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패트리샤 박, <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
이 소설 제목을 보자마자 ‘와, 어그로 쩐다’라고 생각했다. 알레한드라 김이라는 이름은 스페인계 같은데, 그쪽 해외 동포인가? 그건 이해가 되지만 일본 라이트 노벨도 아니고 이렇게 긴 설명형 제목이라니. 소설은 이 제목을 닮았다. 아니, 제목이 소설을 잘 설명한다고 해야 하나?
우리의 주인공 알레한드라는 아르헨티나 이민자 출신이다. 아버지 후안과 어머니 베로니카는 그 부모님 대에서부터 “북아메리카를 목표로 삼았다가 남아메리카로 휩쓸려가 정착한 한국인 이민자”였다. 알레한드라는 정말 비싼 명문 고급 고등학교 ‘퀘이커 오츠'에 (학비의 90퍼센트를 지원받으며) 다니고 있다. 부잣집 아이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도 편하지 않은 일인데, 더 큰 문제이자 알레한드라가 매일 접하는 현실은 한국계, 즉 동양인이라는 정체성과 아르헨티나계라는 정체성까지 섞여서 이중으로 고통받는다는 거다. 아무도 동양인이 아르헨티나계일 거라고, 또는 그 반대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 두 정체성 모두 대중적인 ‘와스프(WASP, 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쪽도 이 사회에 알레한드라가 ‘속한다’고 느끼게 해 주지 않는다.
어느 날, 이 고급 고등학교에 ‘창의적 글쓰기’ 수업 강사로 조너선 브룩스 제임스(이하 JBJ)라는 작가가 부임해 온다. JBJ는 출석을 부르더니 알레한드라의 이름을 보고 핵폭탄급 발언을 한다.
하지만 조너선 브룩스 제임스는 내 이름은 언급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다문화로 접근하면 대학 가는 데는 아무 문제 없겠네.” 그것도 나를 똑바로 보면서 말이다.
이런, 아닐 거야, 내가 잘못 들은 걸 거야.
아니, 잠깐. 아닌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 말투가 어찌나 힙스터답게 즉흥적이고 냉소적이고 퉁명스러운지, 웃지 않으면 쿨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나는 같이 웃고 말았다.
뭐, 별일 아니었다. 시리아에서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어 가고,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굶주리며, 마약성 진통제 문제로 온 나라가 난리인 마당에, 이런 바보 같은 공격성 발언이 뭐 그리 대수라고.
게다가 같이 웃어 버렸으니, 괜찮다고 인정해 버린 셈이었다. 교실 전체가 킥킥거릴 뿐 누구도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서지 않았다.
차라리 조너선 브룩스 제임스가 예전의 다른 선생님들처럼 엉터리로라도 내 이름을 불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제나 나는 ‘제인’이나 ‘안잘리’, ‘지영’ 같은 평범한 이름, 적어도 나에게 어울리는 그런 이름이 갖고 싶었다.
한마디로, 자신의 ‘다문화’성을 이용해 대학에 진학하라는 것이다. 스페인계에도, 한국계에도 쉽게 속하지 못하고 그 둘 모두 소수자로 여겨지는 정체성을 무기로 삼아 이용해 먹으라는 뜻이다. 당연히 알레한드라는 이에 모욕감을 느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넘어간다. 알레한드라의 (백인) 친구 로럴은 이 소식을 듣고 JBJ를 즉각 해임할 것을 청원하는 글을 쓰고, 학생들에게 서명을 받기 시작한다.
로럴은 계속 이어서 적어 내려갔다.
아래 서명한 우리는 앤 오스터 프렙 스쿨(이하 “퀘이커 오츠”) 학생인 알레한드라 김이 강사 조너선 브룩스 제임스(이하 “JBJ”)에게 당한 부당한 대우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JBJ는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 및 공동체에 대한 퀘이커 오츠의 가치관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가 업무를 계속할 수 있게 놔둔다면(로럴은 “업무”라는 단어에 줄을 그어 지우더니 “수업”이라고 고쳐 써넣었다), 퀘이커 오츠 또한 우리 유색 인종 학생들을 타자화하는 것은 물론 차별에 공모하는 것입니다.
알레한드라는 로럴의 청원에 불편함을 느끼고, 게다가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꿈의 대학인 ‘와이더’에 진학할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입학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에세이에는 뭐라고 쓰며, 비싼 학비는 어떻게 댄단 말인가? 아버지 후안은 (비록 어머니 베로니카는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1년 전에 지하철역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그래서 베로니카 혼자 간호사로 혼자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알레한드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발견해야 하고, 자신의 미래도 발굴해 나가야 한다. 과연 알레한드라는 자신이 꿈꾸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까?
위에서 내가 소개한 간략한 줄거리만 봐도 ‘정치적’인 이야기가 이 소설에 가득하다는 것을 눈치채셨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다문화, 소수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까 그 점이 계속해서 논의되는데, 이 자체에 지루함이나 피곤함을 느끼는 분이라면 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수자들의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를 해야 했고, 그래서 저자가 이 이 이야기를 쓴 것일 테다(저자도 알레한드라처럼 아르헨티나계 이민자 출신인 가족이 있고 ‘가면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진학반 학생이 주인공인 소설답게 소꿉친구와 달달하고 설레는 썸을 타는 연애 이야기도 있다. 이 ‘어그로’를 끄는 제목에 흥미가 생긴다면 한번 거들떠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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