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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병수, <감정은 언제나 옳다>

by Jaime Chung 2019.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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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병수, <감정은 언제나 옳다>

 

 

정신 건강 의학과 전문의 김병수의 이 책은 '감정을 다스리는 다섯 가지 마음 처방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 교양 시리즈' 아우름의 17번째 책인데, 그래서인지 청소년부터 노인층까지, 누가 읽어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마음을 다잡는 다섯 가지 방법을 'O BRAVo'라고 이름 붙였는데, '관찰하고(Observing), 움직이고(Behavioral activation), 환상에서 벗어나서(Realizing), 받아들이고(Accepting),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Value of life)'의 약자이다.

첫 번째로 감정을 설명하는 1장 외에는 저자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방법에 따라 각 장이 나뉘어 있는데, 이 리뷰에서는 간단히 다섯 가지 방법 중 하나씩만 살펴 보도록 하자.

 

일단 1장은 '감정이란 무엇일까'를 간단히 알아보는 장이다. 저자는 감정에 대한 느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감정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나의 느낌이 달라져야 합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현미경이나 프리즘을 가지고 다양하게 분화하여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정에 대한 해상력을 높여야 하는 것이지요. '아, 불쾌해'가 아니라 '취직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지만 연인과 함께할 시간을 생각하니 설레기도 해. 상반된 두 감정 떄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불쾌하다고 느끼는 거구나' 하고 자기 감정을 정확하게 해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정을 뭉뚱그려 받아들이지 말고, 그 속에 담긴 감정즐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하나하나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밀하게 관찰한 감정을 언어로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 짜증나.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지?" 하고 자기 감정에 대해 툭 던지듯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맡은 일을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면서도, 힘든 만큼 잘 해낸다면 뿌듯할 것 같아"라고 자기 감정을 풀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와 헤어져서 너무 두려워"라고 말하기보다 "헤어지고 나니 그와 함께했던 시간과 추억까지 내 삶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 같아"라고 언어로 상징화해서 표현할 수 있다면 상실의 경험을 받아들이고 이겨 나가는 힘도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와, 자기 감정을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나눠서 파악할 수 있는 건 거의 신(神)급 아닌가?

어쨌거나 이렇게 자기 감정을 속속들이, 아주 자세하게 분류할 줄 알아야 건강한 거라고 한다. 

 

그럼 2장, '관찰하기'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내가 최근 우울한 상태에 있었다 보니 '우울한 사람들의 심리 ― 생각이 생각만 낳는 사태'라는 꼭지가 크게 와닿았다.

우울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야기하다 보니, '반추'라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울이나 불안에 깊이 빠져드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심리 기제 가운데 반추라는 것이 있는데요. 소가 음식을 되새김질하듯 생각을 곱씹는 것을 말합니다. 집에 계시던 할머니가 카펫에 걸려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이런 상황이라면 '할머니를 빨리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지. 어떻게 모시고 가지? 구급차를 부를까? 내 차로 갈까? 다른 곳은 다친 데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야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겠지요. 그런데 반추에 빠진 사람은 '내가 왜 카펫을 이렇게 놓았을까, 내가 할머니를 제대로 돌봐 드리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어' 하는 생각에 빠져들면서 자신을 비난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새기며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만 반복해서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다친 할머니를 돕는 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안리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감정만 더 상하게 되고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고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데 생각에 빠져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됩니다. 혹시 지금 우울하거나 불안하다면 자신이 반추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마음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그렇다, 나는 이제부터 내 마음을  할머니(...)라고 생각하고 도와드릴 방법을 생각해야겠다.

자책만 하느라 할머니를 도와드리지 못하는 상황에 너무 많이 처해 봤기에, 내게는 이 비유가 너무나 정확하게 느껴진다.

 

두 번째 방법, '행동 활성화'가 제일 적당한 꼭지를 찾기 어려웠다.

적당한 운동(걸으면서 옆 사람과 대화하기 약간 어려운 정도, 혹은 다소 숨이 찬 정도의 강도)를 하루 30분 이상, 주 5회 이상 하라는데, 아니 나는 정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고요, 그래도 우울감이 덮쳐 오면 어떡하나요????

그나마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 중) 내가 제일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것,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게 '활동 레시피'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바로 쓸 수 있는 나름대로의 대처법을 저자는 '활동 레시피'라고 부른다.

자기 성향에 잘 맞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2~3개 정도의 활동 레시피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평소에도 꾸준히 활용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위기 상황에서 금방 실천할 수 있거든요. 우울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가 된 뒤에 활동 레시피를 찾겠다고 하면 늦습니다.

예컨대

  • 창문 밖 나무에 앉아 있는 새가 몇 마리인지 세어 본다.
  • 길가에 핀 꽃일을 유심히 바라본다.
  • 콩나물 꼭지를 딴다.
  • 털실로 양말을 짠다.
  • 기분에 맞는 운동을 한다.
  • 나만의 위로 음악을 찾아 듣는다
  • 시를 소리 내어 읽는다.

등등이 있을 수 있다. 화가 났을 때 찬물을 한잔 마신다든가, 심호흡을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대처법을 마련해 두는 것도 좋다고 한다.

 

마음 처방전 셋, '환상에서 벗어나기'에서는 말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꼭지가 인상 깊었다.

