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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Hot Girls Wanted(2015, 핫 걸 원티드) - 너무나 평범한 얼굴을 한 아마추어 포르노

 

 

감독: 질 바우어(Jill Bauer), 로나 그레이더스(Ronna Gradus)

 

이 다큐멘터리는 포르노 배우 일을 이제 막 시작한 트레사(Tressa, 포르노 배우 예명은 '스텔라 메이(Stella May)')라는 19살 소녀를 따라가며 포르노 업계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그녀는 '허시 모델(Hussie Models)'이라는 모델 에이전시(라고 겉으로는 보이지만 실제로는 포르노 배우들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라일리(Riley)라는 남자가 운영하는 숙소에서 지내며 일을 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트레사처럼 포르노 업계에 이제 막 발을 담근(3~6개월 정도) 다른 소녀들이 있다.

제이드(Jade, 포르노 배우 예명은 '에이바 켈리(Ava Kelly)')는 활달한 라틴계 여성이고, 레이첼(Rachel, 포르노 배우 예명은 '에이바 테일러(Ava Taylor)')은 안경을 쓴, 옆집 소녀처럼 평범한 18살 소녀다.

이들은 라일리가 태워 주는 차를 타고 '촬영장'과 숙소를 왔다 갔다 하는데, 숙소에서 소녀들끼리 지내는 모습만 보면 여느 평범한 소녀들과 다를 바가 없다. 신기하게 서로 친하게, 사이도 좋게 잘 지낸다. 

 

라일리는 '아마추어', 그러니까 프로가 아니라 이제 막 포르노 업계에 발을 담가서 '작품'이 몇 편 없는, 아직 일반인에 가까운 포르노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한다.

그가 아마추어 포르노 배우들을 섭외하는 방법은 너무나 쉽다. 크레이그리스트(Craiglist)라고, 말하자면 미국의 중고나라 같은 웹사이트에 글을 올리면 12시간 내에 연락이 다섯 건은 온단다.

그리고 그가 봤을 때, 이런 아마추어 포르노 배우들의 수명은 길어야 1년이다. 아주 운이 좋고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재능이 있다면 그렇다는 거다.

그렇지 않다면 대개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그리고 그들은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간다. 평생 지우거나 씻을 수 없는 과거를 만들고서.

 

트레사의 경우, 어머니가 먼저 당신의 딸이 포르노 배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아버지에게도 이야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꺼내려던 크리스마스 연휴에 그녀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한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너는 언제나 내 자랑이야'라고 말하는데, 그게 너무 가슴에 사무쳐서.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당분간 이 사실을 비밀로 하고 포르노 배우 활동을 계속한다. 

트레사의 어머니는 '내가 눈을 떠서 아침에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도 너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도 너다'라며 딸을 무척 사랑하시는데, 트레사도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애초에 포르노 배우가 될 생각을 했는지는, 참 나도 모르겠다.

트레사는 학교 생활도 잘한 거 같고, 치어리딩 팀의 주장이기도 했는데. 대학교도 갈 예정이지 않았나?

아마 많은 10대들이 그러듯, 쉽게 돈을 벌고 싶고, 여행도 하고 싶고,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겠지.

아무리 섹스를 좋아한다고 해도, 또는 섹스가 자기에게 별거 아니라고 해도, 실제로, 정말로, 포르노 배우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진짜로 자신이 뭘 원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니까 그렇게 호도된 결정을 내리는 거겠지. 트레사의 어머니와 트레사가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다(이걸 보는 나를 보던 내 룸메이트도, '너 되게 슬퍼 보인다'라고 하더라).

 

 

제이드는 자기의 첫 데뷔작이었던 포르노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는 그래도 '연기'를 할 뿐이었고, 저 밖에 있는 누군가는, 실제로 존재하는 여성에게 그걸 시도하는 대신 그걸 보면서 욕구를 해소할 테니 차라리 그게 낫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게 그냥 연기일 뿐이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투도 씁쓸하지만(그녀도 그게 연기였다고 해서 그게 안 아팠다거나 굴욕적이지 않았다고 부인하지는 않았다), 정말로 그게 그냥 연기고, 연출된 것이어서 괜찮은 걸까? 자신의 집이나 안락한 곳에 있는 누군가는 그걸 보는 것으로 욕구를 해소하고, 정말 다른 누구에게 그걸 시도하지 않을까?

오히려 그걸 보면서 '아,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또는 '여자들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고 나중에 누군가에게 그걸 시도하려고 하지 않을까?

 

그리고 트레사였나, 레이첼이었나, 여튼 포르노 배우들 중 한 명이 힘든 촬영을 하고 나서 얼마 후에 이전에 같이 작업했던 (남자) 배우를 만났는데, '그때 아팠니? 괜찮아? 걱정했었어!' 했다며, 그 소녀들이 입을 모아 그가 '스윗(sweet)'하다고 말한다.

이것도 기분이 묘한 장면들 중 하나였다. 아니, 같이 일하는 동료끼리 서로 신경 써 주는 건 참 좋은데, 애초에 진짜 '스윗'하고 좋은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포르노 배우를 하지 않아요...

그것 이상의 인간다운 배려와 존중을 받을 수 있는데 굳이 그걸 자기가 포기하고서, 이렇게 사소한 행동에 감동을 받고 좋다고 칭찬하는 이 소녀들을 보자니 참 속상했다.

그리고 포르노는 만드는 것뿐 아니라, 보는 것도 불법이어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은지 어안이 벙벙해졌다. 

