 그와 헤어져 다시는 자신을 찾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아버지 험티(Humpty, 제임스 벨루시 분)를 찾아 이곳에 왔다.

캐롤라이나가 험티를 찾아 길을 묻다가 한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지니(Ginny, 케이트 윈슬렛 분)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험티의 현 부인이다.

험티를 찾아온 캐롤라이나를 집에 들어오게 하고 잠시 이야기를 하던 지니. 그런데 험티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자기 딸 캐롤라이나를 보자마자 대뜸 화를 낸다.

그 내용인즉슨, '우리(험티 본인과 캐롤라이나의 생모)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끔찍이 아꼈는데 그런 마피아 놈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해? 네 인생 네가 마친 거지! 나는 다시 너 못 받아 준다', 뭐 그런 말이었다.

하지만 캐롤라이나는 남편의 부하가 자기를 쫓고 있어서 목숨이 위험하며, 돈이 단 한 푼도 없어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다고, 이곳에서 지내게 해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험티는 다시 딸을 사랑하던 마음을 회복하고 자신과 지니, 그리고 지니가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 리치(Richi, 잭 고어 분)와 사는 이 집에서 살게 해 준다.

예민하다 못해 히스테리컬까지 한 지니, 불같은 성격의 험티, 그리고 이 동네 남자들의 눈을 모두 사로잡을 미녀 캐롤라이나, 이 셋 사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또한 믹키는 이들과 무슨 관계가 있길래 이 이야기의 화자를 자처하는 것일까?

 

영화의 '내레이터' 역을 자처하는, 낭만적 기질의 믹키.

 

믹키와 바람을 피우는 상대인 유부녀 지니. 한때 배우였으나 지금은 수산물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 신세다.

참고로 뒤쪽에 초점이 흐릿하게 나온 여자가 캐롤라이나다.

 

캐롤라이나를 쫓아 온 마피아들에게 자기는 지난 5년간 딸을 본 적도, 이야기한 적도 없다고 거짓말 중인 험티(맨 왼쪽).

 

지니(가운데)가 캐롤라이나(오른쪽)와 길을 가다가 믹키(왼쪽)를 만나 믹키와는 그냥 친구인 척하며 캐롤라이나를 소개해 주는 장면.

이때부터 지니는 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우디 앨런(Woody Allen) 감독이 아마존 스튜디오(Amazon Studios)와 협력해 만든 영화로, 현재 국내에서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한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국내에 DVD가 정식 발매되어서 난 그걸로 봤다.

케이트 윈슬렛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우디 앨런과 작업했다. 이전에 <매치 포인트(Match Point, 2005)>로 같이 일하게 될 뻔했으나, 케이트 윈슬렛이 이 프로젝트에서 빠지는 바람에 이번에야 처음 만나게 됐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주요 인물 모두 나름대로 매력과 사연이 있다. 그중 제일 내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지니와 믹키이다.

지니는 너무나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불안한 인물이다. 늘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날카로워진다.

지니는 험티라는 (두 번째) 남편을 두고 믹키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 그 (현재) 애인에게 자기 과거, 그러니까 첫 남편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자기가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고 자신에게 사랑이 뭔지 가르쳐 준 사람은 그 첫 남편인데, '어쩌다 보니' 그 남편을 두고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게 됐단다(바람을 피우는 건 길을 가다가 미끄러운 걸 밟고 넘어지는 것 같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는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첫 남편과 헤어지고 난 후에 마음을 꾹 다잡고 험티에게 마음을 붙이고서 살아 보려 했는데 그것도 또 잘 안 돼서 지금은 믹키랑 바람을 피우는 거다.

