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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Raphael Bob-waksberg(라파엘 밥-왁스버그), <Someone Who Will Love You in All Your Damaged Glory>

by Jaime Chung 202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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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Raphael Bob-waksberg(라파엘 밥-왁스버그), <Someone Who Will Love You in All Your Damaged Glory>

 

 

넷플릭스 시리즈 <보잭 홀스맨(BoJack Horseman)>의 제작자인 라파엘 밥-왁스버그(Raphael Bob-waksberg)가 쓴 단편소설들 모음집.

나는 <보잭 홀스맨>은 안 봐서 모르지만, 내가 이 책에 대해 알게 된 북튜버 말로는 그의 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도 좋아할 거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들었으니 <보잭 홀스맨>도 한번 찾아볼까 생각 중.

 

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국내에 번역되어 정식 발간되지도 않은 책에 대해 리뷰를 써 봤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동시대(contemporary) 픽션을 잘 읽지 않는 내 마음에 꼭 들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관계, 그러니까 남녀 사이의 연애, 사랑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두엇 정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이 사용됐다. 터부!(Taboo!) 게임 스타일로 쓰인 단편소설도 있고, <Lies We Told Each Otther (a partial list)>는 '우리가 서로에게 했던 거짓말' 목록 형태로 쓰였는데 신기하게 그걸 읽다 보면 이야기가 있고 흐름이 보인다.

<Missed Connection — m4w>는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의 'missed connection' 섹션(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이어지지 못했을 때 그 사람을 찾는 글. 우리나라식으로 예를 들자면 대학교 커뮤니티나 대나무숲에서 '모월 모일 어디에서 무슨 색 옷 입으셨던 남자/여자분 찾습니다' 같은 글이라고 보면 된다)에 올라온 포스트 형태로 쓰였다.

<Lunch with the Person Who Dumped You>는 당신을 찾던 구 애인과 점심을 같이 하게 되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여러 가지 써 놓았는데, 약간 게임북(분기점에서 독자가 선택지를 골라 그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책. 나 어릴 적엔 학습 만화에 이런 형태가 많았다) 느낌도 든다.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다니 참 신선하고 재밌었다.

 

이 신선한 스타일 시도 중에서 내 마음에 제일 든 단편을 딱 한 편만 고르자면, 스타일 면에서는 보통 소설과 다름이 없는 것들이다.

<A Most Blessed and Auspicious Occasion>. 제목의 '가장 축복되고 상서로운 행사'는 결혼식을 말하는데, 제목처럼 결혼식을 준비하는 커플의 이야기다.

한 커플이 소박하게 결혼식을 준비하려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그랬듯이) 주변 사람들이 자꾸 참견을 해댄다. 그래서 작고 소박하게 하려던 결혼식은 점점 산으로 가게 된다.

이렇게 간단하게 줄거리만 놓고 보면 평범한데 이 이야기의 최고 매력은 세계관이 너무너무 흥미롭다는 거다. 대놓고 드러나지는 않지만 등장인물들의 대화에서 세계가 그려지는데, 보아하니 이곳은 결혼식에서 'Stone God(돌의 신)'을 위해 염소를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다.

또 남주(새신랑)가 웨딩 플래너에게 하는 "Yeah, and you don't even need a master's in social work(맞아요, 그러는 데 사회 복지학 석사도 필요 없죠)."라는 대사를 보면 이 세계에는 석사 과정도 있고 사회 복지학도 학문으로 정립된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주(새신부)가 결혼 허가를 받으려면 대사제(Grand Priest)와 같이 자야(lie)한다고 말하는데, 이건 중세의 '초야권'을 연상시킨다.

남주의 동생은 염소를 도살하는 법을 배우는 수업(goat-slaughtering class)에서 자기 친구들이 어쩌고 하는 걸로 봐서는 그런 것도 있다.

그런데 또 신기하게 남주가 '결혼식 전문 촬영가(videographer)'를 고용할 일은 없다고 말하는 걸로 봐서는 비디오라는 문물도 있는 듯하다.

이렇게 고대, 중세, 현대가 뒤섞인 것 같은 세계관이라니! 너무너무 흥미롭고 재밌어서 이 단편소설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정도였다.

배경은 이렇게 약간 판타지스러운데 이야기는 또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그 조합이 너무 좋았다.

채석장에서 일하는 남주는 결혼식 비용을 대려고 특근을 기대한다. 그런데 채석장에서 사고로 다친 동료가 늘어나자, 관리자는 안전 문제로 특근에 따르는 특근 수당을 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새신부(여주)는 'Promise Egg'(이곳의 관습. 금, 은, 구리 등등 다양한 소재로 만든 알인데 이게 사랑의 징표로 여겨지는 듯하다)를 좋은 걸로 하고 싶어 한다.

애초에 소박한 결혼식을 원하던 둘이라 아내가 사치스러워서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남주는 어떻게든 자기 아내가 될 여자에게 좋은 걸 해 주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는걸! 그래서 부자인 아내의 아버지, 그러니까 장인어른에게 찾아가 고개를 굽히고 조금 도와주십사 부탁한다.

장인어른은 'Promise Egg는 사랑의 징표인데 그걸 싸구려로 하면 내 딸이 뭐가 되나!' 하며 돈을 준다. 사랑하는 여자를 풍족하게 뒷바라지해 주고 싶은데 그게 안 되어 장인어른께 굽실굽실해야 하는 자신이 못난 거 같아 슬퍼하는 게 너무 짠하고 귀여웠다.

게다가 나는 이 책을 오디오북으로도 들었는데 (오디오북으로 들으며 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은 이북으로 찾아보는 식으로) 귀로 들으니 더 그 내용이 와닿아서 더 짠했다.

 

내가 들은 오디오북 버전 표지는 이거였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오디오북으로 책을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 너무너무 좋더라.

낭독자가 대사, 상황에 맞게 연기하듯 톤을 바꿔 가며 낭독을 하니까 귀에 쏙쏙 들어오고 더 재미있다. 사실 위에서 이야기한 <A Most Blessed and Auspicious Occasion>이 오디블(Audible)에서 이 책 샘플로 제공되는데, 북튜버에게 책을 추천받고 호기심이 생겨 이 책을 찾아보다 오디블에 들어가 이걸 듣게 되었고, 너무너무 재밌어서 오디블에 가입까지 해서 나머지를 다 들은 것이다.

참고로 <브루클린 나인나인(Brooklyn Nine-Nine)>의 로자 디아즈(Rosa Diaz) 역으로 잘 알려진 스테파니 비트리즈(Stephanie Beatriz)와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Orange Is the New Black)>의 브룩 소소(Brook Soso) 역의 키미코 글렌(Kimiko Glenn)도 내레이터로 참여했다. 

친근한 목소리로 듣는 책이라니! 그래서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위에서 말했듯이, 아직 정발도 안 된 책에 대한 리뷰가 얼마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책을 읽었으니 나누고 싶은 건 인지상정. 그래서 써 봤다. 이 리뷰가 단 한 명이라도 이 좋은 책에 관심을 가지게 도와준다면 나야 바랄 게 없을 것이다.

번역본이 없어도 괜찮다, 원서도 읽을 수 있으니 좋은 책을 찾는다는 분께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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