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황유미, <독립어른 연습>
밀리의 서재에서 제공하는 오리지널, 단독 작품. 황유미 작가는 이미 <I형 인간의 사회생활> 시리즈를 밀리의 서재에서 연재한 적이 있다(개인적으로 이건 아직 안 읽었지만). 이번에는 ‘독거 노인’이 될까 두려운 마음에서부터 시작해 연애, 집, 질병, 노후, 그리고 죽음까지, 혼자 사는 삶의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룬다.
저자가 상당한 I형이라 책의 많은 부분에 공감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런 부분.
혼자인 미래가 정말 걱정이 된다면, 소개팅을 비롯해 ‘틴더’ 같은 데이팅 앱을 돌리며 연애부터 해보려고 노력을 해야겠지. 그러나 사교의 과정을 즐기지 않으며, 익숙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개인적인 성향, 외출할 때마다 HP가 마이너스까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타고난 에너지 수준이 극도로 낮은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평범한 사람끼리 만나 보통의 연애를 하는 일이 곡예처럼 대단하게 느껴진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어도 종업식 때까지 말 한번 걸어보지 못했던 학생, 방구석에서 혼자 놀 때 가장 즐거웠던 아이는 자라나 낯선 사람과 수차례 상호 면접 끝에 새로운 관계로 진입하는 과정을 거북하게 느끼는 수줍음 많은 I형 인간으로 자라나고 말았다.
사람을 끌어당겨서 모으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힘은 사교적인 성격에서 나온다. 성격이 곧 팔자라고 했던가. 동의한다.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잠시 적응한 것처럼 보일 뿐, 결국 억지로 힘을 주어 끌어당긴 고무줄처럼 돌아가고 만다. 자기 자신이 가장 편안한 상태로.
나에겐 관계를 지속해나가는 일이 그렇다. 차라리 처음 보는 사람들 속에 던져져 와글와글 떠들다가 대화가 조금 잘 통한다 싶은 사람 한 두 명을 발견하는 일이 쉽지, 어젯밤 모임에서 만난 말이 잘 통했던 사람에게 따로 연락해서 “친구 하자”고 말하는 상황은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껄끄럽다.
특히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어도 종업식 때까지 말 한번 걸어보지 못했던 학생, 방구석에서 혼자 놀 때 가장 즐거웠던 아이’ 이거… 너무 제 얘기잖아요 🥲 사람이 싫은 건 아닌데, ‘친구’라고 부를 만한 관계에 진입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달까? 사람과의 상호작용에는 분명히 문서화되지 않은, 대체적으로 많은 이들이 따르고 공감하는 규칙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어떤 안내서나 도움 없이 혼자 발견해야 한다는 느낌이랄까…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때로 타인과 ‘통했다’라는 느낌이 들 때면 무척 기쁘고 뿌듯하다. 그래서 저자가 딱히 연애도, 결혼도 생각은 없지만 친구들과 공간을 공유하자는 데에 생각에 미친 점도 이해가 된다.
처음엔 집이 그랬고, 지금은 집 근처에 작업실까지 늘려 공유 공간은 두 곳으로 늘어났다. 내 명의로 된 곳은 하나도 없지만 자기만의 방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이나 생겼다. 혼자서는 어림도 없지만 두 명, 세 명이 합치면 방 두 개에 거실이 딸린 집다운 집으로 이동할 수 있다.
부자는 아니지만 방 부자가 되어버린 지금, 공유 공간의 규모가 더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일에 몰입하는 시간을 존중하면서도,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묻고 답할 수 있는 동료들을 옆에 두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다. 문제에 매몰될 것 같을 때, 문을 열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다른 가능성이 생긴다. 언제든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내 방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건물 뒤편에 숨겨진 비상구로 향하는 문처럼, 작은 방과 방 사이에 도피처가 될 수 있는 거실까지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공간은 오직 ‘자기만의 방’일지 몰라도, 즐거운 생활을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에겐 방이 아닌 집이 필요하다. 일 때문에 하필이면 땅값 비싼 서울에 오밀조밀 몰려든 나와 내 친구들에게도. 생활의 즐거움을 나눌 사람 또한 필요하다. 이토록 필요한 게 많아서, 고작 두 명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로, 사무실 안으로 모여들었다.
여기까지, 내가 결혼 대신 하우스메이트의 집에 들어가서 살고, 사람을 모아 작업실을 계약한 이유. 정리해보니 명확하다. 일, 사랑, 삶을 고루 나눌 수 있는 단 한 명의 상대를 찾느니, 하나씩 하나씩 짐을 나눠들 수 있는 사람 여러 명을 두는 게 빠른 길이어서. 급한 성격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이 같은 욕구가 있는 사람을 재빨리 찾아 공유 공간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이라는, 그런 얘기.
