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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서귤, <인생은 엇나가야 제맛>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서귤 작가님의 책이다!

2020.08.24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서귤, <회사 밥맛>

 

[책 감상/책 추천] 서귤, <회사 밥맛>

[책 감상/책 추천] 서귤, <회사 밥맛> 와 씨, 너무 재밌고 귀엽다. 7년차 직장인 서 대리의 회사 에세이인데, 특이하게도 그냥 회사 얘기뿐 아니라 먹는 얘기도 담겼다. <디 오피스>와 <고독한

eatsleepandread.xyz

작가님 신작 나왔다고 왜 아무도 나에게 삐삐 안 쳐 줬냐 😢 이것 이전에 나온 <판타스틱 우울백서>도 너무너무 읽고 싶은데 이건 이북으로 안 나왔더라. 그래서 그건 못 읽고 이것만 이북으로 읽었다.

 

나와 개그 코드가 너무너무 잘 맞는 서귤 작가님의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빵빵 터졌는지 모른다.

이 책은 머피의 법칙이라고 할까, 뭐가 되려다가도 안 되는 그 '미스터리'한 삶의 순간들을 담았다.

각 '머피의 법칙'과 관련한 저자의 에피소드를 풀어내고 난 후 '미스터리 파일'이라는 짧은 코너가 등장하는데, 그 법칙/에피소드를 나름대로 설명해 준다. 대체로 (저자가 지어낸) 환상의 동물 또는 말도 안 되는 이론이다.

예컨대, 법칙 1 <소개팅이 잡히면 뾰루지가 난다>에서 하필이면 소개팅 때 뾰루지가 나서 "웃을 때마다 아침에 화장실에서 터트린 코 옆의 뾰루지가 찌릿찌릿했"던 에피소드가 소개되고, 이와 관련한 미스터리 파일 1번으로 "피지 난쟁이"가 소개되는 식이다.

그렇다면 피지 난쟁이란?

인간의 피지선 속에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의 난쟁이. 지역마다 구체적인 묘사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물 풍선과 흡사한 비정형적 외형에 짧은 팔다리를 갖고 있다. 피지 난쟁이가 인간 본체에게 불만을 가지고 몸을 부풀리면 인간의 모공이 막히면서 부어오르는데 이것이 바로 뾰루지다.

그리고 그 밑에 작가가 그린 피지 난쟁이 상상도가 있다. 대략 이런 식이다.

그러고 나서는 역시 작가가 그린 네 컷 만화가 두 개 나오는데 정말 너무너무 웃겨서 읽는 와중에 몇 개는 친구에게 보여 주기까지 했다. 

친구도 너무 웃기다고 했다. 아, 뿌듯ㅎㅎ

 

아, 그 만화라는 것은 <회사 밥맛>에도 중간에 틈틈이 들어간 그런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

이거 말고도 웃긴 게 많은데 내가 다 찍어서 보여 드릴 수가 없으니 제발 꼭 이 책 읽어 주시라. 

 

우리 작가님을 대신해 내가 좀 더 책 칭찬 및 홍보를 해 보자면, 역시나 너무너무 웃기다. 몇 부분만 소개해 볼까.

<웹 소설 쓰기 쉬울 줄 알았는데 어렵다> 법칙에서 웹소설 편집자님과 나눈 대화는 이렇다(정확히는 편집자님이 작가님에게 날린 공격일까).

"작가님은, 작가님의 시놉에서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전투력이 장난 아니시네. 우리 엄마인 줄.
당황해서 머뭇거리니 바로 기술이 들어온다.
"일단 저희 플랫폼에서는요. 이 정도 길이로는 연재가 불가능하고요."
1 콤보
"인물이 너무 많아서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
2 콤보
"문장도 길고 쓸데없는 묘사도 너무 많고. 웹소설은 모바일 환경을 고려하셔야 하거든요."
3 콤보
"선악 구도가 불분명해서 몰입하기가 어려운 점도 아쉽고."
4 콤보
"소재도 논란의 여지가 너무 많고요. 이거 저희 플랫폼에는 못 올려요."
5 콤보
"작가님, 웹소설 읽어 보기는 하셨어요>"
저기요, 편집자님. 캐릭터 죽었잖아요. 더 이상의 부관참시를 멈춰 주세요.

 

<냉동실에 초면인 오징어순대가 있다> 법칙에서 청소를 하다가 딴생각을 하는 장면. 모두가 공감할 거라 본다.

과거 나의 룸메이트였던 E는 영원을 믿었다. 한번 냉동실에 들어간 식품은 절대 변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E는 냉동실에서 오래도록 자리보전을 하던 옥수수를 먹은 뒤 배탈이 나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나는 꾸준히 냉동실 청소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짐만 했다.

지금 내 눈앞에 정체불명의 희고 검은 비닐봉지로 만석인 냉동실 풍경이 펼쳐지자 갑자기 E가 그리워진다. 아이 엄마가 된 E. 아이가 옥수수를 좋아하니? 이유식은 시켜 먹이니, 직접 만들어 먹이니? 언젠가 그 아이에게 우리가 국물떡볶이 1인분을 사서 남은 국물로 볶음밥과 비빔면을 말아 먹으며 이틀을 버텼던 오병이어의 기적을 얘기해 주고 싶구나. 자꾸 딴 곳으로 뛰어나가는 생각을 애써 다잡고 다시 냉동실로 눈을 돌렸다. 청소. 청소를 해야 한다.

(...)

하지만 대개 부잡스러운 사람들이 그렇듯 포장된 음식물 하나하나를 열어 보고 이따금 추억에도 잠기며 허송세월을 보넀다. 예컨대 이런 것이었다.

이 반쪽짜리 치아바타는 F과장님이 사줬다. 팀장님에게 혼나고선 입을 일자로 다물고 시위하고 있었더니 밖으로 데려가 커피를 사 먹이고 집에서 먹으라고 빵도 쥐어 주었다. 따뜻했던 사람. 얼마 전 연봉 1.5배 올려서 이직하셨다. 보고 싶네. 오랜만에 연락이나 해 볼까. 정말 연락할 생각도 없으면서 그냥 하는 소리.

 

이 외에도 정말 무심하게 읽다가 가슴이 찡해질 정도로 감동적인 에피소드들도 만날 수 있다. 대체로 가족 일화가 그렇다. 오빠라거나 아버님 이야기.

한번 읽기 시작하면 너무 재밌어서 계속 키득거리며 읽게 될 테니까 딱 한 번만 날 믿어 보시라.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뭔가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떠나 보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오늘 몇 주간 조금씩 재밌게 보던 <The Good Place>를 끝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럴 때는 빨리, 좋은 다른 책으로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진다.

이만큼이나 좋은 책은 찾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노력해 봐야지. 이렇게 좋은 책은 그런 아쉬움과 노력을 감수할 가치가 있으니까.

 

+ 추신: 이 글을 쓰려고 검색을 하다가 작가님이 텀블벅에서 새책 <애욕의 한국 소설>을 위해 펀딩을 하신 걸 발견했다.

아이고 아쉬워라. 알았다면 참여했을 텐데. 내가 지금 한국에 없으니 종이책 못 보는 것도 서러운데... 이 책은 꼭 이북으로도 출간되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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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신서경, 송비, <지구 멸망 일주일 전, 뭐 먹을까?>

 

 

신서경이 쓰고, 송비가 그림을 그렸다.

제목이 이 만화의 콘셉트를 아주 잘 요약해 준다. 지구 내부 물질 순환이 멈추어서 지구를 둘러싼 자기장이 사라지고, 결국 지구는 엄청난 자기장과 방사능을 수반한 태양풍을 맞이하게 된다.

한마디로 지구가 멸망하고, 인류가 살아남을 확률은 3%에 불과하다.

그런 와중에 우리의 주인공인 먹방 BJ인 봉구는 치킨을 먹는다.

만 칼로리 케이크, 매실액, 시루떡, 게살야채죽, 계란말이 도시락 등등도 먹는다. 마지막에 최후의 만찬도 직접 준비한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자세히 말은 하지 않겠지만, 이 정도는 말해도 될 것 같아서 해 두겠다. 첫 번째, 봉구라는 인물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뭐라고 해야 할까, 잘못 만든 (대체로 남성 작가들이 쓴)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남자 주인공 같은 느낌이다.

딱히 외모가 엄청 매력적인 것도 아니고, 말을 여자들이 혹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들이 민폐라고 생각하거나 최소한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하는데도 어째서인지 여자들이 그를 용서하고 그를 좋아한다.

??? 뭥미??? 내가 보기엔 너무 별로인데??? 

이게 다 남성 작가들이 여자 마음을 모르면서 남성 캐릭터에 자기를 이입해서 써서 그렇다. 예를 들자면 <Jexi(젝시, 2019)> 속 애덤 디바인(Adam DeVine)의 캐릭터. 이 캐릭터의 어디가 좋다고 여주인공이 

그건 그렇다 쳐도, 왜 이 만화의 봉구는 여자 작가들이 썼는데도 별로인지 모르겠다. 그의 외모가 문제인 건 아니다.

