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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대니얼 코일, <탤런트 코드>

by Jaime Chung 2018.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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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대니얼 코일, <탤런트 코드>

 

 

부제가 '재능을 지배하는 세 가지 법칙'인 이 책은, 무엇이 천재를 만드는지 그 비밀을 파헤친다.

저자가 '탤런트 코드'라 부르는 이 법칙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미엘린(myelin)이라는 신경 절연 물질이다. 저자에 따르면 "야구 선수든 바흐 연주자든 간에, 모든 사람의 스킬은 미세한 전기 신호가 사슬처럼 연결된 신경섬유 회로를 통해 이동함으로써 습득"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미엘린은 신경섬유를 감싸는 역할을 한다.

"야구 스윙을 연습하거나 바흐의 곡을 연습할 때 회로에 정확한 신호가 발사되면, 미엘린이 신경 회로 주위를 겹겹이 감싸면서 저련층을 만든다. 한 겹 한 겹 늘어날 때마다 조금씩 실력이 향상되고 속도도 빨라진다. 미엘린층이 두꺼워질수록 절연 효과가 커지며, 우리의 생각과 동작도 더 빠르고 정확해진다."

그렇다면 미엘린층을 두껍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심층 연습(deep practice)이다.

즉, 본인의 현재 능력과 목표 사이의 간격이 좁을 때 하게 되는, "비탈길을 오를 떄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 같은 연습이다.

가령 악보를 보고 바이올린을 연습한다고 하면, 한 음씩 천천히 연주하되 자신이 틀린 부분을 정확히 인지하고 고친 후 다시 다음 음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연습할 때는 여러 번 멈추어야 해서 음악이 오래 이어지지 않을 것이고, 누가 들으면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 모를 정도로 파편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와 미엘린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이렇게 한 발 한 발 천천히 나아가는 연습이 실력을 쌓는 데 제일 효과적이라고 한다.

미엘린층을 두껍게 만들고 싶다면 정확성이 생명이므로, 속도를 늦추고 자신이 저지르는 실수를 즉시 포착해서 교정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최선의 연습이다.

 

두 번째는 점화이다. 이는 "성공의 물꼬를 트는 돌파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골프 선수 박세리를 예로 든다. 박세리 이전에는 국제적인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한국 골프 선수가 없었다.

그러나 "1998년 5월 18일, 박세리라는 스무 살짜리 무명 선수가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10년 뒤, "박세리와 같은 국적의 여성 선수들이 사실상 LPGA 투어를 점령해 버렸다. 한국인 여자 선수 45명이 LPGA 투어 우승컵의 3분의 1을 싹쓸이했다."

비슷한 예로, 1954년 5월 로저 배니스터(Roger Banister)가 세계 최초로 4분 안에 1.6킬로미터를 완주했다. 그 전까지는 이는 생리학자들은 물론 운동선수들조차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해냈고, 훗날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는 배니스터가 20세기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칭송했다.

그가 성공한 지 몇 주일이 지나자 오스트레일리아의 육상 선수 존 랜디(John Landy)도 4분 장벽을 깼다. "다음 시즌에는 몇몇 선수들이 역시 4분의 벽을 넘었다. 그러자 기록을 깨는 선수가 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3년 안에 무려 17명이 '20세기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저자는 이렇게 진단한다. "근본적인 것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트랙 상태, 훈련 방식, 유전자 등 모든 것이 똑같았다."

다만 그들은 "'나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뚜렷한 신호를 받았다. 그러자 한때 넘을 수 없는 4분 기록은 그 즉시 디딤돌이 되었다." 다시 말해, 그 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게 한번 이루어지고 나니 다른 선수들도 그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게 가능한 거였네? 그럼 나도 할 수 있겠네?' 하고 말이다.

저자는 심층 연습과 점화를 이렇게 비교한다. "점화는 바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심층 연습이 차갑고 의식적인 행동이라면, 점화는 뜨겁고 신비로운 폭발이며 각성이다. 심층 연습이 점증적으로 미엘린층을 감싸는 작용을 한다면, 점화는 번개처럼 번득이는 이미지와 감정에 힘입어 작동한다."

 

세 번째는 마스터 코치(master coach)이다. 어떤 '천재'든 그를 이끌어 줄 지도 교사가 필요하다.

