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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존 엘더 로비슨, <뇌에 스위치를 켜다>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저자가 TMS, 즉 경두개 자기 자극술(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이라는 요법을 겪은 경험에 대해 쓴 책이다.

이 요법은 전자기장을 이용해 뇌 피질에 신호를 유도하는 것으로, 자폐인들이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그 목표다.

저자는 40대에 들어서야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자라는 내내 자폐증 때문에 타인의 감정을 읽거나 공감하지 못해 교우관계가 좋지 않았고 그래서 늘 자신이 삶의 패배자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폐증에는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고 공감하기 어려워하는 저주와 함께 논리적인 사고나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깊에 집중할 수 있는 축복도 따라왔다.

예를 들어, 저자는 록 밴드 '키스(Kiss)'의 불꽃을 뿜는 기타를 디자인할 정도로 음향 관련 기기를 다루고, 차를 수리하는 기술이 뛰어났다.

또한 감정에 무딘 편이었기에 차를 타고 길을 가다가 차 밑에 한 남자가 깔린 사고 현장을 보고도 그것에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이를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다.

이 경험에 대해, 그리고 자폐증의 저주와 축복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쓴다.

(...) 신참 경찰관들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 끔찍한 사고 현장에서 나는 왜 냉담하기 그지없었던 걸까?

그저 내가 문제에 올바르게 대처했다는 것만 알았다. 논리적인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그 모두가 자폐 때문이었음을 안다. 자폐는 내게 장애와 능력을 동시에 가져다준 셈이다. 다른 이들의 감정적 사인을 읽지 못하는 건 치명적이지만, 논리와 순서에 대한 남다른 감각은 큰 장점이었다.

 

TMS의 효과는 물론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놀랍게도 저자의 경우에는 무척 뛰어났다.

그는 TMS를 한 차례 받고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심코 틀어 놓은 노래에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클럽과 콘서트 등에서 음향 기기를 가지고 일한 그였지만, 노래에서 진실로 감정을 느낀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고 저자는 회상한다.

(...) 그러자 갑자기 감정이 심하게 복받쳐 올랐다. 행복하거나 기뻐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 경험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

그러다 퍼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게 바로 음악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듣고 있는 건지도 몰라. 자폐라는 왜곡된 렌즈를 통해서가 아니라. 남들은 음악을 들으며 늘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르지. 이제 나도 그럴 수 있어.' 아마 그런 생각에 울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음악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자폐인들은 일상에서 보고 듣는 것에서 이런 식의 감정을 잘 경험하지 못한다. 물론 나는 어떤 음악이 행복하고 슬픈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터배리스 브라더스의 노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강하고 새로운 전율로 다가왔다.

 

이 놀라운 효과는 그날 밤에 사라졌다(TMS 요법의 효과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고 아주 짧은 시간만 지속된다).

저자는 이 경험을 색맹이던 사람이 갑자기 모든 색깔을 온전히 보게 된 것에 비유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실험 담당 박사는 이렇게 논의했다.

"색맹 비유의 맥락에서 봅시다. 당신은 평생 남들이 색깔과 감정에 대해 말하는 걸 넘겨버리곤 했겠죠. 왜냐면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만 믿는 경향이 있거든요. '내가 맞고, 남들이 틀린 거야.' 하고 잘못 판단했거나, 아니면 남들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겠죠. 그런 태도가 '문제 행동'의 한 예가 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세요. 그들은 감정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죠. 하지만 당신은 말의 논리적인 면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그럼 그들이 진짜 뜻하는 바가 뭔지 몰라서 괜히 화가 나게 되는 겁니다. (...)

그리고 놀랍게도 며칠 후, 저자는 이제 "'읽기'를 통해서도 감정에 파묻혔다." 어느 정도냐면, <뉴욕 타임스>를 펼쳐 놓고 감정이 북받쳐 읽을 수 없을 때도 있었단다. 그의 감정을 북받치게 만드는 기사란 예컨대 이런 것이었다.

"연구 자금은 로버트 윌킨스에 의해 마련됐다. 그는 아들 알프레드의 사망 후에 의과대학에 16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는 우리에게 '치료법을 찾아주시오. 그게 모두가 바라는 바라오.' 하고 말했다."