그냥 성격이 너무 찌질하달까? 늘 오는 유저가 어그로를 끌자 거기에 욱해서 현피 뜨자고 하는 것도 찌질하고(이게 나중에 그와 만나는 계기가 되긴 하지만).

도대체 하니(봉구가 짝사랑하는 동창 반장 여자애)가 얘를 왜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찌질하면서도 매력적인, 또는 궁상맞아도 '에휴,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하며 챙겨 주고 싶은 캐릭터를 만드는 건 정말 힘든 일인 것 같다. 이 세상 모든 작가 여러분들 화이팅...

 

둘째, 지구 멸망 D-2일 때, 그러니까 닷새쯤 되었을 때 전기가 나간다.

지구가 망해서 다 죽게 생겼는데 그때까지 사람들이 일을 했을 리는 없고, 예비 전력인 거 같은데 그래도 닷새나 버텼다는 게 제일 비현실적이다.

 

셋째, 위와 비슷한 의미에서 봉구네 집 냉장고에는 없는 음식이 없나 보다. 최후의 만찬을 만들어 먹기 위한 모든 재료가 이미 전기가 나가기 전에(어, 그러고 보니 전기가 나갔는데 냉장고는 어떻게 작동한담?) 구입되어 있었나 보다.

분명 지구 멸망 소식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고 난 후 동네 마트도 텅 비고 봉구도 식료품을 그렇게 많이 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봉구네 부엌은 무슨 도라에몽 주머니인가? 원하는 건 다 나오는 듯. 그래도 이건 만화적 허용이라 생각해 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전반적으로 가볍게, 하룻밤 만에 읽기 좋은 만화다. 먹킷 리스트 세울 때 도움이 될지도?

리디 셀렉트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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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이나경, <뷰티 해결사 위니의 말랑 피부 만들기>

 

 

위니(이나경)는 내가 스킨 케어 및 화장품에 대해서 믿는, 몇 안 되는 전문가 중 하나다.

스킨 케어에 대한 칼럼을 쓰거나 블로그 또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들이 아직도 SPF 50짜리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면 하루 종일 자외선 걱정이 없다는 소리나 쓰고 있으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게 당연하다.

그래서 이처럼 진짜 전문가를 만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아직도 그런 사람들 말 믿고 크기가 균일하지 않아 피부에 과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곡물로 세안하는 흑우들 없지?).

 

이 책은 스킨 케어에 대한 궁금증을 질답 형태로 해결해 주고, 대개 한 꼭지가 두 쪽 내외여서 아주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자신이 궁금한 부분만 찾아서 읽어도 되는데, 아무래도 다 읽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위에도 썼듯이, '스킨 케어'에 대한 궁금증 위주여서, 메이크업에 대한 내용은 없으니 이 점은 참고하시라.

 

이 책에서 제일 유용한 팁들 몇 개를 맛보기로 공유할까 한다.

첫째, '건성', '지성', '복합성' 같은 레이블은 딱 정해진 것이 아니고, 개인의 피부 상태는 계절이나 신체 컨디션 등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내 피부는 건성/지성/복합성이야."라고 딱 단정지어 놓고 그에 따라 화장품을 구입하는 것은 '잘못된 스킨 케어'의 첫 단추라고 저자는 말한다.

화장품에 피부 타입이 표시되어 있는 것은 그 제품에 보습 성분(유분)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알려 주는 안내문일 뿐입니다. 건성용일수록 유분이 더 많이 들어가겠죠.

피부 타입은 혈액형이 아니고 화장품은 수혈 팩이 아닙니다. 딱딱 맞아떨어질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계절과 내 상태에 따라 유연성을 가지고 사용하는 것이 훨씬 피부에 잘 맞는 화장품을 선택하는 요령입니다.

TIP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찾기 위해선 화장품 앞면에 적힌 피부타입보다 화장품 뒷면의 성분표를 읽으세요. 현재 피부 상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성분이 들어간 제품을 찾고,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성분의 제품을 피하는 것이 피부 타입을 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둘째, 미네랄 오일은 모공을 막지 않는다. 이건 너무 잘못 알려져서 전문가가 아닌 나도 답답할 정도인 

미네랄 오일은 피부 방어력이 떨어지고 건조감이 심한 민감성 피부에 가장 효과적인 보습 보호 성분입니다. 피부에 유분 보호막을 형성해 피부 속 수분이 증발되는 것을 막아 줄뿐 아니라 외부의 자극 요소들이 피부 속으로 침투해 주는 것을 막는 강력한 방패 기능을 해 주죠. 피부 장벽이 약해 쉽게 자극을 받는 민감성 피부일수록 미네랄 오일이 들어간 크림을 발라 주면 도움이 돼요.

인터넷을 중심으로 미네랄 오일, 페트로라텀 같은 광물성 오일들이 모공을 막고 피부가 숨을 못 쉬게 한다는 등 각종 루머가 나돌고 있지만 전부 사실이 아닙니다. 미네랄 오일은 모공 막는 지수가 0인 논코메도제닉 성분이며 인간은 피부가 아니라 폐로 호흡을 하죠.

미네랄 오일은 화장품뿐 아니라 연고, 좌약 같은 의약품에도 사용되는 안전한 성분입니다. 사실만 따져 말하자면  광물성 오일의 피부 유해도나 자극도는 화장품에 사용되는 어떤 천연 성분과 비교해 보아도 가장 낮은 수준이지요. 화장품 성분으로 사용되는 미네랄 오일은 메디컬 의약품 수준으로 정제가 되기 때문에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처럼 인체에 해로운 작용을 할 가능성이 극히 적습니다.

 

셋째, 다리에 필 오프 팩 하기. 이건 내가 이 책을 보고 제일 먼저 해 봤던 것이다.

덕지덕지 뱀 비늘 다리 해결하기

1. 샤워 후 보디 크림으로 촉촉하게 마사지해 주세요.

2. 크림이 어느 정도 흡수된 후에 필 오프 마스크를 얇게 발라 줍니다.

3. 필 오프 마스크 위에 거즈를 한 장 얹은 후 그 위에 다시 한 번 마스크를 발라 줍니다.

4. 완전히 마르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약 30분 후 거즈를 만져 보고, 딱딱하게 말랐을 때 거즈의 가장자리를 잡고 아래에서 위로 한 번에 떼어냅니다. 딱딱하게 마른 필 오프 마스크에 붙어 떨어져 나온 각질이 눈으로도 보일 것입니다.

5. 다시 한 번 보디 크림을 촉촉하게 발라 줍니다. 각질이 탈락한 부위에 보습을 충분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의 경우, 결론부터 말하자면, 효과는 있었으나 필 오프 팩값이 걱정되어 딱 한 번만 했다.

왜냐하면 내 다리 양쪽에 필 오프 마스크를 발라 주고 그 위에 거즈를 얹은 뒤, 다리의 앞부분(그러니까 정면에서 봤을 때 보이는 부분)에만 필 오프 마스크를 얇게 발라 줬는데도 그날 처음 산 50ml짜리 한 통을 거의 다 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걸 제대로 다 하려면 아마 100ml 정도는 들 것이다. 이걸 주에 2~3회 하려면 드는 돈이 얼마일지...

물론 방법 자체는 참 좋지만 현실적으로 그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나는 그냥 바디 브러쉬와 바디 스크럽으로 갈아탔다.

뱀 비늘 다리 증세가 심각하다면 두어 번 정도는 이렇게 해 보고 나서 다른 방법으로 옮겨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때는 밀지 마시라.

때를 밀면 피부가 가진 천연 보습막까지 함께 제거되기 때문에 피부는 더욱 건조해집니다.

이외에도 유용하고 귀중한 스킨 케어 정보가 많은데 이걸 다 요약해서 알려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바란다. 어차피 이런 책은 직접 읽으며 자신에게 필요한 걸 흡수해야 진짜 도움이 되는 그런 종류의 책이니까.

아래 표에 목차를 정리해 두었으니 한번 살펴보시라. 개인적으로 모든 파트가 중요한데 특히 각질 제거와 자외선 차단이 특히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프롤로그 피부 변덕 잡으려면 기초부터 알아야 한다!

