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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스기타 슌스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

by Jaime Chung 202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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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스기타 슌스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

 

 

제목부터 오묘한 이 책은 ‘승자도 패자도 아닌 존엄한 인간으로 사는 21세기 남성학’이라는 알쏭달쏭한 문구를 부제로 달고 있다. 도대체 무슨 책인가 궁금해서 읽어 봤는데,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리 잘 쓰이지 않은, 남성들을 위한 페미니즘 책’이라 하겠다.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일단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일 부분부터 말하자면, 여성혐오적이라거나 반(反)페미니즘적인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아쉽게도 괜히 쉬운 말을 빙 돌려서 한달까, 핵심은 전혀 가 닿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이제부터 그 점을 풀어서 설명하겠다.

저자가 말하는 바는, ‘약자 남성도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고, 그래야 한다’라는 것인데 사실 저자가 말하는 ‘약자 남성’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의미와 다르다. 오히려 ‘인셀’ 또는 ‘방구석 찐따’와 비슷한 의미인 듯하다. 저자가 책의 초반에서 말하는 약자성의 기준을 보자.

여기서 말하는 약자성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비정규직 형태의 노동 수입
  • 호감을 얻기 어려운 외모
  • ‘소통 장애’라고 스스로 비하하는 소통 능력 문제
  • 다양한 수준의 발달장애와 정신 질환 문제
  • 현실 애인 또는 예비 배우자의 존재 여부

그러니까 우리가 ‘약자’라고 말할 때 흔히 생각하는 기초 수급자나 장애인, (성)소수자 또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비주류인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저자가 여러 번 언급하는 영화 <Joker(조커)>(2019)(호아킨 피닉스가 ‘조커’로 분한 바로 그 영화)를 ‘인생 영화’로 꼽고, 그 조커처럼 ‘사회에 멋진 한 방’을 날리고 싶어 하는 그런 부류들 말이다. 그런 이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다만 이 한 가지는 유념해야 한다. 오다큐센과 게이오센에서 일어난 범행과 〈조커〉에서 아서가 휘두른 폭력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일본 사회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과는 달리 적어도 아서는 ‘아래(사회적으로 아래에 있다고 여겨지는 약자들)’가 아니라 ‘위’에 있는 자본주의와 권력구조를 향해 총구를 당겼다(설령 복잡한 가족 간 갈등으로 어머니를 살해했을지라도).

아서의 내면에는 무차별을 가장한 차별적 증오가 아니라 사회적 분노가 있었다.

약자 남성으로 살아가는 아서가 죽인 건 ‘행복해 보이는’ 여성도, 고령자도, 장애인도 아니었다. 하물며 외국인과 이민자를 배척하는 차별 의식도 없었다.

어떤 폭력이든 용납할 수 없다는 입바른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싸워야 할 적을 오인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위로받으려고 하기 전에 아서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약자 남성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아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권력자, 부자, 사회 구조에 끝까지 맞서 싸워야 했을까?

모든 걸 내려놓고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견뎌야 했을까?

그도 아니면 이 모든 건 국가·정부, 자본·기업의 책임이고 아서는 아무런 책임도 없을까? 복지국가와 사회적 포용(social inclusion) 기능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은 게 문제일까?

잠시 멈춰 이 부분에 대해 고찰해 보고 싶었다.

위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이들에게 여성이나 다른 약자들(고령자, 장애인, 외국인, 이민자 등)에게 분노하고 폭력을 발산하지 말고, 진정한 적과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진정한 적은 약자 남성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진정한 원인인 국가, 정부, 자본, 기업, 그러니까 사회와 제도를 가리킨다.

말만 보면 멋지고 맞는 말인데, 애초에 보통 우리 사회가 ‘인셀’ 또는 ‘방구석 찐따’라고 부르는 것들을 ‘약자’라고 부르는 건 뭔가 너무나 포장을 잘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들에게 여성 같은 ‘쉬운 타깃’에게 분노하지 말라는 것도 물론 맞는 말이고 당연한 것인데, 이런 찐따들을 보호가 필요한 존재임을 뜻하는 ‘약자’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그 말에 대한 모욕 같다. 이들이 정규직이기 때문에 경제적 기반이 안정되지 않아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한다거나 (따라서 노인인 부모에게 경제적 짐을 지운다든가) 결혼과 출산을 꿈도 못 꾼다면, 그것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제도를 세워 도와야 할 일이 맞는다. 발달장애와 정신 질환 문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호감을 얻기 어려운 외모나 소통 능력 문제, 애인 또는 배우자의 존재 여부로 ‘약자’를 가린다는 건… 여성들은 자기가 못생겼다고, 소통 능력이 딸린다고, 애인이나 배우자가 없다고 스스로를 ‘약자’라고 여기며 사회나 정부를 상대로 분노하지 않는데요? 여성들은 그냥 결혼을 바라지도 않고, 동성 친구들 또는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 친구들과 행복하게 살걸요.