확실히 아주 노골적이지는 않아도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기사 아닌가. 저자는 이 기사를 읽다가 '치료법을 찾아주시오'라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떨릴 정도라고 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 제정신을 차리자 '기사 속의 윌킨스 씨는 완전히 남이고, 그의 아들도 내가 처음 듣는 사람인데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거지?'라며 어이가 없었단다.

그 정도로 TMS가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를 확실히 자극한 듯했다. 한번은 자신이 운영하는 자동차 수리소에 차를 맡기러 온 한 여성 고객이 '차 수리에 돈이 많이 들까' 하는 것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이 지금 걱정하고 있구나' 하는 감정을 읽어 내기도 했다.

그는 확신에 찬 말투로 "걱정 마세요. 지금 말씀하신 문제라면 고치기 쉬울 겁니다."라고 대답했고, 이 자연스럽고 빠른 대화의 흐름에 스스로도 놀랐다. 이전에는 고객의 감정을 읽어 낼 수도 없었고, 읽었다 해도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말이다.

 

안타깝게도, TMS의 효과가 오래 간 것은 아니었고, 몇 달 후에는 저자도 '나도 사람의 감정을 읽어 낼 수 있었는데'라며 그 시절의 기억만이 떠오르고 사람들의 감정 파악이 다시 힘들어져서 괴롭기도 했단다.

저자의 아들 커비도 같은 TMS 요법 실험에 참여했는데 그는 시각에 변화를 느꼈지만, 저자만큼 변화에 집중해 반추하지는 않은 듯하다.

위에서도 말한 실험 담당 의사 말로는, 저자가 "뛰어난 자기 성찰 능력"을 가졌기에 내부의 변화를 잘 알아차리고 집중한 것 같다고 한다.

내가 봐도 저자가 자폐증을 가지고 살아오며 고민도, 노력도 많이 한 50대의 성인이라 상대적으로 젊은 자폐인에 비해 TMS의 효과도 예민하게 잘 느끼고 또한 그 경험도 자세하게 잘 설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 내가 책 읽으면서 한 군데 진짜 놀랄 정도로 공감한 부분이 있다. 바로 이거다.

나를 불편하게 한 깨달음은 또 있었다. 나는 항상 뭔가를 성취하고자 스스로를 들들 볶는 데 비해, 마사[저자의 두 번째 아내]는 그저 현 상황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와인 한 잔을 손에 들고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걸로 족했다. 생각해 보면, 아무도 내게 "적당히 하고 편히 쉬세요."라고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게다가 TMS의 효과로 인해 한층 에너지가 솟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사는 나와 달랐다. 나는 그녀를 좀 더 나처럼 만든답시고, 끊임없이 귀찮게 해왔다. 나도 실은 조용히 앉아서 쉬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내 행동이 그녀의 우울증을 더 깊어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와, 내 친구도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분야(타인과의 교류)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더 나아지려고 애쓰고 또 뭘 계속 배우러 다니던데. 진짜 이게 너무 똑같아서 소름 돋을 정도였다.

그 애는 분명히 새로운 사람, 낯선 사람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하면서도 그거에 굴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데, 감정이 무딘 편이다 보니 자신의 그런 부정적 감정에도 큰 신경을 안 쓰고(=꾹 누르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 정말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원인이 된 게 아닐까 싶다.

나도 저 인용문 중 마사처럼 대체로 현 상황에 만족하며 하기 싫거나 꺼려지는 건 굳이 감정을 꾹꾹 눌러담으며 해내려고 애쓰지 않는 편이라서 이런 차이를 정확하게 짚어 낸 저자에게 감탄했다(참고로 마사는 자폐증은 아니고 우울증이 있는 비자폐인이다).

 

TMS 요법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다른 피실험자의 이야기도 인용해 들려줄 뿐 아니라, 실험 자체와 그 기술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전 영화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어릴 적에 자폐인 아이를 본 적이 있고, 또 지금 내 친구에도 자폐를 가진 성인이 있다.

(자폐에 관심이 있는 분은 이 영화 리뷰도 한번 거들떠 보시라.

