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오구니 시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매년 9월 21일은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이라고 한다(알츠하이머 병은 흔히 치매(癡呆)라고 하지만 ‘어리석고 미련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 병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여기)도 있다). 한 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5천 5백만 명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알츠하이머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이기도 하는,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인 병이다.
혹시 일본에서 열린 ‘주문을 틀리는 레스토랑’에 대한 기사를 보셨는지? 아니면 KBS에서 이 콘셉트를 가져와 만든 교양 프로그램 ‘주문을 잊은 음식점’을 보셨을지도 모르겠다(아래 링크 참고).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2017년 6월 초여름의 도쿄에서 좌석 수 열두 개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최초로 열린 시험적인 공간이다. 치매 환자인 노인 여섯 명이 손님을 응대하기에 손님에게 주문을 받다가도 ‘내가 여기에 뭐 하러 왔지…’ 하고 주문을 받으러 온 사실도 까먹거나, 주문한 것과 다른 요리를 가져오기도 하며, 물을 두 번이나 가져다주기도 한다. 알츠하이머 종업원들은 자신이 일을 한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손님들은 주문이 잘못 나와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즐거워한다. 전체적으로 관용과 포용의 에너지가 가득한 곳이다.
아래는 복지팀 서포터가 쓴 글의 일부이다.
다만 요시코 씨에게 중요했던 것은 실수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으리라.
치매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 일을 그만두고, 그룹 홈(사회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청소년, 노인 등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소규모 시설)이라는 틀 안에서 지내게 된 이후에도 요시코 할머니의 가슴 한켠에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연신 넘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인생을 긴장감과 성실함으로 채우며 일을 해 왔던 그녀로서는, 더 이상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으리라.
’나는 아직 일할 수 있는데.’
그런 요시코 씨의 의지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일을 하면서 다시 채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가득 채워졌을 때는 상대에 대해 너그러워진다.
요시코 할머니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일한 경험을 통해, ‘아직은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곳에서 일하며 잠시나마 자기 효용감을 느꼈다면, 치매 때문에 곧 그것을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사실 TV 방송국 PD인 저자가 이 놀라운 요리점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2012년, ‘치매 환자 간병업계의 이단아’ 와다 유키오 씨를 취재하러 갔던 시기다. 현장에서 그곳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받았는데, 원래 나오기로 예정된 메뉴는 햄버그스테이크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식탁 위에 오른 것은 만두.
머릿속에 연신 ‘?’ 마크만 맴돌고, 목 끝까지 차 올라온 ‘어? 오늘 메뉴는 햄버그스테이크 아니었나요?’ 이 말을 삼켜버려야 했습니다. ‘이거, 실수한 거죠?’ 그 말 한마디로, 와다 씨와 노인분들이 그동안 쌓아온 이 ‘당연한 삶’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설령 햄버그스테이크가 만두로 변신했다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그 누구도 곤란해질 일 없습니다. 메뉴가 틀렸더라도 맛만 있으면 된 거니까요. 그런데도 굳이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틀에 치매 상태의 분들을 끼워 넣어 버린다면 간병 현장은 점점 숨 막히는 궁지에 몰리게 될 뿐이다, 또한 그런 사고방식이 기존의 간병에서 보여졌던 ‘구속’이나 ‘감금’으로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불현듯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 별것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지만, 저는 이상하리만치 이 단어에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으로 영상이 주르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 주문을 받으러 와서, 나는 햄버그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정작 나온 것은 만두. 하지만 이 식당은 애초부터 ‘주문을 틀린다’고 전제를 했기 때문에 나는 화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메뉴가 나와도 싫어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엉뚱하게 만두가 나온 자체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릿속 영상은 여기까지였지만, 어쩌면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습니다. 물론 이 식당 하나로 치매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수를 받아들이고 또한 그 실수를 함께 즐기는 것, 그런 새로운 가치관이 이 식당을 통해 발신될 수 있다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렸습니다.
그렇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아이디어가 착상되었고, 몇 년 후 저자 말대로 ‘최고의 멤버들’을 모아 실제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책에서 읽어 보시라. 관심이 있는 분들은 우리나라에서 이 콘셉트를 가져와 만든 다큐 ‘주문을 잊은 음식점’ 시즌 1과 2를 보셔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