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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최유나, 김현원, <우리 이만 헤어져요>

by Jaime Chung 2020.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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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최유나, 김현원, <우리 이만 헤어져요>

 

 

글쓴이인 최유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혼 변호사 만화를 올리는 그분이다(그린 이인 김현원 씨가 만화가). 이미 인터넷에서 좀 알려져서 한두 편 정도는 커뮤니티 게시글에 올라온 것으로 읽어 보신 분도 계실 듯.

나도 인스타 계정을 보다가 책을 내셨다는 소개글을 봤고, 바로 이북으로 다운 받아 읽었다.

 

내가 본 건 PDF 형태로 돼 있어서(리디북스에서는 만화책을 대개 이런 형식으로 제공하더라) 하이라이트나 책갈피 기능을 사용할 수 없어 불편했지만 그래도 책 자체는 재밌게 잘 봤다.

나는 이 만화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여태까지 이 만화 특유의 눈 그림체가 너무 귀신이나 외계인 같아서 좀 그랬는데(미드 <수퍼내추럴(Supernatural)>에 나오는, 악마 들린 사람은 눈에 흰자가 없이 까만 부분만 가득 찬 모습인데 이 만화 그림체가 꼭 그걸 닮았다), 그림체 때문에 책 자체를 거르기에는 내용이 흥미로워서 아깝다.

그래서 그림체를 극복하고 재미있게 봤다.

 

지금 당장 기억나는 에피소드만 몇 개 소개해 보겠다.

첫 번째, 저자(최유나 변호사)가 도로를 달리다 만난 폭력적인 남자 이야기. 저자가 친구들이랑 치맥 하러 갈 생각에 들떠서 속력을 내고 있었는데, 누가 뒤에서 경적을 세게 울리더란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60대 남성인 옆 차 운전자가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주위를 빙빙 돌다가는 급기야 차선을 바꿔꾸더니 길을 가로막았다.

그러더니 차에서 내려 저자에게도 차에서 내리라고 윽박지르더란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차에서 내려 "무슨 일이세요?" 하고 물었는데, 그 순간 저자를 겨냥한 듯한 주먹이 날아왔다고.

저자는 영문도 모른 채, 그리고 변호사라는 직업도 내려놓은 채 그저 공포에 질려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만 했단다.

다행히 어떤 의인이 나타나 상대 폭력남을 제지하고 저자가 도망갈 수 있게 해 주며, 자신이 증인이 되어 줄 테니 상대를 꼭 고소하라고까지 해 주었다고.

이 경험이 있었기에 저자는 가정 폭력 사건을 다룰 때 분노뿐 아니라 공포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진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는데 잘 해결되어 다행이고, 이 일이 또 타인의 경험에 공감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는 것도 너무너무 다행이다.

 

두 번째는 진짜로 이혼에 관련된 에피소드다. 동창이라고 하는 한 남녀가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왔다. 이름인 대략 A(여)와 C(남)라고 해 두자.

저자 말대로, "이성인 동창끼리 왔다고 해서 약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사실은 완전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A의 남편과 C의 아내가 바람이 난 것. 원래 A와 C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남자인 C 쪽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인 A 쪽도 결혼을 했단다.

오래된 친한 사이지만 그래도 둘만 만나는 게 미안해서 결혼 후에는 넷이서 쭉 어울렸다고 한다.

A네 부부와 C네 부부, 이렇게 부부 동반으로 자주 여행을 갔는데, A와 C는 원래 술을 잘 못하는 편이라 먼저 자러 가는 일이 흔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A네 남편 B와 C의 아내 D만 남아 술자리를 계속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 눈이 맞은 거 같다고...

아니, 세상에, 어떻게 자기 배우자의 친구의 배우자랑 바람이 나지??? 남녀 사이에 친구로서 오래 우정을 지속해 온 자기 배우자를 보고도 뭐 느끼는 바가 없나?

어쨌든 A와 C의 법적 공방은 1년이나 계속되었고, 그래도 다행히 전남편과 내연녀는 유죄가 나와서(간통죄가 있던 시절이다) 이혼 소송도 승사되고, 위자료 판결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잘 풀려서 다행이긴 한데 너무 씁쓸한 사연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입장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

30대 부부가 이혼을 하려고 했단다. 아내가 집안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는데 남편이 그걸 고마워하지도 않고 도와주지도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이혼을 위한 절차를 밟다 보니 어떻게 둘 사이에 잘해 보려는 마음이 있다는 걸 부부가 알게 됐고, 그래서 이혼 절차는 취소되었다.

저자(=변호사)는 물론 잘됐다고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몇 년이 지난 후, 둘이 다시 저자에게 찾아왔다는 거다.

사연인즉, 첫 번째 이혼 시도를 포기한 이후, 전업 주부 역할이 쉬워 보였는지 남편이 그걸 맡고, 대신 아내가 생업 전선에 뛰어들기로 했단다.

그래서 남편이 집에서 집을 청소하고, 요리를 하고, 애를 키우는 등등 아내가 하던 일을 했고 아내는 직장에 복귀해 돈을 버는 일을 했다.

그런데 의외로(??) 여자의 커리어가 아주 잘 풀려서 여자가 임원의 자리에까지 올랐고, 이제는 아내가 남편과 이혼을 하고 싶어 했다.

"저는 3년 넘게 아이를 혼자 키웠는데, 남편은 애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고 징징거려요.", "아기는 인스턴트나 먹이고... ", "외롭다고 징징대고... 더는 도저히 못 살겠어요."

저자가 "항상 남자 의뢰인들에게 듣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아내의 모습에서 과연 입장이 바뀌니 똑같이 행동하는구나 싶어서 너무 놀랐고 조금 무서웠다.

자기도 남편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고 같은 식으로 무시를 받았으면서 이제는 처지가 바뀌니까 남편을 똑같은 말로 무시하고 이해하려 들지 않는 것.

저자 말대로 흔히 겪는 이런 문제는 남녀 대립, 성격 차이보다 그저 '입장' 차이에서 오는 것인가 보다.

물론 남성보다 여성이 불리한 입장에 처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 외에도 한 사건에서는 남녀가 '허그'한 사진을 '단순한 친구 사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사건에서는 '친한 친구 사이에서 이 정도 스킨십은 할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하는, 웃지 못할 변호사의 처지 에피소드도 웃겼다.

절친이 결혼하는 데 화환을 보냈는데 깜빡 잊고 '명함에 쓰인 대로 리본에 써 달라'고 했다가 결혼식장에 '결혼하면 내가 더 생각날걸? 이혼 전문 변호사 최유나'라고 쓰인 화환이 도착해 해명하느라 진땀 뺐던 이야기도 마찬가지.

가볍게 읽어 볼 만하다. 이 책을 읽고 엄청 철학적인 생각을 하거나 큰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책 읽는 동안은 재미있고 흥미롭다고 느끼게 해 줬으니 이북 산 돈은 아깝지 않다(이 정도도 못하는 책이 수두룩빽빽이니까).

관심이 있다면 한번 거들떠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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