 

물론 이 다큐가 보여 주는 것이 포르노 업계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 외에도 우리가 (또는 적어도 나는) 알고 싶지 않은 더러운 진실들이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다큐가 보여 주는 것이 가짜는 아니다. 다만 이 세상에 길을 잃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르며, 그저 부모님의 품(과 그들이 구속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소녀와 젊은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를 너무나 잘 보여 줄 뿐이다.

충격적이고, 보고 나면 근심이 가득해지겠지만, 그럼에도 볼만한 다큐멘터리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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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Hail Satan?(헤일 사탄?, 2018) - 궁극의 선을 위해 사탄을 불러오다

 

 

감독: 페니 레인(Penny Lane)

 

현재 미국에 불고 있는, 'TST(The Satanic Temple)'라는 신흥 종교(?)를 다룬 다큐멘터리. 굉장히 흥미로웠다.

일단 'TST'가 뭔지 알고 싶어 하실 분들이 계실 테니 간단히 소개하겠다. 'TST'는 루시엔 그리브스(Lucien Greaves)라는 사람(그가 대표적인 대변인이다)과 '말콤 제리(Malcolm Jerry)'라는 가명을 쓰는 사람이 세운 종교다.

'사탄의 사원'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타니즘(악마 신봉주의)을 표방하는 듯하나, 그것은 그냥 '추진력을 얻기 위한' 표면적인 상징에 불과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은 사탄을 숭배하는 게 아니라, 미국에 널리 퍼져 있는, 마치 기독교가 국교쯤 되는 듯한 분위기를 타파하고 정교 분리 및 종교적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협력하는 무신론적 행동주의자들에 가깝다.

아무래도 이름 때문에 오해를 받아서 그런데(사실 그런 어그로를 끌려서 지은 이름 같긴 하다), 그들은 폭력이나 퇴폐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사탄은 신(권력자)에게 저항한, 일종의 반항아의 상징이기 때문에 가져왔을 뿐, 그들의 목표는 종교의 자유와 정교 분리, 평등이다.

 

TST의 대변인 루시엔 그리브스

 

역사적으로도 미국은 애초에 시작부터 기독교, 정확히는 신교에 기반했다. 미국 지폐에 'In God We Trust(우리는 신을 믿는다)'라고 쓰여 있을 정도고.

그래서 그런지 비(非)백인이나 비기독교인인 이민자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아 미국의 한 부분이 된 아직까지도, 기독교가 디폴트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미국에 참 많다.

루시엔 그리브스를 비롯한 TST는 그게 공정하지 못하고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일례로, 오클라호마 주의 주 의회 의사당에는 기독교의 십계명이 새겨진 큰 석판이 앞마당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정말로 동등하다면 기독교만이 그런 특권을 누려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TST는 악마 바포멧(Baphomet)을 기리는 상을 만들어서 이것도 같은 앞마당에 놓게 해 달라고 주 의회에 정식으로 건의한다.

그들의 진짜 목표는 물론 그 상을 거기에 놓는 게 아니라, 한 가지 종교(여기에선 기독교)만을 편애하는 기존 체제에 저항해서 다른 종교를 두루 포용하지 못하는 관례들을 없애고자 하는 거였다.

긴 투쟁 끝에 마침내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은 앞마당에서 제거했다(그 석판은 다른 기관에 대여해 줬다고).

 

오클라호마 주 의회 의사당 앞마당에 있던 십계명 석판

 

나도 처음엔 '미국에 사탄 숭배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하고 이 다큐를 보기 시작했고, 다큐 초반에 나오는, 정말 사탄 숭배자처럼 검은 망토를 쓰고 악마 뿔 같은 머리 장식을 한 루시엔의 모습에 약간 거부감을 느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큐가 진행될수록 이들은 그저 '악마의 탈을 쓴', 무신론적이고 평등주의적인 행동주의자라는 알게 됐다.

감독은 TST의 리더 격이라 할 수 있는, 각 지역의 교구를 이끌어나가는, 일종의 사제들을 인터뷰하는데 그 모습도 참 각양각색이다.

머리 염색도 화려하게 하고 고스(goth) 스타일인 사람도 있고, 그냥 동네 주민1처럼 평범하게 생긴 사람도 있으며, 뼛속까지 독실한 기독교인처럼 생긴 사람도 있다(실제로도 그랬는데 개종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다양성이 참 보기 좋았다.

그런 그들에게도 물론 공통점이 있었으니, 기존 종교의 편협함으로 인해 차별받거나 상처를 받았거나 평등주의, 정의를 위해 행동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

TST의 한 회원은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 준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 소풍으로 영화 <간디(Ghandi, 마하트마 간디의 삶을 다룬 영화)>를 보러 갔단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에서 역사 선생님이 말하기를, "간디는 그런 위대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 아니었기에 지옥에 갔어."

그 말을 듣고 그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고. "뭐? 그렇게 위대한 사람도 단순히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옥에 갔다고? 정말?"

내가 이 다큐에서 본 것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일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도대체 종교가 뭐길래 그렇게 사람을 편협하게 만드는 걸까?

어린아이가 받았을 충격이 정말 상상도 안 간다. 그게 애한테 할 말인지.

 

이 다큐 후반에도 나오는, TST가 아칸소 주의 리틀 록에 있는 주 의회 의사당 앞에 세운 바포멧 상

 

또 내가 좋아하는 일화 하나 더. TST에서 '방과후 사탄 클럽(After School Satan Club)'이라는 걸 만들었다.

