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태그의 글 목록 :: 먹고, 자고, 읽고 '에세이' 태그의 글 목록 :: 먹고, 자고, 읽고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지비원, <왜 읽을 수 없는가>

 

 

최근 '심심한 사과의 말씀' 논란이나 '사흘' 논란으로 인해 (이 논란들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여기를 클릭) 요즘 세대의 문해력에 대한 탄식과 비판이 많이 나왔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그렇게 기본적인 단어도 모르냐', '모르는 것 자체도 모르지만 모르는 것을 배우려고 하지 않고 뻔뻔하게 왜 어려운 말을 쓰냐고 공격적으로 나오는 게 더 문제다'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 맞는 말이고 다 공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이해시키고 싶다면 어떡해야 할까? 상대방에게 문해력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이해시켜야 한다면?

이런 질문에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지비원의 <왜 읽을 수 없는가>라는 책을 추천받게 되었다(글 하단 링크 참조). 저자는 주로 일본어 인문교양서를 만드는 편집자 겸 번역가이다. 그는 노야 시게키의 <어른을 위한 국어 수업>이라는 책을 번역하며 '어떻게 하면 상대를 이해시킬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고, 그간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에세이 형식으로 쓴 게 바로 이 책이다.

요즘 10대, 20대들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이해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 교육자들(교과서나 인문, 과학 등 전문서적의 저자들 포함)이나 현대 사회의 소식을 전하고 그에 대한 비평이 업인 기자들이 비판만 하고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는 일 아닌가. 어떻게든 상대를 이해시키기 위해, 그들의 눈높이에서 글을 쓰고 이야기해야 한다. 저자는 '들어가며'에 이렇게 썼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이 쉽게 나올 수는 없고, 전문 분야에 따라 그 해법도 다를 것이다. 나는 출판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 견해를 내놓을 만한 주제는 못 된다. 그러나 오랜 시간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이들, 특히 인문학 연구자들의 문장을 많이 다루었고, 이를 오류가 없고 되도록이면 독자층에게 가장 적합한 형태로 전달해야 하는 책임을 지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어떤 '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일차적으로 글쓴이와 그 글을 편집하는 사람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 때문에 나는 '안 읽는' 독자들을 먼저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 대신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들, 자신이 쓴 글에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의 문장을 한번 돌아보고 싶다. 글이 길고 조금만 어려워도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질책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넓고 얕은 지식'이든 뭐든, 기왕이면 머릿속을 채우는 게 채우지 않는 것보다 백배 낫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왜 전문가가 조금만 재미있게 설명한다 싶으면 시청률이 그렇게 뛰어오르는가? 왜 '넓고 얕은 지식'을 표방하는데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는가? 단언컨대 사람들이 웬만하면 교양을 쌓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지식은 누구나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한다. 쉽고 얄팍해 보이는 프로그램이나 책이 인기를 얻는 현상은 사람들의 지식욕을 이해하지 못하면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일반인들의 지식욕이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구사하는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문장에는 접근할 길을 찾지 못하는 것뿐이다.

솔직히 어려운 글이 너무 많다. 전문 서적이야 전문가를 위해 쓰인 것이니 어려운 게 당연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독자를 위해 쓰인 글인데도 어려운 게 많다. 글을 전혀 안 읽는, 또는 어떤 주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아, 이런 내용이구나' 하고 이해할 텍스트가 있어야 하는데, 초급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없다. 그러니 어떤 주제가 됐든 흥미를 가져도 조금 파 보려다가 어렵다고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뉴스 매체에 실리는 글조차 그냥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이걸 과연 10대, 20대 젊은이들이나 노인들이 보고 한번에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가 '뉴스'로 분류되는 글 중에서 가져온 아래 예들을 보시라(순서가 달려 있지만 각각 다른 글에서 나왔으며,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다).

1. 이런 단일 토지세론보다 현대 사회에 더 묵직한 한 방을 날리는 것은 그[헨리 조지-인용자]의 정치경제학 밑바탕에 흐르는 자연정의론적 세계관이다. 그가 정치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그의 정치경제학에 있는 자유방임론적 요소를 상당 부분 포기했을 것이다.

2. 2020년대에 바우만의 사상이 던지는 함의는 그렇다면 뭘까. 바우만의 탁월성은 새로운 개념의 발굴에 있다. 특히 그는 흥미로운 개념틀을 주해 우리 시대를 날카롭게 분석해왔다. 그 대표적인 개념틀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입법자와 해석자'다. 바우만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 개입한다. 그에 따르면, 모더니스트들은 확실성과 보편성의 기준을 세우려는 입법자로서의 입장을 취한다.

3. 슈미트주의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아예 보편성과 일관성 자체를 포기한다.

자유주의자들은 (A 이른바 '원칙이성(Grundsatzvernunft)'에 따라 사유하고 행동한다. 그들은)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보편적﹒추상적 기준을 갖고 있다. (……)

이와 달리 전체주의자들은 (B '기회이성Gelgenheitsvernunft'에 따라 사유하고 행동한다. 그들은) 보편적 기준 없이 매사 그때그때 상황의 필요에 따라 판단한다.

보자마자 '그게 뭔데 씹덕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자연정의론은 뭐고 바우만이랑 슈미트주의자는 누구인가? 이걸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가 이해할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가? 글만 봐도 '네가 이 정도 글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너와 이야기해 주겠다'라는 오만한 태도가 엿보인다. 이런 글을 대중매체에 써 놓고서 독자들이 이해를 못한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독자인 이쪽이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 애니 오타쿠가 애니 캐릭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으면 '으, 사회성 없는 씹덕'이라고 비웃으면서 왜 이런 글을 전문 서적도 아니고 전문가들을 위한 논문도 아닌 '대중매체'에서 쓰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글의 저자가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글을 쓴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독자들은 이런 글을 읽지 못하는 것에 부끄러워하며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존나 가만히 있어야겠다' 해야 하나?

'나도 이해하고 싶다. 이해하고 싶으니 제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해 달라.' '심심한 사과'나 '사흘' 논란을 일으킨 그 소위 '무식한' 사람들의 심정도 사실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너무나 미세하고 또 자존심에 가려 사실 본인들도 잘 몰랐겠지만 그들도 이해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다 해도 그건 너무 기본적이고 쉬운 단어인데, 그걸 심지어 찾아보지도 않고서 자기네들이 옳다고 우겼잖아?' 하며 반박하고 싶은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교양'이나 '상식'처럼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도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뫄뫄 정도는 상식 아닌가요?' 같은 글이 올라오면 언제나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예시로 든 저런 글을 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헨리 조지, 바우만, 슈미트 등을 모르는 나를 무식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잘 안다'와 '모른다', '유식하다'와 '무식하다'의 차이는 언제나 자의적이니까.

솔직히 나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글쓴이들이 글을 쉽게 써야 한다는 생각에 그쳤다. 그런데 이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대중을 상대로 이해하기 쉬운, 쉽게 설명하는 글을 쓰는 것은 교육자 또는 기자 들의 의무이고 또한 그런 글을 읽을 권리가 대중에게 있다. 자기만의 감상에 벅차올라 그것을 상대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전달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씹덕을 만나면 그와의 정상적인 대화를 포기하게 되듯, 이 시대의 많은 이들도 '('심심하다', '사흘' 같은) 어려운 말을 이해할 수 없으니 너와 대화하지 않겠다'라는 결정을 내린 게 아닐까.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게다가 태어날 때부터 핸드폰, 인터넷, 유튜브 같은 미디어를 접해 긴 글 읽기가 더 어렵게 느껴지겠지. 이런 상황에서 그냥 그들을 비웃고 비난만 할 게 아니다. 그들을 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책 후반에는 '어려운 글'뿐 아니라 입문서도 때때로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전문 용어 자체가 일본에서 번역해 들여온 용어를 가져왔기 때문임을 (내가 보기에는) 다소 길게 설명한다. 예컨대, '철학(哲學)'이라는 단어는 'philosophy'라는 영어 단어를 일본인들이 번역할 때 만들어낸 단어이다. 우리는 이 단어를 그대로 가져왔으니 왜 'philosophy'가 '철학'이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안 그래도 어려운 개념인데 번역어가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전혀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분명히 좋은 지적이다. 그렇지만 역시 개인적으로는 이 논의가 이 책에서 다루어야 할 분량 이상으로 조금 길게 느껴졌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길지 않은 (종이책 기준 180쪽) 좋은 책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교육자나 기자라면 꼭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 이 책을 가지고 소통을 위한 읽기와 쓰기의 문제를 해찰한, 뉴스레터 '인스피아(Inspia)'의 해당 이슈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이 책을 소개받았다. 또한 이 문제를 다룬 바로 그다음 주에 인스피아 측에서 저자 지비원을 인터뷰한 뉴스레터도 발행했으니 이것도 같이 보시면 좋을 듯.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9kCGVSU0U7UJpNqa4JgbHEVVGmZB5QI=

 

🎓읽을 수 있는 글, 읽을 수 없는 글

 

stibee.com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rbzNPrFofjXitNuX1GYIndfRv58DuNM=

 

🎓사람들은 인문학에 관심 없을까?[지비원 저자 인터뷰]

 

stibee.com

 

반응형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박상영,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재미있고 짠하다. 분명 엄청 웃으면서 시작했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마음이 찡해져서 '저런...'을 연발하며 읽었다. 분명 시작할 땐 이렇게 빵빵 터졌는데!

세상에 출근보다 더 싫은 게 존재할까? 다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서른몇 해를 살아본 결과 이보다 더 싫은 건 없었다. 채근하듯 울려대는 알람을 끄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욕부터 튀어나온다. 10년 전에 라식수술을 한 뒤로는 아침마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안구건조를 느끼기 때문에, 감은 눈으로 침대 옆 협탁을 더듬어 인공누액부터 찾아 넣는다. 텔레비전 교양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피부과 전문의의 말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대부분은 지성 피부이며 자신이 지성인 걸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하던데, 아침에 내 피부를 보고도 그 말이 나오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나는 악건성이다. 각막과 입술을 포함한 온몸이 건조하고 대부분의 건성인들이 그러하듯 종종종 참을 수 없이 간지럽다. 빙하처럼 추운 욕실로 들어가 건조한 몸에 미지근한 물을 끼얹으며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살아 있음의 거지 같음을. 새로 산 보디로션의 점도가 높아서 그런지 걸을 때마다 다리에 바지가 달라붙는 것 같은 기분으로, 나는 등 한가운데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간지러운 어떤 지점을 긁기 위해 노력하며 영하의 거리로 나선다.

