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성연(우디), <GEN Z 인문학>
제목부터 ‘GEN Z’들을 겨냥한 인문학 서적. 적어도 목표는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청소년을 타깃으로 해서 그들이 알고 싶어 할, 또는 알아야 할 디지털, 또는 IT 관련 인문학을 소개한다는 취지는 참 좋았으나,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조금 아쉬웠다. 아무래도 요즘 세대는 어려서부터 스마트폰과 같이 자라서 기성 세대보다 디지털에 더욱 익숙하나, 그것 없이 살아 본 적이 없으므로 오히려 그에 대한 비판적 사고는 부족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들은 디지털 문해 교육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걸 제공해 줘야 했다. 그런데 그게 조금 잘 안 됐달까. 애초에 얇은 책이고, 청소년을 위해 쓰였으니 이 분야의 석학들이 토론할 만한 깊디깊은 내용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는 내용을 담기에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흐릿해지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 메타버스’라는 꼭지에서는 가상현실에서 벌어지는 범죄 행위도 언급한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에서 아바타를 대상으로 성추행을 하거나 성적인 대화를 강요하는 일“ 같은 것. 그런데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정말 언급만 하고 넘어간다.
더 큰 문제는 아바타 성추행을 일으키는 많은 사람이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10대들은 가상 세계에서 아바타가 성추행을 당할 때 현실 세계와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메타버스에서 발생하는 아바타 간 사생활 침해에 대한 법적인 규제가 아직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메타버스 플랫폼들은 필요한 지침을 만들어 어린 유저들이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메타버스는 미래의 긍정적인 면만을 내세우지만 풀리지 않는 많은 문제도 함께 만들어 냅니다. 더 큰 문제는 아바타 성추행처럼 현실의 문제가 메타버스를 거쳐 어떤 형태로 변형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모든 기술 발전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이 그런 범죄 행위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물론 피해자는 잘못이 없지만, 적어도 이러이러한 점을 주의하라, 수상한 사람은 이렇게 파악하라, 만약에 그런 사람을 만나면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주위의 믿을 만한 어른들에게 알려라, 같은 주의 사항은 알려 줄 수는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간단하다 못해 허섭한 내용을 ‘아 이런 일도 있구나. 주의해야겠다’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건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닐까. 그러니까, 남자(남학생)들 말이다. 여자(여학생)들은 이게 현실이고 일상인데? 여성 게이머가 게임을 하면서 겪는 온갖 성추행과 성희롱을 비롯한 여성혐오를 밝힌, 딜루트의 <나는 게이머입니다, 아 여자고요>는 읽어 보셨는지? “모든 기술 발전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만 되어도 안다. 당장 이걸 해결할 수 없다면 이걸 어떻게 피하고 대처해야 하는지라도 알려 줘야지! 또한 특정 성별에게는 온라인이라고 해서 아무 말이나 막 내뱉으면 안 된다, 즉 게임상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른 이들에게 (여성 혐오를 당연히 포함해) 상처를 주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도 좀 주지시켜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청소년이라고 해서 멍청이가 아니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들을 타깃으로 하는 책을 쓰면서 이렇게나 수박 겉핥기식으로 글을 써도 되나?
비슷한 의미에서 ‘인간을 위해 탄생한 AI 기술들’이라는 꼭지에서도 AI 기술이 악용되는 사례에 대한 언급도 정말 간단하기 짝이 없다. ‘여자 연예인들의 얼굴을 합성한 악의적인 딥 페이크 영상을 제작하거나’, 엥 이게 전부라고? 그래서 그게 잘못된 것이니 제작하거나 소비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어디 있지? 너무 당연해서 뺐나?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이 ‘인문학 서적’이라는 책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는 걸까? 너무 ‘페미니즘’적인 이야기로 들릴까 봐? (참고로 내가 검색해 봤는데 이 책의 작가는 남자다.) 하지만 이 책의 독자들이 그런 일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존재인 것처럼, 먼 나라 이야기처럼 표현하는 게 더 이상한걸.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은 기술 직군의 직원을 채용할 때 AI를 활용했는데, 남성 중심의 편향된 추천을 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여자 연예인들의 얼굴을 합성한 악의적인 딥 페이크 영상을 제작하거나, 미국의 유명 CEO 목소리를 활용한 범죄 집단의 등장 역시 AI 활용의 어두운 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AI 기술 자체의 발달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AI를 인류의 공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많이 사용하고 관심 있어 할, 챗GPT가 언제나 옳은 답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짚어 내는 것이나 다크 패턴(”사용자의 심리적 약점을 잡아 인터페이스를 복잡하게 디자인함으로써 부당한 이득을 얻는 것”)을 소개하는 것, 무한 스크롤과 무한 재생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요하는 것 등 잘된 점도 있다. 가볍게 입문할 수 있다는 점, 청소년이 읽을 만큼 쉽게 쓰였다는 점도 칭찬할 만하다. 다만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확실하게 밝혀야 할 점은 확실히 밝혀 주면 좋겠다. 저자도 다음 책에는 조금 더 발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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