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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Moonshot(문샷, 2022) - 이... 이게 뭐지?

 

 

감독: 크리스토퍼 윈터바우어(Christopher Winterbauer)

 

태양에 가는 게 꿈이지만 이미 우주와 관련한 지원에는 수십 번 낙방한 월트(Walt, 콜 스프로즈 분). 그는 바로 어제 만난 '여자 친구' 지니(Ginny, 에밀리 러드 분)를 보러 가기 위해, 남자 친구 켈빈(Calvin, 메이슨 구딩 분)을 만나러 화성에 가는 소피(Sophie, 라나 콘도르 분)에게 붙어서 우주선을 타려다가 실패한다. 그래서 우주선 통풍관을 통해 잠입, 일단 지구를 떠나는 데는 성공하는데, 과연 들키지 않고 무사히 화성에 도착할 수 있을까?

 

⚠️ 이 영화 비평은 <Moonshot(문샷, 202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이게 뭐지?' 영화를 보고 난 내 감상은 솔직히 이랬다. 많은 이들이 라나 콘도르가 이 영화에서 <내가 사랑한 모든 남자들에게(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 2018)>에서 맡았던 역할을 재탕한다고 하는데, 적어도 <내가 사랑한 모든 남자들에게>는 이것보다 재밌었다. 또한 그 영화는 '동양계 여자애'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원작 소설의 저자인 제니 한이 라라 진의 캐릭터를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을 그대로 살려야만 영화 제작을 허가하겠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인 덕분이다. 많은 제작사들이 라라 진을 '백인' 여자애로 바꾸고 싶어 했다). 어쨌든 이것보다 좀 더 나았다고! 근데 이 영화는... 정말 뭔지 모르겠다.

일단 콜 스프로즈의 캐릭터가 너무 어이가 없다. 자기가 평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태양에 가려고 이런저런 수를 쓰지만, 그중 하나도 성공하지 못한다. 애초에 월트가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에서 추방당하지 않은 것도, 이미 레온 코비(Leon Kovi, 잭 브라프 분; 일론 머스크에서 따온 게 너무나 분명한 '자수성가 괴짜' 백만장자 캐릭터)가 그가 우주선에 침입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으나 그의 존재가 우주선의 여행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에 0에 수렴했기에 '어차피 방해도 안 되는 거, 놀게 해 주자'라는 심정으로 이를 눈감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해, 그의 꼼수는 눈곱만큼도 통하지 않았다. 정말 재능이나 실력이라는 게 약에 쓰려도 없는데 이렇게 우주선에 잠입도 그냥 눈감아 주고 심지어 나중에는 레온 코비 측에서 회사 홍보 모델('얘처럼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어!')로 쓰려고 한다고? 백인 남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할 일이다. 이런 일이 다른 인종, 또는 여성에게 일어날 만한 일이라 보시는지?

뭐, 그래도 콜 스프로즈가 그런 월트의 캐릭터를 잘 살렸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는 진짜 딱 별거 없는데 낙천적이면서 자기가 평범하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아는 백인 남자애를 기가 막히게 연기한다. 이건 마치 악역을 맡은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배우 본체가 그런 악당인 것처럼 느껴져서 한 대 패주고 싶거나 욕을 한 사발 해 주고 싶은 그런 느낌이다. 배우 자체는 죄가 없다. 맡은 역할을 너무 찰떡같이 연기해서 그런 거지. 근데 그런 캐릭터가 너무 짜증이 난단 말이야!

게다가 영화가 전반적으로 너무 '독특해'지려다 너무 과해진 느낌이다. 적당한 수준이면 톡톡 튀는 매력이 될 텐데, 그게 너무 과해지면 "나...난... 토마토지롱 ㅜ^ㅜ!!"(이게 뭔지 모르시는 분들은 여기를 클릭하시라)이 된다는 걸 모르는 걸까. 소피, 그러니까 라나 콘도르의 캐릭터는 긴장하면 긴장을 풀려고 춤을 춘다는 설정이 있는데, 이 무슨...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나? 개성이 과도해서 그냥 민망스러운 사차원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또한 이야기 흐름도 저세상이다. 소피와 월트가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커플인 척해야 한다는 설정도 억지스러운데 그게 끝이 아니다. 우주선의 선장은 그냥 어떤 구실을 붙여서든 파티를 열고 싶어 하고, 월트는 테라포밍의 전문가인 캘빈인 척하려다가 감상적인 개인 일화를 늘어놓는다. 그런데 또 거기에 감동 받은 두 레즈비언 커플이 (미루고 미루던)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한다. 월트는 테라포밍에 대해 적당히 꾸며내지도 못하고 개인적인 얘기, 그것도 허섭한 얘기로 빠졌는데 거기에 감동을 받는다? 진짜 무슨 말도 안 되는... 각본 쓰기 참 쉽죠?

이 영화는 HBO 맥스에 최초 공개되었다가 석 달만에 서비스가 중지되었다(출처). 구체적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평이 좋지 않아 시청 회수가 적으니 내린 게 아닌지 추측된다. 나는 이걸 빈지(Binge)라는 플랫폼에서 봤는데, 이미 구독하는 서비스니까 따로 가욋돈이 안 들어갔으니 봤지, 내 돈 주고 사서 봤다면 더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현재 이 영화 평을 쓰고 있는 2022년 9월 초 기준 IMDB 평도 5.5점이다. 6.0점 정도는 되어야 영화 때깔은 갖추었다 할 수 있는데 이건 그 이하니 말을 말도록 하겠다. 어쩜 영화 자체가 월트처럼 뭔가 대단한 것이 되고 싶어 하지만 실상은 별 볼 일 없는 게 똑 닮았는지.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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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Look Both Ways(두 인생을 살아봐, 2022) - 인간이 가치를 선택한다는 것, 그리고 가치가 가치 있다는 것

 

 

감독: 와누리 카히우(Wanuri Kahiu)

 

냇(Nat, 릴리 라인하트 분)은 대학 졸업식 날, 삶의 여정을 가르는 큰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첫째, 계획 세우기 좋아하고 모든 걸 꼼꼼히 확인하는 성격의 냇과 정반대인 남사친 게이브(Gabe, 대니 라미레즈 분)와의 하룻밤 실수에서 임신해 버렸을 경우. 둘째, 반대로 임신이 아니었을 경우. 19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이휘재의 'TV 인생극장'처럼 냇의 인생은 이 변수 하나로 완전히 다르게 진행된다. 

 

⚠️ 아래 영화 비평은 영화 <Look Both Ways(두 인생을 살아봐, 202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영화는 작은 변수 하나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병렬적 구조로 보여 준다. 편의상 냇이 임신했을 경우를 A라고 하고, 임신하지 않았을 경우를 B라고 하자. 그 A와 B 경우가 한 장면씩 번갈아 가며 영화가 진행된다. 그런 편집은 처음 봣서 신선했다. 

영화는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결국은 다 괜찮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아니면 최소한 '얼마나 어렵고, 무섭고, 괴로워 보이는 일이든 살아낼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지도). 영화 마지막에 냇은 자신이 절친 카라(Cara, 아이샤 디 분)의 응원을 받으며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했던 그 화장실을 다시 찾는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과거의 자신 또는 미래의 자신에게 속삭이듯 "넌 괜찮아(You're OK)"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냇이 임신하지 않았을 경우(B)가 훨씬 더 낫다. 왜냐하면, 임신하지 않았을 때의 냇은,

  1. 절친 카라와 같이 LA로 가서 같이 룸메이트로 지내며 우정을 다질 수 있었다. 
  2. 임신을 하지 않았으니 부모님네 댁으로 다시 돌아가 신세를 질 일이 없었다. 따라서 부모님 걱정도 시켜드리지 않고, 경제적 지원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효도지.
  3. 대니가 아니라 제이크(Jake, 데이빗 코렌스웻 분)와 사귀게 되었는데, 대니보다 제이크가 훨씬 더 자신의 커리어에서 잘나간다. 수입도 당연히 더 많을 듯.