기독교 단체가 운영하는 '복음 클럽(Good News Club)'의 패러디이기도 한 이것은 TST에서 제공하는 방과후 프로그램인데, '비판적 사고력'을 향상시키는 활동들을 제공한다고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이에 반대했고, '그런 거는 내 자식들 말고 네 자식들에나 가르쳐라' 같은 항의가 들어왔다.

루시엔 그리브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어떤 애가 그런 클럽에 가고 싶어 하겠어요?'라고 말하는데, 저라면 이렇게 말하겠어요. '제가 바로 그런 애였어요.'라고."

아, "제가 바로 그런 애였어요." 이 한마디만 들어도 딱 그림이 그려진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 기존 종교의 편협함, 차별주의, 불의 등을 경험하고 상처받은 아이... 나도 꽤 어린 나이에 교회라는 데 신물이 나서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기독교에 십계명이 있다면 TST에는 7개 교리가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모든 존재들에게 연민과 공감을 가지고 대할 것.

두 번째, 정의를 위한 노력은 계속 추구되어야 한다.

세 번째, 개인의 신체는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며 그 개인의 의지가 아닌 다른 것에 종속되지 않는다.

네 번째, 타인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신념은 과학적 이해에 부합해야 한다.

여섯 번째, 사람은 틀릴 수 있다. 실수를 한다면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곱 번째, 모든 교리는 행동과 사고의 고귀함을 일깨우기 위한 가이드에 불과하다. 

종교의 교리 치고 꽤 이성적이며 멋지지 않은가.

 

종교의 자유를 추구하는 TST 회원들의 집회 모습

 

다큐에 인용된 한 TV 쇼에서 한 패널이 묻는다. "그들이 정말 사탄을 신봉하는 자들이 아니고 무신론자라면, 왜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부르지 않는 겁니까?"

이 뒤에 따라나오는 한 인터뷰에서 TST의 회원이 대답한다. "왜냐하면, 무신론자들은 모임이 없거든요. 무신론자들은 그냥 개인이에요. 하지만 TST는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행동하죠." 정확한 워딩은 아닌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서도 해변 근처 고속도로에서 쓰레기를 줍는다든지, 생리 용품을 기부받아 쉼터에 전달한다든지, 헌혈을 촉구한다든지 하는 봉사활동을 한다.

진정으로 공공의 선을 위하는 종교가 그래야 하듯이.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종교의 진정한 의미, 공공선을 위한 행동주의의 중요성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좋은 다큐였다.

이 다큐를 볼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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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Never Surrender: A Galaxy Quest Documentary(네버 서렌더: 어 갤럭시 퀘스트 다큐멘터리, 2019) - 과몰입 오타쿠들 만세!

 

감독: 잭 베넷(Jack Bennett)

 

딘 패리소트(Dean Parisot) 감독의 SF 영화 <갤럭시 퀘스트(Galaxy Quest, 1999)>의 제작 과정에 숨겨진 사연 등을 알아보고 이 영화를 추억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이 끝장나게 멋진 영화(<갤럭시 퀘스트>)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부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영화를 처음 보는 그 감격적인 순간을 누릴 수 있다니!

<갤럭시 퀘스트>의 시놉시스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한 SF 드라마의 배우들이 코믹콘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이 드라마의 캐스트는 다들 개성이 있다. 예컨대, 잘나갔던 때를 떠올리며 노스탤지아에 젖어 사는, 대장 역할을 맡았던 배우(팀 알렌 분)라든지, 쭉쭉빵빵 금발 미녀라는 이유로 지성이나 연기력보다는 외모로만 평가받은 게 불만인 여배우(시고니 위버 분)라든지, '내가 원래 이런 걸 할 배우가 아닌데... 내 진정한 연기 혼을 아무도 몰라 줘!'라며 자신이 맡았던 역할을 부끄러워하는 배우(알란 릭맨 분)라든지.

그런데 진짜 놀라운 일은 이제 일어난다. 이 드라마를 송출했던 전파를 우연히 잡아 보게 된 어떤 외계 종족이 이를 '드라마', 그러니까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록한 '다큐'라고 받아들이고, 그들의 모험에 감탄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종족이 위험에 처했다며 이 우주 영웅들(을 연기한 배우들)에게 도움을 처한다. 이제 이들이 외계인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지구도 파괴될지 모른다! 이들은 과연 외계인과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뭐, 대략 이런 이야기인데, 눈치 빠르신 분들은 벌써 감 잡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아, 이거 <스타 트렉(Star Trek)> 시리즈에 대한 메타(meta) 아냐?'

정답! 영화를 보면 우주선 내부라든지, 크루들이 입은 우주복이라든지, 아니면 크루들 각각의 캐릭터 설정 등이 <스타 트렉>과 비슷하다.

애초에 <스타 트렉>이 SF라는 장르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 후에 나온, '우주 오페라(space opera)'물이라면 스타 트렉을 기준으로 '얼마나 비슷하냐, 또는 다르냐' 평가받는 게 기본이 된 것 같긴 하다.

어쨌거나 외적인 면에서도 <스타 트렉>을 연상케 하는 이 영화는 사실 <스타 트렉>(또는 그 어떤 영화나 스타로 대체해도 무방)과 팬(fan)들의 관계를 그 주제로 삼고 있다.

아래에서 논하는 '팬'이라는 큰 주제는 이 다큐(<네버 서렌더>)에서 여러 인터뷰어의 입을 통해 여러 번 지적되고 잘 설명되는 내용이다.

