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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린다 베이컨, <왜, 살은 다시 찌는가?>

by Jaime Chung 2019.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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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린다 베이컨, <왜, 살은 다시 찌는가?>

 

 

저자 린다 베이컨은 영양·체중·건강의 상관관계를 규명해 온 국제적 권위의 과학자라고 한다.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내 몸이 원하는 건강한 체중(Health at Every Size, HAES)'으로 정리했다.

그녀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칼로리를 제한하는 식의 다이어트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설정 체중', 즉 세트 포인트(set point)가 정해져 있고, 일시적으로 이보다 체중이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원래 자리를 찾아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만이나 과체중은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죽음을 초래하는' 무시무시한 질병이 아니다. 살이 쪘다는 것은 히스패닉계라거나 레즈비언인 것처럼 그냥 타인과 다른 특징 중 하나일 뿐이다. 거기에 잘못된 점은 없다.

체중 감량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의 몸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따르는 것이다. 즉,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라.

 

어떤 이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나 콜라타 박사의 <사상 최고의 다이어트>(부제: '왜 모든 다이어트는 실패하는가?')를 읽었기 때문에 다이어트는 실패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설정 체중(세트 포인트) 이야기도 다이어트 좀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하고.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내 몸의 신호를 들어라. 몸에 필요한 영양에 집중하라'는, 책 뒤표지에 쓰인 문구 덕분이었다.

저자는 살찐 것이 죄도 아니고 문제도 아니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권유하기 위해 자신의 연구 결과를 보여 준다.

그녀가 진행하는 연구에 참여한 16사이즈(우리나라로 치면 88 사이즈) 여성들은 "주목할 만큼" 살이 빠지지는 않았지만 건강해졌다.

기존 다이어트 그룹과 달리 HAES 그룹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HAES 그룹은 나쁜 LDL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 수치가 현저하게 감소되었고, 그들이 활동하는 데 쓴 에너지를 4배에 달했다. 따라서 몸에 활력을 느끼면서 자기 몸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헀다. 몸에 대한 이미지와 자존감에서도 주목할 만한 발전을 보였다.

HAES 그룹 여성들 사이에서 개선된 변수들, 즉 혈압, LDL, 활동성 수준, 우울증 등은 기존 다이어트 그룹에서는 그대로 머물거나 더 악화되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기존 다이어트 그룹의 절반가량이 실험 도중 낙오되었다는 점이다. HAES 그룹에선 8% 이하가 낙오되었다. 결국 여성들은 다이어트를 시도하면서도 다이어트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의 방법대로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이 건강에 유의지한 지표들을 개선하면서도 살이 크게 빠지지 않았다, 또는 다시 말해서 살이 크게 빠지지 않았으면서도 건강 지표가 나아졌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첫째, '비만' 또는 '과체중'이라는 딱지가 정말 그 개인의 '건강'과는 큰 관련이 없다.

둘째, 따라서 뚱뚱한 것은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볼 수 없다. 이는 '어떤 사이즈에도 건강한(healthy at every size)'라는 연구명과도 착 들어맞는다. 어떤 사이즈라도 건강할 수 있다!

셋째, 그렇다면 문제는 날씬하냐, 살이 쪘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건강하냐, 자신이 가진 몸에 만족하느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연구 결과를 보여 준 후, '살빼기 강요 사회'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한다.

이제 다음 단계로 갈 차례다. 여러분의 체중, 외모, 남들이 하는 말과 상관없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단계다. 몸은 여러분의 핵심 자아를 말해주지 않는다. 당신은 육체 이상으로 다른 많은 중요한 것들의 총화다. 여러분 몸에 몸의 가치보다 더 큰 권력을 주지 말라. 몸이 여러분을 정의할 수 없다. 그 대신 외모를 분수에 맞게 적당한 위치에 두고, 몸을 포장하는 것 이상으로 몸을 존중하는 가치 체계를 가꾸라. 몸은 여러분을 보호하는 곳이기에 가치 있다. (...)

자기애는 혁명적인 행동이다. 뚱뚱하든 말랐든 자기 몸에 만족하는 사람은, 우리를 희생시키면서 우리가 받아들여지려면 자신들의 제품을 쓰라고 말하는 산업들로부터 권력을 빼았는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새로운 정체성을 단단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쉬운 길을 열어주는 데 도움이 될 또다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9장 '허기와 폭식 다루기'에서 저자는 건강한 식습관과 자기 돌봄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먹는 방법'은 이것이다.

1 맛있는 음식을 먹어라.

2 먹을 때 집중하라.

3 배고플 때 먹어라.

너무 단순해 보인다고? 하지만 단순한 게 제일 중요한 거고 제일 어려운 거다.

1번 '맛있는 음식을 먹어라'부터 살펴보자. 진짜로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만족감을 느끼면 과식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수저를 내려놓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감자튀김이 먹고 싶을 때 감자튀김을 먹는 게 구운 감자로 대신하는 것보다 낫다. 자기가 진짜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게 되면 마음속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아 다른 걸 계속 먹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냥 먹고 싶은 걸 먹고 끝내자.

2번 '먹을 때 집중하라'. 텔레비전을 보거나 운전, 또는 독서를 하는 등 딴짓을 하면서 먹지 마라.

음식을 먹으면서 그 맛과 자신의 느낌, 기분에 집중하라. 바쁘게 우걱우걱 먹지도 말고, 그냥 식사를 집중하고 음식을 즐겨라.