따라서 나는 B의 경우가 훨씬 잘 풀렸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이들은 '하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를 가지게 되었잖아요! 그게 모든 걸 다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요!'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존중한다. 하지만 나처럼 아이를 원치 않는 사람의 경우 아이에 부여하는 가치가 높지 않으므로 이들과 동일선상에서 논의를 하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한쪽에서는 '아이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라고 주장하는데 다른 쪽에서 '아닌데요'라고 한다면 이 얘기는 끝없이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 이외에, 다른 이들이 모두 동의할 만한 가치, 예컨대 내가 위에서 언급한 우정, 효도, 부(富)를 내세워서 '각각 이게 1점씩의 가치가 있고요, 그래서 아이를 낳았을 때보다 3점의 가치가 앞서니까 아이를 갖지 않았을 때가 더 이득입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의 가치를 높이 사는 사람은 '뭐? 하지만 아이는 한 번에 1점이 아니라 3점, 또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어요!'라고 하겠지. 물론, 이렇게 기본적으로 전제가 완전 다르니 이야기는 절대 둘 다 동의할 만한 결론에 다다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에 대해 곱씹어보다가 나는 아이스킬로스가 쓴 고대 희랍의 희곡 <오레스테이아>, 그중에서도 정확히는 <에우메니데스(자비로운 여신들)>를 떠올렸다. 오레스테이아는 3부작 비극인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들 오레스테스가 누이인 엘렉트라와 함께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이유: 어머니가 오레스테스의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였다. 클리타임네스트라도 자기 남편 아가멤논을 죽일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딸 이피게네이아를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 신에게 제물로 바쳤기 때문이다) 신들에게 사면받는 이야기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나서 분노의 여신들에게 쫓긴다. 정의를 구현하려는 분노의 여신들은 오레스테스를 죽이려 한다.

물론 오레스테스의 입장에서 어머니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으니 이를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은 일견 정당해 보인다. 하지만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어머니다! 자신을 낳고 키워 준 어머니를 감히 자식이 죽일 수 있나? 게다가 클리타임네스트라도 그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죽은 딸의 복수)가 있었다. 분노의 여신들에게 쫓기던 오레스테스는 아테나 여신에게 도움을 구한다. 아테나 여신은 오레스테스를 재판에 세운다. 열두 명의 아테네 시민들은 이 안건에 완전히 의견이 갈린다. 여섯 명은 '어머니를 죽인 것은 정당한 행위였다', 다른 여섯 명은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인데?'라며 합의를 보지 못한다. 이렇게 인간의 판단으로는 도저히 결론이 안 나자, 아테네 여신이 나서서 오레스테스의 편을 들어준다. 아테나는 애초에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으니 여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명예 남성'쯤 되는 존재다. 그래서 남성의 편을 들어 준 것이다(와, 정말 고대 희랍에서 페미니즘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구나! 다른 신도 아니고 여신이 그런 결정을 내리다니). 어쨌거나 아테나의 캐스팅 보트로 판은 7 대 6이 되고 오레스테스는 죽음을 면한다. 그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생략.

내가 길게 오레스테스 이야기를 늘어놓은 건, 이게 인간이 가치를 선택한다는 점, 그리고 가치가 가치 있다는 점을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죽인 데에 따른 벌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죽인 것은 정당한 일인가? 그것은 인간이 쉽사리 단정해 말할 수 없는 문제다. 열두 명의 아테네 시민들 의견이 정확히 반으로 갈렸듯이, 양쪽 의견 다 어느 정도 근거와 설득력이 있다. 복수라는 개념도 정당하고, 부모에 대한 공경이라는 개념도 똑같이 정당해서 인간이 딱 잘라 '이게 저것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신)가 끼어들어 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넘겨 줘야 했던 것이다. 말인즉슨, 첫째, 어떤 가치가 되었든 그것은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그 가치들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낫다고 확언하는 것은 신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말장난 같지만 이게 인간사의 큰 전제이다.

예를 들어보자. 조국 수호와 개인의 행복, 안전 또는 가정 부양 모두 다 귀한 가치라는 데는 모든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일제강점기 시대의 한국인들처럼 말이다. 섣불리 뭘 하나 고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둘 다 100% 유효하지만, 그중 하나만 선택하려고 하면 그에 따른 책임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의 행복, 안전이나 가정 부양을 포기하고 조국 수호를 선택한 독립 운동가들을 우리가 존중하는 것이다. 그 결정으로 인해 그 개인이 겪어야만 했을 고통과 괴로움뿐만 아니라 그 결정이 그 주위와 사회에 끼친 영향도 우리가 알기에, 그들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졌는지를 우리가 알기에. 물론, 개인의 행복, 안전이나 가정 부양은 귀한 가치이지만 또 별 어려움 없이 이것들만 선택해 나라를 팔아먹는 결정을 내린 이들을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또한 타당하다. 모든 가치가 나름대로 귀하다는 전제가 우리로 하여금 양비론에 빠지거나 범죄자들을 옹호하게 할 이유는 될 수 없다.

보통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상황을 겪을 가능성은 낮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 자체는 매일매일 겪는다. 배가 고픈데 건강에 좋은 것을 먹을까, 또는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을까? 직접 요리해 먹을까, 사 먹을까? 사 먹는다면 직접 가지러 갈까, 아니면 배달시킬까? 이런 사소한 결정을 우리는 하루에 백 번쯤 내릴 것이다. 그리고 어떤 가치를 선택하든 (영양? 손쉬움?) 그것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으니 어떤 것을 조금 더 중시하느냐의 문제가 될 뿐이며, 개인은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한다. 자기가 손쉬움과 빠른 만족을 위해 패스트 푸드나 고칼로리 배달 음식을 먹는 선택을 해 놓고서 누굴 탓하겠느냐는 말이다. 본인이 내린 결정으로부터 어떤 지혜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랄 뿐.

길게 늘어놓긴 했는데,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거였다. 냇에게 아이가 생겨서 그걸 낳았든, 애초에 임신을 하지 않았든, 그 상황에서 냇은 결정을 내렸고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며 살아왔다. 그래서 마지막에 냇이 "넌 괜찮아"라고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인간이 가치를 선택한다는 사실과 가치는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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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Persuasion(2022, 설득) - 원작의 앤 엘리엇은 어디로? 망한 로맨틱 코미디가 되어 버렸다

 

 

감독: 캐리 크랙넬(Carrie Cracknell)

 

앤 엘리엇(Anne Elliot, 다코타 존슨 분)은 8년 전, 웬트워스(Wentworth, 코스모 자비스 분)라는 남자와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당시 웬트워스는 돈도 별로 없는, 별 볼 일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허영심과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아버지 월터 엘리엇 경(Walter Elliot, 리차드 E. 그랜트 분)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돌아가신 앤의 어머니를 대신에 앤을 아끼고 돌봐 주는 레이디 러셀(Lady Russell, 닉키 아무카 버드 분)도 그와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들에게 '설득'되어 웬트워스와 헤어진 앤이지만 아직 그를 완전히 잊지 못하고, 예쁘고 여러 면에서 아버지를 똑 닮은 첫째 (언니) 엘리자베스(Elizabeth Elliot, 욜란다 케틀 분)와 자기밖에 모르고 앓는 소리가 심한 막내 (동생) 메리(Mary Elliot, 미아 맥켄너-브루스 분) 사이에서 새우 등 터지며 존재감 없이 지내왔다.

그런데 어느 날, 앤이 아직도 그리워하는 앤트워스가 영국 해군의 '대령'으로 크게 성공해서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리고, 앤네 가족이 이사 간 곳에서 그와 마주치게 되는데...

 

조카들과 같이 놀아 주며 숲 속을 달리는 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 좀 더 자세히 쓰겠다)
대령이 되어 나타난 웬트워스
왼쪽 검은 옷이 앤, 그 옆의 두 흑인 여성은 메리의 시누이들, 그리고 맨 오른쪽이 메리 (앤 옷이 검정색인 것도 의상 문제다. 현대화하고 시크하게 하는 건 좋지만 검은색이라니? 상 중이란 말인가? 당시 여성들의 의상은 파스텔, 밝은 톤이 대다수였다)
맨 왼쪽부터, 클레이 부인(Clay, 리디아 로즈 뷰리 분), 엘리엇 경, 앤, 그리고 맨 오른쪽이 앤의 언니 엘리자베스.

 

다들 알다시피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정말 여러 번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지만, 오늘 이야기할 이 영화만큼 구리고 '망한' 버전도 없을 거다.