Part 1 관리 전, 내 피부 알아보기
001 건성? 지성? 복합성? 내 피부 타입을 나도 잘 모르겠어요!
002 항상 피부가 건조한데 피부 테스트에서는 지성 피부래요
003 순하다는 화장품을 골라 써도 트러블이 생겨요
004 어떻게 해야 피부 타입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나요?
005 건성 피부인데 여드름이 자꾸 나요. 수분이 부족한 걸까요?
006 T존은 지성이고 U존은 건성이에요

Part 2 똑똑한 쇼핑을 위한 화장품 기초 지식
007 클렌징 오일을 쓰면 모공이 깨끗해질까요?
008 데이 크림, 나이트 크림을 꼭 구분해서 써야 하나요?
009 비타민 C 에센스, 낮에는 사용할 수 없나요?
010 피지를 줄이려면 어떤 화장품을 써야 할까요?
011 미네랄 오일은 유해 성분이라 위험하다던데 사실인가요?
012 여드름 피부는 오일 프리 화장품만 사용해야 하나요?
013 민감한 피부가 피해야 할 성분이 따로 있을까요?
014 알로에 겔을 바르면 따가워요
015 시술을 받은 후 병원에서 판매하는 재생 크림을 꼭 발라야 하나요?
016 효소 세안제를 사용 중인데 별로 효과가 없어요
017 시카 화장품을 여드름 피부에 사용해도 될까요?
018 여드름 흉터를 관리하려면 어떤 화장품을 써야 할까요?
019 비싼 마스크팩과 저렴한 마스크팩. 효과 차이는?
020 필링 패드, 핌플 패드, 각질 토너의 차이는?
021 아하에도 종류가 다양하다던데 어떤 것을 써야 할까요?
022 아하, 바하가 자극적이면 파하는 어떨까요?
023 0.5% 바하보다 1% 베타인 살리실레이트가 나을까요?
Part 3 말랑 피부 만들기 1단계 - 뽀득뽀득 클렌징은 이제 그만!
024 클렌징을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데 지나침의 기준은?
025 피부 자극 없이 이중 세안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026 클렌징 워터 사용 후 물세안을 하지 않아도 되나요?
027 미세먼지로부터 피부를 보호해 주는 화장품이 있을까요?
028 세안만 하고 나면 얼굴이 붉어져요. 오버 클렌징일까요?
029 자외선 차단제는 반드시 이중 세안해야 하나요?
030 아침 세안은 물로만 해도 괜찮을까요?
031 세안의 마지막은 꼭 찬물로 마무리해야 하나요?
032 운동하기 전에 메이크업을 지워야 하나요?
033 메이크업을 제거해 준다는 페이스 타월,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Part 4 말랑 피부 만들기 2단계 - 각질 제거, 무서워하지 않기
034 각질 제거는 일주일에 몇 번 해야 적당할까요?
035 필링 토너를 사용 중인데 효과가 약한 것 같아요
036 필링 젤을 사용했더니 피부가 빨개지고 각질이 일어나 보여요
037 필링 토너를 사용하니 안 보이던 각질이 오히려 두드러져요
038 바하를 사용하고부터 피부가 너무 건조해졌어요
039 지성 피부가 아하를 써도 되나요?
040 아하, 바하를 같이 써도 되나요?
041 스크럽을 해 주면 에센스가 더 잘 흡수될까요?
042 레티놀이 블랙헤드 제거에도 효과가 있나요?
043 효소 세안제, 하루 중 언제 쓰는 게 좋은가요?
044 코팩을 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요
045 세안을 하고 나면 흰 피지가 올라와서 더 지저분해 보여요
046 레이저 시술을 받으면 피부가 얇아진다는데 사실인가요?
Part 5 말랑 피부 만들기 3단계 - 보습, 수분에만 매달리지 않기
047 물을 많이 마셔도, 크림을 발라도 피부가 항상 건조해요
048 피부가 건조해서 보습 크림을 바르면 트러블이 생겨요
049 미스트만 뿌리면 수분을 더 뺏긴다는데 사실인가요?
050 토너나 로션을 발라도 흡수가 안 돼요
051 페이셜 크림을 아이 크림으로 사용해도 되나요?
052 아이 크림은 언제 발라야 하나요?
053 눈의 붓기, 빨리 가라앉히는 방법이 있을까요?
054 아이 크림 대용으로 레티놀 에센스를 발라도 되나요?
055 아이 크림을 바를 때마다 비립종이 생겨요
Part 6 말랑 피부 만들기 4단계 - 자외선 차단 없이 피부 관리도 없다
056 지성 피부인데 자외선 차단제가 너무 번들거려요
057 자외선 차단제를 눈 주위에 바르면 눈이 너무 시려요
058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기 전에 기초를 딱 하나만 바른다면?
059 선젤, 선밀크의 자외선 차단 효과도 선크림과 같을까요?
060 톤업 선크림도 자외선 차단이 될까요?
061 민감성 피부는 SPF 지수가 높은 자외선 차단제를 쓰면 안 되나요?
062 자외선 차단제가 자꾸 때처럼 밀려요
063 자외선 차단제는 꼭 외출 30분 전에 발라야 하나요?
064 자외선 차단제를 덧바르는 요령이 있을까요?
065 스프레이 자외선 차단제를 얼마만큼 사용해야 정량인가요?
066 실내조명에서도 자외선이 나오나요?
067 여드름 피부는 어떤 자외선 차단제를 골라야 할까요?
068 선크림을 바르고 기름종이로 유분을 눌러줘도 되나요?
Part 7 말랑 피부 만들기 5단계 - 타입별 여드름, 원인부터 해결하기
069 천연 화장품만 사용하는데도 트러블이 끊이지 않아요
070 피부가 뒤집어졌어요! 병원에 가야 하나요?
071 여드름 피부는 메이크업을 뭘로 지워야 할까요?
072 필링 젤로 각질 제거를 해도 좁쌀 여드름이 줄어들지 않아요
073 붉은 여드름 피부에 각질이 올라오면 어떤 관리를 해야 하나요?
074 여드름에 효과 있다는 제품들, 어떤 순서로 사용해야 할까요?
075 여드름 피부에 꼭 필요한 핵심 제품을 골라 주세요
076 약산성 클렌저를 사용하는데 트러블이 여전해요
077 여드름 피부인데 운동을 하면 피부가 더 나빠지지 않을까요?
078 운동을 하면 피부에 열이 오르고 홍조가 심해져요
079 화이트헤드 짜는 요령을 알려 주세요
080 볼에 자꾸만 여드름이 나는데 이유가 뭘까요?
081 헤어 라인을 따라 자꾸만 여드름이 생겨요
082 여름만 되면 등드름, 슴드름 때문에 미치겠어요
083 생리 때만 되면 나는 뾰루지, 어떻게 해야 하죠?
084 여드름 제품과 자국 관리 제품을 함께 사용해도 될까요?
085 바하를 사용했더니 피지와 여드름이 오히려 늘었어요
086 아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도 코의 블랙헤드가 없어지지 않아요
087 과산화벤조일 사용 후 피부가 화끈거리고 따가워요
088 눈썹 근처에 딱딱한 여드름이 자꾸 나요
089 여드름 피부에 효과적인 먹는 보충제가 있을까요?
090 트러블 치료를 위한 피부과는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091 여드름 흉터는 레이저 시술 말고는 해결 방법이 없나요?
092 레이저 시술 전에 준비할 것이 있을까요?
Part 8 남은 피부 변덕, 팩과 마스크로 꽉 잡기
093 속당김이 심해서 마스크팩을 해도 효과가 하루를 못 가요
094 말랑 피부 관리를 할 때 어떤 클레이 마스크를 사용해야 하나요?
095 아하나 바하를 바른 다음 꼭 몇 분씩 기다려야 하나요?
096 유분이 많은 피부라 화장을 하면 다크닝이 너무 빨리 생겨요
097 1일 1팩을 했더니 피부 트러블이 생겼어요
098 메이크업을 안 지우고 자는 바람에 피부가 뒤집어졌어요
099 피부가 예민해서 마스크팩을 하니 더 따가워요
100 한 번 얼굴에 열이 오르면 홍조와 뜨거움이 가시지 않아요
101 홈 케어 후 피부를 정리할 마스크는 뭐가 좋을까요?
102 피부가 건조해서 간지러울 때는 어떤 팩을 해야 할까요?
103 여드름을 짜고 난 후에는 무엇으로 진정을 시켜 줘야 하나요?
104 건조와 여드름이 뒤섞인 뒤죽박죽 피부, 어떤 팩을 해야 할까요?
105 무조건 피부 기름기를 없애는 데 집중하고 싶어요
106 피부염에 걸렸다 나은 후 딱딱한 각질이 없어지지 않아요
107 아하, 바하가 맞지 않아도 말랑 피부 관리를 할 수 있을까요?
108 몸에 비늘처럼 각질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요

부록 화장품 성분 & 스킨케어 용어

 

저자는 원래 트위터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팔로우하셔서 정보를 자주 받아 보는 것도 좋겠다. https://twitter.com/cosmetic_win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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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입으로도 인정했듯이, "다 죽어가는" 상태이긴 하지만 저자가 과거에 쓴 칼럼과 질답이 남아 있으니 저자에게 질문을 날리기 읽어 두면 거의 웬만한 상황에 대한 대답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http://www.ifacemaker.com/index.php

 

#1.화장품정보사이트 ifacemaker.com :::::::::::::

 

www.ifacemaker.com

 

이 책은 리디 셀렉트에도 있으니 리디 셀렉트 이용자라면 한 번 거들떠 보셔도 좋겠다. 어차피 돈 더 드는 것도 아니까.

이북이든 종이책이든 가까이에 두고 자주 들춰 보며 따라 하면 좋을 책이다. 나는 핸드폰에 넣어 두고 자주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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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톰 필립스, <진실의 흑역사>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고 리뷰까지 남겼던 <인간의 흑역사> 작가의 후속작이다.

