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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안예은, <안 일한 하루>

by Jaime Chung 2025.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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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안예은, <안 일한 하루>

 

 

음악가 안예은의 에세이. 솔직히 개인적으로 안예은 씨의 음악은 잘 모른다. 아마 한 번도 안 들어 본 듯? 어쩌다가 우연히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의식적으로 ‘아, 이게 이 노래구나’ 하고 인지하지는 못했으니 음악가 안예은이나 그의 음악은 전혀 모른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무척 유쾌하게, 즐겁게 읽었다. 작년이었나, 음악가 안예은을 아시는 이웃님이 이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기셨고, 그래서 이 책은 내 보관함 안에서 쿨쿨 자고 있었더랬다. 그러다가 얼마 전, 길고 심각한 책을 읽기는 싫고, 뭔가 가볍고 재미있는 게 없을까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드디어 이 책이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숙성한 결과는? 무척 좋았다. 음악가 안예은은 모르지만 오타쿠 안예은, 독서인 안예은, 우울증에서 회복한 환자 안예은, 희민 씨와 미자 씨와 딸인 안예은 등등은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예은들은 참 사랑스럽고 귀여운 사람이었다. 나는 안예은 씨가 심장병이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자신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병을 위한 수술 자국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하는 부분을 읽고 참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수술 자국은 쇄골뼈가 마주 보는 지점 바로 밑에서 출발하여 밑가슴 지점에서 끝난다. 원래는 배꼽 위까지 자리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반토막 정도는 굉장히 옅어졌다. 평생 시뻘건 색일 줄만 알았는데 참 신기하다. 그리고 앞서 말한 ‘물 빼는 통’의 호스를 꽂았던 자국이 각 가슴 밑에 두 개씩, 그리고 양쪽 옆구리에도 각 두세 개씩, 본격적으로 심장을 만지기 전 준비 단계로 진행했던 수술 자국이 오른쪽 날개뼈 바깥을 빙 둘러싼 모양으로 하나(이 수술 자국은 진짜 좀 멋지게 생겼다. 사극 작품 안에서 최고로 멋진 무사 캐릭터가 갖고 있을 것같이 생겼다. 정인을 잃은 전쟁터에서 얻었다거나, 목숨과도 같은 스승을 잃은 전쟁터에서 얻었다거나. 농담이 아니다. 아, 이걸 어떻게 보여드릴 수도 없고). 손등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링거 바늘을 꽂았던 작은 흉터들이, 팔다리와 목에는 아토피 때문에 긁어댄 흉터들이 있다.

이게 내 몸이다. 컨실러로 깔끔하게 정돈된 피부가 아닌, 상처와 흉터로 얼룩덜룩한 피부가 내 피부다.

지금은 꼭 그래야만 하는 게 아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몸에 흉이 있는 나는 카메라 앞에 설 때 필수적으로 팔다리에도 분칠을 했었다(그게 아니면 긴팔을 필수로 입었다). 일단 흉터를 화장품으로 가린다는 것에 반감이 들었고, 화장품 기능이 어찌나 좋은지 여기 흉터가 있었던가, 착색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싹 지워지는 것을 보며 엄청난 위화감이 들었다. 이게 내 팔다리인가. 아닌 거 같은데. 인형에서 팔다리를 떼어다가 내 몸에 붙인 것 같았다. 흉터투성이인 내 몸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이건 정상이 아니야. 흉터가 있는 몸은 안 돼’ 하고.

그래서 나는 본격적으로 흉터를 내놓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 말라면 더 하는 게 인간의 특징 아니겠는가. 몸매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당연함) 여름이 되면 가슴 부근이 한껏 파인 민소매나 오프숄더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이게 내 몸이라고, 남들과는 다르지만 틀린 건 아니라고 말 그대로 ‘온몸으로’ 외치고 다닌 격이다. 그 후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나는 한 팬으로부터 ‘언니 덕에 흉터가 드러나는 옷을 처음 사봤어요’라는 DM을 받게 된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등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냥 내 감정만 앞세운 채로, ‘얘들아, 이런 몸도 있어! 이걸 좀 봐봐!’ 하면서 돌아다니던 아주 이기적인 아이였는데,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자신의 흉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하니 뭉클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기분 좋은 책임감 비슷한 것을 어깨에 둘러메고 더 적극적으로 흉터를 내놓았다.

 

그가 살에 대한 강박을 벗게 된 이야기는 더욱더 멋지다. 자신의 아토피나 수술 흉터, 더 나아가 우울증에 대해서까지 터놓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많은 이들이 ‘덕분에 저도 힘을 얻었어요’라며 감사를 표했다고 했다. 그래서 본인도 콤플렉스를 벗어던질 수가 있었다고(그 와중에 외모에 대한 악플에 대해 ‘와, 맞아요. ◯◯님 캐해석 짱! 추가 점수 500점!’ 할 수 있는 관대함이라니!).