변명 없는 무덤은 없다더니. 애초에 그 첫 남편을 정말 진심을 다해 사랑했다면 애초에 그 바람 상대(지니와 같은 공연을 하던 상대역이었다)와 외도를 한 걸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마음속으로는 첫 남편을 깊이 사랑했어도, 자신은 그에게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을 사보타주(sabotage) 하는 방식으로 자기도 모르게 바람을 피우게 된 게 아닐까, 그렇게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런데 자기가 바람을 피웠다는 말을 왜 지금 자기가 바람을 피우는 상대에게 하는 걸까? 그건 정말 모르겠다. 심지어 지니는 이런 말을 믹키에게 하고 나서 자기와 믹키가 점점 진지한 사이가 되어 간다고 여기고 언젠가는 미래도 함께할 수 있다(=결혼할 것이다)고 믿게 된다.

이 무슨... 믹키는 여름 시즌만 이곳에서 일할 '수상 안전 요원'인데? 여름이 지나면 그 둘의 관계도 끝날 것임을 모르는 걸까? 뭐, 알아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수산물 레스토랑 일은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니어서 자기는 그냥 '웨이트리스'를 연기하는 거라고 말할 정도니까(지니는 원래 배우였다).

어쨌거나 나는, 지니가 매번 남편을 놔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게 만드는 그녀의 정신 세계가 흥미로웠다.

 

믹키 역시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인물이다. 그는 지니의 '애인'인데, 캐롤라이나를 만나고서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이 상황이 이해가 되는가? 자기가 바람 피우는 유부녀의 딸(피는 섞이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양녀지만)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라니!

보통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유부녀의 애인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겠지만, 믹키가 애초에 그런 '보통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 아니라서...

사실 믹키도 그녀가 유부녀란 사실을 알고 시작한 건 아니다. 알고 나서도 자기가 그런 거에 놀랄 줄 알았느냐며 둘 관계를 이어간 건 분명히 자기 의지이지만.

그런데 그래도 대개 자기 애인의 양녀라고 하면 뭔가 그래도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기에는 좀 꺼려지는 관계 아닌가?

물론 캐롤라이나를 보고 예쁘다, 미인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성으로 보고 설렘을 느낀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건 뭔가 죄를 짓는 기분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믹키에게는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처음에는 얼굴을 보고 반하고, 몇 번 만나 보고 나서는 그녀의 스릴 넘치는 인생(마피아 남편을 만나 화려하고 부유하게 살다가 헤어져 지금은 쫓기고 있는 인생) 이야기를 듣고 감동까지 한다.

믹키는 극작가를 꿈꾸는 시인이라 그런지 너무나 낭만적이다. 여기서 낭만적이라는 건 남녀 사이의 이성적인 감정뿐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에 솔직하다는 의미이다. 환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고 할 수도 있고.

그는 사랑이 외부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강력해서 도저히 밀어낼 수 없고, 이성으로 행동할 힘까지 뺴앗아버리는 그런 것이라고.

그러니까 지니에게 반한 것처럼 캐롤라이나, 그러니까 보통 웬만해서는 이성적인 관심을 가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관계의 대상하고도 사랑에 빠지는 거다.

보통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마음을 조절할 줄 알거나 최소한 그러려고 노력이라도 한다. 예를 들어 친구가 좋아하는 이성에게 나도 관심이 가지만 둘 사이가 잘 진행되거나 이미 사귀니까 나는 마음을 접어야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믹키는 캐롤라이나가 지니의 양녀라는 사실은 전혀 마음에 걸리지 않는 듯하다. 그에게 단 한 가지 문제는, 캐롤라이나가 점점 좋아지는데 이 사실을 어떻게 지니 모르게 하고 캐롤라이나와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다.

 

나도 모르게 사로잡혀 빠져 버리게 되는 사랑이란 개념은 참 낭만적이지만, 100% 늘 진실인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해도,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으면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내 말은, 세계 최고 미남 미녀를 보고서 '와, 잘생겼다/아름답다'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자기 애인을 버리고 그 사람에게로 갈아탈 만큼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랑에 쉽게 빠지는 건, 사랑이 내 내면이 아니라 외부에 따로 존재하는 어떤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사랑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고 순전히 우연에 의한 신비로운 존재가 되어 버리고, 따라서 애인에게 충실하지 못할 수 있다.