2020.09.07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톰 필립스, <인간의 흑역사>

 

[책 감상/책 추천] 톰 필립스, <인간의 흑역사>

[책 감상/책 추천] 톰 필립스, <인간의 흑역사> 와, 짱잼! 이 책의 부제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인데, 역사상 인류가 저지른 가장 멍청한 일들을 들춰내 보는 책

eatsleepandread.xyz

 

이번 책의 주제는 '거짓(말)'이고, 부제목은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이다.

요즘이 '탈진실(post-truth) 시대'라고 일컬어지고 또 '가짜 뉴스(fake news)'라는 단어도 최근에 와서야 생겨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 또는 개소리 등이 비단 최근의 일일까? 과거엔 늘 사람들이 진실만을 말하고 진실만을 추구했을까?

그럴 리가. 옛날 사람들은 뭐 사람 아닌가? 그들도 거짓말을 했다. 아마 역사의 시작 때부터 그랬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오해 마시라. 요즘 우리가 사는 세앙이 오만 가지 개소리로 가득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건 당연히 맞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이 '탈진실 시대'라는 말에 어폐가 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 탈진실 시대라면 이전에 언젠가는 '진실 시대'가 있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시대가 있었다는 근거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우리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실과 정직이 꽃피고 사실과 증거를 금과옥조로 삼는 시대에 살았다는 식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순 헛소리다.

(...)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살아온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아주, 아주 오래되었다.

이게 바로 이 책의 주제다. 진씰이란 무엇이고, 인류는 진실을 요리조리 피하려고 지금까지 어떤 기발한 방법을 어떻게 써왔는가 하는 것이다. 모든 게 옛날부터 다 그랬다. 고장 난 스프링클러처럼 거짓말을 사방에 뿌려대는 정치인이 도널드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 페이스북 같은 게 없던 시절에도 검증 안 된 거짓 루머는 입에서 입으로 잘만 퍼졌다. 눈먼 돈과 순진한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항상 없는 사실을 꾸며서 돈을 뜯어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저자의 말을 뒷받침하듯, 책에는 "세상에 이런 거짓말 또는 개소리를 왈왈 씨부린 자가 있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일화들이 가득하다.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두어 가지만 소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 내가 미국에 대해 더 안 좋게 생각하게 만든 일화이다.

예전에는 책력(冊曆)이라는 것이 있었다. 해와 달의 운행, 절기, 특별한 기상 변동 따위가 담긴 책이다.

미국에 아주 인기 있는 책력 제작자 중 하나로 타이탄 리즈(Titan Leeds)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책력은 아주 잘 팔려서, 다른 책략 제조업자들이 그를 견제하려 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여러분이 아는 그 미국 건국의 아버지 그자가 맞는다)도 책력 제작업에 뛰어들며 이 제작자를 표적으로 삼았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리처드 손더스'라는 필명으로 책력을 내면서 서문에 "타이탄 리즈 씨가 곧 죽을 운명이다"라는 내용의 헛소리를 적어넣는 것이었다.

이는 일종의 우스개였는데, 조너선 스위프트(여러분이 아는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그 사람)가 한 농담을 슬쩍 빌려온 것이었다.

불행히도 타이탄 리즈는 이 농담을 전혀 이애하지 못했고, 이듬해에 출간한 책력에서 '가난한 리처드'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에 프랭클린은 '옳거니, 걸려들었구나' 하고 아예 자신의 오랜 친구 리즈가 사망한 것이 틀림없다고 적었다. 이뭐병?

그의 '농담'은 실제로 타이탄 리즈가 사망한 1738년까지 계속되었다. 심지어 리즈가 사망한 1738년의 다음 해, 즉 1739년에는 타이탄 리즈의 유령이 썼다는 가짜 편지까지 게재한다. 내용인즉슨, '가난한 리처드'가 한 말이 모두 옳았고, 자신은 실제로 1733년에 죽었다는(즉, 자신이 살아 있다고 반박한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이었다.

얼탱이가 없지 않은가? 저자는 이 일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썼다.

그렇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한마디로, 진짜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도발꾼이었다. 요즘 인터넷 은어로 하면 '트롤', '어그로꾼'이었다. 

게다가 성공한 도발꾼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은 엄청난 히트를 쳤고, <리즈 책력>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10년쯤 후에는 폐간되었다. 프랭클린의 책력은 경쟁지보다 더 필치가 예리하고 재미있었으며, 프랭클린의 사업 방식은 더 무자비했다. 프랭클린은 점설술을 그저 빈정대며 놀려먹는 데 그치지 않았다. 리즈 가문 사람들이 기이한 사상을 믿었다거나 "사탄의 전령" 운운하는 비난을 받았던 일도 독자들이 잊지 않도록 상기시키곤 했다. 그런 의혹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프랭클린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이딴 인간이었다니... 정말 환멸난다. 미국인들은 이런 거 알고서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지?이거 모르는 미국인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책력의 질과 정보의 양 등으로 승부하면 되지, 잘나가는 책력 제작자를 꺾어 보겠다고 저런 비열한 수를 쓰다니. 이전에도 프랭클린이 뒤가 구린 사람이라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비열한 자인 줄은 몰랐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으니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신문'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야기다.

당시에는 예전처럼 저널리즘 정신이랄지, 진실 탐사 같은 것이 없었다. 기자들은 세부 내용을 적당히 지어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 정도였다.

1887년에 창간된 <더 라이터>라는 잡지가 있었다. 당시 급속히 늘어나던 '글쟁이'들을 댓상으로 한 잡지였는데, 편집장 윌리엄 힐스는 신문이란 매체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신문기자는 "일을 잘하려면 훌륭하게 '꾸며낼' 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서 몇 달 후에는 "모름지기 기사란 어느 정도는 '꾸며내어' 작성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그 행위를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상식과 건전한 상상력을 발휘해 중요치 않은 세부 사항을 채워 넣는 것으로 (…) 그 내용은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기자의 심증에 부합한다." 그 목적은 기사를 보다 "생생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했ㅅ다. 그리고 '꾸며내기'는 "엄밀히 말해 거짓말과는 다르다"라고 했다.

그 '중요치 않은 세부 사항'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짐작해 볼 만한 자료로, 1894년에 언론인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나온 교본이 있다. 저자 에드윈 슈먼은 시카고의 언론인이었다. 언론학 학위라는 게 없던 시절, 언론인 되는 법을 주제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슈먼은 저서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사소한 것을 피곤할 만큼 일일이 밝혀 지루하고 따분하게 만드는 실수를 피해야 하며, 여기서 사소한 것이란 이를테면 분초 단위의 시간, 기상 상태, 화자의 정확한 발언 내용 등이다."

독자 중에 신문 편집자가 있다면 위의 마지막 항목에 경악을 금치 못할지도 모른다. 하기야 그 시절엔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녹음기라는 게 없긴 헀다(당시에도 '구술 녹음기'라는 장치가 있긴 했지만 덩치가 거대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럤다 해도, 화자의 정확한 발언 내용이 '사소한 것'이라니! 

 

그리고 정말 이런 식으로 기자 생활을 한 사람이 있다.

루이스 T. 스톤이라는 싸람이 딱 그런 식으로 기자 생활을 헀다. 스톤은 코네티컷주의 윈쓰터드라는 촌마을에서 태어나 죽 살던 야심 찬 청년 기자였는데, 그곳에서 써 보내는 기사를 여러 신문에서 어찌나 열심히 실어 주었는지 단숨에 미국에서 알아주는 인기 기자가 되었다.

'윈스터드 거짓말쟁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스톤은 1895년부터 1933년 사망할 때까지 수십 년간 기자로 활동하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꾸준히 생산해 편집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기사 몇 가지를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 독립기념일에 암탉이 붉은색, 흰색, 파란색 무늬의 알을 낳은 사건, 구운 사과가 열리는 나무, 유명한 곡조의 군가 <양키 두들>을 휘파람으로 부는 고양이, 암소가 손목시계를 삼켰는데 암소가 숨 쉴 때마다 태엽이 감겨 몇 년 동안 배 속에서 정확히 잘 가고 있었다는 이야기, 자기 머리에 거미를 그려 파리를 쫓은 대머리 남자…… 

듣기만 해도 황당한 얘기들인데, 더군다나 이게 다 같은 사람이 같은 촌마을에서 써 보낸 기사라면 누가 한 번쯤은 의심을 했을 법도 하다. 이 스톤이라는 기자가 공갈을 치고 있거나, 아니면 가능성은 좀 희박하지만 윈스터드란 마을이 꿈과 환상의 요술나라이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는가. 이걸 곧이듣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긴 했을까? 그런데 1940년에 이 기사들을 연구한 언론학자 커티스 D. 맥두걸의 주장에 따르면, "사실상 모든 삿람"이 믿었다. "다만 예외적으로, 연륜 있는 편집자들은 스톤이 보낸 소식이라면 나중엔 다 의심했으나 판매 실적 때문에 그냥 기사를 싣곤 했다"는 것이다.

이러니 요즘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다 한들, 언제는 안 그랬다고 말할 수 있으랴.

