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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91

[책 감상/책 추천] 마크 그레이엄, 제임스 멀둔, 캘럼 캔트,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책 감상/책 추천] 마크 그레이엄, 제임스 멀둔, 캘럼 캔트, 살벌한 제목만큼이나 불편한 진실을 밝히는 논픽션. 무려 셋이나 되는 저자들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AI의 현실을 고발한다. AI는 진공 속에서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진공 속에서 작동하지도 않는다. AI는 많은 이들을 제물 삼아 만들어졌고, 발전한다. 저자들은 데이터 주석 작업자, 머신러닝 엔지니어, 기술자, 예술가, 물류 노동자, 투자자, 노동 활동가, 이렇게 일곱 가지 노동자들의 측면에서 AI가 얼마나 많은 노동 위에 세워졌는지를 보여 준다. 일단은 데이터 주석 작업자. 챗GPT 같은 AI는 그냥 언제니어들이 뚝딱뚝딱 코드를 짜서 만든 게 아니다. 이것들을 ‘학습’시켜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만들려면, 또는 인간에게 도움.. 2025. 9. 12.
[책 감상/책 추천] 스즈키 이즈미, <여자와 여자의 세상> [책 감상/책 추천] 스즈키 이즈미, 일본 여성 SF계의 전설이라고 하는 스즈키 이즈미의 ‘프리미엄 컬렉션’. 그가 쓴 소설 7편과 에세이 4편이 담겼다. 개인적으로 일본 문학에는 전혀 조예가 없고 SF도 엄청난 팬은 아니니(종종 읽긴 하지만) 내가 그에 대해 내리는 평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믿을 만한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무척 사적인 리뷰를 써 보려 한다.전반적으로 스즈키 이즈미의 작품에서 느낀 감상은, ‘여간내기가 아니다’라는 것. 소설에는 외계인이나 미래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단순히 소재뿐만 아니라 그냥 여러 가지 면에서 저자가 보통 여자가 아님이 느껴진다. ‘옮긴이의 말’을 보니까 작가가 누드모델도 하고 성인영화 배우로 활동도 했으며, 천재 색소폰 연주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발가락을 절.. 2025. 9. 10.
[책 감상/책 추천] 김경일, 류한욱, <적절한 좌절> [책 감상/책 추천] 김경일, 류한욱, 저자 김경일은 인지심리학자, 류한욱은 소아정신과 의사다. 둘이 합심하여 ‘이 시대 심리적 미성숙’에 관해 책을 썼다. 거의 전 세계적으로 요즘 젊은 세대들은 ‘나약하다’고들 하는데 애비게일 슈라이어의 이 미국 버전의 이야기라면, 이것은 한국 버전이다. 좋은 대학교에 가서 돈을 많이 버는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이자 성취가 된 젊은 세대는 부모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며 진정한 의미의 개인으로서, 성인으로서 ‘독립하지’ 못했다는 평들이 많다. 두 저자는 특히 이러한 한국의 젊은 세대를 키우는 부모와 젊은 세대, 그러니까 성인이 되었으나 아직 충분히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조언을 제공한다.저자들은, 아이가 태어나서 성인이 되어 .. 2025. 9. 8.
[책 감상/책 추천] 에밀리 부틀, <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 [책 감상/책 추천] 에밀리 부틀, ‘진정성’, 이처럼 상투적이고 깊은 생각 없이 쓰이는 말이 있을까. 사람들은 연예인이 ‘진실(authentic)’하지 않다고, 가식적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나는 이 단어에 대한, 정확히는 이 단어가 가리키는 바에 대한 믿음을 잃은 지 오래다. 아마 10년쯤 전, 내가 조지프 히스와 앤드류 포터의 를 읽었을 때쯤이었던 것 같다. 어떤 연예인이 한 말이 (예컨대 “팬 여러분 사랑해요!”)가 진심인지, 미디어에서 비추어지는 모습이 실제 그 자신의 모습과 같은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알까. 연예인은 다 이미지 장사인데. 그 연예인이 유난히 솔직한 사람이라고 해도, 애초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연예인이든 아니든) 진심을 알 수가 있나? 너무 회의적이라고? 글쎄. 어쨌든 나.. 2025. 9. 5.
[책 감상/책 추천] 김관욱, <사람입니다, 고객님> [책 감상/책 추천] 김관욱, 콜센터 상담원들을 현장 연구한 저자의 민족지(ethnography). 저자는 의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덕에, 그토록 연구하고 싶던 콜센터 직원들을 금연 상담 의사 신분으로 만나 많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좋은 학력이 어디에서 뭘 하든 도움이 될 거라며, “네가 나가서 노래를 부른들 박사학위가 쓸모없을 것 같냐”라는 닥터 베르의 지도 교수님 말씀이 떠오른다). 그 덕분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 1970, 1980년대에 소위 ‘공순이’로 불리던 여공의 삶이 2010, 2020년대에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콜순이’라 불리는 콜센터 상담원으로 반복된다. 이 여성들은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하지만 인정받지 못한다는 큰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공통점에 하나를 더 추가하.. 2025. 9. 3.
[책 감상/책 추천] 줄리언 반스,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책 감상/책 추천] 줄리언 반스, 나는 요리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요리를 아주 못 하는 건 아니고 그냥저냥 먹을 만큼은 하지만, 잘한다거나 즐겨 한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래도 학생 때, 특히 코비드-19로 인한 락다운 때는 집에 있을 시간이 많아서 어느 정도 ‘내가 요리를 즐기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는데, 이제 직장인이 되니 요리를 즐길 힘도, 시간도 없어졌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대충 아무거나 먹기 바쁜데 무슨. 그래도 내가 정말 신기하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존경하는 이들이 요리를 직업으로 하지 않는데 다른 일도 많이 하면서 요리까지 즐기며 잘 챙겨 먹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러지?이 에세이의 저자 줄리언 반스는 로 맨부커 상을 수상한 영국의 작가다. 개인적으로 내가 그의 작품을 .. 2025.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