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Bachelors(2017, 해피 어게인) - 아니, 그렇게까지?
감독: 커트 보엘커(Kurt Voelker)
아내 지니(Jeanie, 킴벌리 크랜달 분)를 잃은 빌 팔레이(Bill Palet, J.K. 시몬스 분)은 아들 웨스(Wes, 조쉬 위긴스 분)를 데리고 LA로 이사 간다.
그곳에서 사립 학교 교사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그곳에서 크로스컨트리 코치 직을 맡은 폴(Paul, 케빈 던 분)이 빌의 대학 시절 친구인 덕분이다), 새 시작을 할 겸 이사를 한 것이다.
빌은 거기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사랑스럽고 다정한 프랑스어 교사 카린(Carine, 줄리 델피 분)을 만난다.
그녀는 분명히 그에게 호감이 있어 보이고 빌도 그녀에게 끌린다. 하지만 자신이 카린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행복해진다면,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 지니를 배신하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낀다.
또한 빌의 아들 웨스는 레이시(Lacy, 오데야 러쉬 분)라는 예쁘지만 다가가기 어렵고 어딘가 어두운 면이 있는 여학생과 프랑스어 수업 숙제를 같이 하게 된다.
어느 날, 웨스는 레이시가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자기 팔에 상처를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아니 그저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아들과 아버지는 두 '독신남'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영화는 빌이 어느 날 밤에 "여기에서 더 이상 지낼 수 없다(I can't stay here any more)"라고 구슬프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집에서 사랑하는 아내 지니가 죽었기 때문인데, 이게 아들 웨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둘 다 아내/엄마인 지니를 무척 그리워한다.
그리고 이게 진짜로 이 영화 속에서 가장 큰 문제이다. 적어도 빌에게는 그렇다.
'내가 지니를 너무나 많이 사랑했고, 지니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내가 (카린을 만나) 행복해지면 안 되는 것 아닐까?'
바로 이 생각 하나 때문에 카린이 참 다정하게 다가와 주는데도 그걸 피하려 하는 것이다.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고, 그녀를 기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이게 진짜 그렇게까지 대단한 문제인가?' 싶어지는 것이다.
오해는 마시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모르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이 두 백인 남성이기 때문에 이렇게 '온건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슬픔, 힘듦, 고통이 일반적인('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그러니까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로서 일반적이라는 뜻이다) 일로 여겨지고 납득될 수 있었던 건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든다는 거다.
내가 지금 이 리뷰를 쓰고 있는 2022년 1월 27일, 이 영화의 IMDB 평점이 6.8점인데, 솔직히 나는 이걸 보고 엄청 놀랐다.
J.K. 시몬스의 연기는 언제나 그렇듯 굉장히 좋다. 줄리 델피도 다정하고 상냥한 프랑스어 교사 역과 잘 어울린다. 연기로는 딱히 흠잡을 구석이 없다.
그렇지만 영화는 연기만으로 구성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야기에는 신선한 구석도 없고(그래서 메타크리틱에서는 역시 같은 날짜 기준으로 54점을 받았다), 오직 두 백인 남성의 '정신적' 고뇌, 고민, 고통 등을 보여 주는 게 전부다.
어떤 사회적인 이슈나 메시지, 사건 같은 건 없다. 물론 꼭 모든 영화가 그런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건 아니고, 철저히 개인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사건들을 다룰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이 두 여성이었다면, 남편/아빠를 잃은 슬픔을 겪고 있는 두 여자들이라면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남성, 그것도 백인 남성이 '디폴트'로 여겨지는 일이야 이제는 놀랍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이게 내가 말한 것처럼 여성들의 이야기였다면 애초에 이렇게까지 많은 관객에게 가 닿지는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그래, 빌은 그래도 이해가 간다. 사랑하는 배우자가 죽었는데 새로운 누군가를 다시 만나 행복해지는 건 그 이전 배우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지.
그런데 웨스는? 난 애가 딱히 '착한', 또는 '좋은' 아들인지 모르겠다. 딱히 아버지에게 큰 효성을 보이는 장면도 없을 뿐더러, 레이시에게도 딱히 엄청나게 좋은 남자 친구는 아닌 것 같다.
레이시가 '난 네가 좋은데, 너에게 키스하면 더 좋아져서 이 관계를 망쳐 버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키스 안 할래'라는 식으로 웨스와의 키스를 피할 때는 '내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거란 말이지? ㅎㅎ' 하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척한다.
그래 놓고서는 몇 장면 지나서 점심시간에 메이슨(Mason, 찰리 드퓨 분, 대충 여자애들에게 껄떡대고 레이시가 쉬운 애라고 말하는 녀석)이 자기 패거리랑 식당에서 자기(랑 자기 친구들 무리) 옆을 지나가며 '메이슨이 원하는 대상은 누구든(Whoever Mason wants)' 운운하는 얘기를 듣더니 그날 부로 레이시에게 가서 '너랑 같이 숙제 못 하겠다' 이 ㅈㄹ을 떤다.
아니 ㅅㅂ, 뭐 궁금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으면 레이시 본인에게 가서 말하거나 물어보면 되지, 학교에서 여자애들에게 껄떡대고, 여자애들 쉽게 보는 패거리가 하는 말 듣고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네가 먼저 잘못했겠지'라는 식으로 나서는 게 얼탱이가 없다.
레이시가 메이슨네랑 술 마시러 간 건 맞는데, 그렇다고 레이시가 걔랑 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아무리 화가 났어도 레이시가 자해하는 걸 들먹이며 '그래도 난 너처럼은 안 해~' 이 ㅈㄹ 하는 게 좋아 보이진 않는다.
진짜 웨스 꼴 뵈기 싫음... 얘야말로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힘든 척은 다 하는 건지. 빌은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고, 죽은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다가오는 상대에게 벽을 치는 거라지만, 웨스는 도대체 뭐가 문제야???
그래서 이 영화가 6.8점씩이나 받을 영화인가 싶어지는 것이다. 아들은 진상, 아빠는 딱히 부족한 거 없는 (기억하시라, 빌은 번듯한 사립 학교 교사인 백인 남성이다) 1세계의 문제를 겪는 중이니,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공감을 해야 하는 걸까.
쓰레기 같은 영화는 결코 아닌데,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정말 '글쎄?'라는 대답밖에 할 말이 없다.
'디폴트 맨'의 경험이 모든 이에게 일반적이고 공통된 경험은 아니라는 걸 내가 말해 봐야 내 입만 아프지. 나는 딱 6점~6.3점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다.
내 생각은 그렇다고.
추신: 왜 국내 개봉명을 '해피 어게인'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영어 제목인 영화를 들어오려면 적당히 번역하거나 아예 제목을 새로 짓는 게 맞지 않나.
영어 제목인데 심지어 원제와는 눈곱만큼도 연관이 없다니... 제목이 내용을 잘 요약하긴 한다. 두 백인 남성이 '다시 행복해'지는 이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