이게 첫 꼭지의 세 번째 문단이다. 기가 막힌 명문이다. 그다음 문단도 만만치 않다.

우리 집에서 회사까지는 도어 투 도어 50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며 총 세 번의 환승을 거쳐야 한다. 이는 서울 시내 직장인의 평균에 매우 가깝다. 이미 만원인 채로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에 몸을 구겨 넣으며 나는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다. 내 인생에 대한 희망을 저버린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목 뒤에 닿는 모르는 사람의 입김과 어디선가 풍겨 오는 썩은 내. 나는 양치질과 샤워, 빨래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을 사살할 수 있는 살인면허가 발급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쉬이 고개를 들거나 신경질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볼 엄두를 내지는 못한다. 냄새의 출처를 추적하는 또 다른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그가 아주 높은 확률로 이 공간에서 가장 덩치가 큰 — 즉 도리 없이 뚱뚱한 — 남자인 나를 범인으로 지목할 것만 같아서다. 높은 확률로 적중하는 피해의식. 있잖아요. 당신, 날 왜 그렇게 봐? 저 매일 아침 샤워하고요, 데오도런트에 향수까지 뿌리고 다니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은 세탁기도 돌리고, 수건에서 걸레 냄새 나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없는 살림에 건조기까지 장만했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보실 필요 없거든요?

이렇게 다소 신경질적인 유머로 시작해(진짜 출근 시간대의 내 기분 같다) 점차 작가가 본인의 만성질환, 그러니까 만성위염과 역류성식도염, 야간 식이 증후군과 기분장애(양극성장애와 공황발작)를 털어놓는 데까지 가면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오게 된다. 코미디언 또는 코미디 배우 중에 우울증인 이들이 많다더니, 남을 웃게 하는 이들은 속에 슬픔과 힘듦을 숨기고 사나 보다. 다니던 직장을 마침내 관두실 때에는 정말 괜찮으실지 내가 다 걱정할 정도였는데, 다행히 그 이후로 일이 잘 풀리신 듯.

어련히 열심히 잘 사시는 분께 짠하다고 연민을 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이 에세이를 읽으며 발견한 작가님의 모습, 그러니까 멋진 점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작가님은 첫 소설로 등단하기 전에 동료 작가들(이미 등단하신 분들)과 스터디를 짜서 정말 간절하게 글을 쓰셨단다. 와, 대단해. 지나고 나니까 2년 반 후에 등단했다, 하고 쓸 수 있게 되는 거지 그 당시에는 미래를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글을 쓰셨다는 게 너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작가님께 '여사친'인 작가분들이 여럿 계신 것 같은데, 글을 읽다 보면 '여자들이 친구로 잘 지낼 수 있는 좋은 남자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예컨대 본인이 뚱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나마 '남성'이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보다는 그래도 상황이 낫다는 걸 인정하는 부분이나, 본인이 패스트 패션을 이용하기 때문에 환경 오염에 일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시인하는 부분. 

그래도 비만한 '남성'인 나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살찐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멸시와 비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단 여성인 배우나 가수가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어김없이 살이 쪘고, (도대체 무슨 범위의 관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관리에 실패했고, 프로 의식이 모자란다는 댓글이 달리기 일쑤다. 따지고 보면 배우는 연기하는 직업이고 가수는 노래하는 게 직업의 본질인데 왜 당연히 날씬한 몸을 직업적 소양에 포함하는 것일까.
내 좁은 방에는 M 사이즈부터 XXL 사이즈까지 엄청나게 많은 티셔츠와 속옷이 발 디딜 틈 없이 자리하고 있다. 폭식과 다이어트를 반복하며 족히 100킬로그램은 찌고 빠진 몸을 감당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사들인 싼 옷들이다. 패스트패션의 풍토 속에 함부로 사서 입고 버려지는 옷들이 얼마나 큰 공해인지 이제는 상식으로 모두가 알고 있다. 나 역시도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옷 더미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싼 옷을 사는 습관도 멈출 수가 없다. 때때로 나는 그저 먹고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한아가 내 방을 본다면 기함을 하며 호통을 칠 것만 같다.

이 정도의 섬세한 (그리고 인권에도 미치는) 감수성이 있으니 과연 여사친들이 있을 만하구나 싶었다. 패스트패션이 환경 오염의 큰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해도, 이렇게 순순히 자신이 패스트패션을 통해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남자들은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남자들에게 패션은 그저 '가오', 또는 멋내기, 자랑의 수단이라는 느낌이 더 강해서일까. 자신이 소비하는 패션을 이렇게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의식이 있기에 역시 작가는 작가구나 싶어 감탄이 나왔다.

재미와 짠함이 단짠단짠의 느낌으로 뒤섞여 있는 이 솔직한 에세이와 작가님을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쁘다.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찾아봐야지. 그리고 나에게 이 책을 대출해 준 서울시 전자도서관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니, 왜 나 이제서야 전자 도서관의 존재를 떠올렸지? 멍청... 어쨌거나 이제는 더 많은, 더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 올라올 서평을 기대해 주시라! 이 책도 완전 추천한다.

반응형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남형도,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기자의 체헐리즘'은 많은 이들이 이미 잘 알 것이다. 브라질리언 왁싱을 직접 체험해 보고 쓴 기사가 웃기다며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진 것을 나도 보았으니까. 그 기사들이 모여서 책으로 나왔다. 안타깝게도 그 브라질리언 왁싱 기사는 이 책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왜죠!).

그래도 좋은 기사들이 많다. 내가 보기에 제일 잘 쓴 건 '사람이 버린 강아지, 사람 보고 환히 웃었다'라는 제목의 꼭지인데, 기자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나서 쓴 거다. 나는 애완동물을 비롯해 동물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므로 이 꼭지에 등장하는 강아지들 이야기가 나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고, 그냥 그 글의 구조가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바람직했다.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 주제인 데다가 농림축산검역본부 통계를 빌려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 주고 유기견 보호소 운영자의 말을 인용해 '강아지 공장'에 대한 허가와 처벌을 엄격하게 할 것, 강아지들에게 칩을 심어 주인을 추적할 수 있게 해서 동물 유기를 막을 것, 현행법과 제도를 개선할 것을 주장한다. 완벽한 구조다. 이 외에도 폐지 줍기 체험('폐지 165킬로그램 주워 1만 원 벌었다'), 환경미화원 체험('홍대의 중심에서 토사물을 쓸었다'), 시각장애인 체험('눈 감고 '벚꽃축제'에 갔다'), 소방관 체험(''35킬로그램 방화복' 입고 계단 오르니 온몸이 울었다') 등은 정말 훌륭하다. 이런 건 교과서에 실어도 좋을 듯하다.

물론 '이 기사는 도대체 왜?' 싶은 것도 있긴 하다. '62년생 김영수'라는 꼭지는 도대체 무엇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인지 모르겠다. 일단 제목부터가 많은 여성들에게 의미가 깊은 작품, <82년생 김지영>을 오마쥬한 것인데, 그만큼의 사회 비평이 들어 있는 것 같지 않다. 62년생, 그러니까 현재 50대, 60대인 남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알겠는데 (글 앞머리에 '5060 아버지 세대 네 분을 인터뷰해 그를 바탕으로 만든 소설'이라고 기자도 밝히고 있다) 딱히 새로운 점은 없다. 회사에 충성하며 일했는데 IMF가 닥쳐 명예 퇴직을 당하고, 그 후에도 자녀들을 부양하기 위해 어떻게든 열심히 일을 했다, 하는 이야기에 우리가 모르는 점이 뭐가 있지? 우리 아버지들이 힘들게 살아오신 거 알겠는데, 이걸 이렇게 써 봤자 '라떼는 말이야' 그 이상, 그 이하의 무엇도 안 되지 않나? 감상주의적으로 '우리 아버지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했어요!' 말하는 것에 어떤 효용이 있는지 모르겠다(그럼 뭐 그 시대 여성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라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자녀들과 부드럽고 원만한 의사소통이 안 되고, 스스로 부성을 키울 수 없었던 것은 후회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이렇게 평생 열심히 일했는데 국민 연금이 자금 운용을 잘 못해서 그것만으로 여생을 지내기 어려워 또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같은 흐름이었다면 이 정부가 노인들을 잘 돌보지 못한다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건 적어도 꼰대의 감상주의적인 자기 연민처럼 들리지는 않을 거고, 노인 일자리 확충이라든지 노인에게 주어지는 혜택 문제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근데 '62년생 김영수'는 그 기회를 놓쳤다. 이 꼭지에 비하면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다른 꼭지들(예컨대 )은 차라리 선녀로 보인다.

이 글을 마무리 짓기 전 기자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기자님, 이 책 맨 첫 꼭지가 '브래지어, 남자가 입어봤다'인데, 브라가 얼마나 답답한지 직접 체험해 보는 정신은 정말 멋집니다만, 사람들이 기자님을 쳐다본 건 '남자가 브라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브라를 입었다고 쳐다보진 않죠. 왜냐하면 여자에게 브라는 그냥 기본, 디폴트 장착 아이템이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며 여자들을 쳐다본답니다. 가슴이 크다, 노출이 많다, 브라를 안 입었다, 심지어는 그냥 가슴이 거기 있으니까 등등. 브라가 비싸게 느껴지는 것은 맞지만, 브라를 입음으로써 타인의 불쾌한 시선을 100% 피할 수 있다면 차라리 기꺼이 입겠습니다. 문제는 브라가 아니라는 거죠. 또한 와이어가 달린 브라가 너무 답답하기 때문에 요즘엔 그런 브라보다 편한 브라렛이 트렌드가 아닌 그냥 하나의 옵션으로 자리잡았어요. 국내에도 브라렛을 만드는 브랜드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건 기자님이 여성이 아니라서 잘 모르실 수 있습니다. 기사 말미에 나중에 딸이 생기면 브라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말해 주겠다고 하셨는데 따님이 브라가 너무 불편하다고 한다면 브라렛을 권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다음 세대를 위해 성차별이 적은, 여성 혐오가 덜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합니다만.

