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존 엘더 로비슨, <뇌에 스위치를 켜다>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저자가 TMS, 즉 경두개 자기 자극술(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이라는 요법을 겪은 경험에 대해 쓴 책이다.
이 요법은 전자기장을 이용해 뇌 피질에 신호를 유도하는 것으로, 자폐인들이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그 목표다.
저자는 40대에 들어서야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자라는 내내 자폐증 때문에 타인의 감정을 읽거나 공감하지 못해 교우관계가 좋지 않았고 그래서 늘 자신이 삶의 패배자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폐증에는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고 공감하기 어려워하는 저주와 함께 논리적인 사고나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깊에 집중할 수 있는 축복도 따라왔다.
예를 들어, 저자는 록 밴드 '키스(Kiss)'의 불꽃을 뿜는 기타를 디자인할 정도로 음향 관련 기기를 다루고, 차를 수리하는 기술이 뛰어났다.
또한 감정에 무딘 편이었기에 차를 타고 길을 가다가 차 밑에 한 남자가 깔린 사고 현장을 보고도 그것에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이를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다.
이 경험에 대해, 그리고 자폐증의 저주와 축복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쓴다.
(...) 신참 경찰관들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 끔찍한 사고 현장에서 나는 왜 냉담하기 그지없었던 걸까?
그저 내가 문제에 올바르게 대처했다는 것만 알았다. 논리적인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그 모두가 자폐 때문이었음을 안다. 자폐는 내게 장애와 능력을 동시에 가져다준 셈이다. 다른 이들의 감정적 사인을 읽지 못하는 건 치명적이지만, 논리와 순서에 대한 남다른 감각은 큰 장점이었다.
TMS의 효과는 물론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놀랍게도 저자의 경우에는 무척 뛰어났다.
그는 TMS를 한 차례 받고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심코 틀어 놓은 노래에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클럽과 콘서트 등에서 음향 기기를 가지고 일한 그였지만, 노래에서 진실로 감정을 느낀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고 저자는 회상한다.
(...) 그러자 갑자기 감정이 심하게 복받쳐 올랐다. 행복하거나 기뻐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 경험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
그러다 퍼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게 바로 음악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듣고 있는 건지도 몰라. 자폐라는 왜곡된 렌즈를 통해서가 아니라. 남들은 음악을 들으며 늘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르지. 이제 나도 그럴 수 있어.' 아마 그런 생각에 울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음악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자폐인들은 일상에서 보고 듣는 것에서 이런 식의 감정을 잘 경험하지 못한다. 물론 나는 어떤 음악이 행복하고 슬픈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터배리스 브라더스의 노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강하고 새로운 전율로 다가왔다.
이 놀라운 효과는 그날 밤에 사라졌다(TMS 요법의 효과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고 아주 짧은 시간만 지속된다).
저자는 이 경험을 색맹이던 사람이 갑자기 모든 색깔을 온전히 보게 된 것에 비유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실험 담당 박사는 이렇게 논의했다.
"색맹 비유의 맥락에서 봅시다. 당신은 평생 남들이 색깔과 감정에 대해 말하는 걸 넘겨버리곤 했겠죠. 왜냐면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만 믿는 경향이 있거든요. '내가 맞고, 남들이 틀린 거야.' 하고 잘못 판단했거나, 아니면 남들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겠죠. 그런 태도가 '문제 행동'의 한 예가 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세요. 그들은 감정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죠. 하지만 당신은 말의 논리적인 면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그럼 그들이 진짜 뜻하는 바가 뭔지 몰라서 괜히 화가 나게 되는 겁니다. (...)
그리고 놀랍게도 며칠 후, 저자는 이제 "'읽기'를 통해서도 감정에 파묻혔다." 어느 정도냐면, <뉴욕 타임스>를 펼쳐 놓고 감정이 북받쳐 읽을 수 없을 때도 있었단다. 그의 감정을 북받치게 만드는 기사란 예컨대 이런 것이었다.
"연구 자금은 로버트 윌킨스에 의해 마련됐다. 그는 아들 알프레드의 사망 후에 의과대학에 16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는 우리에게 '치료법을 찾아주시오. 그게 모두가 바라는 바라오.' 하고 말했다."
