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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네이딘 버크 해리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한 2주쯤 전에 시작한 것 같은데 현생이 바빠서 이제야 다 읽었다. 휴!

책 내용은 띠지에 잘 요약돼 있다. "자가면역질환, 암, 심장병, 웨궤양, 만선 기관지염, 뇌졸중, 편두통"처럼, 언뜻 보기에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무관하고 오히려 생활 방식과 더 연관이 있을 것 같은 이런 질병들이 사실은 아동기의 정신적, 심리적 상처가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인 네이딘 해리스는 소아과 의사이자 공중보건 전문가로, 2007년 샌프란시스코의 가난한 동네에 진료소를 열었는데, 그곳에서 놀라운 케이스들을 목격했다.

신체적 폭력이라든지 학대, 방임, 부모의 알코올 또는 약물 중독, 정신 질환, 이혼 등등으로 아이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가 여러 가지 질병으로 발현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발견을 반신반의했으나, 이미 이런 현상을 보고한 논문을 접하고 자신의 의견에 확신을 얻는다.

그리고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기 전, 환자 또는 보호자가 환자의 유년기에 관한 정보(위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정신적 상처를 겪었는지에 관한 정보)를 묻는 설문지에 답하게 하는 프로토콜을 수립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다른 의사나 상담사 등의 조력자들과 힘을 모았다.

그 결과가 바로 '부정적 아동기 경험(ACE,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조사'이다(책 뒤에 부록으로 ACE 질문지가 실려 있다).

이 설문지에서 높은 점수(최고 점수는 10점)를 받은 환자일수록, 심혈관계라든지 암 같은 만성 질환이 생길 위험이 더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설문지로 펠리티와 안다가 '부정적 아동기 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줄여서 ACE라는 용어로 표현한 것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가 수집되었다. 비만 프로그램에서 목격했던 만연한 역경들을 바탕으로 두 사람은 학대와 방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정에 대한 정의를 ACE의 열 가지 구체적 범주로 분류했다. 그들의 목표는 18세가 되기 전에 이 열 가지 범주 중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 질문해 각 환자가 아동기에 부정적 경험에 노출된 수준을 판단하는 것이었다.

1. 정서적 학대(반복적)
2. 신체적 학대(반복적)
3. 성적 학대(접촉)
4. 신체적 방임
5. 정서적 방임
6. 가정 내 약물남용(알코올 중독자나 약물 남용 문제가 있는 사람과 함께 거주)
7. 가정 내 정신질환(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을 앓은 사람 또는 자살을 시도한 사람과 함께 거주)
8. 어머니가 폭력을 당함
9. 부모의 이혼 또는 별거
10. 가정 내 범죄행위(가족 중 투옥된 사람이 있는 경우)

각각의 학대와 방임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정에 대한 항목은 하나당 1점으로 계산되었다. 총 열 가지 범주이므로 가장 높은 ACE 지수는 10점이다.

펠리티와 안다는 건강 검진과 설문에서 얻은 데이터를 가지고 건강에 위험한 행동들과 건강 상태가 ACE 지수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충격적이지 않은가. 어린 시절에 학대 같은 트라우마를 겪은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큰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니.

무엇보다 이것은 가난한 동네뿐 아니라 부유한 지역에서도 똑같이 해당되는 사항이다. 다시 말해, 보통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위에 언급된 트라우마를 겪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유소년기의 부정적 경험으로 상처를 입는 아이는 가난한 흑인 동네뿐 아니라 부유한 백인 동네에도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해리스 박사의 팀은 이 ACE 설문을 모든 의료 행위의 기본 프로토콜에 필수로 포함되게 노력했던 것이고 아직도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아동기에 유독성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하더라도, 그 영향을 줄이거나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미니 박사의 연구 팀이 어미 쥐와 새끼 쥐를 가지고 한 실험 이야기를 통해 후성유전적 조절, 그러니까 쉽게 말해 '유전이 100%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니 [박사의] 연구 팀은 두 무리의 어미 쥐와 새끼 쥐를 관찰했다. 그들은 새끼 쥐가 연구에 사용되고 나면 어미 쥐가 스트레스를 받은 새끼를 핥아 털을 다듬어 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사람으로 치면 포옹과 입맞춤 같은 행동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모든 어미 쥐가 똑같은 정도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어미 쥐는 높은 강도로 핥고 털을 다듬는 반면 어떤 어미 쥐는 그 정도가 낮았다. 이는 힘든 하루를 보낸 자식에게 정다운 입맞춤과 따뜻한 포옹을 얼마나 해 주느냐의 차이였다. (...)