책 표지에는 당당히 '네이버 기자 페이지 구독자 수 독보적 1위'라고 쓰여 있는데, 그건 많은 이들이 그의 기사를 읽는다는 뜻이다. 또 거기에서 한 발짝 나아가면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기레기' 말고 기자다운 기자를 보고 싶어 했는지 보여 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저 누가 불러주거나 써주는 대로 받아적기 바쁜 기레기들 말고, 정치권 또는 가진 자들의 시각으로 국민들을 우롱하는 기레기들 말고, 진짜로 자기 발로 나서서 취재하고 자기가 쓴 글에 책임을 지는 그런 기자 말이다. 진정한 의미의 기자, 국민들이 존경심을 담아 기자라고 부를 수 있는 기자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해 본다.

반응형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다키자와 슈이치, <아니, 이 쓰레기는 뭐지?>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지난 며칠간 내가 떠올려 본 질문이다. 이 질문을 시작한 것은, 일본의 코미디언이자 청소부 일을 하는 다키자와 슈이치가 쓴 <아니, 이 쓰레기는 뭐지?>라는 에세이를 읽으면서였다. 저자는 코미디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수입이 충분하지 않아 생계를 위해 쓰레기 청소부 일을 시작한다. 그것이 6년 전. 베테랑 청소부가 된 그는 이제 그간의 경험을 소개해 주는데, 이 책은 단순히 '이러이러한 놀라운 에피소드가 있었답니다'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타인에게 어떤 생각할 거리나 배울 것을 주며, 또한 사회적인 면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평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나름대로의 '좋은 책'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이렇다. 청소부인 저자는 여러 군데를 다녀보았기 때문에 부자 동네와 그렇지 않은 동네의 차이를 통찰할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쓴다.

이런 예를 통찰하는 가운데 내 나름대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으로 든 생각은 사소한 의존이 커다란 소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부자 지역에서는 생수통으로 쓰이는 대형 특수 페트병이 자주 나왔다는 사실 말이다. 부자들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득이 된다는 소비 방식을 알고 있다. 확실히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500밀리미터 페트병을 매번 사는 것보다 대형 용량으로 물을 사 마시는 편이 단연 이득이다. 이제 좀 짐작이 가는지?

물을 사러 편의점에 들렀을 때 500밀리리터보다 2리터들이가 가격 면에서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500밀리리터 콜라를 열다섯 병이나 쟁여놓고 마시려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든다. 계산해보면 웬만한 금액이 들어가는 소비에 해당한다.

담배, 술, 비타민 음료도 마찬가지다. 소소한 사치를 부리며 자기 자신에게 상을 주는 마음으로 그런 것을 사는 것을 그다지 대단한 쇼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1년 치로 환산하면 상당한 금액이다. 부자 동네에서 이런 쓰레기가 적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건강을 지향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에게 투자할 여유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대형 쓰레기에 건강 용품이 나온다는 것은 당연히 건강에 신경을 쓴다는 경향을 말해준다. 또한 부촌이 아닌 동네에 비해 담배꽁초 쓰레기가 적은 것, 부모의 원수를 때려잡듯 술을 마시지 않는 것도 비슷한 경향의 반영이다. 승마 운동 기구가 나오는 것도 운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고, 미용 관련 쓰레기도 자기 투자라는 측면에 속할 것이다.

술, 담배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건강을 생각해서인지 부유한 지역에서는 감자 칩 봉지나 초콜릿 상자도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때때로 부촌이 아닌 지역에서는 커다란 쓰레기봉투가 찢어질 때 감자 칩 봉지가 튀어나올 만큼 감자 칩을 많이 먹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린다 티라도의 <핸드 투 마우스>가 떠올랐다. 실제로 가난을 경험한 저자가 쓴 이 에세이에는 이런 부분이 나온다.

발이 아프고 등은 쑤시는데 잠도 자고 싶고 샤워도 하고 싶다면, 오븐에 들러붙은 기름 찌꺼기를 닦는 것은 내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의 목록에 오르지도 못한다. (...) 나를 힘들게 하는 또 하나는 균형 잡힌 식사다. (...) 슬프게도 건강한 음식은 나를 위로해주지 못했다. 그 점에서는 브라우니 한판이 더 나았다. (...) 가난한 사람들이 합당한 이유 없이 자기파괴적으로 보이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건, 건설적인 방법은 모두 돈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헬스클럽에 가입할 수 없다. 내 속내를 공짜로 들어줄 정신과 의사는 없다. 

이 인용문은 테이 존데이(Tay Zonday)라는 유튜버가 트위터에 쓴 이 트윗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 당장 치약 칫솔을 살 돈이 없는가? 그럼 내년에는 임플란트 비용을 청구받을 것이다. 지금 당장 새 매트리스를 살 돈이 없는가? 그럼 내년에는 척추 수술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그 혹을 검사 받을 비용이 없는가? 그럼 내년에는 3기 암 치료비를 내게 될 것이다. 가난에는 이자가 붙는다."

가난하면 기본적인 건강에 투자할 돈조차 없다는 사실을 저자는 쓰레기에서 통찰했다는 게 놀랍다. 

이뿐만 아니라 저자는 쓰레기장에서 시민의식까지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사할 때 부동산에서 부동산에서 몇몇 매물을 소개받고 실제로 이사 갈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럴 때 그 동네 쓰레기장을 둘러보기를 권한다. 깨끗하게 쓰레기장을 사용하는 곳이라면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규칙을 지키며 생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청소부는 보통 쓰레기를 수거하는 날 다른 종류의 쓰레기가 나와 있으면 쓰레기차에 싣지 않고 그냥 놓아둔다. 쓰레기가 남아 있거나 깡통과 병만 놓여 있다는 것은 수거할 수 없는 쓰레기를 내놓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 규칙을 지키지 않고 쓰레기를 내놓은 것이다. 그것은 단지 쓰레기 배출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얘기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의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다른 규칙도 어길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그래서 쓰레기장은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된다. 관리인이 관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쓰레기장을 깨끗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서로 규칙을 잘 지키게끔 하는 '눈'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사 갈 곳 근처를 걸어 다녀보았는데 주변의 쓰레기장에 깨끗한 상태라면, 아마도 각 쓰레기장마다 집단적으로 쓰레기 당번제를 정해놓고 담당자가 책임지고 정리하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쓰레기봉투에 타는 쓰레기와 타지 않는 쓰레기를 마구 섞어 넣어버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담당자의 얼굴을 떠올리고 '저 집 사람은 쓰레기 분리수거도 제대로 못하느냐'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쓰레기를 잘 분리하여 배출할 것이다.

쓰레기 당번을 둘러싸고 대화가 이루어지면 자연스레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도 알게 되고, 이웃 사이에 인사를 주고받는다. 이런 동네는 이웃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추천하기 어렵다.

그런데 오늘날 어린이를 표적 삼아 벌어지는 범행의 원인은 대부분 지역 커뮤니티의 관계성 상실이라는 인식이 벌써 오래 전부터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곳이라면 이웃 사람들이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 아이는 뉘 집 아이라든지, 오늘도 씩씩하게 잘 뛰어놀고 있다든지,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지켜보는 '눈'이 있기 마련이다. 가족 단위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동네를 추천한다.

(...) 앞에서 말한 내용을 트위터에 올렸을 때 이런 반응이 나왔다.

"나는 부동산 중개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사 오기 전에 가까운 편의점의 쓰레기통을 보라고 권합니다. 쓰레기통이 가정집 쓰레기로 가득 채워져 있는 곳은 그리 예절을 잘 지키는 지역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렇고맗고, 맞는 얘기야. 역시 그랬구나. 선배님이셔!' 하고 격렬하게 동의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도 그랬구나!' 하고 괜히 감동하는 동시에 내 생각이 맞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기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은 쓰레기를 내놓는 일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한국와 일본의 쓰레기 처리법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도 이 방법을 통해 그 동네 주민의 시민의식을 살펴보는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가능할 듯하다. 이사하실 분들에게 진짜 좋은 꿀팁인 듯. 이사 갈 곳이 아파트 단지라면 경비원님께 아파트 입주자들이 쓰레기를 잘 분리해 버리는지, 재활용 날마다 애로 사항은 없으신지 슬쩍 여쭤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그건 그렇고, 정말 통찰을 하려는 의지와 통찰할 수 있는 혜안만 있다면 그 대상이 무엇인지는 정말 문제가 안 되는 것 같다. 쓰레기를 통해서도 통찰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저자는 쓰레기를 통해 통찰뿐 아니라 일본 사회에 대한 비평까지 한다. 쓰레기가 너무 많다고 말이다. 단순히 쓰레기 청소부의 일은 이러이러한 것입니다, 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직업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사회에 바라는 바를, 어떻게 보면 가볍게 읽고 넘길 수도 있는 에세이에 썼다는 점이 감탄스러웠다. 그가 코미디언이라는 일뿐 아니라 청소부라는 일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쓰레기의 양이 줄면 우리 일이 편해지니까 그렇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정상이기 때문입니다. 무시무시하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인정할지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이 1년 동안 내놓는 쓰레기의 양은 일본이 단연코 세계 제일입니다.
미국은 그렇게 해도 될지 모르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은 좁은 나라입니. 유감스럽게도 고양이의 이마지요. 농담이 아닙니다. 일본은 새로운 매립지를 마련하는 일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고양이 이마만 합니다.

개중에는 매립지를 늘리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도쿄에 관해서만 말하면 더 이상 매립지를 늘리면 도쿄만이 무역항으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도쿄만뿐 아니라 제가 조사해본 바로는 다른 지방도 매립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재활용에 힘쓰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알고 나서 쓰레기를 회수하고 있으면 소름이 돋을 만큼 두렵습니다. 매일매일 미친 듯이 나오는 쓰레기를 본다면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

청소부 선배는 확실한 숫자를 들려주었습니다. 도쿄의 매립지는 앞으로 50년밖에 쓸 수 없다고 합니다. 매립지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들었다고 운전기사가 말해주었습니다.