이때 제일 많이 느꼈던 것은 칭찬의 위험성이었다. 나는 외모적으로 잘난 부분이 하나도 없다. 얼굴도 못났고 몸매도 별로다. 그렇기 때문에 ‘못생겼네’, ‘살쪘네’ 하는 댓글들은 ‘와, 맞아요. ◯◯님 캐해석 짱! 추가 점수 500점!’ 할 수 있지만 어쩌다 외모에 대한 칭찬이 눈에 띄게 많은 날에는 ‘이렇게 하면 괜찮아 보이나?’ 하는 생각이 들며 그것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부정적인 평가만큼 칭찬도 사람을 계속 거울 앞에 서 있게 만든다. ‘이렇게 하면 얼굴이 작아 보이나?’라는 생각은 ‘내가 그렇게 살쪘나?’라는 생각만큼 위험하다. 그래서 나는 2년 전 했던 다짐을 다시 끌어왔다.

살이 찌든, 빠지든, 계속 이 모습이든, 카메라 앞이든 무대 위든 외적인 부분을 신경 쓰지 않기.

평범한, 혹은 못난 외모로 그냥 살기.

‘모두가 아름답습니다’보다는 ‘못생겨도 상관없어’라는 마음으로 살기.

아니, 그냥 외모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말기.

나를 보고 힘을 얻는 사람들 덕에 되레 내가 콤플렉스였던 모든 것을 벗어던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살에 대한 강박은 지금까지도, 정말 최후의 최후까지 끈덕지게 뇌에 붙어서 가끔 나의 얼굴 사진을 확대하며 이게 살인지 주름인지 내 얼굴의 특징인지 몇 시간을 뜯어보게 만들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나아졌다. ‘나는 어떤 모습이든 예뻐!’가 아니고, ‘이렇게 태어났는데, 뭐 어쩌라고 그냥 살아. 네 할 일이나 잘 해’라는 생각을 드디어 컨트롤 타워에 박아 넣었다. 정말로 홀가분해졌다.

이거야말로 진짜 신체 중립성(body neutrality)의 좋은 예가 아닐까. 자신의 몸을 ‘사랑’하면 물론 좋지만, 아무리 해도 예쁘게 봐 주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데는 어떻게든 좋게 보려고 노력할 수라도 있곘는데 한두 군데는 정말 죽어도 못하겠다든가. 그렇다면 그런 부분이라도 신체 중립성을 적용해 ‘몸은 몸일 뿐이고 굳이 예쁠 필요가 없다’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정신적으로 무척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아 맞다, 이 에세이 덕분에 트위터리안(이제는 X 유저라고 해야 하나?) 안예은 씨도 알게 되었다. 안예은 씨가 개그 욕심이 많은 분인 줄 몰랐는데 읽다 보니 정말 귀엽고 웃겨서 납득했다.

최근에 또 트윗을 불펌당했다. 나는 이제 영롱한 파란빛의 공식 딱지까지 달고 있는데 그 딱지까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뭘 썼냐면, ‘쉽지 않네. 재밌네. 가보자고’ 3종 세트가 너무 좋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개떡 같은 상황에 처해 있어도 긍정적인 힘이 생기게 해주는 아주 당찬 ‘밈’인 것 같다고. 리트윗도 꽤 많이 되었고, 불펌된 곳에서도 ‘좋아요’를 꽤 많이 받고 있었다. 타인의 웃음이 인생의 전부인 트위터리안에게는 실로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출처를 명확히 밝히세요. 이런 웃긴 글을 쓰는 사람이 안예은이라고 기재를 하란 말이에요. ‘안예은, 말하는 거 개웃김ㅋㅋㅋ’ 이런 식으로 올리라고요. 나는 웃음에 미친 사람이란 말이에요. 개그 욕심이 너무 커져서 괴물이 된 채로 내 몸을 조종하고 있다고요.

나도 사실 웃음 욕심이 있어서 안예은 씨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웃음이 아니면 삶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앞서 급발진한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웃음에 대한 욕심이 정말 많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칭찬은 ‘웃기다’라는 칭찬이다. 그래서 정말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지기 직전의 상황일 때 이 욕구를 발동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뭐랄까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느낌이 되어 이걸 어떻게 얘기해야 상대방이 ‘어, 웃으면 안 되는데, 너무 웃겨’라고 반응할까 하는 생각만 하게 된다. 동시에 내 삶도 좀 시트콤같이 미화되는 것 같다. 그러면 어느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게 된다.

웃음으로 열심히 기워낸 누더기 같은 나의 인생.

물론 언제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가끔 인생 내내 나를 괴롭혀온 우울한 감정들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여 몇 시간이고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는 때가 찾아온다. 끔찍하지만 하나 크게 달라진 점은 그것이 병증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성과다.

 

안예은 씨, 혹시나 만에 하나 이 책 리뷰를 읽게 되신다면 저는 분명히 저자를 밝혔다는 걸 알아 주세요. 그리고 저는 안예은 씨가 귀엽고 웃기다고도 썼으니 만족하시겠지요? 귀엽고 멋지고 웃기고 다 하는 에세이를 찾는다면 이 책을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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