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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한동원, <나의 점집 문화 답사기>

by Jaime Chung 2018.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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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한동원, <나의 점집 문화 답사기>

 

 

 

 

2002년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영화의 중요 장면과 대사를 짚어 보며 큰 인기를 끌었던 코너, <결정적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그 <결정적 장면>을 기획한 작가 한동원은 2004년, 이 결정적 대사들에 바치는 그만의 헌사인 <대사 매뉴얼>을 펴내기도 했다.

나는 이 책(<대사 매뉴얼>)을 사서 읽을 정도로 그의 스타일을 좋아했다. 어쩜 저렇게 웃기고 기발한 표현을 생각해 냈을까? 하며 감탄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리디셀렉트에서 우연히 이 흥미로운 책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제목은 <나의 점집 문화 답사기>, 저자는 바로 그 한동원 씨다.

2014년에 나왔으니 새책이라 하기는 어렵겠다만, 난 리디셀렉트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이런 책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부적을 닮은 겉표지 배경에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풍의 제목이 쓰여 있다. 표지부터 눈길을 끈다. 바로 다운 받아 읽었다.

 

이 책은 간단히 말해 저자가 직접 올 카인즈 오브 점집(그의 말투를 비슷하게 따라 한 표현이다)을 방문하며 과연 점괘가 얼마나 신기하게 '잘 맞는지'를 위주로 서술한 '점집 방문기'이다.

신점, 사주, 성명점, 관상, 손금점, 타로 등 우리나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점집'의 형태는 거의 다 망라돼 있다.

저자는 어딜 가서든 역술인들의 실력을 실험하기 위해 'A할까요, B할까요' 또는 'A할까요, 말까요' 같은 단순한 질문을 준비했다.

사실 그는 A 또는 B 중에서 한 가지 일을 이미 했고, 그래서 역술인이 둘 중 하나를 골라 주었을 때 과연 그것이 적절한 선택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수 있었다.

두어 번은 '숙련된 조교' 두세 명을 데리고 가서 조교가 역술 행위의 대상이 되도록 하기도 했다. 이 조교들은 모두 저자와 친한 사람이라, 그에 대한 이런저런 점 결과가 나오면 이게 맞는지 아닌지 저자도 잘 판단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쯤 독자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맞혀[각주:1] 볼까? '와, 어디가 제일 잘 맞혔어? 거기 연락처 어디야?' 맞혔으려나?

두 가지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첫 번째, 저자가 어쩌다가 '구린' 곳들만 골라 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하우스'들은 '기가 막히게 잘 맞힌다'를 5점이라고 치고 '하나도 안 맞잖아'를 0점이라고 치면 3.5점 정도의 결과를 기록했다.

이 정도 점수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한데 맞는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은 말들을 해 줬다'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안타깝게도(사실 안타까운지는 잘 모르겠다. 그가 방문한 점집들의 '신통력'은 하나같이 그다지 신통치 않았으니) 그는 방문한 점집의 연락처나 정보는 밝히지 않는다.

대신에 책 뒷쪽에 출판사 편집부에서 정리한 '점집 리스트'가 실려 있다. 그렇다고 이 '하우스'들이 영험하다는 보증은 아니고, 그냥 인터넷에서 검색해 모은 정보를 정리한 거라 전화번호가 바뀌었거나 문을 닫았을 수도 있다. 2014년 책이니 지금까지 유효한 번호가 있다면 그게 좀 더 놀라울 거 같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역시 두 가지가 있겠다.

첫 번째, 직관적으로 웃음을 불러 일으키는 저자만의 독특한 말투. <결정적 장면>을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어떤 느낌인지 아실 것이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아직 어린 독자들은 <결정적 장면>을 모를 수도 있겠다 싶다) 저자가 '하우스'를 찾아가기 전 예약하는 과정을 잠깐 인용해 맛을 보여 드리자면 대략 이런 식이다.

예약자 응대를 전담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남성은 그 음성 못지않게 매너 또한 중후하다. 나름 기품과 품위와 OECD급 국격을 유지하면서도 딱딱하지는 않다. 간간이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를 리드미컬하게 곁들인 예약 시간 안내에도 막힘이 없다. 하우스를 오픈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이 정도의 능숙함과 노련함을 갖춘 것만으로도 우리는 ㄱ보살의 인기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대체 얼마나 예약을 많이 받았길래! (...)

그런데 마니아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 예약 응대 남성은 ㄱ보살의 배우자이면서 그녀의 매니저 겸 비서로 재직 중인 남성으로, 이 시대 셔터맨의 진정한 표상으로서 수많은 남성들의 로망 및 롤모델로서 추앙받고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가 한량없이 부러워지는 이내 마음 가눌 길 없었더랬다.

 

계속 이런 식으로 저자는 끊임없이 웃겨 준다.

 

책을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두 번째, '점집'이란 '타파해야 할 대상, 미신'이라기보다는 '삶에 지쳤을 때 종종 마음에 위로를 받기 위해 가는 곳' 정도로 인식하는 저자의 푸근한 태도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도 미래 예측을 얼마나 자주 틀리는가. 그들은 '팩트'과 지식, 노하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상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점이라고 크게 다르겠는가. 초자연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 사기라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본인이 '기가 막히게 잘 맞힌다' 싶은 점괘를 받은 적은 몇 번이나 되는지 생각해 보자.

미래가 보이지 않아 막막하고 겁이 날 때는 '다 잘될 것이다'까지는 아니라도 '이러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니 조심하라'라는 작은 귀띔만으로도 우리는 크게 안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래를) 전혀 모른다는 것과 그래도 조금이나마(부정적인 정보나마) 아는 것은 느낌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제일 두려운 것은 미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다.

그래서 인간은 정보, 과학, 지식 또는 신적인 능력, 초자연적인 존재를 통해 미래를 알아내려고 애를 쓴다.

그럴진대, 우리가 미래를 두려워하는 어린 양이라는 점에서 무슨 차이가 있고, 그러니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게 저자의 태도에 가깝다.

점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맹신의 일종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점을 본다면, 긴장 풀고 적당히 웃으면서 반쯤 믿고 반쯤은 웃어넘기는 태도가 최선일 것이다. 또한 그 정도의 편안한 기분으로 이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

 

저자는 100% 속속들이 맞히는 영험한 역술가는 찾지 못하지만, 그래도 '초능력자도 사기꾼도 아닌, 점이라는 이름의 엔터테인먼트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개성 넘치는 모습은 점 그 자체보다도 훨씬 더 흥미진진한 것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덕분에 (나도 점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유쾌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미래가 두려울 때 읽으면 '미래를 몰라 두려워하는 게 나뿐만은 아니구나' 하는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덕분에 웃음도 얻을 수 있으니 개이득!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고 웃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이 책을 읽고 웃으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덜하지 않을까. 여러분 모두 복 받으세요!

  1. '(사람이 어떤 물음을) 옳게 답을 하다'의 의미로 '맞추다'를 쓰는 경우가 자주 보이는데 이런 의미일 때는 '맞히다'가 옳은 표현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답은 '맞히는' 것이고 과녁은 '맞추는'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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