매립지는 2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쓰여 있는 어느 지방의 홈페이지를 봤습니다. 도쿄의 매립지보다도 수명이 짧습니다.

또한 그는 기가 막히게 스웨덴의 예까지 들어서 '일본 사회가 이렇게 변화해야 한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데, 정말 이런 전개는 가벼운 에세이(이 책의맨 첫 번째 장은 한 컷 그림과 그에 딸린 짧은 글, 그러니까 일종의 그림 일기 같은 포맷이다)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기에 좋은 쪽으로 놀라웠다.

쓰레기의 메이저리그 선수 격인 스웨덴에서는 전국적으로 쓰레기 문제와 씨름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쓰레기 부족 상태에 빠졌다고 합니다. 뭐라고? 쓰레기 부족 상태라고? 일본인으로서는 이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스웨덴에서는 쓰레기를 에너지로 변환시키기 때문에 원료가 되는 쓰레기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왠지 오금이 저릴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웃 나라의 쓰레기를 수입한다고 하니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듯합니다. 

그리고 원래 쓰레기가 적습니다. 스웨덴에는 상품을 만드는 기업이 쓰레기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재활용, 폐기에 관한 비용을 기업이 전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기업 자체가 노력하고, 판매 단계에 들어가면 쓰레기가 될 만한 것을 제거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나오는 쓰레기조차 극단적으로 재활용해서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해온 결과가 바로 놀라 쓰러질 만한 숫자를 내놓은 것입니다. 매립지에 파묻은 쓰레기의 양은 배출 쓰레기의 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경악할 만한 수치입니다.

스웨덴의 뒤를 따라가려고 덴마크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 쓰고 버린 접시나 숟가락에 과세를 30퍼센트 부과하기 때문에 소비가 별로 없습니다. 불필요한 쓰레기를 내놓지 않으려고 국가가 솔선수범하여 노력하는 모습에 일본인으로서 그저 감탄스럽기만 합니다.

나도 혹시나 싶어서 '쓰레기 스웨덴'이란 키워드로 검색해 보니 정말로 스웨덴의 쓰레기 매립률이 2013년에 0.7%까지 낮추었다는 기사가 보였다(출처는 여기). 스웨덴에서 환경학과 지속가능성을 공부하신 분이 쓴, 스웨덴의 쓰레기 재활용법에 대한 글도 읽었다(여기). 여하튼, 스웨덴의 예를 들며 일본 사회가 지혜롭게 쓰레기 처리 문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 참 멋졌다. 단순히 개인의 경험을 묘사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배움이나 어떤 바람직한 감정을 제공하고, 또한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서까지 한마디 덧붙이는 것, 그것이 좋은 책의 역할이자 기능 아닐까?

물론 이 책도 완벽하지는 않다. 쓰레기를 보고서 그 쓰레기를 버린 사람을 프로파일링하는데 남성보다 여성에 대해 더 가혹하다는 느낌이다. 말로는 가정적이라고 하지만 쓰레기를 제대로 분류해 버리지 않던 한 화려한 여성 이야기를 하면서 "멋쟁이 여성은 청소를 잘 못한다고 보면 대체로 틀리지 않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곧바로 "뭐, 그렇다고 한들 상관은 없다. 모든 사람이 다 거기에 들어맞지는 않을 테니까."라고 덧붙이는데, 그럴 거면 애초에 그런 말은 왜 꺼낸 건지? 그 바로 앞 꼭지에서는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생활에 충실한지는 알 수 없지만, 쓰레기 배출에는 건성이고 허랑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타지 않는 쓰레기는 딱 분리해서 지정 박스에 두고 왔다."라고 썼으면서 말이다. 어떤 아줌마가 수거할 수 없는 쓰레기를 내놓아 '현재는 타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중이라 깡통은 가져갈 수 없다'라고 거절했더니 그때부터 완전히 그렘린처럼 돌변해 1년 반이나 매번 쓰레기차를 따라다니면서 청소부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오싹한 에피소드도 그렇고. 그보다는 왜 가정집 또는 주거 지역의 쓰레기를 수거할 때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남성보다 여성의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았을까? (그거야 쓰레기 버리기 같은 집안일은 여성의 일이라는 의식이 아직도 팽배하니까 그렇지!)

세상에 완벽한 책이라는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아닐 거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여전히 좋다. 아쉬운 점 몇 가지만 보완했으면 흠잡을 데 없었겠지만, 그래도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지 하는 물음에 나름대로의 답을 줄 수 있을 정도는 되니까. 리디셀렉트에 올라와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라. 그건 그렇고, 이제 나도 쓰레기 줄이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

반응형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제나 매카시, <우아하게 나이들 줄 알았더니>

 

 

중년 여성의 솔직한 에세이. 이렇게 간단히 책 소개를 하면서 벌써부터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실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책 겉표지에도 쓰여 있듯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에 '와, 재미있겠다!'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렇다면 다시 시작해 보자. '진짜 재미있고 공감되는 에세이' 정도면 어떨까. 그러면 좀 더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 말솜씨로는 안 될 거 같으니 그냥 저자의 말 중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웃긴 부분을 몇 군데 보여 드리겠다. 여러분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살면서 그만큼 공포에 얼어붙었던 적이 없다. 점잖은 눈썹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서 3센티미터나 벗어난 지점에 불한당 같은 검은 눈썹이 마구 자라 있었고 코의 모공은 푹 파인 더러운 동굴처럼 보였다. 지우개 크기만 한 바싹 마른 각질이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었고 코 주변에는 지하철 노선도처럼 가느다란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게다가 열다섯 살짜리 남자애나 부러워할 빌어먹을 콧수염도 있었다. 어떻게 전에는 이걸 몰랐지? 나는 함께 쇼핑을 하던 막내딸을 붙들고 아이의 완벽하고 촉촉한 얼굴을 거울 앞에 디밀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열두 배 확대한 아이의 얼굴은 원래보다 훨씬 더 촉촉하고 완벽해 보였다. 그때 나는 이 악마의 거울에 흠을 찾아내서 부각하는 재주가 있기를 바랐던 것 같은데, 결국 이 거울은 그저 자기를 들여다보는 사람의 원래 모습을 더 자세히 보여줄 뿐임을 깨달았다. 나의 경우 그 원래 모습이란 관리가 시급히 필요한 중년 여성이었다. - 1.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과 그 밖에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것들
나이에 맞게 옷 입는 비법이 딱 하나 있는데, 내가 한 단어로 요약해드리겠다. 바로 스팽스Spanx다. 스팽스가 뭔지 모른다면 이 책을 잠시 덮고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 입에 댄 후 다음과 같이 큰소리로 외쳐주시길 바란다. "누가 제발 동굴 입구를 막고 있는 이 엄청나게 커다란 바위를 치워주지 않겠어요? 제가 기어 나가서 처음으로 밀레니엄을 맞이할 수 있게요!" 여러분이 동굴에서 도와줄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내가 스팽스가 뭔지 알려주겠다. 스팽스는 마술 같은 가공 원단으로 만든 엄청나게 매끈한 초고기능 천 쪼가리로, 보기 싫은 바늘땀이나 살을 파고드는 고통스러운 코르셋 없이 살을 깔끔하게 빨아들인다. 그렇다, 스팽스는 거들이다. 하지만 이건 우리 할머니들이 입던 그런 거들이 아니다.(겉포장만 바꾼 테이프도 아니다. 내 맹세한다.) 스팽스의 대표 문구는 '더 가볍고 날씬해지는 비결'이지만 나는 날씬해지고 싶어서 스팽스를 입는 것도 아니다. 날 미워해도 괜찮다. 하지만 나는 정말 말라 보이려고 스팽스를 입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피부가 덜 처져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큰데, 내 몸을 감싸고 있는 표피가 장기를 붙드는 데 필요한 양 이상으로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팽스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누가 나한테 스프레이를 뿌려서 모든 것을 밀어 넣고 고정하는 수축포장 코팅을 입힌 것 같다. 그것도 테이프 없이. - 6. 미니스커트와 아줌마 청바지에 대하여

(수면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몇 가지 방법에 대해)

낮잠을 너무 많이 자지 말 것. 하하하하하하. 아니, 내가 네 살인 줄 아나? 내가 마지막으로 낮잠을 잔 것은 5년 전으로, 지독한 장염에 걸려 화장실 바닥에서 밤을 홀딱 샌 다음 날이었다. 하지만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지식은 의대에서 배우셨나요? - 13. 얼마나 피곤한지 설명하는 것도 지친다
물론 경제적 타격 문제를 빼고 외도 반대를 논할 순 없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바람을 피울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논의를 위해 내 금지된 사랑의 대상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나 은퇴한 마취과 의사, 또는 워런 버핏이 아니라고 치자. 말인즉슨 내가 호텔방과 비행기 티켓, 섹시한 란제리, 개인 트레이닝, 로맨틱한 저녁식사, 콘돔, 곧 필요해질 휘핑크림 비용의 절반을 지불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돈은 전부 현금으로 내야 할 텐데, 그래야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이 찾거나 추적할 행적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밀회를 한 달에 딱 두 번만 가져도 1천 달러는 쉽게 넘을 것이며, 내가 들키지 않고 현금을 그만큼 모을 가능성은 첼시 핸들러*가 수녀가 될 확률만큼 낮다.
* Chelsea Handler. 미국의 배우이자 코미디언. 진행자로 최근 가슴해방운동을 벌이며 상반신 노출 사진을 여러 차례 공개했다. — 옮긴이
내 깜찍한 연하남이 말도 안 되는 부자라서 우리 만남의 비용을 전부 댄다고 해도 나는 분명히 새 란제리 몇 벌을 갖고 싶을 것이고 가끔씩 태닝 스프레이도 사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소파 쿠션 밑에 숨겨놓은 잔돈 몇 푼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늘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당혹스럽다. "음, 무함마드 알리-알제브라? 나한테 50달러만 빌려줄 수 있어? 고무줄이 탄탄한 팬티 좀 몇 장 사려고. 이 은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보답할게. (윙크 윙크)" - 17. 내가 절대 바람피우지 않을 여러 이유들

 

이렇게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재미있는 부분을 보여 드렸는데도 이 책에 별 흥미를 못 느끼신다면, 그것도 괜찮다. 사람들은 흔히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만들 때 '안 하면 네 손해'라고 하지만, 여러분이 이 책을 안 읽는다고 큰 손해를 볼 리는 없으니까. 아마 단돈 1원의 손해도 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여자들 책이고 나는 여자가 아니니까' 또는 '나는 여자들(또는 아줌마들) 얘기엔 관심 없어' 라는 생각에 전 세계 인구의 절반과 그들이 대표하는 것을 '별거 아닌 것',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일축해 버린다면 그게 더 크나큰 손해일 거다.

