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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베키 앨버탤리, <첫사랑은 블루>

 

 

우리의 주인공 사이먼 스파이어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절친 닉과 레아도 있고, 남매(앨리스 누나와 여동생 노라)끼리 사이도 좋다.

그에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게이라는 것 정도? 아직 아무에게도 커밍아웃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학교 텀블러 사이트에서 자신이 게이라고 밝힌 한 익명의 남학생이 쓴 글을 읽고 그에게 동질감을 느껴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상대는 '블루'라는 닉네임을 쓰는데, 사이먼과 그는 잘 통한다.

사이먼은 '블루'에게 학교 얘기, 친구 얘기, 공연(사이먼은 연극부원이다) 얘기 등등을 하면서 점점 더 그와 친해지고, 그는 얼굴도, 본명도 모르는 이 소년에게 점점 빠져 버리고 마는데...

 

라는 것이 간단한 줄거리이다. 학교의 누가 '블루'인지 찾아내는 게 큰 줄거리랄까.

주인공이 게이 소년이다 보니까 당연히 그의 성 정체성을 이용해 협박을 하는 악역도 있다.

마틴 애디슨이라는 동급생이 사이먼의 비밀 이메일(블루에게 보낸 이메일)을 우연히 보게 되고, 그래서 이 비밀이 널리 퍼지는 게 싫으면 애비(최근에 사이먼과 친해진 예쁜 흑인 여자애)와 자기가 잘되게 도와 달라고 협박한다.

(스포일러 아니냐고? 아니다. 소설 시작하자마자 사이먼이 마틴에게 이메일을 들키기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 책 펴자마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은 아시는 분들은 아실 영화, <러브, 사이먼(Love, Simon, 2018)>의 원작 소설이다. 난 영화는 아직 안 봤는데,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고 싶어서 그랬다.

이 소설의 원제는 <사이먼 대 호모 사피엔스 어젠다(Simon vs. the Homo Sapiens Agenda)>인데, 미국에서 첫 출간됐을 때 많은 공감과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저자 베키 앨버탤리가 임상 심리학자로서 많은 청소년들을 상담해 보았기에 생생한 게이 소년의 목소리를 잘 담아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아, 원제가 무슨 뜻이냐면, 중반에 사이먼과 블루가 '왜 게이들만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이성애자들도 자신이 이성애자라는 걸 밝히는 어색하고 괴로운 시간을 겪어 봐야 해'라는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에서 언급되는 표현이다.

게이들뿐 아니라 이성애자들도 커밍아웃을 겪어 봐야 한다는 주장을 블루는 '호모섹슈얼 어젠다'라고 부르는데, 사이먼이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라는 의미에서 '호모 사피엔스 어젠다'라고 정정해 준다.

(영화 버전에서도 '이성애자들도 커밍아웃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력이 유머스럽게 잘 표현된 것을 트레일러에서 보았다.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아실 듯. "저 남자가 좋아요"라고 흑인 소녀가 커밍아웃을 하니 그 어머니가 "아이고 세상에, 예수님, 절 도와주세요!"라며 신음하는 장면ㅋㅋㅋ)

 

사이먼의 1인칭 시점 서술과 사이먼과 블루가 주고받은 이메일을 몇 통 보여 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막 엄청 빵빵 터지는 말투나 장면은 없지만 과연 블루가 누굴까 추측하는 재미가 있어서 재밌게 잘 읽었다.

십 대 게이 소년은 되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십 대 첫사랑의 풋풋한 귀여움이 느껴져서 좋았다. 청소년 학급 문고 같은 데에 추천해도 괜찮을 것 같다.

[책 감상/책 추천] 홍지운,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보통 소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평범하다'는 말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으나, 우리의 주인공 '이호랑'은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한 소녀가 절대 아니다.

일단 그녀는 괄괄하고 드세며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골칫덩어리다.

그런데 그녀를 더욱더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동시에 두 배쯤 더 골칫거리로 만드는 사실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대한제국 황실 제1후계자라는 것!?

 

근래에 보기 드문, 꽤 재미있고 흥미로운 '영 어덜트(young adult)' 소설이다.

한국이 대한제국의 명맥을 잇는 입헌 군주 국가라는 설정인데, 18세 소녀인 우리의 주인공이 알고 보니 황실 제1후계자라는 것만 보면 <궁> 같은 여느 판타지 로맨스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이 소설은 '판타지'일지언정 '로맨스'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보통 '영어덜트' 소설과도 무척 다르다.

