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by Jaime Chung 2018. 11. 28.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TED에서 '유행성 외모 강박증(An Epidemic of Beauty Sickness)'이라는 제목으로 외모 강박에 시달리는 여성에 대해 강연한 심리학자 러네이 엥겔른의 책이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에서 저자는 다양한 연령과 배경, 인종의 여성을 인터뷰하며 이런 질병에 대처하는 일반적인 유형들을 보여 준다.

어떤 소녀는 자기 자신을 못생겼다, 뚱뚱하다고 폄하하며 자신의 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어떤 여인은 그런 비슷한 과정을 겪긴 했지만 현재는 훨씬 건강한 태도로 몸과 인생을 대하고 있다. 물론 이 두 예는 스펙트럼의 양쪽 끝에 해당하고, 실제로는 이보다 더 복잡한 층위의 태도를 가진 여성들 예시도 나온다.

 

이 책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여성의 몸은 전시·관람용이 아니며 여성 자신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몸을 보는 것을 관두어야 한다'라고 할 수 있겠다.

여성이 남성보다 외모에 더 신경을 쓰도록 가르치는 것이 거의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문화이다.

예컨대 파티에 갈 때 남성들은 티셔츠에 청바지, 또는 잘 차려입어 봐야 양복 차림이면 끝이다. 머리를 빗으면 정말 외모에 신경 쓴 거다.

그런데 여성들은 그보다 훨씬 더 다양한 선택권 속에서 의상을 골라야 하며, 이에 맞는 액세서리 준비까지 해야 한다. 머리 손질과 화장은 기본이다. 왜? 여성은 '예뻐' 보여야 하니까!

하지만 이런 압박은 여성의 정신과 육체에 해를 끼친다. 여성은 자신의 몸이 24시간 늘 '전시'되는 상태라는 느낌을 받는다.

언제나 완벽하게 꾸며야 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위(사람 또는 문화, 특히 미디어)로부터 주입받는다.

이제는 이런 메시지에 '노(No)'라고 말해야 한다. 여성의 몸을 관찰·감상의 대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여러 페미니즘 책에서도 언급하는 도브(Dove)사의 '리얼 뷰티' 캠페인은 이 책에서도 언급된다.

(이 광고는 아래 두 책에서도 논의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라.

2018/08/27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제스 베이커,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2018/10/12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앤디 자이슬러, <페미니즘을 팝니다>)

 

다양한 책에서 다뤄지는 '도브 리얼 뷰티' 캠페인 광고 중 한 장

 

'비교적' 다양한 체형(이라고 해 봤자 고도 비만의 여성의 신체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모습이라도 아름다울 수 있다며?)과 연령, 인종의 (모델이 아닌) 일반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 주며 '단일하지 않은, 여러 가지 아름다움의 기준'을 제시하려 했던 이 광고는 그러나

1. 여전히 일종의 '아름다운의 기준'을 내세우고 여성들이 이를 추구하게 해 이익을 취하는 것이 목적인 미용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광고라는 점은 변하지 않으며,

2. 여성은 여전히 (기준이 어떻든 간에) '아름다워야 한다'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외적인 면이 강조되는 업계(TV나 공연 예술 같은)뿐 아니라 일반 기타 다른 업종에서도 여성들은 '예쁠' 것, '보기 좋을' 것을 강요받는다.

남성들은 그에 비해 그런 외적 강압에서 자유롭다. 예를 들어 세일즈맨 남성은 남에게 호감을 주는 외모의 소유자라면 득이 될지언정,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일을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남성들은 외모가 어떻든 간에 자신의 능력, 성격, 또는 태도 등 '내적인' 자질들로 평가받는다.

여성들은 능력, 성격, 또는 태도 등 '내적인' 자질들이 어떻든 간에 외모로 평가받는다. 단순한 사무직 여성이라도 사무실의 '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아직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보라.

 

'도브 리얼 뷰티' 광고 중 또 다른 한 장

 

위의 '도브 리얼 뷰티' 캠페인도 그렇다. 44세 여성도 섹시할(hot)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견 긍정적인 인식 같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왜 여성이 44세나 되어서도 여전히 섹시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보다 조금 더 젊었을 때 섹시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서? 여성은 평생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인가? 남성에게는 그런 말을 안 하는데 말이다.

남자는 굳이 애써서 외모를 관리하지 않아도, 나이가 들수록 '중후한' 멋이 생긴다느니 늙어서도 여전히 '남자는 남자'라느니 하는데.

요는 이것이다. '여성을 아예 '미(美)'라는 개념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 말자'.

물론 그렇게 되려면 여성의 신체를 감상의 대상으로 여기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여성 개인도 자신의 신체에서 외양에 두는 중요성을 덜어내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이에 도움이 되는 것이 책에서 소개되는 한 연구이다.

이 연구에서 여성들은 또 다른 빈칸을 채우라는 과제도 부여받는다. 이 과제는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했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나는 (   )을 하기 위해 내 팔을 쓴다.

나는 몸으로 (   )을 할 수 있다.

나는 내 몸으로 (   )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내 다리로 (   )을 할 수 있다.

내 몸은 (   )할 때 가장 강하게 느껴진다.

 

이 과제의 답은 우리 연구 팀이 생긴 이래 가장 행복한 자료가 되었다. 그 대답을 읽는 것만으로도 외모 강박에 폭탄을 투여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들은 타자를 치기 위해, 요리를 하기 위해, 가방을 들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대화하기 위해 팔을 쓴다고 답했다. 또한, 몸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친구를 만들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고, 강인함을 느낄 수 있고, 여행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몸으로 춤을 추고, 달리고, 일하고, 원하는 곳으로 가고, 운동할 수 있어서 좋다고 이야기했다. 한 여성은 "나는 내 몸으로 내가 언제나 꿈꿔오던 삶을 살 수 있어서 좋다"라고 문장을 완성했다.

 

이 질문에 답을 떠올리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몸의 외적 상태가 아니라 몸의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문장을 완성하는 과제를 마친 후 몸의 기능에 초점을 맞췄던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좀 더 만족하게 됐다.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자 몸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 것이다.

 

이걸 읽고 난 후 나는 만약 내가 어린 소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아이에게 '예쁘다', '귀엽다'라는 외모 칭찬 대신에 '잘 달리는구나', 또는 '건강하구나' 같은 몸의 기능에 대한 칭찬을 해 줘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꼭 자라나는 소녀가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고.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란 점은 '남녀' 대신에 '여남'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점이다.

책깨나 읽었다는 나도 실제로 '여남'의 순서로 쓰인 활자를 보는 것은 정말 처음이라 신선했다.

이렇게 쓰자는 주장은 종종 접했지만 실제로 책 전체에서 '여남'이라고 표기한 것은 처음 봤다. 와!

 

모든 여성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당장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이 외모를 꾸미는 행위를 관두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페미니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전통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것(화장이나 옷 차려입기 같은)을 좋아하는 것도 여전히 여성 개인의 선택이므로, 모든 여성이 외모를 꾸며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하지만 이 책이 '외모 강박증'으로 고생하는 여성들이 그 속박을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면 이 책은 그 사명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아래는 저자의 TED 강연이다. 영상 하단 오른쪽 톱니바퀴 모양을 눌러서 자막을 선택할 수 있다. 현재는 한국어는 없고 영어나 다른 언어는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