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데이브 레비턴, <과학 같은 소리 하네>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정치인이 과학에 대해 저지른 오류를 12가지 유형으로 정리하고 정확히 무엇이 잘못됐는지 꼬집는 책이다.
부제는 적절하게도 '과학의 탈을 쓴 정치인들의 헛소리와 거짓말'이다.
물론 저자가 미국인이라 저자가 예로 드는 건 전부 미국 정치인들이다. 하지만 그가 낱낱이 파헤치는 오류의 유형은 미국인이냐 한국인이냐와 무관하게 '참'이니까 이건 그냥 오류를 구분하는 연습 문제라고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이건 굳이 과학계가 아니라 어떤 분야에도 모두 적용 가능하다.
저자가 살펴보는 오류들은 다음과 같다.
1 지나친 단순화 - 확신은 대개 무지에서 나온다
2 체리피킹 - 과학은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3 아첨과 깎아내리기 - 마술사는 양손으로 트릭을 쓴다
4 악마 만들기 - 다 저 사람들 탓이다
5 블로거에게 떠넘기기 - 인터넷은 넓고 미꾸라지는 많다
6 조롱과 묵살 - 겨우, 애걔, 고작, 별것 아니네
7 문자주의적 논리 - 야구공은 누가 던졌을까
8 공적 가로채기 -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
9 확실한 불확실성 - 두 손 놓고 있으라는 주문
10 철 지난 정보 들먹이기 - 인간적으로 떠난 버스는 잊자
11 정보의 와전 - 결국은 아무 말 대잔치
12 순수한 날조 -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
책 내에서 제일 흥미로운 오류의 예를 몇 가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지나친 단순화에서는 낙태 금지의 근거로 '태아가 통증을 느끼는 시기'를 언급하는 정치인들의 말을 살펴본다.
루이지애나주의 찰스 부스태니Charles Boustany, 미시간주의 댄 베니셱Dan Benishek, 루이지애나주의 랠프 에이브러햄Ralph Abraham 등은 아기들이 20주 차에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태아가 통증을 느끼는 정확한 시점은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태아 통증 연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통증이 주관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다. 태아에게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물어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이 쟁점에 관해서는 과학적 입증이 거의 불가능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원의원들의 앞선 발언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연구를 해냈고, 결과가 나왔어. 와우, 20주 차 태아는 확실히 통증을 느끼는구나.'
이는 내가 이 책에서 다룰 과학적 실수, 왜곡, 훼손 중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지나친 단순화'에 속한다. 과학은 복잡하지만 이 오류의 원리는 단순하다. 종종 정치인들은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주제들을 강하게 단정적으로 주장한다. 연설하는 동안 박수를 이끌어내기 위해 또는 어떤 법안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그들은 복잡한 과학 문제를 간경하고 인상적으로 압축해 버린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과학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
사실 발표된 연구들만 봐도 공화당 의원들의 말은 틀렸다. 두뇌와 손발이 연결되는 시점은 임신 23~24주 후라면 몰라도 그전일 가능성은 낮다. (...)
평판이 높은 과학기관들은 여러 증거를 검토한 뒤 태아가 20주 차에 통증을 느낀다는 주장이 잘못됐다고 결론 내렸다.
그렇지만 위에서 언급한 하원의원들은 20주 정도 되면 태아가 통증을 느낄 수 있는 게 확실히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인 것처럼 말했다.
이런 게 지나친 단순화로 국민들을 호도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개인적으로는 태아가 통증을 느낄 수 있다고 해서 어떻게 그게 그 태아가 기생하는 몸의 주인인 여성이 가진 선택권을 뛰어넘는 근거가 되는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건 이미 과학의 범위를 넘어선 판단의 범위이니 넘어가자.
이런 유형의 오류를 발견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학 관련 쟁점 밑에 깔려 있는 정책적 입장을 살펴보는 것이다. 태아의 통증과 관련해 얘기하자면, 공화당이 자꾸 20주를 들먹이는 건 낙태를 제한하고 금지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태아 통증에 관한 '단정적인' 과학이 왜 정치적 대의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왜 더 신중한 접근은 법제화네 방해가 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치인들은 '내가 과학자는 아니지만...'이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고 과학적 사실을 제 입맛대로 변형시켜 버린다. 그러니 우리가 더 많이 배우고 더 날카롭게 비판하는 자세를 갖춰야 하는 거다.
4장 악마 만들기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오류의 한 형태이다.
앨라배마주 하원의원 모 브룩스Mo Brooks는 '합법적인 이민자들과 달리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지 않는 불법 체류자들 때문에 미국으로 질병이 들어와서 미국인들이 죽었다'고 주장했다.
브룩스는 "자신의 유권자들이 싫어할 만한 사안, 곧 불법 이민에 질병을 연결시켜 그 공포감을 이용해먹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잘못된 과학적·의학적 정보를 퍼뜨렸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2014년에 왜 D68(2014년에 미국에서 문제가 된 장내 바이러스 종) 환자가 급증했는지, 원인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반反이민 강경파가 걱정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일부 국가들은 홍역 예방접종률이 미국과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 높다."
미국에서는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허튼소리가 퍼져서 백신 접종률이 낮아졌지만, "다른 이웃 국가들은 상황이 훨씬 낫다."
