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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Never Surrender: A Galaxy Quest Documentary(네버 서렌더: 어 갤럭시 퀘스트 다큐멘터리, 2019) - 과몰입 오타쿠들 만세!

 

감독: 잭 베넷(Jack Bennett)

 

딘 패리소트(Dean Parisot) 감독의 SF 영화 <갤럭시 퀘스트(Galaxy Quest, 1999)>의 제작 과정에 숨겨진 사연 등을 알아보고 이 영화를 추억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이 끝장나게 멋진 영화(<갤럭시 퀘스트>)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부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영화를 처음 보는 그 감격적인 순간을 누릴 수 있다니!

<갤럭시 퀘스트>의 시놉시스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한 SF 드라마의 배우들이 코믹콘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이 드라마의 캐스트는 다들 개성이 있다. 예컨대, 잘나갔던 때를 떠올리며 노스탤지아에 젖어 사는, 대장 역할을 맡았던 배우(팀 알렌 분)라든지, 쭉쭉빵빵 금발 미녀라는 이유로 지성이나 연기력보다는 외모로만 평가받은 게 불만인 여배우(시고니 위버 분)라든지, '내가 원래 이런 걸 할 배우가 아닌데... 내 진정한 연기 혼을 아무도 몰라 줘!'라며 자신이 맡았던 역할을 부끄러워하는 배우(알란 릭맨 분)라든지.

그런데 진짜 놀라운 일은 이제 일어난다. 이 드라마를 송출했던 전파를 우연히 잡아 보게 된 어떤 외계 종족이 이를 '드라마', 그러니까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록한 '다큐'라고 받아들이고, 그들의 모험에 감탄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종족이 위험에 처했다며 이 우주 영웅들(을 연기한 배우들)에게 도움을 처한다. 이제 이들이 외계인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지구도 파괴될지 모른다! 이들은 과연 외계인과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뭐, 대략 이런 이야기인데, 눈치 빠르신 분들은 벌써 감 잡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아, 이거 <스타 트렉(Star Trek)> 시리즈에 대한 메타(meta) 아냐?'

정답! 영화를 보면 우주선 내부라든지, 크루들이 입은 우주복이라든지, 아니면 크루들 각각의 캐릭터 설정 등이 <스타 트렉>과 비슷하다.

애초에 <스타 트렉>이 SF라는 장르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 후에 나온, '우주 오페라(space opera)'물이라면 스타 트렉을 기준으로 '얼마나 비슷하냐, 또는 다르냐' 평가받는 게 기본이 된 것 같긴 하다.

어쨌거나 외적인 면에서도 <스타 트렉>을 연상케 하는 이 영화는 사실 <스타 트렉>(또는 그 어떤 영화나 스타로 대체해도 무방)과 팬(fan)들의 관계를 그 주제로 삼고 있다.

아래에서 논하는 '팬'이라는 큰 주제는 이 다큐(<네버 서렌더>)에서 여러 인터뷰어의 입을 통해 여러 번 지적되고 잘 설명되는 내용이다.

물론 이 다큐에는 이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예컨대 우주선을 디자인할 때 절대 <스타 트렉>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변호사들과 같이 일했고, 심지어 우주선 모델명도 '엔터프라이즈호가 아니다(Not The Enterprise)'란 뜻의 'NTE'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들을 여기에서 다 소개할 수는 없으니 팬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집중하기로 하겠다.

 

<갤럭시 퀘스트>에서 토니 중위/그웬 역을 맡았던 시고니 위버(오른쪽). 왼쪽에 몸을 기울여 갤럭시탭(으로 추정되는 태블릿 PC)을 보고 계신 분은 이 다큐의 감독인 잭 베넷.
<갤럭시 퀘스트>에서 태거트 함장/제이슨 네스미스 역을 맡았던 팀 알렌
<갤럭시 퀘스트>에서 외계 종족들 중 이름도 있고 나름대로 비중도 있었던 마테자르 역의 엔리코 콜라토니
<갤럭시 퀘스트>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캔틸론

 

'팬'이라는 주제는 이 영화/다큐에서 여러 가지 층위에서 의미를 가진다.

이 영화에서 '팬'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애초에 <갤럭시 퀘스트> 자체가 <스타 트렉>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고, 메타적인 발언이기도 하므로, 감독을 비롯한 제작자들도 (<스타 트렉>의) 팬이다.