저자는 여러 교사와 코치들을 만나 보고 난 후 그들의 공통점을 파악했다. 그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아주 예민하게 관찰하면서 각자의 성격에 딱 맞는 맞춤 메시지를 전달했다."

두 학자가뛰어난 농구 코치인 존 우든(John Wooden)의 독립적인 티칭 행동을 분석해 본 결과, "그중 칭찬은 6.9퍼센트에 불과했다. 불만의 표현도 6.6퍼센트뿐이었다. 75퍼센트가 순수한 정보였다. 즉, 무엇을 어떻게 하라거나, 혹은 언제 행동의 강도를 높이라고 지시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우든 코치는 "먼저 어떤 행동을 제대로 하는 법을 시범적으로 보여 주고, 잘못하는 법을 보여준 다음, 다시 제대로 하는 법을 보여 주었다." 이 시범은 "3초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굉장히 명확했기 때문에, 교과서의 그림처럼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그는 미엘린이 무엇인지도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마스터 코치들이 그러하듯이, 미엘린의 작동 방식은 제대로 이해한다. 코치들에게 칭찬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학생에게 간결하고 명확하게 알려 주는 것이다.

 

마스터 코치에 대한 놀라운 점 하나 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이에게 새로운 스킬을 가르치려고 할 때, 몸값이 비싼, 최고의 실력을 갖춘 교사를 구해 줘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사실은 꼭 그럴 필요가 없다. 1980년대 초 시카고 대학교 벤자민 블룸(Benjamin Bloom)의 연구 팀이 세계적인 수준의 피아니스트, 수영 선수, 테니스 챔피언, 수학자, 신경과학자, 조각가 12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재는 상당수는 맨 처음에 평범한 선생에게 배우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의 인재는 자신의 생애 첫 선생님을 교육 수준으로 평가했을 때 '평균 수준의 교사'(62퍼센트) 혹은 '평균보다 훌륭한 교사'(24퍼센트)를 선택했다. '아주 훌륭한 교사'로 평가한 경우는 2명에 불과했다.

즉, 피아니트스, 테니스 선수, 수영 선수 대부분이 그들의 생애 첫 선생님을 만난 계기는 "어쩌다 같은 동네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평범한 교사에게 배웠다가 얼마 후 좀 더 실력 있는 교사로 바꾸었기 때문에 그들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일싸?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블룸 교사의 설문 조사에 참여한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는 첫 선생님에게 5~6년 동안 배웠다. 연구팀은 이렇게 표현했다. "생애 첫 교사는 대부분 지리적 근접성과 가용성에 의해 우연히 결정되었다."

물론 그 첫 교사들은 대체적으로 아이들과 잘 지내고, 친절하며, 학생들이 그 분야에 흥미를 느끼도록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마스터 코치의 필요충분조건인 것이다.

 

사실 '무엇이 천재를 만드는지'라는 질문의 답을 지리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에서 찾는, 에릭 와이너의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를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리디북스 셀렉트를 구경하다 보니 이 책이 보이길래 한번 책 내용을 살펴보고 흥미를 느껴서 이것을 읽게 됐다.

천재가 만들어지는 개인적인 요인과 환경적 요인을 모두 다뤄서 내가 보기엔 꽤 설득력이 있다.

에릭 와이너의 책도 여전히 궁금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내가 알고 싶은 건 다 알게 된 것 같다(내가 심층 연습을 열심히 해서, 내가 갈고닦고 싶은 게 뭐가 됐든, 그 실력을 일취월장시킬 수 있다면, 굳이 다른 천재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내가 궁금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내가 이 리뷰에서 요약한 것은 기본 뼈대일 뿐이고, 이 외에 좀 더 자세하게 각 원칙에 대해 설명하니(예를 들어 청킹(과제를 덩어리로 인식하기), 반복, 어떤 말이 능력을 점화시키는지, 좋은 교육의 모델 등) 이에 대한 내용도 읽어 보시라.

개인적으로 논픽션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멋진 문장을 써야 한다는 게 아니라 글의 도입에서 흥미를 유발하고 적절한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전체적으로 글의 구조를 유기적으로 잘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잘 쓰였다.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전적으로 찬성하지는 않더라도 일단 읽는 재미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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