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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앤디 자이슬러, <페미니즘을 팝니다>

by Jaime Chung 2018.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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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앤디 자이슬러, <페미니즘을 팝니다>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가 '쿨함'의 아이콘이 되어 티셔츠를 비롯한 여러 상품에 인쇄돼 팔렸듯이, 이제는 페미니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 버렸다.

저자 앤디 자이슬러는 페미니즘이 급진적인 운동에서 '팔 수 있는' 상품,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타락'한 과정을 탐색한다.

예를 들어 엠마 왓슨(Emma Watson)이 유엔에서 성평등에 관한 연설을 하고 '히 포 시(He for She)'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는 재빨리 입장을 바꿔 사실 자신도 몇 년 전부터 페미니스트였다고 밝혔다.

이런 류의 소식은 우리나라 연예 뉴스란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소식이 전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거야 '잘 팔리는' 상업적 가치가 있어서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출판업계에도 페미니즘 열풍이 불어 이와 관련한 책들이 여럿 쏟아져 나왔다.

대중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는 현상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제는 남자들을 증오하는 여자들의 영역으로 비하되던 페미니즘이 그 가치를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상업적인 상품이 된 것이다.

이것의 가장 극단적인 예가 '페미니스트'라는 글자가 인쇄된, 무려 45달러에 팔리는 팬티이다.

누가 팬티에 45달러나 쓴단 말인가? 그것도 평범한 팬티에 '페미니스트' 한 단어를 달랑 써 놓고 그 가격을 받다니.

페미니즘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한 상품은 '할머니 팬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흔한, 그냥 엉덩이를 전부 다 가리는 팬티를 영어에서는 '할머니 팬티(granny panties)'라고 하는데, 2015년 6월 초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는 이런 일반적인 속옷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얇은 선 같은 천 조각이 엉덩이를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T 팬티(thong)는 섹시한 매력이 있지만, '요즘 여성들은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 속옷을 입는다고, 기사 속 어느 속옷 판매원이 말한다.

...정말? 최근에 20~30대 젊은 여성들에게서 일반 팬티가 인기라는 말은 정말 듣도 보도 못했다.

아무리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가 있기로서니, 일반적인 '할머니 팬티' 속옷 시장은 늘 거기서 거기 아닌가?

'페미니즘'이라는 프레임을 이용해 평범한 팬티를 띄워 보려는 알량한 술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것만으로도 페미니즘이 '먹히는' 상품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것 외에도 할리우드의 여배우들이나 영화 등의 예를 들어 페미니즘을 파는 이 시대의 면면을 살펴본다.

내가 흥미롭게 여겼던 것들 중 하나는 미용업계와 페미니즘에 관한 장이었다.

나도 트위터에서 보고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도브(Dove)사의 '리얼 뷰티' 캠페인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도브는 여성과 스포츠, 스포츠와 여성스러움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한 광고뿐 아니라 직업 모델이 아닌 평범한 일반인 여성들을 모델로 한 광고도 제작했다.

모두 '아름다움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잠깐, 그 아름다움의 기준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게 누구지? 바로 도브사 같은 미용업계 기업들 아닌가.

기껏 '당신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같은 광고를 만들어 놓고서 겨드랑이를 환하게 만드는 제품 따위를 계속 만들어 파는 행위를 뭐라고 생각해야 할까?

나는 아직까지도 겨드랑이가 왜 '아름다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겨드랑이는 그냥 겨드랑이일 뿐인데.

우리가 제품을 사서 관리해야 할 부위를 미용업계가 끊임없이 개발해 내는 한, 여자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 아름다울' 수 없다(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지만, '셀룰라이트'라는 용어는 1968년에 패션지 <보그(Vogue)>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의학 학술지도 아니고 <보그>라니!)

 

또한 창립자가 페미니스트로 여겨지는 몇몇 명품 브랜드(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 등을 포함하는) 역시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시선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야기한다.

나는 이게 제일 이해가 안 됐다.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자기 외모를 꾸며서는 안 된다거나 꾸미는 걸 좋아해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패션 디자이너가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어떻게 사회에 긍정적인, 페미니즘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건 내게 마치, 환경 미화원이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말처럼 느껴진다(환경 미화원을 비하하는 것이 절대 아님!). 말하자면 환경 미화원의 일과 페미니즘 운동이 할 수 있는 일이 완전히 다른 영역인데 그 둘이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패션업계도 여성들의 아름다움이나 몸에 대한 이미지를 이용해서 돈을 벌기로는 미용업계 다음이라면 서러운 업계 아닌가. 아직도 난 이해가 안 된다.

 

어쨌거나 분명히 흥미로운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요즘은 확실히 옛날보다 모든 것이 자본주의적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로 평가되고, 심지어 개인의 행동도 소비를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는 것은 좋으나, 그 정체성을 소비가 아닌 행동으로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단 나 자신부터 소비 행태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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