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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

by Jaime Chung 202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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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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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있다.

포스트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이렇게 일곱 명의 작가들이 각자 돌아가면서 한 주제(이 주제를 제시하는 것도 돌아가면서 한다)에 대해 짧은 에세이를 써냈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김혼비 작가 덕분이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

 

왜냐? 내가 불만인 건 이거다. 일단 위에서 말했듯, 각 작가들이 돌아가면서 주제를 선정하는데, 남궁인 작가가 "나의 진정한 친구, 뿌팟퐁커리"라는 괴상한 주제를 선정한 거다.

아니, '고양이'나 '작가' 같은 건 좀 흔하긴 해도 그렇게 글을 쓰기 어려운 주제는 아니다. 다들 작가니까 작가에 대해 어떻게든 할 말이 있을 거고(그 말이 부담스럽다는 내용이든, 아니면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는 내용이든), 고양이는 직접 키우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또는 인터넷에서 본 귀여운 고양이 얘기를 하면 된다.

'비'는 비 오는 날씨가 좋다든가 싫다든가, 비 오는 날에 떠오르는 사람/사물/기억이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진행을 하면 무난하겠다.

심지어 '쓸데없는'이라는 주제는 까다로워 보여도 잘 생각해 보면 오히려 추상적이기에 더 할 말이 많다. 예컨대 쓸모가 없어 보여도 나는 이 물건이 좋다든지, 다들 쓸데없는 짓이라 했지만 그래도 자기는 너무 하고 싶었던 일/꿈이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런데 '뿌팟퐁커리'는 너무 구체적인데다가 앞에는 의미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나의 진정한 친구'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서 도저히 뭘 써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남궁인 작가는 의사 작가로 알고 있었고, 그의 글 몇 편은 이전에 인상 깊게 읽기도 했는데 이 어이 없는 주제를 보고 작가까지 싫어질 뻔했다.

왜 '싫어질 뻔했다'라고 하느냐면, 그 뒤에 다른 주제로 쓴 글에서 그가 나에게 웃음과 재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글이 재밌었으니 봐 주기는 하겠지만 다시는 또 이런 이상한 짓 하지 말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느낌.

 

그리고 두 번째 불만. 문보영 작가의 글에는 내내 '뇌이쉬르마른'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대략 작가 본인이거나 적어도 본인의 삶에 기반한 인물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뇌이쉬르마른'이 뭐야? 글이나 웹툰 등에서 실제 인물의 이름을 밝히기 뭐할 때 친구/가족 간의 애칭을 이용하거나 그 개인의 특징을 드러내는 별칭을 만들어 부르는 건 이제 다들 익숙한 관습이다.

예컨대 눈이 사슴처럼 맑고 큰 친구의 본명을 밝히는 대신 '사슴이'라고 부르는 식으로.

그런데 '뇌이쉬르마른'은 대충 독일어로 추정되긴 하는데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듣는 이름도 아니다('제시카'나 '데이비드' 뭐 그런 거).

글 자체는 재미있고 흥미로운데 '뇌이쉬르마른이 그래서 도대체 뭔데?'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나서 통제하기 힘들었다.

검색해 봐도 문보영 작가가 뜻에 대해 설명한 건 한 줄도 안 나오고. 내가 너무 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게 불편하다.

왜 '뇌이쉬르마른'이라는 낯선 이름이지? 그냥 1인칭으로 쓰면 안 됐던 건가? 이걸 도대체 무슨 사조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는데 여튼 나랑 안 맞는다는 건 말겠다.

 

그렇지만 삼세번은 해 보아야 뭐든 알 수 있듯이, 세 번째에 내 행운이 왔다. <문 앞에서 이제는>이라는 짧은 에세이의 형태로.

'친구'라는 주제로 각 작가들이 한 편씩 써내는 라운드였을 때 김혼비 작가가 쓴 글인데, 정말 너무너무 아름답다.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학창 시절의 어느 점심시간, M이라는 친구의 교실 앞을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자기 자리에 홀로 앉아 있는 M의 모습이 보였단다.

