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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가키야 미우,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by Jaime Chung 2018.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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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가키야 미우,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40대의 여인 가요코는 어느 날 남편이 뇌졸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랑은 이미 오래전 식었고 이혼도 생각해 본 적 있지만, '꼭 이혼해야 할 결정적인 이유가 없었'기에 그저 살아왔던 가요코와 남편.

남편의 죽음보다 회사 일이 더 걱정되는 가요코는 거의 멍한 상태에서 장례식을 치른다.

남편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잠시, 남편의 유골 항아리와 불단은 집에 들이고 나자 사오리라는 낯선 여인과 남편의 마지막을 지켜 주었던 직원이 분향을 드리러 온다.

낯선 여인은 죽은 남편과 모종의 관계가 있었던 듯하다. 중년의 나이에도 청초해 보이는 그녀. 그들이 떠난 후 남편의 물건을 살펴보니 매달 사오리에게 조금씩이나마 송금한 기록이 나온다.

가요코는 이 둘이 애인이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파고들기를 관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구속하는 시어머니와 그런 시어머니를 방치하는 치매 시아버지, 그리고 히키코모리인 시누이까지, '시월드'가 가요코의 세상을 집어삼키려 한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이 요전에 읽은 영주의 <며느리 사표>와 비슷해 흥미롭게 생각하고 전자책으로 대출받아 읽게 되었다.

(<며느리 사표> 책 리뷰는 여기에. 2018/12/14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영주, <며느리 사표>)

솔직히 말해 <며느리 사표>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내가 기대한 내용이 바로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같은 것이었다.

어떠한 이유로 며느리를 관두고 싶었고, 시댁의 저항은 어떻게 이겨냈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가키야 미우의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은 일본 소설이고, 영주의 <며느리 사표>는 한국 에세이지만 솔직히 제목에 충실한 건 전자다(후자가 왜 전자에 충실하지 않은지는 위에 링크한 <며느리 사표> 책 리뷰에 자세히 썼다).

 

가요코가 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가요코에게 이렇다 할 경제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혼해도 먹고살아갈 수 있을까. 노후생활이 불안하지는 않을까. 일자리는 손쉽게 구할 수 있을까. 일본에서라면…… 어려울 것이다."

가요코는 외국 여자는 돈이 없어도 일본 여자처럼 참고 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경제력 부족은 전 세계 여성의 발목을 잡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

가요코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꼭 이혼해야 할 결정적인 이유가 없었다. 남편이 주먹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을 피운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었다. 이유라면 단 하나, 부부 사이에 흐르는 깊은 거리감 때문에 마음이 헛헛하다는 것뿐이었다."라고도 하는데 이것도 이혼을 생각하는 여성의 마음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가요코는 자신이 '호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동생 가스미(아마 '카스미'를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해 이렇게 어색하게 보이는 듯하다)는 어릴 적부터 애교도 잘 부리고 이혼 후 애가 둘이나 딸린 중년의 여인이 된 지금도 철없이 굴지만, 가요코는 언니라는 책임감에 짓눌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요구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 친구 치아키(나는 '치아키 센빠이'가 생각나서 '오, 가요코에게 친하게 지내던 남자가?' 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비슷한 나이대의 아줌마였던 걸로...)와 가요코의 (친)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나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이 소설을 읽었기에 꽤 흥미진진하게, 몰입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따라서 나도 이 책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뒤로 갈수록 점차 '오오오!?' 하게 되니 꼭 끝까지 읽어 보시라.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봐야만 '아, 그게 그래서 그런 거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다 읽고 나면 그동안 가요코가 얼마나 호구였고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 깨달을 수 있다).

 

물론, 책을 덮고 나서 '이 정도가 일본의 정서상 제일 그나마 받아들일 만한 결말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엔 조금 더 강하게 나가도 괜찮다 싶었는데 뭐, 가요코가 워낙에 착해서(=물러 터져서)...

또한 후반에 사건이 해결되는 방식이 약간 운이 좋다고 할까, 누구나 이렇게 다 시댁을 '탈출'할 수는 없겠다 싶어서 가요코의 방법을 현실에 적용하기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소설이니까.

그래도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한 여성이 결국 자립에 성공하는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소설로라도 대리 만족을 하고 싶다면 한번 읽어 보셔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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