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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야기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인생은 운칠기삼 - 억세게 운이 좋은, 호주의 첫 동계 올림픽 금메달 이야기

by Jaime Chung 2018.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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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인생은 운칠기삼 - 억세게 운이 좋은, 호주의 첫 동계 올림픽 금메달 이야기

 

나는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인생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믿기 시작했다.

학생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접하기에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되, 그렇지 못한 일은 어떻게 되든 간에 이게 하늘의 뜻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잘되면 좋은 거고, 아니어도 어쩔 수 없고.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한 상태에서 마음을 놓고 기다리면 대개는 운이 따르곤 한다.

최근 나는 내 이런 믿음을 강화시키는 일례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억세게 운이 좋은 이 사나이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라.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호주의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인 스티븐 브래드버리(Steven Bradbury).

그가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을 때의 일이다.

남자 1,000m 쇼트 트랙 준준결승에서 그는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Apolo Anton Ohno) 선수와 당시 세계 챔피언이던 캐나다의 마크 가뇽(Marc Gagnon) 선수와 같은 경기를 배정받았다.

이 쟁쟁한 두 선수가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는 1, 2위를 다툴 거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는 3위로 들어왔다.

그런데 가뇽 선수가 다른 선수의 앞길을 막았다는 이유로 실격되자 그는 얼떨결에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코치와 작전을 짰다. 그는 속도가 느려서 다른 선수들의 페이스에 맞출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선두와는 거리를 두고 뒤에서 유유히 스케이트를 타다가 혹시나 다른 선수가 무너지면 그 자리를 꿰차기로 했다.

총 다섯 명이 경주하는데 그중 둘만 넘어져도 다른 세 명이 메달을 딸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는 어차피 지금까지 자신이 얻어 낸 결과(준결승 진출)에 만족했고, 이 경기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선수로서 다른 선수들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준결승 때 그는 뒤처져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챔피언이던 한국의 김동성 선수, 몇 번이고 올림픽 메달을 거머쥔 중국의 리자준(Li Jiajun) 선수, 캐나다의 마티유 튀르콧(Mathieu Turcotte) 선수가 모두 넘어졌다.

이는 마치 나아갈 길을 터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1위로 들어왔고 결승에 진출하게 됐다.

 

결승에서도 그는 또 다시 다른 네 명의 선수와 페이스 차이가 났다. 오노와 한국의 안현수 선수, 리자준, 튀르콧은 그보다 저 멀리 앞에 있었다.

그런데 오노와 리자준 선수가 살짝 접촉하더니 이 뒤를 따르던 튀르콧이 그들을 피하지 못하고 넘어졌다. 당연히 앞의 두 선수도 쓰러졌고, 그 뒤에 있던 안현수 선수까지, 총 네 명이 다 넘어졌다.

결승선에서 50m 남은 상황에서 선수와 15m 뒤처져 있던 브래드버리는 이 접촉 사고를 피할 수 있었고, 부드럽게 스케이트를 타 1위를 기록했다.

 

위 영상을 재생하면 이기고도 안 믿겨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브래드버리 선수를 볼 수 있다.

 

그의 커리어를 바꾸어 놓은, 이 기적 같은 행운 3연타에 대해 그는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지금 그 경기를 (똑같이) 다시 치른다면, 금메달은 받겠지만, 단상에는 오르지 않겠다. (...) 하지만 당시에 나는 잠시 생각해 본 후, 그 메달을 받기로 결심했다. 그 경주 때문이 아니라, 그 경주 이전의 14년간의 고된 노력 때문이었다."

(https://www.news.com.au/sport/sports-life/steven-bradbury-still-deals-with-lingering-unease-over-his-famous-gold-medal-win/news-story/7678bef276f1a98279dec8f1b6698b78)

운이 세 번이나 겹쳐, 자기 앞의 다른 선수들이 넘어져 어부지리로 메달을 딴 것이 다소 정정당당하지 못한 일이라 느껴졌던 듯싶다.

그 심정도 이해는 된다. 내가 멋지게 노력을 해서 남들보다 앞서서 1등을 한 게 아니고 다른 선수들이 실수로 무너져서, 말하자면 '날로 먹은' 것 같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다른 선수들 넘어지라고 발을 걸었거나, 부두 주술사라도 고용해서 이들에게 저주를 걸었다거나 한 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이 메달이 그가 14년간 열심히 훈련하고 선수 생활을 한 데에 따른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내 앞의 선수가 줄줄이 넘어지는 일이 세 번이나 일어나,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도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게 되는 일, 과학적으로 따져 보자면 아마 가능성은 0에 수렴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에게 맡긴다', 즉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좋은 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스티븐 브래드버리의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려고 한다.

여러분도 미래를 너무 두려워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은 어차피 걱정해도 소용이 없으니까. 그냥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고 운을 믿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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