2019/02/25 - [영화를 보고 나서] - [영화 감상/영화 추천] Life, Animated(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 2016) - 자폐인들도 소통을 원한다)

그래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됐는데, 그들을 완전히는 아니어도 확실히 이 책을 읽기 전보다는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뇌의 역할에 관심이 있거나 또는 자폐를 가진 이를 이해하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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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Life, Animated(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 2016) - 자폐인들도 소통을 원한다

 

감독: 로저 로스 윌리엄스(Roger Ross Williams)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촬영 당시) 23세의 자폐 청년 오웬 서스카인드(Owen Suskind).

그는 자폐인들의 자립을 돕는 교육 전문가들이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는 내년에 이곳을 졸업한 후 독립하여 혼자 살기로 되어 있다.

그의 아버지인 론 서스카인드(Ron Suskind)와 어머니 코넬리아 서스카인드(Cornelia Suskind)의 말에 따르면, 그는 세 살부터 갑자기 말을 잃어버리고 자기 안으로 침잠했다고 한다.

그의 변화에 당황한 부모님이 그를 소아과 의사와 전문의에게 데려간 후 얻은 진단은 그에게 발달상의 장애가 있다는 것.

자기는 '피터 팬', 아버지는 '후크 선장'이라고 역할놀이를 하며 칼싸움을 하던 귀여운 소년은 이제 부모님과 눈도 맞추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웬이 자폐의 증세를 보이기 이전부터, 그리고 보이고 난 후에도 꾸준히 좋아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디즈니(Disney)사의 만화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3살 터울의 형 월트 서스카인드(Walk Suskind)는 디즈니 만화를 보는 게 동생이 자기 옆에서 활짝 밝게 웃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동생과 같이 낡은 VHS 비디오를 같이 봐 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론은 오웬이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모든 대사를 다 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몇 번이고 돌려 본 나머지, 그는 모든 만화의 장면과 대사를 다 암기하게 된 것이다.

그때 론과 코넬리아는 한 가닥의 희망을 본다. 아들이 디즈니 만화를 교과서 삼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는 정말로 디즈니 만화를 통해 세상을 배워 나가고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 오웬 서스카인드

 

오웬 서스카인드의 아버지 서스카인드는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등지에 글을 기고하고 퓰리처상까지 받은 뛰어난 글솜씨로 자신과 아들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이 책을 바탕으로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보통 비장애인들이 웬만큼 크고 나서는 '유치하다'며 졸업하는 디즈니 만화 영화를 통해 삶을 배우는 자폐인 청년 이야기라니,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보게 됐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감동적일 줄이야. 내가 어릴 적 다니던 교회에 자폐인 남자애가 있었고 또 지금도 내 주위에 자폐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기에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아 더 몰입해서 보게 됐다.

 

오웬은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러 가면 총알처럼 재빨리 차에 타길래 무슨 일이 있느냐 물으면 없다고 대답하긴 했는데, 매일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실로 가서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사이드킥(sidekick, 영웅을 보좌하고 도와주는 캐릭터, 예를 들어 <인어 공주>의 세바스찬이나 <미녀와 야수>의 찻잔 모자와 촛불, <라이온 킹>의 티몬과 품바 등)들을 잔뜩 그렸다. 영웅은 한 명도 그리지 않고.

아버지가 오웬에게 왜 사이드킥만 그리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 사이드킥 같은 기분이라고 대답했단다.

그는 그렇게 사이드킥만 그린 노트 끝에 "나는 사이드킥들의 보호자이다. 그 어떤 사이드킥도 홀로 남겨지지 않는다(I am the protector of the sidekicks. No sidekicks gets left behind)."라고 썼다.

그리고 '마지막 사이드킥의 땅(The Land of the Last Sidekick)'이라는 짧은 이야기도 썼다. 이야기는 대략, 어린 소년이 사이드킥들이 사는 땅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들을 보호해 주는 '보호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오웬의 어머니는 이 일을 떠올리며 오웬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러티브를 이용했다는 점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다.

나 역시 무척 놀랐다. 나는 왜 자폐인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나의 무지를 반성한다. 자폐인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이 느낀 것에 대해 표현하려는 욕구도, 또한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 존재들인데.

 

말이 나온 김에, 자폐인에 대한 많은 이들의 잘못된 생각을 깨부수어 줄 장면을 언급해야겠다.

