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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제나 매카시, <우아하게 나이들 줄 알았더니>

by Jaime Chung 202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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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제나 매카시, <우아하게 나이들 줄 알았더니>

 

 

중년 여성의 솔직한 에세이. 이렇게 간단히 책 소개를 하면서 벌써부터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실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책 겉표지에도 쓰여 있듯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에 '와, 재미있겠다!'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렇다면 다시 시작해 보자. '진짜 재미있고 공감되는 에세이' 정도면 어떨까. 그러면 좀 더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 말솜씨로는 안 될 거 같으니 그냥 저자의 말 중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웃긴 부분을 몇 군데 보여 드리겠다. 여러분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살면서 그만큼 공포에 얼어붙었던 적이 없다. 점잖은 눈썹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서 3센티미터나 벗어난 지점에 불한당 같은 검은 눈썹이 마구 자라 있었고 코의 모공은 푹 파인 더러운 동굴처럼 보였다. 지우개 크기만 한 바싹 마른 각질이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었고 코 주변에는 지하철 노선도처럼 가느다란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게다가 열다섯 살짜리 남자애나 부러워할 빌어먹을 콧수염도 있었다. 어떻게 전에는 이걸 몰랐지? 나는 함께 쇼핑을 하던 막내딸을 붙들고 아이의 완벽하고 촉촉한 얼굴을 거울 앞에 디밀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열두 배 확대한 아이의 얼굴은 원래보다 훨씬 더 촉촉하고 완벽해 보였다. 그때 나는 이 악마의 거울에 흠을 찾아내서 부각하는 재주가 있기를 바랐던 것 같은데, 결국 이 거울은 그저 자기를 들여다보는 사람의 원래 모습을 더 자세히 보여줄 뿐임을 깨달았다. 나의 경우 그 원래 모습이란 관리가 시급히 필요한 중년 여성이었다. - 1.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과 그 밖에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것들
나이에 맞게 옷 입는 비법이 딱 하나 있는데, 내가 한 단어로 요약해드리겠다. 바로 스팽스Spanx다. 스팽스가 뭔지 모른다면 이 책을 잠시 덮고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 입에 댄 후 다음과 같이 큰소리로 외쳐주시길 바란다. "누가 제발 동굴 입구를 막고 있는 이 엄청나게 커다란 바위를 치워주지 않겠어요? 제가 기어 나가서 처음으로 밀레니엄을 맞이할 수 있게요!" 여러분이 동굴에서 도와줄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내가 스팽스가 뭔지 알려주겠다. 스팽스는 마술 같은 가공 원단으로 만든 엄청나게 매끈한 초고기능 천 쪼가리로, 보기 싫은 바늘땀이나 살을 파고드는 고통스러운 코르셋 없이 살을 깔끔하게 빨아들인다. 그렇다, 스팽스는 거들이다. 하지만 이건 우리 할머니들이 입던 그런 거들이 아니다.(겉포장만 바꾼 테이프도 아니다. 내 맹세한다.) 스팽스의 대표 문구는 '더 가볍고 날씬해지는 비결'이지만 나는 날씬해지고 싶어서 스팽스를 입는 것도 아니다. 날 미워해도 괜찮다. 하지만 나는 정말 말라 보이려고 스팽스를 입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피부가 덜 처져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큰데, 내 몸을 감싸고 있는 표피가 장기를 붙드는 데 필요한 양 이상으로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팽스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누가 나한테 스프레이를 뿌려서 모든 것을 밀어 넣고 고정하는 수축포장 코팅을 입힌 것 같다. 그것도 테이프 없이. - 6. 미니스커트와 아줌마 청바지에 대하여

(수면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몇 가지 방법에 대해)