3번 '배고플 때 먹어라'. 맛있는 음식에 대한 평가는 배고플 때가 아니라 적당한 양을 먹었을 때 가능하다.

초콜릿을 먹는다고 상상해 보라. 처음 몇 입에는 초콜릿의 맛이 입 안 가득 퍼지는 느낌을 즐길 수 있다.

그러다가 점차 초콜릿이 맛이 없어진다. 그러니까, '우웩, 못 먹겠다'가 되는 건 아니고 여전히 맛이 있긴 하지만 처음 느꼈던 그 만족감, 짜릿함은 없다.

이런 변화를 과학 용어로 부정적인 '감각의 전도alliesthesia'라고 말한다. 즉, 일단 칼로리 요구량이 충족되면 미뢰가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둔감해지고 자연스럽게 덜 먹도록 유도하는 자연의 방식이다. 다시 말해, 최고로 즐거울 때 먹기에 몰입하면 훨씬 적은 양으로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감정적으로 더 안정되고 건강한 혈단 조절이 가능하다. 하지만 수년간 몸의 배고픔과 배부름 신호들을 무시하면서 보넀다면 그 신호들을 감지하기가 어렵다. 몸 내부에서 미세하게 조절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배고픔과 배부름 신호를 알아내기 위해 식사 일지를 쓸 수 있다.

'먹기과 연관된 기분, 생각, 몸의 감각, 감정 일지'라고 맨 위에 쓰고, 날짜·시간, 음식, 배고픔·배부름 단계, 식사 전의 느낌·기분·생각·몸의 감각, 식사 후의 느낌·기분·생각·몸의 감각·기타 덧붙일 말 등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지를 분석하라. 그러고 나서 자신의 상태를 종합한 후 음식의 종류와 양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먹는 방법 4. 이걸 빠뜨릴 수 없지. '감정적으로 먹지 말라'.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 허한 느낌이나 스트레스, 화 등을 먹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먹는 것 대신에 건전한 방식으로 해소하라.

HAES 실험에 참여한 한 여성의 삶을 살펴보자. 그녀는 데이터 입력하는 일을 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컴퓨터 프로그램에 정보를 입력했다. 일할 때는 점심만 먹고 집에 오면 먹고 또 먹었다. 하지만 왜 그런지 알지 못했다. 조용히 앉아서 자신을 냉장고로 이끄는 감정을 느껴보라고 요청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지루한 삶과 일로부터 정신을 돌리기 위해 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그녀가 지루함을 참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이해하게 되자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갔다. 지금은 좀 더 만족스러운 일을 갖기 위해 공부를 하는 중이다.

 

이게 여느 자기계발서나 자신의 연구 결과를 담은 책에나 있는 '(저자가 주장하는 방식으로 했더니) 인생을 변했어요!' 같은 간증담이라고 생각하시는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게 진짜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깊게 살펴보기를 두려워해서 자신이 가진 문제를 먹는 것 또는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사서 쌓아 놓는 것으로 가리려 한다.

그러나 되지 않을 일이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데 어떤 기분이 들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직면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깊이 파고 나아가다 보면 '아, 내가 사실은 이러이러한 걸 원하는구나.' 또는 '나는 사실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 일에 이렇게 반응한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그러고 나면 문제 해결은 쉽다. 남이 시켰으면 절대 하지 않았거나 어려웠을 결정도 척척 내릴 수 있다. 

위 인용문에 나온 여성도 감정적 폭식이란 문제의 해결법으로 누군가 '뫄뫄 씨는 일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가세요. 그럼 나을 겁니다.' 했다면 이 말을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자신의 문제를 깨달았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학업을 계속한다는 다소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이를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면 그 말도 믿을 것이다. 소위 '현실적'이라는 사람은 '그게 무슨 소리야, 청소 따위로 어떻게 인생이 바뀌어? 웃기지 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청소를 시작하기 전 자신이 진정 원하는 집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또는 자기가 정말 배가 고파서 먹는 건지 아니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먹을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인지 간에, 자기 내면을 바라보는 과정 자체가 답이기 때문이다.

청소나 식이법 정도는 그에 비하면 부차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문제 해결가가 하는 일은 문제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 책의 이런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전문 용어와 영양학적 정보로 가득 찬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읽어 보니 의외로 모든 신체를 수용하자는, 부드럽고 다정한 격려와 응원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감정적 식사(emotional eating)' 뒤에 숨겨진 자기 자신의 감정과 문제를 곰곰이 살펴보라는 제안도. 이게 혹자에게는 다소 뉴 에이지(New Age), 심리학 또는 정신 분석학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인슐린과 렙틴의 관계,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교묘하게 포장해 판매하는 식품업계의 진실, 기본적인 영양학적 정보 등도 물론 이 책에 들어 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책의 중반 6장부터 나오는, '살빼기 문화'에 제대로 반격을 가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 부분 위주로 리뷰를 썼다. 이 점 참고하시라.

위에서 언급한 지나 콜라타 박사의 <사상 최고의 다이어트>도 다이어트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에 대한 설명이나 다이어트에 관한 여러 연구가 담겨 있는 귀중한 책이니 이 책도 강력 추천한다.

'뚱뚱한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하는 'fat acceptance' 운동에 관해서라면 이전에 쓴 아래 리뷰를 참고하시라. 각 책 리뷰에서 추천한 다른 책들도 살펴보는 식으로, 이에 관련한 도서 목록은 계속 늘어날 수 있다! 특히 페미니즘과 연관해서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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