'이(2)항 대립(binary opposi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언어 또는 사유에서 두 개의 이론적인 대립을 엄격하게 정의하고 하나에 다른 하나를 대립하게 하는 체계'를 말하는데(출처: 위키 백과), 남자-여자, 0-1, 빛-어둠, 위-아래 등이 그 예다. 이 개념들은 서로가 있기에 각자가 존재할 수 있다. 높은 것은 낮은 것이 있어야 높은지 알 수 있으며, 차가움은 따뜻함이 있어야 비교가 가능하다. 원칙적으로 이 개념들은 둘 다 동등하고, 어떤 것이 그 상대보다 더 낫지 않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긴다. 남자가 여자보다, 아름다움이 추한 것보다, 진지한 게 가벼운 것보다 더 낫다고.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열등한 것들을 다 하나로 묶어 버린다. '여자들은 진지한 얘기는 할 줄 몰라. 시시하고 가벼운 사변이나 하지 진지한/정치적인/사회적인 글은 쓸 줄 모른다니까' 하는 식으로. 그 말은 그 자체로도 틀린 말이지만 (진지한 글을 쓰는 여성 작가가 없다고? 실례지만 눈이 없는 게 아니신지) 삶의 절반을 그런 식으로 묵살해 버린다면 그런 태도가 삶에 더 유해할 것이다. 영화로 치자면 드라마도 가치가 있고 코미디도 가치가 있다. 정치적인 것도 가치가 있고 개인적인 것도 가치가 있다(어쩌면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비롯해 삶을 단순한 이항 대립으로 나누고 그쪽에서 자신이 좋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면만 취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애초에 무엇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지조차 다시 한 번 살펴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한번 거들떠보는 것은 어떠신지! 생각지도 못한 재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반응형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오리 집사, <오리 집에 왜 왔니>

 

 

어떤 책들은 트위터에서 시작된다. 트위터에서 취미처럼 끄적이던 글 또는 만화가 세간의 눈을 끌어 정식으로 연재될 플랫폼을 찾거나 출간되는 일이 종종 있다. 이 책도 그중 하나다. 작년인가 트위터에서 오리를 키우는 만화를 본 기억이 있는데 그게 어느새 책으로 나왔더라. 와,이게 소셜 미디어의 순기능인가. 취미에서 정식으로 발표되(고 돈도 받)는 작업물이 되다니, 이건 마치 내 꿈!? 

어쨌거나 깜찍한 그림체의 이 그림 에세이는 저자가 우연히 길가에서 다친 오리 새끼를 구조한 후 키워 나가는 이야기이다. 이때 저자의 후배도 같이 오리 새끼를 한 마리 구조해서 처음엔 두 마리였는데 후배의 오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고, 저자의 오리 '오린이'만 남았다. 어린 오리라서 '오린이'인데, 어릴 때는 개나리처럼 노란색이지만 성조가 되어서는 털이 하얗게 변했다. 책 표지에 있는 하얀 오리가 바로 이때의 오린이이다.

나는 사실 이 책을 보기 전에 추리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그 책도 다 읽으면 여기에 후기를 쓸 일이 있겠지) 어째서인지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머리를 식히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책이 없을까 리디셀렉트를 살펴보았고, 최근 업데이트에서 이걸 발견했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나는 이런 책을, 내가 좋아하는 북튜버 말마따나, 입가심용 책(palate cleanser)이라고 부른다. 가볍고, 귀엽고, 재미있고, 크게 머리 쓸 일이 없어서 기나긴 하루의 끄트머리에도 부담 없다. 게다가 이 책은 짧은 데다가 만화로 되어 있으니 길어야 한두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이상적인 입가심용 책이 또 있을까? ㅎㅎ 귀여운 오리를 보며 힐링 할 수 있는데!

저자의 본가가 강원도에 있는 데다가 그곳엔 마당도 있어서 오리를 위한 우리까지 지어 줄 수 있었으니 정말 오린이가 주인을 참 잘 만났다. 저자의 동생,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저자의 옆집 친구까지 다 오린이를 사랑하고 아껴 주니 보는 나까지 다 흐뭇하다. 애초에 오리라는 동물이 대개 가축용으로 길러지고 애완동물로는 보기 힘든데, 그래서 더 이 책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이 책이 아니라면 오리가 사회적인 동물이라 혼자 있으면 불안해한다는 사실을 어디서 배울 수 있겠는가. 맹세코 난 몰랐다. 어미나 동족을 찾으려고 하는 불안해하는 오리를 달래 주기 위해 거울, 손과 얼굴이 달린 큰 인형, 연기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또 어떻고?

오린이 하나만으로도 너무너무 귀여운데 옆집 친구가 기르는 시바견 '푸들'(다시 말하지만 종은 시바견이다)과 나중에 오린이에게 오리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모셔온 '오리 선생님'까지 등장해서 귀여움이 곱절이 된다. 귀여운 거 ✖️ 귀여운 거 🟰 더 귀여운 거! 귀여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내 호주인 친구에게도 이 책을 보여 주니 아주 귀엽단다. 특히 오린이의 'X'자 항문을 좋아했다. 얘 아직 항문기인가...

책이 길지 않은데 (종이책 기준 236쪽) 책 후반쯤 되면 오린이의 사계절도 나오고 오린이가 가족이 된 지 1년이 지났다는 말도 나와서 혹시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는데, 다행히오린이는 저자와 저자의 가족, 그리고 친구와 잘 살고 있다는 것으로 끝이 난다. 휴. 해피 엔딩이라서 이렇게 다행일 수가. 다행히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이 책을 추천할 수 있게 됐다. 표지의 오린이를 보시라. 그리고 믿으시라, 이 귀여움을!

반응형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김혼비, <다정소감>

 

 

병아리처럼 샛노란 책 표지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책 제목인 '다정소감'은 '다정다감'이라는 표현을 살짝 비튼 것이다. 저자가 살면서 만난 수많은 '다정(함)'의 패턴에 대한 소감을 엮은 책이라는 뜻이다.

 

우리 김혼비 작가님은 표현력도 남다르시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친구와 공유했던 표현 세 가지만 꼽아 보자면 다음과 같다.

"(너무 화가 나서) 손이 진동 딜도처럼 떨"린다,

"'쿨하다'가 한 시대의 정신으로 각광받으면서 윤리적 노팬티 상태가 패션인 양 포장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련회에서 으레 하는 촛불 의식에 대해) '자기반성과 부모님의 은혜'를 주제로 아이들을 울리고 말겠다고 작정한 가차 없는 신파언어차력쇼"까지.

역시 축구를 하시는 분이라 혀 드리블도 기가 막히시다.

 

첫 번째로 나오는 꼭지 '여행에 정답이 있나요'는 오만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가 프랑스에서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러 갔을 때 한 (한국인) 중년 관광객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못마땅하게 본 어떤 '개탄맨'이 후에 블로그에 그들을 싸잡아 '예술을 이해할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치들'로 매도해 버렸다.

그런데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저자가 보기에 그 중년 관광객들은 다른 관광객들보다 딱히 더 시끄러운 것도 아니고, 자신들 나름대로 에술에 관심을 보이고 이해했다.

결국, 그 '개탄맨' 눈에 보기에 그들이 "'예술에 조예가 있고 즐길 줄 아는 나'의 쾌적한 관람에 그렇지 못한(그냥 그럴 거라 그가 멋대로 에상하는) 사람들이 혼잡을 빚어 못마땅했던" 것뿐이다.

중년, 단체, 패키지여행, 이 세 가지가 결합해서 빚어내는 어떤 편견. '여행부심'과 '예술부심'이 이중으로 빚어내는 어떤 오만. 거기에는 후세대에 비해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를 생활 밀착적으로 관람하는 문화를 경험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예술에 관심을 갖고 취향이라는 걸 만들어가기 어려운 조건이었으며, 지금처럼 여행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젊은 시절을 보냈고, 그래서 여행을 가기까지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들이 쌓은 심리적 장벽을 패키지여행의 형태로 넘어보려는 세대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없었다(중년 안에서도 경험치와 감수성이 천차만별일 거라는 고려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미술관에 가는 건 '경험'을 쌓는 걸로 봐주지만, 그래서 당장은 지루해하고 별 감흥을 느끼지도 못해도 그런 경험들 끝에 돌아올 '무언가'를 기다려주지만 5, 60대 중년이, 이제 와서, 떼를 지어,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는 건, 단지 패키지여행 일정에 포함되어 있으니 별 생각 없이, 유명하다고 하니까, 그 앞에서 사진이나 찍고 싶어서, 라고 쉽게 단정 지었다. 그들에게는 쌓을 '경험'도 미래의 '무언가'도 없을 거라는 듯이.

사실 요즘은 어린아이들에게도 인내심 가지고 '경험'을 쌓을 수 있게 기다려 주는 것 같진 않지만, 여튼 이 '개탄맨'이 이 중년의 여행객들은 여행도, 예술도 모르는 무식자일 거라고 단정 짓는 오만함을 부리고 있었던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묶음 속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벼르고 별렀던 해외여행이라는 커다란 감격이 있었고, 그 유명하다는 <모나리자>를 직접 눈으로 본 흥분이 있었고, <모나리자>에서 누구네 딸내미를 떠올리며 터뜨린 공유된 폭소도 있었다. <모나리자>가 별로였다는, 어떤 시작이 될는지도 모를 작은 취향이 비로소 만들어진 근사한 순간도 있었다. <밀로의 비너스>에 관해 미리 공부해 와서 친구들에게 조용조용 알려주는 사람도 있었고, 이름도 종류도 전혀 모른 채 그저 '예쁜 꽃' 앞에서 찍은 내 사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꽃의 이름을 설명해주는 '꽃박사'도 있었고, 그 꽃박사는 "꽃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예쁘다고 사진이나 한 장 박고 가는 게 전부"라며 나를 무시하지도 않았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행의 매 순간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그들도 나도.