우리 뇌는 언어적 현실과 실체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서, 언어로 공격을 받으면 뇌는 그것이 마치 현실에서 육체적 공격을 받는 것과 똑같은 것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그래서 폭언을 들으면 마음에 상처를 받고 심한 경우 불면증에 시달리고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폭언으로 정신적 충격을 입었을 때 마음 건강을 지키기 위한 첫 번째 원칙으로 억울한 감정, 모욕감을 억지로 참거나 없애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저항할수록 그 생각이 많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불안하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 그 심정을 그냥 노트에다가 토해 내듯 써 내려가는데, 저자는 이런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두 번째 원칙은 자꾸 생각나는 그것을 글로 적어 두는 것입니다. 생각을 글로 토해 내면 감정이 조금씩 누그러집니다. 가능하면 폭언을 들었던 상황을 꼼꼼하게 적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녹음을 해 두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갑작스레 폭언을 듣기 때문에 녹음해 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글로라도 자세히 기록해 두면 억울하게 당한 상황을 소명할 수 있는 증거 자료가 됩니다. 글로 적는 것 자체가 괴로울 수 있지만 이런 과정은 나중을 생각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네 번째 방법은 '받아들이기'이다. '감정에 솔직할수록 강한 사람입니다'라는 꼭지에서 저자는 솔직하게 약한 자기 모습을 밝히는 게 오히려 강하고 건강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 말을 읽고 눈물을 터뜨렸다.

그냥 솔직하게 "나 지금 불안하고 힘드니까 당신이 날 좀 돌봐 줘"라고 있는 그대로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은 오히려 건강한 사람입니다. 약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것이기도 하고, 거절당할까 두려워서 자기 욕망을 억지로 숨기거나 속이지 않았으니까요. 내 마음속의 약하고 부족한 것까지 품어 달라는 욕심을 가리려고 하지 않았으니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입니다.
눈물을 보이며 "나 지금 힘들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나를 도와주세요' 하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약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감정을 억압하지 않습니다.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 감정에 솔직합니다. 감정 표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울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세상을 향해 눈물을 보일 수 있습니다.

사실 너무 약해서 매번 도와 달라고 하는데, 그게 건강한 거라니...

내가 흘린 눈물의 양과 남에게 도움을 청한 회수를 모두 따지면 내 자존감이 세상에서 제일 높아야 할 듯...

 

마지막 다섯 번째 마음 처방전은 '인생의 가치'이다. 누구에게나 '라이프 내러티브(life narrative)', 즉 삶의 서사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 삶을 계속되는 이야기로 인식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이야기를 고쳐 써 나간다.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그것을 우리만의 이야기로 해석하며 이겨낼 수 있다.

우리에게는 자기만의 고유한 삶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삶에 대한 이야기가 깊고 풍부한 사람은 역경이 찾아와도 쉽게 쓰러지지 않습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고, 그 경험에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합니다. 인생 경험을 의미 있는 내러티브로 구성할 수 있는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아가 더 성숙해집니다.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뒤에도 그것을 의미 있는 스토리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충격에서 쉽게 벗어납니다. 스트레스 이후에 오히려 더 강해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한 직장에서 30년 동안 근무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직급에 오르지 못하고 퇴직했다고 치자.

이걸 '나의 30년 직장 생활은 실패작이다' 하고 생각할 수도 있고, 가혹한 경쟁 사회에서 꿋꿋하게 버텨 낸 인내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직장을 자주 옮긴 경험에 대해서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부적응자인 것처럼 이야기할 수도 있고, 자기 능력을 인정해 주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보고 싶어서 쉽게 않은 이직을 결심했다는 도전과 모험의 스토리로 풀어낼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자신이 바라보고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그 단순한 진리를 되새기게 해 주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에서 제일 감명 깊었던 부분을 인용하며 끝마무리를 갈음할까 한다.

불쾌한 기억과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는 더러워진 이불을 쳐다보기 싫다고 제대로 빨지도 개지도 않은 채 이불장에 아무렇게나 집어넣고 문을 닫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렇게나 집어넣은 이불은 쏟아져 버립니다. 쏟아지지 않도록 두 팔로 문을 꼭 닫고 있어야 합니다. 이불장 문이 열려서 보기 싫은 이불이 쏟아지지 않도록 항상 두 팔로 문을 닫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힘이 들까요.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도 못하겠지요. 아픈 기억과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는 것도 이런 모습과 똑같습니다. 괴롭더라도 이불장을 열고 더러워진 이불을 꺼내야 합니다. 그러면 이불이 이불장 밖으로 쏟아질 일도 없습니다. 괜히 힘을 빼지 않아도 됩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고통스러운 이야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불을 정리해서 다시 이불장에 넣듯이, 이야기로 정리한 감정을 마음속에 다시 집어넣어야 합니다. 괴로운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리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고통스러운 감정도 언어로 표현되면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말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고 새로운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오면 치유됩니다.

이 이불장 비유는 정말 내 인생 최고의 비유 중 하나라고 해도 될 듯하다.

이제는 이 이불을 꺼내서 깨끗이 빨고 뽀송뽀송 말린 후 제대로 개어서 이불장에 넣어야겠다.

다른 여러분도 이 책의 도움으로 이불을 정리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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