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Hannah Nicole Maehrer, <Assistant to the Villain>
로맨스 작가 해나 니콜 매어는 틱톡에서 ‘내가 만약 도덕적으로 모호한(morally grey, 즉 악하다고도, 선하다고도 할 수 없는) 악당의 비서라면?’라는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짧은 틱톡 영상을 만들었다. ‘햇살캐’라고 할 수 있는, 밝고 명랑하지만 누가 자기를 좋아하는 걸 알아차리는 눈치는 없는 여주가 악당의 밑에서 일하게 되면서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라인을 가진 이 틱톡 영상들은 대박을 터뜨렸다. 팬들은 이 설정이 재미있다고 좋아했고, 매어는 이 설정을 가져다가 아예 책 하나를 쓰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나온 게 이 소설이다. 이게 어찌나 인기가 있었는지 내가 읽은 1권 <Assistant to the Villain>에 이어 최근에 2권 <Apprentice to the Villain>까지 나왔다. 틱톡에서 인기 있다고 유명해져서 홍보가 된 덕분인 듯.
내용은 위에서 설명했듯 햇살캐 여주가 악당 남주 밑에서 일하면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인데, 저자는 뻔하다면 뻔할 수 있는 그 설정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대어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저자는 틱톡 영상을 한참 만들어 올리는 와중에 이걸 아예 소설로 쓰기로 시작했다고 밝혔는데, 틱톡 시리즈와 책은 기본 틀은 비슷하지만 일어나는 이야기는 상당히 다르다고 보는 게 맞는다. 아무래도 이미 영상으로 만든 걸 단순히 글로 옮겨 책으로 내는 건 게으르게 보일 수 있으니까, 당연히 영상과 다른 줄거리로 가는 게 맞는 거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책을 먼저 읽고 나서 틱톡 영상을 봤는데 역시 책이 좀 더 깊이가 있는 느낌이다.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지만 책에는 반전도 있다!
여주가 밝고 해맑은 것도, 또 그 와중에 남주가 섹시하고 잘생겼다고 헤롱헤롱하는 것도 참 귀엽다. 여주의 이름은 에반젤린, 줄여서 애칭으로 이비(Evie)라고 불리는데 악당인 남주를 처음 만났을 때 대뜸 “사람을 죽이면서 예쁘면 안 되죠. 헷갈린다고요(You just can’t kill people and be pretty. It’s confusing.)” 하고 말할 정도로 속마음을 못 숨긴다 ㅋㅋㅋㅋ 남주는 거기에다 대고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다고?(You think I’m pretty?)” 하고 대꾸하고. 남주도 햇살 같은 매력의 여주에게 서서히 스며드는데 쌍방 짝사랑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재밌게 보실 듯. 읽다 보면 왜 ‘악당(the Villain)’이 악당이 되었는지, 악당의 본명이 무엇인지도 드러난다. 저자의 원래 틱톡 영상처럼 악당이 도덕적으로 애매한, 회색 영역에 속한다는 걸 드러낸달까. 악당이 자기를 위해 일할 사람들을 고용할 때 자신을 배신하지 못하게 마법의 힘이 담긴 잉크를 넣은 반지를 주는데, 이건 상대가 악당을 배신하면 죽게 되어 있는 신비한 반지다. 이비의 경우도 비슷했기에 (자세한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이비는 악당을 배신할 수가 없게 되어 있는데 애초에 이비는 워낙에 성실한 사람이기도 하고 악당을 짝사랑하기에 배신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당은 이비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오해하고… 이비가 떠나고 나서 악당이 후회하고… 그런 맛있는 후회남 모먼트도 있다. 아, 악당의 본거지는 ‘매서커 매너(Massacre Manor)’라고 불리는데, 이비 외에 다른 직원들도 상당히 많다. 거의 최소 중소기업… 비서들이 할 만한 일들을 해내는 이비가 귀엽다 ㅋㅋㅋㅋ
아래에 저자의 ‘Assistant to the Morally Grey Villain’ 영상 시리즈 중 첫 세 편 링크를 첨부하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번 보시라. 영상과 책의 줄거리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여주와 남주가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파악하는 데는 적당하다.
https://www.tiktok.com/@hannahnicolemae/video/6977374996226247942?is_from_webapp=1&sender_device=pc&web_id=7406953919035033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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