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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메리 노리스, <뉴욕은 교열 중>

by Jaime Chung 2018.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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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메리 노리스, <뉴욕은 교열 중>

 

메리 노리스는 <뉴요커(The New Yorker)>에서 35년간 교열 일을 맡아 온 책임 교열자이다. 별명은 '콤마 퀸(Comma Queen)'.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이 처음 가졌던 직업(공공 수영장에서 사람들 발에 무좀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해 <뉴요커>에 입사한 이야기, 그곳에서 다른 교열자들에게 배운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저자는 (당연히) he/she, 콤마, 하이픈, that/which, 대시, 세미콜론, 콜론 등, 영어 문법에 관해서도 살펴본다. 이 부분은 영어 공부에 크게 직접적인 도움은 안 되겠으나 그래도 교양을 쌓는다고 생각하고 보면 좋다.

사실 영어 공부를 목적으로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활자 중독자 또는 영어든 한국어든 간에 '틀린 건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하는 우리 '깐깐이'들이나 이런 책을 좋아하지(ㅠㅠ)...

 

이 책을 읽으며 이것과 비슷한 소재를 다룬 린 트러스(Lynn Truss)의 <먹고, 쏘고, 튄다(Eats, shoots, and leaves)>가 생각났다. 

이 책의 제목은 콤마 하나가 문장 전체의 의미를 얼마나 바꾸어 놓는지를 보여 주는 예문에서 저자가 따온 것이다.

원래는 '[Panda] eats shoots and leaves(판다가 싹과 잎을 먹는다)'여야 하는데 shoots 뒤이자 and 앞에 콤마를 하나 더 붙여서 판다가 '먹고, 쏘고, 튄다'는 의미로 변모한 것이다!ㅋㅋㅋㅋㅋㅋ

문장 부호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말이 나온 김에 이 좋은 책을 다시 읽고 싶어서 찾아봤더니 절판이란다. 이럴 수가! 물론 중고로 구할 수야 있겠지만, 이런 책은 몇 쇄고 계속 찍어 내서 널리 읽어야 한다는 게 솔직한 의견이다.)

어쨌거나, 린 트러스의 책과 메리 노리스의 책은 영어 문법을 지키는 '깐깐이'들이 문법에 대해 썼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후자는 나쁘진 않은데, 이야기를 늘어놓는 솜씨가 전자만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기대가 컸던 탓일까.

 

다만 생각해 볼 거리는 있었다.

<뉴요커> 외에도 유수 신문사 또는 잡지사에서는 각자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 <뉴요커>의 교열 기준이 절대적인 건 아니다.

심지어 같은 <뉴요커> 교열 팀 내부에서도 추구하는 교열 스타일이 다르고, 같은 단어/문장도 다르게 표기하려고 한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영국식은 colour처럼 -ou 표기법을 사용하고 미국식은 color처럼 -o 표기법을 사용하는데, 이건 그냥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지 않나.

정말 누가 봐도 틀렸다 싶은 실수, 오타는 언제나 존재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교열 기준이 항상 100% 옳다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변하기 마련이니까, 그 기준도 반드시 변하게 되어 있다(한때 '-읍니다'가 표준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90년대 초반까지도 '-읍니다'와 '-습니다'가 혼용되었다)

나도 교열 일을 해 봤지만, 1/4분기마다 수정되고 추가되는 국립 국어원 사전 표제어들을 확인해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렇게 기준이 끊임없이 변하는데, 과연 내가 '100% 옳기만 한', 틀린 곳이 정말 단 한 군데도 없는 교정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인간 능력의 한계(언제나 놓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가 정말 완벽하게 옳을 수 있을까?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 어떻게 완벽한 이상을 만들어 낼 수 있지? 물론 노력은 할 수 있겠지만, 결과가 그만큼 따라 줄까?

교열이란 정말 끊임없이 변하는, 갈대처럼 쉽게 흔들리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글을 갈아 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거면 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틀린 걸 지적하길 좋아하는 변태' 취급을 받으며 이 일을 하는가?

그야 재밌으니까지!

 

저자는 '저 마녀!'라는 꼭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사람들이 교열자를 마녀처럼 여긴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려서, 누군가 나를 두려워하면 나도 놀란다. 얼마 전에 한 새내기 편집 보조원이 첫인사를 하려고 <뉴요커> 각 부서를 돌아다니다가 내 사무실 문 앞에 섰다. 그녀는 내가 교열자라는 말을 듣자 움찔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하이픈으로 찌르거나 콤마 한 상자를 강제로 먹게 만들 사람을 만난 듯이. "겁내지 마요"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나는 굳이 사람들의 말이나 글을 바로잡지 않는다. 누군가 출간을 목적으로 내게 부탁하거나 보수를 주지 않는 한.

우리 교열자들은 한 편의 글을 마치 미사일의 경로를 변경시키듯 자신의 방식으로 흘러가게 만들려고 한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교열자에 대한 이미지는 엄격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는 사람, 남들의 오류를 지적하길 즐기는 심술쟁이, 출판업에 발을 들여놓고 주목받길 원하는 보잘것없는 사람, 또는 더 심하게 말하면 작가가 되려고 했으나 쓰라린 좌절을 겪고 i의 점과 t의 교차선에 신경을 쓰는 사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작가들의 경력에 이바지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모든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인용한 이 두 문단의 모든 글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위 인용문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또는 이 글이 적어도 웃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문장 부호에 대한 (이 책에 안 나오는) 간단한 잡지식 두 가지.

'F*ck this sh*t'처럼 욕설을 검열해서 살짝 가릴 때 쓰는 *의 이름은 애스터리스크(asterisk)이고, 'What the !@#$?'처럼 욕설을 아예 가려 버리는 !@#$ 이런 문자들은 'grawlix'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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