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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우에노 지즈코·미나시타 기류,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by Jaime Chung 2018.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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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우에노 지즈코·미나시타 기류,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일본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이자 사회학자인 우에노 지즈코와 일본의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미나시타 기류가 대담 형식으로 비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의 통계 자료 및 관찰의 대상이 되는 현상은 일본의 것이지만, 그에 대한 통찰은 상당 부분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 인용문을 보시라.

사회가 젊은 남녀의 결혼에 관심을 두는 것은 젊은 남녀가 아이를 낳아 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결혼하면 곧 아이를 낳을 것으로 기대한다. 거꾸로 결혼하지 않으면 아이를 원해도 낳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사회에서 남자에게 속하지 않은 여자는 아이를 낳고 기를 자유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회가 진짜 관심 있는 것은 비혼이 아니라 저출산이다. 국가의 부(富)가 저출산으로 인해 감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도 출산도 남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인 선택에서 비롯된다. 국가나 사회를 위해 아이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이 말은 우리나라에도 꼭 들어맞지 않는가. 한국의 출산율은 점점 떨어져 현재 1명보다 낮은 0명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는데 나는 특히 '닳고 닳은 여자'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미나시타    해설에 "자신을 분석한 이 책 <여자의 길을 잘못 들어서>를 읽으며 내가 예전에 '닳고 닳은 여자 전략'을 취한 사실을 떠올렸다"고 쓰셨습니다. "닳고 닭은 여자의 전략으로 이를테면 성희롱을 당하고 충격받은 여성을 만나 위로할 때 '남자가 어차피 그런 거지' 하면서 '아랫도리 화제는 아랫도리 화제로 받아치라'며 그걸 어른의 지혜랍시고 여성에게 권했다. 그때 나는 뚜쟁이 같았다. 이런 나야말로 남자들에게 편리한 여자였을 것이다"라고요. (...)

여자가 '남자는 기껏해야 그 정도다'라고 전략을 취하면, 이런 전략이 실은 남자들한테 굉장히 편리하다고 토로하는 거죠. "돌이켜보면 이런 전략은 내가 남자들의 욕망의 자장 속에서 까칠해지거나 상처받지 않고 지낼 수 있게 하는 생존 전략이었다. 둔감한 감수성 때문에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감수성은 쓰지 않자 녹이 슬었다. 나는 남자들의 둔감함을 느끼지 못하게 됐고, 어느새 남자들에게 편리한 여자가 되었다"라고 덧붙이셨습니다. (...)

상처받지 않으려고 감수성을 둔감하게 단련하죠. 그 방법이 남자의 둔감함을 용인해주는 포용력 같은 것이고, 동시에 굉장히 '남자다운' 거예요.

우에노    맞아요. 여자는 그런 전략으로 '남자한테 편리한 여자'가 되죠.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도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남자애들이 여자애를 괴롭히면 '널 좋아해서 그래.' 라든지 '남자애들은 원래 그래. 그냥 무시해.' 하는 식으로 여자애들에게 반응하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하지만 정말 그게 그 여자애와 남자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일까? 일단 그것이 정말 애정을 나타내는 방식이라고 여자애가 믿게 되면, 여자애는 평생 자기에게 피해를 주고 자기의 권리를 침해하는 남성의 행동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비정상적인 '사랑'을 하며 살아갈 게 분명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성에게 바치고서, 남성에게 학대받으며 희생하는 것만이 진짜 사랑인 줄 아는 여성. 우리는 그런 여성을 길러 내고 싶은 건가?

또한 '남자애들은 원래 그렇다'라는 식으로 남자들이 '정상적이고' '평범하게' 행동하리라는 기대를 버리는 것 또한 궁극적으로 남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든 어른이든 잘못을 했으면 가능한 한 빨리 이를 교정할 수록 좋은데, 피해자인 여성이 '당신의 행동이 나를 아프게/괴롭게/부담스럽게/불편하게 한다'고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가해자는 이 행동이 그냥 용납되는 것이라 생각할 것이고, 그 행동을 계속할 것이다.