그런데 그날따라 왠지 평소에 안 하던 짓, 그러니까 그 친구의 옆 빈자리에 가서 슬쩍 앉고 싶더란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친구가 활짝 웃었다는데 그 묘사가 또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 그는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놀라느라 그걸 헤아릴 새가 없어 보였다. 정말 반갑다며 활짝 웃었다. 가로등에 일제히 불이 들어오는 순간의 한강변 같은, 일순간 얼굴 전체가 환해지는 웃음이었다. 서로 할 이야기가 뭐 그리 많았는지 정신없이 웃고 떠드느라 예비종이 지나고 5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나서야 "갈게!"라는 다급한 작별인사를 건네고 교실을 향해 허겁지겁 뛰었다. 등 뒤로 M 특유의 끼룩끼룩대는 웃음소리가 들리다 사라졌다. (...)

이게 더 아름다운 이유는 그다음에 이어지는 일들 때문이다.

그 이후 두세 달쯤 지났을 때, 그 친구는 전학을 가면서 '사실 그 석달 전 점심시간에 네가 와 줬던 게 너무 좋았고 계속 기다리게 됐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남겼다. 이것도 묘사를 직접 읽어 보시라.

그렇게 여섯 장짜리의 편지의 후반부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다음 장을 넘기다가, 첫 줄을 읽기도 전에 먼저 눈에 들어온 중간의 어떤 문장에 갑자기 숨이 멎는 듯했다. 거기엔 석 달 전 점심시간에 관해 적혀 있었다. 그날 얼마나 반가웠는지, 또 얼마나 기뻤는지. 올해 들어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다며 M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 후로 어쩐지 점심시간마다 너를 계속 기다리게 됐어. 혹시 또 안 오나 해서." 다시 읽어도 숨이 멎을 듯해서 바닥에 잠시 주저앉았다. 펑펑 울었다. 편지의 나머지 부분을 읽으면서도 문득문득 뒷문을 쳐다봤을 M이 자꾸만 상상돼서, 그때마다 실망하는 M의 표정과 아무렇지 않은 척 실망을 추스르며 맞곤 헀을 M의 오후가 자꾸만 생각나서, 그날처럼 크게 터져 나올 일이 더 많았다면 좋았을 M의 끼룩끼룩대는 웃음소리가 자꾸 떠올라서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 후회헀다. 그 후로도 수백 번은 더 하게 될 후회였다. '몇 번 더 갈걸. 더 자주 갈걸' 하는 후회는 아니었다. 가지 말걸. 그날 가지 말걸. 그럴걸.

원래 점심시간에 다른 반에 놀러가는 편이 아니었는데, 어쩐지 그날 그냥 M의 혼자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옆에 가 앉고 싶었다는 게, 정말 너무 아름답고 슬프다.

분명 좋은 의도에서 한 일이고, 나쁜 일도 전혀 아닌데, 결과적으로 M이 작가를 기다리게 하고 쓸쓸하게 만들었으니...

큽, 눈물을 머금고 딱 반 문단만 더 인용해 보겠다. 

(...) 그러니 가지 말았어야 했다. 책임지지 못할 일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실 나는 그게 '시작'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백지에 별생각 없이 점 하나를 찍고 말 때, 누군가는 그 점에서부터 시작하는 어떤 긴 선을 그리려고 한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알았어야 했다. M은 끝내 오지 않은 내가 너무 미워서 전학 가는 걸 미리 알려 주지 않는 것으로 복수한다며 '메롱'을 의미하는 혓바닥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 그 그림은 편지 전체에서 유일하게 M답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게 또 오래 가슴에 걸렸다. 작은 기대일지라도 번번이 좌절될 때 조금씩 바스러지는 마음에 대해, 이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는 순간 받게 되는 상처에 대해 나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M의 아픔은 다시 나의 아픔이 되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해, M.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진짜 김혼비 작가의 딱 이 에세이만을 위해서라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고. <문 앞에서 이제는>은 그 정도로 아름답고 빛나는 작품이라고.

리디 셀렉트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니 혹시나 리디 셀렉트를 이용한다면 꼭 한번 이 에세이를 찾아보시라. 어차피 리디 셀렉트를 이용한다면 책을 몇 권을 보든 돈 더 내는 것도 아니니까.

서점에서 잠시 이 책을 찾아 이 에세이만 읽어 보셔도 좋다. 다른 에세이들은 그럴 마음이 들 때 읽어 보셔도 된다. 그렇지만 이것만큼은 꼭 읽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말하자면 <어린 왕자>의 여우가 어떻게 길들여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찬란한 슬픔을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가 막힌 에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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