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 나누기] 망한 제품이 취향인 소비자들? - 신상품, 소비자, 그리고 ‘실패의 전령’
자, 여러분이 신제품을 막 개발해 시장에 내놓을 마케터라고 상상해 보자. 여러분은 물론 자신이 만든 제품에 자부심이 있고 애정이 있겠지만, 모든 신제품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인기가 없거나 수익이 좋지 않으면 그 제품은 단종되는 게 당연한 수순. 그렇다면 망할 제품과 성공할 제품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2015년, 노스웨스턴 대학과 MIT의 연구원들은 미국 내 전역에 퍼져 있는 한 편의점 체인에서 6년간 손님들의 구매 내역을 분석했다. 그리고 25%에 달하는 고객들이 3년 내로 망한, 즉 단종된 제품들을 지속적으로 사들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망한 제품들이란, 크리스탈 펩시(물처럼 투명한 펩시 콜라), 수박맛 오레오, 프리토-레이 레모네이드(프리토 레이라는 감자칩 브랜드에서 낸, 감자칩의 짭짤한 맛이 나는 레모네이드), 콜게이트 키친 앙트레(치약 브랜드 콜게이트에서 낸 냉동 식품 라인), 치토스맛 립밤, 초콜렛 칩 팬케이크로 싼 소시지, 요거트로 만든 샴푸 등이었다(이 주옥 같은 라인업이라니!).
시장 경제에서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대체로 성공의 징조라 볼 수 있지만, 이 경우는 아니었다. 연구원들이 밝혀낸 바, 놀랍게도 이런 망한 제품들을 계속 사는 소비자들이 있었다. 연구원들은 이들을 ‘실패의 전령(harbingers of failure)’라고 명명했다. 예컨대 오토바이를 제조하는 할리 데이비슨에서 만든 향수(=망한 제품)를 구매한 소비자는 또 다른 망한 제품인, 콜게이트에서 낸 콜게이트 키친 앙트레를 살 확률이 그렇지 않은 소비자보다 높았다. 허쉬 초콜렛의 향이 나는 연필(연필에서 향이 나야 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당연히 망했다)을 산 소비자는 치토스 향 립밤을 살 가능성이 더 컸다. 한 가지 예시를 더 들자면, 다이어트 크리스탈 펩시(빠르게 단조됨)를 산 소비자는 수박맛 오레오를 살 가능성이 더 컸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실패의 전령’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연구원들은 그저 망한 제품들, 다시 말해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제품들을 선호하는 취향이 이 특정 소비자들에게 있다고 추측할 뿐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니치(niche)’ 제품(한 브랜드나 라인의 전체 판매량의 1% 이하를 차지하는 제품)을 구입할 가능성이 9% 더 높고, ‘아주 니치(very niche)’한 제품(한 브랜드나 라인의 전체 판매량의 0.1%이하를 차지하는 제품)을 가능성은 12% 더 높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들은 다른 ‘실패의 전령들’과 같은 우편 번호를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실패의 전령’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들이 망한 제품을 선호하는 것도 지리학적 이유가 있지 않을까.
총 정리를 하자면, ‘실패의 전령’들은 그냥 취향이 그런 망한 제품이 취향인 것이다. 망한 제품이라는 게 아무래도 대중, 즉 많은 이들에게 어필하지 못해서 단종되는 것인데 (아이돌이 뜰려면 가장 비주얼이 뛰어난 멤버를 내세우거나 예능감이 좋은 멤버를 예능에 내보내는 등,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단 대중에게 그 아이돌을 기억시켜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그렇다면 이들은 마이너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마이너라 할 수 있겠다. 아이돌에 비유를 해서 그런지 더 가슴이 아프다… 어쨌거나 여러분이 좋아하는 신제품이 단종되지 않기를 빕니다(만약에 단종된다면 여러분이 바로…).
➕ 이 논문이 흥미로우신 분들은 아래 기사도 참고해 보시면 좋을 듯.
https://thehustle.co/the-customers-who-repeatedly-buy-doomed-products/
https://news.mit.edu/2015/harbinger-failure-consumers-unpopular-products-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