 

이 영화는 나름대로 <설득>을 현대화해 보겠다고 야심차게 시도했으나 그 야심이 무색할 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좋게 에둘러 말해 주는 셈이다.

클래식을 현대화해 보겠다는 시도는 무슨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되어 버렸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도 사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대한 모욕에 가까울 것이다.

적어도 <브리짓 존스의 일기> 1편(속편들은 무시하고)은 잘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인데, 이건 진짜 그 수준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평론가들이나 관객들의 후기도 여럿 참고해 봤는데, 의상이나 고증 같은 전문가적인 면은 따지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있다.

바로 가장 중요한, 주인공 '앤 엘리엇'이라는 인물의 캐릭터성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이다.

<설득>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앤은 8년 전에 헤어진 웬트워스가 이제는 대령이 되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물론 설렘과 두려움, 걱정 등 복잡한 감정을 느끼지만 그걸 대놓고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다.

레이디 러셀에게 설득되어 그의 청혼을 거절했을 때에도 그 슬픔을 혼자 삭였지, 레이디 러셀이나 아버지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나 결혼하지 말라는 거냐고 불같이 화를 내며 따지지 않았다.

앤의 내면에는 분명히 슬픔과 후회가 있지만, 그것을 겉으로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혼자 슬퍼하는 데에서 우리 독자들은 그녀와 공감하고 그녀에에 이입하며 그녀를 안타깝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 앤은 처음부터 대놓고 자기가 8년 전 헤어진 남자를 못 잊고 있다고, 제4의 벽을 뚫고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고백하며,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는 순간에도 빈정대는 말을 하거나 눈을 굴림으로써 '약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려 한다.

이건 뭐, 감독 본인이 슬픔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꾹 삼키며 겉으로는 미소를 지어야 하는 상황을 묘사해야 한다면 관객이 그걸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 같다.

애초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 때 '앤 엘리엇'이라는 캐릭터를 좀 더 현대식으로 업데이트하고 싶었고, 그래서 앤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 현대 슬랭까지 구사하게 만들었지만, 결론적으로 앤 엘리엇의 캐릭터성은 사라졌다. 그냥 그런 현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I never trust a ten(나는 외모가 10점 만점 중 10점인 사람은 안 믿는다).'이라니. 언제부터 앤이 이렇게 속물적인 인간이었지?

대체 언제부터 앤 엘리엇이 옛 애인을 향한 그리움을 '베토벤을 들으며'(이 시대에 무슨 라디오나 CD가 있다고 자기 방에서 혼자 베토벤을 들어? 정말 얼탱이가 없다) '레드 와인을' 마시며 달랜단 말인가?

위에 첨부한 스틸 컷 중에 앤이 조카들과 숲 속을 뛰며 같이 놀아 주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도 소설 속 앤과 딴판이다. 소설 속 앤도 조카들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같이 숲에서 놀거나 하는 식으로 '아웃도어'한 사람은 아니다. 조용한 내향형 앤을 완전히 인싸로 바꾸어 놨네.

조카들이랑 놀아 준다고 잼을 인중에다가 콧수염처럼 바르는 장면은 또 어떻고? 아이들에게 다정한 거랑 식사 예절을 모르는 건 엄연히 다른 일이라고!

그리고 내가 제일 얼탱이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던 장면은 이거다. 앤이 메리네(메리는 자기 두 언니들보다 먼저 결혼했다)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하는데 웬트워스 대령도 있는 자리다.

그 자리에서 앤은 의자를 끼이익 소리가 나게 시끄럽게 끌어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게다가 밑도 끝도 없이 "찰스(Charles Musgrove, 벤 베일리 스미스 분; 메리의 남편, 그러니까 앤 입장에서는 제부)는 메리랑 결혼하기 전에 원래는 나랑 결혼하려고 했어요."라는 말을 꺼내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든다.

????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설득>을 안 읽어도 상식적으로 귀족 아가씨가 의자를 시끄럽게 끄는 소리를 낸다는 게 말이나 되나? 식사 예절은 안 배웠단 말인가? 게다가 '제부는 원래 나랑 결혼하려고 했어요'라니, 이건 뭐 유치한 질투 유발 게임이야, 뭐야? 앤 엘리엇이 10대 소녀냐? (물론 앤은 20대 후반, 그 당시 기준으로 '노처녀'다).

제인 오스틴 소설을 망쳐도 유분수지 정말 이건 너무 얼탱이가 없어서 <설득>을 읽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와중에도 이건 너무 아니다 싶어서 제인 오스틴이 무덤에서 돌아눕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다코타 존슨이라는 배우를 내가 싫어하는 건 아닌데, 이 영화에서 다코타 존슨을 앤으로 캐스팅한 것도 실수 같다.

앤은 분명 소설 속에서 미모로는 언니 엘리자베스보다 못하, 젊을 적엔 예뻤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 미모는 시든  것으로 묘사돼 있다. 그런데 다코타 존슨은 대놓고 예쁜 편 아니냐고!

아무래도 미디어 산업에서 어떤 역이든 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으로 캐스팅하는 게 흔한 일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대놓고 예쁜 배우를 앤으로 캐스팅하는 건 그냥 '앤 엘리엇'이란 캐릭터를 잘 살리는 데는 관심이 없고, 그 배우의 티켓 파워를 이용하겠다는 심산인 거 같다.

애초에 앤 엘리엇을 잘 살리고 싶었으면 각본을 그따위로 썼을 리가 없지. 암. 그렇고말고. 각본이 이따위인데 다코타 존슨 아니라 다코타 존슨 할아버지가 와도 '눈 굴리기'와 '빈정대는 말'을 넘어설 수가 없을 것이다.

 

레이디 러셀 역의 닉키 아무카 버드. 레이디 러셀은 죽은 앤의 어머니의 절친이자 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인물이다.
엘리엇 씨 역의 헨리 골딩

 

이 영화의 '특이한' 점, 또는 약간 논란이 되는 점이라면 인종적으로 다양한 캐스팅을 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레이디 러셀도 흑인, 위에서 언급한 앤의 제부, 찰스도 흑인이고, 메리의 시누이들(찰스의 누이들)도 따라서 흑인이다. 

나름대로 중요한 인물인 엘리엇 씨(Mr Elliot, 헨리 골딩 분)는 동양인 배우, 헨리 골딩이 맡았다.

나는 이 인종적으로 다양한 캐스팅에 별 불만은 없다. 소설 자체가 역사에 기반한 것도 아니고, 그 시대에 흑인이나 동양인이 영국에 단 한 명도 없었을 리가 없으니까. 상상력을 펼쳐서 다양한 인종을 캐스팅한 것 자체는 좋은 시도라고 본다.

애초에 이 영화는 다양한 인종 캐스팅은 문제 측에도 낄 수가 없을 정도로 문제가 많기 때문에, 이건 진짜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

앤 엘리엇부터 살려내, 나쁜 놈들아! 😭 캐릭터를 망쳐도 엔간히 해야지!

 

내가 본 어떤 비디오 에세이에서는 유튜버 본인이 조용하고 수줍음 많이 타고 내성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앤에 공감할 수 있어서 앤이 최애 캐릭터였다고 말했다. 나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앤처럼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생각이 깊은, 그리고 다소 수동적인 인물을 영화/드라마처럼 시각적인 매체에서는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걸 나도 안다. 

그 인물의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이 오고가는지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으니까. 독백을 하든, 다른 인물들과 대화를 하든 어떻게든 그걸 대사로 풀어내야 한다. 

하지만 내성적인 인물은 시각적 미디어에서는 도저히 설 자리가 없단 말인가? 내성적인 인물도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인물이 될 수 있는데! 

그런 인물을 잘 풀어내지 못하면, 매력적으로 잘 그려내지 못하면 그건 그냥 작가의 능력이 그 정도인 거다. 

 

더 이상 이야기해 봤자 내 손가락만 아플 거 같다. 이미 망한 영화를 무슨 수로 살려내리오...

제일 좋아하는 제인 오스틴 원작 소설 영화/드라마가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다 다를 수 있지만, 이 영화가 원작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책을 읽기 귀찮아서 영화/드라마로 접하려고 해도 이 버전만은 꼭 피하시길. 원작을 망쳐도 이렇게 완전 주인공의 성격을 바꿔 버리는 법이 어디 있어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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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2022,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아시아 여성 네오!

