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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Whale(더 웨일)>(2022)

by Jaime Chung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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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Whale(더 웨일)>(2022)

 

 

⚠️ 아래 영화 후기는 <The Whale(더 웨일)>(202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찰리(브렌든 프레이저 분)는 고래를 연상시킬 정도로 거대한 자신의 몸집이 부끄러워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대학 글쓰기 강의에서 카메라도 켜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학생이었던 앨런과 사랑에 빠져 아내 메리(사만다 모튼 분)와 딸 엘리(세이디 싱크 분)를 떠났지만, 아직도 딸을 생각할 정도로 사랑이 크다. 지금 그의 곁에 남아 있는 것은 그를 돌봐주는 친구이자 간호사인 리즈(홍 차우 분)뿐. 어느 날, ‘새 생명 교회’라는 사이비 교회에서 전도를 위해 찰리의 집을 찾은 토마스(타이 심킨스 분)는 때마침 찰리가 울혈성 심부전으로 거의 죽을 뻔한 모습을 보고 그를 도우려 하지만, 그가 토마스에게 부탁한 것은 에세이를 소리 내어 읽어 달라는 것뿐이었다. 이 에세이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무엘 D. 헌터의 동명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 개인적으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명성과 브렌든 프레이저의 복귀작이라는 사실만으로 기대하며 봤으나, 생각보다 결말이 허무해서 실망했다. 아니, 그래서 마지막에 찰리가 죽는 건 알겠는데요, 엘리처럼 버릇없는 애를 그렇게 놔두면 안 되지요! 내가 이 결말에 실망한 건, 찰리가 죽는다는 사실보다(리즈가 내내 찰리는 이번 주말을 못 넘길 거라고 말했으니 그건 이해가 된다), 엘리처럼 못된 십 대 자녀를 끝까지 사랑하는데 애는 딱히 변하는 게 없다는 점 때문이다. 마지막에 찰리를 마침내 ‘아빠(daddy)’라고 부르긴 하지만, 그렇게 찰리가 죽고 나서 과연 애가 늘 하던 대로 음습하게 남의 사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리고 욕하고, 남의 약점이 될 만한 말을 녹음해서 다른 사람에게 꼰지르는 일 따위를 관둘까? 나는 회의적이다.

브렌든 프레이저는 이 영화 내내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 준다. 272kg의 거구로 변신하기 위해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분장도 감수할 정도의 연기 열정을 보였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브렌든 프레이저가 연기에 진심인 것, 그리고 이 영화로 정말 멋지게 복귀한 것(그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6분간 기립 박수를 받는 영상은 이미 인터넷에 널리 퍼져서 조금만 검색하면 다 볼 수 있다)은 참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글쎄… 5점을 만점이라고 치면 나는 3점, ‘보통’ ‘나쁘지 않아요’ ‘괜찮아요’에 해당하는 점수를 주고 싶다.

극 중 찰리는 자기가 온라인으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제발 좀 솔직한 글을 써라’라며 (홧김에) 전체 메시지를 날리는데, 그다음 수업 때 그는 그 메시지에 응답해 온 학생들의 글을 읽는다. 대체로 비관적이고, 겁에 질려 있으며, 부정적인 내용이다. 예컨대, ‘우리 부모님은 나보고 방사선 촬영 기사(radiographer)가 되라고 하시는데,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겠다’ 같은 것. 남들이 자기의 초고도 비만인 모습을 보면 역겨워할 거라고 생각해서 자주 피자를 시켜 먹는 가게의 배달원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사람이 남에게 ‘솔직’, ‘정직함’을 요구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뭐가 솔직한 거고 정직한 것인지 어떻게 파악하나? 예컨대 내가 어떤 작가의 글에 대해 ‘나는 이러이러한 점이 너무너무 좋았고, 이 작가는 내 최애 작가다’라며 정말 진심을 담아 글을 쓸 수도 있는데, 찰리가 엘리의 글(대체적으로 ‘모비 딕’이 별로였다는 내용)을 줄줄 외우며 이것이 진짜 잘 쓴 글이라고 하는 걸 보면, 그가 생각하는 진심, 정직함이란 부정적인 기분을 그냥 그대로 드러내는 게 아닌가 싶다. 그건 그냥 자격지심의 한 모습이 아닐까? 뭔가를 진심으로, 솔직하게 좋아하거나 좋다, 멋지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거지! 언제부터 솔직함, 정직함이 부정(否定)이나 비관과 동의어였나? 엘리는 솔직한 게 아니라 그냥 싸가지가 없는 거고요… 유튜버 오마르 씨가 ‘찐따는 듣는 사람의 기분은 고려하지 않고 맞는 말만 한다’라는 요지의 말을 했는데(쇼츠, 캡처본) 딱 엘리에게 해당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질풍노도의 십 대니까 엘리가 조금 이해는 되지만, 찰리는 성인인데요… 그 나이에는 책임을 돌릴 만한 다른 대상이 없잖아요…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나는 가정을 포기하면서도 ‘그래도 내 자식 새끼는 사랑해’ 하는 감정을 잘 이해 못 하겠다. 이건 <안나 카레니나>를 처음 읽을 때부터 느꼈는데, 불륜 따위로 가정을 포기했는데도 그래도 자식은 보고 싶고, 사랑한다는 마음은 내 이해 범위를 넘어섰다. 안나나 찰리나 둘 다 자기가 가족을 버려 놓고 그래도 제 자식 새끼는 사랑한다고… 아, 예… 자식들은 이미 상처를 받았는데, 그래도 사랑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부모가 합의로 인한 이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불륜(찰리의 경우도 불륜 맞지, 뭐)으로 가정이 박살 나는 건 경우가 다르지요… 불륜을 할 정도로 배우자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그냥 이혼 먼저 하시고 다른 사람을 만나세요… 그러면 자식도 이해할 가능성이 조금은 더 있지 않을까. 어떻게 (배우자 외에) 애인도 만나고 가정도 (또는 자식과의 관계도) 지키려고 하지? 우리는 그런 걸 도둑놈 심보라고 하기로 했어요. 게다가 찰리는 자기가 가르치던 동성의 대학생이랑 눈이 맞은 거니까 가족 입장에선 더 충격이겠지. 자기 성적 취향을 뒤늦게 깨달았으면 그냥 이혼 먼저 하시고 다른 사람을 만나셨어야죠… 이건 아무리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인) 브렌든 프레이저가 연기해도 용서가 안 되네. 앨런이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자기네가 뭐라고 남의 성적 취향을 인정하니 마니 하지?) 사이비 교회의 일원으로 태어난 건 (아버지가 이 교회의 목사였다고 했나) 앨런 잘못은 아니고, 또 결국 종교적인 신념과의 괴리로 자살한 건 너무나 안타깝지만, 불륜 때문에 가정을 박살 낸 건 그런 선택을 한 찰리의 잘못이 맞거든요.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명성, 기대에 비해 다소 아쉬운 작품이지만 브렌든 프레이저를 비롯한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굉장하다. 이 연기를 한번 내 두 눈으로 보고 싶다 하는 분에게는 권할 만하지만, 막 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지 않는 분에게 굳이 추천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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