이 부분을 읽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닉 혼비의 소설 <어바웃 어 보이>에서 마커스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마커스는 피오나라는 싱글 맘 엄마와 단둘이 사는 소년이다. 엄마는 우울증을 앓고 있고, 그래서 마커스는 불안하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홀로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두 사람은 부족해. 백업이 있어야지. 단둘뿐인데 한 명이 나가떨어지면, 혼자 남는 거잖아. 둘은 충분히 큰 수가 아니야. 적어도 셋은 돼야 해(Suddenly I realized - two people isn't enough. You need backup. If you're only two people, and someone drops off the edge, then you're on your own. Two isn't a large enough number. You need three at least.).” 그래서 마커스는 남과 어울려 사는 데는 관심이 없는 돈 많은 백수 윌에게 치댄다. 윌과 자기 엄마를 이어주기는 글러먹은 것 같으니, 그와 친구가 되어서 ‘셋’을 만들어야겠다고. <어바웃 어 보이>, 새삼 생각하지만 진짜 재미있고 감동적인 소설이었지… 갑자기 다시 읽고 싶어지네.
어쨌거나 저자는, 많은 여성 청년들이 그러듯이, 자신의 미래를 그려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식에게 기댈 수 없는 노인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이지?
여성 청년일 때와는 달리 ‘여성 독거 노인’일 때는 안전한 주거 환경을 자력으로 조성하는 일이 어려워질 것 같았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나는 필요할 때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 여러 명을 옆에 둔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노인으로 늙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다. 사적 관계망이 취약한 사람도 안전한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 비슷한 목적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진 곳이라면?
그러던 저자는 만 65세 이상 입주 가능한 서울 소재 노인 공동체 주택에서 거주자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생겨 할머니와 할아버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분들은 권력 다툼, 종교 갈등, 정치적 견해 차이, 공금 횡령, 언어 폭력, 그리고 치정 등, OTT 드라마 추천 키워드 뺨치는 이야기들을 저자에게 해 주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공동체의 일’을 의논하고 추진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 사람의 얼굴을 주기적으로 봐야만 한다면?”
그런데도 왜 같이 사세요?
궁금했다. 억지로 유지하는 관계에 가끔은 환멸을 느끼면서도 떠나지 않는 이유. 개중엔 더 나은 조건의 주거지가 없어서 나가지 못하는 거라는 건조한 답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래도 죽을 때까지 여기 살겠다”는 쪽이었다.
“우리도 처음이잖아. 따로 살다가 이제 막 합쳐졌는데, 어떻게 다 맞아? 안 그래? 여기 와서 이제 배우는 거지.”
배우고 있다는 말, 시간이 지나면 적응할 거라는 말, 나아질 거라고 기대한다는 답변이 많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골치 아프게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 때문에 부아가 끓어 화를 낸 기억보다 사람 덕분에 웃고 떠든 순간, 도움을 받아 고마워한 기억이 더 오래가는 것 같았다. 비록 내 아래층엔 생각만으로도 피곤한 악당이 산다고 할지라도, 오늘 옆방 사는 친구한테 놀러갈 수 있다면 내일도, 모레도, 같은 방에서 눈 뜨는 게 두렵지 않다. 즉 나와 맞지 않는 사람 한 명이 유발하는 스트레스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한 명 덕분에 느끼는 안정감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가 보다. 어쩔 수 없지.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아는 사람이 나으니까. 그래서 저자 말대로 “사람들은 이렇듯 남과 남이 만나 합의점을 찾아가기가 어려워 가족 한 명을 택해 일단 소규모 공동체를 꾸리는 것으로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동료들을 곁에 두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공유오피스에 들어가 동료들을 만나고, 하우스메이트를 구하고 있던 서귤 작가과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썼는데 그저 부럽군요… 제가 좋아하는 서귤 작가님과 같이 사시다니… (서귤 작가님의 <급발진>은 다들 읽어 보셨나요?) 이게 이 책을 통틀어서 제일 흥미롭고 부러운 부분이었다.
이외에 요리와 나이가 들어 트렌디한 장소에서 밀려나는 기분이 든다는 점, 가족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이나 기타 불가피한 이유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과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보는 것 등등, 나이가 들면서 홀로 살면 반드시 겪게 되는 이야기가 많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듯. 앞에서도 밀리의 서재에서만 제공되는 오리지널 작품이라 따로 출간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그랬으면 좀 더 살을 붙이고 더 적절하게 편집한 번듯한 책을 만나 볼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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