일단 첫 번째, 주인공이 어린 나이에 '꿘(운동권)'일 뿐 아니라, 아주 폭력적이다.

여기에서 폭력적이라는 건, 묻지 마 범죄를 벌인다는 게 아니라 성격이 불같고 거침없는 데다가 주먹을 잘 날린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주인공 '호랑'의 별명이 '구(舊) 창천동 뉴클리어 펀치'일까. 제목이 괜히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인 게 아니다.

 

두 번째, 보통 대한민국이 입헌 군주 국가라는 설정인 작품에서는 그 누구도 그 황실의 존재에 의문을 품거나 반대를 하지 않는데, 여기에선 다르다.

호랑은 민주주의 국가에 황실이 웬말이냐며 황실의 존재를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런 애가 황실 후계 제1순위라니? 

자신이 반대하는 것을 어쩌다가 자신이 누리게, 또는 받아들이게 된다면 사람의 태도는 어떻게 변할까? 그것이 주는 이득에 눈이 멀어 자신의 예전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릴까?

호랑은 그러지 않는다. 비록 자신이 황실을 이을 후계자이고 그냥 '이호랑'이 아니라 '호랑공주'가 되었어도 민주주의에 황제는 필요 없다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

그런 점이 여타 다른 '팩션' 소설들과 다른 게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나도 사실 <궁> 같은 입헌 군주제 설정을 가져온 작품들을 보며 '민주주의 국가에 무슨 황실이래? 영국이나 모나코 같은 국가에 왕실이 있다고 해서 우리도 이제 와서 그걸 굳이 살리자는 생각을 판타지로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세 번째, 정치적인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다양함을 보여 준다. 

주인공 호랑은 아주 성격이 불같고 정의감에 넘치며 주먹 쓰기를 좋아한다. 우리가 흔히 미디어에서 접하는 '소녀다운 소녀'와는 백만 광년쯤 거리가 있다. 외모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성격이 멋지다, 쿨하다고 할 수는 있어도 '사랑스러운' 편은 절대 아니다.

반면에 호랑의 아빠는 성격이 정반대이다. 유하고 부드러우며 조용조용하다. 어떻게 이런 아빠 아래에서 이런 딸이 나왔는지 궁금할 정도다(정답: 주먹부터 나가는 호랑의 성격은 엄마를 비롯한 외가에서 물려받았다).

이렇게 전형적이지 않은 주인공의 성격 묘사도 무척 마음에 드는데 이뿐만이 아니다. 동성애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호랑의 친한 친구이자 밴드 멤버인 해민(남자애다)은 '남자 친구'가 있고, 호랑도 역시나 친한 친구이자 밴드 멤버인 라라와 사귀는 듯하다(직접적으로 서로를 여자 친구나 애인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지만 작중에 호랑이 황제가 된다면 라라가 '정실'이 될 것이 분명하다는 표현이 나온다).

또한 황제의 비서인 유나는 황제(역시 여자다)를 짝사랑하고 있다. 황제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언급되지 않지만. 대략 이렇게만 봐도 동성애가 세 커플이나 나온다.

그러면서도 동성애가 전혀 유난스럽거나 이상하게 그려지지 않아도 너무 좋았다.

 

나는 이 책을 한 2/3쯤 읽었을 때 이미 '이걸 <반올림> 같은 청소년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주인공 성격이 너무너무 매력적이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성 역할에 대한 모델을 보여 줄 수 있다. 성 소수자의 모습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끼워 넣을 수 있고.

게다가 대한제국이라는 판타지성은 흥미를 더해 주고, 볼거리도 제공해 줄 것이다. '연우' 캐릭터는 꽃돌이라고 불릴 정도니 아이돌을 섭외해도 괜찮을 듯.

제발 이 좋은 걸 단막극으로라도 만들어 줬으면... 청소년들을 위해 이 정도도 못 만들어 주냐! 잘 만들면 청소년뿐 아니라 온 가족이 다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원래 '영 어덜트' 소설이나 '팩션'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건 정말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다.

두껍지 않으면서 재미도 있고 특히 청소년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는 책을 고르라면 난 단연코 이걸 선택하겠다. 호랑공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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