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Spontaneous(2020, 터지기 전에) - 인생에 대한 비유
감독: 브라이언 더필드(Brian Duffield)
그날은 여느 때처럼 평범한 날이었다. 지루한 수학 시간에 마라(Mara, 캐서린 랭포드)는 책상 밑으로 펜을 떨어뜨려서 그것을 주으려고 몸을 숙였을 뿐인데, 갑자기 피에 뒤덮였다.
마라의 앞에 앉아 있던 케이틀린(Katelyn, 멜라니 배러스 분)이 갑자기 풍선처럼 터져 버린 것이다. 붉은 피를 사방에 뿌리면서.
당연히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고 이 미스터리한 일에 경찰이 출동한다. 일단 케이틀린과 같은 반에 있던 아이들은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하고 샤워를 하며 회색 운동복을 지급받는다.
아이들끼리 둘러앉아 불안해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애가 말을 꺼낸다. "마치 크로넨버그(Cronenberg)의 영화 같았어." 이 아이는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딜런(Dylan, 찰리 플러머 분)이다.
이 말을 알아듣고 피식 웃은 건 마라뿐, 남은 아이들은 '도대체 그게 무슨 농담이냐', '이런 분위기에 왜 그런 말을 하냐'라고 말 없이 비난하는 듯하다.
어쨌든 아이들은 곧 부모님들에게 인계되고, 마라도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부모님을 만나 인사를 하고 그리운 방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보니 모르는 번호로 '나 사실 너 짝사랑 중이야'라는 문자가 온다.
마라는 이 정체 모를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지 역시나 피식 웃고 '거시기 사진은 보내지 마'라며 답장을 한다. 상대방도 농담을 알아듣고 '딕(dick)'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의 사진을 보내는 식으로 응수한다. 마라는 어째서인지 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남자애(로 추정)랑 말이 통하는 것 같다.
그런데 케이틀린의 장례식 날, 장례식이 끝나고 마라가 절친 테스(Tess, 헤일리 로 분)와 카페에 앉아 이야기하는데 어떤 남자애가 갑자기 나타나 너희랑 같이 앉아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마라는 여기서 감을 잡는다. '아, 얘가 날 짝사랑한다던 그 남자애구나!' 그런데 마침 마라는 환각을 보는 버섯을 차처럼 섭취한 뒤여서 약간 속이 메슥메슥하다.
마라는 그 남자애, 딜런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나 토할 것 같으니까 화장실에 같이 가서 나 토하는 동안 머리 좀 잡아 달라고 한다.
될 일은 된다고, 물론 마라는 첫 만남(?)에서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애 앞에서 우웨엑 토를 했어도 이어진다. 딜런은 그날 밤, 마라에게 홈커밍 풋볼 게임에 자기랑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고 마라는 그러기로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풋볼 게임이 시작하기도 전에 풋볼 선수들 중에 한 명이었고 성격도 서글서글해서 인기가 많았던 페리(Perry, 재럿 칼링턴 분)라는 남학생이 케이틀린처럼 피를 사방으로 뿜으며 터져 버린다. 당연히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급히 그곳에서 벗어난 마라와 딜런은 꼭 껴안으며 서로를 달랠 뿐이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아이들이 자꾸 풍선처럼 터져 죽어 나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총기 난사 사건도 아니고, 스나이퍼가 저격한 것도 아니면, 도대체 왜 이런 거지?
아론 스타머(Aaron Starmer)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한 고등학교의 3학년 학생들이 한 명씩 차례로, 영문도 알 수 없이 풍선처럼 폭발해 (정말 글자 그대로) 죽어간다는 설정이 독특하다.
처음에는 '뭐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하고 원인이 드러나기를 바라게 되지만, 한 중후반쯤 되면, 적어도 엔딩에서는 이 '폭발'이란 그저 삶에 대한 비유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원래 삶에서 나쁜 일은, 좋은 일과 마찬가지로, 예상할 수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나고, 우리가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걸 이 소설/영화에서는 그냥 갑작스러운 폭발로 표현한 것뿐이다. 하지만 그건 실제로 사고나 사랑하는 이(가족, 친구 등)의 죽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의미로든 우리가 막을 수 없고 예상할 수 없는 안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이 소설/영화를 '(틴에이지) 로맨스'라고 보기엔 좀 애매하다. 어... 보면 알겠지만 로맨스가 길게, 끝까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으니 그냥 그렇게만 말해 두겠다.
오히려 이 소설/영화는 마라가 성장해 나가는(coming-of-age) 이야기로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근데 이제 로맨스를 곁들인).
안 그래도 <Words on Bathroom Walls(2020, 비밀이 아닌 이야기)>를 보고 나서 찰리 플러머가 나오는 이 영화도 보고 싶었는데, 마침 최근에 넷플릭스에 풀렸더라. 그래서 신나게 봤다 ㅎㅎㅎ
2022.01.26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줄리아 월튼, <화장실 벽에 쓴 낙서>
아마존 프라임에 유료로 있긴 했는데 굳이 안 사 보고 기다리길 잘했다...
이 책/영화가 그렇게까지 '깊지' 않다고 비난할 이도 있을 것 같다. 뭐, 나는 소설은 아직 안 읽어봐서 그에 대해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영화는 썩 나쁘지 않다.
꼭 영화가 엄청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만 좋은 건 아니지 않나. 그리고 애초에 이 원작 소설은 영 어덜트(Young Adult, 12-18세의 청소년)용이다.
청소년이 성인보다 이해력이 부족하다거나 수준이 낮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 나이대의 애들이 굳이 그런 걸 원치는 않는 것 같다.
이 소설/영화도 나름대로의 메시지가 있으니 그거면 되지 않을까?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한낱 나약한 존재이니까 살아 있을 때 사는 것처럼, 매 순간 최순간 다해 살아라,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주저앉지 말고 삶을 포기하지 마라, 뭐 그런 거 말이다.
그런 메시지를 청소년에게 주는 것도 중요하니까.
나는 썩 괜찮게 봤다. 그저 그런 틴에이지 로맨스 영화로 흘러가지 않고 마라의 성장 이야기로 이어진 점에서는 살짝 놀라기도 했고.
원작 소설은 국내에 번역되어 정발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영어 공부 겸 원서로 읽어도 나쁘지 않을 듯?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