 

감독: 댄 콴(Dan Kwan), 다니엘 쉐이너트(Daniel Scheinert)

 

세탁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왕 씨 부부, 이블린 왕(Evelyn Wang, 앙자경 분)과 웨이먼드 왕(Waymond Wang, 키 호이 콴 분).

그들의 딸인 조이 왕(Joy Wang, 스테파니 수 분)은 베키(Becky, 탈리 메델 분)와 사귀는 레즈비언이지만, 이블린은 이를 아버지(즉, 조이의 할아버지)인 공공(Gong Gong, 제임스 홍 분)에게 숨긴다. 공공이 자기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듯이, 조이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이는 그런 엄마가 밉다. 하지만 이블린은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새해(아마도 음력 새해) 파티 준비도 해야 하는데 미국 국세청에 내야 할 세금 관련 서류가 하나둘이 아니다.

게다가 깐깐한 국세청 직원 디어드레(Deidre, 제이미 리 커티스 분)는 무섭기 짝이 없다.

그래도  휠체어를 탄 아버지(공공)를 모시고 낑낑대며 국세청에 갔는데 갑자기 남편 웨이먼드가 엘리베이터에서 이상한 말을 한다.

자신은 이블린의 남편 웨이먼드가 아니고 어디 다른 멀티 유니버스(multi universe)에서 온 다른 웨이먼드라나?

그리고 디어드레를 만나기 전에 청소도구함으로 가서 뭘 하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게 다 뭐래?

 

에블린(뒷줄 왼쪽)과 웨이먼드(뒷줄 오른쪽), 그리고 공공(앞줄 휠체어)
에블린(뒷모습)과 조이(차에 기대 있는 쪽)
웨이먼드가 하라고 준 이상한 일들 목록. 이게 뭘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IMDB에서 이 영화의 평점은 8.3점이다(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난 6점만 넘어도 영화 구실은 한다고 생각하며, 대체로 7점을 넘으면 정말 좋은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참... 새롭고 낯설다.

내가 이 영화 리뷰의 부제에 썼듯, 이블린은 "아시아 여성 네오(Neo)"라 묘사할 수 있겠다. <매트릭스(1999, The Maxtrix)>의 주인공 네오 말이다.

스포일러를 하고 싶진 않고, 특히 이런 영화는 사전 정보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봐야 더 신선하고 즐거울 것 같아 자세히는 묘사하지 않겠지만 딱 그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의 답이 '42'라는 더글라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스러운 유머도 살짝 첨가되어 있는데, 이건 보시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듯.

그리고 직접적으로 묘사는 못 하지만 아래 장면들 연출은 정말 미쳤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와 씨... 진짜... 와...

어휘력이 부족해서 이런 말밖에 못하는 게 아쉬울 뿐.

 

 

아 맞다. 이 영화는 로맨스, 성장기, 호러, SF, 다큐 등등 다양한 영화 장르를 포함하고 있기에 'everything'이 'all at once' 하게 모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제목도 그런 거고.

이 해석을 IMDB 트리비아에서 봤는데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다. 하, 미친... 진짜 이런 거 알게 되는 거 너무 좋아!!

 

영화를 보면서, 또 보고 나서 '아니, 무슨 약을 하셨길래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하셨어요?' 싶었는데, 리뷰를 쓰려고 찾아보니까 감독 중의 한 명(댄 콴)이 <스위스 아미 맨(2016, Swiss Army Man)> 감독이었다. 어쩐지... 

이걸 볼 기회가 있다면 꼭 한 번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진짜 그 정도로 신선하고 충격적이고 놀라운 영화였다. 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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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Shiva Baby(2020, 시바 베이비) - 대니엘의 더럽게 재수 없는 날

 

 

감독: 엠마 셀리그만(Emma Seligman)

대니엘(Danielle, 레이첼 세노트 분)은 슈가 대디(sugar daddy, 간단히 말해 원조 교제남)인 맥스(Max, 대니 맥퍼라리 분)와 있던 와중에 엄마에게 '오늘 장례식 가는 거 기억하지? 언제 올 거니?'로 시작해 아빠 험담으로 이어지는 전화를 받는다.

맥스에게는 적당히 둘러대고 불평이 가득한 엄마를 만나러 간다. 고물 같은 아빠 차를 타고 유대인식 장례식인 '시바(shiva)'에 도착.

대니엘은 이제 그곳에서 졸업하고 나서 뭐 어떻게 할 거냐는 엄마아빠, 그리고 다른 친척 및 지인 어른들의 걱정인 척하는 잔소리 공격에 시달린다.

게다가 대니엘의 구 여친인 마야(Maya, 몰리 고든 분)도 거기에 있다! 와, 오늘 무슨 날이냐. 구 여친은 졸업 후에도 잘 사는 거 같은데 이렇다 하고 내세울 게 없는 대니엘은 자존심이 상하다. 

문제는 그것뿐 아니라 시바에서 자기 슈가 대디인 맥스를 만났다는 것! 둘의 사이가 들통날까 조마조마한데 심지어 엄마아빠는 맥스에게 우리 대니엘에게 일자리를 구해 줄 수 없겠느냐 슬며시 찔러 보기까지 한다. 아 엄마 제발... 

욕이 절로 나오는 이 '시바'를 어떻게 견뎌 나가야 한단 말인가?

 

고난의 연속인 시바를 경험 중인 대니엘
대니엘의 구 여친 마야. 약간 우사미 눈 짤이 생각나는...
대니엘의 슈가 대디 맥스. ㅈ됨을 직감한 표정...

 

두 회 연속 제목이 욕처럼 들리는 영화들을 리뷰하게 되었다... (저번은 <졸라>였다.)

2022.06.17 - [영화를 보고 나서] - [영화 감상/영화 추천] Zola(2020, 졸라) - 트윗에서 영화로? 트윗이 더 재밌는 거 같은데...

 

[영화 감상/영화 추천] Zola(2020, 졸라) - 트윗에서 영화로? 트윗이 더 재밌는 거 같은데...

[영화 감상/영화 추천] Zola(2020, 졸라) - 트윗에서 영화로? 트윗이 더 재밌는 거 같은데... 감독: 자니크자 브라보(Janicza Bravo)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졸라(Zola, 테일러 페이지 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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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를 보면 대니엘이 베이글을 들고 있고, 베이글이 장식처럼 놓인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영화를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어릴 때(십 대쯤?) 대니엘도 통통한 편이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살이 빠졌고 주위 어른들은 죄다 "굶어서 뺀 거니? 뭐 좀 먹어라"라고 꼭 한마디를 던지고 간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 그렇게 말을 해 대니 진짜 스트레스를 먹을 걸로 풀 수밖에 없다. 음, 나도 베이글이 먹고 싶어지는군...

 

영화의 최소 70%가 장례식(이 열리는 누군가의 집)에서 진행된다.

과거 플래시백도 없고, 장례식 오기 전(영화 극초반)과 장례식을 떠날 때(영화 후반) 말고는 장례식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셈인데,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한 공간(물론 화장실이라든지, 집 옆 마당 같은 곳으로 인물들이 조금 왔다 갔다 하긴 한다)에서 오직 갈등, 사건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힘이 있다는 건 인정해야겠다.

대니엘의 하루가 꼬이는 과정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포스터 윗쪽에도 자랑스레 로고를 박아 놨듯이) 이런저런 영화제에서 그렇게까지 좋은 평가를 받을 정도로, 또는 IMDB에서 대개 높다고 여겨지는 점수(7.1점)을 받을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형편없는 게 아니라는 점은 확실히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대단한지는 모르겠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영화.

뭐가 속시원하게 사이다스러운 결말인 것도 아니고, 대니엘의 미래는 암시되는 정도로만 끝이 나는데 이렇게 애매하고 소극적으로 끝을 맺는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냥 봤다는 데 의의를 두려고 한다.

네이버 영화 보니까 국내에 들어오지는 않은 거 같은데, 역시 그럴 만하다...

나중에 네이버온 시리즈나 넷플릭스 같은 OTT에 풀린다면 한번 거들떠 볼만은 하지만 쉽게 찾아볼 방법이 없다면 굳이 구하려고 엄청 애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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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Zola(2020, 졸라) - 트윗에서 영화로? 트윗이 더 재밌는 거 같은데...