저자가 여성이 일정 수준 이상 진급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현상을 가리키는‘유리 천장’이라는 용어와 비슷하게 “남성은 약자가 되면 유리 바닥이 깨져 지하실로 추락해도 아무도 모른다”는 뜻의 ‘유리 지하실’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도 그저 우스울 뿐이다. 게다가 저자가 조금 더 나아가 추가하는 ‘약자 남성’의 넓은 의미를 봐도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약자 남성’의 ‘약함’(취약성)은 여성·성소수자·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안티’가 아니라 주변성과 비정규성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약자 남성은 비정규화, 주변화된 다수자 남성들을 가리킨다.

정규직 고용, 표준적인 가족상, 정해진 궤도로 운행하는 인생, ‘남자다움’, 지배적인 남성성 등의 ‘정규성=정답’에서 탈락하고 이탈한 다수자 남성 중 일부. 이들이 약자 남성이다.

즉, ‘약자 남성’이 사회가 전통적으로 ‘남자답다’라고 여겼던 특징 또는 자질들을 갖지 못한 (않은) 남성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해 보자. 예컨대 소위 ‘여성스럽다’라는 소리를 듣는 남자들, 다정하고, 섬세하고, 여자 사람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그런 남자들. 그런 남자들에 대한 반감은 나도 없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이 ‘약자 남성’이라고 정의한다면, 더더욱 저자가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남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맨박스’를 벗어던지는 것이고, 페미니즘을 배우고 실천하며 건강하지 못한 가부장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가부장제는 여성들만 구속하는 게 아니라, 여성들을 구속하는 똑같은 기준으로 남성들도 구속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신체적으로 강인하고, 여자들은 약하다, 남자들은 이성적이고 여자들은 감성적이다’ 이런 말들은 남녀 모두에게 해롭다. 신체적으로 강인하지 못한 남자들, 이성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남자들을 여성처럼, 즉 2등 시민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이걸 이제 남자들도 스스로 알 때가 되지 않았나?(이걸 우리가 말해 줘야만 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씁쓸할 것이다).

이 점을 안다면 저자가 해야 할 말은 추상적이기 짝이 없는 ‘국가·정부, 자본·기업에 분노하라’ 운운할 게 아니라, ‘약자 남성들이야말로 가부장제에 저항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해야 했다. 그런데 이 책 어디를 봐도 ‘맨박스’라든지 사회가 강요하는 남성성이 어떻게 남성을 힘들게 만드는지, 페미니즘이 왜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말은 없다. 오히려 ‘인셀’이나 ‘방구석 찐따’들이라면 더더욱 이해하기도 힘들고 관심도 없을 것 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나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등의 작품들에 나타난 미소니지 또는 남성들에게 불가능한 연대 이야기를 길게 한다. 아니, 왜 분위기 갑자기 문학? 찐따들은 그런 작품들 알지도 못한다니까요? 타깃을 잘못 잡으셨어요…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일단 대중적으로 ‘약자 남성’이라는 타깃 설정부터 공감을 받기 어려울 뿐더러 (’약자 남성이 뭔데?’ (설명을 들은 후) ‘그건 그냥 찐따 아냐? 걔네들을 약자로 봐줘야 해?’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니), 실제로 그런 타깃에 가 닿는다 하더라도 저자가 하는 말이 먹힐지 모르겠다. 걔네는 문학이나 예술을 전혀 모르는 애들이거든요… 저자가 생각하는 그런 타깃에 설득하려면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가 적이 아니고, ‘맨박스’, 즉 가부장제가 문제임을 알게 설명을 해 줘야 할 텐데, 어느 정도로 쉽게 이야기해 줘야 이해할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말이 안 통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라는 진중권의 명언이 떠오른달까… 어쨌거나 뭔가 새로운 걸 이야기하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고, 정말 중요한 핵심은 말도 못 꺼낸 책이었다.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면, 책 제목도 ‘자본주의 사회에서’가 아니라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이 되어야 했다. 전반적으로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차라리 페미니스트인 남성이 같은 남자들을 비판한 박정훈 기자의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같은 책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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