니카라과의 홍역 예방접종률은 99% 수준이고, 엘살바도르는 높은 접종률을 그리 꾸준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2013년과 2014년에는 94퍼센트였다. 멕시코의 2014년 예방접종률은 97퍼센트였다.
"브룩스는 질병이 들끓는 후진국들이 건강하고 부유한 미국인들에게 병을 옮기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미국으로 건너온 엘살바도르 사람이 오히려 병에 걸릴 위험이 더 클지도 모른다."
'악마 만들기'는 정치인이 쉽게 써먹을 수 있는 책략이다. 어떤 무서운 질병이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극히 드물다거나 다른 나라의 예방접종률이 미국보다 높다는 사실을 대다수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략은 일반적으로 질병과 관련된 사안에 국한되어 있어 간파하기가 비교적 쉽다. 만약 어떤 정치인이 외국인의 입국을 허가하면 특정 질병이 퍼질 거라고 경고하면 그 주장을 의심해 봐야 한다. 그 질병이 어떤 방식으로 전염되는지, 실제로 얼마나 퍼져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민자는 악마가 아니다. 악마는 정치인들의 발언 속에 은밀히 숨어 있다.
6장 조롱과 묵살은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전 오클라호마주 상원의원 톰 코번Tom Coburn은 몇 년 동안 <낭비책WasteBook>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와 참모들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정부 보조금을 정리한 목록이었다. (...) 2012년판의 70번 항목은 '초파리의 아름다움은 덧없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낯선 문장은 2015년 초 켄터리 주 상원의원 랜드 폴의 연설에 다시 등장한다. 그는 국립보건원의 예산이 몇 년 연속으로 늘어났다는 잘못된 정보를 전한 뒤 '수컷 초파리가 자기보다 어린 암컷 초파리를 좋아하는지 알아보느라 100만 달러를 썼다. 차라리 여론조사를 해서 100만 달러를 아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말했다.
웃긴 소리 같은가?
하지만 폴은 '조롱과 묵살' 전략을 이중으로 구사했다. 그는 아주 중요한 연구를 가벼운 농담으로 다뤘을 뿐만 아니라, 초파리를 연구하는 것 자체가 돈 낭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진실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우선, 폴이 언급한 연구는 현재 미시간대학교에 재직 중인 스콧 플레처Scott Pletcher 교수가 진행하는 연속 연구의 일부였다. 플레처 팀은 감각지각·후각·노화 과정을 연구하고, 이것들이 성적·사회적 활동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조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연구를 위해 초파리를 '모델 생물'로 사용한다. 모델 생물은 인간의 대역이다. 인간에 대해 알고 싶은 점을 연구할 때 실제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없으니 인간보다 더 작고 덜 복잡한 동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
플레처 팀의 중요한 연구는 2013년 저명한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연구진은 짝짓기의 기회를 주지 않고 수컷 파리들을 암컷 페로몬에 노출시키면 (반투명 거울 너머로 욕망의 대상이 계속 지나쳐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고 상상해 보라) 수명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플레처는 당시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성적 보상이 "건강한 노화에 명백히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인간과도 무관하지 않은 발견이다.
이제는 이 연구가 그다지 우스꽝스럽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여간,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그럼 이런 실험을 진짜 인간을 데려다 놓고 해야 했다는 건가? 그럼 연구가 비윤리적이네 어쩌네 하면서 깠을 거면서.
의무 교육만 받아도 과학계에서 인간을 직접적 대상으로 할 수 없는 실험은 초파리나 쥐 등에게 대신함으로써 연구한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참고로 초파리의 유전자는 1만 4천개 정도 되는데 그중 약 8천 개가 인간과 똑같다. 그래서 직접 인간의 유전자를 대상으로 실험할 수 없는 실험을 초파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랜드 폴은 그저 한 연구를 조롱한 것이 아니다. 플레처의 연구를 비하하여 초파리 연구 전체를 싸잡아 폄하하고, 한 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과학 연구와 진보를 무시했다. 생물학자든 신경과학자든 거의 모든 분야의 과학자와 수많은 일반 국민은 초파리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괜히 나조차 과학 뽕(?)이 차올랐다. 지금도 과학의 정진을 위해 연구 중일 모든 과학자와 학도들을 위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크으 멋져라.
참고로, 머리말에도 나와 있지만, "이 책에는 정치인이 과학적 쟁점과 관련하여 실수를 저지르거나 뻔뻔하게 조작까지 하는 사례가 아주 많이 담겨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발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그의 발언이 어이없을 정도로 터무니없어서, 그리고 이 책과 시기적으로 맞지 않아서 실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마시라.
이번만 특별히 이 책을 '읽지 않는 게 좋을' 사람을 권하자면, 지구 온난화가 거짓이라고 믿는 사람을 꼽을 수 있겠다. 이 책에 같은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이 여러 번 언급되는데, 물론 저자는 정확한 과학적 정보를 제시하며 이것이 어떻게 틀렸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니 지구 온난화가 조작이라고 믿는 분들은 조심하시라. 여러분의 환상이 저자의 똑부러진 분석에 와장창 깨질 테니까!
그렇지 않고 정상적이고 기초적이며 상식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 보시라. 정보와 홍보 및 광고(정치적인 것이든 아니든 간에)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똑똑하게 오류를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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