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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제시카 베넷, <페미니스트 파이트 클럽>

by Jaime Chung 2018.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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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제시카 베넷, <페미니스트 파이트 클럽>

 

출판사에서 만든 이 책 광고에 쓰인 대로, '여성들의 오피스 서바이벌 매뉴얼', '직장 내에서 마주치는 온갖 성차별에 대항하기 위한 가장 실용적이고 유쾌한 전투 가이드'라는 카피라인이 적절한 책이다.

제목은 물론 척 팔라니욱(Chuck Palaniuk)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에서 따 왔다(책 앞쪽에 'FFC의 규칙'도 나온다).

저자는 같이 식사를 하며 직장 여성으로서의 고충을 나누는 20~30대 여성들의 모임 '페미니스트 파이트 클럽'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썼다.

그녀의 첫 직장은 <뉴스위크(Newsweek)>지였는데, 이 업계 내에서도 역사와 전통이 깊을 뿐 아니라 성차별이 심한 곳이었다고 한다.

여직원들은 입사하자마자 "여직원은 기사 안 써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남자 상사들은 그녀들을 '인형들(dollies)'이라고 불렀다.

여직원들의 업무는 우편물 카트를 끌며 편지를 배달하는 것, 커피를 타서 남자들 책상에 놓아두는 것, 자료 조사를 하거나 보고서를 쓰는 일 등, 남자들에게 무언가를 건네주는 일만을 배당받았다.

저자는 분명히 기사로 입사했고 명함에도 그렇게 새겨져 있었으나 여자 기자들 기사가 실리는 빈도는 남자 기자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놀라운 건 이곳이 '노골적인 성차별'이 이루어지는 곳은 아니었다는 것. 그렇지만 은밀한 차별은 분명히 존재했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1장 '적을 알라'에서는 '우리의 적', 즉 독자를 비롯한 FFC 회원(책에 FFC 클럽 회원증도 삽화로 그려져 있다)들이 싸워 타도해야 할 대상을 맨터럽터(여자의 말을 중간에 끊는 남자), 소유권갈취남, 비서취급남, 맨스플레이너, 따라남, 생리혐오남, 엄마무시남, 과소평가남, 인맥자랑남, 성희롱남, 일미루기남 등으로 분류했다.

각 '우리의 적' 타입에 대한 설명 뒤에는 그에 대항하는 싸움의 전략도 2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제공한다.

그러고 나서 2장 '너 자신을 알라'에서는 '내 안의 자기파괴자', 즉 여성들이 직장에서 보여 주는 모습을 사무실엄마, 인정기피녀, 도어매트녀, 신체곡예녀, 영원한여비서, 극소심녀, 거짓겸손녀, 충성중독녀, 여적녀, 가면증후군녀, 완벽주의녀, 횡설수설녀, 번아웃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역시 이러한 태도를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되는 싸움의 전략도 제시한다.

 

3장 '직장 생활의 지뢰들'에서는 직장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예를 들어 '여자 상사는 최악이야.')을 해체하는 방법을 다룬다.

4장 '당신의 말을 들리게 해라'는 말하는 득 될 것 없는 언어 습관('말끝마다 사과하기', '업스피크(질문이 아닌 평서문의 말끝을 올리는 것. 확신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말에 보호막 치기' 등등)을 살펴보고 대안을 제시한다.

놀랍게도 5장 '시끄럽고요, 돈이나 주세요'에서는 연봉 협상을 위한 테크닉을 알려 준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문화 차이는 고려해야겠으나 그래도 이에 담긴 기본적인 태도 및 몇 가지 어구는 배워 두면 유용할 듯싶다.

 

6장 '조시라면 어떻게 할까?'에서는 저자는 자신이 알고 지낸 옛 회사 동료 '조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기술의 달인이었단다. 즉석에서 떠올린 아이디어를 마치 오래 숙고하고 조사한 것처럼 매끄럽게 자기 말로 풀어내고, 자신이 일을 망쳤을 때에도 냉철함을 유지했으며, 일하던 부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부서로, 그것도 연봉까지 두둑히 올려서 옮겨 가기도 했다.

조시와 관련된 에피소드 중 압권은 그가 레스토랑을 얘기할 때의 일이다. 그는 예약할 때마다 담당 직원에게 자신이 누군가 높은 사람의 비서인 척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데이비드라고 하는데 조시 누구누구 사무실에서 전화드렸습니다. 그분이 세 명 자리를 예약하고 싶어 하시는데요."

그의 탁월한 예약 기술 덕분에 그들 능력으로는 절대 들어갈 수 없었던 곳에서 멋진 식사를 했다고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겠는가? 이 6장의 부제처럼, '우리에겐 그저 보통의 남자가 가지는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이 챕터에서는 '조시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소제목 아래에서 '조시처럼 해보기' 방법을 제시한다.

 

이렇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독자도 주변의 직장 여성들을 모아 FFC를 만들고 싶어질 것이다.

책 맨 뒤에 있는 'FFC에 가입하세요!'라는 코너에서는 독자들이 FFC를 어떻게 결성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무엇을 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간략히 제시한다.

책 자체는 쉽고 재미있게 쓰였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빈약한 것은 아니다.

재치 있는 삽화도 책의 내용과 무척 잘 어울린다. 책의 매력을 200% 상승시켜 준다.

 

삽화는 이런 그림체이다. 이건 내가 찍은 게 아니라 구글 검색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힌다.

 

나는 전자책으로 봤지만 삽화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종이책으로 봤더라도 참 좋을 거 같다. 마음에 드는 삽화가 있는 부분은 뜯어서 들고 다니고 싶을 정도.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자신의 일터에 대한 푸념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적이 있는 여성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여성 동지들이여, 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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