 

이 외에도 봉이 김선달 뺨치게 가상의 나라를 만들어 그 나라의 개척지를 팔아먹은 남자나, 무려 1억 프랑(옛날 일임을 감안하시라)의 유산을 상속받을 거라고 뻥을 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돈을 빌린 소녀의 이야기도 있다.

다 이야기해 드리고 싶지만 그러면 이 책을 읽을 일이 없어질 테니 그것만은 피해야겠다.

'라떼는 말이야~' 하고 좋았던 과거를 예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 읽게 하거나 들려 주어도 좋겠다. 사람들은 태곳적부터 거짓말을 해 왔다고!

엄청엄청 재미있는 책이니까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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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마시즘, <마시는 즐거움>

 

 

이제 보니 2019년에 나온 책이네. 나는 밀리에서 발견해서 읽었다.

오랜만에 밀리의 서재에 들어갔는데 흥미로워 보여서 속는 셈 치고 읽기 시작했는데 꽤 재밌었다.

네이버와 카카오 브런치에서 화제가 된 콘텐츠라는데 나는 처음 듣는다(이렇게 내가 유행에 어둡다). 어쨌거나 나는 원래 영화든 책이든 그냥 간단히 훑어보고 흥미로워 보이면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바로 접하는 걸 좋아하니까 상관없다.

 

어쨌거나, 이 책은 음료라면 환장하는 이들이 쓴 책이다. 맥주, 와인, 소주, 커피 등 대중적인 음료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늘어놓는데, 퍽 재미있다.

그 재미있는 일화들을 소개하기 전, 에필로그에 담긴 저자들의 포부부터 보자.

아직 마시즘이 가야 할 길은 멀다. 네이버에 '마시즘'을 검색하면 '파시즘'으로 자동 완성이 되고, 다음에 '마시즘'을 검쌕하면 '맑시즘'으로 자동 완성이 된다. 이게 다 아직 우리가 무솔리니나 마르크스보다 유명하지 못해 발생하는 일이다. 더욱 노력해서 팟시즘과 맑시즘을 검색할 때 '마시즘'이 자동 완성 검색어로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덤벼라 무솔리니, 마르크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무언가를 마시는 행위다. 우리는 그 마시는 순간이 당신에게 기쁨이 되길 원한다.

파시즘과 맑시즘보다 유명해지겠다는 포부! 파이팅이 넘쳐서 아주 좋다.

 

그럼 내가 이 책에서 배운 사실들 중 제일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들 몇 가지만 소개하겠다.

첫째, 중국의 차(茶)를 훔쳐 국외로 반출한 최초의 서양인은 누굴까? 로버츠 포천(Robert Fortune)이라는 영국인이다. 

그는 중국이 아편 전쟁으로 인해 외국인에게 강한 적대감을 보이던 시절 중국 내륙의 농가에 잠입해 차를 재배하는 과정을 면밀히 살펴본다.

당시 영국에서 인기이던 '블루 티(Blue Tea)'는 녹차에 프러시안 블루라는 청색 안료를 섞어 만들었는데, 이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영국인들의 건강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포천은 생각했다.

그래서 차나무 종자와 제조 과정의 비밀을 적은 기록을 가지고 중국을 빠져나왔으나, 태풍이나 열병, 해적선의 공격 등등 다양한 악전고투가 계속되었다.

포천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묘목의 생존율은 3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몸이 회복되자마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차 재배 과정을 배우고 차나무 묘목, 종자, 차 일꾼 등을 모은다. 그리고 다시 영국으로 이를 반출한다.

포천은 훔친 차나무와 재배 방법 등을 통해 인도 히말라야 부근의 차나무를 개량시킨다. 우리가 부르는 아쌈(Assam), 다즐링(Darjeeling) 등의 차나무는 이렇게 탄생했다. 20년도 지나지 않아 세계는 영국이 만든 차를 구매하기 시작했고, 한 세기가 되기도 전에 인도산 차는 중국 차 생산량을 앞지른다.

차가 곧 엄청난 상품이었던 시대. 포천이 뿌린 씨로 세계는 다시 한 번 요동친다. 근대 영국 최초의 산업 스파이라 할 수 있는 포천은 이후에도 중국에서 활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동안 식물도감에 공백으로 남아 있던 동양 식물 수백 종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국에서 인기가 있었던 것은 그의 중국 여행을 담은 일기였다. 그의 여행담은 '007'이나 '인디아나 존스'의 무용담처럼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차에 대한 유럽인의 사랑을 키워주었다. 이야기. 그것은 언제나 음료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니까.

이 일화를 읽고 너무 신기해서 검색해 보니까 이에 관한, <Robert Fortune: The Tea Thief(2001)>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더라.

나중에 한번 볼까 한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라.

 

둘째, 환타는 히틀러 시절의 독일에서 만들어졌다!

여기, 코카콜라 단종 소식에 슬퍼하는 독재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로 독일의 총통이다. 당시 독일은 코카콜라 소비량이 미국 다음으로 많았던 국가다. 

히틀러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건설 공장을 많이 세웠는데, 그중엔 코카콜라 생산 시설이 있었다. 덕분에 코카콜라는 독일인들이 좋아하는 음료수가 되었고, 히틀러 역시 코카콜라의 매력에 빠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이다. 문제는 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적이 바로 독일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독일 내의 코카콜라 생선 시설은 모두 올 스톱이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카콜라 직원들마저 코카콜라를 만드는 기술, 시럽 등을 모두 빼서 미국으로 도망을 갔다. 히틀러는 물론이고 독일 국민 역시 '콜라 없는 삶'에 슬퍼했다. 히틀러는 독일만의 코카콜라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곧 코카콜라 독일 지부장이었던 막스 키스(Max Keith)를 데려와서 독일식 탄산음료 만들기에 도전한다. 그렇게 '환타(Fanta)'가 탄생했다.

 

셋째, 술의 원료가 되는 주정(酒精)은 소주 회사가 직접 만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책에 단순히 두어 줄로 언급된 걸 보고 내가 신기해서 찾아본 것이다.

본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소주는 재료가 단순한 술이다. 주정은 소주 회사가 아닌 국가에서 지정한 업체가 만들어 제공한다. 때문에 소주가 차별화를 할 수 있는 것은 1퍼센트도 안 되는 첨가물이다. 처음처럼의 등장은 머리에 브릿지만 넣을 줄 알았던 복학생들 사이에서 삭발한 신입생이 나타난 격이었다. 애주가들의 시선 집중.

이 기사(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456326612582664&mediaCodeNo=257)에 따르면, 이 주정을 만드는 주정 업체는 주류 회사(롯데주류나 하이트진로 같은 업체)와 직접적으로 계약을 맺지 않는다. 

대신에 대한주정판매회사라는, 일종의 총판이 있어서 10곳의 주정 업체가 주정을 만들어 이곳에 넘긴다. 

매년 초 한국주류산업협회와 대한주정판매회사가 필요 수량을 예측해 각 주정 업체에 얼마나 만들어서 납품하면 되는지를 정해 준다.

그리고 각 주정 업체가 생산한 주정을 모아서 대한주정판매회사가 소주 회사에 공급하는 것이다.

와, 신기해! 하이트진로 같은 소주를 만드는 업체가 직접 술의 원료를 만들지 않는다니! 

 

이 외에도 흥미로운 사실이 가득 담겨 있는데, 다 까발리면 책을 읽으실 분이 없을 테니 이 정도만 하겠다.

솔직히 나는 액체로 섭취하는 열량을 극혐하는 사람인데(음료는 씹지를 않아 뭐 먹은 것 같은 느낌도 안 드는데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니 억울하다) 이 책은 그래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분들이 무솔리니와 마르크스보다 더 유명해질 수 있도록 한번 관심을 가지고 책을 거들떠봐 주시길(그런다고 나에게 뭐가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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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지승, <아무튼, 연필>

 

 

솔직히 책 표지는 이상한데 내용은 정말 놀랄 정도로 좋다.

나는 나름대로 '취존'이 잘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나도 이런 걸 파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분야를 파는 이, 또는 그런 덕질의 대상을 보면 "아,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죄송합니다…).

몇 년 전에 내 친구가 물고기(집에서 어항에서 키우는 그거)를 덕질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이만큼 놀란 적은 없었다. 이 책의 저자는 무려 '연필 덕후'이다!

아니, 물론 문구류를 좋아해서 1300K나 핫트랙스 가면 이것저것 쓸어담는 사람은 봤는데, 같은 문구류이긴 해도 '연필'은 뭔가... 너무 사소하다는 느낌?

'만년필'은 그래도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고 실제로도 비싼 것들은 꽤 비싸니까 굳이 '덕질'이 아니라 '수집', '애호'라는 (다소 우아하게 들리는) 표현으로도 닷소 접해 봐서 놀랍지 않았다.

그렇지만 연필이라는 것은, 대개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바로 샤프로 갈아타기 때문에 아주 어린아이들이나 쓴다는 이미지가 (적어도 내게는) 있었다.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필기할 때 굳이 연필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어?'라는 게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의 내 생각이었다(내가 모를 수도, 떠올리지 못헀을 수도, 내가 무지했을 수도, 내가 감히, 내가 또 잘못을...).