 

또 내가 너무너무 좋았던 꼭지 하나만 더 소개해 보자면, 단연코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꼽고 싶다.

저자는 한때 승무원으로 일했는데, 승무원으로서 첫 비행이 무척 걱정되었다고 한다.

첫 비행은 신입에게 특히 엄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고, 특히 손톱 색깔, 화장과 머리(저자 말마따나 '그냥 말끔하게 올려 묶기만 해서는 안 되'고 '가르마를 타서 그놈의 '볼륨'을 주'고 '흐트러짐 없을 정도로 단단히 고정해야' 하는 그 승무원 머리) 등 매무새도 지적한다고 했다.

그런데 저자는 화장도 화장이지만 올림 머리를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단다. 안전 교육, 실기시험 등은 늘 잘해내던 '에이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승무원'의 모습으로 출근'해야 하는 서비스 교육이 시작되자 기수 최고의 문제아로 전락'해 버릴 정도로.

그래서 저자는 첫 비행 때 완벽한 승무원의 모습으로 출근하기 위해 준비를 하려 일찍 일어나려 했는데, 전날 무척 긴장한 채로 공부를 하느라 늦게 잠이 들었고, 원래 일어나야 할 새벽 3시를 넘겨 새벽 4시에 일어나 버렸다.

부랴부랴 준비를 하는데 잘되지 않았고 발만 동동 구르는데, 그때 동기 네 명이 집에 찾아왔다고!

그리고 요정 대모처럼 각자 빗, 브러시, 핀과 스프레이, 헤어드라이어 등으로 저자를 '변신'시켜 주었다. 기수 최고 문제아가 걱정되어 알람을 맞추고 일찍 일어나 그를 도와주러 온 것이다. 

덕분에 저자는 완벽한 모습으로 무사히 첫 비행을 했고,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 없었다고 한다. 혼나지도 않고, 지적받지도 않고. 동기들의 도움과 따뜻한 마음이 일으킨 기적 아닐까.

세상에... 이렇게 글로 읽는 나도 너무 감동받았는데 본인은 얼마나 고마웠을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흔히 말하는 '연대'의 감각 아닐까. 망했다는 생각에 손마저 얼어붙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 어디선가갑자기 나타나는 손들 같은 것. 그 손들이 누군가를 필요한 형태로 만들어가는 과정 같은 것. 등 뒤로 따뜻한 눈빛들을 가득 품고 살짝 펴보는 어깨 같은 것. 누군가 박살 날까 봐 걱정될 때 가만있지 못하는 것. 첫 비행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시험 비행이었던 날을 이렇게 넘긴 며칠 후, 두 번째 비행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첫 비행이었던 날에도 옆집에 살았고 훗날 나의 베프이자 룸메이트가 된 J가 새벽부터 찾아와 머리를 정성껏 만들어주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무사히 넘기지 못했을 날들. 내 생애 가장 '여초' 회사였던 비행기 안에서 여자들끼리 익히고 배우고 나눴던 감각.

요즘은 비행기를 볼 때마다 이것에 대해 생각한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도 다른 여자들의 손을 빌리고 또 손이 되어주면서 우리가 계속 하늘을 날았다는 사실에 대해. 떠나간 여자들 뒤에 남은 이들은 어쨌거나 어디로든 계속 날아가야 하고, 서로의 비행을 응원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힘에 부쳐 주저앉아버린 순간에 문득 펼쳐볼 수 있는 다정한 기억들을 서로의 마음에 하나씩 쌓아 올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비행기를 보면서 다정을 다짐했다.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집이어서 다행이다.

정말 너무너무 따뜻하고 다정하고 고맙고 인류애(특히 자매애)가 충전되는 이야기다. 단연코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꼭지.

 

너무너무 감동적이고 찡해서 일전에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 리뷰에서도 언급했던 그 똑똑이 친구 M(여기에서는 D라는 가명으로 불리지만) 이야기도 이 책에 실렸다.

2022.01.12 - [분류 전체보기] - [책 감상/책 추천]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

이 꼭지 말고도 '그런 우리들이 있었다고'(비 오는 날 데리러 오는 어른이 없는 아이들 이야기), '어느 미니멀리스트의 시련'(저자가 신혼여행 때 썼던 캐리어 이야기), '뿌팟뽕커리의 기쁨과 슬픔'(태국인 친구와 일본에서 썸을 탔던 남자 이야기), '커피와 술, 코로나 시대의 운동'(커피 이야기) 등은 분명 그 책에서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차피 저자가 쓴 글이니 여기에 또 싣는다 해도 저작권적으로 문제될 일은 없겠지만, 완전히 새로운 글만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그런데 나는 별로 상관없었다. 똑똑이 친구 이야기('문 앞에서 이제는')는 솔직히 반가웠다. M (또는 D)가 마치 내 친구인 것처럼. 내적 친밀감 쩌네 ㅋㅋㅋㅋㅋ

 

다정함을 주제로 한 글을 읽고 싶다면, 또는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 줄 이야기를 읽으며 잠시 스스로를 충전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그냥 유쾌한 글을 읽으며 웃고 싶은 때에도 좋다. 작가님 사랑합니다 🥰

반응형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

 

 

며칠 전에 심너울 작가의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를 읽고 느낀 감상을 올린 적이 있다.

2021.11.29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

 

[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

[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 우리나라 SF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심너울 작가의 단편. 사실 나는 SF를 무척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우주선의 구조나 낯선 외계인의 존재

eatsleepandread.xyz

그게 퍽 재미있어서, 심너울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보다가 에세이집인 이것,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를 선택했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심너울 작가가 참 귀엽고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다.

자신이 과거에 쓴 작품을 돌이켜보며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이라면 이런 것을 이러이하게 바꿀 텐데' 하는 생각이야 누구야 하는 거지만, 혹시나 자신이 과거 작품에서 다른 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은 인격적 발전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단편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에 수록된 <정적>에는 농인들의 비영리 재단 카페가 등장하는데, 청인인 주인공인 농인인 주인공이 고맙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 소설을 발표했을 때는 자부심도 느꼈지만 몇 개월 후에는 그 자부심만큼 커다란 민망함과 후회를 느꼈다고 한다.

글 속 곳곳이 끼어들어 있는 시혜적인 면모를 인식하게 되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청인인 주인공이 수어를 배우려고 할 때 농인인 주인공이 고맙다고 하는 장면이라든가. 왜 그게 고마운데? 대체 왜 나는 그게 괜찮은 대화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한 소설에 나오는 모든 문장이 작가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건 아니고, 고맙다는 말 또한 맥락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에 그 맥락은 청인이 농인에게 수어를 배움으로써 무언가를 베푼다는 것처럼 보인다.

(...)

나는 여전히 고민한다. 어떻게 인식의 한계를 넘어, 내 세상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인물로 쓸 수 있을까? 누구도 상처받지 않으면서 재미까지 있는 완벽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는 꿈은 꾸지 않는다. 그건 작법이 아니라 마법의 영역에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 고민이 유의미한 성과를 조금이라도 달성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면 나는 이 일에서 약간이나마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이 작가는 엄청 웃기다. 과장법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게 취향만 맞는다면 정말 빵빵 터진다. 예를 들어서 저자가 시범 PT를 받아 본 이야기에서

시범 PT가 끝나고,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초기형 로봇처럼 비틀거리면서 트레이너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어때요, 할만한가요?"

"그럴 리가요! 제 꼴을 보셨잖아요. 전혀 할만하지 않아요. 제가 품었던 불안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걸 알겠네요. 보세요, 불안은 상당히 고등한 인지 기능이라구요. 미래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겪을 고통을 예측해야 하니까요. 근데 운동을 하는 동안엔 모든 감각 신경이 고통을 울부짖으니 뇌의 고등 인지가 모조리 셧다운 되네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게 불가능하거니와, 다른 사람들도 제각기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저를 신경 쓰겠어요. 허, 참."

할만하지 않다는 발언 뒤의 이야기를 정말로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니면 이런 건 어떤가.

위의 꼭지에서 애초에 심너울 작가를 헬스장에 끌고 간 심완선 작가의 집에 놀러가 그곳의 풍경을 보고 놀라며 자신의 집과 비교해 보는 맥락이다.

심완선은 제자리에 물건을 넣어두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의 정리 철학은 내 연약한 두뇌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괴로운 개념이라 상세하게 설명하기가 힘드니 사례로 보이도록 하겠다. 한번은 그의 집에 놀러 갔는데, 나는 내가 일종의 모델하우스에 잘못 들어오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 좁은 공간에 수많은 물건들이 무시무시한 효율과 일관성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기계적이고 차가운 인간 소외 현상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것에 질서의 미학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나의 정리 철학은 우주의 수명을 늘린다. 우주는 모든 에너지가 쓸데없는 열에너지로 화하고 모든 입자가 균등하게 퍼져 그 어떤 변화도 없는 궁극적 열평형의 순간이 도달했을 때, 즉 엔트로피가 최대치가 됐을 때 죽는다. 그리고 우리 사람이 움직일 때, 세포 내에 ATP의 형태로 저장된 화학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환되고, 그중 대부분의 에너지는 폐열이 되어 발산한다. 움직잃수록 우주의 죽음이 앞당겨지는 것이다! 정리는 우주의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며, 나는 우주를 지키고 있다. 나의 의도는 고귀하다. 누가 이 완벽한 열역학적 논리를 공격할 수 있겠나?

자신의 깨끗하지 못하고 정리정돈이 습관이 되지 않은 집 상태를 변명하기 위해 엔트로피와 열역학, 우주까지 주워섬기다니. 진지하게 허풍을 떨어서 더 웃기다.

 

이런 유머가 취향에 맞는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에세이니까 아주 편하고 쉽게 읽을 수 있다. 나는 리디북스에서 1만 5백 원 주고 구입했는데 돈이 아깝지 않았다. 