물론 이 다큐에는 이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예컨대 우주선을 디자인할 때 절대 <스타 트렉>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변호사들과 같이 일했고, 심지어 우주선 모델명도 '엔터프라이즈호가 아니다(Not The Enterprise)'란 뜻의 'NTE'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들을 여기에서 다 소개할 수는 없으니 팬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집중하기로 하겠다.

 

<갤럭시 퀘스트>에서 토니 중위/그웬 역을 맡았던 시고니 위버(오른쪽). 왼쪽에 몸을 기울여 갤럭시탭(으로 추정되는 태블릿 PC)을 보고 계신 분은 이 다큐의 감독인 잭 베넷.
<갤럭시 퀘스트>에서 태거트 함장/제이슨 네스미스 역을 맡았던 팀 알렌
<갤럭시 퀘스트>에서 외계 종족들 중 이름도 있고 나름대로 비중도 있었던 마테자르 역의 엔리코 콜라토니
<갤럭시 퀘스트>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캔틸론

 

'팬'이라는 주제는 이 영화/다큐에서 여러 가지 층위에서 의미를 가진다.

이 영화에서 '팬'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애초에 <갤럭시 퀘스트> 자체가 <스타 트렉>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고, 메타적인 발언이기도 하므로, 감독을 비롯한 제작자들도 (<스타 트렉>의) 팬이다.

그리고 둘째, 극 중 '갤럭시 퀘스트'라는 SF 드라마를 보고 감탄하며 이것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 믿는 테르미안(Thermian) 족도 팬이다(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는 말대로 하자면, '과몰입 오타쿠'들이다. 현실과 허구도 분간을 못하니까).

셋째, 이 드라마가 실제가 아니라 허구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열광하는 (인간) 팬들도 있다. 영화 속 코믹콘에 모인 사람들을 포함하며, 극 중 저스틴 롱의 캐릭터(캐릭터 이름은 브랜든)와 그 친구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무려 저스틴 롱의 캐릭터는 자신의 덕질하는 대상인 태거트 함장/제이슨('태거트 함장'을 연기한 배우의 이름)에게 이 우주를 구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거야말로 모든 덕후들이 꿈꾸는 최고의 상황 아닌가! 내가 존잘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대상이 된다니! 덕후들 좋아서 기절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이건 <스타 트렉>이 팬이 있었기에 시리즈가 계속되고, (첫 세대)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몇십 년이 지난 후에도 다시 리부트될 수 있었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영화 또는 스타가 인기를 얻고 돈을 버는 등, 대략 '잘나간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현상의 원동력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팬들이다.

내가 팬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팬, 그러니까 지지자가 없으면 그 어떤 매체도 저 혼자서 지속될 수 없다.

책이 됐든 노래가 됐든 간에 그걸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어떤 영향력을 가지거나 기록에 남을 수가 있는 것이다.

팬이 있어서 스타가 있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 영화는 감동적으로(여러분이 계를 탄 이 덕후라 상상해 보시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 다큐는 그러한 주제 의식을 가진 영화에 대한 메타이기도 하다.

이 다큐의 감독은 <갤럭시 퀘스트>를 제작하는 데 참여한 프로듀서, 감독, 디자이너, 배우들뿐 아니라 이 영화를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팬들의 모습도 보여 준다.

그중 개인의 이름까지 밑에 자막에 뜰 정도로 따로 섭외된(그러니까 그냥 코믹콘에서 인터뷰할 때 몇 번 잠깐 나오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단독 샷을 받아 추가 촬영을 했다는 뜻이다) 인물이 바로 해롤드 웨어(Harold Weir)와 록새인 웨어(Roxane Weir)라는 커플이다.

이들은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극 중 테르미안들 코스프레까지 하고, 테르미안들처럼 박수를 치고 말하는 것까지 따라 한다. 이들은 정말 '찐'이다. 진정한 과몰입 오타쿠들이라고 할까.

이게 다 <갤럭시 퀘스트>의 유산(legacy)이 아니고 무엇인가!

다큐 후반에 <갤럭시 퀘스트> 상영회에 참여한 배우와 관객들 모습을 보여 주는데, 그걸 보고 가슴이 찡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무언가, 또는 누군가의 팬이다. 꼭 연예인이 아니라도 어떤 성공한 사업가라거나 존경하는 선생님의 팬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우리 모두 어떤 것에 몰입해서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기 어려워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29)>을 보고 나서 며칠간 영화 후반의 그 무서운 장면이 떠올라 소름 끼쳤던 적이 있다.

내가 '몰입'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장면이 떠올랐을 때, '아 뭐야, 그냥 영화 장면일 뿐이잖아' 하고 웃어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제시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영화에 숨겨진 디테일'이라든가 '뫄뫄 장면의 의미' 같은 걸 캐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어쩌면 모두, 과몰입 오타쿠다. 나쁜 뜻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것에 깊이 빠져들었다는 뜻으로.

과몰입 오타쿠들 만세다!! 

 

이 다큐를 보면 2016년에 우리를 떠난 알란 릭맨을 제외한 캐스트, 그러니까 팀 알렌, 시고니 위버, 토니 샬호브, 샘 록웰, 다릴 밋첼 등을 한자리에서 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어제 이 다큐를 볼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내가 좋아하는 미시 파일도 여기에 나왔더라! 레인 윌슨도! 아는 배우들의 초기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ㅎㅎㅎ 

모쪼록 이 리뷰가 <갤럭시 퀘스트>를 보신 분에게는 이 영화를 해석하는 한 가지 방법의 제안으로,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재밌고 좋은 영화를 추천하는 글로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거트 함장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우리가 과몰입 오타쿠들이라 해도,

"포기하지 말고, 항복하지 말라(Never give up, never surrender)!"

