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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앨런 클레인, <아이처럼 놀고 배우고 사랑하라>

by Jaime Chung 2019.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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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앨런 클레인, <아이처럼 놀고 배우고 사랑하라>

 

 

음, 빌릴 때는 흥미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책을 펴자마자 '아, 그런데 나 애들 안 좋아하잖아? 내가 왜 애들처럼 되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하고 후회했다.

저자는 '일, 놀이, 배움, 인생에 대한 18가지 지혜', 또는 우리가 '철이 들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아이들의 예를 들어서 보여 준다.

감탄, 초심, 용기, 창의력, 호기심, 공상, 탐험, 용서, 재미, 즐거움, 친절함, 쉼, 긍정적 사고, 놀이, 깨어있음, 모험, 진실함, 현명함이 그것이다.

이 모두 좋은 자질임에는 틀림이 없고 나도 100% 동의하지만, 그걸 '아이'에게서 배운다는 게 나는 기분이 묘했다.

 

생각해 보라. 어차피 그 아이들이 커서 우리들처럼 '지루한', 그러니까 이런 책을 읽고 다시 '아이'처럼 되어야 할 존재들이 되는데!

어른들이 아이를 보면서 그들의 이런저런 자질을 보고 감탄하는 건, 너무나 부질없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성숙한 여인이 되기 전, 아기와 여인 사이의 소녀를 보고 감탄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랄까. 물론 소녀들은 모두 빛나지만, 영원히 소녀로 머무를 수도 없고 그러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다.

말하자면, 과실수, 예를 들어 배라고 하자, 배꽃은 참 예쁘지만 배꽃이 지지 않는다면 배를 맺지 못한다.

배도 맺지 못하고 배꽃이 사시사철 배나무에 매달려 있다면, 정말 그게 좋기만 할까?

같은 의미에서, 아이들에게 분명 몇 가지 감탄할 만한 자질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른이 되는 게 끔찍한 일이라거나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의 훌륭한 자질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저자는 18개의 자질을 설명하며 끊임없이 아이들의 예를 들며, 어른들이 이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쎄, 그거야 책 주제가 그러니까 주제를 따른다는 점에서는 틀린 게 없지만, 그 주제가 애초에 그렇게 옳지만은 않다면 어떨까?

예컨대 '모험'이라는 자질을 가진 어른들이 이 세상에 없나? 전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업이라는 분야에서 모험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높은 빌딩을 안전 장치 없이 기어 오르는 등, 모험 정신이 너무 투철해 주위를 걱정케 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어떤 자질을 얼마나 적당히 가지고 있고, 그걸 적당히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지, 어른들이 이런저런 고귀한 자질들을 갖고 있지 않은 게 아니다.

또 다시 현실의 예를 들자면, 아이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솔직'한 나머지, 낯짝을 가린다.

숫기가 없다는 뜻이 아니고, 에브고 잘생긴 사람들만 좋아하고 못생긴 사람들은 잘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군가 못생겼다거나 뚱뚱하다는 말도, 그게 남에게 상처가 될 줄도 모르고 그냥 내뱉기도 한다.

이런 걸 무조건 긍정적인 자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올시다'이다.

 

그래도 이 책이 아주 형편없는 건 아니다. 내가 애들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그냥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전달하기 위한 큰 전제가 그다지 내게 호소력이 없었다는 것뿐.

이런 부분은 좋았다.

승려이자 명상가인 쵸그얌 드룽파 린포체가 제창한 '미친 지혜(crazy wisdom)'라는 개념이 있다. <탐구하는 정신> 2005년 봄호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아시아학과 교수인 스티브 굿맨은 미친 지혜를 이렇게 설명한다. "미친 지혜를 가진 사람은 늘 사랑으로 가득하고, 환하게 빛나며, 끝없는 에너지로 충만합니다. …… 미친 지혜는 아무런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상태로서, 바라거나 두려워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다음 문단에 바로 '이런 설명은 흔히 아이들을 묘사하는 표현들과 매우 유사하게 들린다.'라고 하지만 그건 별로 공감되지 않으므로 패스.

아니면 이런 것도 좋았다.

사람들에게 명상법을 가르치는 실비아 부어스타인은 가끔 학생들에게 한 번이라도 골절상을 당한 적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한다. 몇몇이 손을 들면 부어스타인은 그 뼈가 아직도 아픈 사람만 계속 손을 들고 있으라고 한다. 보통은 거의 모두가 손을 내린다. 다음으로 그녀는 학생들에게 작년에 누군가에게 들은 말 때문에 아직도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든다. 그러면 5년 전에 들은 말 때문에 아직도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 다음으로는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으로 질문이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손을 내리지 못한다. 사람들은 상처가 되는 말을 듣고 나면 그 고통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지니고 다닌다.

우리는 과거 우리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용서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무겁게 들고 다니던 감자를 내려놓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굳이 애들을 예로 들지 않아도 충분히 자신의 주장을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너무 이 책에 대해 부정적으로 의견을 제시한 것 같은데, 사실 그래도 나는 니체가 주장한 '초인'으로 가는 3단계의 과정의 마지막에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도 알고, 니체가 왜 그런 설명을 했는지도 완벽히 이해한다. 그리고 그 상징에 대해 별로 불만을 갖지는 않는다.

난 그냥, 어차피 지나가게 마련인 아이 시절을 너무 이상화하는 것에 반대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린아이인 시기는 길게 잡아야 뭐, 한 15년 되나? 통 크게 20년이라고 쳐 주자. 그래도 한 60년을 어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데 (2016년에 예측한 한국인 평균 수명은 82.02세이다) 그걸 그렇게까지 끔찍한, 아이 시절보다 훨씬 못한 시절로 살아가야 하는 기간으로 본다면 그거야말로 너무하지 않은가.

내 요지는, 저자가 제시하는 18가지 자질처럼 좋은 자질은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삶에서 조금 더 그런 것들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되, 어른으로 사는 걸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나는 어른이어서 좋은 점이 아이일 때보다 많거나, 최소한 비슷하다고 본다. 일단 아이는 그 안녕과 행복이 부모에게 달려 있지만, 어른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이라는 진실을 마음에 품고 노력과 의지로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런 책은 참고는 하되, 너무 어린 시절에 집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른들은 어른들 나름의 좋은 자질이 있고 또 행복이 있게 마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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