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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앨리 모건, <사서 일기>

by Jaime Chung 2025.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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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앨리 모건, <사서 일기>

 

 

최근에 책, 독서와 관련한 에세이를 두 권 읽었는데 그중에서 좀 더 따뜻하고 감동적이고 희망찬 쪽이 이것이었다. 앨리 모건이라는 가명의 저자는 스코틀랜드 공공 도서관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에세이를 썼다. 읽다 보면 인류애가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면으로 나누어 소개할 수 있다. 첫 번째, 이 책은 말 그대로 책과 책을 읽는 일에 대한 글이다. 그 책을 읽는 그 배경은 개인의 집일 수도 있고, 도서관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때의 독서 경험은 개인적인 의미를 가진다. 예컨대,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든지, 슬픔이나 분노, 행복 등의 감정을 느낀다든지, 그 책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게 되는 일 등. 이것은 책과 독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독자의 머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아래 일화 속 소녀가 로알드 달의 <마틸다>를 알게 되고 그 책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다음에 아이가 나타났을 때 나는 데스크에서 로알드 달의 『마틸다』를 넘겨 보고 있었다. 아이가 나를 발견하고 주저주저하자 나는 에라 모르겠다 행동에 들어갔다.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야.” 나는 책을 들어 보였다. “이 책 읽어본 적 있니?”

아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 이거 진짜 재밌는데! 초능력을 가진 여자애 얘기거든! 이 여자애가 초능력을 써서 심술쟁이 교장선생님을 혼내주는 거야.”

여자애가 얼굴에서 손을 내렸다. “어떤 초능력인데요?”

나는 책을 아이에게 내밀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면 물건을 움직일 수 있어. 이 여자애는 엄청 똑똑하거든, 주변에서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아이는 내게서 책을 받아 자세히 살펴보았다. 나는 아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낌이 딱 왔다. 책을 살펴보는 모양새가 책을 읽고 싶어하는 아이, 어쩌면 이미 책과 사랑에 빠진 아이임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다만 아이의 발목을 잡은 것은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아이는 조용히 『마틸다』를 가지고 어린이 서가로 가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동시에 두 번째, 이 책은 동시에 공공 도서관에 대한 책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그곳에서 제공하는 컴퓨터나 미디어 대출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 따위가 이에 포함된다. 도서관 중에서도 특히 공공 도서관은 그야말로 대중의 이익, 복지를 위한 존재이고 따라서 그 공적 성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도서관이 왜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저자가 일한 도서관은 특히 가난한 동네에 위치한 콜뮤어와 로스크리 공공 도서관인데, 그곳들에서 저자는 공공 도서관이 왜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낀다. 아무래도 동네가 가난하다 보니까 도서관이 무료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도서관 이용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컴퓨터가 간절하게 필요한 이들도 많았다. 일자리를 찾으려면, 또는 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정부 웹사이트에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대체로 사서가 제공하는 IT 서비스(인터넷 사용법, 프린터 사용법 안내 같은 것)도 간절하게 필요하다. 이들에게 도서관은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곳이다.

하지만 저자는 도서관 이용자들의 도서관 경험을 방해하는 많은 장애물을 만난다. 도서관 예산을 삭감하는 시(市), 다른 이용자들을 도서관 이용을 방해하는 무례한 이용자, 그리고 도서관이 많이 흥해서 이용자가 늘면 자신의 할 일도 늘어나서 편하게 은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도서관 직원까지! 저자는 이미 개인적 사정으로 인한 정신 건강 문제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 일에서 의미, 보람, 그리고 ‘힐링’되는 순간까지 찾으며 꾸준히 일을 해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 공공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지를 토로하는 트윗을 써서 정말 말 그대로 ‘하룻밤만에’ 인기인이 된다. 그녀가 쓴 트윗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BBC 라디오4 채널에 출연 제의까지 받게 된 것! 아니 이거 완전 드라마 아닌가요… 🤭

 

방금 바로 위에서 도서관 직원이 도서관 이용자들의 경험을 방해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한 예시가 바로 이것이다. 아무래도 가난한 동네이다 보니까 연체료조차 잘 내지 못할 정도로 사정이 안 좋은 이용자들이 많았는데, 한 깐깐한 사서는 연체료를 내지 않으면 도서관을 일절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다행히 저자는 나름대로 재량을 발휘해 가능한 한 이용자들이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조처했다.

