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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가쿠타 미쓰요,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by Jaime Chung 2019.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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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가쿠타 미쓰요,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소설가 가쿠타 미쓰요는 책 맨 앞머리 '들어가며'에 30대 중반에 들어 운동을 시작한 이유를 이렇게 쓴다.

이제 와 뼈저리게 느끼지만 20대의 나는 스스로가 중년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30대 중반이 됐을 떄 당황했다. (...)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겨우 젊음이 새로움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도 알게 됐다. 내 소설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새로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엉망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소설 때문에 풀이 죽어 있을 때 실연을 했다. 실연 그 자체보다 연령의 불균형에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남의 일이라 여겼전 중년 연배에 부쩍부쩍 가까워져서 일에 대해서도 이제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게 됐는데 실연 따위나 하고 있다니. 실연이란 젊은이의 특권 아닌가. 아마 나는 이대로 완전한 중년이 돼도 20대와 같은 호된 실연을 하고 10대 소녀처럼 상처받을 테지. 한편 체력은 점점 달리겠지. 나이와 정신과 육체는 점점 불균형해지겠지.

 

서른 몇 해 동안 한 번도 적극적으로 해본 적 없던 운동을 시작한 건 이 예감 때문이었다. 그때는 '40대의 실연에 대비해서 튼튼한 마음을 갖자. 튼튼한 몸에 튼튼한 마음이 깃들겠지'라는 생각만으로 근처 복싱장의 문을 두드렸다.

건강한 마음을 위해 몸을 단련했다니, 신선한 접근법이다. 보통은 '나이들어 나잇살이 찌고 체력이 달리는 걸 보고 충격 받아' 운동을 시작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런저런 운동을 하면서도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체력 만들기에 효과적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다. 할 수 있으면 '와, 진짜?' 하며 놀라고, 못하면 '과연 그렇지!'라며 웃음이 나온다."라고 한다.

과연, 건강한 정신을 기르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하기를 선택한 것인가 싶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하나씩 늘려 가다 보면 당연히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하는 자신감이 생길 테니까.

 

인상 깊은 건, 역시나 같은 '들어가며'에 있는 이 말이다.

운동이란 잘하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거의 4년 동안 연재하며 몇 개월에 한 번 체육수업에 참가하듯 운동을 했지만 역시 마지막까지 운동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달리는 것도 땀 흘리는 것도 높은 곳을 걷는 것도 싫다. 싫다는 걸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계속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운동의 엘리트주의자와 순수주의자들의 비웃음에 맞서 당당하게 마라톤에 꼴지로 들어와 꼴지를 한, 마라톤을 잘하지도 않는 뚱뚱한 남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는 이전에 리뷰를 쓴 <마라톤에서 지는 법>의 저자 조엘 H. 코언을 가리키는 것이다

2018/10/31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조엘 H. 코언, <마라톤에서 지는 법>)

이 소설가(가쿠타 미쓰요)는 운동에 관한 칼럼 연재를 마친 후에도 마라톤에 두 번이나 나갔고 달리기도 계속하고 있단다. 대단하다. 꼭 운동을 좋아해야만 계속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계속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이 세상엔 하기 싫지만 하고 있는 일들이 많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 '꼭 좋아해야만 운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싶다. 뭐, 의무감이라든지 체면 등, 정말 자원해서 하지 않아도 어떤 일을 해야 할 이유는 많으니까.

다만, 살면서 조금이라도 즐겁기 위해 '싫지만 하는 일'을 하나라도 줄이고자 한다면, 왜 굳이 애써서 하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운동을 완전히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열심히 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크큭, 입으론 싫다곤 하지만 몸은 벌써 이렇게나 움직이는군. 사실 즐기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뭔가 야망가에나 나올 법한 대사가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

 

저자는 "먼저 단언하건대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첫 번째 칼럼에 썼다(이 책은 월간지에 연재된 글을 가필 및 수정한 것이다). 친구가 회장을 맡은 달리기 팀의 뒤풀이에 어울리고 싶어서 가입했을 뿐이라고.

대단하다. 나는 뒤풀이조차 갈 생각이 없는데! 그저 뒤풀이를 가고 싶어서 달리기 팀에 들었단 말인가!

"(나는) 즐거워서 달리는 게 아니다. 마지못해 달린다. 어째서 마지못해 달리는가 하면, 한번 쉬면 다음주도 쉬고 싶어질 게 분명하고 다음주도 빼먹으면 그다음부터는 틀림없이는 내내 빼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싫으면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꾸준히 한 걸 보니 하기 싫어 죽을 정도는 아닌 거 같고...

어쩜 이런가 싶지만 마라톤을 완주한 후 맥주를 마시며 저자가 했다는 생각이 대박이다.

이 이상 노력할 것인가, 아니면 이 수준을 받아들일 것인가.

뭐, 지금 당장 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골인한 뒤 맥주를 벌컥벌컥 아무래도 괜찮다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늘 있는 일. 어쨌거나 걷지 않았던 것만큼은 자신을 좀 칭찬해 주자. 노력할지 말지는 그다음에 생각하자.

크으, 그러니까 마라톤을 완전히 사랑해서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목을 조이면서 극한으로 몰아가는 건 아니기에, 적당히 조절해 가며 하는 거구나. 그러니까 이렇게 오래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저자가 존경스러운 점은 또 있다. 자신을 담당하는 편집자 W군이 "(운동 이름) 해 보지 않을래요?" 하고 제안을 하면 그때마다 바로 "할래요, 할래요, 할래요!" 하고 바로 승낙한다는 것.

이렇게 긍정적으로 인생에 '예쓰!'라고 외치는 사람이니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감탄했다.

 

운동을 시작할까 고려 중이라면 책 맨 뒤에 있는 4쪽가량의 '즐거운 운동을 위한 어른의 여덟 가지 자세'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남이 운동한 이야기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어떻게 하면 운동을 좀 오래 잘해 볼까 싶으신 분이라면 이 부분만 읽어도 좋을 듯.

그 여덟 가지 자세는 다음과 같다.

1. 무리는 금물! 중년임을 자각한다.

2. 높은 뜻을 품지 않아야 오래 운동할 수 있다.

3. 이득을 얻으려 욕심내지 않는다.

4. 그만두고 싶어질 때쯤, 값비싼 도구를 갖춰 마음의 시기를 늦춘다.

5. 즐거운 이벤트를 만든다.

6. 운동이 끝나면 고생한 나에게 포상을 준다.

7. 남과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않는다.

8. 가슴 설레는 제안을 해주는 활동적인 어린 친구를 만든다.

 

물론 이건 번호와 주제문만 적은 거고, 책에는 조금 더 자세한 부연 설명이 따라나온다.

어차피 4쪽밖에 안 되니까 서점에서 잠깐 서서 후루룩 읽어도 되는 분량이다. 이 책에 관심 없는 분들도 이 부분은 읽으면 좋을 듯.

 

조엘 H. 코언의 <마라톤에서 지는 법>이 꼭 운동이 (운동을) '잘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라는, 속 시원한 발언을 해 주었다면, 이 책은 '뭐, 굳이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도 꾸준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해 주었다.

어쨌거나 한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말랐거나 뚱뚱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든 다른 이유로 하는 것이든 간에, 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이 리뷰의 끝을 갈음하고자 한다. 여러분 모두 멋집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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