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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도널드 커시, 오기 오거스,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

 

 

저자들은 역사 속에서 제일 기억할 만한 신약 열두 가지를 꼽아 이 약들이 어떻게 개발되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내용은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고 또 흥미롭다.

읽기만 해도 과학 분야의 교양을 쌓는 느낌이 들어서 아주 뿌듯하다.

 

책을 읽기 전, 신약을 만드는 데 물론 행운이 필요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인간관계가 중요한 줄은 몰랐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의약품이 최신 장비를 갖춘 실험실에서 비범한 과학자들이 애를 써서 찾아낸 최첨단 발명품이라고 생각한다. 신약 발견에 일급 과학자가 필요하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적인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팀워크와 협동도 뛰어난 과학만큼은 아니지만 그 못지않게 신약 발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싸람이 발견한 가장 최근의 약은 1846년 윌리엄 T. G. 모턴이 발견한 수술용 마취제, 에테르였다. 그 뒤로 모든 신약은 집단에 의해 발견됐다.

안타깝게도 팀워크와 협동은 과학도로 훈련받는 동안에는 종종 무시를 받기 때문에 신약 사냥꾼은 보통 현장에서 협동하는 방법을 배운다. 나는 경력의 여러 단계에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팀의 일원으로서나 협업자로서 더 성장하게 되었다. 그분들의 노력에 감사하며, 그들과 쌓아온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열두 가지 신약 이야기를 다 공유하고 싶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을 테니 내가 가장 신기하게 생각했던 이야기 두어 가지만 들려드리겠다.

첫 번째로, 피임약 개발 이야기가 나는 제일 흥미로웠는데, 긴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마가렛 생어라는 페미니스트가 '여성들도 피임을 할 권리가 있다'라는 믿음으로, (자신은 과학자가 아니니까) 잘은 모르지만 그런 방법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걸 할 수 있을 법한 과학자를 수소문한다.

그녀는 그레고리 핀커스라는 과학자를 찾아갔고, 그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로 한다. 그 돈은 자신의 친구이자 뜻을 같이 하는 백만장자(정확히는 백만장자의 아내이자 상속녀) 캐서린 덱스터 맥코믹에게서 나왔다.

어쨌든 핀커스는 그 연구비로 연구를 계속했고, 마침내 프로게스테론을 이용한 피임약을 개발했다. 존 록 박사라는 의사를 임상시험 감독자로 임명하고 실험만 하면 되는데, 문제는 당시 법은 이 약을 가지고 인체 실험 하는 걸 금지했다는 점이다.

그들이 찾아낸 방법은, 그런 법이 없는 나라에 가서 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푸에르토리코로 갔고, 거기에서 실험해 본 결과, 이 약이 효과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물론 여성들은 메슥거림, 자궁 출혈 등의 부작용을 보고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이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귀찮음을 감수하고서라도 피임약을 사용하겠다는 여성들은 많았다. 지금도 그러하듯이.

이 내용은 한 문단으로 요약하자면, 본문의 이 문단이 아닐까.

'그 알약'은 대형 제약회사의 연구실이나 영업팀 회의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먼저 소가 더 빨리 임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던 스위스 낙농업자들이 특이한 해부학적 발견을 해냈다. 그리고 한 수의학 교수가 그 발견을 출판해 배란 억제 약으로 쓸 수 있는 프로게스테론을 찾아냈다. 한 기이한 외톨이 화학자는 단순히 그게 흥미로운 문제라는 이유로 프로게스테론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70대 페미니스트 두 명은 불명예를 안은 생물학자를 골라 경구피임약을 만든다는 꿈을 실현했다. 독실ㅇ하고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인 가톨릭교도 부인과 의사는 경구피임약의 첫 임상시험을 하는 데 동의했다. 이 생물학자와 부인과 의사 두 사람은 함께 연방과 주의 법을 — 그리고 의학 윤리를 — 피해 푸에르토리코에서 임상시험을 벌였고, 부작용이 있다는 명확한 징후를 무시했다. 이들은 가톨릭의 불매운동을 두려워하다가 뜻하지 않게 여성들이 알아서 자사의 약을 인가박지 않은 피임 목적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회사를 설득해 그 약을 생산하ㅏ게 하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 첫 항정신성 약물 클로르프로마진. 이 약이 나오기 전까지 의사들은 '정신병'을 약으로 낫게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프로이트 같은 정신분석학자들도 오로지 상담 치료만을 통해서야 정신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앙리 라보리라는 외과 의사가 운 좋게 클로르프로마진이라는 화합물을 얻었고, 이 약이 정신병 환자에게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정신과 의사를 설득해 자신의 약을 시험해 보게 했고, 이 약을 투여받은 한 (대단히 폭력적이고 흥분 상태에 있는) 정신병 환자는 금세 진정했고 몇 시간 동안 차분한 상태를 유지했다.

이것이 바로 첫 항정신병제였다. 

스미스, 클라인, 앤 프렌치의 수익은 향후 15년간 8배로 늘어났다. 1964년까지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금세 조현병 환자를 위한 가장 중요한 치료제로 자리 잡은 이 약을 복용했다. 공공 요양소라는 지하 감옥 같은 곳에 갇혀 인생을 잃어버렸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고, 놀랍게도 활발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아갔다. 클로르프로마진의 성공은 정신분석학과 미국 정신의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프로이트주의의 종말을 고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분이라면 알약 하나 삼키면 증상이 사라질 수 있는데, 몇 년 동안 매주 정신과 의사의 소파에 앉아서 어머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겠는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찾아낸 오류는 딱 하나였는데, 보통 '갈레노스'라고 하는 고대 희랍 의사를 그냥 '갈렌'이라고 해 놓은 것이었다.

물론 전공자는커녕 이쪽에 관심도 없던 내가 의학에 대해 뭘 알겠느냐만은, 갈렌이 아니라 갈레노스라고 하는 것 정도는 안다. 이것 외에 오타 두어 가지가 있는데 그것도 같이 수정해 주면 완벽한 책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너무나 흥미롭고 정보가 넘치는 책이니까 꼭 한번 읽어 보시면 좋겠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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