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닐 메타,아디티야 아가쉐,파스 디트로자, <IT 좀 아는 사람>
각각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덕트 매니저에서 일하는 저자들이 뭉쳐서 독자들을 'IT 좀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책을 썼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들은 목표가 "독자가 이 책을 읽고 IT 전문가처럼 생각하는 능력이 잠금 해제되는 것"이라고 썼는데, IT의 기본 개념들을 적당히, 어렵지 않고 깊지 않은 선에서 설명해 주는 걸 읽어 내려가다 보면 IT에 흥미를 가지고 더 배우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반면에 전공자라면 이 책의 내용을 최소 60% 이상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비즈니스 면에서 저자들이 보여 주는 통찰은 학교나 부트캠프에서 쉽게 배울 수 없는 것이니, 전공자라면 이런 점에서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썼다.
예를 들어 코딩에 문외한이지만 IT 기업의 프로덕트 매니지먼트(Product Management), 영업, 마케팅 등 비엔지니어링 직군을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빅데이터 같은 개념을 팀원과 고객에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또 회사의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하려면 과거에 어떤 전략이 왜 성공했는지(혹은 실패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 사례를 토대로 IT 개념을 쉽게 설명할 것이다.
만일 현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지만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쪽으로 커리어를 전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광고, 수익화, 인수합병처럼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기업이나 개발팀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그저 탁월한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 책에서 실제 사례를 보며 기술과 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그 결과로 조직의 성공 전략을 수립하고 투자자나 직원과 한층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IT와 경영을 공부하는 학생의 경우에는 이 책에 교과서적인 사례가 실렸다고 보면 좋겠다. 왜 아마존은 성공하고 블랙베리는 실패했는지 알게 되고, IT 기업들이 어떻게 정책에 대응하고 혁신을 이루어내며 신흥국에 접근하는지 등에 감이 잡힐 것이다.
혹시 지금 IT 기업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IT 기술을 잘 활용하면 앞서가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 이 책은 예측 분석,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AB 테스트 등 요즘 흔히 쓰이는 용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IT 기업이 아닌 기업들도 그런 기술을 이용해 어떤 식으로 사업을 성장싯켰는지 알려 준다.
물론 직업상 IT에 대해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도 일상적으로 IT 기술을 이용한다. 예를 들면 지금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가 그렇다. 이 책은 더 똑똑한 디지털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흔히 쓰는 기술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설명한다. 거기에 대해 망중립성, 개인정보보호, 기술규제처럼 뉴스에서 흔히 듣는 주제를 다루며 가짜뉴스, 데이터 유출, 디지털 마약 거래, 로봇의 일자리 파괴 등 IT의 어두운 면도 조명한다.
위에서 AB 테스트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저자들이 각 개념들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보여드리겠다.
'<워싱턴 포스트> 기사는 왜 제목이 두 개씩 있을까?'라는 꼭지에서 저자들은AB 테스트를 <워싱턴 포스트>의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다음은 동일한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기사를 캡처한 사진이다. 혹시 차이점이 보이는가?
답은 제목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2016년부터 모든 기사에 제목을 두 개씩 쓸 수 있게 헀다. 왜 그랬을까?
테스트를 통해 기사의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서다. <워싱턴 포스트>는 방문자를 두 집단으로 나눠서 각각 A 제목과 B 제목을 보여준다. 테스트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제목 클릭 수 같은 통계 수치를 확인한다. 여기서 더 효과적이라고 판정이 난 제목이 이후로 모든 방문자에게 표시된다. 단순하지만 앱의 효과성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다. 위의 기사만 해도 첫 번째 제목의 클릭률은 3.3%, 두 번째 제목의 클릭률은 3.9%였다. 단 몇 글자만 바꿨을 뿐인데 클릭률이 무려 18%나 상승했다!
이런 기법을 AB 테스트(AB testing)라고 한다. 데이터를 근거로 온라인 상품을 개선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AB 테스트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최소 두 가지 버전(A와 B)을 비교하기 때문이다.
(...)
AB 테스트는 언론계에서 대단한 인기다. 버즈피드(BuzzFeed)는 AB 테스트로 방문자를 가장 잘 낚는 기사 제목을 찾는다. 그 경쟁사인 업워디(Upworthy)는 최고의 제목을 찾기 위해 최대 25개 버전을 테스트한다. 업워디에 따르면 무난한 제목이 만드는 조회수가 1,000번이라면 최고의 제목은 조회수가 무려 1,000,000번이다. 그만큼 AB 테스트가 중요하다.
(...)
기업에서 AB 테스트를 할 때 실험자는 A 버전과 B 버전에서 특정한 수치사 어떻게 다른지 확인한 뒤 p값을 구한다. p값이란, 관찰된 격차가 우연의 일치일 확률을 말한다. 보통 p<0.05, 즉 격차가 우연히 발생했을 확률이 5% 미만이면 그 변화가 의미 있다. 즉 전문용어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라고 한다. 그 확률이 5% 이상이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가령 아마존이 사용자 중 절반에게 '장바구니에 추가' 버튼을 조금 더 크게 표시했더니 매출이 2% 증가했고 p=0.15라고 해보자. 그러면 버튼의 크기를 늘려서 큰 효과를 본 것 같아도 실제로 매출 증가가 버튼과 상관없이 우연히 일어났을 확률이 15%란 뜻이다. 0.15는 0.05보다 크니까 아마존은 버튼 크기를 키우지 않을 것이다.
'AB 테스트'라는 개념을 흥미로운 예시를 통해 배울 수 있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그리고 또 재미있는 사실 하나. 랜섬웨어는 다들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사용자의 컴퓨터에 있는 모든 파일을 암호화시켜서 알 수 없는 글자들로 보이게 하는 악성 코드 말이다.
이 악성 코드에 걸리면 'Meet me on the lawn(잔디밭에서 만나)'이라는 평범한 문장이 'Zrrg zr bagur ynja'라는 암호로 보인다.
다행히도 이걸 다시 해독할 수 있는 '키(key)'가 존재한다. 랜섬웨어를 만들고 유포하는 해커들은 비트코인을 주면 이 해독 키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런데 정말 돈을 주면 암호를 풀고 자신의 컴퓨터를 복구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를 잘못된 믿음이라고 지적하는데, 이 책에서 저자들은 정반대의 경우를 제시한다.
랜섬웨어에 돈이 걸려 있다 보니 웃지 못할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해커들은 신원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돈만 받고 해독키를 안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핸섬웨어 장사를 크게 하는 해커들은 실제로 키를 보내준다. 왜 그럴까? 사람들이 게속 돈을 보내줘야만 자기들도 수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차피 해커가 파일을 안 풀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누가 돈을 보내겠는가?
그래서 뜻밖에도 해커들의 고객 지원이 상당한 수준이다. 일부는 콜센터와 온라인 채팅까지 운영한다. 디자이너를 고용해 멋진 웹사이트를 만들기도 한다. 피해자에게 '신뢰'를 줘야만 하기 때문이다. 신뢰란 말이 남의 생계를 볼모로 잡고 돈을 뜯어내는 족속에게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참 웃지 못할 일이다. 해커에게서 고객 지원을 받는다니. 애초에 악성 코드에 당할 일이 없는 게 최고겠지만, 물론.
이 외에도 흥미로운 사실이 많은데 다 소개해 드릴 수 없어 아쉽다.
IT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으며 배울 수 있을 책이다.
IT는 잘 모르지만 배워야 한다 싶은 분들이라면 일단 이 책 목차부터 살펴보시고, 흥미롭다 싶은 것들을 몇 개 발견하신다면 그것부터 먼저 읽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