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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코리 스탬퍼,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by Jaime Chung 2018.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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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코리 스탬퍼,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서 일하는 한 사전 편찬자(lexicographer)가 자신은 어떻게 영어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단어를 정의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조곤조곤, 재미있게 들려주는 책이다.

서문, 각 장의 주제가 되는 단어를 제목으로 단 1장부터 14장의 본문,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돼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내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자신이 없지만, 일단 흥미로운 장을 몇 군데 들춰 보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 1장은 Hranfkell로, '언어와 사랑에 빠지는 것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달렸다(이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는지는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 2장과 3장은 각각 But과 It's로 문법을 다룬다. 즉, 우리가 '문법에 맞게 말해야지'라고 말할 때 생각하는, 언어 규칙이라는 의미의 '문법'에 관한 내용이다.

그렇다고 지루하게 문법 강의를 하는 건 아니고, 예를 들어 이런 이야기이다.

영어에서 문장을 전치사로 끝맺지 말라고 하는데, 이 규칙은 사실 라틴어에서 온 것이다. 라틴어에서는 전치사가 문장 끝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공문서가 영어가 아닌 라틴어로 쓰이던 시절부터 사람들은 라틴어가 더 공식적이고, '고급'스러운 언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라틴어 규칙을 영어에도 적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언어에 똑같은 규칙을 강요하려 하니 그게 될 리가 있나.

그러니 문장을 전치사로 끝맺지 말라고 하는 게 소용없다는 얘기이다.

또한 it은 원래 그 자체로 소유격('그것의')이었다. 그러다가 '(아포스트로피)가 붙어서 its가 소유격의 의미를 뜻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심지어 원어민도) it과 its를 헷갈리는데, it's가 it is 또는 it has의 축약형이라는 걸 고려하면 이 셋 중 뭐가 문맥에 맞는지 따져 보기 어려우니 이걸 틀리는 것도 조금 이해가 간다(물론 용납할 수는 없다!).

- 4장은 Irregardless처럼 '틀린 단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ir-와 -less가 부정을 나타내는 접두사/접미사이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이 단어는 '관계가 없는'이 아니라 '관계가 없지 않게'의 의미가 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걸 regardless(무관하게)와 같은 의미로 쓴다. 물론 문법을 잘 안다는 사람들은 이게 틀렸으며 regardless를 사용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사전이 어떻게 틀린 단어를 올릴 수가 있느냐'고, 이런 단어는 사전에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전 편찬자의 일은 판단하는 게 아니고, 언중이 쓰는 말의 의미를 사전에 담아 내는 것이라고.

어떤 말이 틀리지만 널리 쓰이고 있다면 그것도 사전에 반영해야 한다.

- 8장은 Take(이렇게 작은 단어가 더 정의하기 어렵다)

- 9장은 Bitch('나쁜' 단어를 사전에 올려도 되는가?)

- 13장은 Nude(이 단어를 정의할 때 받은 독자 편지의 내용과 사전 편찬자의 고뇌가 어우러져 멋지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 14장은 Marriage이다. 'same-sex marriage'라고 할 때처럼 말이다. 동성 결혼이 이슈가 되자 메리엄 웹스터 사전 편찬자들도 이 뜻을 반영하여 사전을 갱신했고, 그 여파를 저자는 수많은 이메일로 받아 냈다. 살짝 감동적인 장이다.

 

이 후 에필로그와 감사의 말이 이어진다.

이 책은 얼마나 재밌는지(이때 재밌다는 것은 다루는 내용이 흥미롭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표현 자체가 웃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른 책이라면 그냥 훌훌 넘겨 버렸을 '감사의 말'조차 다 읽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agent \ˈā-jənt\ n -s:

(예술가, 작가, 혹은 운동선수 등) 누군가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고객을 격려하고, 보호하고, 고객에게 조언을 하거나 고객의 엉덩이를 걷어차주는 사람 <나의 에이전트 컴패스 탤런트 소속의 헤더 슈로더가 아니었더라면 이 책은 시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col·league \ˈkä-(ˌ)lēg\ n -s:

직장 동료; 특히 : 업무 경험, 지식, 바람직한 침묵, 때로 초콜릿을 공유하는 사람들 <감사하게도 사전 편찬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준 내 동료들은 ― E. 워드 길먼, (중략) 제인 솔로몬은 ― 모두 아주 오랫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자격이 있다.> <메리엄 웹트서, 아메리칸 헤리티지 딕셔너리즈, 옥스퍼ㅡ 대학 출판사, Dictionary.com의 모든 동료들은 내 기억을 더듬고 빈틈을 채우고 이 책을 쓰는 동안 내가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도록 귀중한 도움을 주었다.> ― 'friend'참조

 

내가 정말 사전 편찬자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부분도 한번 같이 보자.

그런 기대를 품고 있다가 사전 편찬이 얼마나 평범한 일인지 실상을 알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 일을 가장 잘 요약한 사람은 내 딸의 친구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자, 그 애는 입을 떡 벌리고 말했다. "세상에 맙소사, 제가 살면서 들은 제일 재미없는 일이네요." 그러나 그 일이 천국의 직업이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새로 사귄 한 지인은 테이블 건너로 손을 뻗어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하루 여덟 시간씩 앉아서 글을 읽는 걸로 월급을 받는다고요?" 그녀의 눈은 기쁨으로 촉촉해져 있었다.

내게는 꿈의 일자리라 할 만하다. 아, 정말 하루에 여덟 시간씩 동료들과 수다도 떨지 않고 그저 글만 읽고, 글을 쓰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재밌는 부분 한 부분 더 보자.

그러나 그날, 날씨가 무척 화창했는데도 나는 호마이카 책상에 이마를 대고 엎드려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이전에 요가 애호가인 동료들과 우리가 책상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요가 자세에 대해 농담을 나눈 적 있었다. 교정지 위에 엎드려 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자세는 '구부정한 노역자' 자세였다. 자리에 앉아 두 팔을 천장으로 높이 뻗는 자세는 '형광등 숭배'였다. 방화문이 쾅 닫혀서 모두에게 눈총받지 않도록 한 손으로 문을 잡는 것은 '걱정하는 사람' 자세였다. 그리고 지금 내 자세는 '방사능 낙진' 자세였다.

이러니 어떻게 이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나 유쾌하고, 흥미롭고, 웃긴데!

나는 이 책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도 이런 책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원래 저자가 말을 재밌게 한 것도 있겠지만 번역가인 박다솜 씨의 작업도 훌륭하다. 번역이 딱히 거슬리는 부분 없이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이분이 옮기신 <여자다운 게 어딨어>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난다. 다음엔 역시 이분이 작업하신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도 읽을 예정이다.

영어라는 언어와 언어의 정확한 사용에 관심이 있는 사람, 그리고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관심이 있으면 공감하며 읽을 것이고, 관심이 없어도 내용 자체의 흥미로움과 재미있는 표현에 배꼽 잡으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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