그리고 둘째, 극 중 '갤럭시 퀘스트'라는 SF 드라마를 보고 감탄하며 이것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 믿는 테르미안(Thermian) 족도 팬이다(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는 말대로 하자면, '과몰입 오타쿠'들이다. 현실과 허구도 분간을 못하니까).

셋째, 이 드라마가 실제가 아니라 허구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열광하는 (인간) 팬들도 있다. 영화 속 코믹콘에 모인 사람들을 포함하며, 극 중 저스틴 롱의 캐릭터(캐릭터 이름은 브랜든)와 그 친구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무려 저스틴 롱의 캐릭터는 자신의 덕질하는 대상인 태거트 함장/제이슨('태거트 함장'을 연기한 배우의 이름)에게 이 우주를 구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거야말로 모든 덕후들이 꿈꾸는 최고의 상황 아닌가! 내가 존잘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대상이 된다니! 덕후들 좋아서 기절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이건 <스타 트렉>이 팬이 있었기에 시리즈가 계속되고, (첫 세대)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몇십 년이 지난 후에도 다시 리부트될 수 있었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영화 또는 스타가 인기를 얻고 돈을 버는 등, 대략 '잘나간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현상의 원동력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팬들이다.

내가 팬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팬, 그러니까 지지자가 없으면 그 어떤 매체도 저 혼자서 지속될 수 없다.

책이 됐든 노래가 됐든 간에 그걸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어떤 영향력을 가지거나 기록에 남을 수가 있는 것이다.

팬이 있어서 스타가 있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 영화는 감동적으로(여러분이 계를 탄 이 덕후라 상상해 보시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 다큐는 그러한 주제 의식을 가진 영화에 대한 메타이기도 하다.

이 다큐의 감독은 <갤럭시 퀘스트>를 제작하는 데 참여한 프로듀서, 감독, 디자이너, 배우들뿐 아니라 이 영화를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팬들의 모습도 보여 준다.

그중 개인의 이름까지 밑에 자막에 뜰 정도로 따로 섭외된(그러니까 그냥 코믹콘에서 인터뷰할 때 몇 번 잠깐 나오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단독 샷을 받아 추가 촬영을 했다는 뜻이다) 인물이 바로 해롤드 웨어(Harold Weir)와 록새인 웨어(Roxane Weir)라는 커플이다.

이들은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극 중 테르미안들 코스프레까지 하고, 테르미안들처럼 박수를 치고 말하는 것까지 따라 한다. 이들은 정말 '찐'이다. 진정한 과몰입 오타쿠들이라고 할까.

이게 다 <갤럭시 퀘스트>의 유산(legacy)이 아니고 무엇인가!

다큐 후반에 <갤럭시 퀘스트> 상영회에 참여한 배우와 관객들 모습을 보여 주는데, 그걸 보고 가슴이 찡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무언가, 또는 누군가의 팬이다. 꼭 연예인이 아니라도 어떤 성공한 사업가라거나 존경하는 선생님의 팬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우리 모두 어떤 것에 몰입해서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기 어려워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29)>을 보고 나서 며칠간 영화 후반의 그 무서운 장면이 떠올라 소름 끼쳤던 적이 있다.

내가 '몰입'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장면이 떠올랐을 때, '아 뭐야, 그냥 영화 장면일 뿐이잖아' 하고 웃어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제시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영화에 숨겨진 디테일'이라든가 '뫄뫄 장면의 의미' 같은 걸 캐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어쩌면 모두, 과몰입 오타쿠다. 나쁜 뜻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것에 깊이 빠져들었다는 뜻으로.

과몰입 오타쿠들 만세다!! 

 

이 다큐를 보면 2016년에 우리를 떠난 알란 릭맨을 제외한 캐스트, 그러니까 팀 알렌, 시고니 위버, 토니 샬호브, 샘 록웰, 다릴 밋첼 등을 한자리에서 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어제 이 다큐를 볼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내가 좋아하는 미시 파일도 여기에 나왔더라! 레인 윌슨도! 아는 배우들의 초기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ㅎㅎㅎ 

모쪼록 이 리뷰가 <갤럭시 퀘스트>를 보신 분에게는 이 영화를 해석하는 한 가지 방법의 제안으로,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재밌고 좋은 영화를 추천하는 글로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거트 함장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우리가 과몰입 오타쿠들이라 해도,

"포기하지 말고, 항복하지 말라(Never give up, never surrender)!"

 

(그렇다, 이 다큐의 제목도 바로 이 인용문에서 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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