 

(그렇다, 이 다큐의 제목도 바로 이 인용문에서 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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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Kingmaker(킹메이커, 2019) -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

 

 

감독: 로린 그린필드(Lauren Greenfield)

 

스탠(Stan., 호주의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약 한 달 전 처음 소개되었을 때부터 흥미롭다 생각했는데 최근에 시간이 나서 드디어 보게 되었다.

필리핀의 악명 높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17~1989) 시절 영부인이자 현재 과부인 이멜다 마르코스를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솔직히 필리핀에 대해 잘 몰랐다. 이멜다 마르코스라고 하면 '구두를 미친듯이 사들인, 필리핀 독재자의 아내'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로렌(네이버 영화 정보에는 '로린'으로 되어 있는데 스펠링을 보면 발음은 로렌이 맞는 것 같다) 그린필드의 이 다큐를 보자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멜다 마르코스의 집안 꼬라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마르코스 독재 시절은 우리나라 박정희 시절 즈음이다(둘은 서로를 극히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확히 말하자면 마르코스 통치 초기만 해도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꽤 잘사는 국가에 들었다. GDP도 우리나라의 몇 배는 됐고.

그런데 마르코스가 나라를 아주 조져 놔서, 필리핀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현재의 처지가 되어 버렸다.

마르코스가 필리핀을 어떻게 말아먹었느냐면, 국가의 부를 전부 뽑아서 자기네들 사치하는 데에 갖다 처박았다.

2019년 블룸버그 통신의 한 기사에 따르면, 필리핀 법원은 마르코스 가문이 부정부패로 모은 2천억 페소, 또는 39억 5천만 달러를 회수하려는 소송을 기각했다고 한다(여기에서 이미 느끼신 분이 있을 것이다. '아, 현재 필리핀 정부도 이미 마르코스와 짝짜꿍이하는 편이라 이 돈을 빼앗아오지 못하는구나'라고. 맞다. 그 얘기는 아래에서 다시 하겠다).

이 정도면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아예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고 무방할 정도다. 그래서 한때 잘나가던 필리핀은 빈국으로 추락...

 

이멜다의 사치는 내가 앞서 말한 구두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참고로 마르코스 가가 하와이로 도피할 때 미처 챙기지 못한 이멜다의 구두만 3천 켤레였다고 한다).

이 다큐 인터뷰에 참여한, 마르코스 가문의 부정한 재산을 회수하려고 노력하는 위원회(정확한 명칭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분의 말씀에 따르면 이멜다의 집에 피카소 그림이 있고, 최근에는 미국에서 모네 그림을 낙찰받았다고.

아니, 도대체 그때 얼마나 해 처먹었길래 마르코스가 죽은 지 30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만큼의 재산이 있는 거지? 모든 필리핀인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왜냐하면 그게 다 필리핀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부를 쪽 빨아간 거니까.

 

이 다큐의 모든 내용, 또는 필리핀의 현대 정치사를 모두 여기에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이 리뷰에 저런 부제("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를 붙인 이유 정도는 설명해야겠다.

마르코스와 이멜다 사이의 아들, 봉봉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려고 몇 번이나 도전했다가 그게 잘 안 되니까 부통령에 도전했다(다큐에서는 그가 캠페인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제일 유력한 다른 후보 레니 래브라도를 인터뷰하기도 한다).

결과는? 레니 래브라도 후보가 승리했는데 봉봉은 선거가 부정했다며 법원에 소송을 건다. 어라, 치졸한 정치인들 하는 건 국적을 막론하고 똑같네. 어디서 배워 오나 보다. 정작 본인 아버지, 마르코스가 부정 선거 했던 건 생각 못 하나 보지?

어쨌거나 법원은 레니 래브라도가 정당하게 부통령에 당선되었음을 알린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두테르테라는 자가 2016년 필리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이자의 아버지가 마르코스 시절 장관을 해 먹던 자였다. 즉, 다시 말해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된 건 마르코스 가문에 절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마르코스 가문에 힘을 실어 준다고 봐야 한다.

어느 정도냐면, "봉봉 마르코스가 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나는 대통령직에서 물러서겠다"라고 공언했을 정도. 레니 래브라도 부통령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며 그녀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말을 공석에서 하는 두테르테 클라쓰~!  

 

이 다큐는 이런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멜다가 차를 타고 가는데 빨간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춘다. 이멜다는 창문을 열고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아이들에게 지폐를 한 장씩 건네준다. 빨간 불 대기 시간이 다 갈 때까지, 계속 아이들이 몰려들어 돈을 구걸한다. 

마침내 차가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게 되자 이멜다의 수행원이 차가 움직여야 하니 비켜 달라고 하고 창문을 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멜다가 도착한 곳은 한 병원. 그곳에서 소아 암 환자들을 만난 이멜다는 자기 수행원을 불러 아이들에게 줄 돈을 가져오라고 한다.

아이들에게만(성인들은 ㄴㄴ) 한 장씩 주어지는 지폐. 이멜다는 그러고 나서 그 병동을 나와, 원래 아이들 놀이터였던 곳을 바라보며 눈물 짓는다.

 

처음에 이 장면을 볼 때는 '뭐야, 왜 돈을 나누어줘? 포퓰리즘의 좋은 예~' 이러고 말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이상하다.

보통 정치인이 유권자들을 방문하면 그들 마음을 살 정책 한두 가지는 제시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학교라면 교육 예산에 얼마는 더 편성하도록 노력하겠다, 병원이라면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줄 방법을 찾아보겠다 같은 것.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느냐는 그다음 문제고, 일단은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도 일단 주워섬기지 않나.