 

(연필 덕후님들은 분노하지 마시고, 여기서부터가 진짜 본문이니까, 고정하시고 읽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런데 이 책이 내 그런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다 저자의 기가 막힌 글솜씨 덕분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건 (연필을 덕질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 말고) 저자가 '연필'이라는 소재를 여성, 또는 여성주의와 연결지었다는 점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곧바로 '연필'과 여성을 연결짓는다. 어떻게? 흑연 심 연필을 처음 만든 것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 여학생에 의해 발명되었다는 사실을 제시하는 것으로.

연필의 초기 역사는 힘을 들이지 않고 그은 4H 연필 선 정도의 흔적만 남아 있다. 연필 같은 초기 발명품들을 만든 장인들이 대부분 무학자여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고도 하고, 밑그림이나 초안 아이디어 등은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싸라지는 것들이라 그 과정에서 사용한 연필도 더불어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떤 이유든 연필에 관한 기록은 아예 기록되지 않았거나 쉽게 지워져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약자와 소수자들의 역사처럼.

연필이라는 명칭과 그 실체가 우리 가 익히 아는 현대의 그것과 가까워지는 건 대략 17세기 말, 그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륙에 한해서였다. 유럽에서 발명하고 미국에서 완성했다는 연필을 미국에서 자체 생산하기 시작한 건 19셋기 초반에 이르러서다. 1840년쯤 미국에서 최초로 흑연 심 연필을 만든 사람은 한 여학생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ㅆ다. 여학생은 영국 보로데일(Borrowdale) 흑연 조각을 고운 가루로 만든 다음 아라비아고무, 아교 용액에 섞어 굳혔다. 뜨개질 바늘을 이용해 딱총나무 가지 속을 비우고 굳은 흑연을 끼워 쓰는 과정은 기록 속에 구체적으로 남아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여학생의 이름을 전해들을 수는 없다.

연필은 앞에서 내가 말한 만년필처럼 '고오급'스러운 필기구가 아니다. 구하기도 쉽고, 저렴하며, 아이들도 쓰는 있는 물건이다.

또한 연필은 쉽게 지워지기 때문에 최종적인 결정, 또는 확실한 사실을 기록할 때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무엇을 연습할 때처럼 쉽게 지워 버릴 수 있고 또 그러고 싶을 때 쓴다.

이런 '권위 없음'은 여성의 처지와도 닮았다. 쉽게 지울 수 있는 연필을 가지고 남성 결정권자가 결정을 내리기 전 임시적이고 잠정적인 내용을 수첩에 받아적는, 또는 권력자의 미팅 약속을 스케줄러 따위에 적어넣는 비서처럼, 여성은 대체로 타인을 돕고 보조하는 일을 맡는다.

연필과 펜슬스커트와 아이브로펜슬은 하나의 검색어에서 태어난 혈연들처럼 연결되었다. 아이브로펜슬로 화장을 하고 펜슬스커트를 입은 여성 비서가 연필을 들고 있는 70, 80년대 미국의 지면 광고는 그 세 가지를 한 장에 모두 담는다. 광고 속 여성의 이미지만으로 보면 세월감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뉴트로 유행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미지 속 여성의 역할과 업무 라인이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이다. 주로 여성이었던 비서는 연필을 들고 무언가를 '임시로', '예비로' 쓴다. 마지막 결정, 명령, 실행은 대부분 남성 상사의 결재로 이루어지며 공공의 의미 체계를 획득하는 결재란의 그 표식은 연필이 아닌 볼펜이나 만년필로 남겨졌다. 그곳은 연필의 자리가 아니다. 연필의 자리가 아니면 여성인 나의 자리도 아니기 쉬웠다. 비서가 타이핑하는 문서의 내용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공식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문서의 효력과 그것을 발생시키는 서명으로부터 여성은 지속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저자는 연필과 여성을 연결짓는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엄청 재미있다. 책의 앞부분은 저자가 자라며 연필과 관련된 기억을 추억하는 부분이라 다소 쓸쓸한 분위기가 드는데, 그것만 벗어나면 바로 유쾌한 분위기로 변모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부분.

우리가 벽에 말을 거는 건 괜찮지만(나는 주로 냉장고) 벽이 대답을 하면(냉장고는 자주 대답을 한다) 병원에 가보라는, 자가 격리 시대의 자가 멘탈 검진용 조언은 유효하다. 양배추의 잎맥이 자꾸 말을 건다고 양배추를 병원에 보내는 건 좀 그래서 내가 상담을 받기로 했다. 때마침 모 재단에서 운영하는 상담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었다. 10회에 걸친 심리 상담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양배추는 잎맥을 꿈틀거리며 분명 내게 좋은 시간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런 말은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어떤 말이냐가 아니고 양배추가 말을 하는 것임을 내가 잊지 말아야 할 텐데….
(...) 나처럼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이상한지 잘 모르기 쉽다. 이상함의 정도를 체크할 상대적 리스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양배추가 말을 건다고 하면, 서양배추니까 영어로? 라고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나의 친구들아 보아라). 그 리스트를 제공해준다는 면에서도 상담은 유용했다.

저자가 상담가와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라고 말하자, 상담가는 "지승 씨, 사람은 그렇게 강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단다.

유머로 읽는 이의 긴장을 풀어 놓고 나서 저자는 이 사실을 연필과 연결짓으며 깨달음으로 슬그머니 다가간다.

다들 알다시피, 흑연이나 다이아몬드 둘 다 탄소로 구성돼 있다. 

다이아몬드와 흑연 구성 성분의 일치와 구조적 차이를 소비하는 한국적 방식은 그리 신선하지는 않았다. 이 자기 계발의 나라에서 둘은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예시로 곧잘 쓰였다. 흑연처럼 헐렁하고 약하고 잘 부서지는 이들은 패배자가, 고온과 고압을 견딜 만큼 단단한 다이아몬드는 승자가 되었다. 그 뒤로 당연한 수순처럼 다이아몬드가 되려면 어떻게 하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모두가 동일한 욕망을 즉, 다이아몬드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할 거라고 전제한 글들이 많았다. 그중 '작은 자극에서 무너지는 흑연 같은 삶'을 나무라는 표현은 당황스럽게 문학적이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기도 했다. 다른 것들과 포기해지고 더해지고 섞이는 삶을 쌍상하는 건 무너지고 부서져본 사람들이다. 홀로 단단할 수는 없어서 '약한 인간 1'과 '약한 인간 2'가 손잡고 '좀 덜 약한 인간들'로 살아가는 먹먹함에 대해 아는 것도 그들이다. 몇 세기에 걸쳐 흑연에 점토(주로 고령토) 등을 섞어 강도를 높이고 잘 부서지지 않는 연필심을 만드는 데 투자한 것도 흑연의 약함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들이었다. 어둡고, 가벼우며, 검은 광택을 가진 흑연은 어째서 아름답지 않다는 건가. 과도한 열정 없이 언제든 자유로울 준비가 되어 있는 이 검은 친구가.

(...) 사람이 어떤 순간에 무너질 수 있으며 그 무너짐이 어떤 죄책감을 만드는지에 예민할 쑤 있는 건 내가 잘 무너지고 부서지는 사람이어서다. 모를 수가 없다. 모른 척은 해도. 연필을 쓰는 사람은 부서진 흑연 가루가 종이의 섬유질에 남는 것이 연필 필기의 원리임을 매순간 경험한다. 종이 위에 남는 건 바로 그 부서짐의 노력이니까.

정말 기가 막힌 발상 아닌가. 연필과 여성을 잇고, 다이아몬드와 흑연을 비교하는 말을 살짝 틀어서 '약한 인간들'을 위로하는 말로 바꾸어내다니.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가 연필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 추억과 명상을 담은 부분이라면, 2부는 역사적 인물(대개 작가들, 그리고 전부 여성들)과 그들의 연필에 대한 글이다.

2부에서는 버지니아 울프, 다와다 요코, 도롯시 파커, 조앤 디디온, 루이자 메이 올컷 등의 인물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어서 뭔가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보석 같은 (아니, 흑연 같다고 해야 하나?) 책을 만나게 되어 정말 너무 기쁘다.

연필도 덕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흑연처럼 까맣게 빛나는 통찰을 전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참고로 이 책은리디셀렉트에서 바로 볼 수 있다.)

이 책 외에도 내가 사랑하는 '아무튼' 시리즈도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거들떠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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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이연실, <에세이 만드는 법>

 

 

에세이를 발간하는 편집자의 에세이. 글자 그대로 '에세이 만드는 법'을 이야기한다(이 점을 이보다 어떻게 더 자세히,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이틀 정도 시간이 나지 않아 독서를 못 했는데,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아, 맞아. 나 이래서 책 좋아했지!' 하고 새삼 깨달았다.