확실히 아주 노골적이지는 않아도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기사 아닌가. 저자는 이 기사를 읽다가 '치료법을 찾아주시오'라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떨릴 정도라고 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 제정신을 차리자 '기사 속의 윌킨스 씨는 완전히 남이고, 그의 아들도 내가 처음 듣는 사람인데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거지?'라며 어이가 없었단다.
그 정도로 TMS가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를 확실히 자극한 듯했다. 한번은 자신이 운영하는 자동차 수리소에 차를 맡기러 온 한 여성 고객이 '차 수리에 돈이 많이 들까' 하는 것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이 지금 걱정하고 있구나' 하는 감정을 읽어 내기도 했다.
그는 확신에 찬 말투로 "걱정 마세요. 지금 말씀하신 문제라면 고치기 쉬울 겁니다."라고 대답했고, 이 자연스럽고 빠른 대화의 흐름에 스스로도 놀랐다. 이전에는 고객의 감정을 읽어 낼 수도 없었고, 읽었다 해도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말이다.
안타깝게도, TMS의 효과가 오래 간 것은 아니었고, 몇 달 후에는 저자도 '나도 사람의 감정을 읽어 낼 수 있었는데'라며 그 시절의 기억만이 떠오르고 사람들의 감정 파악이 다시 힘들어져서 괴롭기도 했단다.
저자의 아들 커비도 같은 TMS 요법 실험에 참여했는데 그는 시각에 변화를 느꼈지만, 저자만큼 변화에 집중해 반추하지는 않은 듯하다.
위에서도 말한 실험 담당 의사 말로는, 저자가 "뛰어난 자기 성찰 능력"을 가졌기에 내부의 변화를 잘 알아차리고 집중한 것 같다고 한다.
내가 봐도 저자가 자폐증을 가지고 살아오며 고민도, 노력도 많이 한 50대의 성인이라 상대적으로 젊은 자폐인에 비해 TMS의 효과도 예민하게 잘 느끼고 또한 그 경험도 자세하게 잘 설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 내가 책 읽으면서 한 군데 진짜 놀랄 정도로 공감한 부분이 있다. 바로 이거다.
나를 불편하게 한 깨달음은 또 있었다. 나는 항상 뭔가를 성취하고자 스스로를 들들 볶는 데 비해, 마사[저자의 두 번째 아내]는 그저 현 상황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와인 한 잔을 손에 들고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걸로 족했다. 생각해 보면, 아무도 내게 "적당히 하고 편히 쉬세요."라고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게다가 TMS의 효과로 인해 한층 에너지가 솟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사는 나와 달랐다. 나는 그녀를 좀 더 나처럼 만든답시고, 끊임없이 귀찮게 해왔다. 나도 실은 조용히 앉아서 쉬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내 행동이 그녀의 우울증을 더 깊어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와, 내 친구도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분야(타인과의 교류)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더 나아지려고 애쓰고 또 뭘 계속 배우러 다니던데. 진짜 이게 너무 똑같아서 소름 돋을 정도였다.
그 애는 분명히 새로운 사람, 낯선 사람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하면서도 그거에 굴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데, 감정이 무딘 편이다 보니 자신의 그런 부정적 감정에도 큰 신경을 안 쓰고(=꾹 누르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 정말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원인이 된 게 아닐까 싶다.
나도 저 인용문 중 마사처럼 대체로 현 상황에 만족하며 하기 싫거나 꺼려지는 건 굳이 감정을 꾹꾹 눌러담으며 해내려고 애쓰지 않는 편이라서 이런 차이를 정확하게 짚어 낸 저자에게 감탄했다(참고로 마사는 자폐증은 아니고 우울증이 있는 비자폐인이다).
TMS 요법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다른 피실험자의 이야기도 인용해 들려줄 뿐 아니라, 실험 자체와 그 기술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전 영화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어릴 적에 자폐인 아이를 본 적이 있고, 또 지금 내 친구에도 자폐를 가진 성인이 있다.
(자폐에 관심이 있는 분은 이 영화 리뷰도 한번 거들떠 보시라.
2019/02/25 - [영화를 보고 나서] - [영화 감상/영화 추천] Life, Animated(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 2016) - 자폐인들도 소통을 원한다)
그래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됐는데, 그들을 완전히는 아니어도 확실히 이 책을 읽기 전보다는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뇌의 역할에 관심이 있거나 또는 자폐를 가진 이를 이해하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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