이멜다 마르코스도, 믿기지 않지만, 필리핀의 하원 의원이다(적어도 이 다큐 촬영 당시엔 그랬다). 

그런데 이멜다는 정책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 그저 돈을 건네줄 뿐이다. 이멜다가 그런 정책을 제시했는데 다큐 감독이 시간상 또는 이야기상 편집을 했을까? 글쎄, 별로 그럴 것 같진 않다.

마르코스가 그렇게 나라를 말아먹었는데도 마르코스의 아들이라고 봉봉을 찍어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뭐하러 정책 어쩌고 그런 얘기를 하겠어? 애초에 할 필요가 없지.

다큐 중간중간에 나오는 한 반정부 운동가(마르코스 시절 그에 반대해 데모를 하셨다가 고문까지 당하신 분) 말씀대로, "필리핀인들은 참 용서를 잘해 주는(forgiving)" 민족인가 보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기 나라 국민을 수천 명 고문하고 죽인 독재자를, 그때는 지금보다 형편이 조금 나았다는 이유로(그나마 그때도 빈부 격차가 심했다) 한 표 던져 준다는 게 말이 되나? (잠깐만, 혹시 마르코스가 이런 살해범인 거 모르셨던 분? 독재자가 그냥 돈과 권력만 즐기고 자기 국민들에게 잘해 줬을 거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지는 법이다. 정말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마르코스 가문의 말도 안 되는 돈지랄 중 제일 우스꽝스러운 건 이게 아닐까 한다.

마르코스는 케냐에서 기린이나 얼룩말 같은 '이국적인' 동물들을 여럿 들여와 칼라우이트 섬에 풀어놨다.

그리고 이 동물들이 살아야 한다며, 동물들을 '보호'하는 의미에서 그곳에 살던 주민들을 내쫓았다.

동물들에 밀려서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난 주민들은 나중에 마르코스 가족이 하와이로 도피한 후 다시 섬에 돌아와 살게 됐지만, 주민과 동물의 공존은 어려워 보인다.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면 동물들이 먹거나 망쳐 놓기가 일쑤인 데다가, 이 '사파리'는 적절한 관리인도 없다.

그래서 예컨대 아빠 기린이 자기 딸인 기린과 짝짓기를 하고, 엄마 기린이 아들 기린과 짝짓기를 하는 식으로 근친이 일어났다고 한다.

일부 기린은 벌써 목이 짧아졌다고. 또한 벌레 또는 구더기에 물려서 앓고 있는 동물들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 가고 있다.

동물도 불행하고 주민들도 불행한 이 끔찍한 상황을 만든 건, 이기적인 마르코스 가문의 변덕과 욕심이었다.

 

다큐 내 인터뷰에서 이멜다는 여러 번 반복해서 자신을 '어머니'라고 표현한다. 어릴 적에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었는데 마르코스를 만나 다시 온전해진 느낌이 들었고, 퍼스트 레이디가 되어 필리핀의 어머니가 되었으며, 해외 순방을 나가 전 세계의 어머니 노릇을 했으며 계속 하고 싶다 운운.

이 여편네의 현실 인식 능력이 얼마나 떨어지느냐면, 자신이 카다피도 만나 봤고, 사담 후세인도 만나 봤고, 마오 쩌둥도 만나서 손에 키스도 받아 봤다, 이러고 있을 정도다.

저기, 말씀하신 세 명 전부 다 지금 죽었거든요? 하기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모르니까 그렇게 시대착오적인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겠지만.

(참고로 이멜다 마르코스는 2020년 현재 기준 90세다. 어쩜 90세에도 그렇게 탐욕스러울 수가 있지?)

 

마르코스 가에 대해 욕을 하다 보면 끝이 없을 테니 이쯤 해서 총평을 내리고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다.

필리핀에 대해 잘 몰랐고 관심이 없었던 분들이라도 꼭 한 번쯤 봤으면 좋겠는 다큐멘터리다.

과거를 반복하지 않도록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 의미에서 필리핀의 예를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도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박근혜라는 대한민국의 오점을 당선시킨 전적이 있으니까.

정말 충격적이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좋은 다큐멘터리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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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Life, Animated(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 2016) - 자폐인들도 소통을 원한다

 

감독: 로저 로스 윌리엄스(Roger Ross Williams)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촬영 당시) 23세의 자폐 청년 오웬 서스카인드(Owen Suskind).

그는 자폐인들의 자립을 돕는 교육 전문가들이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는 내년에 이곳을 졸업한 후 독립하여 혼자 살기로 되어 있다.

그의 아버지인 론 서스카인드(Ron Suskind)와 어머니 코넬리아 서스카인드(Cornelia Suskind)의 말에 따르면, 그는 세 살부터 갑자기 말을 잃어버리고 자기 안으로 침잠했다고 한다.

그의 변화에 당황한 부모님이 그를 소아과 의사와 전문의에게 데려간 후 얻은 진단은 그에게 발달상의 장애가 있다는 것.

자기는 '피터 팬', 아버지는 '후크 선장'이라고 역할놀이를 하며 칼싸움을 하던 귀여운 소년은 이제 부모님과 눈도 맞추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웬이 자폐의 증세를 보이기 이전부터, 그리고 보이고 난 후에도 꾸준히 좋아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디즈니(Disney)사의 만화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3살 터울의 형 월트 서스카인드(Walk Suskind)는 디즈니 만화를 보는 게 동생이 자기 옆에서 활짝 밝게 웃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동생과 같이 낡은 VHS 비디오를 같이 봐 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론은 오웬이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모든 대사를 다 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몇 번이고 돌려 본 나머지, 그는 모든 만화의 장면과 대사를 다 암기하게 된 것이다.