위의 인용한 문단들을 보면서 빵빵 터졌다면 이 책도 츄라이 츄라이.

반응형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김지승, <아무튼, 연필>

 

 

솔직히 책 표지는 이상한데 내용은 정말 놀랄 정도로 좋다.

나는 나름대로 '취존'이 잘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나도 이런 걸 파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분야를 파는 이, 또는 그런 덕질의 대상을 보면 "아,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죄송합니다…).

몇 년 전에 내 친구가 물고기(집에서 어항에서 키우는 그거)를 덕질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이만큼 놀란 적은 없었다. 이 책의 저자는 무려 '연필 덕후'이다!

아니, 물론 문구류를 좋아해서 1300K나 핫트랙스 가면 이것저것 쓸어담는 사람은 봤는데, 같은 문구류이긴 해도 '연필'은 뭔가... 너무 사소하다는 느낌?

'만년필'은 그래도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고 실제로도 비싼 것들은 꽤 비싸니까 굳이 '덕질'이 아니라 '수집', '애호'라는 (다소 우아하게 들리는) 표현으로도 닷소 접해 봐서 놀랍지 않았다.

그렇지만 연필이라는 것은, 대개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바로 샤프로 갈아타기 때문에 아주 어린아이들이나 쓴다는 이미지가 (적어도 내게는) 있었다.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필기할 때 굳이 연필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어?'라는 게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의 내 생각이었다(내가 모를 수도, 떠올리지 못헀을 수도, 내가 무지했을 수도, 내가 감히, 내가 또 잘못을...).

 

(연필 덕후님들은 분노하지 마시고, 여기서부터가 진짜 본문이니까, 고정하시고 읽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런데 이 책이 내 그런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다 저자의 기가 막힌 글솜씨 덕분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건 (연필을 덕질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 말고) 저자가 '연필'이라는 소재를 여성, 또는 여성주의와 연결지었다는 점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곧바로 '연필'과 여성을 연결짓는다. 어떻게? 흑연 심 연필을 처음 만든 것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 여학생에 의해 발명되었다는 사실을 제시하는 것으로.

연필의 초기 역사는 힘을 들이지 않고 그은 4H 연필 선 정도의 흔적만 남아 있다. 연필 같은 초기 발명품들을 만든 장인들이 대부분 무학자여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고도 하고, 밑그림이나 초안 아이디어 등은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싸라지는 것들이라 그 과정에서 사용한 연필도 더불어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떤 이유든 연필에 관한 기록은 아예 기록되지 않았거나 쉽게 지워져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약자와 소수자들의 역사처럼.

연필이라는 명칭과 그 실체가 우리 가 익히 아는 현대의 그것과 가까워지는 건 대략 17세기 말, 그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륙에 한해서였다. 유럽에서 발명하고 미국에서 완성했다는 연필을 미국에서 자체 생산하기 시작한 건 19셋기 초반에 이르러서다. 1840년쯤 미국에서 최초로 흑연 심 연필을 만든 사람은 한 여학생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ㅆ다. 여학생은 영국 보로데일(Borrowdale) 흑연 조각을 고운 가루로 만든 다음 아라비아고무, 아교 용액에 섞어 굳혔다. 뜨개질 바늘을 이용해 딱총나무 가지 속을 비우고 굳은 흑연을 끼워 쓰는 과정은 기록 속에 구체적으로 남아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여학생의 이름을 전해들을 수는 없다.

연필은 앞에서 내가 말한 만년필처럼 '고오급'스러운 필기구가 아니다. 구하기도 쉽고, 저렴하며, 아이들도 쓰는 있는 물건이다.

또한 연필은 쉽게 지워지기 때문에 최종적인 결정, 또는 확실한 사실을 기록할 때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무엇을 연습할 때처럼 쉽게 지워 버릴 수 있고 또 그러고 싶을 때 쓴다.

이런 '권위 없음'은 여성의 처지와도 닮았다. 쉽게 지울 수 있는 연필을 가지고 남성 결정권자가 결정을 내리기 전 임시적이고 잠정적인 내용을 수첩에 받아적는, 또는 권력자의 미팅 약속을 스케줄러 따위에 적어넣는 비서처럼, 여성은 대체로 타인을 돕고 보조하는 일을 맡는다.

연필과 펜슬스커트와 아이브로펜슬은 하나의 검색어에서 태어난 혈연들처럼 연결되었다. 아이브로펜슬로 화장을 하고 펜슬스커트를 입은 여성 비서가 연필을 들고 있는 70, 80년대 미국의 지면 광고는 그 세 가지를 한 장에 모두 담는다. 광고 속 여성의 이미지만으로 보면 세월감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뉴트로 유행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미지 속 여성의 역할과 업무 라인이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이다. 주로 여성이었던 비서는 연필을 들고 무언가를 '임시로', '예비로' 쓴다. 마지막 결정, 명령, 실행은 대부분 남성 상사의 결재로 이루어지며 공공의 의미 체계를 획득하는 결재란의 그 표식은 연필이 아닌 볼펜이나 만년필로 남겨졌다. 그곳은 연필의 자리가 아니다. 연필의 자리가 아니면 여성인 나의 자리도 아니기 쉬웠다. 비서가 타이핑하는 문서의 내용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공식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문서의 효력과 그것을 발생시키는 서명으로부터 여성은 지속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저자는 연필과 여성을 연결짓는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엄청 재미있다. 책의 앞부분은 저자가 자라며 연필과 관련된 기억을 추억하는 부분이라 다소 쓸쓸한 분위기가 드는데, 그것만 벗어나면 바로 유쾌한 분위기로 변모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부분.

우리가 벽에 말을 거는 건 괜찮지만(나는 주로 냉장고) 벽이 대답을 하면(냉장고는 자주 대답을 한다) 병원에 가보라는, 자가 격리 시대의 자가 멘탈 검진용 조언은 유효하다. 양배추의 잎맥이 자꾸 말을 건다고 양배추를 병원에 보내는 건 좀 그래서 내가 상담을 받기로 했다. 때마침 모 재단에서 운영하는 상담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었다. 10회에 걸친 심리 상담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양배추는 잎맥을 꿈틀거리며 분명 내게 좋은 시간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런 말은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어떤 말이냐가 아니고 양배추가 말을 하는 것임을 내가 잊지 말아야 할 텐데….
(...) 나처럼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이상한지 잘 모르기 쉽다. 이상함의 정도를 체크할 상대적 리스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양배추가 말을 건다고 하면, 서양배추니까 영어로? 라고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나의 친구들아 보아라). 그 리스트를 제공해준다는 면에서도 상담은 유용했다.

저자가 상담가와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라고 말하자, 상담가는 "지승 씨, 사람은 그렇게 강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단다.

유머로 읽는 이의 긴장을 풀어 놓고 나서 저자는 이 사실을 연필과 연결짓으며 깨달음으로 슬그머니 다가간다.

다들 알다시피, 흑연이나 다이아몬드 둘 다 탄소로 구성돼 있다. 

다이아몬드와 흑연 구성 성분의 일치와 구조적 차이를 소비하는 한국적 방식은 그리 신선하지는 않았다. 이 자기 계발의 나라에서 둘은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예시로 곧잘 쓰였다. 흑연처럼 헐렁하고 약하고 잘 부서지는 이들은 패배자가, 고온과 고압을 견딜 만큼 단단한 다이아몬드는 승자가 되었다. 그 뒤로 당연한 수순처럼 다이아몬드가 되려면 어떻게 하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모두가 동일한 욕망을 즉, 다이아몬드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할 거라고 전제한 글들이 많았다. 그중 '작은 자극에서 무너지는 흑연 같은 삶'을 나무라는 표현은 당황스럽게 문학적이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기도 했다. 다른 것들과 포기해지고 더해지고 섞이는 삶을 쌍상하는 건 무너지고 부서져본 사람들이다. 홀로 단단할 수는 없어서 '약한 인간 1'과 '약한 인간 2'가 손잡고 '좀 덜 약한 인간들'로 살아가는 먹먹함에 대해 아는 것도 그들이다. 몇 세기에 걸쳐 흑연에 점토(주로 고령토) 등을 섞어 강도를 높이고 잘 부서지지 않는 연필심을 만드는 데 투자한 것도 흑연의 약함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들이었다. 어둡고, 가벼우며, 검은 광택을 가진 흑연은 어째서 아름답지 않다는 건가. 과도한 열정 없이 언제든 자유로울 준비가 되어 있는 이 검은 친구가.

(...) 사람이 어떤 순간에 무너질 수 있으며 그 무너짐이 어떤 죄책감을 만드는지에 예민할 쑤 있는 건 내가 잘 무너지고 부서지는 사람이어서다. 모를 수가 없다. 모른 척은 해도. 연필을 쓰는 사람은 부서진 흑연 가루가 종이의 섬유질에 남는 것이 연필 필기의 원리임을 매순간 경험한다. 종이 위에 남는 건 바로 그 부서짐의 노력이니까.

정말 기가 막힌 발상 아닌가. 연필과 여성을 잇고, 다이아몬드와 흑연을 비교하는 말을 살짝 틀어서 '약한 인간들'을 위로하는 말로 바꾸어내다니.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가 연필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 추억과 명상을 담은 부분이라면, 2부는 역사적 인물(대개 작가들, 그리고 전부 여성들)과 그들의 연필에 대한 글이다.

2부에서는 버지니아 울프, 다와다 요코, 도롯시 파커, 조앤 디디온, 루이자 메이 올컷 등의 인물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어서 뭔가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보석 같은 (아니, 흑연 같다고 해야 하나?) 책을 만나게 되어 정말 너무 기쁘다.

연필도 덕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흑연처럼 까맣게 빛나는 통찰을 전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참고로 이 책은리디셀렉트에서 바로 볼 수 있다.)

이 책 외에도 내가 사랑하는 '아무튼' 시리즈도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거들떠보시라.