이래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여성이 남성의 행동을 교정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여성은 남성을 고쳐 주는 치료자가 될 필요가 없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 스스로의 문제를 깨닫고 파악한 후 고쳐 나가야 한다) 적어도 피해를 입었으면 사과를 요구하는 정도의 반응은 보여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이 자신이 잘못한 줄 알 것 아닌가.

나도 '닳고 닳은 여자' 수법을 쓰라는 충고를 여러 번 들었는데, 이 부분을 읽고 나서는 절대 그러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울고 화내고 소리 지르고 지랄발광을 하더라도 절대 '남자에게 편리한 여자'가 되지는 않겠다. 내 감수성을 죽여 가면서까지 내게 피해를 준 사람을 감싸 안아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또 한 군데, 내가 읽으면서 머릿속에 환하게 불이 켜진 것처럼 깨달음을 얻은 곳은 공동 친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우에노    왜 결혼하기를 바라는가, 이게 문제인데요. 결혼하기를 바라는 건 실상 아이 낳기를 바라는 거예요.

미나시타    그런데 정부는 법률혼 커플이 아니면 아이를 낳기 힘든 현실을 개선하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에노    출산 전에 결혼하는 게 전제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게 맞는 순서 같지만, 출산율을 높이려 한다면 실상 아이만 낳고 결혼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어요.

미나시타    네, 그런데 결혼을 안 하고 아이만 낳게 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우에노    어떤 조건에서 태어난 아이라도 안심하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아이를 늘릴 조건은 충분히 갖출 수 있어요. 10대의 경우, 임신율과 중절률이 높아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낮은 출산율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미나시타     그래도 아이를 늘리고 싶다면 결혼과 출산을 분리해야 합니다. 아니, 분리하는 게 당연해요.

우에노    간단하죠. 인구를 그렇게 늘리고 싶다면 수입하면 됩니다.

미나시타    이민자를 말씀하시는 거죠?

우에노    네. 이민을 받아들이면 될 일이에요.

 

그렇게 간단한 일이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면 이들이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문화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고?

글쎄, 그러면 애초에 한국 문화와 잘 융화될 수 있는, 그럴 의향이 있는 이민자들만을 받아들이거나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를 운영하면 되지 않을까.

사실 한국인이 '한국 문화'에 얼마나 자부심을 느끼고 또 그것을 중요시하는지는 나도 잘 안다. 사실 나도 한국 문화에 적응할 생각이 없는 이민자를 받아들이기는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여성들이 '나라를 위해 제 한 몸 바쳐' 아이를 낳아야 하나? 안 될 말이다. 제도도 뒷받침이 안 되어 있는데 그냥 개인이 일단 낳고 알아서 키우라고? 요즘 세대는 그런 국가주의적, 전체주의적 요구가 얼마나 억지인지 다 알고 코웃음을 칠 정도로 똑똑하다.

그러니 이민자 없이 인구를 늘리고 싶다면 아래 미나시타의 말을 참고하시라.

미나시타    외적인 틀을 보면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법 제도 밖에서 태어난 혼외자에 대한 차별도 철폐해야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평등할 수 있도록 빈틈없이 기초를 다져야 하고요. 한부모 여성 가장 세대를 공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불쌍한 어머니에 대한 시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게 공적 지원의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만들어놔야 여성이 출산할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관습에 따라 결혼하고 출산하는 것에 맡겨둬서는 안 됩니다. 관습이 사회구조와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면 도저히 손쓸 수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일본의 두 사회학자가 비혼주의가 늘어나는 원인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살펴본 책이다.

두 학자가 예리하게 현상을 잘 꿰뚫어보았지만 이 책은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현상을 관찰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비혼주의자 개인이 '그래, 나는 남들에게 이 소리 듣는 게 지겨워!'라든지 '이렇게 예의 없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꼭 이 말을 해 줘야지!' 하고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개인 에세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두 학자가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되어 있고 쉽게 쓰여서, 책깨나 읽는다거나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고등학생이라도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내용도 없고, 현학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은 덕분이다.

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들었다면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도 추천한다. 나는 이 책을 여성 혐오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전에 접할 수 있었는데, 정말 내가 이걸 읽고서야 눈을 떴구나 싶을 정도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남성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하고, 그 개념의 유지는 비(非)남성, 즉 동성애자 남성이나 여성들에게 심하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아주 명확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이 책도 같이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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