오웬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다! 여자 친구도 같은 자폐인이고, 이름은 에밀리(Emily)이다.

오웬은 그녀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주고, 에밀리는 고맙다며 자신이 만든 미키 마우스 목걸이를 그에게 답례로 건넨다.

둘은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귀엽고 입술이 맞닿는 부드러운 뽀뽀도 한다. 놀라셨는가? 그렇다. 자폐인들도 사랑을 한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아껴 주고 배려해 주는 그런 사랑을.

둘이 있는 걸 보면 정말 귀엽다. 비록 말은 어눌할지라도 서로를 정말 좋아하는 게 느껴져서 흐뭇하다.

다만 사교적, 사회적인 표현은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해서 그런지 뭐 작은 거 하나 해 주면 꼬박꼬박 고맙다고 하고("Aww, thank you!"), 상대방이 어쩌다 다치면 "괜찮아?" 꼭 물어보고 그럼 또 그 사람도 "나는 괜찮아." 하고 안심시켜 준다.

약간 교과서의 영희와 철수 대화 같은데, 뭐, 어차피 표현은 어설프다 해도 중요한 건 마음이니까. 사실 고맙다, 괜찮냐 같은 말은 좋은 말이니까 꼬박꼬박 한다고 해서 나쁠 게 뭐가 있겠는가. 하면 할수록 좋은 거지.

 

어쨌거나 마침내 오웬이 독립해서 새집에 혼자 살게 되자, 오웬은 여자 친구 에밀리를 집에 부른다.

그리고 둘이 하는 것은 너무나 건전한, 쿠키 굽기와 디즈니 만화 보기. 너무나 순수해서 귀엽고 사랑스럽다.

다만 오웬의 형 월트는 오웬이 이제 디즈니 만화에서 배울 수 없는, 더욱 현실적인 것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프렌치 키스(혀를 사용하는 키스)나 섹스에 대해 가르쳐 주려고 어색하게 말을 꺼낸다.

월트는 오웬도 다른 이들과 똑같은 욕구를 가진 남성이니 알 건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물론 맞는 말이다. 디즈니 만화에서는 입술이 포개지는 가벼운 키스 이상은 묘사하지 않으니까[각주:1].

순수라는 것은 분명 아름답고 좋은 거지만 평생 순수한 소년/소녀 상태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오웬의 몸은 이미 2차 성징을 거쳐 성숙한 남성이 되었지만, 그의 마음과 정신은 아직 소년이다. 그는 성장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 과정에는 단연코 불쾌한 일, 슬픈 일, 고통이 뒤따르지만, 그걸 이겨내야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성인이 될 수 있다.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월트 말대로 혀를 사용하는 키스나 성관계에 대해서도 오웬은 배워야 한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알고 경험하는 게 모른 채로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게다가 자폐인들은 알지 못하는 것, 예상할 수 없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며 그런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녀 사이의 스킨십이나 성관계에 대해서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안 그러면 우리가 왜 애들에게 '아기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설명하려고 무진 애를 쓰겠는가?). 이는 분명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의 일부이다. 죄악시할 만한, '모르는 게 낫다' 할 정도의 비도덕적이거나 음란한 문제도 아니고.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월트가 쑥스러운 주제에 용기를 내서 오웬에게 프렌치 키스에 대해 가르쳐 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에밀리가 오웬에게 결별을 고했다는 것.

오웬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한다. "왜 삶은 불공평하고 고통과 비극으로 가득 차 있는 거예요?"

어머니는 말한다. "얘야, 삶은 원래 그런 거란다."

오웬은 다시 묻는다. "그럼 저는 진실을 직면하고 평생 슬퍼해야 해요?"

어머니는 대답한다. "아니, 진실을 직면하되 앞으로 차차 나아질 거라고 믿어야지." 이 부분에서 정말 눈물샘이 폭발할 뻔했다.

애인과의 헤어짐이나 졸업, 구직 같은 문제는 누구나 힘들어하는데 왜 인생이 이렇게 괴로운 일이 많은 건지 묻는다면 '원래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밖에 해 줄 말이 없지 않나...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려고 애쓰고 있는 오웬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이라는 게 참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라는 게 더 가슴이 아팠다.