솔직히 나는 헤더의 그런 무지함 내지 잔인함이 섬뜩했다. 이곳 도서관 이용자 중 대다수가 복지 혜택과 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공과금을 내기 위해, 노숙자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컴퓨터 접근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헤더도 분명 알고 있지 않을까? 아니, 헤더가 그런 생각을 해보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연체료든 컴퓨터 사용에 대해서든 헤더의 규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돈과 관련 없는 다른 이유(계정 옆에 따로 표시가 뜬다)로 금지된 것이 아닌 한 누구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쓰지 못하게 해봤자 뭐가 달라질까? 그들이 갑자기 안 가난해질 리도 없고, 주머니에서 잊고 있던 공돈이 튀어나올 것도 아닌데.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이거나 이용을 포기해버릴 것 같은 연체자(어쨌든 우리 예산은 이용자 수에 달려 있지 않은가?)의 벌금을 죄다 탕감해준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헤더에게서 이메일이 한 통 왔다. 나의 직원 계정에 ‘벌금의 과도한 면제’ 표시가 떴다는데, 그 말을 나는 지금도 믿지 않는다. 사실 헤더는 단순히 신입의 출납 기록을 감시하고 있었을 뿐이고 그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를 설득해야 했을까? 나는 이 업계에서 어떤 윤리적 기준을 세울 만큼 오래 일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런 식의 옹졸한 대처는 수긍이 되지 않았다.

처음으로 한 도서관 이용자가 내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며—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컴퓨터로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 젊은 여성이었다—집에 갈 버스비라도 주겠다고 했을 때, 그렇게 해서라도 만기가 약간 지난 아기 책 때문에 쌓인 얼마 안 되는 연체료 중 일부라도 내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렇게는 일할 수 없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서관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거의 비인간적일 정도로 이익만 생각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배려하고 돌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썼다. 정말 감동적이다.

현 초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낯모르는 타인이든 친구든 하여간 남을 돕는 데 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바보짓 또는 허튼짓으로 여겨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친절함을 나약함 또는 우둔함과 혼동하는 것 같다. 이것은 곧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직장에서 사람을 대하면서 인간적 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일처리가 매뉴얼대로 되지 않으면 생산성 낭비로 취급된다.

시간제로 고용되는 직원을 탓하는 게 아니다. 젠장, 기계적으로 일하는 도서관 직원을 탓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우린 모두 목표 성과에 매여 있고, 한 번에 한 사람씩 대면하여 시간을 쓰게 할 유인책이 없다.

모든 게 숫자로 귀결된다—그러나 조금 더 긴 소통과 응대가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의 질에 가져다줄 차이를 생각해보라! 우리 중 그토록 많은 사람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도 놀랍지 않다. 우리가 이토록 버거워하는 것도 놀랍지 않다.

모두를 짓누르는 재정적 압박이 가중되는 이 시점에서, 어떻게 우리가 건강과 행복까지 희생해가며 인간적 교류의 의지를 꺾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린 모두 시간에 쪼들리는 것이다.

우리는 배려와 돌봄을 더욱 장려해야 한다! 그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말 그대로 사람들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간병인과 간호사는 더 많은 월급을 받아야 한다. 젠장, 그들에게 정치인과 CEO와 축구선수보다 더 많이 주란 말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욕구의 위계를 토대로.

누가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가? 누가 우리를 먹이는가? 누가 우리에게 지붕과 안전을 제공하는가? 그것부터 가치를 매겨보자. 수익과 이윤은 그 목록의 훨씬 더 아래쪽에 위치해야 한다.

도서관은 공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미 세금으로 그 비용을 지불했어요. 도서관은 수익성을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미 도서관에 돈을 냈으니까요!

도서관 예산을 깎는 정신머리 없는 윗대가리들에게 이 책을 반드시 읽혀야 한다. 도서관이 괜히 국민 복지겠냐며. 도서관 절대 지켜!! ✊

 

책, 독서, 그리고 무엇보다 도서관을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유쾌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독서에 관한 이야기이자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이고,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공감할 부분도 분명히 많지만, 무엇보다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무척 좋다. 그런 의미에서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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