저자가 책을 사랑한다는 느낌이 모든 페이지에서 폴폴 풍기니 나 역시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같은 마음을 가진 '책덕후'를 만나 기쁠 뿐이다.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다. 그 말을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누구나 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고, 편집자의 일은 그중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잘 구슬려(?) 적절히 글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생활인을 마치 아직 쓰이지 않은 책처럼 바라보고 대하는 저자의 태도에서도 '이 사람은 이야기도 좋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가진 사람도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한 팀에서 일했던 원보름 편집자는 검색과 구독의 달인이다. 그는 월급을 털어서 항시 무언가를 다량 구독 중인 상태고,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신박한 콘텐츠 소식이 들릴라치면, 이미 그 사실을 인지하고 책이 될 만한지 탐색 중이다. 어느 날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팀장님, 저는 예술가보다 생활인이 좋아요!"

나는 허리를 접고 웃었다.

에세이 편집자는 '예술가 되기'에 별 관심도 동경도 없고, 딱히 예술사가 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생활의 달인들을 책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에세이 편집자의 신선한 기획거리는 서점에 이미 나와 있는 완전한 도서 너머에 있을 때가 많다. 신문과 잡지, SNS, TV 뉴스나 다큐멘터리, 인터뷰, 쪽글에서 자신의 일과 삶을 예술처럼 꾸려가는 생활인과 직업인을 볼 때 나는 심장이 뛴다.

 

우리는 일상과 생활이 이미 예술인 사람들, 예술가 이전의 예술가를 발견해 작가가 되어 보자고 유혹한다. 자신은 작가나 예술가가 될 깜냥이 아니라고, 그저 먹고살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한지 잘 모르는 사람, 그러나 곁에서 조금만 대화해 보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조리 주워 담아 간직하고픈 사람, 나는 이런 사람들을 붙들어 내 작가로 만들고 싶다.

 

에세이 편집자의 작가는 도심의 카페와 집필실, 교수 연구실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리에, 출근길 만원 버스와 전철에, 시장에, 가게에, 정신없이 돌아가는 회사에, 이름도 몰랐던 시골 마을에, 세상 방방곡곡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하며 생활하고 있다. 메일함에 꽂히는 완전 원고 너머의 세계에도,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단 하나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걸 어떻게 책으로 만들어야 하나, 조금은 막막하기도 하고 내 힘과 노력과 용기를 조금 더 쏟아야 하는 곳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는 툭툭 튀어나온다.

아직 원고를 써 본 일은 없지만 이미 삶 자체가 책보다 아름다운 사람, 예술가가 되기 전의 생활인, 자기 자신의 업과 삶에 그 어떤 헝영이나 자만도 없이 하루하루를 묵묵히 쌓아 저절로 대가나 달인이 된 사람, 생생한 삶의 현장 속에 숨은그림찾기처럼 박혀 있는 예술적인 생활인……. 그런 이들의 울퉁불퉁하고 유일한 이야기를 찾아서, 나는 오늘도 책 밖의 세상을 기웃거린다.

참 사람을 보는 눈이 따뜻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보면 홀든이 '좋은 책이란 내가 그 책의 저자와 친구여서 책을 읽고 나면 정말 좋았다고 감상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책'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말을 떠올렸다.

책을 사랑하는, 이 저자 같은 친구가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럼 얼마나 신날까! 같이 책 이야기도 하고!

 

내가 이 저자가 만든 책을 읽은 적이 있나 살펴봤는데, 아마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좋은 책들 많이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저자가 자신이 만든 책들을 본문에서 몇 번씩 언급하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은 쉽게 찾아 보실 수 있다).

편집자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 책을 통해 좋은 편집자의 자질이 무엇인지(디자인 감각을 키우기 위해 자신만의 '갤러리'를 항시 채워 놓는다든가)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쪽에 관심이 없더라도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이야기를 듣는다는 감각으로 읽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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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이재범, <1분 과학>

 

 

리디셀렉트에서 만난 책이다.

과학 관련 인기 유튜브를 만화화한 거라는데 나는 본 적 없어서 모르겠다. 총 14꼭지가 담겨 있다.

운동을 하면 신체 건강을 젊게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뇌도 젊고 활동적이 된다는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다큐 캡처본 같은 것으로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게이는 후손을 남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전체 인류의 약 10%는 게이로 타고나는지도 진화나 심리학 관련 책에서 본 듯하다.

텔로미어는 아마 중학교 생물 교과서에도 나올 테고(라떼는 그랬다는 뜻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 시간과 차원의 관계는 여기저기에서도 잘 다루는 소재인 것 같다.

그것 빼고는 처음 보는 내용이다. 14개 중 10개 소재가 신선하니까 전반적으로 새롭다고 봐도 좋을 듯.

 

내가 원본 유튜브를 찾아보지 않아서 만화 버전과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과학 쪽 교양을 쌓고 싶을 때 읽기는 괜찮다.

만화도 썩 재미있고. 다만 만화로 되어 있기 때문에 리디북스/리디셀렉트에서는 PDF 파일로 다운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형광펜 하이라이트를 못 한다는 뜻이다. 이 점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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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데이비드 엡스타인,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오랜만에 논픽션을 읽었는데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이었다.

저자가 열심히 자료를 조사해서 쓴 게 티가 나고, 흥미로운 일화와 실험 결과가 풍부하다. 책에서 전하는 메시지도 고무적이고.  

 

일단 책의 부제목("전문화된 세상에서 늦깎이 제너럴리스트가 성공하는 이유")이 말해 주듯, 이 책은 '일찍 시작해 한우물만 판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보다는 '이런저런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서문에 등장하는 예를 빌리자면, 타이거 우즈처럼 되는 것보다 로저 페더러처럼 되는 것이 더 이 시대에 적절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이과든 문과든 예체능이든 일찍 진로를 정해서 거기에 올인을 해서 평생 그 분야의 경험을 쌓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찾기 쉽지 않은 것이 첫째 이유고(우리는 너무 이른 나이에 진로를 정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또 직접 경험해 보아도 그것이 자신의 생각이나 원하는 바와 달라 다른 길을 선택하는 일도 흔하다.

게다가 요즘 예상 수명은 또 얼마나 긴가. 한 가지 일 또는 분야에만 종사하기에는 참 긴 시간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이직 또는 분야 전환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그리고 저자의 말에 따르면 오히려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 보는 것이 우리에게 더 나은 성공 가능성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서문에서 언급된 타이거 우즈와 로저 페더러 같은 스포츠 선수들의 맥락에서 이를 알아보자.

과학자들이 유년기 초부터 운동선수들의 발달 과정 전체를 살펴보았는데, 엘리트 선수와 준엘리트 선수들을 나누어 비교했다(여기에서는 엘리트 선수가 성공한 이들을 나타낸다고 보면 되겠다).

이윽고 엘리트가 되는 이들을 보면, 대개 초기에는 훗날 자신이 전문가가 될 바로 그 종목에서 신중한 훈련에 쏟은 시간이 사실상 더 적었다. 대신에 그들은 전문가들이 <샘플링 기간>이라고 부르는 시기를 거친다. 대개 체계적이지 않거나 체계가 엉성한 환경에서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하는 기간을 말한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그들은 몸을 쓰는 기술들을 폭넓게 습득할 수 있다. 또 자신의 능력과 적성을 알게 된다. 그런 뒤에야 그들은 한 분야에 집중해 기술을 갈고닦을 준비를 한다. 개인 스포츠 종목의 운동선수들을 연구한 한 논문은 제목에서 <늦은 전문화>가 <성공의 열쇠>라고 단언했다. 또 다른 논문의 제목은 이러했다. ❮단체 스포츠에서 최고가 되는 법: 늦게 시작하고, 집중하고, 단호해져라❯. 

책에서도 나오는 일화 비슷한 에시를 들자면, 예컨대 자녀에게 악기를 가르친다고 치자.

양육자가 '자, 너는 이제부터 바이올린을 배워!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 위해 훈련하는 거야!' 하는 것보다 자녀에게 바이올린, 피아노, 피콜로 등등 다양한 악기를 접하게 해 주고 그중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전공하게 하는 것이 자녀 본인의 만족감도 높고 성공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악기를 골라서 더 집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러 악기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 악기와 음악에 대한 여러 경험을 다양하게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에 나는 첫 책 ❮스포츠 유전자(The Sports Gene)❯의 후기에 스포츠에 늦게 뛰어든 이들을 조사한 연구 결과들을 조금 언급했다. 다음 해에 나는 의외의 사람들로부터 강연을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운동선수도 코치도 아닌 퇴역 군인들이었다. 강연 준비를 하면서 나는 스포츠 세계 바깥에서 전문성과 전직을 다룬 연구가 있는지 과학 학술지들을 뒤졌다. 나는 논문들을 읽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연구는 일찍부터 한 분야을 파고든 이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더 먼저 자리를 잡지만, 늦은 전공자가 자신의 역량과 성향에 더 맞는 일자리를 찾음으로써 늦게 시작한 사람의 불리함을 보완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기술 발명가들이 한 분야를 더 깊게 파고든 또래들에 비해, 여러 분야에서 경험을 쌓을 때 창의력이 더 향상된다는 것을 보여 준 연구도 많았다. 깊이를 조금 희생하더라도 적극적으로 폭을 넓히는 쪽이 경력이 쌓여 갈수록 더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예술 창작자들을 조사한 연구도 거의 동일한 결과를 내놓았다.