낮잠을 너무 많이 자지 말 것. 하하하하하하. 아니, 내가 네 살인 줄 아나? 내가 마지막으로 낮잠을 잔 것은 5년 전으로, 지독한 장염에 걸려 화장실 바닥에서 밤을 홀딱 샌 다음 날이었다. 하지만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지식은 의대에서 배우셨나요? - 13. 얼마나 피곤한지 설명하는 것도 지친다
물론 경제적 타격 문제를 빼고 외도 반대를 논할 순 없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바람을 피울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논의를 위해 내 금지된 사랑의 대상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나 은퇴한 마취과 의사, 또는 워런 버핏이 아니라고 치자. 말인즉슨 내가 호텔방과 비행기 티켓, 섹시한 란제리, 개인 트레이닝, 로맨틱한 저녁식사, 콘돔, 곧 필요해질 휘핑크림 비용의 절반을 지불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돈은 전부 현금으로 내야 할 텐데, 그래야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이 찾거나 추적할 행적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밀회를 한 달에 딱 두 번만 가져도 1천 달러는 쉽게 넘을 것이며, 내가 들키지 않고 현금을 그만큼 모을 가능성은 첼시 핸들러*가 수녀가 될 확률만큼 낮다.
* Chelsea Handler. 미국의 배우이자 코미디언. 진행자로 최근 가슴해방운동을 벌이며 상반신 노출 사진을 여러 차례 공개했다. — 옮긴이
내 깜찍한 연하남이 말도 안 되는 부자라서 우리 만남의 비용을 전부 댄다고 해도 나는 분명히 새 란제리 몇 벌을 갖고 싶을 것이고 가끔씩 태닝 스프레이도 사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소파 쿠션 밑에 숨겨놓은 잔돈 몇 푼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늘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당혹스럽다. "음, 무함마드 알리-알제브라? 나한테 50달러만 빌려줄 수 있어? 고무줄이 탄탄한 팬티 좀 몇 장 사려고. 이 은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보답할게. (윙크 윙크)" - 17. 내가 절대 바람피우지 않을 여러 이유들

 

이렇게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재미있는 부분을 보여 드렸는데도 이 책에 별 흥미를 못 느끼신다면, 그것도 괜찮다. 사람들은 흔히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만들 때 '안 하면 네 손해'라고 하지만, 여러분이 이 책을 안 읽는다고 큰 손해를 볼 리는 없으니까. 아마 단돈 1원의 손해도 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여자들 책이고 나는 여자가 아니니까' 또는 '나는 여자들(또는 아줌마들) 얘기엔 관심 없어' 라는 생각에 전 세계 인구의 절반과 그들이 대표하는 것을 '별거 아닌 것',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일축해 버린다면 그게 더 크나큰 손해일 거다.

'이(2)항 대립(binary opposi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언어 또는 사유에서 두 개의 이론적인 대립을 엄격하게 정의하고 하나에 다른 하나를 대립하게 하는 체계'를 말하는데(출처: 위키 백과), 남자-여자, 0-1, 빛-어둠, 위-아래 등이 그 예다. 이 개념들은 서로가 있기에 각자가 존재할 수 있다. 높은 것은 낮은 것이 있어야 높은지 알 수 있으며, 차가움은 따뜻함이 있어야 비교가 가능하다. 원칙적으로 이 개념들은 둘 다 동등하고, 어떤 것이 그 상대보다 더 낫지 않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긴다. 남자가 여자보다, 아름다움이 추한 것보다, 진지한 게 가벼운 것보다 더 낫다고.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열등한 것들을 다 하나로 묶어 버린다. '여자들은 진지한 얘기는 할 줄 몰라. 시시하고 가벼운 사변이나 하지 진지한/정치적인/사회적인 글은 쓸 줄 모른다니까' 하는 식으로. 그 말은 그 자체로도 틀린 말이지만 (진지한 글을 쓰는 여성 작가가 없다고? 실례지만 눈이 없는 게 아니신지) 삶의 절반을 그런 식으로 묵살해 버린다면 그런 태도가 삶에 더 유해할 것이다. 영화로 치자면 드라마도 가치가 있고 코미디도 가치가 있다. 정치적인 것도 가치가 있고 개인적인 것도 가치가 있다(어쩌면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비롯해 삶을 단순한 이항 대립으로 나누고 그쪽에서 자신이 좋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면만 취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애초에 무엇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지조차 다시 한 번 살펴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한번 거들떠보는 것은 어떠신지! 생각지도 못한 재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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