 

 

감독: 자니크자 브라보(Janicza Bravo)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졸라(Zola, 테일러 페이지 분)는 우연히 손님으로 만난 스테파니(Stefani, 라일리 코프 분)와 급속도로 친해진다.

졸라가 스트리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테파니는 졸라에게 아는 클럽이 있다며 플로리다로 가자고 한다. 그곳에 가면 단시간에 돈을 많이 벌어올 수 있다면서.

그래서 떠난 로드 트립. 그런데 그 여행은 스테파니와 졸라뿐이 아니고, 스테파니의 남자 친구 데렉(Derrek, 니콜라스 브라운 분)과, 스테파니와 정확히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는 흑인 남자(콜맨 도밍고 분)가 있다. 과연 이 여행은 어떻게 될 것인가?

 

왼쪽부터 데렉, 스테파니, 가운데가 졸라, 맨 오른쪽이 X (그의 이름은 영화 중후반에 밝혀진다)
플로리다로 가는 중인 주인공 일행. 앞의 금발이 스테파니, 뒤에 걱정하는 게 졸라
스테파니와 졸라

 

트위터에서 가히 '서사시' 뺨치는 길이와 스토리텔링으로 큰 관심을 받은 트위터 스레드(thread)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이 트윗이 언급되기 시작할 때 들어는 봤고, 또 영화로도 제작된다는 소리를 들은 것은 기억이 나는데 실제 만들어진 영화를 본 건 바로 며칠 전이다.

다 보고 나서 별점을 매길 겸 왓챠 피디아를 열어 보니 이 영화에 별점을 남긴 사람이 262명이나 된다. 이걸 이렇게나 많이 봤다고? 

 

개인적인 감상은 '이걸 굳이 영화로?'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 후기를 쓰기 전에 트윗(원 트윗은 삭제된 지 오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들이 캡처해서 저장한 이미지 파일은 아직도 찾아볼 수 있다. 아래 링크를 달아 놓았다)을 다시 읽어 보았는데 솔직히 이야기만 따지고 보면 원 트윗 주인이 쓴 이야기를 크게 각색하지는 않았고, 사건 순서를 진짜 조금 바꾸거나 등장인물들 이름을 바꾼 정도다.

이야기는 크게 손을 안 댔다는 건데, 왜 영화로 보니까 이렇게 재미가 없지? 아무래도 트윗에 기대하는 바와 영화에 기대하는 바는 달라서 그런 게 아닐까.

트윗은 대체로 뻥을 좀 섞을 수도, 과장을 좀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실화에 기반을 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게다가 이건 같은 이야기라도 푸는 사람에 따라 좀 더 맛깔나게, 재미있게 표현할 수가 있다(따지고 보면 이게 영화에서 연출의 역할일 것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얼마든지 지어낼 수도 있고, 이야기가 아닌 다른 것(화려한 볼거리, 미장센, 연기 등등)으로도 '재미'를 보충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런 걸 잘 못하는 것 같다. 두 주인공이 스트리퍼이긴 하지만 아예 대놓고 '스트립쇼하는 걸 봐라!! 스트립쇼 발사!!' 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런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두 주인공이 대놓고 막 싸우는 갈등도 없다.

큰 갈등은 영화 후반에 나오는데, 그게 내 생각에는 약간 너무 후반이었다. 이걸 좀 더 앞으로 당겼으면 좋았을 텐데.

원 트윗을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는 원 트윗의 이야기를 다 담고 있지 않다. 에필로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십여 개의 트윗에서 언급된 내용을 완전히 빼먹었더라.

근데 그것까지 넣었으면 다룰 이야기가 좀 늘어나니까 갈등이 빵 터지는 시기를 조금 앞당길 수 있고, 그럼 앞부분이 지루하다는 느낌도 많이 줄어들었을 것 같다. 딱 좋을 텐데 이걸 왜 뺐을까? 아쉽다.

 

평을 내리자면 '영화를 보느니 트윗을 읽는 게 낫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게 시간이 덜 드니까.

참고로 원 트윗을 시간순으로 캡처해 놓은 이미지 파일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dontdiewondering.com/check-out-the-full-zola-twitter-thread-ahead-of-jaw-dropping-new-movie/ 

 

Check Out The Full 'Zola' Twitter Thread Ahead Of New Movie | DDW

If you were an avid Twitter user back in 2015, chances are you might be familiar with the famous 148-tweet thread by stripper Aziah Wells, better known as Zola.

www.dontdiewonder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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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Best Sellers(베스트 셀러, 202) - 제목은 베스트 셀러지만 내용은...

 

 

감독: 리나 로슬러(Lina Roessler)

루시 스탠브리지(Lucy Stanbridge, 오브리 플라자 분)는 아버지의 출판사를 물려받아 어떻게든 그 명맥을 이어가려고 애쓰는 젊은 편집장이다.

그녀의 출판사에서 나름대로 기대했던 판타지 소설이 완전히 망했기 때문에 그녀는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야만 한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괜찮은 신인 작가가 안 보여서, 아버지 시절에 계약서를 써 놨던 기존 작가 중 한 명인 해리스 쇼(Harris Shaw, 마이클 케인 분)에 희망을 걸어 보기로 한다.

그래서 비서인 레이첼(Rachel, 엘렌 웡 분)을 데리고 직접 찾아갔더니, 성격이 완전 괴팍한 할아버지다. 

하지만 이 작가가 아니면 도저히 어떻게 책을 팔(=돈을 벌) 구석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호시탐탐 이 출판사를 노리는 밉상인 잭(Jack, 스코트 스피드먼 분)에게 이 아버지의 회사를 넘길 수밖에 없으니까.

더럽고 치사해도 좀 맞추어 주면서 책 좀 팔아 보는 수밖에.

 

고양이 한 마리 키우면서 고립된 삶을 사는 작가, 해리스 쇼
그런 해리스를 어떻게든 이끌어나가야 하는 루시

 

영화 좀 봤다거나 눈치가 빠르시다 하는 분들은 위에 간략히 정리한 시놉시스만 봐도 대략 각이 나올 것이다.

'아, 루시가 아버지의 회사를 위해 성격 더러운 해리스에게 맞추어 주다가 둘 다 점점 정이 들어서 친구가 된다는 이야기겠구나?'

100% 정확하다. 나도 영화 초반에 영화 진행이 이렇게 될 거라 점쳤는데 정말 꼭 들어맞았다.

뒤로 가면서 약간 감동 또는 슬픔을 유도하려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솔직히 나는 그게 제일 별로였다.

 

이 영화의 제일 큰 문제는 너무나 뻔한 이야기를 뻔한 방식으로 풀어 나간다는 것이다.

해리스 쇼는 재능은 있지만 사회성이 부족하다. 자기 책을 홍보하고 더 많이 팔 수 있게 도와주는 자리인 낭독회에서도 진지하게 책을 낭독하기보다는 관객 또는 루시를 모욕하는 데 관심이 있다.

루시는 이 꼴이 더럽고 치사하지만 관둘 수 없다. 왜냐하면 그만이 유일한 돈줄이고, 어떻게든 그를 성공시키지 않으면 자신의 회사를 팔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시는 어떻게든 해리스를 잘 도닥이면서 이 북 투어를 이끌어나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리스는 그냥 우리가 루시의 고난을 웃으며 넘기기에는 너무 짜증날 정도로 고집이 세고 무례하다. 루시는 이 짓을 관둘 수도 없는데!

아무리 해리스가 재능이 있는 작가라 해도 이렇게까지 무례하고 전반적으로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구는 게 용납될 수 있나?

글쎄. 난 아니라고 본다. 적어도 나는 그런 걸 보고 싶지 않다.

 

이 영화가 어떻게 하면 좀 덜 뻔하고 좀 더 나아졌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봤는데, 일단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이 작가 캐릭터가 너무 별로인 거 같다.

마이클 케인이 대단한 배우인 건 인정하지만 이건 캐릭터 설정 자체가 너무 별로여서 그의 연기로도 커버를 칠 수가 없었다고 본다. 

