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문지혁, <초급 한국어>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소설. 나는 잘 몰랐지만 문지혁 작가는 번역도 하고 글도 쓰는 작가라고 한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 본인이다. 실화 100%만 담은 것은 아니겠지만, 일단 ‘이민 작가를 꿈꾸며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에 기반한 것은 맞는 듯.
뉴욕의 모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하게 된 저자는 처음에는 기뻤으나, 인생은 늘 생각한 대로만 굴러가지는 않는다. 새로운 대학에서 강사 일을 하기 위해 신청한 EAD(Employment Authorization Document) 카드 발급에 제동이 걸리고, 한 번도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없었기에 처음부터 다 배우고 공부해야 했다. ‘구개음화(palatalization)’는 발음도 어려운데 이걸 영어로 설명하려니 막막하다. 수업을 시작하자 한 학생이 ‘안녕(安寧)’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어온다. 자기네들도 슬랭으로 ‘peace!’를 외치는 주제에…
그러자 학생 중 하나가 손을 들고 영어로 물었다.
“정확한 뜻이 뭐죠? 좀 길어 보이는데.”
나는 화이트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가가서 그 옆에 뜻을 적었다.
안녕하세요? Annyeonghaseyo? → Are you in peace?
안녕히 계세요. Annyeonghi Gyeseyo. → Stay in peace.
안녕히 가세요. Annyeonghi Gaseyo. → Go in peace.
뜻을 다 쓰기도 전에 학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과 함께 동요가 일었다. 몇몇은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내가 뭔가 잘못 말했나요?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는 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어는 더 꼬여 혀끝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얼굴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질문했던 학생이 말했다.
“그런 말을 일상에서 한다고요? 「스타워즈」에서 요다가 할 것 같은 말인데. ‘평안하냐?’”
반쯤 누운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던 그가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아 유 인 피스?’라고 발음하자 나머지 학생들이 모두 웃었다. 그제서야 나는 이 학생들에게 내 번역이 얼마나 황당하게 들릴지를 희미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틀린 건 아니었다. ‘안녕’을 달리 어떻게 번역할 수 있단 말인가?
“하이나 헬로처럼 단순한 건 없나요?”
다른 학생이 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있지요 하고 답했다.
“안녕. Peace.”
학생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고, 내 얼굴은 마침내 완전히 빨개졌다.
게다가 그 와중에 여동생 지혜는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전해 온다. 소설은 지혁의 수업 중 일화와 수업 밖, 지혁의 생활을 교차하며 진행되는데, 각 꼭지가 한두 쪽 정도로 짧고 1, 2, 3… 하는 식으로 꼭지에 숫자가 붙어 있다. 지혜와의 관계는 극 중에서 큰 갈등을 유발하는데, 일단 지혜는 한국에 있으니까 미국에 있는 오빠 지혁과 달리 가장 직접적으로 어머니를 돌봐드려야 한다. 지혜는 오빠가 한국에 들어오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오빠가 후회할 만한 결정을 내리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비록 자신이 엄마 돌봄 노동을 전부 떠맡아야 할지라도. 남매간의 애증이랄까… 솔직히 나는 지혜에 조금 더 감정 이입을 했는데 둘 다 처지가 안쓰러운 부분이 있긴 하다. 어쨌거나 지혜에 대한 이야기 중 이 부분이 제일 웃겨서 소개한다.
그런 문지혜도 나처럼 하고 싶지 않은 게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한글을 배우는 거였다. 국민학교 교사였던 외할머니는 집에 올 때마다 나와 동생을 붙들고 한글을 가르쳤는데, 착실히 배운 나와 달리 지혜는 한글이 싫었던 건지 외할머니가 싫었던 건지(혹은 둘 다였는지) 울며불며 피해 다녔다. 외할머니도 깐깐한 성격으로 치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분이라, 아이를 달래기는커녕 이렇게 협박했다. 너 그러다 나중에 커서 똥 푼다! 그러면 문지혜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나 똥 푸꼬야!
(…)
우리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도 별나지도 않은 사이로 자라나 대개의 남매들이 그렇듯 종국에는 서로에게 그저 심드렁한 관계가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뒤늦게 미대에 가겠다고 설치다가 좌절한 것 빼고는 의외로 별문제 없이 평범하게 자란 문지혜는 결국 대학 졸업 후 잘나가는 회사는 아니지만 업계에서 중간 정도 되는 광고 회사의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매일 계속되는 야근과(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말: 밤 12시에 퇴근하면서 ‘내일은 진짜 야근해야 하니까 오늘은 일찍 가자.’라고 말하는 부장의 습관성 멘트) 매너 없고 감각 없고 무식하기까지 한 클클라이언트들을 상대하는 고단함 때문에 그녀는 늘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이따금씩 집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 이야기가 나오면 그녀는 씁쓸하게 말하곤 했다.
그래서 나 진짜 똥 푸고 있잖아. 아니, 이안나 여사는 어떻게 애한테 그런 저주를 했대?
개인적으로 지혜 씨를 알고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터프하고 유쾌하고 멋진 분이실 듯.