 

한 가지 분야에 깊게 천착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아주 좁은 전공 분야만 집중하다 보면 그 세부 분야가 아닌 다른 부분에는 오히려 까막눈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동물학자라면 일반적으로 개, 고양이, 양, 소, 닭 등 다양한 동물들을 연구할 텐데, 그중에서도 고양이, 또한 그중에서도 페르시안 고양이 한 종만 들입다 판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동물학자는 동네 동물병원에서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너무나 전문 분야가 좁기 때문이다. 

예시를 좀 가볍게 고양이로 들어서 그렇지, 공학, 과학 쪽으로 눈을 돌린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우리가 풀고자 하는 문제는 자연에 실재하는 존재를 가지고 하는 것인데, 그 자연이란 게 우리가 딱 칼로 자르듯 나눈 학문 한 가지만 적용해서 풀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문제를 풀 때 두 가지 이상의 학문에 관한 지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니면 자신이 아는 메인 분야와 완전히 다른 시각이나.

나는 고도의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이 실제로는 경험이 쌓일수록 더 편협한 사고방식을 지니게 될 수 있으며, 그런 와중에 오히려 더 자신만만해지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 — 위험한 조합이다— 을 보여 주는 연구들을 살펴보았다. 또 여러 인지심리학자들을 만나면서, 너무나 많은 놀라운 연구 결과들이 무시되곤 해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래가는 지식을 쌓으려면 학습 자체가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는 연구들이 대표적이었다. 그 말은 설령 학습한 직후에 치르는 시험에서는 성적이 형편없게 나올 때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다싯 말해 가장 효과적인 학습은 별 효과가 없는 양 보인다. 즉 뒤처지는 듯이 보인다.

 

빙엄은 기존 기업들이 이른바 국소적 탐색을 통해서 문제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즉 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써서 전에 효과가 있었던 해결책을 써보는 것이다. 한편 외부인들을 초청하는 그의 방식이 너무나 효과가 좋았기에, 일라이릴리는 아예 독립시켜서 별도의 기업을 세웠다. 이노센티브(InnoCentive)라는 이 회사는 어떤 분야의 기관이든 간에 <의뢰자>로부터 비용을 받고 그 <도전 과제>를 사이트에 올려서 해결책을 제시한 외부 <해결자>에게 보상을 한다. 도전 과제 중 약 3분의 1 남짓은 완전히 해결되었다. 이노센티브가 선정하는 문제들이 당사자인 전문가가 해결 못 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놀라운 비율이다. 그러면서 이노센티븐은 해결책이 나올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방향으로 의뢰자가 올리는 문제를 다듬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다양한 해결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다듬는 것이 바로 요령이었다. 도전 과제가 과학자들뿐이 아니라 변호사와 치과 의사와 수리공에게도 달려들 만한 것으로 비칠수록, 해결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

이노센티브는 어느 정도는 전문가들이 점점 더 협소하게 초점을 맞추어 감에 따라서 <상자>가 러시아 인형과 더 비슷해지기 때문에 작동한다. 전문가들은 더 하위 분야들로 전문화하며, 그 하위 분야들은 더욱 하위 분야들로 나뉜다. 설령 작은 인형 바깥으로 나간다고 해도, 여전히 좀 더 큰 인형 안에 들어 있을 뿐이다. 크래진과 데이비스는 애초에 상자 바깥에 있었고, 훈련과 자원의 모든 이점을 지닌 듯한 내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뻔한 해결책을 보았다. 해결자 자신도 어떤 기업이나 산업 전체가 풀지 못하고 있는 과제를 자신이 해결할 때 의아해하곤 한다.

한 외부인 해결자는 결핵 치료제의 제조에 생긴 생산 문제를 도와 달라는 존슨앤존슨의 요청에 응답한 뒤 ❮사이언스❯에 이렇게 말했다. "사흘에 걸쳐서 저녁에 그 해답을 적었어요. 큰 제약 회사가 이런 문제를 왜 풀지 못하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 하버드 혁신과학연구소의 공동 소장 카림 라카니(Karim Lakhani)는 이놋센티브 해결자들에게 문제가 자신의 전공 분야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등급을 매겨 달라고 했다. "문제가 해결자의 전문 분야와 거리가 멀수록, 풀 가능성이 더 높았다."

 

살다 보면 어떤 일에 끈기를 가지고 매달려야 할 때도 있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경험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과 맞지 않아 힘든데 여기에서 포기하면 비웃음받을까 봐, 또는 나약하다는 평을 받을까 봐 억지로 질질 끄는 것은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게 직업이든, 취미든, 무엇이든 자신과 맞지 않는다, 또는 가능성이 아무래도 없다 싶으면 빨리 관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도 삶의 지혜다. 그러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또는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는 거니까.

윈스턴 처칠의 <결코 포기하지 마라. 결코, 결코, 결코>라는 말이 종종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그 문장의 나머지 부분은 으레 빼먹는다.  <명예와 양식에 따라 확신이 들 때를 제외하고.>

 

혹시나 오해할까 봐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이 책은 '전문성'을 무시하는 건 전혀 아니다. 전문성을 가지되, 다양한 분야에 경험, 관심, 지식을 가지는 게 좋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자신의 '메인'이 되는 전문 분야를 가지되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면 그 관심사에 관한 지식을 자신의 메인 분야와 융합해 큰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자신이 오래 해 온 일을 그만둘까 고민 중이라거나, 전직, 업종 전환 등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면 이 책이 심적으로도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학생이나 진로 상담을 해 주어야 하는 교사 등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리디셀렉트를 이용한다면 꼭 찾아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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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엘리, <이번 생은 나 혼자 산다>

 

 

솔직히 전체평부터 하자면, 저자의 이전 책보다 못하다.

엘리라는 작가 이름을 보고 "오, 나 예전에 이 저자의 <연애하지 않을 권리> 재미있게 봤는데!" 하고 별 걱정 없이 대여했다.

그런데 음... 책의 주제가 '연애하지 않을 권리'에서 '결혼하지 않을 권리'로 옮겨갔을 뿐이고 그 사이엔 큰 간격도 없는데 왜 이렇게 예전 책만큼 재미가 없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이번 책도 저번 책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미리 연재되었던 글들을 바탕으로 쓰였는데, 저번 것이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었고 이번 것은 네이버 연애﹒결혼 판에 연재한 글이었다.

둘 다 예전 글을 바탕으로 정리한 책인데 왜 이번 책은 저번 책보다 별로인지 모르겠다.

 

오해는 마시라, 나도 비혼이라는 아이디어에 찬성이고 비혼을 선택한 이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냥... 별로다. <연애하지 않을 권리>는 첫 시작(그러니까 서문)부터 빵 터졌는데. 나는 책을 읽으면서 재밌는 부분이나 멋진 부분, 또는 맞춤법이나 표기가 잘못된 부분을 하이라이트하는데, 이 책에는 진짜 좋은 의미에서 하이라이트할 게 딱 두 곳밖에 없었다.

인생이란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그냥 두면 축제 같은 것이 될 터이니.
길을 걸어가는 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날려오는
꽃잎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듯이
매일매일이 네게 그렇게 되도록 하라.

꽃잎들을 모아 간직해 두는 일 따위에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 머리카락 속으로 기꺼이 들어온
꽃일들을 아이는 살며시 떼어내고,
사랑스러운 젊은 시절을 향해
더욱 새로운 꽃잎을 달라 두 손을 내민다.
- <나의 축제를 위하여>,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여성의 우울증에 대한 모든 문헌을 검토하고 유전학에서부터 월경 전 증후군, 피임약 등 다양한 요인들을 테스트해본 저명한 건강 연구자 제럴드 클러먼(Gerald Klerman)과 미르나 와이즈먼(Myrna Weissman)은 여성 우울증에는 2가지 원인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그것은 바로 낮은 사회적 지위와 결혼이었다.

 

둘 다 좋은 문장이지만 안타깝게도 둘 다 저자가 직접 쓴 문장이 아니고 인용한 문장들이다. 저자의 문장력이 형편없다고 말하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전 작품만큼의 재기발랄함, 유쾌함, 유머가 없달까?

아쉽다. 저자의 이전 작품을 읽고 기대가 높아진 독자라면 나처럼 아쉬울 것이다. 이전에 내가 쓴 <연애하지 않을 권리> 리뷰로 마무리를 대신하겠다. 끝.

2019.01.16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엘리, <연애하지 않을 권리>

 

[책 감상/책 추천] 엘리, <연애하지 않을 권리>

[책 감상/책 추천] 엘리, <연애하지 않을 권리> 그렇다, 나도 리디셀렉트에서 이 책을 보고 작년에 읽고 나서 감상을 쓴 그 책인가 했다. (그 책이란 이 책을 가리킨다. 018/12/21 - [책을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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