아니, 어쩌면 그가 연기를 잘해서 더 밉상으로 보이나. 하지만 애초에 마이클 케인이 이 캐릭터를 각본 그대로 밉상인 캐릭터로 해석한 것도 놀랍긴 하다.

어쨌거나, 왜 보통 베스트 셀러, 또는 베스트 셀러까진 아니어도 꽤 재능 있는 작가라고 하면 대체로 남성을 떠올리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성격이 괴팍한(또는 사회성이 부족한)'이라는 특징과 그런 작가를 연결 지을 때는 십중팔구 남성이다.

마치 재능이 있으면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성격이 좀 나쁜 건 용서된다는 식으로. 아마 남자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절대 안 그러겠지만(애초에 여자가 '재능'만으로 그만큼 인정받을 수나 있나?).

그러니까 차라리 '성격이 괴팍한' '재능 있는 작가'라는 캐릭터를 여성으로 설정했으면 조금은 덜 뻔하지 않았을까?

이 작가를 어떻게든 캐리해야 하는 편집자 역으로 남자를 넣으면 로맨스로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같은 여성으로 만들어서 여성들의 유대, 자매애, 우정을 다룬 영화로 만들어도 좋았겠다(오히려 더 좋아!).

 

전반적으로 쓰레기 영화는 아니고 IMDB 평점도 6점은 (0.1점 차이로) 간신히 넘긴 했다. 못 봐줄 영화는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와, 정말 괜찮다' 싶은 영화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분명 더 잘 만들 수도 있었는데 너무 뻔해서 평범해지고 매력이 없어진 케이스랄까.

제목은 '베스트 셀러'인데 딱히 영화계의 '베스트 셀러'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냥 평범하고 예측 가능한 영화다.

무료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엄청 대단한 걸 기대하지는 마시라. 그렇다고 완전 볼만한 가치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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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Unpregnant(2020, 언프레그넌트) - 엿 먹어라, 미주리 주 입법 기관! 

 

 

감독: 레이첼 리 골든버그(Rachel Lee Goldenberg)

 

영화는 미주리 주의 한 고등학교 여자 화장실에서 시작된다. 아이비 리그를 목표로 할 만큼 똑똑하고 예쁘며 나름대로 학교에서 '잘나가는' 17세 소녀 빅토리아(Victoria, 헤일리 루 리차드슨 분)는 초조한 마음으로 임신 테스트기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실수로 임신 테스트기는 그녀가 있던 화장실 칸막이 아래를 통해 화장실 정중앙으로 미끄러져 가 버리고 만다.

누가 이걸 보기 전에 임신 테스트기를 잡아 와야 하는데, 아 망했다! 누가 들어왔다!

목소리로 보아 하니 이건 베일리(Bailey, 바비 페레이라 분)다. 빅토리아와 베일리는 어릴 적에 친한 친구였는데, 지금은 소원한 사이가 됐다.

아마 둘의 성격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빅토리아가 모범생이라면 베일리는... 자유로운 영혼 또는 반항아라고 할까. 두 소녀들의 머리 색깔이 다르듯 성격도 확연히 다르다.

어쨌거나 베일리는 (아직 이 임신 테스트기가 누구 것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은 차가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다면 누구든 도와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이미 베일리와 소원한 사이. 베일리는 빅토리아가 화장실에 혼자 있다는 것을 알고 살짝 놀리지만, 그래도 비밀은 비켜 주기로 한다.

이때 갑자기 화장실에 빅토리아를 찾는 여학생이 들어오고, 베일리는 그 임신 테스트기를 들키지 않게 몰래 숨겨 가지고 나가 학교 쓰레기 폐기장에 던져 버린다. 그러면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지만 어쩌다가 학생들이 그걸 발견하고, 빅토리아의 친구들은 '임신한 여학생이 누굴까' 알아내는 데 몰두한다.

물론 그게 자기라는 걸 밝힐 수 없는 빅토리아는 당장 계획 짜기에 돌입한다. 미주리 주에서 미성년자가 부모의 동의 없이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은 없다. 가장 가까운 곳은 뉴 멕시코 주에 있는 앨버커키란 곳.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밤새, 그리고 내일 하루 종일 달려서 일요일 아침에 앨버커키에서 수술을 받고 저녁에 다시 돌아오면 된다. 

다만 문제는, 빅토리아가 운전은 할 줄 알지만 몰 수 있는 차가 없다는 것. 차가 있는 사람이 누구지? 음... 베일리? 베일리에게 부탁해 봐야 하나? 이미 멀어진 사이인데 부탁하면 들어줄까?

 

앨버커키에 있는 Planned Parenthood(임신중절 수술을 비롯한 생식 건강과 관련한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에 갈 계획을 세우는 중인 빅토리아
베일리(왼쪽)와 빅토리아(오른쪽)
빅토리아의 남자 친구 케빈
약 1천 마일의 여행 후 거지 꼴이 된 베일리(왼쪽)와 빅토리아(오른쪽)

 

제니 헨드릭스(Jenni Hendriks)와 테드 카플란(Ted Caplan)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위 시놉시스에서 볼 수 있듯이, 미성년자의 임신과 임신 중절술을 다루고 있다. 

내가 이 영화를 즐긴 것은,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이야기 구성도 좋지만 무엇보다 임신중절이 잘못됐다, 생명이 소중하다 같은 헛소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신에 대한 영화, TV 쇼, 소설, 또는 어떤 미디어든 '생명은 소중해요!'를 외치며 임신중절을 생각하던 여성이 초음파 검사를 하고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고는 '아, 이것도 생명인데 내가 이것에게서 생명을 빼앗으려 했구나' 하고 펑펑 우는 묘사 따위가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진짜 너무 구리다는 말밖에 해 줄 말이 없다.

(이 영화에도 나오지만) 소위 '생명에 찬성하는(pro-life)' 사람들, 그러니까 임신중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코딱지만 하고 발달 중인 태아는 '생명'으로 보면서, 이미 발달된 존재인 여성은 '생명'으로 보지 않는 건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는 상황이거나 그냥 원치 않으니까 임신중절을 하겠다는 건데, 낳기 싫다는 애 낳으면 자기네들이 키워 줄 건가?

자기네들이야말로 책임 질 수 없는 소리만 잔뜩 해대면서 왜 여성의 기본 권리인 생식의 자유를 제한하려 드는 건지 모르겠다. 

 

잠시 흥분했지만 어쨌든 내가 말하려던 건 이거다. 이 영화에는 그런 감상적인 죄책감 따위가 없어서 좋다는 것.

이 여성은 현재 아이를 낳을 수 없고 키울 수 없으니 낳지 않는 것이다. 그냥 그만큼 간단한 건데. 거기에다가 온갖 갬성을 갖다 붙여 '흑흑, 이 아이를 죽이려 들다니 내가 살인마야, 내가 나빠' 이 ㅈㄹ을 하지 않고 그냥 명확하게 '이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임신중절을 해야 해' 하고 딱 똑똑하게 행동하는 빅토리아가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아, 애초에 어린 나이에 발랑 까져서 임신한 게 어떻게 똑똑한 거냐고?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중반쯤에 빅토리아 임신하게 된 이유도 설명이 된다. 참고로 빅토리아 잘못은 아니다.

10대에 벌써 섹스를 하는 게 발랑 까진 게 아니면 뭐냐, 그런 애가 뭐 공부 좀 잘한다고 다 똑똑한 거냐고 말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피임도 알아서 잘한다면 10대가 섹스를 하지 못할 이유는 뭔가.

18세, 19세, 20세, 또는 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이 완전히 성숙해져서 자기 몸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어 하는 애를 말릴 방법도 없는데(뭐 정조대라도 차게 만들 건가? 그럼 남자애들은?), 그럴 바에야 자기 몸을 자기가 알아서 잘 돌보도록 피임 교육이나 확실하게 시킨 상태에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책임 질 수 있는 만큼 즐겨 봐라~ 하는 게 낫지.

 

원작 소설의 표지

 

이 영화를 보면서 <Never Rarely Sometimes Always(2020,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가 떠올랐다.

2021.10.11 - [분류 전체보기] - [영화 감상/영화 추천] Never Rarely Sometimes Always(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 2020) - 어째서 십 대 소녀의 삶이 이렇게까지 아슬아슬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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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Never Rarely Sometimes Always(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 2020) - 어째서 십 대 소녀의 삶이 이렇게까지 아슬아슬해야 한단 말인가 감독: 엘리자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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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아니다...>도 임신중절을 선택한 미성년자 소녀가 부모님 몰래 친구와 같이 임신중절을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이야기라는 점이 닮았다.