원래 처음 사랑에 빠지면 그 황홀함과 고통이 얼마나 강렬한가. 좋은 건 더 좋고 나쁜 건 배로 나쁘게 느껴진다. 거의 마약 같은 그 사랑의 첫 시기가 지나고 나면 그 열정이 안정되면서 서로가 좀 더 편해지고 익숙해지는 시기가 온다.

일명 '콩깍지'가 벗겨지고 점차 현실이 인식되는 시기다. 상대의 단점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이때 위기도 찾아온다. 나를 사로잡았던 강력한 열정이 사라지고 나니 뭔가 내게서 빠져나간 거 같다. 왜 예전만큼 행복하지 않지?

사랑이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라 믿으면 이때 '사랑이 식었다'고 믿게 된다. 사랑은 수명을 다했다. 나는 그/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그녀는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왜냐, 마음이 더 이상 설레지 않으니까.

하지만 사랑은 우리와 관계없이 따로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걸 느낄 수 있는 거지. 내가 잠시 사랑의 힘에 속박되었던 거라 생각하면 열정과 관심이 시들해지면 상대에게도 소홀해지게 된다.

하지만 오래 알콩달콩 잘 사귀는 연인들을 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초기의 열정이 식은 후에도 서로 예의라고 할까, 지킬 것은 지킨다. 이 사람의 성격과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을 알고 있으므로 그런 것들을 이해하고 배려해 준다.

예를 들어 당장 애인과 싸웠어도 이 사람과 헤어질 정도가 아니라면 적당히 자신과 상대의 유형에 맞게 최대한 빨리 그날 이내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아니면 열이 식을 때까지 좀 기다렸다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이 문제를 생각을 해서 대화로 풀어 나가자,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사랑에 빠지는 건 외부의 어떤 강렬한 힘 덕분이라 쳐도, 사랑하는 관계를 이어나가는 건 나와 상대의 의지에 달려 있다. 사랑은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서로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둘이 최대한 대화를 통해 고쳐 나가든가 적어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 후 거기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여기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믹키는 이런 개념이 전혀 머리에 없으니 캐롤라이나라는 새롭고 신선한 힘이 나타나자마자 바로 거기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가 지니의 방해 없이 캐롤라이나와 사귀게 되었다 해도 둘이 정말 행복하고 오래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나갔을까? 글쎄, 내가 보기엔 그럴 가망은 전혀 없다.

사랑을 낭만적으로 신화화하면 이런 덫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디 앨런은 전작 <마이티 아프로디테(Mighty Aphrodite, 1995)>에서 감독은 '고대 희랍 비극'의 모습을 보여 주려 했다.

<원더 휠>에서는 믹키의 입을 빌려 다시 한 번 고전 비극에서 주인공의 몰락을 가져오는 결함(문학 용어로 이를 'tragic flaw'라고 부른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믹키가 자기 기질은 너무 낭만적이라고 이야기할 때 지니도 한 남자에게 충실하지 못한 자신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한 것인데, 이 장면이 아마 이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단적으로 딱 보여 주는 장면이 아닌가 한다.

캐롤라이나는 지니의 불안정하고 히스테릭한 성격에 휘말려 피해를 입은 불쌍한 희생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고. 험티 역시 지니라는 여자를 잘못 만나서 딸을 잃고 망연자실하게 됐다.

학부 시절에 한 교수님이 "운명이란 성격 더하기 시간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이 딱 이 상황에 들어맞는 듯하다.

같은 사건이라도 개인의 성격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니 그 결과는 당연히 다를 것이고, 따라서 개인의 운명은 그 사람의 성격으로 어느 정도 점칠 수 있다는 게 교수님의 말씀이셨다.

지니가 그렇게 바람을 피우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믹키와 애인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캐롤라이나는 지니의 질투와 분노로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개인의 성격, 기질, 결함,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의 운명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다. 또한 사랑에 대해서도 숙고하게 한다.

흥미로운 드라마이자 성격 연구인 영화를 찾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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