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Mixtape(2021, 믹스테이프) - 노래를 통해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면
감독: 발레리 웨이스(Valerie Weiss)
1999년, 기껏해야 Y2K가 제일 큰 두려움이고 걱정이었던 시절, 베브(Bev, '베벌리'의 애칭, 젬마 브룩 앨런 분)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다소 젊은) 할머니 게일(Gail, 줄리 보웬)과 살고 있다.
어느 날 베브는 이런저런 짐이 가득한 다락에서 부모님이 만든 믹스테이프를 발견한다. 처음 들어 보는 펑크 밴드들의 이름과 노래가 북클릿에 쓰인 그 믹스테이프를 설레는 마음으로 틀었는데, 아뿔싸! 그 테이프가 고장나 버리고 만다. 안 돼!
그래도 다행히 밴드와 곡 명이 적힌 북클릿은 그대로다. 베브는 동네 레코드점에 가서 그 북클릿에 쓰인 노래를 하나하나 사서 모으기로 한다.
레코드점 주인장이자 자기 이름이 안티(Anti, 닉 순 분)라는 아저씨는 말 그대로 비사회적인 거 같고 퉁명스러운 데다 쌀쌀맞다.
그래도 어찌어찌 해서 북클릿에 있던 첫 곡을 구한 베브. 감동에 휩싸인다. 나머지 노래도 전부 찾을 거야! 마치 그 노래들이 베브와 부모님을 이어 주는 유일한 실인 것처럼, 하나하나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베브는 옆집에 사는 또래의 여자애 엘렌(Ellen, 오드리 시이 분)과, 고스 족처럼 보이고 약간 무섭지만 사실 내면은 따뜻한 니키(Nicky, 올가 페트사 분)와 친구가 된다.
과연 베브는 부모님의 믹스테이프에 있던 모든 노래를 찾아 듣고 부모님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위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영화에서 언급이 안 되는지, 아니면 분명 언급되는데 내가 놓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고사로 추정) 12살 소녀가 부모님(정확히는 엄마 쪽)이 만든 믹스테이프 속 모든 노래들을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이것만 보고도 예측할 수 있듯이 12살짜리 어린애들이 주연이고 그래서 선정성 0, 폭력성 0, 도박 및 사향성 0의 청정 무구한 영화가 되었다.
백인 여자애 베브가 아시아계 여자애 엘렌, 그리고 백인이긴 하지만 비주류에 속하는 니키와 친해진다는 것이, 이런 성장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다양한, 안 어울릴 것 같은 집단에 속하는 개인들의 우정'을 보여 주는 전형이라 하겠다.
사실 여자애들이 친구가 되어 꽁냥꽁냥 하는 게 귀엽긴 하다. 나쁠 게 뭐가 있겠어.
베브의 부모님도 기껏해야 20대 초중반이었던 걸로 추정된다. 사진만 봐도 엄청난 펑크 록커들이었던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베브도 그 부모님 취향대로 (부모님이 남긴 음악들이 펑크 록이니까) 펑크에 빠져들게 되는데, 솔직히 나는 펑크가 아직 사춘기도 안 온 10대 초반 어린애들에게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
비사회적이고 반항적이고 어쩌고 하는 정서적인 면에서가 아니라(그런 건 전혀 문제없고), 그냥 비주얼적으로 좀 별로다.
12살짜리가 펑크 록커처럼 진한 아이라인을 그리고 검은색 우중충한 옷을 입고 하는 게, 그 나이대에 안 어울린달까. 애들은 화장 안 해도 그냥 얼마나 귀엽고 예쁜데!
이걸 꼰대라고 한다면, 뭐, 반박은 할 수 없지만, 아직 앳된 얼굴에 화장을 한 걸 보면 '끌끌끌' 혀를 차고 싶은 노파심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 이름을 '안티'라고 하는 레코드점 주인 아저씨 말인데, 나는 보자마자 '아, 베브가 이 아저씨랑 친구 먹겠군' 하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뻔한 거 아닌가. 원래 이렇게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타입들끼리도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우정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영화 후반에 보면 '안티'가 베브의 할머니와 잘될 것 같은 분위기도 풍기는데, 베브 할머니는 도대체 나이가 몇인지 모르겠다.
할머니 본인이 좀 젊은 시절에 베브의 엄마를 가졌다 치고, 베브의 엄마도 베브를 십 대에 가졌다 친다 해도, 대략 16살+16살+12살=44살?
그렇게 계산을 하면 베브의 할머니는 40대 초중반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배우가 그것보다는 훨씬 젊어 보인다. 심지어 배우가 1970년생(52세)인데도! 흠... 깊이 생각하지 말고 넘어가자.
베브가 믹스테이프를 통해 부모님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알겠다. 베브가 워낙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 같으니까.
그치만 그 믹스테이프에 담긴 몇 곡만 가지고 부모님을 다 알 수는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음악 취향이란 게 물론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닌데.
뭐, 부모님을 추억할 거리가 적으니까 그렇게 작은 거라도 뜻깊게 느껴지겠지. 게다가 아직 어리니까 음악이 더 감성적으로 강렬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아, 마지막으로 하나 더. 여자애들 셋이 친구 먹고 으쌰으쌰 하는 데다가 베브의 보호자는 할머니라 '베크델 테스트' 정도는 간단하게 씹어먹는다. 걸 파워!!
전연령이 감상 가능한, 청정하고 귀엽고 무해한 영화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시라. 세상 무해하다.
넷플릭스에서 감상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