비록 이 영화(<언프레그넌트>)가 <전혀 아니다...>에 비해 밝고 가벼운, 코미디 느낌이 강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소녀들의 길이 힘들다는 점은 똑같다.

물론 영화상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니까 중간중간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거야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진짜 임신중절을 선택한 실제 소녀들의 삶이 영화에서 묘사된 것보다 더 어려웠으면 어려웠지, 더 쉽지는 않을 거다.

빅토리아의 말대로, "미주리 주 입법 기관 엿 먹어라!"다. "미성년자가 아기를 낳는 데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 없는데, 왜 임신중절에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거야?"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이다.

아기를 낳아서 키우는 게 임신중절보다 더 큰 책임, 자본, 에너지,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그렇다면 미성년자의 임신중절보다 출산을 더 심각하게 여기고 더 사회 제도적인 제재라든지 도움이랄지 그런 게 필요하지 않나?

애는 뭐 낳아 놓으면 자기가 알아서 크냔 말이다. 임신중절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애를 낳게만 해 놓고 그 애를 잘 키우게 돕는 데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애초에 자기 일이 아니니까 낳으라고 강요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어쨌거나 두 소녀의 로드 트립은 두 소녀의 우정을 다시 굳건히 해 준다. 빅토리아가 남친 케빈(Kevin, 알렉스 맥니콜 분)을 대하는 태도도 아주 똑쟁이다. 스포일러가 되니 말은 하지 않겠다만 위에서 언급한, 빅토리아가 임신하게 된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

또한 이 영화는 베일리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발견, 아니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걸 즐긴다고 해야 하나? 그런 과정도 보여 줘서 좋았다.

근데 베일리가 반한 그 상대... 너무 멋있는데 영화 속 분량이 너무 조금이라 내가 다 아쉬웠다. 내가 봐도 반하겠던데... 좀 더 등장시켜 주지...

 

소녀들의 우정 이야기 또는 로드 트립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주리 주를 비롯해 미성년자의 보호자 동의 없는 임신중절술을 막는 주들, 그리고 전반적으로 여성의 생식권을 침해하는 이들 모두 엿 먹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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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Spontaneous(2020, 터지기 전에) - 인생에 대한 비유

 

 

감독: 브라이언 더필드(Brian Duffield)

 

그날은 여느 때처럼 평범한 날이었다. 지루한 수학 시간에 마라(Mara, 캐서린 랭포드)는 책상 밑으로 펜을 떨어뜨려서 그것을 주으려고 몸을 숙였을 뿐인데, 갑자기 피에 뒤덮였다.

마라의 앞에 앉아 있던 케이틀린(Katelyn, 멜라니 배러스 분)이 갑자기 풍선처럼 터져 버린 것이다. 붉은 피를 사방에 뿌리면서.

당연히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고 이 미스터리한 일에 경찰이 출동한다. 일단 케이틀린과 같은 반에 있던 아이들은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하고 샤워를 하며 회색 운동복을 지급받는다.

아이들끼리 둘러앉아 불안해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애가 말을 꺼낸다. "마치 크로넨버그(Cronenberg)의 영화 같았어." 이 아이는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딜런(Dylan, 찰리 플러머 분)이다.

이 말을 알아듣고 피식 웃은 건 마라뿐, 남은 아이들은 '도대체 그게 무슨 농담이냐', '이런 분위기에 왜 그런 말을 하냐'라고 말 없이 비난하는 듯하다.

어쨌든 아이들은 곧 부모님들에게 인계되고, 마라도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부모님을 만나 인사를 하고 그리운 방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보니 모르는 번호로 '나 사실 너 짝사랑 중이야'라는 문자가 온다.

마라는 이 정체 모를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지 역시나 피식 웃고 '거시기 사진은 보내지 마'라며 답장을 한다. 상대방도 농담을 알아듣고 '딕(dick)'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의 사진을 보내는 식으로 응수한다. 마라는 어째서인지 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남자애(로 추정)랑 말이 통하는 것 같다. 

그런데 케이틀린의 장례식 날, 장례식이 끝나고 마라가 절친 테스(Tess, 헤일리 로 분)와 카페에 앉아 이야기하는데 어떤 남자애가 갑자기 나타나 너희랑 같이 앉아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마라는 여기서 감을 잡는다. '아, 얘가 날 짝사랑한다던 그 남자애구나!' 그런데 마침 마라는 환각을 보는 버섯을 차처럼 섭취한 뒤여서 약간 속이 메슥메슥하다.

마라는 그 남자애, 딜런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나 토할 것 같으니까 화장실에 같이 가서 나 토하는 동안 머리 좀 잡아 달라고 한다.

될 일은 된다고, 물론 마라는 첫 만남(?)에서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애 앞에서 우웨엑 토를 했어도 이어진다. 딜런은 그날 밤, 마라에게 홈커밍 풋볼 게임에 자기랑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고 마라는 그러기로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풋볼 게임이 시작하기도 전에 풋볼 선수들 중에 한 명이었고 성격도 서글서글해서 인기가 많았던 페리(Perry, 재럿 칼링턴 분)라는 남학생이 케이틀린처럼 피를 사방으로 뿜으며 터져 버린다. 당연히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급히 그곳에서 벗어난 마라와 딜런은 꼭 껴안으며 서로를 달랠 뿐이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아이들이 자꾸 풍선처럼 터져 죽어 나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총기 난사 사건도 아니고, 스나이퍼가 저격한 것도 아니면, 도대체 왜 이런 거지?

 

케이틀린이 터지던 그날의 현장. 마라(앞)는 펜을 줍느라 몸을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케이틀린에게서 나온 피를 마라 뒤에 앉은 여자애가 직빵으로 맞았다
될 놈은 된다... 마라(왼쪽)가 토했던 그 장례식 날 밤, 딜런(오른쪽)과 함께
마라(오른쪽)의 절친 테스(왼쪽)
아이들이 '풍선처럼 터져' 죽으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이렇게 피칠갑이 됩니다...

 

아론 스타머(Aaron Starmer)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한 고등학교의 3학년 학생들이 한 명씩 차례로, 영문도 알 수 없이 풍선처럼 폭발해 (정말 글자 그대로) 죽어간다는 설정이 독특하다. 

처음에는 '뭐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하고 원인이 드러나기를 바라게 되지만, 한 중후반쯤 되면, 적어도 엔딩에서는 이 '폭발'이란 그저 삶에 대한 비유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원래 삶에서 나쁜 일은, 좋은 일과 마찬가지로, 예상할 수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나고, 우리가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걸 이 소설/영화에서는 그냥 갑작스러운 폭발로 표현한 것뿐이다. 하지만 그건 실제로 사고나 사랑하는 이(가족, 친구 등)의 죽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의미로든 우리가 막을 수 없고 예상할 수 없는 안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이 소설/영화를 '(틴에이지) 로맨스'라고 보기엔 좀 애매하다. 어... 보면 알겠지만 로맨스가 길게, 끝까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으니 그냥 그렇게만 말해 두겠다.

오히려 이 소설/영화는 마라가 성장해 나가는(coming-of-age) 이야기로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근데 이제 로맨스를 곁들인).

 

안 그래도 <Words on Bathroom Walls(2020, 비밀이 아닌 이야기)>를 보고 나서 찰리 플러머가 나오는 이 영화도 보고 싶었는데, 마침 최근에 넷플릭스에 풀렸더라. 그래서 신나게 봤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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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6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줄리아 월튼, <화장실 벽에 쓴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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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프라임에 유료로 있긴 했는데 굳이 안 사 보고 기다리길 잘했다... 

 

원작 소설의 표지

 

이 책/영화가 그렇게까지 '깊지' 않다고 비난할 이도 있을 것 같다. 뭐, 나는 소설은 아직 안 읽어봐서 그에 대해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영화는 썩 나쁘지 않다.

꼭 영화가 엄청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만 좋은 건 아니지 않나. 그리고 애초에 이 원작 소설은 영 어덜트(Young Adult, 12-18세의 청소년)용이다.