그때 론과 코넬리아는 한 가닥의 희망을 본다. 아들이 디즈니 만화를 교과서 삼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는 정말로 디즈니 만화를 통해 세상을 배워 나가고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 오웬 서스카인드

 

오웬 서스카인드의 아버지 서스카인드는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등지에 글을 기고하고 퓰리처상까지 받은 뛰어난 글솜씨로 자신과 아들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이 책을 바탕으로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보통 비장애인들이 웬만큼 크고 나서는 '유치하다'며 졸업하는 디즈니 만화 영화를 통해 삶을 배우는 자폐인 청년 이야기라니,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보게 됐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감동적일 줄이야. 내가 어릴 적 다니던 교회에 자폐인 남자애가 있었고 또 지금도 내 주위에 자폐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기에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아 더 몰입해서 보게 됐다.

 

오웬은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러 가면 총알처럼 재빨리 차에 타길래 무슨 일이 있느냐 물으면 없다고 대답하긴 했는데, 매일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실로 가서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사이드킥(sidekick, 영웅을 보좌하고 도와주는 캐릭터, 예를 들어 <인어 공주>의 세바스찬이나 <미녀와 야수>의 찻잔 모자와 촛불, <라이온 킹>의 티몬과 품바 등)들을 잔뜩 그렸다. 영웅은 한 명도 그리지 않고.

아버지가 오웬에게 왜 사이드킥만 그리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 사이드킥 같은 기분이라고 대답했단다.

그는 그렇게 사이드킥만 그린 노트 끝에 "나는 사이드킥들의 보호자이다. 그 어떤 사이드킥도 홀로 남겨지지 않는다(I am the protector of the sidekicks. No sidekicks gets left behind)."라고 썼다.

그리고 '마지막 사이드킥의 땅(The Land of the Last Sidekick)'이라는 짧은 이야기도 썼다. 이야기는 대략, 어린 소년이 사이드킥들이 사는 땅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들을 보호해 주는 '보호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오웬의 어머니는 이 일을 떠올리며 오웬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러티브를 이용했다는 점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다.

나 역시 무척 놀랐다. 나는 왜 자폐인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나의 무지를 반성한다. 자폐인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이 느낀 것에 대해 표현하려는 욕구도, 또한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 존재들인데.

 

말이 나온 김에, 자폐인에 대한 많은 이들의 잘못된 생각을 깨부수어 줄 장면을 언급해야겠다.

오웬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다! 여자 친구도 같은 자폐인이고, 이름은 에밀리(Emily)이다.

오웬은 그녀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주고, 에밀리는 고맙다며 자신이 만든 미키 마우스 목걸이를 그에게 답례로 건넨다.

둘은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귀엽고 입술이 맞닿는 부드러운 뽀뽀도 한다. 놀라셨는가? 그렇다. 자폐인들도 사랑을 한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아껴 주고 배려해 주는 그런 사랑을.

둘이 있는 걸 보면 정말 귀엽다. 비록 말은 어눌할지라도 서로를 정말 좋아하는 게 느껴져서 흐뭇하다.

다만 사교적, 사회적인 표현은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해서 그런지 뭐 작은 거 하나 해 주면 꼬박꼬박 고맙다고 하고("Aww, thank you!"), 상대방이 어쩌다 다치면 "괜찮아?" 꼭 물어보고 그럼 또 그 사람도 "나는 괜찮아." 하고 안심시켜 준다.

약간 교과서의 영희와 철수 대화 같은데, 뭐, 어차피 표현은 어설프다 해도 중요한 건 마음이니까. 사실 고맙다, 괜찮냐 같은 말은 좋은 말이니까 꼬박꼬박 한다고 해서 나쁠 게 뭐가 있겠는가. 하면 할수록 좋은 거지.

 

어쨌거나 마침내 오웬이 독립해서 새집에 혼자 살게 되자, 오웬은 여자 친구 에밀리를 집에 부른다.

그리고 둘이 하는 것은 너무나 건전한, 쿠키 굽기와 디즈니 만화 보기. 너무나 순수해서 귀엽고 사랑스럽다.

다만 오웬의 형 월트는 오웬이 이제 디즈니 만화에서 배울 수 없는, 더욱 현실적인 것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프렌치 키스(혀를 사용하는 키스)나 섹스에 대해 가르쳐 주려고 어색하게 말을 꺼낸다.

월트는 오웬도 다른 이들과 똑같은 욕구를 가진 남성이니 알 건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물론 맞는 말이다. 디즈니 만화에서는 입술이 포개지는 가벼운 키스 이상은 묘사하지 않으니까[각주:1].

순수라는 것은 분명 아름답고 좋은 거지만 평생 순수한 소년/소녀 상태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오웬의 몸은 이미 2차 성징을 거쳐 성숙한 남성이 되었지만, 그의 마음과 정신은 아직 소년이다. 그는 성장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 과정에는 단연코 불쾌한 일, 슬픈 일, 고통이 뒤따르지만, 그걸 이겨내야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성인이 될 수 있다.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월트 말대로 혀를 사용하는 키스나 성관계에 대해서도 오웬은 배워야 한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알고 경험하는 게 모른 채로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게다가 자폐인들은 알지 못하는 것, 예상할 수 없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며 그런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녀 사이의 스킨십이나 성관계에 대해서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안 그러면 우리가 왜 애들에게 '아기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설명하려고 무진 애를 쓰겠는가?). 이는 분명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의 일부이다. 죄악시할 만한, '모르는 게 낫다' 할 정도의 비도덕적이거나 음란한 문제도 아니고.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월트가 쑥스러운 주제에 용기를 내서 오웬에게 프렌치 키스에 대해 가르쳐 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에밀리가 오웬에게 결별을 고했다는 것.