 

디즈니사의 작품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만화 영화라는 것은 대개 캐릭터의 감정과 얼굴 표정을 과장하여 표현한다.

예를 들어 부끄러우면 얼굴 전체가 빨갛게 변하고, 기쁘면 입이 정말 귀에 걸릴 것처럼 헤벌쭉 벌어진다.

타인의 표정과 감정을 읽기 어려워하는 자폐인들에게는 분명히 얼굴 표정 및 감정 교육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역시나 디즈니사의 작품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만화 영화라는 것은 그 표현에 한계가 있다.

대개 아동을 타깃으로 하는지라, 캐릭터들의 행동이나 이야기의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아주 추상적이거나 부정적인(예를 들어 범죄라거나 심각한 폭력 등) 이야기는 다루지 못한다.

사랑과 우정, 역경을 견디고 성공하는 불굴의 정신 같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에서나 통하는 이런 핵심 가치들은 묘사할 수 있지만, 그것도 아주 깊이 다루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서, 만화에서는 한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웬을 사회성 발달을 도와주는 선생님 말대로, 그 나이대(20대 초반)에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나지는 않는다. 그건 좀 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또한 정말 자기 짝을 만났다고 생각해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나중에 서로의 노력 부족 또는 다른 사정으로 인해 이혼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오웬이 마주하게 되면 오웬은 또 얼마나 상처를 받고 슬퍼할까.

 

영화 중후반쯤에 오웬은 프랑스에서 열린 자폐 학회에 초대받아 연설을 하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대개 사람들은 우리(자폐인)가 다른 사람들과 있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다른 이들(비자폐인)과 같은 것을 원합니다.

다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connect) 방법을 모를 뿐입니다."

나도 자폐인들은 타인을 싫어해서 밀어내는 거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자마자 '아, 그들은 그저 관계 맺기가 서투를 뿐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사실 자폐인들도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고, 또 노력한다. 오웬이 다니는 학교에서 디즈니 만화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디즈니 클럽'을 만든 것도 오웬 본인이다(내 자폐 친구도 자신의 사회성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사교적인 모임에 의식적으로 참가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에서 오웬과 내 친구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에밀리에게 차이고 나서도 에밀리를 저주하거나 하지 않고 먼저 다가가 친구처럼 지내자고 제안하는 오웬.

그에 비하면 나는 오히려 인간관계가 귀찮다는 이유로 적당히 선을 긋고 살아가려고 했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누군가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나는 그저 게을렀던 게 아닐까?

 

오웬은 졸업 이후 독립해서 사는 삶에 적응하고, 헤어진 에밀리와 친구로 지내게 되며, 면접을 본 후 영화관에 일자리도 얻는다.

오웬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죽고 난 후에도 오웬이 독립적으로 살며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나도 오웬의 성장을 응원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자폐인들과 그들의 가족이 힘을 내서 꿋꿋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자페인 가족을 두었거나 또는 자폐인 친구를 둔 사람들에게 그 소중한 이의 마음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이 이 다큐를 제작하는 데 오웬 서스카인드라는 다큐 주제 인물의 특성상 디즈니 만화의 클립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디즈니 측을 설득해서(감독 표현대로 하자면 '변호사들을 울려서') 실제 출시된 디즈니 만화의 영상을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알라딘>의 자파(Jaffa) 역의 성우와 이아고(Iago) 역의 성우도 중반에 깜짝 등장하니 <알라딘>을 비롯한 디즈니 만화의 팬이라면 이를 놓치지 마시라!)

그런 의미에서 디즈니 만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만화를 통해 삶을 배운 이들, 그리고 그 만화와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된(알아야만 했던) 모든 '어른이'들에게도.

  1. 참고로 디즈니에서 '임신한 여성'을 묘사한 것은 2000년작 <쿠스코? 쿠스코!(The Emperor's New Groove)>에서 치차(Chicha)가 여태까지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이다. 그 전까지 섹스는 그것이 법적인 부부 사이에서라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아주 초기에는 부모 관계조차 묘사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간접적으로나마 성관계를 암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날드 덕의 세 조카 휴이, 듀이, 루이를 떠올려 보시라. 삼촌-조카 정도의 관계가 디즈니가 묘사할 수 있는 최선의 '가족' 관계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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