서수진 작가의 <코리안 티처>에서도 이름이라는 소재를 여러 번 이용했는데, <초급 한국어>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언어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이름을 빼놓을 수 없어서 그런 걸까. 어떤 외국어든 가장 먼저 공부하는 게 ‘자기 소개’ 표현이고, 그러면 ‘나는 ~입니다’라고 자신을 정의 내려야 하니까 말이다. 자신이 언어를 배우는 그 문화권 사람들을 위한 배려랄지 사대주의랄지 하는 의미에서 그 언어용 이름(’영어 이름’ 같은 것)을 지어야 할 때도 있고. 지혁도 자신의 이름을 미국인들이 잘 못 알아듣는다는 점, 심지어 자기 영어 이름 ‘조셉(Joseph)’조차 잘 못 알아듣는다는 사실, 어릴 적에 아빠에게 ‘내 영어 이름은 뭐야?’라고 물어봤다는 일화 등을 떠올린다. 개중에 제일 좋았던 것은 이거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나를 위해 준비해 둔 이름은 ‘창대’였다. 교회를 열심히 나갔던 것도 아니면서 자식 이름을 지을 때는 성경을 참조해야 한다고 여겼는지,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하필이면 음식점마다 걸려 있는 욥기 8장 7절의 성구,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에서 따왔다. 그 이름을 전해 들은 할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어디서 그런 생선 장수 같은 이름을 지어 왔냐고 아버지를 타박했다. 분명히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될 거라고, 부모로서 그런 이름을 지어 주는 건 안 될 일이라고 했다. 내 입장에서 웃음 포인트는 할아버지 자신이 생선 장수였다는 사실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직업을 스스로 비하했던 걸까? 거기에 맺힌 내가 모르는 다른 한과 분노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생선 장수’이면서 동시에 ‘생선 장수’에 관한 사회적 편견을 모두 인정하고 있었던 걸까? 내 안에 이런 질문들이 생겨났을 때 이미 할아버지는 세상에 없었다.
맞다. 이것도 가장 웃겨서 골랐다.
지혁은 학습지나 연습 문제를 풀 때 흔히 마주치는, 왼쪽에 있는 항목(그림이나 단어)을 오른쪽에 있는 항목(뜻)을 선을 그어 연결하는 문제를 첫 번째 퀴즈에 낸다. 퀴즈를 치르는 학생들은 열 개의 영어 표현을 반대쪽에 있는 또다른 열 개의 한국어 표현과 올바르게 연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를 ‘How are you?’와, ‘실례합니다’를 ‘I am sorry’와 연결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연필이 “갈 곳을 잃은 채 알파벳과 한글 사이의 바다에 표류 중”일 때, 지혁은 엄마에게 뇌졸중이 생겼고 혈관성 치매를 앓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애쓴다.
25
지혜는 엄마가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뇌졸중과 혈관성 치매에 관해 검색했다.
뇌졸중
(의학) cerebral apoplexy, cerebral stroke, stroke
혈관성 치매
(의학) vascular dementia
곧 눈앞에 새로운 퀴즈가 나타났고, 나는 두 가지를 연결하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1. Cerebral stroke · · 엄마
2. Vascular dementia · · 엄마
아니 이런 표현이라니…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는 점을 학생의 상황에 빗대어 이렇게 표현한다고? 정말 너무너무 기발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너무 가슴 아팠다.
이다음에 나오는 26번 꼭지도 너무 가슴 아프다.
26
엄마의 이름은 여민숙이었다. 이름 탓에 엄마는 학교 다니는 내내 ‘여인숙’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수밖에 없었다고 종종 투덜거렸다. 믿을 수 없는 얘기지만, 환갑이 넘었는데 아직도 엄마의 이름을 진짜 여인숙으로 알고 있는 친구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엄만 엄마 이름이 싫었어?
응, 싫었지. 너무 싫었지.
그럼 뭘로 바꾸고 싶어? 이제라도 바꿀 수 있다면.
바꾸긴 뭘 바꿔. 싫은 대로 사는 거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대화에서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 엄마가 이제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지혜가 말했다.
— 그럼 이제 엄만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거야?
— 자아는 있어. 그게 여민숙이랑 매치가 안 될 뿐이지.
엄마가 쓰러진 이후 지혜의 목소리는 늘 화가 나 있었다.
— 너는 알아보지, 그래도?
— 몰라, 좀 짜증 날라 그래. 여기서 간호하고 있는 건 난데 내 이름은 못 알아듣고 아들 이름만 부른다는 게 말이 돼? 그리고 전화기 좀 바꿔. 영상 통화라도 하게. 21세기에 국제 전화 요금을 내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고. 내 말 알아들어? 제발, 쫌!
‘엄마가 쓰러진 이후 지혜의 목소리는 늘 화가 나 있었다.’ 이거 너무 이해가 되니까 지혁이 살짝 밉기도 한데… 당장 또 지혁이 그렇게 쉽게 귀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현실적으로 딱히 다른 방법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글을 쓸 때마다 ‘순진하고 찌질하며 뼌하다’, ‘너무 반듯한 게 탈이다’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고 (소설 속 몇 가지 일화를 통해) 고백하는 저자의 말대로, 이 소설은 그렇게 큰 ‘재미’는 없다.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결말에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소소하지만 재미가 있고, 단순하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담백한 설렁탕 같다고나 할까. 간이 세지 않고 엄청난 재료로 만든 것도 아니며, 화려한 볼거리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맛있는 그런 음식 같은 느낌이다. 이미 후속작 <중급 한국어>(2024년 4월 출간)까지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참고로 <초급 한국어>는 2021년 1월 출간) 안심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때의 그 안도감이라고 할까. 어쨌거나 소소하게 읽을 책을 찾는다면 한번 읽어 보시라. 길지도 않아서(종이책 기준 192쪽) 제대로 자리잡고 앉아서 한 시간 정도면 끝낼 수도 있다. 주말에 읽기에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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