오웬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한다. "왜 삶은 불공평하고 고통과 비극으로 가득 차 있는 거예요?"

어머니는 말한다. "얘야, 삶은 원래 그런 거란다."

오웬은 다시 묻는다. "그럼 저는 진실을 직면하고 평생 슬퍼해야 해요?"

어머니는 대답한다. "아니, 진실을 직면하되 앞으로 차차 나아질 거라고 믿어야지." 이 부분에서 정말 눈물샘이 폭발할 뻔했다.

애인과의 헤어짐이나 졸업, 구직 같은 문제는 누구나 힘들어하는데 왜 인생이 이렇게 괴로운 일이 많은 건지 묻는다면 '원래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밖에 해 줄 말이 없지 않나...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려고 애쓰고 있는 오웬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이라는 게 참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라는 게 더 가슴이 아팠다.

 

디즈니사의 작품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만화 영화라는 것은 대개 캐릭터의 감정과 얼굴 표정을 과장하여 표현한다.

예를 들어 부끄러우면 얼굴 전체가 빨갛게 변하고, 기쁘면 입이 정말 귀에 걸릴 것처럼 헤벌쭉 벌어진다.

타인의 표정과 감정을 읽기 어려워하는 자폐인들에게는 분명히 얼굴 표정 및 감정 교육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역시나 디즈니사의 작품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만화 영화라는 것은 그 표현에 한계가 있다.

대개 아동을 타깃으로 하는지라, 캐릭터들의 행동이나 이야기의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아주 추상적이거나 부정적인(예를 들어 범죄라거나 심각한 폭력 등) 이야기는 다루지 못한다.

사랑과 우정, 역경을 견디고 성공하는 불굴의 정신 같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에서나 통하는 이런 핵심 가치들은 묘사할 수 있지만, 그것도 아주 깊이 다루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서, 만화에서는 한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웬을 사회성 발달을 도와주는 선생님 말대로, 그 나이대(20대 초반)에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나지는 않는다. 그건 좀 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또한 정말 자기 짝을 만났다고 생각해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나중에 서로의 노력 부족 또는 다른 사정으로 인해 이혼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오웬이 마주하게 되면 오웬은 또 얼마나 상처를 받고 슬퍼할까.

 

영화 중후반쯤에 오웬은 프랑스에서 열린 자폐 학회에 초대받아 연설을 하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대개 사람들은 우리(자폐인)가 다른 사람들과 있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다른 이들(비자폐인)과 같은 것을 원합니다.

다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connect) 방법을 모를 뿐입니다."

나도 자폐인들은 타인을 싫어해서 밀어내는 거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자마자 '아, 그들은 그저 관계 맺기가 서투를 뿐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사실 자폐인들도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고, 또 노력한다. 오웬이 다니는 학교에서 디즈니 만화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디즈니 클럽'을 만든 것도 오웬 본인이다(내 자폐 친구도 자신의 사회성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사교적인 모임에 의식적으로 참가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에서 오웬과 내 친구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에밀리에게 차이고 나서도 에밀리를 저주하거나 하지 않고 먼저 다가가 친구처럼 지내자고 제안하는 오웬.

그에 비하면 나는 오히려 인간관계가 귀찮다는 이유로 적당히 선을 긋고 살아가려고 했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누군가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나는 그저 게을렀던 게 아닐까?

 

오웬은 졸업 이후 독립해서 사는 삶에 적응하고, 헤어진 에밀리와 친구로 지내게 되며, 면접을 본 후 영화관에 일자리도 얻는다.

오웬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죽고 난 후에도 오웬이 독립적으로 살며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나도 오웬의 성장을 응원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자폐인들과 그들의 가족이 힘을 내서 꿋꿋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자페인 가족을 두었거나 또는 자폐인 친구를 둔 사람들에게 그 소중한 이의 마음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이 이 다큐를 제작하는 데 오웬 서스카인드라는 다큐 주제 인물의 특성상 디즈니 만화의 클립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디즈니 측을 설득해서(감독 표현대로 하자면 '변호사들을 울려서') 실제 출시된 디즈니 만화의 영상을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알라딘>의 자파(Jaffa) 역의 성우와 이아고(Iago) 역의 성우도 중반에 깜짝 등장하니 <알라딘>을 비롯한 디즈니 만화의 팬이라면 이를 놓치지 마시라!)

그런 의미에서 디즈니 만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만화를 통해 삶을 배운 이들, 그리고 그 만화와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된(알아야만 했던) 모든 '어른이'들에게도.

  1. 참고로 디즈니에서 '임신한 여성'을 묘사한 것은 2000년작 <쿠스코? 쿠스코!(The Emperor's New Groove)>에서 치차(Chicha)가 여태까지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이다. 그 전까지 섹스는 그것이 법적인 부부 사이에서라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아주 초기에는 부모 관계조차 묘사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간접적으로나마 성관계를 암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날드 덕의 세 조카 휴이, 듀이, 루이를 떠올려 보시라. 삼촌-조카 정도의 관계가 디즈니가 묘사할 수 있는 최선의 '가족' 관계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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