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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163

[책 감상/책 추천] 저넷 월스, <더 글라스 캐슬> [책 감상/책 추천] 저넷 월스,   미국의 칼럼니스트 저넷 월스가 쓴 회고록. 동명의 영화 (2017)의 원작이다. 저자는 회고록을 쓸 만한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 주는 듯한 삶을 살아왔다. 이 책과 저자의 삶 소개는 이 책의 첫 문단만 보여 줘도 충분할 정도로 첫 문단이 아주 인상적이다.그때 나는 택시에 타고 있었다. 그날 밤 모임에 지나치게 화려하게 입은 건 아닌지 생각하며 차창을 바라본 순간, 엄마가 덤프스터(대형 쓰레기 수납기.-옮긴이) 속을 파헤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막 해가 진 무렵이었다. 사납게 몰아치는 3월의 바람이 맨홀 구멍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휘저었고, 사람들은 옷깃을 세우고 인도를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차는 파티 장소까지 두 블록 남은 곳에서 꿈쩍도 못 하고 있었다.첫.. 2024. 10. 25.
[책 감상/책 추천] 레베카 하디먼,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책 감상/책 추천] 레베카 하디먼,   잃을 게 없어서 겁도 없는 할머니가 주인공인 소설. 넓은 폭의 독자를 사로잡을 만하다. 책 표지 띠지에 ‘맨정신으로 보다가도 어느새 킬킬거리게 되는 재치와 입담 속으로’라고 되어 있는데, 그 말이 정말 꼭 맞는다. 어떤 종류의 재미냐고 묻는다면, 표현이 재미있달까. 그 예는 잠시 후, 일단 줄거리와 등장인물 소개부터 하고 보여드리겠다.제목에 등장하는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는 밀리 고가티이다. 밀리는 어느 날 가게에서 물건을 슬쩍하다가 들키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들 케빈은 밀리에게 가정부를 들여 도움(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감시)을 받지 않는다면 요양원에 보내겠다고 협박한다. 어쩔 수 없이 미국인 가정부 실비아를 들이게 된 밀리. 미국인 특유의 천.. 2024. 10. 23.
[책 감상/책 추천] 강이라, <탱탱볼> [책 감상/책 추천] 강이라,   얼마 전에 김지숙의 리뷰에서 청소년 소설이라고 애쓰지 않고 적당히 쉽게쉽게 쓰는 게 싫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건 바로 정반대다. 이건 청소년 소설이지만 그들을 내려다보지도 않고, 일부러 쉽고 허술하게 쓰지도 않았다. 탐정 소설, 추리 소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뿍 담긴 이 소설은 청소년을 진지하게, 진심으로 대한다. 전직 형사인 영욱은 ‘향수문방구’를 연다. 하필이면 이 문방구는 초등학교의 폐쇄된 정문에 위치해서 손님들이 많지 않다. 초등학생 리라는 중학생 하나가 문방구에서 물건을 슬쩍하는 걸 매의 눈으로 발견해 영욱에게 알리고, 영욱은 관대하게 하나를 용서해 준다. 고등학생 동우는 영욱이 형사이던 때 여성청소년계에서 만난 학생인데, 형사 일을 그만둔 후에도 영욱을.. 2024. 10. 16.
[책 감상/책 추천] 존 발리, <엔터를 누르세요■> [책 감상/책 추천] 존 발리,   SF 전문 출판사 ‘아작’에서 낸 SF 소설가 존 발리의 소설. 종이책 기준으로 184쪽밖에 안 되는 얇은 책인데 앞에 저자의 에세이 같은 게 짧게 실려 있으므로 본편은 그보다 더 짧다. ‘조용히 살던 한 남자가 갑자기 전화가 울려서 옆집에 가 봤더니 그 집 주인은 죽어 있고 컴퓨터에 알쏭달쏭한 글귀가 남아 있다’라는 게 극초반의 줄거리이다. 다음 인용문을 보시라. 이거 엄청 흥미로워 보이지 않습니까!“이것은 녹음된 소리입니다. 메시지가 완료될 때까지 전화를 끊지 마세요. 이 전화는 옆집 찰스 클루지의 집에서 걸었습니다. 10분마다 반복해서 전화가 갈 것입니다. 클루지 씨는 자신이 좋은 이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미리 사과합니다. 클.. 2024. 10. 14.
[책 감상/책 추천] 김지숙, <소녀 A, 중도 하차합니다> [책 감상/책 추천] 김지숙,   나는 청소년 소설도 좋아한다, 나도 한때는 청소년이었던 적이 있으니까. 그때에만 느낄 수 있는 게 분명히 있고, 그걸 상기하는 것도 좋다. 내가 싫어하는 건,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어른들’이 읽는 ‘보통’ 소설들보다 일부러 더 쉽게 쓰거나, 아니면 전력을 다해 쓰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이 책은 라는 경연에서 최후의 5인에 든 후보들 중 한 명인 ‘소녀A’를 둘러싼 네 소녀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소녀A로 알려진 김아름은 초등학교 시절 구유진과 친구였으나, 서지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도 버려지고 구유진도 괴롭힘을 당할 거라는 사실을 눈치챈다. 그래서 구유진의 물건을 훔쳐서 서지희에게 갖다 주는 식으로 괴롭힌다. 구유진은 이에 크게 상처받고 공황.. 2024. 10. 11.
[책 감상/책 추천] Sierra Greer, <Annie Bot> [책 감상/책 추천] Sierra Greer,  SF 소설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이 보자마자 탈락시킨다는 소재가 있다. 바로 ‘섹스 로봇’이다(출처). 배명훈 작가는 “특별히 역할이 있거나 내용상 꼭 필요한 장면도 아닌데, 그냥 익숙한 미래의 풍경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섹스 로봇 이야기를 집어넣은 글이 예심 기간 읽은 응모작의 절반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읽고선 소설을 쓴다는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상상력이 빈약한지, 미래니까 성욕을 처리해 줄 ‘여성형’ 로봇은 반드시 있겠거니 생각하고 그걸 소설에 집어넣는다는 게 너무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이 소설은 바로 그 흔하디 흔한 여성형 섹스 로봇의 시점에서 진행된다.다시 한 번 배명훈 작가의 말을 인용해 보자. “’로봇은 인.. 2024.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