2019.11.13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복길, <아무튼, 예능>

 

[책 감상/책 추천] 복길, <아무튼, 예능>

[책 감상/책 추천] 복길, <아무튼, 예능> 대종상을 웃기는 말투로 중계하고 해설해 한때 인터넷에 널리 퍼졌던 트윗을 혹시 아시는지? 그 트윗의 저자가 바로 이 책의 저자다(트윗 재밌게 써서

eatsleepandread.xyz

2019.12.30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조지영, <아무튼, 외국어>

 

[책 감상/책 추천] 조지영, <아무튼, 외국어>

[책 감상/책 추천] 조지영, <아무튼, 외국어> 내가 좋아하는 '아무튼' 시리즈의 한 권이다. 얼마 전에 <아무튼, 예능>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이 책도 흥미로울 것 같았다. 2019/11/13 - [책

eatsleepandread.xyz

2020.01.31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구달, <아무튼, 양말>

 

[책 감상/책 추천] 구달, <아무튼, 양말>

[책 감상/책 추천] 구달, <아무튼, 양말> 오늘 리뷰를 쓸 책은, 내가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한 책 <일개미 자서전>의 저자 구달이 쓴 <아무튼> 시리즈의 한 편이다. 2019/10/04 - [책을 읽고 나서]

eatsleepandread.xyz

2020.02.19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김혼비, <아무튼, 술>

 

[책 감상/책 추천] 김혼비, <아무튼, 술>

[책 감상/책 추천] 김혼비, <아무튼, 술> 내가 좋아하는 <아무튼> 시리즈(이 시리즈에 대해서 쓴 리뷰들도 참고하시라) 중 술에 관한 책이다. 2019/11/13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복

eatsleepandread.xyz

2020.02.21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류은숙, <아무튼, 피트니스>

 

[책 감상/책 추천] 류은숙, <아무튼, 피트니스>

[책 감상/책 추천] 류은숙, <아무튼, 피트니스> 이번에도 <아무튼> 시리즈에서 한 권을 골라 들었다. 그런데 웬걸, 대박, 심봤다! 저자인 류은숙은 인권 운동(movement)을 25년이나 해 온 인권 운동

eatsleepandread.xyz

2020.04.17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최민영, <아무튼, 발레>

 

[책 감상/책 추천] 최민영, <아무튼, 발레>

[책 감상/책 추천] 최민영, <아무튼, 발레> 서른아홉 살에 취미로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저자가 발레의 매력을 아주 유쾌한 글솜씨로 담아냈다. 솔직히 나는 발레를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eatsleepandread.xyz

2020.11.23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김신회, <아무튼, 여름>

 

[책 감상/책 추천] 김신회, <아무튼, 여름>

[책 감상/책 추천] 김신회, <아무튼, 여름> 내가 좋아하는 <아무튼> 시리즈에 또 신작이 나왔길래 한번 살펴보았다. 종이 책으로는 172쪽, 내 이북 리더 설정으로는 107쪽밖에 안 되어서 정말 후

eatsleepandread.xyz

2021.04.07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원도, <아무튼, 언니>

 

[책 감상/책 추천] 원도, <아무튼, 언니>

[책 감상/책 추천] 원도, <아무튼, 언니>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아무튼> 시리즈의 신권을 읽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세상 모든 언니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 공감이 담뿍 담겼

eatsleepandread.xyz

2021.05.03 - [분류 전체보기] - [책 감상/책 추천] 서라미, <아무튼, 뜨개>

 

[책 감상/책 추천] 서라미, <아무튼, 뜨개>

[책 감상/책 추천] 서라미, <아무튼, 뜨개> 내가 좋아하는 <아무튼> 시리즈다(<아무튼> 시리즈에 관해 쓴 리뷰는 이 포스트 마지막에 붙여 놓겠다. 한두 개면 여기에 놓으려고 했더니 내가 무려

eatsleepandread.xyz

2021.06.21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조경숙, <아무튼, 후드티>

 

[책 감상/책 추천] 조경숙, <아무튼, 후드티>

[책 감상/책 추천] 조경숙, <아무튼, 후드티> '후드티'라니? 책의 소재가 참 일상적이면서도 신기하다. 이런 경험은 작가 구달의 <아무튼, 양말> 이후 처음인 듯. 2020.01.31 - [책을 읽고 나서] - [

eatsleepandread.xyz

 

반응형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조경숙, <아무튼, 후드티>

 

 

'후드티'라니? 책의 소재가 참 일상적이면서도 신기하다. 이런 경험은 작가 구달의 <아무튼, 양말> 이후 처음인 듯.

2020.01.31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구달, <아무튼, 양말>

 

[책 감상/책 추천] 구달, <아무튼, 양말>

[책 감상/책 추천] 구달, <아무튼, 양말> 오늘 리뷰를 쓸 책은, 내가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한 책 <일개미 자서전>의 저자 구달이 쓴 <아무튼> 시리즈의 한 편이다. 2019/10/04 - [책을 읽고 나서]

eatsleepandread.xyz

그래서 흥미로워하며 읽어 보았는데, 후드티 하나에 이런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구나, 하고 놀랐다.

 

후드티의 짱팬, 그야말로 후드티가 제2의 피부라 할 수 있는 저자에게 후드티는 (이 에세이의 꼭지 개수인) 열한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1. 전투복

[<바람의 나라>를 플레이할 때] 이 사냥에 집중력을 쏟아붓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나의 현실 갑옷, 후드티였다. 후드티를 입는 것 자체보다는 후드티의 후드를 뒤집어쓰는 게 중요하다. 양 옆 시야를 차단해 집중력을 향상하는 독서실의 책상 칸막이처럼 일단 후드를 쓰고 나면 눈앞의 모니터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어 방어력을 향상시키는 내 주술사 캐릭터처럼, 나는 후드를 뒤집어쓰는 것으로 나 자신에게 집중력 향상의 마법을 걸었다. 그러면 키보드 조작이 능숙해지고 몬스터의 돌발적인 공격에도 더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통스러웠던 학창 시절, 나는 혼자임을 견디는 데 언제나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절망에 지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그럴 때는 언제나 후드티를 입고서였다.

 

2.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아낸 하루하루의 증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옷이다. 새벽 다섯 시부터 늦으면 밤 열 시까지 이어지는 열일곱 시간 가까운 강행군이 가능하려면 옷이 불편해선 절대로 안 된다. 가슴이나 허리, 팔이나 소매, 어디 한군데라도 옷이 몸을 조이거나 거슬리면 저녁 무렵부터 이미 초주검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옷이 넉넉해야 한다. 옷에 이것저것 수납까지 되면 더 좋다. 그러니 캥거루 같은 주머니가 달린 후드티만을 극성맞게 찾게 된다.

편하다는 것 외에 후드티의 장점은 또 있다. 후드티는 내가 다니는 장소 어디에나 착 어울린다. 그뿐이랴, 내 역할에도 무리 없이 들어맞는다. 시위 현장에서 후드티는 유니폼이나 다름없다. 그건 개발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내가 후드티를 입든 원피스를 입든 아이는 항상 날 사랑해 주니까 엄마 역할을 해내는 데도 문제없다. 오히려 아이를 안는 데 미끄러지지도 않고 아이의 물건을 언제든 수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후드티는 가산점을 얻는다.

흔하디혼해 모자가 달린 것 외에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여도, 그렇기 때문에 이 옷은 무던하게 내 모든 일상을 받아 안는다. 그뿐만 아니라 후드티는 내 일상을 낱낱이 알고 있는 유일한 동료이기도 하다. 피곤한 하루가 끝나고 귀가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나면 기나긴 하루를 함께했던 후드티를 괜스레 만지작거린다. 

 

3. (개발자가 참석한 콘퍼런스의) 기념품

그렇지만 이런 체크무늬 셔츠조차도 후드티를 따라올 수는 없다. 그저 편하기만 한 체크무늬 셔츠와 달리 후드티에는 기념품으로서의 효용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발자 콘퍼런스에서는 종종 후드티를 나누어주곤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하는 게임 개발자의 이야기를 다룬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에서도 주인공 가야는 IT 회사 로고가 인쇄된 기념 후드티와 후드집업을 번갈아 입고 다닌다.

  

4. 몸을 가려 주는 마법의 망토

그런 내게 후드티는 몸을 가려 주는 마법의 망토였다. 나는 뱃살이 드러나지 않게 펑퍼짐한 옷을 입고 말린 어깨를 가리기 위해 두꺼운 후드를 찾았다. 신기하게도 후드티를 입고 나면 내 몸에 대해 아무런 부끄러움도 들지 않았다.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어도 이 옷 안에 감추어 둔 살들이 빼꼼 드러날까 봐 바람이 세차게 불면 신경이 쓰였는데 후드티를 입으면 그러거나 말거나. 똑같이 펑퍼짐해도 원피스는 여리여리한 느낌을 주기 위해 가벼운 소재로 제작된 게 많다. 후드티는 바람 따위에는 끄덕없는 단단한 소재로 되어 있다. 웬만한 압력으로는 내 살을 노출시킬 수 없으니 두꺼운 후드티를 입고 나면 내 몸에 대해 의식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나는 부단히 몸을 미워했는데 후드티는 오갈 데 없이 쏟아지는 내 미움을 잠시 멈추게 해 줬다. 모두가 내 동그란 배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도 후드티는 그 시야를 막아 줬다.
후드티를 입을 때 마음 편한 건 그저 배를 가려 주어서가 아니다. 후드티를 입으면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해방된다. 투피스건 원피스건 후드티와 마찬가지로 사이즈를 넉넉하게 입는 건 똑같다. 그럼에도 그런 옷들을 입을 땐 이상하게 더 여성스럽고 우아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시폰 소재 원피스를 입을 땐 단화라도 신고 배낭 대신 핸드백을 멘다.

후드티를 입으면 그런 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물론 후드티로 감싼 내 몸이 건강미 넘치는 몸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살이 쪘건 배만 나온 E.T. 체형이건 굳이 더 여성스러워야 한다거나 어떤 이미지에 맞추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후드티를 입은 나는 예쁘거나 멋지거나 귀엽거나 상냥하거나 똑똑하거나 잘난 싸람이 아니라 그냥 후드티를 입은 한 명의 사람이다.

 

몇 개 더 있지만 책 내용을 다 스포일러 할 수는 없으니 여기까지만. 후드티에서 이만큼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후드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는 뜻일 거다. 

후드티를 피부처럼 입고 살아가는 저자에게 건투를 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