연구자들은 새끼 쥐의 스트레스 반응이 어미 쥐가 '많이 핥아 주는가' 아니면 '적게 핥아 주는가'에 따라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새끼 쥐들을 연구에 사용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새끼 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었을 때 많이 핥아 주는 어미 쥐의 새끼들은 코르티코스테론을 비롯한 스트레스호르몬 수치가 낮았다. 많이 핥아 주면 스트레스가 낮아지는 이 효과는 용량-반응 관계도 보였다. 즉 어미 쥐가 더 많이 핥아 주고 털을 골라 줄수록 새끼 쥐의 스트레스호르몬 수치는 그만큼 더 낮아졌다. 게다가 많이 핥아 주는 엄마를 둔 새끼 쥐들의 '스트레스 온도 조절 장치'는 더 민감하고 효과적이었다. (..)

또한 미니의 연구는 어미 쥐가 새끼 쥐를 충분히 핥아 주지 않으면 새끼 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더해, 더 많이 핥아 주는 것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도 보여 주었다. 환경은 우리가 고칠 수 있는 요소이므로 이는 '적게 핥아 주는' 엄마에게 태어난 사람 아기에게도 많은 희망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 아이는 하자가 있는 존재도, 결함이 생긴 존재도 아니다. 생물학은 아이가 이른 시기에 안전하고 안정적이고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다면 성인기의 건강한 스트레스 반응 체계가 발달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앞서도 말했듯 힘들지만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 반응이 유독성 스트레스 수준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지켜 주기 위한 핵신은 스트레스 요인의 충격을 적절히 완화해 줄 수 있는, 즉 완충제 역할을 해 줄 성인의 존재다. 새끼 쥐에게 그 존재는 핥아 주고 털을 다듬어 주는 어미 쥐였다. 사람의 경우에는 꼭 안아 주고 귀 기울여 말을 들어 주는 아빠일 수 있다. 이렇게 충격을 흡수해 주는 존재는 스트레스호르몬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뿐 아니라, 스트레스 반응 조절 장애와 주요한 건강 문제들로 이어질 수 있는 후성유전적 변화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그래요, 아동기의 트라우마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신체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건 인정한다 치자고요. 그러면 이제 어쩌란 말입니까?"

일단은 자신이 겪은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되고, 그러고 나서는 자신의 스트레스 레벨을 조절하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쏟을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을 한다든지, 명상을 한다든지, 상담사를 정기적으로 만나 상담을 받는다든지, 아니면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유지해 정신적으로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낀다든지 등등. 

유독성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여섯 가지 접근법은 수면과 운동, 영양, 마음챙김, 정신 건강, 건강한 관계이다.

유독성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운동이 있다. 요가와 암벽 등반을 싫어하는 사람도 달리기나 수영은 좋아할지 모른다. 무엇이든 괜찮다. 어떤 운동이든 하루에 한 시간 정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정신 건강 개입법에도 효과가 있는 여러 유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반드시 트라우마에 초점을 맞춘 개입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독성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여섯 가지 압법 모두를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실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성인은 아동기에 비해 뇌의 가소성이 떨어지므로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아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위의 여섯 가지를 더 많이 실천할수록 스트레스호르몬이 감소하고, 염증이 줄어들며, 신경 가소성이 향상되고, 세포 노화가 지연된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말을 인용하며 이 리뷰를 끝맺고자 한다. 유년기에 부정적 경험을 받은 이들이 이 리뷰를 읽고 있다면, 여러분의 지나온 삶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치유하며 사랑해 주기를 기원합니다.

나는 어린 시절에 부정적 경험을 하며 자란 사람들이 자신의 유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역경을 잊어버리거나 탓하는 것이 쓸모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첫걸음은 그것의 상태를 평가해 파악하고, 그 영향과 위험을 비극도 동화도 아닌, 의미 있는 현실로서 명료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특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몸과 뇌가 어떤 식으로 반응하게 맞추어져 있는지 이해하고 나면, 자신의 반응을 미리 예측해 조정하는 방식으로 매사를 처리할 수 있다. 반응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무엇인지 알면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도울 방법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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