청소년이 성인보다 이해력이 부족하다거나 수준이 낮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 나이대의 애들이 굳이 그런 걸 원치는 않는 것 같다.

이 소설/영화도 나름대로의 메시지가 있으니 그거면 되지 않을까?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한낱 나약한 존재이니까 살아 있을 때 사는 것처럼, 매 순간 최순간 다해 살아라,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주저앉지 말고 삶을 포기하지 마라, 뭐 그런 거 말이다.

그런 메시지를 청소년에게 주는 것도 중요하니까.

 

나는 썩 괜찮게 봤다. 그저 그런 틴에이지 로맨스 영화로 흘러가지 않고 마라의 성장 이야기로 이어진 점에서는 살짝 놀라기도 했고. 

원작 소설은 국내에 번역되어 정발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영어 공부 겸 원서로 읽어도 나쁘지 않을 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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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Senior Year(2022, 시니어 이어) - 몸은 37세, 마음은 17세!

 

 

감독: 알렉스 하드캐슬(Alex Hardcastle)

 

시간적 배경은 2002년. 스테파니(Stephanie, 앵거리 라이스 분)는 호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호주 소녀이다. 그녀는 '잘나가는' 고등학교 킹카 블레인(Blaine, 타일러 반하트 분)이랑 사귀고 싶어서 '인기 있는 아이들' 중 하나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화장도 시작하고 치어리딩 팀에 들어가 나름대로 그 목표를 이루었다. 블레인이 스테파니에게 푹 빠져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 최종 목표, 그러니까 블레인과 쌍으로 프롬 킹과 퀸이 되고, 그와 결혼해 멋진 집에서 사는 것과는 멀지만, 그래도 거기에 다가가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프롬을 며칠 앞둔 날, 스테파니가 자기 남자 친구 블레인을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스테파니의 적수, 티파니(Tiffany, 아나 이 푸이그 분)의 계략으로 인해 치어리딩을 하다가 바닥으로 그냥 낙하해(원래 다른 치어리더들이 받아 주었어야 했는데 티파니가 섭외한 치어리더가 이를 막았다) 코마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20년간 코마에 빠져 있던 스테파니(Stephanie, 레벨 윌슨 분)는 어느 날 깨어난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오래 흘렀다는 걸 알게 되지만, 그게 스테파니의 꿈을 막을 순 없다!

이제는 더 이상 17살이 아니고 37살이지만 학교로 돌아가 프롬 퀸의 꿈을 이루고 완벽한 삶을 사는 데 다시 한 번 도전하리라! 스테파니는 그렇게 자신의 절친이었던 마사(Martha, 마리 홀랜드 분)가 교장으로 있고 자신을 짝사랑하던 남사친 세스(Seth, 샘 리차드슨)가 사서로 있는 하딩 고교(Harding High)로 돌아간다!

 

17살 한창 잘나갈 때의 스테파니(가운데 녹색 헤드밴드)
그리고 20년간 코마에 빠져 있다가 깨어난 37세의 스테파니
스테파니(오른쪽)의 남사친 세스(왼쪽)도 스윗하게 잘 컸다 ㅎㅎㅎ

 

이 영화는 IMDB 평점이 6점도 안 되는 5.7점이길래 살짝 의심했으나 주연이 내가 호감이라 생각하는 레벨 윌슨이라 크게 따지지 않고 일단 틀었다.

그런데 다 보고 나니 '이게 왜 6점도 안 되지?'라고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KTX 타고 가면서 봐도 너무나 성인 여성인 레벨 윌슨을 보고 17살이라 믿을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그 갭에서 나오는 웃음이란 것도 있으니까 ㅋㅋㅋ 게다가 레벨 윌슨의 연기도 괜찮다.

 

치어리딩 '팀 캡틴(스테파니가 이를 여러 번 강조한다)'인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라 치어리딩이 나오는 건 당연한데 그걸 빌미로 상상 장면에도 군무랑 음악을 넣었다. 중간에도 여러 번 나오고 마지막 장면은 완전히 그냥 춤판이다. 덕분에 볼거리는 확실히 있다.

레벨 윌슨은 춤을 잘 추는 편은 아니다만 일단 안무를 좀 웃기게 짜기도 했고 (안무가님이 힘내셨네...) 표정 연기로 무대를 압도한다.

 

 

맨 왼쪽 남자애가 닐, 가운데 분홍 스웨터가 스테파니, 그 뒤의 곱슬곱슬한 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애가 재닛, 그리고 맨 오른쪽이 야즈이다.

스테파니가 거의 마흔이 다 되어 학교에 돌아왔을 때 사귀는 친구 중 재닛(Janet, 아반티카 분)과 야즈(Yaz, 조슈아 콜리 분)도 이 춤+음악 무대에 합류하는데 귀엽다.

재닛은 인도계 미국인인데 17살인 지금 벌써부터 2040년에 미국 대통령직에 출마하겠다는 야심이 아주 당찬 소녀고, 야즈는 역시나 KTX 타고 가면서 봐도 퀴어인 소년인데 정말 잘생겼다.

평소에도 모든 수업을 같이 듣는지 언제나 같이 다니고, 춤을 출 때 야즈가 재닛 볼에 뽀뽀를 하기도 하는데 둘이 진짜 좋은 친구구나 싶어서 보는 내가 다 흐뭇해진다.

 

IMDB 평점이 6점도 안 되는 평범하게 망한 영화라고 단정짓기에는 좀 의외로 시니컬하게 요즘 세태를 비판하는 구석도 있다.

예컨대, 예전에는 인기가 있고 싶으면, 그냥 주위, 그러니까 직장이나 학교 사람들과만 친하고 그들에게 호감을 얻으면 됐다.

그런데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와 연결이 되니, 얼굴과 이름조차 모르는 낯선 사람을 '팔로워'로 만들어야 하고 그들의 호감을 얻어야 한다. 내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의 범위가 훨씬 넓어져서 호감 사기가 훨씬 어려워진 것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예전보다 많고 (이거야 사회적으로 약자, 타인을 배려하는 의식이 높아진 결과니 나쁜 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덕분에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

마사가 교장으로 있는 현재 하딩 고교는 치어리딩이 짧은 옷을 입고 섹시한 춤을 추는 집단이 아니라(2002년 하딩 고교에선 그랬다), 남녀 불문하고 온 몸을 다 덮는 안전한 옷을 입고 율동 수준의 안무를 하며 '(관계 전) 동의'나 '환경' 등의 문제에 대해 구호를 외치는 모임이 됐다.

학교에 속한 스포츠 팀이나 치어리딩 팀 등이 따 온 트로피 등을 보관하던 장소는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기 위한, 탐폰으로 만든 고래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아,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면 물건을 공짜로 받고 이런저런 후원도 받기에 그걸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비정한 엄마 캐릭터도 있다. 나름대로 요즘 세태 비판을 과하지 않게 은근히 잘한 것 같다.

 

옥의 티를 찾자면 스테파니의 아빠 역으로 나오는 크리스 파넬은 딸이 17살 때나 37살 때나 하나도 안 달라진 모습인데요... ㅋㅋㅋ

 

아, 1990년대~2000년대 영화, 또는 TV 쇼의 팬이라면 반가울 얼굴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스테파니가 우상처럼 여기고 '꼭 그녀처럼 되겠어!'라고 생각하는 게, 같은 하딩 고교 출신 선배인 디애나 루소(Deanna Russo)라는 인물인데, 이 역할을 알리시아 실버스톤(Alicia Silverstone)이 맡았다.

그녀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 주기 위함인지 스테파니의 방에 (알리시아 실버스톤이 출연한 영화) <클루리스(Clueless, 1995)>의 포스터가 있다. 

스포일러를 하진 않겠지만 디애나 루소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인생, 성공이 단순히 보이는 것만이 아님을 알려 주기 위한 '실패자'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전체적으로 꽤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였다. 마지막에, 크레디트 다 올라가고 난 후에 짧은 쿠키 영상 같은 게 있는데 이걸 보면 후속편이 있을 수도 있다고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좋겠다. 일단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며 일단 시도는 해 볼 듯.

어쨌거나 주말에 가볍게 볼 만한 재밌는 영화를 찾는다면 <시니어 이어>도 한번 기회를 줘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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